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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화성 연대기

2011.07.30 00:4107.30

화성 연대기

레이 브래드버리, 김영선 옮김, 샘터사, 2010년 8월



날개 (revinchu@empal.com)



 [양말 줍는 소년], [절망의 구] 등을 쓴 김이환 작가는 처음에 글을 쓰게 된 계기로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성 연대기]를 꼽았다. 그런 책이 있다. 누군가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책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책들. 삶의 새로운 길로 나아가게 한다거나, 나도 이런 책을 쓰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게 하는 책들. 물론 나에게도 처음 한글 프로그램을 켜고 글을 적게 한 책이 있다. 만약, 내가 그때 [화성 연대기]를 만났다면, 나에게 키보드를 두들기게 만든 책이 바뀌게 되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이번에 샘터사에서 새로 출간 된 [화성 연대기]를 읽으면서 어렸을 때 이 책을 읽었다면 그 경이와 감동은 측정하기 힘들 만큼 컸을 테고, 어떤 식으로든 큰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화성 연대기]가 갖고 있는 매력은 컸다.

 [화성 연대기]는 1940년대부터 레이 브래드버리가 발표한 화성에 관한 단편들을 모은 책이다. 즉, 처음부터 장편소설로 기획된 작품집이 아니라, 여러 잡지에 개제한 단편들을 모아 연작소설의 형태로 출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성 연대기]에 실린 단편들은 연대기 순으로 집필된 것이 아니라 제각각 집필된 시기가 다르다.

 레이 브래드버리는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C. 클라크, 로버트 하인라인 등의 소위 말하는 빅3에 필적하는 명성을 가진 작가다. 국내에는 그의 대표작 [화씨 451]이 번역되어 있으며 이 외에, 반자전적 성장 소설 [민들레 와인], 단편집 [일러스트레이티드 맨] 등이 황금가지 환상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화성 연대기]는 1979년 동서문화사에서 동서추리문고 일어중역본으로 처음 국내에 소개되었고, 이후 모음사에서 다시 재간되었다. 그러나 마지막에 나온 1990년도판은 마지막 챕터의 마지막 페이지가 누락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샘터사에서 나온 [화성 연대기]는 중역이 아닌 최초의 완역본으로 의미있는 책이다.

 [화성 연대기]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문체였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특징인 시적인 아름다운 문체가 소설 전체를 장악하고 있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내용보다 먼저 문체에 홀려서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것이다. 내용보다도 문장 하나하나의 아름다움이 소설에 매력을 한껏 부여하고 있었다.

 오늘 밤 공기에서는 시간의 냄새가 났다. 토마스는 빙긋이 웃으며 공상에 잠겼다. 마음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시간은 어떤 냄새일까? 먼지와 시계와 인간이 뒤섞인 냄새이다. 그리고 만약 시간이 어떤 소리일지 궁금하다면, 그것은 어두운 동굴을 흐르는 소리이고 울부짖는 목소리이고 텅 빈 상자뚜겅 위로 떨어지는 흙덩이 소리이고 빗소리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시간은 어떤 모습일까? 깜깜한 방 안으로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이나 낡은 극장에서 상영하는 무성영화나, 새해를 알리는 풍선들처럼 허무하게 떨어지는 천억 개의 얼굴이다. 시간의 냄새와 모습과 소리는 그런 것이다. 토마스는 트럭 밖에서 부는 바람 속으로 손을 내밀었다. 오늘 밤에는 왠지 시간을 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토마스는 시간의 언덕 사이를 달리고 있었다. 목이 욱신거렸다. 토마스는 계속 앞을 보면서 허리를 똑바로 세웠다.
― 레이 브래드버리, [화성 연대기], 샘터사, 2010년 8월, 185쪽

 로켓이 분홍빛 불꽃 구름과 가마솥 같은 열기를 내뿜으며 발진기지에 서 있었다. 추운 겨울날 아침 배출 가스를 내뿜어 여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로켓이 기후를 만들어냈고, 짧은 한순간 여름이 땅을 뒤덮었다.
― 레이 브래드버리, [화성 연대기], 샘터사, 2010년 8월, 17쪽

 반짝이는 별빛을 받으며 파란 화성인 배들이 소곤대는 사막 위를 미끄러지듯 달려왔다. 처음에 샘의 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샘은 문득 닻을 떠올리고는 얼른 닻을 배 위로 끌어올렸다.
 “됐어!”
 바람이 울부짖으며 배를 힘차게 끌고 갔다. 배는 바닥 밑바닥을, 오랫동안 묻혀 있던 수정들 위를, 꼿꼿이 서 있는 기둥들 옆을 지나, 대리석과 놋쇠로 만들어진 버림받은 부두들을 지나쳐, 하얀 체스 말 같은 죽은 도시들을 통과해, 나지막한 보라색 언덕들을 지나갔다. 화성인 배들이 뒤로 멀어졌다가 다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샘의 배를 뒤쫓기 시작했다.
― 레이 브래드버리, [화성 연대기], 샘터사, 2010년 8월, 305쪽

 장르소설에서는 문장보다는 내용과 인물, 세계관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놀라운 문장력으로 돋보이는 작가는 그만큼 흔치 않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소설은 무엇보다도 문체에서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된다. 아름다운 문체로 쓰인 과학소설, 화성의 이야기를 읽고 싶은 독자라면, [화성 연대기]는 결코 놓칠 수 없는 소설이다. 시처럼 쓰인 문장 하나하나를 음미하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인 것이다. 물론 과도한 수사나, 시대가 변함에 따라 이제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문장이 있을 수도 있지만, 개성적인 문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이 소설은 과학적인 근거들을 주로 하는 과학소설과는 다르다. 즉, 흔히 하드SF라고 할 만한 과학소설들과는 다른, 우주, 화성, 화성인이 등장하는 소설일 뿐, 과학적인 논리가 작품을 뒷받침하고 있지는 않다. 우화나 환상소설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일반적인 과학적 논리를 지닌 SF를 기대하지 않고 SF적 무대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로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과학이나 세계보다는 지구에 사는 인간들이다. 바로 우리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어떤 본질을 지니고 있는가를 살핀다. 미국이 서부개척시대에 인디언들을 학살하고, 인류가 발전을 이유로 동물들을 멸종시키는 모습을 이 소설은 작가가 만들어낸 ‘화성’이라는 세계에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 속의 ‘화성’에는 화성인들이 살고 있다. 우리의 과학 지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나, 소설 속은 작가가 만든 우리 우주와 유사한 평행세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화성의 공주]처럼 화성인들과 지구인의 조우를 그리고 있으나, [화성의 공주]에서 단 한 명의 인간이 화성으로 갔다면, 이 소설에서는 인류가 끊임없이 화성과의 접촉을 시도하면서 벌어지는 큰 단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로 인해 화성은 전면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연대기라는 제목에 걸맞게 1999년 1월부터 2026년 10월까지의 일을 다루고 있는데, 이 짧은 기간 동안 화성인은 인류에 의해 멸망한다. 짧은 단편들로 이루어진 작품집이면서도 커다란 사건들로 인해 독자는 이 연대기를 흥미롭게 계속 읽어내려 갈 수밖에 없다. 중간 중간 한 두 장의 짧은 글들도 있다. 1999년 1월 ‘로켓 여름’ 같이 그저 로켓이 가스를 내뿜는 것을 묘사하는 단 두 장의 글이 있고, 때로는 충분한 분량을 가진 복잡한 플롯을 가진 이야기가 전개되기도 한다. 이런 다양성 때문에 [화성 연대기]는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면서도 화성을 다룬 공통점 때문에 마치 처음부터 이렇게 기획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하나의 일관성을 보이는 면도 있다. 이 책에 속하지 않은 작가가 발표한 다른 화성에 관련된 단편들도 읽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1999년 2월 ‘일라’ 같은 경우는 화성인의 입장에서 서술된 단편이다. 따라서 처음에는 화성인들이 어떠한 존재인지 모르고, 이 작가가 그려낸 화성이 어떤 모습인지 몰라 당황하면서 읽게 된다. 그러나 1999년 8월 ‘지구인’편을 읽으면서 이 작품집의 진짜 색깔을 깨닫게 된다. 지구인들을 2차 탐사대를 보내고 1차 탐사대의 행방을 찾는 한편, 지구인이 방문했다는 사실을 화성인들에게 알리려고 한다. 그런데 화성인들의 반응은 퉁명스럽다. 이 시점에서 독자는 의아한 생각을 하면서 작품에 몰입하게 된다. 이 지점이 이 작품이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이자, 화성인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주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개인적으로 생각한 것은, 화성은 인류와 전혀 다른 사고체계를 가졌기 때문에 지구인이 방문하든 말든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 점으로도 신선하게 느껴졌고, 탐사대에게 감정이입을 해서 마찬가지로 당황스러움과 경악, 답답함을 느꼈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단지 그런 이유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난다. 화성인들은 텔레파시가 가능한 존재들이며, 때로 사물에 투영을 해서 환각을 보게 할 수도 있다. 이런 설정들이 드러나자 화성인들의 반응이 이해가 가고, 지구인 탐사대가 처한 위험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즉, 이들은 화성인이나 지구인을 주장하는 정신병자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구에서도 화성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누구도 그를 믿지 않고 정신병원에 보낼 것이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의 상황을 보여준다. 이 소설은 이렇게 과학적으로 로켓이 어떻게 발사되고 화성까지 갈 수 있는지, 또 화성인의 피부가 왜 갈색이고 눈은 노란빛인지, 손가락은 왜 여섯 개인지 설명하지 않는다. 배경들은 그저 제시될 뿐이고 중요한 것은 작품의 주제의식인 것이다. 정신병자로 생각하고 끝까지 지구인들을 믿지 않는 화성인 의사. 그 결과는 끝내 비극으로 치닫는다. 이때부터 [화성 연대기]의 매력에 매료되었다. 텔레파시 투영으로 인해 실제 지구인을 믿지 않는 화성인들의 모습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인간들 역시 눈 뜬 장님처럼 많은 것들을 본 대로 믿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니까. 이후 이야기는 충격적으로 전개된다. 화성인이 지구인들의 수두 때문에 거의 멸종하다시피 사라진 것이다. 순식간에 도시들은 황폐화된다. 전혀 다른 세계의 생명체들이 조우할 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위험성은 실제로 역사적인 사례도 있고, 영화나 소설에서도 다른 식으로 변주한 적도 얼마든지 있다. 또한, 실제 우리 세상에서도 언젠가 외계의 생명체와 접촉한다면 가장 먼저 경계해야 할 사건 중 하나다.
화성인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서는 인류의 무모한 접촉에 안타까움과 원망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지구인들은 여기서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화성을 지구화하려고 한다. 실제 인류가 우주에 진출한다면 어디든 인간이 살기 좋게 파괴하고 개발할 것이 뻔히 예상되기 때문에 당연시 보이면서도 역시 인류의 어리석음에 답답하고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는 부분이었다. 이 소설에는 이렇게 답답함을 주는 화성인이나 지구인들이 많이 등장한다. 주제의식에 치중하느라 인물들은 도구화된 경향이 보이기도 한다. 이점은 소설의 생동감에는 아쉬운 점이지만, 작가가 그만큼 쓰려고 하는 메시지를 더 중시한 탓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몇몇 개연성에서 벗어난 점이 있고, 인물들이 살아있다고 느껴지지 않고 인형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느낌을 받아서 아쉬운 면도 있었다. 그러나 이 소설이 전체적으로 우화라는 색을 띠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납득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화성 연대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들은 바로 화성인의 텔레파시 능력과 관련된 섬뜩한 에피소드들에 있었다. 서막을 알린 ‘지구인’ 같은 단편도 그렇고, ‘3차 탐험대’, ‘화성인’ 같은 단편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어셔가의 몰락’을 바탕으로 한 ‘어셔2’도 인상적이었다. ‘적막에 휩싸인 도시’는 화성에 둘 밖에 남지 않은 남녀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풀어냈다. 픽스업 소설인만큼 색깔이 다른 작품들이 섞여 있지만(여러 단편들이 모인 단편집의 특성상 분명 마음에 드는 단편과 마음에 들지 않는 단편들이 혼재되어 있고, 그 중 몇몇의 단편만 마음에 드는 것은 필연적이겠지만), 전체적으로 인류와 문명을 비판하는 주제의식은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인류의 성질이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연환경을 망가트리고 있기 때문에,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이 소설은 여전히 유효한 울림을 가진다.

 오래 전에 출간되었지만, 언제 읽어도 독자들에게 감동과 의미를 전달하는 작품은 고전이 되어 살아남는다. [화성 연대기]는 지금껏 살아남아 이제야 제대로 한국에 소개되는 고전 SF다. 그렇다고 고전적인 작품이기 때문에 읽겠다고 결심할 필요는 없다. 충분히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작가가 그린 화성을 부드러운 문장들로 이미지를 그리고, 인간과 화성인의 조우를 통해 ‘인간’이란 존재를 돌이켜보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읽어 볼만한 가치가 있다. 유명한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라는 의무감이 아니라, 정말 재미있는 소설, 빨리 페이지를 넘기고 싶은 소설을 보고 싶다라는 생각에서 읽을 수 있다. 읽고 나면 재미뿐만 아니라, 인류가 우주에 가져야 하는 관점, 또는 지구를 대하는 관점에 대해서 자성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책이다. 다 읽고 나면 마지막에 위치한 단편 ‘백만 년짜리 소풍’을 곱씹으면서 씁쓸한 여운을 느낄 것이다. 모든 것이 사라진 세상에 단단히 선 가족들을 보고 말이다. 냉소적인 태도로 인간들을, 문명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 속에서 우리는 또다시 인류 역사를 되짚어보고, 현재를 직시하는 한편, 다가오는 미래를 경계하게 된다. 우리는 어떤 삶의 태도를 견지해야 할 것인가. 끊임없는, 무분별한 발전만이 정답일까. 인류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인류를 거울처럼 비쳐줄 외계인과 아직 만나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우리는 때로 과학소설을 읽으면서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경험할 수 있다. [화성 연대기]는 서정적인 문체로 우리의 과거이자 미래, 또 다른 우주의 현실을 광기와 비극이 서린 작가만의 색채로 보여주고 있다.

 [화성 연대기]는 존 스칼지의 [노인의 전쟁], [유령여단]을 출간한 샘터사 외국소설선의 다섯 번째로 출간되었으며 표지나 편집 모두 깔끔하고 작은 판형이라 들고 다니면서 읽기 좋은 책이다. SF를 좋아하는 독자는 물론이고, SF를 잘 모르는 독자라도 분명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화성 연대기]는 영감을 받은 인간의 손과 머리로 만들어진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아이디어와 색깔은 삶에서 왔다. 이것은 좋은 소설이다.’

 “(상략) 화성인들은 과학이 미와 아름다움을 파괴하는 일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정도의 문제일 뿐이지요. 지구인이라면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이 그림에는 실제로 색깔이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자의 설명에 따르면, 색깔이라는 것은 어떤 물질의 분자들이 빛을 반사하도록 배치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색깔은 내가 우연히 보게 된 물건들의 본질이 아니다.’ 그러나 훨씬 더 영리한 화성인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이것은 멋진 그림이다. 이것은 영감을 받은 인간의 손과 머리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 그림의 아이디어와 색깔은 삶에서 왔다. 이것은 좋은 그림이다. 이렇게 말입니다.”
― 레이 브래드버리, [화성 연대기], 샘터사, 2010년 8월, 157~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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