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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책

세실리아 아헌, 이정임 옮김, 이레, 2010년 11월


pilza2 (pilza2@gmail.com)



 주가는 예측하기 힘들다는 기사, 도시계획 이전에 땅을 사재기한 부동산 투기를 비판한 칼럼 등 많은 뉴스에서 도입부에 인용하는 강철수의 [내일 뉴스]라는 만화가 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알려주는 라디오를 우연히 얻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로 예전에 만화잡지에서 일부나마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이 만화의 제목을 확인하려고 검색하다가 알게 된 츠노다 지로의 만화 [공포신문]은 내일 일을 알려주되 대신 구독자의 수명을 빼앗아가는 신문을 소재로 한 공포물이다. 우리나라엔 해적판으로 출간되어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이렇듯 미래를 알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는 작품군(편의상 '예언물'이라고 이름 붙인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미래를 누가 아느냐를 기준으로 잡으면 주인공 본인의 능력으로 미래를 보는 것과 미래를 알려주는 인물 혹은 물건 등을 통해 정보를 접하는 방법으로 나뉘는데 전자 중에서는 주인공 자신의 능력이 아니더라도 동일한 시간이 반복되면서 자연스레 미래를 알게 되는 이른바 루프물(가장 유명한 작품은 영화 [사랑의 블랙홀])도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두 만화는 이 분류에 의하면 단연 후자에 포함될 것이며, 여기서 소개하는 본작 [내일의 책]도 여기에 들어가는 것 같다. 주인공 타마라는 우연히 이동 도서관 버스에서 자물쇠로 잠긴 책을 발견하고, 안을 펼쳐서 보지만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빈 책임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 책을 일기장으로 쓰기로 마음먹고 집으로 가져온 다음날 펼쳐 보니 거기엔 자신의 필체로 적힌 다음날의 일기가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본작은 겉보기에는 [내일 뉴스]처럼 미래를 예언하는 물건을 얻은 인물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주인공 자신이 쓴 일기라는 점에서는 본인이 미래를 보는 능력을 얻은 예언 이야기로 분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앞서 말한 두 가지 분류로 명확히 나눌 수 없다는 재미있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래가 일기장에 적힌 그대로 일어나되 주인공의 선택과 행동에 의해 바뀔 수도 있다는 점이다. 보통 이런 미래 예언물은 그 미래를 바꾸려 노력해도 결국 실패하고 예언 그대로 된다는 내용이 있는 반면, 주인공의 노력으로 미래를 바꾸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앞서의 분류가 미래를 누가 아느냐를 기준으로 잡는다고 했는데 이번의 분류는 미래가 어떻게(즉 예언 그대로 혹은 예언과 다르게) 일어냐느냐를 기준으로 삼은 셈이다. 이렇게 보면 본작은 명백하게 후자, 주인공에 의해 정해져 있던 미래가 바뀌는 이야기에 해당한다.

 주인공 타마라는 자신과 어머니에게 속속 다가오는 불행한 사건, 그리고 자신에게 감춰진 비밀을 밝히기 위해 일기장에 적힌 내일 일을 읽고 정해진 자신의 미래를 바꾸려 한다. 원래대로라면 비극과 고통으로 가득할 타마라의 미래는 과감한 도전으로 조금씩 그리고 마침내 커다랗게 변하게 되는데, 타마라에게 있어 일기장은 미래의 예언이 아니라 타마라의 선택과 도전을 위한 조언자가 된 셈이다.

 일인칭으로 십대 소녀의 심정을 절절하게 표현하여서 더욱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본작은 청소년을 위한 성장소설 시리즈로 나와도 좋을 만큼 주인공이 역경을 딛고 일어서며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생생하게 그렸다. 다만 그 과정이라는 것이 치정극, 범죄, 출생의 비밀에다가 미래 일기와 같은 환상적 장치까지 가미되어 있어 상당히 극적이라 할 수 있겠다.

 이를 도표로 표현한다면 초반 아버지가 자살하면서 집과 재산을 모두 잃고 어머니와 함께 외삼촌 집에 얹혀살게 된 상황은 내리막을 그리고, 우울증에 걸린 듯 무력해진 어머니와 이해할 수 없는 언동을 하는 외숙모, 무심해 보여 접근하기 꺼려지는 외삼촌을 보며 타마라의 인생은 밑바닥을 긁다가 마커스, 수녀님, 웨슬리와 같은 새로운 친구를 만나면서 약간의 상승곡선을 그리지만, 내일 일을 알려주는 일기장을 접하게 되면서 크게 요동을 친다. 위기와 고민, 사건과 사고를 겪으며 곡선은 풍랑이 치듯 일렁이지만 결국 일기장 덕분에 용기를 내어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집안에 깃든 비극과 맞서면서 곡선이 안정적으로 뻗어나간다.

 결국 마지막에 다다라 일기장을 버리고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다는 결말이 너무 건전하고 희망적이고 교훈적이라서 낯간지러울 정도이지만, 대신 그만큼 청소년 소설로 적합하다는 의미가 된다. 일반소설로 나오는 바람에 알려지고 읽힐 기회가 줄어든 것 같아 아쉽지만, 현실에 대한 불만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고뇌하는 십대에게 한 번쯤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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