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8959755230_1.jpg8959755249_1.jpg

작자미상
미츠다 신조, 김은모 옮김, 한스미디어, 2013년 3월

 

호러와 미스터리를 융합하기 위한 야심적인 시도와 개성적인 고안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표면적으로는 연작 단편집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수록된 일곱 편에는 각각 개별적인 수수께끼가 제시되고 탐정과 조수 역할을 맡은 두 인물이 극중에 제시된 소설인지 체험담인지 불분명한 동인지를 읽고 그 안의 단서를 활용하여 수수께끼를 푼다. 물론 그 뒤에도 새로운 시련이 있으나 스포일러(=네타바레)를 막기 위해 생략하겠다.
이런 구성은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다. 개별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마지막에 유기적으로 얽혀 있음을 드러내며 모두를 관통하는 새로운 수수께끼를 제시했다는 점이 흡사하다.
다만 본작의 구조는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처럼 하나의 미스터리를 완성하기 위한 시도가 아니라 새로운 호러를 완성하기 위해서 시도한 장치다. 즉 알쏭달쏭한 본작의 정체성을 말하자면 개별 미스터리를 모아서 만든 하나의 호러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여기서 호러와 미스터리를 구별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간략하게 차이점을 강조하여 정의하자면 호러는 비현실 혹은 초현실 요소를 넣어서 공포를 주고자 하는 환상소설의 갈래이고 미스터리는 현실에서 일어난 문제나 수수께끼를 논리적으로 해결하는 리얼리즘 소설의 갈래라고 하겠다. 쉽게 말해 유령이 사람을 죽였다면 호러이고, 유령인 줄 알았는데 변장한 사람이 사람을 죽였다면 미스터리가 된다.
물론 유령이 나오거나 마법이 나오는 추리물도 있으니 기계적으로 분류하기는 힘들다. 그런 경우라 할지라도 반드시 논리적인 방법에 의해 해명되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두 장르를 나누는 가장 큰 기준이라 할 수 있다.
마법이 나오는 추리물의 대표적인 예시로 들 수 있는 〈다아시 경 시리즈〉나 『부러진 용골』를 보면 양쪽 작품 모두 마법이 논리를 무너뜨리는 요소가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내적 논리를 이루고 있어 이를 위배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사건이 일어나고 해결된다. 즉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도구이자 단서로 작용하는 것이다.
사실 미스터리가 리얼리즘인지 판타지인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논란이 있으나 여기서 길게 다룰 문제가 아니므로 생략하겠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 미스터리는 마법이나 외계인이 나와도 상관이 없으나 그런 요소가 내적 논리를 무너뜨리는 역할을 한다면 미스터리 장르로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만은 언급해두겠다.
또한 미스터리는 비현실적 무대인 ‘클로즈드 서클(내부인으로 용의자를 한정하는 추리물의 수법. 특히 최근 작품에서는 등장인물들 외부와 물리적으로 고립시키는 방식을 가리키는데 경찰의 개입이나 과학수사를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을 구현하기 위해 눈 덮인 산장이니 갑작스런 태풍이니 하며 최대한 사실적이고 납득이 가는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애를 쓴다든지, 사회와 법률의 변화를 빠르게 받아들이고 최신 유행도 반영하는 기민한 장르라는 점도 첨언할 가치가 있다. 특히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미스터리의 중요 요소인 고립을 방해하는 커다란 난관이 되고 있어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작가들이 다양한 궁리를 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물론 이를 이용한 새로운 트릭을 고안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고.

다시 돌아와서 본작에서 작가는 호러와 미스터리를 융합하는 야심을 이루기 위해 이런 방법을 썼다. 일종의 미스터리를 액자로 한 호러다.
작중에서 인물은 동인지를 읽고 그 안에 담긴 개별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 왜냐하면 글을 읽자 그 안에 서술된 비현실적 요소가 실제로 등장하여 그들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호러 장르라 볼 수 있다. 여기서 푸는 수수께끼는 지극히 논리적인 본격 추리의 기법을 쓰고 있다. 일곱 편의 추리 소설이 액자로 담겨 있고, 그 외부에 호러가 존재하는 셈이다.
일곱 편은 그대로 다듬어서 추리 단편집으로 꾸며도 손색이 없는 트릭과 완성도를 갖추고 있으나, 작가의 야심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모든 단편을 아우른 『미궁초자』라는 극중 동인지를 둘러싼 거대한 수수께끼를 하나 더 준비해놓았다. 스포일러를 감수하고 언급하자면 메타픽션 요소인데, 어느 정도 〈링 시리즈〉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링 시리즈〉는 원래 독립적으로 나온 1권 『링』만 놓고 보면 전형적인 호러의 플롯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인기와 작가의 야심을 등에 업고 나온 속편 『나선』, 『루프』에 이르러서는 약간의 메타픽션 요소와 함께 가상세계를 다룬 SF로 확장된다.
그렇게 놓고 보면 본작은 링 시리즈와 반대되는 야심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링 시리즈는 호러로 출발했으나 호러가 아닌, 호러를 넘어서거나 극복하려는 시도의 결과라고 볼 수 있으나 본작은 호러가 아닌 혹은 대립되는 요소(즉 미스터리)를 이용하여 호러를 만들어내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작품과 작가가 큰 사랑을 얻었다는 점에서 이런 야심찬 시도가 꽤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해도 될 것 같다.

댓글 0
분류 제목 날짜
이달의 거울 픽 2018년 5월 토막 소개 2018.05.15
이달의 거울 픽 2018년 4월 토막 소개 2018.04.15
이달의 거울 픽 2018년 3월 토막 소개 2018.03.15
소설 문근영은 위험해 - 소설이라는 시뮬라크르 세계1 2018.03.15
이달의 거울 픽 2018년 2월 토막 소개3 2018.02.15
이달의 거울 픽 2018년 1월 토막 소개2 2018.01.15
소설 작자미상 - 미스터리를 조립하여 만들어낸 호러 세계 2018.01.15
이달의 거울 픽 172호 토막 소개 2017.10.31
소설 러브크래프트 전집 6 외전 (하) 2017.10.31
이달의 거울 픽 171호 토막 소개 2017.09.30
이달의 거울 픽 170호 토막 소개2 2017.08.30
소설 레디 플레이어 원1 2017.07.31
이달의 거울 픽 169호 토막 소개 2017.07.31
소설 우주 상인 - 미래 광고업자의 보물 행성 모험담 2017.06.30
이달의 거울 픽 168호 토막 소개 2017.06.30
이달의 거울 픽 167호 토막 소개 2017.05.31
이달의 거울 픽 166호 토막 소개1 2017.04.30
이달의 거울 픽 165호 토막 소개 2017.03.31
이달의 거울 픽 164호 토막 소개 2017.02.28
소설 멸망한다면 이들처럼 - 지구 종말 시리즈 2017.01.31
Prev 1 2 3 4 5 6 7 8 9 10 ... 33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