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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소설 몸에 갇힌 사람들

2013.05.01 00:02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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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갇힌 사람들 : 불안과 강박을 치유하는 몸의 심리학
수지 오바크 지음, 김명남 옮김, 창비 펴냄, 2011년 7월


라키난


 혹시 예전에 나왔던 도브의 “리얼 뷰티” 광고를 본 적이 있는지. 생전 처음 듣는다는 사람들을 위해 동영상 링크를 첨부한다i.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iYhCn0jf46U

 동영상에 나오다시피 보통 광고로 내걸리는 모델의 이미지는 화장-사진기술-포토샵(가공) 과정을 거쳐 원래의 모습과는 놀랄 만큼 달라진 다음의 모습이다. 물론 원판 불변의 법칙이 있고 모델은 원판도 예쁘다. 그들은 그게 직업이다. 그러나 모델이 아닌 사람들마저 끊임없이 “난 충분히 예쁘고 날씬하지 않아” 라는 생각에 시달리고, 이를 자극하는 이미지들은 사실 노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모습이다. 도브의 리얼 뷰티 캠페인은 이처럼 미디어가 보여주는 아름다움이 상당한 가공을 거쳐 만들어진다는 걸 알림으로써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에 다시 주목하자는, 공익광고 성격을 띤 캠페인이었다.

 [몸에 갇힌 사람들]의 저자 수지 오바크가 바로 도브와 협업하여 ‘리얼 뷰티’ 캠페인을 만든 사람이다. 그녀는 여성치료센터에서 심리치료를 해왔고, 다이아나 황태자비의 거식증 치료를 맡았던 치료사로 유명해졌다. 말하자면 “몸”을 키워드로 활동해온 정신분석가다. 정신분석가라고 해도 최면요법 뭐 이런 걸 쓰지는 않는다. 마음을 읽는 능력도 없다.

 정신분석에 대해 잠깐 이야기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정신분석에 익숙하지 않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은 ‘역전이를 통해 넘겨받은 감각’이니 뭐니 하는 말이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실제로 정신분석은 실증이 부족하다는 평을 듣는다ii. 예를 들어 프로이트의 이드/자아/초자아 개념은 유명하지만, 인간이 정말로 이 세 개념을 축으로 하는 발달단계를 거치는지는 입증되지 않았다. 애초부터 환자들을 보고 만들어낸 가설적 개념이고, 정신이라는 입증하기 힘든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쓰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용도에 걸맞게 정신분석은 현재 주로 심리치료와 문화비평 분야에서 살아남았다. 국내에는 정신분석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이 드물지만, 엄연히 한국정신분석학회도 존재한다.

 고로 정신분석을 기반으로 한 책을 읽을 때 학술적 근거 여부는 필수 판단기준이 아니다. 글에 설득력이 있는지 여부가 우선이다. 사람으로 살아왔고 책을 읽을 정도로 교육받았으며 나름의 판단능력을 지닌 당신 마음에 닿는 말이라면 (교양 서적 수준에서는)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정신분석은 검증보다는 서술과 분석에 쓸만한 도구이며, 만약 정신분석의 이론적 전제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정신분석적 해석은 유용하게 쓸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이미 행동의 원인을 무의식에서 찾는 방법에 익숙하지 않은가.

 [몸에 갇힌 사람들]은 저자가 현장 경험을 토대로 ‘몸’과 관련된 사례와 해석을 소개하는 책이다. 예를 들면 1장은 자기 다리를 잘라내고 싶어한 남자가 중심이다. 이는 극단적인 예시이고 이 뒤로는 양육이나 비만, 섹슈얼리티 등 보다 일반적인 사례를 다룬다. 특히 식이장애와 섹슈얼리티에 얽힌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기에 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체 변형 욕구: 이상한가?

 ‘다리를 잘라내고 싶어한 남자’는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생소하고 폭력적인 사례다. 이 남자, 앤드루는 내내 두 다리를 없애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살았다. 그래야 자기 몸이 완전해질 거라고 믿었다. 이런 생각은 언뜻 들어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그의 다리는 제대로 기능하는 평범한 다리였다. 나이가 사십 살 정도였으니 젊은 것도 아니었다. 다리를 잘라내기 위해 병원에도 찾아가봤지만 의사는 당연히 절단 수술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두 다리를 압박스타킹에 넣고 드라이아이스로 마비시킨 채 몇 시간을 내버려뒀다. 그는 혼절해서 응급실로 실려갔고, 병원에서는 허약해진 다리를 잘라낼 수밖에 없었다.

 의학에서는 이처럼 정상적인 신체에 대해 어떤 이상이나 결함이 있다고 집착하는 나머지 일상생활이 힘들어지는 걸 신체변형장애라고 이름 붙이고 있다. 보통 기형이나 추한 모습으로 보이는 걸 두려워하기 때문에 추모 공포증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앤드루의 경우는 ‘신체변형장애’의 카테고리에 넣을 수 있는지조차 의문이었다. 자기 몸이 이상하다는 생각에 집착하는 점은 비슷하지만, 더 정상적이거나 아름다운 몸이 아니라 명확하게 불구가 되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이상적인 몸의 모습은 일반 사회의 관념과 다르다.

 그의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 저자는 트랜스젠더를 떠올린다. 똑같이 자기 몸이 잘못되었다고 믿었고, 그걸 치명적인 결함으로 안고 살았으며, 결국 변형에 성공한 사람들이다. 한 세기 전에는 그들도 똑같이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다iii. 그리고 앤드루와 트랜스젠더 양쪽 다 수술 후 자기 몸에 만족을 느꼈다. 그들 개인에게는 수술 후의 몸이 옳은 몸이었으니까 말이다.

 다리를 잘라내는 경우는 매우 극단적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체 변형에 대한 욕구를 품고 산다. 그리고 지금은 돈과 시간만 있으면 변형이 실제로 가능한 시대다. 한국 소녀들의 50%는 눈을 칼로 째고 쌍커풀 수술을 한다. 쌍커풀을 만드는 수술은 줄여서 쌍수라고 부르는데, 세트상품으로 눈의 앞트임 뒷트임을 같이 하거나 코 성형을 묶어서 한다고 들었다. 지하철에 붙어있는 성형외과 광고에는 성형수술이 인생을 바꿔준다고 쓰여있다. 인생이 얼마나 확 트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의료보험도 안 되는 수술에 기꺼이 거금을 바치는 사람이 많다는 건 확실하다.

 다양한 후보정이 가능한 사회에서 주어진 그대로의 몸을 만족스럽고 편안하게 여기기는 힘들다. 작게는 살을 빼고 털을 다듬는 것에서부터, 크게는 뼈를 깎아내는 것까지 원하는 대로 몸을 변형시키는 게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몸의 ‘못난’ 부분을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게으르거나 무능한 사람으로 찍히지 않기 위해서, 무엇보다 내가 나 자신을 만족스럽게 받아들이기 위해서. 이 굴레는 마치 늪처럼 들어갈수록 끝이 없다.

 신체 변형 욕구가 자연스러운지 아닌지, 정도가 심한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건 매우 힘들다. 다리를 잘라내는 앤드루가 미쳤다고 한다면 목숨 걸고 양악수술을 하겠다는 사람은 어떻게 봐야 할지 애매해진다. 이를 정신이상으로 규정하고 넘어가는 건 재미도 의미도 없을 터다. 딱지를 붙인다고 사라질 욕망도 아니고, 어쨌거나 수많은 사람들이 불완전한 몸이라는 생각에 지금도 시달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무엇보다 이걸 증상이라고 이름 붙여버리면 보는 사람 마음은 편해질망정 이해에는 도달할 수 없다. 저자인 수지 오바크는 처방전 대신 지도를 제공한다.


몸에서 시작한다: 마음가짐 문제가 아니라고

 우리가 몸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가 뭘까. 전통적인 이원론적 가치관에서 몸/물질이란 정신에 비해 하찮은 것이다. 칙릿 소설에서처럼 여드름 하나 났다고 울고 웃는 건 너무 세속적이고 고상하지 못한 행동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많은 사람(주로 남자)이 공공장소에서 화장하는 행동을 두고 한심하다고 평한다. 십 년 전에는 다이어트도 그랬다. 날씬한 몸은 추앙 받지만 날씬해지는 데 매달리는 건 한심한 일이기에, 여자 연예인들은 몸매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원래 체질이라고 대답했다. 비만으로 고민하는 청소년이 늘어나자, 그들에 대한 아동용/청소년 도서가 늘어났다. 결론은 비슷하다. 너희는 모두 아름답단다, 마음을 바꾸면 다르게 보인단다, 자기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렴. 이는 옳은 말이지만 정답은 아니다. 몸에 전전긍긍하기 시작한 이상, 냅다 해탈하는 단계로 뛰어넘을 수는 없다.

 홀로 곡기를 끊고 명상하다 우화등선할 게 아닌 이상 몸은 생활의 중심이다. 삶을 책임지는 것은 몸이다. 살아있는 한 우리는 몸에서 자유롭지 않고, 더 나아가 사회에 속해있는 한 몸을 둘러싼 논의에서 자유롭지 않다. 외모에 연연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는 존나 자아비판하고 싶어서 자기 외모 평판에 신경 쓰나. 자기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너무 어려운 일이라 그렇다. 우리의 몸 관념은 나 말고도 사회가 끼어들어 만드는 거라 그렇다.

 이 맥락에서는 아니지만, 책 내에서 소개하는 사례로 은데벨레 부족에서 자란 영국인 토니가 있다. 그는 전쟁 때문에 부모님을 잃은 뒤 어쩌다 은데벨레 부족에 들어가 10살까지 6년 간 생활했다. 그 뒤 식민지 정착자들에게 잡혀 친척에게 돌려보내졌다. 50년대였으니 아동상담 같은 친절한 조치도 없었다. 생애의 결정적 시기iv를 부족민들과 행복하게 지냈는데 그 뒤 갑자기 아무 도움 없이 낯선 영국에 던져진 것이다. 실내에서 생활하고, 뜨거운 물로 목욕하고, ‘불쾌한 냄새’가 나는 비누를 쓰고, 옷을 갖춰입는 등의 환경이었다. 그는 성인이 되어서도 옷 입기를 편안하게 느끼지 못했다. 옷을 입으면 가식적이고 불편한 상태라고. 옷을 죄다 벗고 나서야 솔직한 상태라고 느꼈다. 결국, 자연스러운 몸 상태가 무엇인지는 자라난 환경에 따라 정해진다. 너무 뿌리 깊은 방식이라 여기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코르셋을 쓰던 시기는 18인치 허리가 예뻐 보였겠고, 현대인에게는 23인치 허리가 예뻐 보이는 게 기본 선이다. 이 아저씨도 출근할 때마다 얼마나 불편하고 짜증스러웠겠나.

 더 근본적인 의미로도 몸은 개인의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몸은, 예를 들면 양육 방법에 따라 만들어진다. 아이는 자기 몸을 대하는 방식을 부모에게 물려받는다. 책에서는 거울 뉴런이니 모방 학습이니 하는 이야기도 늘어놓지만 여기서는 넘어가자. 아이들은 부모가 언급하지 않는 방식까지 흡수하여 몸을 학습한다. 부모의 몸은 아이들에게 육체적으로 새겨진다. 예를 들면 젊은 여자의 치장을 경박하다고 평하는 부모에게서 자란다면, 딸은 그 ‘경박함’을 오래 간직하게 될 것이다.

 헤르타의 경우는 진짜로 심리치료가 필요한 사례였다. 그녀는 단정하고 차분하고 아름다우며, 항상 빌어먹을 궤양에 시달렸다. 그녀의 부모는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고 평생 가난 속에서 살았다. 어머니는 아이를 언제나 잘 먹여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었다. 헤르타는 어릴 때 우유를 조금 토한 적이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아이들의 ‘젖 토하기’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어머니는 경각심, 거부당했다는 기분, 걱정, 실망감을 느꼈고 그걸 아이에게 전달했다. 헤르타는 과잉섭취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아이가 배고파하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며 자기가 나쁜 엄마일지 모른다고 자책하는 어머니의 불안도 떠안아야 했다. 이후 그녀는 자기가 소화할 수 있는 양만 먹으려 노력하게 되었고, 그것은 반사적인 구토 습관으로 발전했다.

 당연히, 그런 몸은 편하지 않다. 그녀는 대장염 때문에 수시로 설사를 했고, 때로는 불쾌하게도 피가 섞인 변을 봐야 했으며, 대장염의 다른 특징인 극심한 복통도 자주 겪어야 했다. 그녀는 항상 자기 몸을 시중들어야 했다. 헤르타에게 자기 몸은 전혀 옳지 않았다. 궤양은 매우 변덕스럽게 찾아와 그녀를 방해했다. 음,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요?

 몸은 물리적으로만이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만들어진다. 우리가 뭘 먹었는지, 어떻게 먹었는지, 으깬 음식을 먹었는지, 음식을 먹일 사람이 재미있게 먹였는지 산만하거나 초조한 태도로 먹였는지, 보호자가 따뜻하게 안아주었는지 우악스럽게 안아주었는지 전혀 안아주지 않았는지 등등, 우리는 몸이 다뤄진 환경의 다양한 변수에 따라 우리 몸을 형성한다. 부모와 사회가 가진 다층적인 욕망들은 실제 경험과 함께 다음 세대에 전달되기 마련이다. 저자는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말을 따라, “몸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육체적 실체인 몸과 그 몸을 둘러싼 관념은 별개가 아니다.

 몸은 만들어진다. 덧붙여 나 혼자 만드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육체가 자연스러운 연속성과 독립성을 지닌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성인에게 ‘타고난 그대로의 몸’이라는 개념은 일정 부분 허구다. 갈고 닦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의 영향에 따라 변화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남들이 겪지 않는 고통을 겪는다. 자기 몸인데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괴리를 겪는다. 그 괴리에 고민하는 사람들을 두고 마음가짐이 안 되었다는 주장으로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다. 중요한 건 몸이다. 출발점으로 잡아야 하는 것도 몸이다.


몸의 불안을 다루는 법

 책의 주제는 몸이고, 이 책의 주장은 자기 몸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저자는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훈계는 하지 않는다. 대신 환자들이 겪는 수많은 증상이 그들이 자기 몸과 맺은 왜곡된 관계에 기인한다는 지점에 집중한다.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다이어트 산업과 섹슈얼리티에 관한 사례는 이를 반증하는 보다 보편적이고 전형적인 예시다.

 물론 문제는 언제나 몸이다. 예쁘게 날씬하지 않은 허벅지 때문에 불행하고, 성기 크기가 자존심을 깎아먹고, 얼굴이 못생겨서 대우받지 못한다. 이상적인 몸매를 위해서는 먹지 말아야 하는데, 게으른 몸뚱아리는 그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브라질 정부는 의료보험에 성형수술 지원비를 넣었다. 여성들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 심리치료보다 유방확대수술이 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주장이 맞다고 믿지는 않지만 헛소리라고 치부할 수도 없다. 몸에 만족하는 일은 정말로, 정말로 힘들다.

 원인이 몸에 있다고 알아차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지금 몸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다면, 몸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떤 식으로 자기 몸과 소통할지 알아야, 자기 몸과의 끝없는 싸움에서 벗어날 길이 열린다. 자기를 채찍질해서 더 나은 몸이 되면 해결되리란 생각은 버리는 게 몸에도 마음에도 편하다. 모순적이게도, 더 나은 몸에 집착할수록 자기 몸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워진다. 특히 연예계 찌라시가 하는 것처럼 배가 어떠니 허벅지가 어떠니 하면서 몸을 부분부분 나누어 평가하는 데 집착할수록 흠 잡을 곳은 늘어난다. 식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다이어트를 굳게 결심하며 음식물 섭취를 제한하고 나면 그 때부터 모든 먹는 행위는 통제하기 힘든 골칫거리가 된다. 여기서 배가 고픈 걸 인정하지 않으면 거식증으로 가고, 배가 부른 걸 느끼지 못하면 폭식증으로 간다. 저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거대한 비극을 개인적으로 사적으로 겪는다는 점을 안타까워한다.

 여기서 간접적으로 언급된 다른 주제들(식이장애, 다이어트, 섹슈얼리티, 정신분석 등등)에 관심이 있다면 다른 책을 추천한다. ‘몸’이라는 주제는 범위가 너무 넓어서 각각의 테마를 구체적으로 다루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가 계속 시달리면서도 외면하고 마는 몸의 호소에 대해 다룬다는 점에서는 일관성이 있고, 몸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시작하기에는 좋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말을 첨부한다.

 “우리는 외부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평가하고, 어느 부분에서 실패했는지를 확인합니다. 당연하게도 우리는 영원히 성공할 수 없습니다. 사진조작 기술 때문에 모델들조차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몸을 개조하기를 원하고, 미용산업에는 떼돈을 벌어다주면서 스스로에게는 엄청난 상처를 안깁니다. 그런 것들은 여성들이 스스로를 더 아름답게 느끼도록 도와주지 않습니다. 물론 여성들로 하여금 부단히 최신기술들을 섭렵하여 – 가령 오늘은 속눈썹이지만 내일은 무엇이 될지 모릅니다 -- 평화와 만족을 느끼도록 만들어주기는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과정에서 불안감이 싹틉니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 재미를 느끼고 싶어합니다. 신나게 차려입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즐거운 일이어야 합니다. 치명적인 일로 만들지 맙시다. 자신의 몸이 별로라는 생각에서 출발하지 맙시다. 친애하는 독자 여러분, 그 대신 우리의 아름다움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사랑스럽게 느끼도록 노력해봅시다. 우리를 우리로 만드는 것은 우리의 다양성, 우리의 독특함입니다.”


ⅰ 도브는 여기서 링크한 Dove Evolution 말고도 얼마 전 Real Beauty Sketches도 추가했다. 한번 보길 권한다.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litXW91UauE
ⅱ 라캉은 정신분석의 이론적 측면을 극한으로 발달시켰다. 그는 프랑스 학자다운 기질을 전적으로 발휘하여 섬세하고 복잡한 ‘대상소타자’, ‘상징계’, ‘상실의 상실’ 등의 개념을 정립했다. [지적 사기]에서는 라캉주의자들의 현학적이고 무의미한 그들만의 언어 사용을 꼬집은 바 있다. 그의 이론은 히치콕 영화를 분석하는 데에는 매우 흥미롭게 사용할 수 있으나, 임상이나 심리치료에 관련된 교양서적을 읽는 데에는 필요하지 않다.
ⅲ 트랜스젠더에 붙었던 진단명인 성 전환증(transexualism)은 DSM-Ⅲ(1980)까지 목록에 실려있었으나 DSM-Ⅳ(1994)에서는 성 동일성 장애(gender identity disorder)의 하나로 남고 사라졌다. DSM-Ⅴ(2013)에서는 장애(disorder)라는 말 대신 성 불안(gender dysphoria)이라는 중립적인 이름을 택했다. DSM(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은 APA(미국정신의학회,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에서 편찬하는 진단기준으로, 현재는 2013년 5월 출판된 DSM-5가 가장 최신판이다. 덧붙여 이 APA는 미국심리학회(APA, American Psychology Association)와는 별개의 단체이다.
ⅳ 발달이 이루어지는 특정한 결정적 시기가 있고, 이 시기를 놓치면 그 피해는 치명적이고 지속적으로 작용한다는 이론에서 사용하는 단어. 예를 들어 인간이 언어를 습득할 때의 결정적 시기는 사춘기 이전이다. 이 이후에 배운 언어는 모국어처럼 유창하게 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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