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1월도 벌써 다 지나갔네요. 모두 2015년의 첫 달을 즐겁게 보내셨나요?

이번 달에는 짧으면서 반전 중심의 소설들이 많았습니다. 콩트라는 장르에 매혹을 느끼신 분들이 많았나봐요. 반전이란 큰 감동을 주기도 하고 짜릿함을 주기도 하는, 그리고 정말 인생사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훌륭한 소스라고 생각합니다. 즐겁게 읽고 많이 배워갑니다.


이번 달에는 견마지로 님의 <아민 이븐 하미드의 여정>과 레몬 님의 <좀비>가 가작을 수상했습니다.




리곤 - 지평선 너머


A : 자각몽을 연습하면 꿈에서 원하는 것을 창조하기도 하고 상황을 제어할 수 있다고 합니다. 리곤님의 글은 이러한 바탕에서 나의 꿈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이의 꿈인 반전을 가미했습니다. 때로 당연하게 일방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쌍방향일 때의 경이감을 노린 듯한 글이지만, 다른 부분이 너무 미약하기 때문에 실패한 것 같습니다. 반전도 경이감도 독자의 몰입을 끌어내는 이야깃거리로 바탕을 튼튼히 깔았을 때에야 느낄 수 있는 것임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B : 이야기 자체가 어떤 배경과 주변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기가 지나치게 어렵습니다. 세 번을 연거푸 읽었지만 여전히 불투명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불투명한 분위기만으로 매력을 느끼기도 어렵습니다. 무언가 한 가지는 매력적으로 받아들일만한 부분을 제공해주셨으면 합니다.



소쥬 - 비밀 선물


A : 일방적인 관계처럼 보였으나 이면에 숨겨졌던 집착과 애정이 범죄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아무런 설명이 없지만 대화만으로 그동안의 상황과 역학관계를 알 수 있는 점이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섬세하게 이야기를 끌어갔다면 현희와 그녀의 마음에 더 공감할 수 있었을 테지만, 이러한 관계는 사실 보편적이기 때문에 이해에는 무리가 없습니다. 다만 마지막 줄로 인해 장편의 프롤로그가 되어버렸습니다. 몇 년 후, 공모했던 모두가 몰랐다 같은 애매한 표현보다는 명확한 사건 설명을 하거나 아예 빼는 편이 좋았을 듯합니다.


B : '시간이 멈추기를 바랐'기에 이런 방식으로 멈추게 하는 것은 나름대로 독자의 소름을 돋게 만드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이 그리 흡인력이 있지는 않군요.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묘사는 너무 단출합니다. 두 사람의 관계가 그런 결말로 치달아야만 하는 필연적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마지막 줄에 그런 단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게 뭔지 독자는 알 수가 없군요.



소쥬 - 눈에 대한 추억


A : 지구에 사고로 잠시 머물렀던 외계인과 지구 여자의 아련하고 쌉쌀한 첫사랑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마지막 부분으로 인해 쌉쌀함이 씁쓸함이 되었습니다. 첫사랑을 기다리다가 꿈처럼 이루어지는 드라마에 변화를 주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그 부분 외에 이 글의 매력이 어디 있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전달하고 싶은 부분이 독자에게 어떤 매력으로 다가갈 수 있을지를 고심해보면 좋겠습니다.


B : 휘민은 마지막에 왜 저렇게 독하게 구는 거예요? 휘민이 '그녀'에게 가진 감정이 그 정도로 강렬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고, 그리고 '그녀'가 저런 취급을 받을만큼 그렇게 잘못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요. 휘민이 그냥 떠나고 아련하게 그녀가 휘민을 잊고 살다가 휘민을 다시 만나게 된 순간 폭발하여야 하는 감정이 죄책감일까요. 삶은 그런 방식으로 구동되지는 않죠. 그 평범한 삶들이 모두 죄악시되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밝혀주지 않으면 결말에 공감할 사람이 많지 않을 듯 합니다.



부엉 - 위기 일발


A : 뒤죽박죽 전개되는 상황이 보통의 임무상황은 아닐 거라는 짐작을 줍니다. 아니나다를까, 게임이고 계속해서 압박해오는 적은 무시무시한 엄마였던 것으로 끝납니다. 무난하고 귀여운 대신 아주 흔한 반전입니다. 흔한 반전이라도 전에 담지 못한 의미가 있거나, 거기까지의 과정이 재미있다면 상관없습니다만, 아직 이 작품에서는 어느 쪽도 아닌 미숙함이 보입니다. 착실히 이야기를 쌓는 법을 연마하심이 좋겠습니다.


B : 결말이 너무 허무하네요. 가는 과정 자체가 명랑하게 혼란스러운 점이 매력인데, 그 매력을 밀어붙이기에는 너무 서사에 용기가 없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명랑하게 혼란스러운 그 매력을 잃지 않되 좀 더 크고 용기있는 서사를 만들어보시면 훨씬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것 같네요.



cocobolo - 에사드로 가는 길


A : 우연히 연료가 떨어져 들어간 곳에서 기록을 가져온 주인공이 중앙행성에 기록을 전해 버려졌던 도서관을 다시 여는 이야기입니다. 무언가 아련하고 감동적이면서 무한의 스케일을 품은 SF만 줄 수 있는 경이감을 줄 수 있을 법한 소재인데 다 살리지 못했다는 느낌이 강해 아쉬운 작품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기억의 도서관이 이름처럼 무언가를 품고 있는 듯한데 정체가 나오지 않았고, 기록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데다 그것을 받은 사서가 어떻게 했는지도 알 수 없는데 갑자기 그 변방의 도서관에 사서가 파견됩니다. 중요한 부분에는 전혀 설명이 없고 분위기만 내고 있습니다, 반면 앞부분에서 우주 이야기에는 왕창 설명을 할애합니다. 이러한 설명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섞어주는 것이 좋으며, 특히 앞부분에는 배치하지 않는 것이 독자의 진입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전체적인 서술 또한 독자의 상상과 이해를 위해 꼭 필요한 것보다는 많은 수식과 문어체가 걸립니다.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면 더 구어체를, 이야기가 아니라 독자가 읽어감과 동시에 진행되는 거라면 더 경제적인 서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자신만의 색깔이 무엇인지 고민한다면 아주 작은 수정으로도 큰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거라 봅니다.


B : 버려진 것들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디테일이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주인공이 가져온 '기록'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라도 좀 더 적극적으로 볼 수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아무도 없는 곳을 꾸준하게 지키고 있는 로봇의 모습과 로봇을 지겨워하는 냉소적인 주인공이 만나서 어떤 감정들이 움직이는 장면들은 아름답네요. 좀 더 그 부분에 대한 묘사가 치밀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주제를 드러내는 데도 더 좋았을 것 같아요.



견마지로 - 아민 이븐 하미드의 여정


A : 초반부터 과한 고어체를 쓰기에 단편에서 도대체 어떤 서사시를 펼치려나 기대 반 우려 반이었는데, 우주섬망이라는 반전으로 나갔습니다. 사실 이러한 반전은 여러 매체에서 여러 방식으로 우려먹은 것이기는 합니다. 신화 또한 누군가의 망상에서 생겨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퍼져 있지요. 이러한 반전을 위한 반전보다는 조금 더 자기만의 이야기가 담겼다면 좋았을 듯합니다. 시종일관 진지하게 끌어가는 전개와 필력에는 감탄했습니다.


B : 익숙한 상징들을 가지고 풀어내는 반전이 멋집니다. 이 망상이 어떤 억압에서 출발했다는 점도 훌륭하고요. 그리고 망상과 현실의 경계가 흐트러져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점도 아름답습니다. 다만 그 반전까지 가는 과정을 '참아낸다'는 느낌이 좀 있어요. 너무 익숙한 장면들이라 이 서사만의 개별성이 뭔지를 잘 모르겠거든요.


독자우수단편 가작에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레몬 - 좀비


A : 인생에서 피어보지 못한 청춘이 모든 것을 체념하고 죽어가는 와중, 아니 이미 죽은 채로 살아가는 과정을 그린 듯한 글입니다. 섬세한 전개와 선명한 묘사가 뛰어나고, 진짜 좀비가 등장하지 않음에도 제목이 처연한 느낌에 정점을 찍습니다. 다만 이러한 종류의 글이 이제는 굉장히 많기 때문에 조금은 진부한 느낌을 준다는 것, 또한 원래 결론이 정해져 있는 글이란 느낌은 있었으나 전개에 비해 급작스러운 끝맺음이 아쉽습니다. 차곡차곡 쌓이는 느낌은 좋았으나 결정적인 계기라고 하기엔 약한 느낌이었으나, 이는 독자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는 부분이니 많은 의견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B : 슬프고 치밀한 이야기입니다. 여러 가지 우울감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작가의 끈기력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그 끈기력 외에 다른 큰 장점을 찾아보기는 어렵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노인과 '그'의 관계가 익숙한 형태로 치닫지만 그 익숙한 형태가 개별성을 가지지는 못하네요. 이 두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개별성, 그리고 그 개별성이 어떻게 파장을 일으킬 수 있을지를 고민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독자우수단편 가작에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선정되신 분께는 거울에서 책을 보내드립니다.

가작에 선정되신 견마지로 님과 레몬 님께서는 pena12 @ gmail.com 으로 택배를 받으실 수 있는 주소와 연락처를 남겨주세요.




댓글 1
  • No Profile
    레몬 15.02.01 08:57 댓글

    심사 감사합니다. 좋게 봐주신 것 같아서 얼떨떨한 기분이네요^^ 주소와 연락처 메일로 보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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