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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 성검의 궤적

2013.06.30 23:2806.30

성검의 궤적
 


0.

 
거대한 검은 마치 핏빛 태양처럼 붉게 빛났다. 신들을 위해 만들어진 무기처럼 아름다웠다. 빛이 차단된 성 한 가운데서 열 명의 기사들은 그 검에 이끌려 성의 주인이 다가오는 줄도 몰랐다. 적갈색 손이 대검을 움켜쥐는 순간, 푸른 휘장을 두른 기사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꼈다. 그는 검을 뽑는 대신 동료 한 명을 택해 몸을 날렸다. 붉은 빛줄기가 아찔한 차이로 그들의 머리 위를 지나 기사 셋을 양단했다. 피를 마신 검이 더 강하게 발광하면서 주인의 모습을 비췄다. 인간형 마족 중에 이글거리는 피부가죽과 날개, 쇠사슬처럼 긴 꼬리를 지닌 종은 하나였다. 드라코니스, 마족군단의 정예병인 용족이었다. 기사들은 뒤늦게 대형을 이루고 반격을 시도했지만 푸른 휘장의 기사는 혼란을 틈타 동료를 데리고 숨었다.
 

"당장 여기서 나가야 해."
 
"여기까지 와서 도망치자고? 난 싸우겠어."
 
"아웨!"
 

그를 뿌리치고 뛰쳐나왔을 때는 이미 전투가 끝난 상태였다. 조각난 쇳조각과 그을린 살덩이들이 나뒹굴었다. 드라코니스는 시체더미 속에서 검을 끄집어냈다. 파충류의 눈이 새로운 사냥감을 포착했다. 아웨는 분노로 공포심을 억누르고 반대편 기둥으로 달렸다. 드라코니스가 가로 막는 기둥들을 모조리 베어내며 쫓았지만 아웨는 기둥 사이를 교묘히 넘나 들면서 공격이 어그러지도록 유도했다. 기둥이 쓰러지면서 천장이 무너져 내리자 주변 일대가 잔해와 먼지로 가득 했고 드라코니스는 일시적으로 방향을 잃은 듯 멈춰 섰다. 아웨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방패를 버리고 전력으로 달렸다. 그리고 등 뒤에서 검을 찔러넣는 순간이었다. 드라코니스가 가볍게 날아올랐다. 무력한 상대를 비웃으며 여유롭게 선회 했다.
 
아웨는 잔해더미 한복판이었다. 숨을 기둥도, 의지할 방패도 없었다. 자신에게 떨어지는 괴물을 상대할 어떤 수단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 낯익은 고함이 들렸다.
 

"왼쪽으로!"
 

아웨는 반사적으로 몸을 틀었다. 뒤에서 창이 날아와 용족의 날개를 꿰뚫었다. 드라코니스는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푸른 휘장의 기사가 아웨 옆에 섰다. 화나지도 놀라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전투에 임할 때마다 한결 같은 그 얼굴이 그녀를 안심 시켰다.


"도망간줄 알았더니."
 
"어떤 왈가닥이랑 약혼만 안 했어도."
 
"쿡."
 

강한 척 웃어도 이미 그녀의 체력은 바닥이 난 상태다. 그런 주제에 곧 죽어도 싸우려 하겠지. 기사는 둘다 살아서 이곳을 나가는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완벽한 희생만이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어느 한 쪽도 의심치 않고 희생을 받아들여야만 승산이 있다. 그는 결심을 끝내고 아웨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착각이었을까.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연인의 얼굴이 어딘가 낯설다고 느꼈지만 예감은 금새 스쳐 지나갔다. 성 전체가 진동하면서 드라코니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공법으로는 안 돼. 한 명이 미끼가 되서 틈을 만들고 다른 한 명이 끝을 봐야해. 놈이 달려들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뛴다. 놈이 택하는 쪽이 미끼가 되는 거야. 자, 온다!"
 

드라코니스는 상처 입은 날개를 제 스스로 찣어내더니 미친 듯이 돌진했다. 아웨는 숨죽인 채 신호를 기다렸고 기사가 고함을 지르는 동시에 반대편으로 달렸다. 기민한 반응이었다. 자신이 더 빨랐다고 확신하고 다음 순간을 각오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적을 향해 달리는 기사였다. 그는 처음부터 반대편으로 뛰지 않은 것이다.
 
육중한 대검이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걸 보고도 기사는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파고 들었다. 칼자루 끝머리를 잡고 공격거리를 늘려낸 결과, 왼쪽 어깨가 떨어져 나가는 동시에 그의 직검도 상대의 가슴을 찔렀다.


"어서 해!"
 

아웨는 그때서야 상황을 파악하고 결정타를 준비했다. 드라코니스는 기사를 떼어놓으려 했지만 가슴에 박힌 검을 잡고 버티는 통에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하아아!"
 

이번에야말로. 아웨는 드라코니스의 날개를 잡고 뛰어올라 머리를 베어냈다. 거대한 몸도 힘을 잃고 서서히 쓰러졌다. 그녀는 적이 완전히 침묵할 때까지 한참을 서있었다. 호흡이 진정될 때까지 이상한 기분이 떠나질 않았다. 시체를 옆으로 밀고 연인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는 무릎을 꿇은 채 축 늘어져서 하나 남은 팔로 대검을 쥐고 있었다. 아웨는 걱정이 앞서서 그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런데 기사의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 손에 쥔 검에서 기괴한 점막이 타고 올라오더니 새로운 팔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아웨는 반사적으로 물러나면서 자신도 모르게 검을 세웠다. 그가 고통스럽게 울부짖다가 어둠 속으로 사라질 동안 아웨는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그저 손을 뻗기만 했다. 새벽빛이 천장 틈새로 떨어질 즈음, 그가 자신의 연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1.
 

마족에게 빼앗긴 성검 타라그를 되찾겠다는 명분으로 라탄달 왕국이 주도한 4차 마족정벌은 라탄달의 상징인 성기사단이 무너지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참전 했던 우방국들까지 등을 돌리자 라탄달은 이전 원정에서 차지 했던 마족령까지 모두 잃고 후퇴했다. 치명적인 병력 손실 탓에 국경 수비 조차 위태로웠고, 결국 라탄달은 연합상회라 불리는 중립 길드와 유례없는 장기 계약을 맺는다.
 

그로부터 9년 뒤 겨울, 라탄달 왕국 북쪽 국경.
 

"듣고 있나?"
 

레케는 들은 척도 안 하고 나이프가 휘도록 버터를 퍼냈다. 삶은 순무가 식기 전에 최대한 버터를 바를 생각으로 떡칠을 했다. 영주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불쾌함을 씹어 삼켰다. 2년에 걸친 적대가문과의 쟁탈전에서 승리하고 북쪽을 차지한 첫 해였다. 가능한 모든 일을 온유하게 처리 하고 싶었다.


"발생 시기, 지역, 생김세… 네. 전부 기록했어요."
 

그나마 말이 통하는 건 모즈라는 자였다. 첫인상은 영락없는 10대 소녀로 보여서 무시했다만 지금 보니 상관 보다도 성실한게 아닌가.
 

"유명한 용병단이라하니 해내리라 믿네."
 
"사례금은 얼마나 쓰시게요?"
 
"합해서 스물이니까, 25만 정도는 어떤가."
 

모즈는 계산기를 치워놓고 친절하게 정리해주었다.
 

"수도에 있는 저희 본부에서 국경까지 식대비가 두 당 1천, 장비대여료가 2천이니까 왕복만 해도 생활비로만 총 8만이 들어가는 셈이네요. 어디까지나 계획된 일정을 따른다는 기준에서요. 그런데 저희 일정을 미루고 마족을 처리하라는 요구로 25만 골드는 경우가 아니지 않나… 싶어요. 특히나 말씀 하신 마족이 바위만한 크기에 불까지 내뿜는다면 더더욱이죠."
 
"…그렇다면 얼마가 좋겠나. 적당가를 제시해보게."
 
"저희 같은 용병 나부랭이가 어떻게 감히 영주님에게 제시를 드리겠습니까? 먼저 제시해주심이…"
 

영주는 신경질적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옆에서 지켜보는 재무관이 불안한 듯 눈을 흘겼다.


"30만."
 

모즈는 말없이 생글거렸다. 마치 자신을 비웃는 듯 느껴져서 영주는 발끈하고 말았다.
 

"그 괴물놈을 확실히 처리한다고 보장해주면 50만까지 내놓지!"
 
"어머"
 

모즈와 재무관의 탄성이 교차했다. 자존심만은 지키겠다는 영주의 선택이었다. 연합상회 소속이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용병 나부랭이. 그것도 새파란 계집 따위에게 주도권을 뺏기다니 참을성 싶은가. 용병들이 웬떡이냐며 저자세로 나오자 영주는 그제서야 여유를 찾았다.


"흠. 다들 자신이 넘치나 보군. 저기 저 자만 빼고."
 

영주가 가리킨 남자는 고가 장비와 근육으로 가치를 뽐내는 동료들과 달리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전사 치고는 앳된 얼굴, 불길한 회색 머리카락, 의욕 없어뵈는 무표정까지 보면 볼수록 거슬렸다. 분위기가 좋지 않게 흘러가자 용병들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모르는 말씀이십니다요. 이놈으로 아뢸 것 같으면 본부에서도 유명한 딤이라고, 남부 내전에서 혼자 오십이나 베어낸 귀신 같은 녀석입죠."
 
"전쟁터를 제 집처럼 드나드는 피에 미친 괴물이지. 상대가 마족이라고 어련할까."
 

치켜세우는 말과 다르게 조롱 가득한 태도였다. 영주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게는 강한 인물로는 안 보이는데, 너스레인지 정말인지 확신이 가지 않았다.


"딤. 그 빌어먹을 칼좀 보여줘."
 

때마침 식사를 끝낸 레케가 입을 열자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딤은 상관의 명령대로 등에 맨 검을 뽑았다. 칼밑부터 자루 장식까지는 보통 장검처럼 평이했다. 영주를 놀라게 만든건 검은색 칼날과 칼날에 감도는 은은한 냉기였다. 한 눈에 가치를 알아보고 정신을 못차렸다.
 

"마력검이로군! 놀라워. 정말 아름답군."
 

주도권은 다시 모즈에게 넘어갔고, 모즈는 구매욕을 놓치지 않았다.
 

"역시 알아보시네요. 50만이면 정말 잘 생각하신 거에요. 혹시 저희가 잘못 되기라도 해서 다 죽어버리면 연합상회 고용법상 이 검은 서슬이 영주님 것이 된답니다."
 
"크흠. 농담도 잘 하는군. 의뢰나 빨리 끝내주게."
 

영주는 입맛을 다시다 계약서에 인장을 찍었다.

 

2.
 

얼음벽은 굳건했다. 덩치 셋이서 죽어라 망치질을 해도 갈라질 기미가 없었다.
 

"어휴, 염병할."


그걸 다 깨부수면 안 쪽에 파묻힌 성문까지 열어야 하는데 동료들은 모닥불 앞에서 손놓고 있으니 욕이 나올법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여기가 마족령이라고는 하나 라탄달 국경과 겨우 한 시간 거리면서 기온의 차이가 너무 달랐다. 시야를 가리는 안개도 신경을 거슬렸다.
 

"아아 진짜 더럽게 춥네. 야 돼지새끼들아 뭐 그렇게 굼떠. 추가금 받았으면 냉큼 해야할 거 아냐!"
 

레케가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날씨나 환경이 이상하다는건 알고 있지만 발산을 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대장의 성격을 겪어본 용병들은 기가 막혀도 참았지만 날씬한 분들이라 덮을데도 없으면서 쓸어간 모포나 돌려달라고 항의한 신참들은 묵사발이 났다. 그리고 비위 맞추기는 여동생 모즈의 몫이었다.


"너무 그러지마 언니. 여기 좀 봐. 난 이 성이 눈으로 지어졌다고 해도 믿을래."
 

성 군데군데 헤지고 무너진 부분에 눈이 굳어서 천연요새나 다름 없었다. 모즈는 갓 삶아낸 순무를 레케에게 건냈다.
 

"그나저나 언니. 이거 꽤나 걸릴 것 같은데 여기 영주한테 받은 의뢰건은 어떡해?"
 
"버터도 안 발린걸 어디다 들이대. 그 영감탱이 보나마나 어디서 헛소문 듣고 그러는 거야."
 
"그래도 50만이나 받았으면 하는 척이라도 해야지. 죽이는 자매단 이름값이 있는데."
 

틀린 말은 아니었다. 길드에 말이라도 들어가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평판깢ㅣ 떨어지기 십상이었다. 대용병시대라고 일컬어지는 지금 같은 시기에 평판이란 곧 자본이었다. 레케가 납득하는 눈치자 모즈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정찰도 할겸 딤을 먼저 보내는게 어떨까. 여긴 마족령이니까 뭐가 나올지 모르니 많이 뺄 수 없잖아. 애들이 쟤 너무 싫어해."
 

딤은 홀로 떨어져서 망을 보고 있었다. 레케는 모즈에게 보이지 않게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단독 행동은 위험해."
 
"왜 그리 감싸고 도는지 모르겠네?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언니가 저거 명단에 올렸을 때 내가 애들 달래느라 좀 고생한줄 알아. 한 번 그랬던 놈이 또 그러지 말라는 법 있냐면서 난리도 아니었다니까."

"이게 또 옛날 일 가지고. 아 알았어 이년아."
 

한 시름 놓았다며 버터를 녹이려는데 레케는 떠날 채비 중이었다.
 

"지금 뭐해?"
 
"나도 같이 간다. 다 끝나면 애들 데리고 따라와라."
 
"설마 나 버리고 저걸 챙기겠다고? 안 돼. 못 가."
 

껴안고 버티는 모즈를 뿌리치고 레케는 딤과 같이 떠났다.
 

딤은 안개 속을 훤히 내다보 듯 쉼없이 걸었다. 지도대로 맞게 가는지 물어볼 틈도 없었다. 남자 보다 걸음이 빠른 레케였지만 이번에는 따라가기 벅찼다. 잠시만 걸음을 늦춰도 그가 안개 속으로 사라질 것만 같아서 마음이 조급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안개가 옅어졌다고 느낄 때쯤 딤이 이동을 멈췄다. 안개 너머로 마을이 보였다.

추위 때문인지 거리에 사람이 없었다. 촌장의 집이 어딘지 물으려고 몇 집째 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었다. 레케는 언제라도 뽑을수 있게 칼집을 느슨하게 했다. 위치상 교역도 뜸하고 얼마 전까지 전쟁 중이었으니 생활이 말이 아니었으리라. 마족의 정체는 어쩌면 굶주린 마을 사람들일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쪽 입니다."
 
"악!"
 

딤이었다. 평소처럼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레케는 얼굴을 붉히며 되물었다.
 

"네가 어떻게 알아."
 

그는 마을 중앙을 가르켰다. 굴뚝 위로 희미하게 연기가 오르는 게 보였다.
 

촌장이 영주의 서신을 읽는 동안 레케는 주변을 둘러 보았다. 겨울에는 촌장집에서 공동으로 지낸다고 했다. 이방인이 찾아오는 일이 드물어서인지 시선이 한 곳으로 집중 됐다. 여자 용병, 빨간 머리, 얼굴에 난 흉터. 레케는 자신을 향한 곱지 않은 눈길에 익숙했다. 하지만 깔보는 눈과는 달랐다. 원망과 두려움이 섞인, 마치 전장터로 시신을 찾으러 오는 가족들 같았다.
 

"확인 했네. 놈은 주로 마을 북쪽 묘지에 나타난다만… 자네들 둘이서 상대가 될지는 모르겠군."
 

촌장이 말끝을 흐리면서 딤의 안색을 살폈다. 레케는 그가 자신들을 못미더워한다고 받아 들였다.
 

"다른 부하들도 곧 도착할테니 걱정 마시고. 실제로 본 사람이 있기는 해? 듣기로는 늑대 모습이라던데."
 
"늑대일 때도 있지. 칼이면서, 불꽃이기도 하고."
 

목소리도 눈빛도 잠겨 있어서 무슨 의미인지 난해 하기만 했다. 레케는 시간낭비라 판단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개길에 이어서 딤이 앞장 섰다. 마을 북쪽에는 크고 작은 구릉이 많아 자칫 넘어지기 쉬운 지형인데도 그는 초행이라 믿기 힘들만큼 안전한 자리만을 밟았다. 가파른 지형이나 눈이 쌓인 곳은 서로 지탱 하면서 건너야 해서 전처럼 간격이 벌어질 일은 없었지만 몸이 밀착될 때가 많아서 레케의 어색함이 쌓이고 있었다. 무슨 말이든 해야했다.
 

"너 말이야. 나한테 뭐 하고 싶은 말 없어? 그… 급료가 부족하다던가. 노, 높임말이 불편하다던가."
 
"없습니다."
 

그는 나뭇가지를 잡고 다른 손을 내밀었다. 비탈길이라 도움이 필요한 구간이었다.
 

"됐어!"
 

레케는 뽀로통 해져서 혼자 뛰어 넘었다.


촌장이 알려준 묘지는 사람의 발길이 끊긴지 오래 된 듯, 반 이상이 숲에 먹혔다. 묘지기의 집으로 보이는 폐가만이 유일한 흔적이었다. 레케는 검을 뽑고 경계했다. 마족들은 특수한 체취를 남겼다. 레케처럼 마족과 접촉해본 자들은 마족만이 풍기는 냄세를 기억했다.
 

"예상대로 헛소문이네. 냄세도 안 나고 표식도 없어. 늑대들이 무덤 파먹는걸 잘못 본 모양인데."
 

딤이 보이지 않았다. 레케는 한소리 단단히 해주겠다는 기세로 페가로 이어진 발자국을 따라갔다. 그는 자기 집인양 낡은 침대에 앉아 있었다. 레케는 그 모습이 낯설었다. 그녀를 돌아볼 때는 희미하지만 웃음까지 지었다.


"너… 딤 맞지?"

 
딤은 가만히 그녀를 응시하다가 무릎 위에 검을 올렸다. 그는 한시도 검을 몸에서 떼놓지 않았다. 레케는 그 검이 눈엣가시였다.
 

"찾아서 없애야 돼. 그렇지 않으면 이대로 영원히."
 
"……"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다. 명령을 처리 하는 사무적인 대화를 제외하면 딤은 언제나 그 말만 했다.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건지, 정말로 저 검에게 영혼을 빼앗기기라도 한 건지 알 길이 없었다. 확실한건 딤이 5년 전 검은 서슬의 주인이 된 이후로 변해버렸다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레케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녀는 지쳐서 주저 앉았다. 잊고 있었던 얼굴을 보았기 때문일까.


"대체 어쩌라는 거야…"
 
"찾아서 없애야 돼. 그렇지 않으면 이대로 영원히."
 

같은 말이 돌아올 거라는걸 알면서도


"내가 어떡하면 다시 돌아올래?"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 말대로 정말 영원히, 이대로 계속 될까봐 가슴이 조였다.
 

"찾아서 없애야 돼. 하지만 도와줄수는 있겠지."
 

레케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묻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지만 고개를 들었을 때는 딤은 사라지고 없었다. 홀로 남은 검에서 냉기가 쏟아져 나오더니 소용돌이를 이루면서 어딘가로 이어지는 통로를 만들어냈다. 통로 끝에는 또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3.
 

전초지로 쓰였던 성답게 내부 구조는 단순했다. 넓은 홀과 외곽 방어를 위한 계단 층계가 전부였는데, 중심을 받치는 기둥들이 무너져서 온전치 못했다.


"작은 거라도 좋으니까 일단 금속부터 찾아. 금속 중에서 상태가 멀쩡한 것들만 추려서 모아. 구석구석 샅샅히 뒤져야 해."
 

시키는 입장에서도 마음 편한 일은 아니었다. 9년 전, 라탄달 왕국에서 성검 타라그를 가지고 탈주한 카르마토리아스라는 성기사가 이곳에서 숙청 당하면서 그가 지녔던 성검도 변질 됐다는 이유로 성스러운 창 라이닐에 의해 파기 됐다. 그러나 라이닐로도 타라그를 완전히 부수는건 불가능 하므로 타라그의 파편은 엄청난 돈이 된다.

는 그 직후 라면 모를까 9년이 지난 지금은 오류 덩어리였다. 첫째로 라탄달에서 그렇게 중요한 무기의 사후처리를 등한시 했을리가 없다. 둘째로 그게 사실이라고 한들 9년이면 국경 근방에서 활동하는 도적들이 다 먹어치우고도 남는 시간이다. 1골드도 손해 보기 싫어하는 언니가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런 건수를 잡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모즈는 피부 건강을 위해 생각을 멈추기로 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여기서 받은 50만 짜리 의뢰면 충분한 흑자 아닌가.
 

"아가씨. 이런게 있는데."
 
"뭐야, 이 꼬질꼬질한 두루마리는."
 

오래된 흔적 치고는 밀봉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 글자색이 조금 바래긴 했어도 읽을만 했다.

 

성력 466년 12월 3일
 

소라그를 찾는건 포기했다. 차라리 잘된 일이다. 찾는다 쳐도 누구에게 그걸 부탁한단 말인가. 나처럼, 아니 그 이상의 대가를 치루게 될지도 모른다. 몸 상태도 한계였다. 타라그가 나를 먹어치우기 전에 추적대가 오기 전에 국경을 넘어야 한다. 같은 인간이 내 뒤를 잇는 최악의 상황만은 막아야 한다. 일단 국경 근처 마을에 몸을 숨겼다. 극심한 가뭄과 전쟁의 여파로 경계가 약해져서 숨어들기 용이했다. 그래도 눈에 띄어서 좋을게 없으니 마을과 떨어진 묘지에서 머물기로 했다. 회색머리 남자아이 하나가 종종 찾아와 나를 훔쳐본다. 정말 겁도 없는 녀석이다. 인간이 아닌 녀석도 있다. 무리에서 떨어진 새끼늑대를 보살펴줬더니 나를 어미처럼 따랐다. 리프라고 이름을 지어줬다. 이렇게 정이 들면 떠나기가 어려운데, 조만간 혼을 내서라도 내쫓아 보내야겠다.
 

성력 466년 12월 7일
 

신체 대부분이 놈에게 침식 당했다. 내가 나를 움직이는지, 놈이 나를 움직이는지 혼란스럽다. 깨어나면 내가 아니게 되버릴 것 같아 두려워서 깊이 잠들지 못한다. 나 때문에 불안한지 리프도 내 곁을 지켰다. 오래 전, 내가 첫 전투에서 치명상을 입었을 때도 옆에서 보살펴주던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붉은 새벽이라는 뜻을 가진 내 불길한 이름 대신 카마스라는 흔한 꽃이름으로 불러주었다. 잘 지내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좋은 사람과 만나 안락한 삶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다시는 마주치지 않기를 바란다. 그녀에게만은 내 추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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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6년이면 9년 전이잖아."
 
"아가씨!"
 

용병들이 한 군데 모여서 웅성였다. 안 쪽 깊숙히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열 명도 더 들어갈 크기에 썩은내가 진동을 했다.
 

"눈 좀 치워봤더니 나오더만요."
 

모즈는 돌을 주워다 구덩이로 던졌다. 뭔가에 걸리는 듯 통통 튀다가 마지막에는 경사를 따라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깊지는 않은데, 무슨 통로 같기도 하고. 불 좀 줘봐."
 

횃불은 20피트 깊이에서 안착했다. 그리고 불빛이 그 주변을 밝히자 모두의 표정이 굳었다. 바닥이 하얗게 보일만큼 수북히 뼈가 쌓여 있었다. 어떤 강력한 생물이 인간은 물론이고 대형 짐승이나 마족으로 추측 되는 기형적인 뼈까지, 종을 가리지 않고 포식한 듯 했다. 모즈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방금 전 읽었던 일지는 숙청 당한 카르마토리아스의 것이 분명했다. 시기와 장소까지 모든게 일치했다. 그런데 일지에서는 성검 타라그를 마치 괴물처럼 묘사했다. 여기서 받은 마족 처치 건과 연결 시키는 건 자신의 착각일까. 만약에라도 이런 짓을 벌인 괴물이 활개 치고 다닌다면 언니나 그 밥맛 둘이서는 역부족일 것이었다.
 

"로프 가져와. 밑으로 내려간다."
 


4.
 

그 세계에서 레케는 방관자였다. 자신이라는 실체 없이 세계가 가리키는 것만을 보아야 했다.
 
한 소년이 보였다. 폭우를 뚫고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었다. 도착한 곳은 어느 묘지기의 집. 소년은 숨을 거르지도 않고 문을 치면서 울기 시작했다. 도와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한참이 지나 문이 열리고 전신에 붕대를 감은 남자가 나타났다.


우리 누나가 죽어요. 죽이려고 해요.
 

남자가 소년을 따라 마을에 도착했을 때, 마을 주민들은 기둥에 묶인 여인을 둘러싸고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마녀, 요부, 마족과 동침한 년. 그들을 대표하는 촌장이 여인의 머리카락을 잘라서 모두에게 보였다.


이 머리색을 보시오! 옛부터 회색머리는 마족의 사생아라고 알려져 왔소. 거기다 내 아들이 말하길, 이년이 마족과 배를 맞추는걸 직접 봤다고 하더군.
 

주민들의 광기가 한 층 거세졌다. 여인은 그들이 던진 돌에 맞아 정신을 잃었다. 촌장이 실신한 여인의 머리채를 잡고 죄를 인정하냐고 묻고는 머리를 흔들어 강제로 시인을 받아냈다. 화형에 처한다는 표시로 횃불을 들어 호응을 요구했다. 그런데 주민들의 눈이 북쪽에 몰렸다. 한 남자가 소년을 데리고 인파를 뚫었다. 주민들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누구 하나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촌장 역시 그 모습을 보자 움찔 해서 뒷걸음질 쳤다. 그는 자기 몸 보다 거대한 검을 들었다. 남자와 검은 핏줄과 점막으로 한 생명체처럼 연결 되서 그가 숨을 쉴 때마다 검도 같이 호흡했다. 한 번만 휘둘러도 그들을 몰살 시키기에 충분해 보였다. 그러나 남자는 검을 쥔 손에서 힘을 풀고 입을 열었다.
 

이 여인은 마족이 아니오. 아무 죄 없는 여인을 죽인다고 가뭄이 그치고 전쟁이 끝날리가 없잖소.
 

남자는 주머니에서 은색 문장을 꺼내 촌장 앞으로 던졌다.
 

이번 겨울을 버틸만한 값은 될 것이오. 앞으로 다시는 이 여인을 헤치지 마시오. 다시는.
 

며칠이 지나 소년은 남자의 집 앞에서 서성 거렸다. 한 번도 고맙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어서 어떤식으로 말할지 망설였다. 그 옆으로 어린 늑대가 다가왔다.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목적이 같았기에 둘은 금새 친해졌다. 결국 문이 먼저 열었다. 남자는 붕대 대신 갑옷 차림이었다. 조금 낡긴 했지만 소년은 처음 보는 갑주 차림에 가슴이 설렜다. 빛바랜 금속과 어우러진 푸른색 휘장, 커다란 검.
 

아저씨 기사예요?

난 이곳을 떠난다.


남자는 둘을 지나쳤다. 늑대가 뒤따라가다 그가 돌아보자 낑낑 대면서 물러난 반면 소년은 왜 떠나는지, 어디로 가는지 물으면서 끈질기게 쫓았다. 험한 길을 택하면 떨어지리라 생각했지만 산에서 혼자 노는게 일상인 소년에게는 앞마당과 같았고 네 발 달린 늑대는 말할 것도 없었다. 남자는 결국 멈춰섰다. 앞으로 몇걸음이면 마족령이었다. 둘을 위험에 빠트리기 전에 타일러 보내야했다.


그럼 이야기 하나 해줄테니까 그거나 듣고가라. 약속 하는 거다.
 

그들은 폐허가 된 작은 성을 찾았다. 남자가 먼저 안을 살피고 소년을 들어오게 했다. 늑대는 아직도 남자가 무서운지 소년의 다리 뒤에 숨었다.


아저씨 잘도 찾으셨네요. 여기 마을에서 나만 아는덴데.
 
넌 내가 무섭지도 않니.
 
아뇨, 멋있는데요?
 

소년의 눈빛에 거짓은 없었다. 남자는 옅게 웃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타라그와 소라그라는 형제가 있었다. 타라그는 불꽃으로 모든걸 불태우려고 태어났고 소라그는 냉기로 그 불꽃을 집어삼키려고 태어났지. 두 힘이 격돌하면서 가는 곳마다 폐허가 되었고 모든 이들의 공적이 되었다. 형제는 결국 패했지만 그 힘을 동경한 이들이 한 대장장이에게 형제의 영혼을 담아내 검을 주조하도록 했다. 그러나 영혼의 그릇이 너무 커서 누구도 감당하지 못했고, 타라그는 주인의 육신을 갉아먹고 소라그는 정신을 지배해서 다시 서로를 찾아 헤매는 마검이 돼 버렸단다.
 

에이, 그게 뭐에요. 형제끼리 왜 싸워요.
 

혼자서 마족군단을 무찌르고 약자를 돕는 영웅담을 원했던 소년의 기대와 달리 성경책에나 나오는 이상하고 따분한 이야기였다. 남자는 피식 웃고는 일어났다.
 

그러게 말이다. 너도 누나랑 싸우지말고 잘 지내라. 저녁 되기 전에 얼른 돌아가.
 

소년은 떠나려는 남자 앞을 막아섰다.
 

집에 가봤자 아무도 없단 말이에요.
 
무슨 소리냐. 누나가 걱정하고 있을텐데.
 
없다니까요. 우리 누나 몸팔러 갔다구요!
 

소년은 스스로 말해놓고도 당황했다. 담고 또 담아내던 말이었는데, 바보 같이 쏟아버렸다. 한 번 엎지른 다음부터는 걷잡을 수 없었다.
 

그때도 촌장 아들이 부르는걸 내가 못가게 막아서 그놈이 헛소문 낸 거에요. 그깟 은덩이 던져준다고 그놈들이 우리 누나 놔줄 거 같아요? 도와주려면 제대로 도와줘요. 다 죽여달라구요!


그를 탓하려던게 아니었다. 누나를 지키지 못한건 자신이 약해서였다. 그저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어째서 마음에 없는 말만 나오는걸까.


그날 검을 쥔 내 팔을 붙잡은 건 너였다. 자기 자신을 잃지마라. 증오하지마. 너는 누군가를 증오 해야할만큼 악하지도 약하지도 않아.
 

소년은 강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저씨가 뭘 아냐고 소리 치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울음이 터졌다. 억누르려 해도 격양된 감정을 주체 하지 못했다. 남자는 소년을 안아주려고 몇 번이나 팔을 뻗었다가 다시 내렸다. 늑대가 조용히 둘 사이로 들어왔다. 소년은 늑대를 끌어안고 목메어 울었다. 하지만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카르마토리아스!


고함과 함께 다수의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으르렁대는 늑대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그리고 눈물로 범벅이 되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소년에게 말했다.
 

이제 정말로 헤어질 시간이구나. 이녀석의 이름은 리프다. 내 대신 친구가 되어줄거다.
 
아저씨…?
 
당장 꺼져!
 

소년은 깜짝 놀라서 뒤로 넘어졌다. 성 밖으로 향하는 뒷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50여명의 기사들이 돌진 태세를 갖추고 성 전체를 포위하고 있었다. 남자는 그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도록 가까이 다가갔다. 하지만 소년은 그가 걱정 되서 창문 틈에서 리프를 안고 지켜 보려 했다.
 

투항 하라.


지휘관이 권고 했다. 그는 기사대장을 상징하는 푸른 휘장을 두르고 오른손에는 황금색 창을 들었다.


어떻게 나를 찾았지? 깨끗히 흔적을 지웠다고 생각했는데.
 
변절자놈. 성기사단에 성스러운 창이 있다는걸 잊었나.
 

남자는 비웃으며 말했다.
 

성창 가이닐이 어째서 같은 속성인 성검과 공명한단 말인가. 성스러운 창이 감지하는 대상은 오로지 마족과 그들의 무기 아니었나?
 
닥쳐라! 성검을 더럽힌 장본인은 바로 네놈이 아니더냐. 투항하라. 적어도 기사 답게 죽어라.
 

남자는 자신의 흉갑을 가리켰다. 성기사를 증명하는 문장이 있어야할 자리가 비어 있었다. 지휘관은 더는 참을수 없다는 듯 부대를 전진 시키려고 했다.
 

잠깐 기다려라.
 

기사들 사이로 은빛 갑주를 입은 여기사가 나와서 얼굴을 내보이자 남자는 크게 동요했다.
 

아웨…
 
이제 그만해, 카마스. 돌아가자. 대성전으로 돌아가서 정화를 받자.
 
이미 이놈은 내 몸 깊숙히 뿌리 내렸어. 설마 너까지 이게 성검이라고 믿는 거야?
 
그게 뭐 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왜 내 생각은 조금도 안 해줘? 네가 그렇게 없어지고 내가 얼마나…
 

카마스는 괴로워 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검을 쥔 팔에서 힘을 빼고 몸을 늘어트렸다. 그러자 낡은 갑옷을 뚫고 시뻘건 살점과 가시뼈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차피 내 목적은 처음부터 이 타라그라는 검이었다. 기사단에 입단한 것도, 단장의 딸인 너와 약혼한 것도 다 같은 이유였다.
 

기괴한 목소리가 짐승의 울부짖음으로 변해갔다. 타라그가 카마스의 몸을 집어 삼키기 시작했다. 아웨는 충격을 받고 움직이지 못했다. 기사대장이 그녀를 뒤로 밀치고 공격명령을 내렸다. 수십자루의 창이 일제히 마스를 찔렀지만 무의미한 공격이었다. 카마스는 기사대장을 날려버리고 성창을 빼앗아 왼쪽 가슴에 찌르더니 마족령으로 도망쳤다. 그러자 리프가 소년의 품에서 벗어나 카마스를 뒤쫓았다.
 

"여기까지다."
 

목소리가 들리면서 하얀 눈보라가 불어닥쳐 모든걸 지워버렸다. 눈보라 속에서 얼음 사슬에 묶인 딤과 검은색 칼날이 나타났다. 레케는 검은 서슬, 아니 소라그에게 물었다.
 

"그게 네 정체였나. 칼에 갇힌 악마?"
 
"내가 무엇인지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형제를 파멸 시킨다는 목적이다."
 
"그럼 왜 나한테 이런걸 보여줬지. 난 너희 싸움도 너희 힘에도 관심 없어. 난 단지…"
 
"이 남자의 정신을 되돌려주길 바라겠지. 원한다면."
 

소라그는 딤과 똑같이 생긴 형상을 소환 하더니 가슴을 찔러서 부숴 버렸다.
 

"그가 깨어나면 일시적으로 정신이 돌아올 것이다."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뀐 거지?"
 
"그의 기억 내면에 내가 간섭 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이대로는 내 능력도 그의 정신도 지금처럼 부조화를 이룰 뿐이다. 조력자를 구하는 편이 효율적이겠지."
 

이번에는 핏빛으로 빛나는 대검을 불러냈다. 조금 전 보았던 역겨운 살점덩어리와 다르게 매혹적인 형태였다.
 

"그를 도와 내 형제를 죽여라. 그러면 남자는 해방될 것이다."
 
"잠깐. 내가 실패하면, 나와 딤이 실패하면?"
 
"반복 될 뿐이다…"
 

눈보라가 흩어지고 레케는 본래 세계로 돌아왔다. 딤이 의식을 잃고 누워 있었다. 레케는 손을 뻗었다. 회색 머리카락에서 눈으로, 볼에서 목덜미로. 그의 기억 속 눈물 자국을 따라 매만졌다.

 

5.
 

딤은 꿈에서 깨어났다.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먼 기억 속으로 돌아가는 꿈이었다. 몽롱한 상태에서 그를 내려다보던 레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당황해서 얼굴을 피했다.


"제가 어쩌다 여기서 자고 있었죠?"
 
"그,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몇시간이나 깨우지 않고 곁에 있었다고 말할수 없었다. 딤은 낯설게 느껴지는 몸의 감각과 반대로 머릿속은 끊임없이 팽창했다. 보이는 모든게 뇌리에 맴도는 꿈의 기억과 겹쳐 보였다. 이 폐가도 낯익었다. 그는 밖으로 나가서 근처를 둘러 보았다. 기억이 더 생생해지면서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전사자들의 묘지, 버려진 묘지기의 집, 그곳에서 머물던 상처투성이 기사, 그를 따르던 새끼늑대.
 

"움직이지마."
 

레케가 낮게 말했다. 주변 일대가 어두워졌다. 그림자의 주인이 혼자서 보름달을 가린 탓이었다. 레케는 선수필승이란 경험 대신 검을 뽑으면 당한다는 본능을 따랐다. 앞발 크기만도 덩치 큰 사내만했다. 이토록 거대한 늑대는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레케가 압도 당한 건 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늑대는 붉은색 대검을 입에 물었다. 핏빛으로 빛나는, 성검 타라그라 불리는 검이라고 한 눈에 알아챘다. 틈이 생길 때까지 대치하는 수 뿐이라고 판단했다. 뜻밖의 불청객이 튀어나오기 전까지는.
 

"푸하, 숨막혀 죽을 뻔 했네."
 

묘지 한 가운데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모즈와 용병들이 성의 구덩이와 이어지는 반대쪽 출구를 찾아낸 것이다. 늑대는 무방비 상태인 목표를 보고 움직였다. 그를 뒤따라 레케도 묘지 가운데로 달렸다.
 

"숙여, 모즈!"
 

약삭 빠른 모즈는 그 말을 따랐지만 숨을 몰아쉬던 용병들은 아니었다.


"끄아악!"
 

허리가 잘려나간 남자가 몸부림 쳤다. 늑대의 검은 검상 뿐만 아니라 불꽃을 일으켰다. 레케는 부하의 숨통을 끊어서 고통을 덜어주고 부하들을 지휘했다. 숙련된 용병들 답게 그녀를 중심으로 신속히 움직였다. 그런데 늑대는 다른 쪽을 주시했다.


"리프. 너 리프지?"
 

딤이 명령도 무시하고 늑대에게 다가가려 했다. 레케는 입술을 깨물었다.
 

"엄호해!"
 

그녀는 투창 사격과 맞춰서 딤에게 달려가 억지로 끌어 왔다. 늑대는 여유롭게 피해내고 주변을 맴돌았다. 수차례 투척 공격이 이어졌지만 회피만 하고 반격은 시도 하지 않았다.


"저거 완전 즐기고 있잖아."
 

초조한 건 모즈만이 아니었다. 대치가 길어질수록 긴장과 불안이 심해졌고 화살은 웅크린 비전투원 딤에게 향했다.
 

"저 병신 뭐하는 거야. 비싼 무기 들었으면 뭐라도 좀 해 봐."
 
"아군 죽일 때는 혼자 오십이나 썰어 제끼더니. 쳐죽일 새끼."
 

그들이 무슨 말을 해도 딤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그는 쏟아지는 기억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놈이 온다!"
 

늑대가 지그재그로 뛰면서 거리를 좁혀왔다. 용병들이 방패를 맞추고 지시를 기다리는 동안 레케는 늑대의 앞발 움직임을 간파하려고 시도 했다. 크게 내딛는 순간 달려들 것이고 그때가 역습의 기회였다.


"준비."
 

늑대가 바로 앞까지 다가오자 칼바람이 피부로 느껴졌다. 압박감이 극도로 치달아서 전열이 흔들렸다. 공격명령이 불가피 하다고 판단 했을 때였다. 레케의 눈에 앞발이 올라가는게 포착됐다.
 

"방패 당겨!"
 

부대는 방패를 붙여서 원형진을 만들었다. 강력한 충격에 대비해 모두가 눈을 감았지만 공격도, 눈앞에서 날뛰던 늑대도 온데간데 없었다. 앞발이 올라가는걸 분명히 봤는데, 레케는 방패를 내리고 몸을 일으켰다. 그제서야 주변을 뒤덮은 그림자를 확인했다. 하늘에서 늑대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다들 흩어져!"
 

마치 불벼락처럼 내리 꽂혔다. 땅이 무너질 듯한 굉음이 울리면서 흙더미, 쇳조각, 고깃덩어리가 뒤섞여 솟구쳤다. 살아남은 이들은 소수에 불과 하고 절반 이상이 괴멸 당했다. 레케는 기절한 모즈를 등에 업고 분쇄 당한 사체들 속에서 딤을 찾아냈다. 얼빠진 얼굴로 움직일 생각도 안 하는 그를 주먹으로 후려쳐서 팔을 잡아당겼다. 늑대는 장난감 가지고 놀 듯 숨이 붙은 사냥감을 토막내기 시작했다. 레케는 부하들의 비명을 등진 채로 그곳을 빠져 나갔다.

 

6.
 

모즈는 애써 태연한 척 했다. 짐도 쌌고 상처도 호전 됐으니 아침 일찍 떠나면 일단락이라 생각했다.
 

"그나저나 천만다행이었어. 마을 사람들 인상이 더러워서 방도 안 내줄지 알았는데."
 

딤은 그때 이후로 쭉 저 상태고, 언니도 저놈한테 옮았는지 말이 없었다. 부하들이 몰살 당한 건 그녀 역시 가슴 아팠지만 당시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전멸 보다는 낫지 않은가.
 

"설마 진짜로 그런 괴물늑대가 존재 할줄 누가 알았겠어? 우리가 아니라 어떤 용병단도 상대가 안 됐을 거야. 일단 자자. 본부로 돌아가서 생각하기로 하자. 응? 언니."
 
"너 먼저 자."
 

더 이상은 모즈도 견디지 못했다.


"나도 하고 싶은 말 많거든. 언니는 대체 왜 그렇게 딤한테 집착해? 쟤가 저지른 죄가 용서할 일이야? 그리고 이번 건수 아무리 생각 해도 이상해. 성검이니 성창이니 하더니 정작 괴물이 기다리질 않나. 우리가 왜 남의 나라 뒷구석이나 캐고 다녀야 되냐구!"
 

모즈는 고성에서 주웠던 일지를 바닥에 내던졌다. 레케는 몇 줄만 읽고도 내용을 파악했다. 소라그가 보여준 딤의 기억과 일치했다. 어차피 매듭을 지어야 할 일, 레케는 씩씩거리는 동생를 진정 시키고 오랫동안 숨겨왔던 이야기를 꺼냈다.
 

"5년 전 남부 내전 때 일이야. 그때 넌 어려서 소식으로 들었겠지만 우린 처음부터 반란군 주동자 머리 따위엔 관심 없었어. 지하실에 숨겨진 보물이 목적이었지. 성문이 열리자마자 기웃 거리는 놈들은 우군까지 죽여가면서 내려갔어. 거기서 저놈을 찾은 거야."
 

레케는 소라그를 가리켰다.


"처음에는 보물 어딨냐고 징징대던 부하놈들이 나중엔 저 칼 갖겠다고 싸우더라. 단원이 열 명일 때부터 따르던 충직한 놈들도 예외는 아니었어. 뭔가에 사로 잡힌 인형처럼 50명 전원이 서로 찌르고 베면서 살육잔치를 벌였지. 난 필사적으로 뜯어말리려 했지만 반대로 나를 먼저 죽이려고 했고 그대로 당할 뻔 했어. 그때 나를 구해준게 딤이야."
 

모즈가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되물었다.
 

"딤이 언니를 구했다고? 그게 사실이면 왜 지금까지…"
 
"저 검의 진짜 이름은 소라그 라고, 연합상회랑 라탄달 성기사단이 서로 찾으려고 혈안이야. 그래서 검은 서슬이라고 적당히 이름 붙여 숨겨야 했고, 그 사건도 동료 학살이라고 소문을 냈지."
 
"그렇게 위험한 물건이면 그냥 포기했어야지!"
 
"그건…"
 

레케는 지금까지 자신이 알아낸 소라그와 얽힌 사실들을 모두 말했다. 자아를 가진 무기로써 사용자를 조종하며 형제검 타라그에게 이끄는, 그렇게 해서 둘 중 하나가 소멸 되야만 검의 주인들이 해방 된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 성검이라고 알려진 타라그의 궤적을 쫓아 국경까지 왔다는 터무니 없는 이야기. 모즈는 이해관계 보다도 딤을 건너보는 레케의 쓸쓸한 눈빛이 더 와닿았다.
 

"정리하자면… 딤이 저걸로 그 늑대를 처치해야 된다는 얘기네. 그 하나 때문에 이꼴이 된 거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책임이었기에 레케는 얼굴을 들지 못했다. 하지만 모즈가 화가 난 이유는 레케가 아니었다. 멍하니 앉은 딤의 멱살을 잡아 밀쳤다.
 

"언니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넌 뭐 할 말 없어? 자신 없으면 이리 내놔. 내가 널 죽이고 그 칼로 싸워줄테니까."
 

뜯어 말리고 발버둥 치면서 자매가 뒤엉킨 사이 딤이 일어섰다. 결심이 선 얼굴이었다.


"5년 간은 죄송했습니다. 제 의지가 아니라 하더라도요. 대장님을 구해드린 건 본의가 아니라 검에 이끌렸을 뿐입니다. 괜한 책임감 가지지 마시기를. 이 시간 이후로 용병단을 나가겠습니다. 앞으로 제게 관여 하지 말아주세요. 그럼."
 

그는 말을 끝내자마자 도망치 듯 문을 나섰다. 레케는 피식 웃었다.
 

"어릴 때처럼 울면서 안기길 바랐는데."
 


7.
 

딤은 떠나기 전에 촌장을 찾았다. 촌장은 늦은 밤 중에도 등을 켜놓고 있었다.
 

"네 누이가 죽고 난 이후부터 전염병이 돌았지. 이번엔 네가 우릴 죽일 셈이냐."
 
"여전하시군요."
 

곧은 눈동자에 살기는 없었다. 딤에게는 알아야할 사실이 있었다.
 

"9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그의 증언을 곱씹으면서 딤은 묘지로 향했다. 어린 시절 수없이 밟았던 그리운 길인데 어느 때 보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가 마을을 떠난 뒤로 9년 동안 성검의 유산을 노리고 수많은 전사와 도적들이 들끓었다. 그런데 그곳으로 들어간 자는 누구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알려진 것은 단 하나, 거대한 늑대가 성검을 지킨다는 소문.

리프… 늑대의 정체는 리프가 확실했다. 9년 전에도 지금도 모든게 자신의 죄였다. 더 이상 자신의 무력함으로 누군가를 상처 입힐 수는 없었다.
 

불꽃과 냉기가 또 한 번 맞부딪쳤다. 불꽃은 냉기로 상쇄 시켰지만 힘의 차이는 극복할 수 없었다. 딤은 비석으로 날아가 쓰러졌다. 온몸이 뒤흔들리고 피가 역류했다. 고통이 심해질수록 소라그의 의지가 강해졌다. 그러나 소라그가 상대의 빈틈과 사각을 알려줘도 딤은 리프를 무시하고 타라그만을 노렸다. 그가 자초한 결과였다.
 

"차라리 너한테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어."
 

리프를 저렇게 만든 건 자신이었다. 그때 아저씨를 붙잡지 않았더라면, 리프를 못가게 막았더라면, 누구도 죽지 않고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무슨 권리로 그들을 바로 잡는다는 말인가. 딤은 다 놓아버릴 생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동쪽에서 투창이 날아왔다. 리프는 뒤로 뛰어서 피해내고 불청객을 인식했다.


"끝까지 애먹이네 정말."
 

그리고 휘발성 성수에 꺼내 다발로 던졌다. 푸른 불꽃이 장벽을 만들면서 일시적으로 접근을 막았다.
 

"미쳤어! 언니, 그거 한 병에 7천 짜리거든."
 

모즈는 자기 몸보다 큰 대형방패에 숨어 있었다. 투덜대면서도 레케를 뒤따랐다. 일전에 당했던걸 갚아주겠다는 듯 레케는 거침없이 달렸다. 창날도끼로 거리를 내주지 않고 공세를 펼치다 상대가 파고 들어올 때는 대기 하던 모즈가 성수 먹인 방패로 튕겨냈다. 압도 하거나 유효타를 적중 시키지는 못해도 이전과는 다른 양상이었다.


"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자신과 모즈로는 이 늑대를 이기지 못한다고 레케도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시간끌기가 목적이었고 그 사이 딤이 일어서주기를 바랐는데, 5년 동안 몸만 커버린 녀석이라 도움이 필요한 모양이다.
 

"그렇게 힘든데, 이 녀석도 너처럼 아파 하는 건 안 보여?"
 
"……"
 

딤이 괴로워할수록 소라그가 더 깊게 그의 내면을 파고 들었다. 마침내 마지막 조각을 찾아냈다. 나무에 기대 죽어가는 기사와 그 옆을 지키는 어린 늑대, 누나의 죽음, 적에게 둘러쌓인 붉은머리 여전사. 지킨다. 지키고 싶다는 의지를 끝으로 소라그와 딤의 정신은 하나가 되었다.

그들은 힘이 다해 수세에 몰린 레케를 대신해 리프와 맞섰다. 몸을 감싸는 냉기처럼 침착 하고 빈틈이 없었다. 검을 맞대는 힘에서도, 신체속도에서도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균형이 깨진 순간, 적의 공격 궤도를 미리 예측해 공수가 동시에 이루어졌고 거대한 늑대의 몸에 얼어붙은 검상이 생겼다. 리프는 뒤로 물러나 고통스럽게 울부 짖었다. 입에 문 대검에서 살점과 점막이 증식 하면서 상처를 메꾸고 뼈를 끄집어내 방패로 삼았다.


'주인의 육신이 더 고통 받기 전에 끝내라.'
 

딤의 가슴 속에서 소라그의 의지가 울렸다. 알고 있었다. 해야만 하지만, 그럼에도 일말의 망설임만은 어쩔수 없었다. 그걸 알고 있다는 듯 또다른 손이 소라그 칼자루 위에 포개졌다. 떨리던 딤의 눈이 곁에 있는 레케의 눈을 닮아갔다.


"상처를 주는 게 아니야. 구해주는 거야."
 

딤과 레케는 함께 소라그를 손에 쥐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숨을 헐떡이며 달려드는 리프와 맞닿았다. 불꽃과 냉기의 강렬한 충돌 끝에 소라그의 검은 칼날이 타라그를 꿰뚫었다. 팽팽히 맞서던 불꽃이 허무하게 사그라들면서 수천개의 냉기 칼날이 리프의 몸을 관통했다. 불꽃을 잃은 타라그도 조각 나서 땅에 떨어졌다. 마지막 남은 불씨에서, 타라그의 주인이었던 이들이 나타나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인간, 마족, 용족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 중에 한 기사가 있었다. 그는 다른 이들을 따르지 않고 쓰러진 늑대, 리프에게 다가갔다. 생명이 꺼져가는 리프의 눈에 기사의 모습이 들어왔다. 기사가 리프의 머리를 어루만지자 리프는 옛주인의 손길을 기억하고 새끼늑대처럼, 애달프게 울었다. 타라그가 소멸 되면서 리프의 몸도 서서히 재로 변해갔다. 기사는 끝까지 그 곁을 지키고 그 자신도 재로 돌아갔다.
 
딤은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그들은 더 이상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소라그가 그를 해방 시켜준 뒤에도 레케는 딤의 손을 놓지 않았다.


"아직도 내 힘을 바라는가."
 

주인의 손을 벗어난 소라그가 말했다. 딤과 레케 모두 침묵을 지켰지만 상황을 파악한 모즈가 앞으로 나섰다. 수십만에 육박하는 손해를 채우려는 속셈으로 소라그를 잡으려 했다. 레케가 조금만 늦게 다리를 걸었어도 손에 닿을 뻔 했다.


"필요 없어."
 

동생을 깔고 앉아 단호히 말했다.


"이제, 쉴 수 있겠군…"
 

소라그는 냉기를 잃고 땅에 떨어졌다. 묘지 곳곳에 널린 낡은 검들과 같이 주인 없이 잠들었다. 레케는 드디어 끝났다며 한숨을 쉬고 느긋한 얼굴로 딤의 멱살을 잡았다. 그동안 미뤄뒀던 버릇 고치기 시간이었다.
 

"물어볼게 꽤 많거든? 네, 아니요로만 답해라. 거짓말 할 때마다 한대씩 쌓인다. 일단 아까 그말부터. 대장님을 구해드린 건 본의가 아니었어요."
 
"……"
 

딤은 시선을 피하면서 조그맣게 아니요라 답했다. 페케는 더 크게 말하라며 윽박 질렀다. 모즈는 바닥에 깔린 채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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