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배고파.

  코끼리가 말했다. 소리에도 색이 있다면 그건 아마 짙은 회색이었을 것이다. 말라붙은 진흙으로 더러워진 코끼리의 커다란 엉덩이 같은, 무겁고 탁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따듯한 느낌의 색.

  참 코끼리다운 목소리야.

  스컬리가 말했다. 경은 어쩐지 고개를 떨어뜨렸다. 스컬리의 교복 치맛자락과 흰 양말과 운동화가 차례로 보였다. 스컬리는 노래에 박자를 맞추듯 탁탁 한 쪽 발을 구르고 있었다. 코끼리다운 게 뭘까. 경은 문득 죽은 은행나무가 떠올랐다. 외가댁 마당의 은행나무. 죽은 뒤에도 오래도록, 쓰러지거나 뽑혀나가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던 은행나무. 늘 그 나무 아래에 엎드려있던 진돗개 한 마리도 함께 떠올랐다.

  진돗개는 영리하고 온순하다는데 그 녀석은 눈치가 없고 부산스러웠다. 학교에서 빵점짜리 받아쓰기 시험지를 들고 돌아오던 날, 가슴까지 뛰어올라오던 녀석을 경은 마당에 놓여있던 빗자루를 휘둘러 쫓았다. 그 뒤로도 몇 번, 심술이 날 때마다 휘두르던 빗자루는 종종 녀석의 옆구리에 닿기도 했다. 할머니가 틀렸어. 경은 저절로 입이 비죽 나왔다. 구슬치기 하다 가진 구슬을 몽땅 잃고 돌아와 발길질을 하던 때였던가. 외할머니는 경에게 말 못하는 짐승을 구박하지 말라 하셨다.

  두 손을 뻗어 빗자루를 받쳐 들고 밤이 깊을 때까지 진돗개를 노려보며 마당에 서 있을 때, 경은 그 선량한 눈을 얼마나 원망했던가. 하지만 짐승도 말을 한다. 경은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오랜 시간 의심하지 않았던 명제가 가볍게 깨어졌다.

  코끼리가 다시 말했다.

  난 지금 무척 배가 고파.

  경은 아침에 식탁에 놓여 있던 도시락을 떠올렸다. 참치김밥과 유부초밥이 들어 있는 도시락. 그리고 그 도시락을 그대로 식탁에 올려두고 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컬리가 경에게 말했다.

  코끼리가 배가 고프다고 하잖아.

  스컬리는 태연한 표정으로 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경은 어쩐지 코끼리도 기대에 찬 눈으로 자신을 보는 것만 같았다. 아니, 뭐, 그래서?

  어떻게든 해봐.
  어떻게?
  어떻게든.
  뭘?

  스컬리가 혀를 찼다. 네가 그래서 친구가 없는 거야. 경도 속으로 혀를 찼다. 너도 마찬 가지야.




  소풍 장소가 학교 근처의 유원지로 결정되자 반 아이들은 일제히 야유를 보냈다. 식상할 정도로 많이 가봤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심지어 지금 어드벤처 파크가 공사 중이라는 것이 결정적인 두 번째 이유였다. 유원지에는 세 개의 테마파크가 있었다. 온실식물원과 야외정원으로 이루어진 그린 파크와 동물원이 있는 사파리 파크는 인기가 없었다. 놀이기구와 퍼레이드가 있는 어드벤처 파크에만 사람들이 몰렸다.

  교실에서 소풍을 반가워하는 사람은 경과 스컬리 밖에 없었다. 경은 스컬리가 소풍 장소를 듣자마자 무언가를 열심히 적는 것을 보았다.  

  집합장소는 유원지 입구와 가장 가까운 허브공원이었다. 인원 체크가 끝나자 아이들은 저마다 무리를 지어 목적지를 정했다.

  소풍 같은 건 참 지루해.  경은 스컬리의 달싹이는 입 모양을 보았다. 스컬리는 늘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게 말하곤 했다. 경은 자주 스컬리의 말을 보았다.

  정말 재미없어. 그런 입모양을 남기고서, 역시 스컬리가 제일 먼저 사라졌다. 곧 아이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교사들도 제각기 떠났다. 경은 얼떨결에 혼자 남았다. 다음 집합시간은 유원지의 폐장시간이었다. 경은 허브공원 한가운데에 해바라기 모양으로 우뚝 선 시계를 보았다. 유원지의 폐장은 계절마다 달랐다. 하절기와 동절기의 폐장시간은 두 시간 차이가 났다. 가을은 어디에 속하는 걸까.

  경은 하절기 폐장시간과 동절기 폐장시간 사이에 스윽, 손가락으로 시곗바늘을 그려보았다. 허브공원에는 페퍼민트, 로즈마리, 라벤더, 캐모마일 따위의 서양 여자애 같은 이름을 가진 허브들이 가득했다. 경은 그 이름들을 하나하나 소리 내어 불러보다가 문득 스컬리, 라고 내뱉었다. 스컬리, 스컬리, 스컬리. 몇 번이고 발음해보면서, 시옷과 으와 키읔과 어와 리을과 또 리을과 이를 주의 깊게 나눠보면서 허브 공원을 빠져나왔다.

  유원지 입구의 안내도 앞에서 경은 거대한 미로를 떠올렸다. 사실 안내도는 어린 아이들도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간단한 그림들로 이루어져있었지만 도저히 해석해낼 수 없는 엄청난 암호를 대하듯 경은 안내도를 보면서 자꾸만 눈살을 찌푸렸다.

  경은 동물원에 가고 싶었다. 동물원은 워터파크와 드림파크 사이에 있었다. 워터파크는 허브공원을 끼고 돌아야했고 드림파크는 허브공원 반대편에 있는 분수대를 지나 있었다. 경은 머릿속으로 열심히 동선을 그려보았다. 그리고 한참 걸어 다시 제자리로, 안내도 앞으로 돌아왔을 때에서야 자신이 길치라는 걸 깨달았다. 동서남북 각각 다른 방향으로 출발을 해도 결국 정신을 차려보면 같은 자리였다.

  스컬리를 만난 건 분수대에서였다. 스컬리는 솜사탕을 들고 있었는데 먹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경은 헬륨풍선을 들고 있었다. 유원지 마스코트의 얼굴 모양이었다. 왼쪽 귀에 노란 리본이 달린 분홍색 토끼. 윙크를 하거나 앞발을 가지런히 앞으로 내미는 것이 마스코트가 하는 행동의 전부였는데도 아이들은 마스코트를 좋아했다.

  이름이 뭐였더라. 바니. 버니, 부니, 부기, 버기, 바기. 경은 비슷비슷한 단어들을 몇 개 떠올리며 헬륨풍선을 샀다. 유원지에 오면 유원지에 온 사람답게 행동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동물 귀가 달린 머리띠를 하거나 양쪽 렌즈의 색이 다른 종이안경을 쓰는 것보다는 헬륨풍선을 사는 것이 훨씬 간편했다. 스컬리와 경은 분수대를 사이에 놓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스컬리의 뒤로는 동물원이 있었고 경의 뒤로는 주차장이 있었다. 경은 드디어 동물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경의 눈에는 스컬리가 무어라고 말을 할 것만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걸로 보였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스컬리와 대화를 해본 적이 있던가. 경은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경이 전학을 온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스컬리와는 흔한 인사조차 나눠본 적이 없었다. 스컬리는 경뿐만 아니라 누구하고도 인사하지 않았고 대화하지 않았다. 먹지도 않을 솜사탕을 들고 분수대 앞에 서 있는 스컬리. 그렇지만 분수를 구경하는 것은 아닌 스컬리. 스컬리, 스컬리, 스컬리는 참 이상한 애야. 경은 쭈뼛거리며 스컬리의 옆을 지나쳤다.

  단내가 났다. 솜사탕, 솜사탕. 어디서 샀느냐고 물어볼까. 경은 스컬리의 솜사탕을 곁눈질했다. 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이제 더 이상 시선을 두었다간 목이 꺾일 것 같다고 생각할 때 즈음 스컬리가 물었다.

  너 지금 어디 가니?

  경은 저도 모르게 대답했다.

  소, 솜사탕.

  그리고 스컬리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쌀쌀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건 별로 맛이 없지만 어쩔 수 없지.

  코끼리가 솜사탕을 삭삭 핥아먹었다. 축축한 혀가 닿을 때마다 솜사탕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솜사탕 막대를 쥔 팔이 저려왔다. 경은 창살 사이에 끼인 어깨를 조금씩 움직여 자세를 바꿔보았다. 마찬가지였다. 역시 팔이 저렸다.

  저기, 그냥 코로 잡고 먹으면 안 될까.

  코끼리에게 사정해보았지만 대답이 없었다. 코끼리는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듣기 싫은 말은 무시했다. 정말 제멋대로야. 경은 남은 솜사탕의 양을 가늠해보았다. 네 번 정도, 아니면 다섯 번 쯤. 그 정도만 더 코끼리의 혀가 지나가면 솜사탕은 막대만 남을 듯했다. 좀만 참자. 좀만. 경은 주문처럼 좀만을 속으로 외치며 코끼리의 혀가 지나가는 횟수를 세었다.

  억울하게 생각하지 마, 원래 내 거였잖아.

  스컬리는 물끄러미 울타리 창살 사이로 팔을 내밀고 있는 경과 경의 손에 들린 솜사탕과 그 솜사탕을 핥아먹는 코끼리를 보고 있었다. 줬으면 그만이지 치사하게. 경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생각해보니 솜사탕을 한 입도 먹어보지 못했다.

  네가 더 키가 크니까 팔도 길 거야. 풍선은 내가 들어줄게. 스컬리의 손목에 묶어둔 헬륨풍선이 바람에 흔들렸다. 풍선에 그려진 마스코트의 얼굴이 경에게는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보였다. 억울했다. 맛이 없다면서 연신 혀를 움직이는 코끼리도 얄밉고 태연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스컬리도 못마땅했다.

  동물원에 가는 길이라고 하자 스컬리는 대뜸 솜사탕을 내밀었다. 이거 줄게, 나도 데려가. 스컬리의 당당한 표정을 보며 경은 아이들이 스컬리에 대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스컬리는 참 이상한 애야.

  스컬리는 유원지에 동물원이 있는 줄은 몰랐다고 했다. 놀이기구를 타거나 이벤트 행사에 끼고 싶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냥 시간이나 때우려고 했는데 여기에 동물원이 있었구나.

  스컬리는 결연하게까지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난 동물원에 가서 코끼리를 만나야겠어.

  코끼리를 보는 게 아니라 만나다니. 경은 스컬리의 표현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수군대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다시 떠올랐다. 스컬리는 참 이상한 애야. 어쩐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동물원 입구의 아치형 문을 통과하자 바로 코끼리우리가 보였다.

  학교 운동장만한 공터 둘레에 어른 키만 한 호를 파고 울타리를 쳐둔 것이 코끼리우리였다. 스티로폼이나 스펀지일 것 같은 인공조형물이 바위랍시고 몇 개 있었고 그 옆에 당연하다는 듯이 코끼리 한 마리가 있었다.

  스컬리는 오랫동안 그곳만을 찾아 헤매었던 사람처럼 코끼리우리로 달려가 울타리 난간에 매달렸다. 그리고 외쳤다.

  코끼리야!

  그렇게 부른다고 코끼리가 왜? 하고 대답을 하겠니. 경이 그렇게 생각하면서 느릿느릿 스컬리에게로 다가갈 때, 거짓말처럼 코끼리가 대답했다. 왜? 라고.





  아, 다 먹어버렸네.

  코끼리가 말했다. 경은 솜사탕 막대를 울타리 옆에 꽂았다. 속이 꽉 찬 빨대 같은 플라스틱 막대는 너무 쉽게 땅에 꽂혔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야? 코끼리가 마치 오랜만에 전화해 온 친구에게 말을 걸듯이 물었다. 경도 묻고 싶었다. 그래, 무슨 일이야.

  스컬리는 경이 꽂은 솜사탕 막대를 뽑아 들고서 종종걸음으로 저만치 갔다. 마스코트가 한 걸음쯤 뒤의 허공에서 휘청휘청 스컬리를 따라 갔다. 어딜 가는 거야. 스컬리! 스컬리! 경은 외치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었다. 스컬리가 다시 종종걸음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빈손이었다.

  쓰레기통이 너무 멀리 있어.

  경은 스컬리를 처음 보았을 때를 기억했다. 스컬리는 교문 옆 벤치에 앉아 있었다. 웅크린 등과 한 곳을 집중해서 바라본 탓에 살짝 몰린 눈이 생생히 떠올랐다. 경은 전학수속을 밟기 위해 오후수업이 시작할 때 즈음 학교에 갔다. 스컬리는 체육복을 입고 있었다.

  학교 지정 체육복은 12색 크레파스에 ‘하늘’색이라고 적혀있는 그 색이었다. 힘주어 누르면 종이 위에 두텁게 달라붙을 듯한 쫀득쫀득한 하늘색. 경은 크레파스의 색들에서 점성을 느끼곤 했다. 스컬리는 벤치 위에 쭈그려 앉아 낙서를 지우고 있었다. 한 손에는 지우개, 한 손에는 커터칼을 들고서.

  다른 아이들은 운동장 중앙에 있었다. 남자 아이들은 규칙도 없이 몰려다니며 공을 차느라 정신이 없었고 여자 아이들은 그런 남자 아이들을 피해 모여 있었다. 그 운동장에서, 혼자 있는 건 스컬리와 경뿐이었다. 경은 운동장 가장자리를 빙 돌아 학교 건물로 향했다. 교무실은 복도 끝에 있었다. 서류를 받은 교사는 창밖을 고갯짓하며 말했다.

  저 애들이 같은 반이야. 나가서 인사라도 할래? 경은 여전히 흙먼지를 일으키느라 바쁜 남자 아이들과 아까와는 다른 곳에 모인 여자 아이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경이 왔던 쪽과는 반대로 운동장을 돌아 교문을 빠져 나갈 때까지도 스컬리는 낙서를 지우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스슥스슥, 커터칼날이 벤치 표면의 칠을 벗겨내는 소리가 마치 스컬리의 몸이 내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스컬리가 스컬리라고 불린다는 건 등교 첫날에 알게 되었다. 전에 학교에선 뭘 했니? 근데 그거 알아? 의문형들이 연달아 이어졌지만 전부 질문인 건 아니었다. 친절한 아이들은 전학생에게 그간의 모든 지식과 정보를 한번에 주입시켜주기 위해 노력했다. 쉬는 시간마다 경의 책상 주변에는 수많은 소개와 소문들이 북적였다.

  너 X파일 모르니? 스컬리가 왜 스컬리냐고 묻자 돌아온 질문이었다. 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요일마다 하잖아, 그거. 드라마. 외가댁에는 TV가 없었다. 경에게 일요일은 대청소를 하고 외할머니를 따라 장을 보러 시내에 나가는 날이었지 외국 드라마를 보며 외계인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는 날이 아니었다. 도시에 있는 아버지의 집으로 온 뒤에는 경도 TV가 있는 거실을 갖게 되었지만 채널을 돌리고 프로그램을 고르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너 엄청 시골에서 살았니? 경은 그렇게 말하는 아이의 눈이 낯익다고 생각했다. 그건 처음 외가댁이 있는 시골 학교에 전학 갔을 때에 본 적이 있는 눈이었다. 너 큰 도시에서 왔니? 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곧 자신에게 붙을 별명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이가 다시 하던 이야기를 이어갔다.

  스컬리는 외계인을 본대. 아무도 없는데 혼자서 떠들고 있을 때는 외계인하고 통신을 하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말하는 아이의 눈빛이 사뭇 진지해서 경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그게 정말이야? 아이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그러나 은밀하고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그래, 그리고 분명히 스컬리도 외계인일 거야.





  물어볼 게 있어.

  한참 만에 스컬리가 말했다. 코끼리는 스컬리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참 참을성도 없지. 경은 스컬리와 코끼리 사이의 거리를 재 보았다. 스컬리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들리긴 하는 걸까. 코끼리는 어느 틈엔가 우리 중앙으로 가서는 꼼짝도 않고 있었다. 마치 한 번도 움직인 적이 없는 것처럼 태연한 자세였다.

  솜사탕을 먹을 때는 울타리 앞까지 금세 달려오더니 다 먹고 나서는 입을 싹 닦는 구나. 코끼리는 앞발은 쭉 뻗고 뒷발은 구부린 채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앉아 있었다. 등은 바위모양의 조형물에 슬쩍 기대고 있어 얼핏 소파에 걸터앉은 배나온 아저씨를 보는 듯 했다.

  경은 코끼리는 몇 살이 되면 아저씨라고 부를 수 있는 걸까 생각해봤다. 코끼리우리 울타리에는 코끼리에 대한 설명이 붙어 있었다.

  코끼리. 장비목 코끼리과 동물의 총칭. 암컷을 중심으로 무리를 이루어 생활. 한 마리뿐인데? 경은 설명에 덧붙은 코끼리 무리의 사진을 보았다. 주 서식 장소 사바나 등의 초원. 초원을 걷는 코끼리 무리들의 평균 수명 약 60년. 사람하고 비슷하구나. 저 코끼리는 몇 살일까. 아저씨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맨 아랫줄엔 붉은 글씨로 경고문구가 적혀 있었다. 함부로 먹이를 주지 마시오.

  솜사탕은 먹이인가. 경은 고민하며 코끼리를 보았다. 코끼리는 여전히 앉아 있었다. 스컬리가 크게 외쳤다. 물어볼 게 있어! 코끼리의 귀가 한 번 두 번 세 번 펄럭였다. 양쪽이 동시에.

  경은 이제 손에 솜사탕도 빈 솜사탕 막대도 없고 코끼리는 그냥 저기 앉아 있고 해서 코끼리가 말을 하기는 했었는지 솜사탕을 먹기는 먹었는지 스컬리가 솜사탕을 줬었는지 동물원엔 왜 같이 왔는지 이것저것 여러 가지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떻게 코끼리가 말을 하는 거지?

  경이 묻자 스컬리가 귀찮다는 듯이 대꾸했다.

  그건 나 때문이야. 내가 코끼리하고 할 말이 있어서 그래.

  그래그래, 그러니까 코끼리가 말을 하기는 했었지? 경이 말하자 스컬리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경에게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말고는 다시 코끼리에게 외쳤다. 듣고 있어? 물어볼 게 있다니까! 스컬리의 목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울렸다.

  동물원에는 다른 사람이 없었다. 멀리서 희미하게 놀이기구가 돌아가면서 내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철 지난 가요와 뒤섞인 기계음들.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마치 효과음인 것처럼 기계음 사이에 섞여 있었다. 이따금 비명처럼 순간적으로 내지르는 소리가 끼어들기도 했으나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노래인 것처럼 흐름이 있었다.

  경은 그 흐름을 따라 롤러코스터의 움직임을 상상해보았다. 이쯤에서는 치켜 올라갔다가 뚝 떨어지고 흔들리다가 다시 높이 또 아래로. 소리는 끊기지 않고 계속됐다. 마치 롤러코스터의 레일이 지구를 한바퀴 돌아 하염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처럼. 그 롤러코스터 위에 탄 것처럼 시간이 아득하게 흘러간다고 생각할 때, 코끼리가 여전히 움직이지 않은 채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말해, 듣고 있어.

  스컬리는 울타리에 매달려 코끼리를 향해 한껏 몸을 숙이고 있었다. 우리 엄마를 알아? 코끼리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코끼리의 귀가 빳빳하게 펼쳐져 있었다.





  코끼리의 말에 따르면 그날은 너무 더워서 누구든 짜증을 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몇 일째 폭염이 계속되고 있었고 그날도 하늘엔 구름 한점이 없었다. 코끼리는 아침부터 시달리고 있었다. 사육사들은 코끼리에게 제대로 먹이를 주지도 않고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 퍼레이드는 급하게 결정되었다. 유원지의 확장개장을 홍보하기 위한 이벤트였다.

  일 년간의 대대적인 확장공사는 유원지를 거대하게 키워주었지만 사람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지게 했다. 사람들은 기다리는 대신 다른 것을 찾았다. 옆 도시의 유원지가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었다. 공사가 끝난 기념으로 입장료를 할인하고 전단을 뿌려도 별 소용이 없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부랴부랴 벌인 몇 가지 이벤트 중에 하나가 퍼레이드였다.

  미리 계획했던 이벤트들이 아니어서 모든 것이 부족했다. 하나가 끝나면 바로 다음을 준비해야했고 또 그 하나를 끝마쳐야만 다음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길거리 마술쇼와 마스코트의 무료인형극이 겨우 끝이 났다. 미처 준비가 다 되지 않은 채로 퍼레이드 날은 다가왔다. 정오부터 시작하기로 한 퍼레이드였지만 그날 오전까지도 행렬 순서를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코끼리는 등에 얹혀진 안장과 술 장식이 달린 천을 당장이라도 떨어내 버리고 싶었다. 사육사들이 색색의 물감으로 자신의 다리와 꼬리에 무늬를 그려 넣은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행렬의 선두에 흰 당나귀 두 마리가 출발하고 나서야 코끼리의 순서가 맨 마지막으로 결정되었다. 사육사들 중 가장 몸집이 작은 한 명이 코끼리 등 위 안장에 앉았다. 사육사는 인도의 왕자라도 된 것처럼 머리 위에 터번을 쓰고 부풀린 바지를 입고 있었다. 코끼리는 자신이 인도가 아니라 다른 도시의 동물원에서 태어났다는 걸 사육사가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가끔 사람들은 그렇게 뻔한 거짓말을 했다. 한 번에 입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꼭 코로 집어서 먹게끔 했다. 코끼리는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왜 그렇게 하는지는 알았다. 사육사들은 매일 유원지 개장시간에 맞춰 코끼리를 씻기며 말하곤 했다. 잘 보여야 해, 라고. 사람들은 그렇게, 잘 보이기 위해서 여러 가지를 하곤 했다.

  유원지를 벗어나는 건 유원지에 들어온 뒤로 처음이었다. 정확히는 동물원 밖, 코끼리우리 밖을 나가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사육사는 등 위에서 피리를 불거나 방울을 흔들거나 했다. 인도에서는 저렇게 하나. 코끼리는 괜히 웃음이 나왔다. 코를 치켜들고 소리 내어 웃을 때마다 퍼레이드를 구경하던 사람들이 환호했다. 그 사람들 틈에 스컬리의 엄마가 있었다.

  코끼리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아주 신기해하는 얼굴이었어. 박수를 치기도 하고 발돋움을 하기도 하고 내가 웃을 때마다 따라 웃었지. 코끼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스컬리는 울었다.

  경은 코끼리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어떻게 코끼리가 스컬리의 엄마를 알아보고 기억하고 있는지 스컬리는 즐거워했다는 엄마에 대해 들으면서 왜 우는지 궁금했지만, 스컬리도 코끼리도 너무 슬퍼보여서 아무 것도 물을 수 없었다.

  그저 울타리 난간에 엎드려 우는 스컬리의 손목에서 헬륨풍선의 끈을 풀어냈을 뿐이었다.

  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하고 코끼리가 뜸을 들였다. 그날은 너무 더웠고 난 짜증이 난 상태였어. 그래서 그 웃음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고. 경은 스컬리의 손목에서 마지막 매듭을 풀어내고 있었다. 네 번이나 돌려 묶어두다니. 코끼리가 멋쩍어하며 말했다.

  나도 그땐 어렸지. 코앞에서 발을 굴러 버렸다니까.

  드디어 마지막 매듭을 풀어내고 손에서 힘을 빼자 물이 흘러내리듯 풍선의 끈이 경의 손에서 빠져 나갔다. 마스코트가 휘청거리며 하늘로 날아갔다. 마스코트가 날아가는 것을 한참 보고 있자니 목이 뻐근해졌다.

  스컬리, 스컬리, 스컬리. 외계인을 보는 외계에서 온 스컬리. 하늘은 무척 높고 눈이 시리게 푸르렀다. 저 너머 어딘가에 스컬리의 별이 있을까.

  경은 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자 어쩐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아 눈을 질끈 감았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경에게 별이라는 발음은 모음 여와 자음 리을 사이로 출렁이는 물 같았다. 감은 눈꺼풀 위로 마스코트가 비틀비틀 빠져 나갔다. 그 끝에 늘어진 끈마저 경의 눈 속에서 사라졌을 때, 스컬리가 말했다.

  난 한 번도 엄마가 웃는 걸 본 적이 없어.

  경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자신이 기억하는 엄마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외가댁에 자신을 맡겨두고 혼자 대문 밖을 나서며 흘깃 돌아보던 얼굴, 이따금 찾아와 밥상 앞에 마주 앉아 묵묵히 수저질을 하던 얼굴, 할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겨우 같은 이부자리 위에 누워 잠든 얼굴. 기억 속 엄마는 모두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곤한 잠에서 억지로 깨어난 듯한, 무의식중에 본능적으로 불쾌를 드러내는 얼굴.

  엄마라는 사람들은 원래가 잘 웃지 않는 게 아니었던가. 경은 슬쩍 왼쪽 눈을 떴다. 스컬리를 보았다. 스컬리는 여전히 울타리 난간에 엎드려 있었다. 오른쪽 눈도 마저 떴다. 코끼리를 보았다. 코끼리는 덤덤하게 귀를 팔랑거리고 있었다. 그때 태어난 게 너였구나.

  스컬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스컬리의 엄마는 아주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스컬리는 한 번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의 엄마를 본 적이 없었다. 엄마는 모든 일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행동했고 스컬리에게는 어찌할 바를 모를 정도로 아주 무섭고 놀랍고 당황스러운 일이 일어나도 덤덤했다.

  가령, 스컬리가 여섯 살 때 유치원 선생님이 스컬리가 그려간 ‘우리 가족’이란 제목의 그림을 보고 아버지는 어디에 계시냐고 물었던 것을 말했을 때나, 가정환경조사서라는 이름의 표에 빈 칸을 다 채우지 못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라든지, 그런 저런 일들.

  스컬리에게 하루는 무척이나 길었다. 아침에는 알람도 없이 일어났다. 옷을 입고 밥을 먹고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말끔하게 손질된 옷도, 따듯한 국과 끼니마다 새로 만든 반찬이 있는 밥상도 있었지만 엄마의 배웅은 없었다. 그렇게 유치원에 가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는 학교에 갔다. 많은 아침이 비슷하게 지나갔다.

  학교에서는 시간표에 어긋나지 않게 지냈다. 수업시간에는 수업을 듣고 쉬는 시간에는 쉬었다. 점심시간에는 점심을 먹었다. 급식은 엄마가 해주는 음식보다 간이 셌다. 스컬리는 어디서든 가만히 있었다. 가만히 있다는 건, 몸을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눈에 띄는 일이나 눈 밖에 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입을 다물고 제자리에 앉아 있는 것. 뛰쳐나가거나 드러눕지 않는 것. 모나지 않게 구는 것. 하루 종일 한 번도 입을 벌리지 않은 날도 있었다. 그렇게 단조로운 하루하루가 지나 갈수록 머릿속은 점점 더 복잡해졌다.

  스컬리는 왜 다른 아이들은 다 그리는 아버지를 자신은 그릴 수 없는지, 부모의 직업란은 어째서 두 칸이나 마련되어있는지, 그러니까 아버지는 무엇이며 도대체 어떠해야하는지에 대해 자신이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는 것이 생각하면 할수록 무섭고 놀라고 당황스러웠다. 용기를 내어 물어보면 엄마는 태연하게 말했다.

  그런 건 없어도 괜찮아, 아무 것도 아니야, 우린 모두 별에서 왔으니까, 라고.

  그 대답은 스컬리가 하는 대부분의 질문에 똑같이 되돌아 왔다. 설거지를 끝낸 그릇들의 물기를 마른 행주로 훔치면서, 마른 빨래를 개켜 서랍에 넣으면서, 현관문을 닫으면서 엄마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우린 별에서 왔단다. 지금은 아직 지구에 적응하는 중이니까 여러 가지 일이 있을 수도 있어. 그러고 보니 스컬리는 항상 어떤 일을 끝마치는 엄마의 모습만을 보았다.

  엄마는 항상 무언가를 해내는 중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부지런히 움직여도 끊임없이 할 일이 있었다. 엄마는 지구 생활에 적응하느라 무척 바빴기 때문에 스컬리에게 웃어줄 시간이 없었다. 스컬리는 엄마의 분주한 뒷모습을 보면서 지구가 아닌 별을 그리워했다. 그럴 때마다 아무 것도 쥐지 않는 손이 간지러워 빈주먹을 쥐어보기도 했다. 그곳을 고향이라고 불러도 된다면 그 감정은 향수였을까. 스컬리는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지구의 낯설음을 확인했다.

  그럼 네가 정말 외계인이란 말이야?
  하지만 넌 지구에서 태어났어.

  경의 말을 코끼리가 받았다. 스컬리는 경과 코끼리를 번갈아 보았다.

  우주의 어딘가에서 별이 죽었어. 별은 죽을 때 가장 뜨겁고 환하게 빛나. 그 빛으로 별을 이루고 있던 수많은 것들이 먼지가 되어 우주로 흩어져. 그 먼지들은 우주를 떠돌다가 한 덩어리로 뭉치게 되지. 이미 죽은 별로는 돌아갈 수 없으니까 새로운 별에 떨어지는 거야.

  스컬리가 오른쪽 손바닥을 펼쳐 자신의 왼쪽 가슴 위에 얹었다. 외계인은 별의 조각 같은 거야. 스컬리의 엄마는 별의 조각이 자신에게 들어와 스컬리가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외계인이 죽으면 별이 죽듯이 외계인을 이루고 있던 것들이 먼지가 되어 우주로 돌아가. 다른 별을 찾아서.

  스컬리가 오른손 위에 왼손을 포갰다.

  엄마는 또 새로운 별에 적응하느라 바쁘겠지.

  경은 엄마는 마지막으로 보았던 날을 떠올렸다. 엄마가 찾아오던 여느 날과 다름없는 날이었다. 할머니의 잔소리가 이어졌고 엄마는 마지못해 밥상에 경과 마주 앉았다. 요즘 어떻게 지내니? 경에게 말을 거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은 건 오랜만이었다. 어떤 대답을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시골 학교는 아주 재미없고 아이들은 유치하고 수업은 시시하다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을 두서없이 떠들었다. 엄마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밥상을 물리고 엄마는 산책을 나서듯 대문을 열었다. 그리고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겨울이었다. 엄마가 벗어두고 간 외투가 여러 날 경의 이부자리 위에 있었다. 계절이 바뀌기 전에 아버지가 찾아왔다. 경은 도시로 돌아왔다. 아버지의 집은 넓었다. 하도 많이 얘기를 들어와서 별로 낯설지 않은 여자가 경을 돌보아 주었다. 봄이 왔다. 도시의 학교도 역시 재미는 없었다. 아이들은 비슷하게 유치했고 수업도 시시했다. 계절이 바뀌는 동안 엄마의 외투는 경의 침대 밑에 감춰져 있었다. 경은 생각했다. 엄마는 지금 어딘가의 낯선 날씨에 적응하느라 무척 바쁠지도 몰라.






  난 내가 정말 외계인인지 확인하고 싶었어.

  매점에서 산 샌드위치를 먹으며 스컬리가 말했다. 코끼리는 사육사가 두고 간 건초덩어리를 앞발로 부수고 있었다. 경은 편의점에서 산 포장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전자렌지에 돌려 먹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차가운 밥알은 자꾸만 잇새를 파고들었다. 코끼리가 잘게 부순 건초를 씹으며 물었다.

  확인이 되었어?
  응.

  스컬리가 코끼리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너와 이야기하고 있잖아. 이건 지구인에게는 흔하지 않은 일이야.

  그리고 소리 내지 않고 덧붙여 말했다. 고마워. 그 입 모양을 경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스컬리의 말을 알아보는 건 자신이 있었다.

  경은 자판기에서 뽑아온 사이다를 코끼리와 나눠 마셨다. 스컬리는 딸기우유를 마셨다. 코끼리는 딸기가 싫다고 했다.

  내가 태어난 동물원에서는 엄마와 함께였어. 아무리 내가 코끼리지만 그때는 어렸고 엄마 옆에 있으면 작아 보이잖아. 꼬마 녀석들이 아기코끼리에게 먹이를 주겠답시고 많이도 던졌지. 그때 딸기맛 과자가 유행이었거든. 엄마가 코를 휘둘러서 막아주면 그게 또 신기하다면서 자꾸 던지는 거야.

  코끼리가 코로 경의 손에서 사이다 캔을 가져가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길게 트림을 했다. 아, 미안. 다 마셔버렸네.

  경이 다시 자판기에 새 음료수를 뽑으려고 동전을 넣자 유원지의 곳곳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폐장시간을 알리는 노래였다. 허브공원의 시계탑에도, 드림파크 놀이기구에도, 동물원의 울타리에도 스피커가 있었다. 메아리처럼 노래가 퍼져나갔다. 스컬리가 샌드위치 포장지와 딸기우유팩과 플라스틱 도시락과 사이다 캔을 챙겨 들어 분리수거했다.

  엄마는 내가 엄마에게 온 순간이 아주 기뻤다고 했어.
  응, 기뻐보였어. 네가 태어났을 때에 웃고 있었어.
  난 아주 운이 좋아, 한 번에 널 찾아내다니. 넌 아주 특별한 코끼리야.
  너도 무척 특별한 외계인이야.

  스컬리가 코끼리와 작별인사를 하는 동안 경은 동물원 입구인 아치형 문에 붙은 안내도를 보았다. 집합장소의 위치를 찾으면서 투덜댔다. 난 아주 평범한 지구인이지. 코끼리가 귀를 펄럭이며 배웅해주었다.






  스컬리. 스컬리, 스컬리. 경이 아무리 불러도 스컬리는 돌아보지 않았다. 꼭 두 걸음만큼 경을 앞서가고 있었다.

  스컬리, 우린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스컬리가 조금씩 걸음을 늦추었다. 두 걸음에서 한 걸음으로 줄어든 거리에 스컬리가 있었다.

  글쎄, 난 지구인하고는 친구 안 해.

  스컬리는 알고 있을까. 경의 별명이 시골촌놈에서 멀더가 되었다는 걸. 아이들은 말했다. 스컬리가 외계인을 조사하는 것처럼 멀더는 스컬리를 조사해. 스컬리에 대해 궁금해 하는 건 너 밖에 없어. 네가 멀더로구나.

  하지만 경은 생각했다. 난 멀더가 아니야. 경을 위해 마련된 방에는 컴퓨터가 있었다. 인터넷 검색창에 X파일을 치자 멀더와 스컬리가 나왔다. 끊임없는 호기심을 가지고 이성적인 판단과 과학적 분석을 하는 스컬리 요원, 초자연적인 현상을 감각으로 파악해내고 파헤치는 멀더 요원. 그래, 난 멀더가 아니야.

  스컬리가 고개를 돌려 경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마주 선 스컬리는 조금 낯설게 보였다. 경은 지금까지 스컬리와 같이 있었던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스컬리의 뒤로 해가 기울었다. 겨울이 오고 있었다.

  경은 붉게 지는 해 속에 든 스컬리의 실루엣을 보았다. 문득 그 모습이 흐려지는 것 같아 두 손으로 눈을 비볐다. 스컬리는 여전히 눈앞에 있었다. 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생각해 볼게. 넌 특별한 지구인인 것 같아. 네 이야기를 듣고 싶어.

  스컬리는 그렇게 말하고 등을 돌렸다. 그렇게 잠깐 서 있다가 잰걸음으로 저만치 앞서 갔다. 아이들이 줄을 서서 모여 있었다.

  줄의 끝으로 걸어가는 스컬리의 뒷모습을 보면서 경은 우주 어딘가에서 죽은 별과 그 별의 조각을 떠올렸다. 앞으로 우연히 밤하늘을 긋는 빛이라도 보게 된다면 저도 모르게 간절히 바라게 될 것 같았다.

  멀더, 스컬리를 찾지 말아요. 어느 별에서라도.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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