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빛나는 세상 속에

윤도흔

1.

나이를 먹는다고 겸손하거나 선량해지는 건 아니다. 노인은 자길 받아주지 않으면 당장 동네 깡패들에게 찾아가 우리들의 위치를 알릴 거라고 했다. 문앞을 지키고 섰던 엄마는 삽을 쥔 채로 노인을 상대했다. 하필 외삼촌이 잠들었을 시간이었다. 노인은 별다른 무기를 들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엄마가 노인을 죽일 수도 있었다.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지도 못할 힘없는 노인.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내가 묻자마자 엄마는 말을 멈추었다.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대답을 하기 싫은 양 눈썹을 찌푸리고 관자놀이를 쓰다듬었다. 물 한모금까지 마시고 엄마가 말했다. 벙커 자리가 꽉 찼으니 예전에 창고로 쓰였던 조립식 농막을 내어줬다고 했다. 어쩔 수 없다. 혹시 모를 위험을 감수할 만큼 엄마는 잔인하지 못했다. 지켜야할 존재들도 많았다.

벙커는 이웃집 사람들까지 몰려들어있는 곳인데다 아이들도 있었다. 몇개월쯤 지나면 사정이 바뀔지 몰라도 아직까지 어른들에게 아이는 약자였다. 나나 자연 언니는 열여섯이고 열여덟이니 아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하여튼 우리는 아직 삽을 들고 보초를 설 정도로 취급받지는 않는다. 보호받아 마땅한 게 우리다.

“외삼촌이 우리 엄마보고 마음이 여리대. 바보같대. ”

“강한 분이신데 …”

“엄마가 그런 말 듣는 건 처음 들어봐.”

벙커는 사실상 벙커라고 부르기에 민망할 정도로 좁았다. 자연 언니와 나는 늘 음식이 쌓여있는 구석자리에 앉아서 속삭이듯 얘길 나눠야 했다. 붙어앉으면 따스했고 또 숨이 막혔다. 속삭이는 숨결이 내 볼이나 깍지 껴 모은 손 위로 퍼질 때면 조금 더 넓은 곳으로 가고 싶어졌었다. 여기저기 뛰어다녀보고 싶었다. 학교에서조차 그다지 뛰어본 적이 없는데도 그랬다. 언니와 얘기를 나누면 뛸 수 있었던 순간에 무심코 머물렀다.

“우린 모두 너희 어머니 덕분에 여기 있는 거야.”

언니는 대답하며 늘 그러듯이 눈썹을 찌푸리고 미소지었다. 청량한 기운이 감돌고 한편 이상할 정도로 당당해서 믿고 싶어지는 얼굴. 믿고 싶어서만은 아니라 진실이다. 언니 말처럼 우리 엄마는 강한 사람이고 억세다는 표현도 어울리는 사람이다. 철저하고 한편 이상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 집으로 이사왔을 때, 엄마는 주차장 겸용으로 만들어진 벙커형 차고입구를 콘크리트를 발라 막아버렸다. 차고로 향하는 길은 이제 마룻바닥에 감춰져 있는 계단뿐이었다. 거기다 음식을 보관해둔 게 엄마다. 엄마는 교통사고 사망률이 얼마인 줄 아느냐며 차를 사지도 않았고 늘상 전쟁을 두려워했었다. 가끔은 외계인을 믿는 종교에 빠지거나 했지만 돈을 잃고 다니지만은 않았다. 그야 나를 키워야했으니까. 겉보기엔 얼마나 평범해보였는지 마을 사람들은 그런 엄마를 열심히 사는 싱글맘으로만 알고 있었다. 나만 엄마를 알았고 나만이 엄마를 다소 멸시하며 걱정스럽게 생각했다.

일이 이렇게 되기 전까진.

노인은 지하실 바깥으로 음식을 구하러 올라간 우리들중 일부를 발견했던 게 틀림없다. 다른 집 사람들까지 수용한 이후로 벙커는 늘 북적거렸고 음식은 늘 필요했다. 아무리 먹을 게 남아있어도 외삼촌은 엄마를 닦달해서라도 음식을 얻어와야한다 주장했다. 그리 틀린생각은 아니었다. 벌써 몇달이 넘어가고 있으며 누구나가 기대하던 국가적 방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자연 언니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우린 언젠가 서로 잡아먹게 될지도 모른다.

조립식 농막이나마 노인이 만족하며 지내길 바랐다. 노인은 우리에게 요구하려는 게 많았고 남자들이 방문한 이후로는 조용해졌다. 외삼촌과 옆집 아저씨가 각자 무기가 될 만한 걸 들고 노인 하나를 향해 올라가던 순간을 기억한다. 나는 자연언니의 손을 잡고 기도했지만 노인을 살리려는 기도는 아니었다. 노인이 사라지길 빌었다.

그런 요즘이다.

2.

자연 언니는 우리집으로 도망쳐 들어왔다. 얼굴에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다리를 떨었다. 내가 집으로 올라와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벙커에 들어가 있었다. 바깥이 소란스럽고 불타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뛰어다니는 소리였다. 그게 아니면 괴물들이 뛰는 소리이거나. 나는 언니를 끌어당겨 벙커 안쪽으로 쑤셔넣듯 밀고 내 몸을 함께 그 안으로 구겨넣었다.

“…살려주세요.”

언니가 땀을 흘리면서 말했다. 무릎을 꿇고 엄마의 허리춤을 부여잡았다. 그러면 자기를 내보낼 수 없으리라고 믿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언니를 소독되지 않은 병원체 그 자체로 볼 때 엄마만이 언니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벙커 안은 내내 조용했다. 몇몇이 대체 무슨 일이냐고 묻거나 더이상 사람을 들여서는 안된다고 말했지만 대부분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공포에 질려 각자의 가족들을 끌어안았고 내겐 끌어안을 상대가 남아 있지 않았다.

“너희 가족들은?”

엄마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더니 언니가 고개를 숙였다. 언니는 울지는 않았다. 여태까지도 우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그저 쌍꺼풀이 진 짙은 눈을 한번 깜빡이고 고개를 숙인채 입술을 자꾸만 깨물었다. 그게 나름의 슬픔이었다. 엄마가 알아들었다는 표시로 언니를 일으켜 세웠다. 별다른 말없이 지하실 문을 확인하러 갔고 내가 언니를 자리에 앉혔다. 땀에 젖은 몸을 끌어안고 있으니 꼭 물에 빤 곰인형을 안고 있는 기분이었다. 언니가 내게 기대어 숨을 골랐다.

처음부터 아빠가 없는 나와 달리 모인 가족들 중에선 부모님을 잃은 아이들도 몇명 있었다. 그래도 언니처럼 홀로 살아남아 도망쳐 나온 경우는 처음이었다. 언니가 때때로 말해주던 살아남은 방법은 매번 바뀌었다. 가족들이 희생하여 자신을 살려주었다고 했다가 언젠가는 모두 출근한 뒤로 되돌아오지 않아 홀로 생존했었다고 했다. 자연 언니는 능숙하지도 않은 거짓말을 일상처럼 늘어놓았다. 추궁하면 끝내는 묻지 말라는 대답이 되돌아왔다. 말하고 싶지 않은 거다. 그나마 확실한 건 언니의 가족들이 죽었다는 사실 뿐이다.

세상이 이렇게 되기 전까지 우리는 그저 흔한 소꿉친구같은 사이였다. 언니는 외동에 늘 출장을 다니는 아버지와 잦은 야근으로 못 만나는 일이 잦은 어머니 사이에 끼어 살았다. 외로운 아이들 둘이 돌봐줄 사람도 없이 홀로 지내도록 놔두느니 함께 놀게 하는 게 좋다.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테다. 양 부모님의 합의가 있었던 걸로 추정된다. 현관문 열쇠가 번호키로 바뀌기 전부터 우리는 같이 지냈다. 친하다기보다 어쩔 수 없이 함께 있었다. 별 것도 아니고 대단치도 않은 관계. 단순하다. 각자의 목에 집열쇠를 걸고 하교를 한다. 주택지로 들어서면 팔을 흔들어 인사하고 우리집이나 언니집으로 간다.

“오래 살고 싶지도 않은데, 여기 있으면 시간이 멈춰버려. 늙는 일도 없이 살지 않을까 싶고.”

“그 때는 살려달라고 했잖아.”

“무서워서 그랬어. 아프게 죽기 싫어서.”

내게 다정을 약속한 건 사실 세상에 엄마밖에 없었는데. 언젠가부터 언니도 내게 다정했다. 함께 다니는 일은 이전에도 일상이었지만 벙커에 들어온 다음부터는 운명이 됐다. 이 이상으로 벙커에만 머물다간 미쳐버릴 거라며 음식을 구하러가는 어른들을 따라 나섰던 날, 동네를 돌아다니던 부랑자에게 끌려가던 날 위해 언니가 처음으로 칼을 들었을 때, 나는 그 때부터 자연 언니를 반쯤은 내 가족으로 생각했다. 날 구하느라 허리를 칼에 베인 언니는 항생제를 먹고도 며칠을 앓았다.

누군갈 사랑해본 적도 없이 언니를 믿었다.

3.

바깥의 괴물들은 먹지 않아도 죽지 않는다. 불을 마주하길 두려워하거나 빛을 두려워하는 존재였다면 참 좋았을 거다. 두려워해 마땅한 죽음마저도 그들에겐 없다. 우리는 먹기 위해 사는 존재나 다름없는데 그들은 살아있다가 사람을 먹는다. 물어뜯고 찢어내서 자신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만든다. 눈을 감고 잠이 들면 종종 그들이 꿈에 나와 벙커를 덮치곤 했다. 오늘도 꿈을 꾸었다.

“배고파.”

아침에 일어났더니 아이들중 하나가 일어나 고개를 들고 앉아 있었다. 아이는 눈꼽을 떼지도 않고 오뚜기 인형처럼 등을 둥글게 말고 하품을 한번 했다. 배고프다는 말은 우리 사이의 금기어였다. 내가 다가가 조용히 하라고 이르기 전에 언니가 아이 곁에 웅크리고 앉았다.

“혜지야, 뭐가 제일 먹고 싶어? 언니한테만 귓속말로 말해봐.”

그 애는 어느 편의점에서 팔던 젤리가 먹고 싶다고 말했다. 언니는 만약 발견한다면 혜지에게만 몰래 주겠다며 아이를 달랬다. 만에 하나라도 누가 먹을 것 얘기를 듣고 배가 고파졌지 않냐며 신경질을 내면 사태가 곤란해질 게 뻔했다. 입을 다문 아이를 다시 재우며 언니가 자장가를 불렀다. 외동으로 자랐으면서 자연 언니는 그런 일들에 익숙했다.

배고프단 말을 해선 안되는 줄 알면서도 하는 건 어떤 신호와도 같다. 자다깨서 나갈 채비를 하는 엄마에게 혜지가 배고프단 말을 했다고 하니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유일하게 아이들의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어리광을 부릴 나이도 지났지만 엄마라면 뭐든지 해줄 것 같았다. 엄마는 고집있게 식량을 나누고 들여온 사람들을 똑같이 챙겼다. 아무리 더 달라고 빌거나 애원해도 정해진 이상의 식량을 함부로 풀어놓지 않았다. 원래부터 이런 일에 익숙했던 사람처럼.

어른들을 따라 길을 나섰다. 사람이 줄어든 동네를 버려두고 괴물들은 점차 교외에서부터 도시로 몰려드는 추세였다. 우리들도 먹을 걸 찾아 그들이 향한 곳으로 가야만 했다. 몇번 그들을 마주쳐본 경험이 생기자 각자 나름의 방비를 했다. 물리면 전염되니 물린 사람을 죽이는 일에 망설임이 없을 것. 물릴 상황에 처하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챙겨둔 짐은 멀리로 던져둘 것. 가망없는 상황에 도움을 요청하지 말 것. 무엇보다 물리지 말 것.

팔에 교과서 뭉치를 덧대어 테이프로 감은 언니의 모습은 조금 우스꽝스러웠다. 어디서 구한 건지 포수가 쓰는 보호대를 덧대어 입은 외삼촌은 그보단 못했지만 웃기긴 비슷했다. 갑옷이 있다면 그걸 입었을까. 때로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하고 서로를 두려워했으나 여전히 괴물들을 가장 두려워했다. 움직임은 제법 빠르고 힘도 보통 사람보다 센 게 그들이다. 말조차 통하지 않으며 무언가를 빼앗기는 선에서 일이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건물을 뒤지며 약탈당한 뒤의 땅을 밟았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게 얼마나 남았는지 가늠했다. 건물들은 창문이 깨져 있거나 불피운 흔적따위가 남아있을 때가 많았다. 마트는 대부분의 음식을 털어간 사람들의 혼잡한 모습으로 가득했다. 책들이 쌓인 서점만이 잘못된 시대를 타고난 얼굴을 하고 거기에 있었다. 언젠가는 떠나거나 흩어지거나 서로에게서 빼앗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젤리 있다.”

“정말?”

“응, 가판대에 깔려서 못 가져갔나봐.”

어른들이 보기 전에 챙기자며 언니가 몸을 숙였다. 키가 커서 머리가 걸리는 바람에 완전히 아래를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내가 대신 꺼내겠다고 언니를 밀어냈다. 무너진 가판대 아래로 숙이고 있는 동안 언니가 망을 봤다. 어. 짧게 놀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무언갈 실수하거나 잘못알았다고 생각하고 싶을 때 사람이 내는 소리다. 머리를 부딪힐까 조심하면서 젤리봉지를 잡고 뒤로 기어나왔다. 언니는 밖으로 뛰어나갔다.

“언니, 어디가!”

내가 부르는데도 뒤돌아보지도 않고 달렸다. 언니의 빨간 점퍼가 흔들리며 작은 그림자가 되어갈 무렵에 내 귀에도 작은 소리들이 들렸다. 언니가 달려간 쪽에서부터. 아이들 목소리.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자주 들리던 소리였다. 아파트에 살 무렵엔 단지내 놀이터에서 자주 들렸다. 저런 소리가 지금도 들릴 수 있던가? 아이들이 저만큼 살아있다하더라도 소리를 내며 뛰어놀 일이 있을까?

다리가 긴 언니는 나보다 한참은 빠르다. 언니를 따라잡으려고 뛰던 새에 외삼촌이 튀어나와 언니의 팔을 잡아챘다. 언니가 기우뚱거렸다. 그 동안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반복되었다. 삼촌이 언니를 잡아끌었고 내가 겨우 둘에게로 다가갔다. 젤리봉지는 손 안에서 꾹 쥔 바람에 뭉개져 있었다.

언니는 이를 악물고 잇새로 소리를 냈다. 숨소리가 가빴다. 외삼촌은 누가 녹음해서 틀어둔 소리같다며 진저리를 쳤다. 사람을 유인하는지 괴물을 유인하는 용도인지 모를 아이들 목소리가 건물 틈새로 맑게 울렸다. 언니가 중얼거렸다.

“혜지, 혜지야.”

저 멀리서 어린 괴물이 멀어버린 눈으로 우릴 보았다.

4.

불쾌한 일들을 잊는 법이 있다. 숨을 참고 눈을 감은 채 웅크려 있는 것이다. 언니가 알려주었다. 시계를 따라 밤이 되면 불을 끄는 벙커 안에서 나는 때로 배운대로 눈을 감고 언니의 손을 잡았다. 눈을 감으면 어둠을 표류하는 감각에 바닥에 닿은 느낌도 흐려진다. 숨을 참는 우리는 웅크려 잠수하듯 어둠속으로 떠내려가는 순간을 만끽한다. 올라오고 싶은 마음이 사라질 때 기억을 두고 수면위로 떠올라 숨을 터뜨린다. 내게 미래라는 게 더이상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을 때면 늘 그렇게 했다. 언니가 아파서 도저히 일어나지 못할 때도 잊기 위해 눈 앞의 바다를 헤엄쳤다. 산다는 건 근본이 잊는 일이고 잊혀지는 일이었다.

혜지를 떠올릴 때도 앞으로 그렇게 될 테다.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작은 몸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다가 겨우 외삼촌의 손을 잡고 도망쳤다. 혜지를 부르며 울부짖는 언니의 입을 내가 틀어막았다. 언니가 나를 원망스럽게 바라봤다. 내가 언니를 아프게 하는 원인이라도 된다는 듯이. 오히려 언니가 나를 아프게 하는 원인이었다. 혜지가 어떻게 되었건 언니만 아니었더라면 소란스레 날뛸 일이 아니라고 내가 나를 속아넘길 수도 있었다. 내게 언니가 소중하지만 않았더라면 괴로울 일도 없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위해 뛰면서도 그들을 따돌려야했다. 어른들이 소란스러웠다. 또 불길이 치솟고 세상에 부숴지고 망가지는 소리가 만연했다. 우릴 쫓아오던 혜지를 일부러 생각하지 않았다. 언니가 계속 곁에서 울지도 않고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벙커로 돌아갔을 땐 아무도 없었다. 아이들이 모두 사라졌다. 음식도 사라진지 오래였다. 유일한 어른이었던 엄마도 벙커에 남아 있지 않았다. 주변을 겨우 수색해서 엄마의 머리끈을 찾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누군가가 여길 발견하고 습격했으리라고 짐작했다. 혜지의 상태를 보아서는 그들도 무사하지는 못할 거라며,

“너는 내가 책임진다. 다현아.”

외삼촌이 내게 말했다. 나는 자연언니의 손을 잡고 어둠속에 잠기기 위해 노력했다. 사람들은 그날 벙커로 되돌아가지 않았다. 누구에게건 이미 발각된 뒤였고 혹시나 싸움이 벌어진다면 지하에 머무는 건 불리했다. 이미 많은 이들이 머물렀다 훔치고 파괴한지 오래인 우리집으로 올라가 각자 흩어져 잠들었다. 엄마는 그러는 동안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아이를 잃은 부모들이 밤을 누비고 다녔다. 자연 언니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외삼촌에게 이끌리면서도 언니는 뒤돌아 혜지의 모습을 끝까지 보려고 했었다. 내가 보지 못한 그 애의 모습과 그 애의 죽음따위를 언니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소름이 돋았다. 어른들이 그런 모습으로라도 아이를 만나고 싶어 애쓰는 밤이었다. 우리는 죽여주기로 서로에게 약속을 해놓고도 당연스레 어기고 만다. 가족들이 어떤 모습으로라도 살아있길 바라니까.

밤이면 괴물들이 눈보다도 귀가 예민해지듯 사람도 다름 없어진다. 혜지네 부모님들은 그 날 떠난 뒤로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으려는 사실을 두고 언니가 그들에게 사실을 말해주었다. 그 어린 몸을 두고 살아가는 일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우리 모두 잘 몰랐다. 아이를 잃은 건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다.

엄마의 머리끈을 쥐고서 잠에 들었다. 나는 누군갈 찾으러 밖으로 나서지 않았다. 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였다. 엄마를 잊으려고 연습해봤지만 좀처럼 되지 않았다. 바다를 헤엄치려고 눈을 감으면 엄마가 손을 뻗어 나를 붙잡고 끌어안았다. 숨을 참으면 손바닥에 언니의 체온이 느껴져 온몸이 따끔거렸다.

다음날 아침, 누구인지도 잊어버릴 뻔한 얼굴 하나가 내게 알려주었다. 엄마의 시체를 발견했다고 했다.

5.

시계 초침 가는 소리가 들린다. 배터리가 닳으면 흔들어서 충전한다. 몇번인가 시간이 틀어졌을 거라고 예상한다. 시계에 귀를 대고 웅크리고 있다. 언니가 나를 흔들어 깨운다. 일어나고 싶지 않아 뿌리치면 누군가가 손을 잡아챈다. 외삼촌이다.

삼촌은 노인이 머물렀던 농막으로 들어가 움켜쥐었던 손을 내팽겨치듯 놓았다. 내게 근처에 앉으라고 권하고는 담뱃불을 켰다. 좁은 공간에서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소리가 울렸다. 갑갑하다. 어둔 구석에 연기와 함께 자그마한 불빛이 반짝였다. 식료품을 찾는 솜씨가 뛰어난 삼촌은 남들이 갖고 싶어하는 담배도 곧잘 찾아 자기 물건으로 가져왔었다.

“다현아. 요즘 괜찮냐.”

직접 찾아가 엄마의 모습을 확인한 나로서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배를 움켜쥐고 우리들에게 발견되길 바라며 버티다 끝내 죽고 말았을 엄마. 엄마를 떠올리면 차라리 괴물들이 발견해주는 편이 나았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 살아있는 듯이 움직이긴 했을 거다. 괴물이 되었더라면 내가 엄마를 보러 가거나 가둬둘 수도 있었다.

“왜 그런 걸 물어보세요?”

열린 문틈으로 바람이 불어들어왔다. 날씨는 나날이 서늘해져 가는데, 하늘은 그리도 아름다운데. 우리 엄마는 칼에 찔려 죽었다. 손톱 끝을 물어뜯었더니 피가 조금 났다. 삼촌이 신경질적으로 피우다만 담배를 바닥에 던져 밟았다.

“왜 묻긴, 자식이. 됐다. 정신 똑바로 차렸을 때 얘기해야지 지금 말해봤자 나 혼자 지껄이는 꼴이고.”

돌아서는 삼촌을 바라보다 발뒤꿈치로 땅을 긁었다. 삼촌의 옷자락을 양손으로 잡았다.

“삼촌 저한테 하실 말씀 있으셨어요? 뭔데요?”

엄마 얘기예요? 나는 묻고 싶은 걸 억지로 숨기면서 내 속을 스스로 뒤집어놓지 않으려고 애썼다. 삼촌이 만약 뭐라도 내게 새로운 얘기를 해줄 수 있다면 기꺼이 알아낼 작정이었다.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릴 줄만 알았더니 삼촌의 어깨너머에서 입술이 비죽거렸다. 불만이어선지 아니면 고민이어선지 알 수 없었다.

“너희 엄마 … 그냥 이유없이 죽은 것 같진 않아.”

말소리의 틈마다 간격에 애가 타서 위장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내 머릿속은 뒤죽박죽인지 오래라 기억이나 추억은 늘상 곁에 있던 체온에 머물러 있지 않은가. 옆에 없는 사람을 생각하려면 몸이 닳는다.

“그럼요?”

“누가 우리를 밀고했을 거다. 아마 너희 엄마한테 불만이 있었거나 대가를 받았겠지. 지금도 무리를 떠나려고 애쓰는 사람, 원래부터 벙커에 미련이 없었던 사람이 의심된다. 나는.”

“그냥 알아낸 걸 수도 있잖아요, 그 할머니처럼.”

옷자락에 반쯤 매달린 꼴이라 허둥거리며 대답하니 삼촌이 내 손을 잡고 웅크려 앉았다. 정신차리고 똑바로 생각하라는 눈빛. 삼촌 특유의 허기지고 처절한 눈우물이 내 눈으로 검게 파고들었다.

“몇달을 안들키고 살았는데 시간 남아돌고 굶어죽을 작정이던 인간 아니면 여길 찾아낼 수나 있을 것 같아? 다 쓸어갈 정도면 그쪽도 수가 만만찮았을 거라고.”

“대체 왜 그런 짓을 하는데요?”

“너나 내가 모를 정도로 사람은 간악해. 쉽게 먹을 걸 주지 않으니 너희 엄마가 미움받기도 했을 거 아니냐. 누나가 어지간히 고집이 세야지.”

“엄마가 살려준 사람들이잖아요.”

“그래서 사람은 거두는 게 아니란 거지. 가족빼고는.”

삼촌의 손은 차가웠다. 바람이 식혀두어서 내 손의 체온을 빼앗아가고 있었다. 내가 손을 빼려고 하니 삼촌이 불쑥 말했다.

“걔, 너무 믿지마라. 어떻게 살아왔을지 누가 알겠냐.”

언니 얘기였다. 내가 무심코 허탈한 웃음을 흘리자 삼촌이 일어났다. 바닥에 떨어뜨렸던 담배를 아쉽게 바라보곤 일어서 문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저 삼촌도 안 믿어요.”

내 말을 들은 체도 않고 삼촌이 빛너머로 사라졌다.

6.

떠나야 했다. 우리들의 존재를 알면 제 무리로 삼으려 들 인간들이 있다. 무리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결국엔 존엄이나 생명을 빼앗기게 된다. 괴물들의 틈으로 섞여드는 일이 차라리 낫다고 판단한 사유는 그토록 단순하다. 벙커를 지키겠다는 어느 부부를 남겨둔 채로 새로운 은신처를 찾아 길을 떠났다. 2주 가량을 떠나본 다음 벙커에 머무르는 일이 낫다 싶으면 되돌아가기로 했다.

내게 숨소리조차 남아있지 않으면 좋았을텐데. 생각한다. 괴물들은 냄새, 열기, 빛보다도 소리를 뒤쫓아 달려든다.

“제일 마지막으로 사라지는 감각이래.”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이제 남은 사람은 외삼촌과 나, 이웃집에 살던 부부와 새파란 집에 살던 어느 여성, 자연 언니 뿐이었다. 모두가 가족을 잃었고 잃었기에 함부로 이야길 꺼내지 않았다. 죽은 이들의 삶이 운명이었노라고 받아들여야할까. 죄없이 사라진 존재를 떠올리는 방식은 일반적인 죽음을 되새길 때와는 다르다.

서로에게서 냄새가 났다. 씻지 못해 쌓인 기름때의 냄새, 땀냄새, 때로는 피냄새. 여자들은 그나마 수입되었던 생리컵을 써가며 생활했고 그렇지 않던 사람도 이제는 모두 비슷하게 사용했다. 모든 게 취향에 상관없이 일관되게 바뀌었다. 피냄새는 괴물을 향해 휘두른 야구배트에 묻어있기도 했고 숨죽여 지나치던 곳에서 밟은 피웅덩이에서 묻어있기도 했다.

그것들에선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냄새가 났다. 여름이 지나기전엔 우리가 먼저 그들을 피할 수 있었다. 끔찍하고 자극적이었다. 썩어가는 몸에서부터 나는 향만이 유독 살아있는 사람을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닮고도 다른 냄새가 그리웠다. 벙커를 떠나 걸으며 마주치는 괴물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엄마를 떠올렸다.

소리를 내지 않는 건 습관이었다. 입을 앙다물고 병원 안을 헤매고 다닌 적도 있다. 어른들이 감기에 걸린 언니를 내버려두라고 했기 때문이다. 근처에 있을 약국을 찾아들어갔다가 그들의 냄새를 맡았다. 코끝이 시큰해지며 속이 울렁거렸다.

역광을 받고 선 괴물 하나가 얼굴반쪽의 뼈를 드러낸 모습으로 있었다. 고개를 돌려 눈이 마주치자 그게 가까이 다가오는게 느껴졌다. 우리는 서로를 서로에게서 구분하려고 하고 있었다. 너는 어느쪽이냐. 반투명한 홍채가 물었다.

그게 입을 벌렸고 내가 즉시 물러서며 약통을 밟았다. 울부짖는 소음과 동시에 관절을 꺾어 내 어깨를 잡아채는 썩은 손이 느껴졌다. 도끼로 그 머리를 내려찍으니 둔탁한 소리가 났다.

“부숴질 때까지 깨버려.”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라 도끼를 쥔 손을 높이 들었다. 다시 빼어낼 때는 팔꿈치나 발로 누르고 당겼다. 그래야 한다는 걸 머리론 모르면서도 몸으로 알았다.

머리가 깨진 괴물을 내버려두고 종합감기약을 구해갔지만 아무도 나를 걱정하지 않았다. 언니마저도 차가운 얼굴로 내게 묻은 피를 훔쳐주기만 했다. 식량을 빼앗기고 이성을 잃어가는 세상에서 괴물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하고 일상이 되어갔다.

잠든 우리를 그들이 둘러싸고 있지만 않았다면, 심지어 공포도 아니었을 테다.

7.

언니는 옛날 얘길 좀처럼 하지 않았다. 우린 괴물들이 나타나 언니가 벙커로 뛰어들어온 다음의 이야기들만을 공유했다. 같이 있던 세월이 그때가 전부인 것처럼. 함께 하교하는 길에 피어있던 장미 얘길 한 적이 있다. 언니는 못 알아들은 척을 하며 무시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섭섭하기보다도 신경질적인 감상에 휘둘려 언니를 보았다. 언니가 하는 말들을 생각했고 내게 해준 것과 해주지 않는 것을 떠올렸다.

'진짜 가족은 아니라 이거지.'

그렇다고 내가 가족을 믿는단 소리는 아니다.

“살려주세요.”

부랑자를 마주치는 일도 잦아졌다. 변해가는 세상의 시류를 따라 그들의 모습이나 필사적인 태도도 점차 바뀌었다. 처음에는 살려달라고 말만 하면 그만이었지만 점차 무고함을 증명하는 데에 시간이 쏠렸다. 무기도 없고 물린 곳도 없고 숨겨둔 일행도 없어야 한다. 무엇보다 쫓기고 있다면 모를까 식량을 나누는 일은 불가하다.

“일 없습니다.”

흘깃 바라본 삼촌이 먼저 대답을 했다. 언니는 내 옷깃을 잡아당겼다. 그 의도를 읽었지만 나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자연스레 대장 노릇을 하고 있는 삼촌이 내 말이라고 들어줄 성 싶지는 않았다. 애초에 그들을 도울 이유는 나한테도 없다. 언니에겐 있을까?

부랑자를 무시하고 들어온 날이면 언니는 눈을 크게 뜨고 밤을 지새웠다. 다른 사람들과 멀리 떨어진 구석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면 그제야 입을 열고 대화를 하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쉬어서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럴 때면 정말 울어야하는지 고민이 됐다. 언니를 이해할 수 없어서 이해하기 위해 내 안의 다른 슬픔이라도 꺼내두어야하나 싶었다.

“언니, 왜그래.”

“나는 네가 있어서 살아남은 거지?”

엄마가 결정한 건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학교를 다닐 때였다면 손쉽게 그런 대답을 내놓았을 거다. 언니가 바라는 게 다른 대답이라는 걸 알아서 입을 다물었다. 울 필요도 없었다. 밤의 공기를 타고 울음소리나 속삭임을 들은 괴물들이 찾아올지도 몰랐다.

“언니는 언니가 살아남은 게 싫어?”

“너랑, 다른 사람들이랑 있으면 자꾸 잊어버리잖아. 다른 사람들이 죽었다는 거.”

“그게 싫구나.”

“어차피 우리는 평생 외롭게 살다 죽을텐데 …”

삼촌의 말은 틀렸다. 난 언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고 있다. 어디서 무슨 감정을 겪었고 어떻게 우리집으로 달려올 생각을 했는지 모를 뿐. 언니가 단순하고 무감각한 삶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만은 안다. 평범하고 세상사에 무지하고 나와 같이 감정적일 수도 있는 언니. 자연 언니가 그런 사람이라서 몸을 던져 나를 살려주었다는 사실을 안다.

나는 내가 여기 있지 않느냐고 감히 말하지 못했다. 언니의 손을 잡고 등을 도닥이며 끌어안아 주는 게 전부였다.

“여기서 벗어나면 행복할 거라고 말해줄래.”

“어디로 가?”

“그냥 나랑 너랑, 있잖아.”

헛된 상상에 휘둘릴 만큼 나는 어리지 않았다. 열여섯이면 사람을 겪고 판단하는 일에 어느 정도는 비틀린 감상이나 기준이나마 갖게 될 나이다. 난 내 부족함보다도 나의 경험을 믿었다. 사람은 사람을 믿는 법을 모르는 만큼 사랑하는 법도 알지 못한다. 남들의 마음을 짐작하느니 보이는 것들을 믿고야 말겠다.

“나중에 그러자, 언니. 나중에 그렇게 된다고 치자.”

손을 천천히 등위에서 오가며 생각했다. 언니는 아무것도 모른다.

8.

삼촌이 내 발을 밟아서 잠에서 깨어났다. 비틀거리고 있었다. 삼촌은 이를 악물고 있다가 내게 기어코 소리를 질렀다.

“소리, 소리 꺼!”

어디서 웅웅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른들도 차례로 몸을 일으켰다. 일으켜졌다. 올라타는 무게와 그르렁거리는 음성에 놀라기도 전에 누군가가 물렸다. 물리고나면 또 누군가 변하지 전까지 시간이 간다. 괴물의 수가 늘기 전에 팔을 뿌리치고 침낭아래 넣어둔 칼을 꺼냈다. 높게 울리고 있는 소리의 출처를 찾아 바닥을 더듬었다. 언니가 무언가 들고 있는 게 달빛 속에 보였다.

녹음기였다.

나도 모르게 언니에게 달려들었다. 녹음기를 빼앗으려 언니의 얽힌 손을 억지로 떼어내었다. 몸부림이 거세 내가 알던 사람에게서 뺏어드는 기분이 아니었다. 부숴버려야했다. 힘을 줬더니 언니가 옆에서 부수지 말라고 속삭였다. 언니의 흰손이 뻗어져 일시정지 버튼을 눌렀다. 고요했다.

모두가 숨을 멈췄다. 괴물들이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 그들의 다리 사이로 기고 뒷걸음질을 쳤다. 소리가 작아질 때까지, 더이상 그들이 우리를 자신들과 구분할 수 없을 때까지.

폐건물에서 나와 어둠속을 걸어 이동하기도 전에 삼촌이 화를 냈다. 언니의 낡은 셔츠깃을 잡고 벽으로 몰아붙였다.

“너 이 새끼. 알면서 틀었지? 내가 안 일어났으면 어쩔 뻔 했어.”

건물 밖으로 나오는 동안 살아남은 사람은 더욱 줄어들어서, 이젠 푸른집에 살던 성지라는 여자와 삼촌, 언니와 내가 남았다. 성지는 오래전부터 이미 넋을 놓은 듯이 보였는데 용케도 아직까지 살아있었다. 그 이름모를 부부만이 소음속에 물려 버렸다. 그들이 미끼가 되어 우리가 나올 수 있었던 듯도 싶다.

“다 들었다. 너희 어머니 죽인 게 너라며.”

삼촌이 말하는 목소리는 전에 없이 거칠었다. 나는 괴물들이 또 찾아올까 두려웠다.

“아니에요.”

언니의 목소리는 어둠속으로 기어들어가 말이 끝날 무렵이면 사라지고 없었다. 삼촌이 언니를 뒤흔들어 벽에 언니의 등이 부딪혔다.

“그럼 저건 왜 틀었는데. 네 엄마도 이렇게 죽였냐?”

“제가 안 죽였어요. 녹음기는 주운 걸 틀었다가 이렇게 된 거예요. 저 안 그랬어요.”

나를 보고 있었다. 언니가 나를 보고 있었다. 성지가 삼촌의 팔을 잡았다.

“조용히 하고 나중에 해요. 애 몰아붙여봤자 뭐가 나온다고.”

“애라고 봐줘봤자 애먼 사람 죽기밖에 더해?”

“지금 시끄러워지면 곤란한 건 우리예요.”

아직까지 우리는 어린애였다. 열여덟. 언니는 아무것도 모르고 나도 아무것도 모른다. 엄마가 왜 죽어야만 했는지. 언니네 엄마는 어쩌다 죽었는지. 정말 언니가 언니네 엄마를 죽였는지. 언니의 두 눈에 부탁하는 기색이 서려있었다. 내게 뭐라도 바라는 눈이었다. 내가 삼촌의 어깨에 손을 얹었더니 삼촌이 뿌리치며 나를 보았다.

“내가 말했지, 얘 믿지 말라고.”

이번엔 삼촌이 맞았다. 틀렸어도 맞다고 해야 넘어갈 수 있다. 내가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이자 언니의 시선이 내게서 거둬졌다. 삼촌이 식식거리며 텅빈 거리를 걸어갔다. 싸우다 부딪혔는지 손등과 얼굴이 상처로 너덜너덜했다. 내가 언니를 보았다. 언니는 구겨진 셔츠자락을 쥐고 어디도 아닌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한숨이 흩어져 얕게 김이 서리는 게 보였다. 언니가 우는 걸 처음 봤다.

9.

우리는 각자의 상처와 흉터를 안고 살아간다. 사람을 죽인 일도 상처에서 비롯되었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가 우리에게 어떤 기반이 될 수 있는 걸까. 나는 더이상 받아들일 수 없는 벽에 부딪혀 언니를 마주했다.

피아노 소리였다. 녹음기에는 소리굽쇠의 조율음과 어느 피아노 솔로가 녹음되어 있었다. 혜지가 더이상 혜지가 아니게 되었던 날 들었던 소리와는 달랐다. 사람이 낸 소리였지만 사람이 내기만 한 소리는 아니었다. 연주자의 생사에 관계없이 살아있는 소리란 죽어버린 웃음소리와는 결이 다르다. 언니는 그 녹음을 사랑했다.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마음으로.

자신의 연주를 그 자리에서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열살쯤에 언니는 피아노를 배웠었다.

“연주하는 거 보여줄까?”

이제 막 학교에 입학한 나보다 언니는 거의 15cm는 컸다. 연습용 업라이트 피아노에 앉아서 언니가 웃었다. 자신만만하고 밝은 얼굴이 피아노 옆에 서 있었다. 언니는 뚜껑을 열어젖히고 자기 키에 맞게 조절된 의자에 앉았다. 멍하니 보는 나를 옆의 식탁의자에 앉히고 하농을 연주해주었다.

긴팔 원피스가 하늘하늘 흔들려 언니의 손목너머까지 미끄러졌다. 새파란 실핏줄 위로 멍이 든 모양. 한점 하늘같지도 않고 파인 우물같이 보였던 작은 지도를 지금도 기억한다. 그게 언니의 옷 아래에 새겨져 있었다.

“언니, 언니.”

부랑자를 무시하고 온 날 만큼이나 언니는 조용했다. 뒤돌아 누워 세상에서 멀리 떨어지려고 했다. 나는 비겁했다. 언니가 나한테 평소처럼 굴어주길 바랐다. 내가 잘못하지 않았고 틀리지도 않았다고 해주길 원했다. 언니의 몸을 흔드는 손짓마다 원인모를 슬픔이 쓸려나갔으면 했다.

“너는 아무것도 몰라.”

“다들 그럴 걸.”

“알려고도 안해. 내가 사람을 죽였다는데.”

“미안해.”

“미안하다고 하지마.”

내가 안 죽였어. 언니의 등이 말했다. 나는 알고 싶지 않았다. 알기 싫은 게 너무 많았는데 모두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 헤지가 어떻게 되었는지. 혹은 우리엄마가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언니가 자기 엄마를 죽였다면 그 이유는 어째서인지. 모두 알고 싶은 내용이 아니었다. 내가 알고 싶은 건 따로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루하루를 걱정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지. 그저 살다가 죽는 일이 어렵다면 더이상 뭘 어떻게해야하는지. 내가 즐거워했던 시절은 언제였는지, 그런게 있었는지. 그런게 모두에게도 있었다면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

“미안해. 언니가 나랑 손잡고 있어줬으면 좋겠어.”

“그런 거 말고, 말해봐.”

몸은 겨우 일으켜지지만 언니는 여전히 쉰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등너머로 들리는 음성에 분노가 서려있다는 걸 안다.

“너도 엄마한테 화가 났던 적이 있어?”

“응.”

“그럼 날 이해해? 왜 모르는 척 하고만 있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말소리가 반복되다 사그라들었다. 바람 한점에 흔들리는 촛불같았다. 언니의 멍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 집에서 종종 들리던 싸움소리가 두사람 몫이었다가 때로 한 사람 몫이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우리집에서 멀리 떨어진 골목 맨 마지막집이어서 소리는 몰라도 소문은 알았다.

“언니가 안했다고 해주면 안돼?”

내가 묻자 언니가 울음기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너한텐 안 할거야.”

이제 나는 언니를 의심하는 수밖에 없다.

10.

겨우 네명뿐이다. 되돌아갈 길도 멀었지만 나아갈 길은 더욱 만만치 않았다. 적어도 안전한 벙커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새로운 안식처 사이에서 네 사람 모두 혼란을 겪었다. 삼촌은 언니를 더이상 벙커에 함께 둘 수도 없고 이대로 떠나도록 내버려 둘 수도 없다고 했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정신없이 앞서 걸어가는 삼촌의 뒤를 쫓았다. 나머지 두 사람이 뒤처져 멀어졌다. 성지가 뒤에서 어디로 가냐고 작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언니는 따라잡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기척도 냄새도 없었다.

“하필 쟤가 지 엄마 죽였다고 말했던 부부가 둘 다 죽었어. 가족들은 죽었다는데 얼굴은 맑아가지고. 넌 저게 순진해보이냐?”

나는 말문이 막혔다. 비밀이라곤 남아있을 수 없는 비좁은 벙커속에서부터 바깥의 이 숨막히는 소수의 뭉치나 다름없는 집단이 나를 학교로 되돌려보내는 것 같았다. 삼촌이 말했기 때문이 아니라 나는 정말로 언니를 의심하고 있었다. 녹음기 사건뿐만이 아니라 벙커를 밀고한 게 언니일 거란 삼촌의 의심이 내게도 기어올라왔다. 누군가가 지갑의 돈을 훔쳐갔다며 아이들의 가방을 뒤지던 선생님. 눈을 감고 손을 들던 아이들의 모습. 나의 첫 집단이 아직도 마음속에 박혀있는 것이다.

“사람이 슬퍼하는 방식도 천차만별인데 … 아직도 그 얘기중이에요?”

성지가 말했다. 기운없고 흐릿한 형체로 남은 성지는 사람이라기보다 보드라운 그림으로 느껴질 때가 더 많았다. 함께 살던 할머니를 잃고 함께 왔던 동생도 열병을 앓다 죽었다. 성지가 하는 말들은 대부분이 받아들이거나 포기하는 일에만 치중되어 있었다. 삼촌은 그 말을 자연스럽게 맞받아쳤다. 너는 적어도 덤덤한 수준에서 그치지 않았느냐고.

“아저씨 말 진짜 차갑게 하시네.”

우리는 이미 결론을 내린 채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심지어 나조차도 언니의 전과를 한편으로 믿는다. 삼촌이 내딛다 이내 결정하라는 듯 내게 뒤돌아 봤다.

“저걸 그냥 둬야겠냐?”

어쩔 수 없이 고갤 내젓다 뒤를 돌아보았더니 아무도 없었다. 그럴리가 없다. 성지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확인하더니 앞으로 몇걸음 내딛어 뛰었다. 나도 따라서 잰걸음으로 걷다 이내 달리기 시작했다. 언니가 없었다. 성지가 나를 돌아보고 물었다.

“걔 이름이 뭐야.”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언니를 부르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제자리서 발을 동동 굴렀다. 내 얼굴을 감싸쥐고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이가 딱딱 부딪혔다. 정말 눈물이 날 듯했다. 크게 불러보지도 못할 이름을 입안에서 몇번이나 굴리다가 달리던 걸음도 멈춰서고 울어버렸다. 언니가 없었다.

11.

엄마가 꿈에 나왔다. 얼굴이 언니 얼굴이랑 똑같아서 이상했다. 매일이 생각과 꿈 사이에 끼어 있다. 내가 잃은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날 뒤쫓는다.

벙커는 한산하다. 아무도 없는 듯이 고요하다. 늘 똑같다.

식량을 모으러 나선다. 식사와 잠은 정해진 시간에 한다. 돌아오는 길엔 일부러 멀리 돌아온다. 사람을 만나면 입막음을 한다. 괴물을 만나면 도망친다. 엄마를 잠깐 떠올린다. 삼촌과는 얘기하지 않는다. 언니 생각을 한다. 다정과 희생을 생각한다. 내가 하지 않았던 일과 내가 했던 일을 생각한다. 내게 주어진 걸 되새긴다. 숨을 참는다. 웅크린다. 눈을 감는다. 기억하지 않는다.

12.

성지가 나를 흔들었다. 참았던 숨을 틔우고 어깨를 들썩였다. 사람이 많았다. 벙커문이 열려있었다. 바깥에서부터 흘러들어온 빛이 벙커 바닥까지 움텄다. 들썩이는 몸짓이 몇 있었다. 숨이 막혔다. 성지를 붙들고 흔들었다. 성지가 나를 끌어안았다. 도저히 움직일 수 없었다. 바닥까지 사람들을 끌어내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의 원인은 이제는 없는지 사방이 고요했다. 성지가 역광속에 보이는 입술로 내게 말했다.

따라오지마.

내가 고개를 내저었다. 성지를 잡았다. 가지말라고 말했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내가 하는 말들을 알아들었지만 성지가 나를 놓았다. 손에 쥐고 있던 걸 내게 쥐어주었다. 그을려 망가진 프라이팬을 들고 사람들을 젖혀가며 성지가 나아갔다. 입구벽을 세게 두들겼다.

깡. 깡. 깡.

그들이 성지를 향해 몰려들었다. 입구 밖으로 성지가 달렸다. 내가 소리를 질러서 그들이 내게도 몰려들었다. 비명은 멈추질 않았다. 성지가 이쪽으로 다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한손에 라이터를 쥐고 내가 입구를 향해 사람들을 밟고 기어올라갔다. 아아악. 내가 지르는 소리가 그들을 더 가까이로 유인했다. 죽고 싶었다. 손에 쥔 라이터와 기름든 병을 쥐고 있다가 아래로 던졌다. 장작으로 삼으려던 책더미에 불이 붙었다. 사람들이 나를 물어뜯도록 그 속으로 뛰어내리려고 했다.

불타는 더미속을 밟고 있는 동안에 성지가 더 가까이로 다가왔다.

“따라오지말라고 했잖아. 구해주려고 했더니.”

날 발로 차며 벙커 안으로 사람들을 밀어넣었다. 성지가 한숨을 내쉬는 게 보였다. 화염병을 하나 더 던져넣어 이제 벙커안은 불구덩이처럼 시뻘갰다. 벽지를 타고 불길이 치솟았다. 기름이 부어졌다. 쏟아지는 몸뚱이와 흩어지는 시야속에 그들도 억눌린 나머지 나를 구분하지 못했다. 아직 물린 자국도 없고 붙들리지도 않았다. 나는 소리지르길 멈췄다. 성지는 죽을 생각이 없다.

“너 살기 싫은 것까지 구제해줄 생각 없어.”

성지가 다시 한번 나를 눌렀다. 그러곤 뒤돌아 달려갔다. 우리를 버린 존재들을 생각하는 얼굴로 나를 버렸다. 입구 끄트머리에 매달려 나는 개미지옥 속으로 빠져들어가듯 미끄러져 내려갔다. 사람과 불길의 틈에서 살아있는 증명으로 땀이 났다.

아직은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한숨이 흩어졌다. 모두 도망가거나 변해버린 다음이었다. 성지가 의도한 것도 아니고 살아있던 누군가의 짓일 게 틀림없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뻗은 손끝이 먹혀들어 타는 냄새에 파묻혔다. 고기가 익는 냄새. 나는 사람의 몸에 부대껴 벙커 구석으로 밀려들어갔다.

“다현아.”

누가 나를 불렀다.

13.

끌어올리는 손을 밑에서 물어뜯으려는 이빨과 사라지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잡았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다. 그들이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누군가 나를 끌어안았다. 나아가려다 입구로 올라가기도 전에 끌려내려갔다. 우리들의 발목이 긁혔다. 그는 울고 있었다. 미안하다고 했다.

너희 삼촌이 몰래 음식을 빼돌리고 있었어.

목소리는 말했다. 나를 키큰 몸속에 끌어들여 사방에서 가로막았다. 누군가가 그를 깨물려고 했고 그는 막지 않았다. 우리는 끌어안은 채로 불길을 맞았다. 뜨겁고 두려웠다. 사실은 죽고 싶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살아남아서 덜 아프고 싶었다. 아프고 싶지 않아서 살았고 아프리라는 걸 알면서도 살았다. 우리 함께 아프더라도 덜 아프기 위해 살 수 있기를 바랐다.

나도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서 모른 척 했어.

입구로 트인 틈으로 고개가 내밀어졌다. 나는 울다가 그를 끌어당기다가 했다. 끌어안은 자세탓에 나만 홀로 살아남을까봐 겁이 났다. 녹아내리는 소리보다 타들어가는 소리가 났다. 사람은 사람으로 태어나 괴물이 되고 괴물이 되어서도 결국 고깃덩어리로 죽고 만다. 사라지고 만다.

조금만 더 살아. 네가 날 살려줬어. 네가 날 살려줬으니까 살아.

내 목소리인지 그 사람 목소리인지 알 수 없게 비명소리가 크게 울렸다. 아무도 걱정하지 않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이것조차 나의 하루다. 매일이다. 기억이다.

14.

아저씨, 뭐하세요?

너 왜 여기 있어.

왜 아저씨가 대신 옮기고 계세요? 그 분은 누구예요? 아까 아주머니가 부르셨어요. 지금 다들 식사할 시간이라고.

저리 가 있어. 지금 자연이 너 혼자냐?

아뇨, 다현이랑 같이 나왔어요. 제가 먼저 들어왔고요.

입다물고 있어.

네?

어디가서 말할 생각 말고 입다물고 있으라고. 누나도 다 알고 있으니까.

저한테 지금 협박하시려는 거면 …

너희 둘 다 들었다고 알고 있을 거다. 나는. 다현이랑 너랑 둘다 다른 사람들한테 괜히 지껄여서 일 크게 만들면, 나, 나 혼자 죽지 않아. 너희같은 놈들 내가 먹여살렸지 누나가 살린 줄 알아?

아저씨 하나도 안 무서워요.

내가 너 죽여버릴 거다.

15.

사람들의 더미 속에 내가 있다. 나는 불에 타 재가 되어버린 곳에서 온몸이 데인 채 울며 있다. 울부짖으며 있다. 기어나오며 그 사람을 끌어당긴다. 그 사람들을 당긴다. 뒤로 쓰러지며 포기한다. 살아남은 사실을 저주한다. 엄마를 찾았다가 언니의 이름을 부른다. 내게 남았던 존재를 부르고 내 삶을 지속시킨 것들을 부른다.

지독히 희생을 생각한다.

살아남기위해.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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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치 19.11.24 14:42 댓글

    잘읽었습니다. 꿈도 희망도 없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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