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전국적으로 기승을 부리던 폭염이 겨우 한풀 꺾이는 추세입니다. 여름과 헤어질 준비는 잘하고 계신지요? 이번 달에는 주제보다 장면이나 상황을 상세하게 풀어쓴 글이 유독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정작 중요한 사건이나 주제가 소홀하게 다루어지거나 강조되어야 할 부분이 강조되지 못해서 밋밋해져 버린 글이 많았습니다. 단편은 일상의 기록과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주제나 사건을 드러내기 위해 생략하고 압축하는 구성을 담은 글이 적어서 아쉬웠습니다. 아쉬운 것은 전형적인 분위기 내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이 보아오고 접한 글에서 익힌 분위기나 감수성을 그대로 표현한 글들이 많아서 작가만의 개성이 나타나지 않은 점이 안타까웠던 달이었습니다.
87호는 심사위원단이 깊이 숙고한 결과 우수작을 내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작가분들의 발전을 기대합니다.
7월 16일부터 8월 15일 자정까지 올라온 글 중 작가분이 삭제하신 글들을 제외한 총 17편의 글 중 심사대상이 된 글은 12편이었습니다. 심사대상에서 제외된 작품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분량 미달  
슈뢰딩거의 손목시계(메모선장, 원고지 13매), 비애로(NANPA. 원고지 48매), 나는 스파이다(바이칼, 원고지 15매), 은하철도는 달리기 시작한다(김진영, 원고지 53매)
2) 연작
꿈속의 연인들(Story will be written)


책벌레 : Leia-Heron

A: 설정은 잘 할 수 있는데, 이야기는 잘 만들어 낼 수 있는데, 문장은 잘 쓰는데,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대개 하나쯤 자신의 장점을 말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단점을 크게 받아들이는 사람과 단점을 작게 받아들이는 사람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요. ‘훼인’이라는 주인공의 이름에서 보면 이 글 전체가 일장춘몽처럼 대박을 꿈꾸는 작가 지망생을 그리는 블랙 코메디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설정을 먹고 글을 뽑아내는 벌레는 흔한 아이디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만, 전체적으로 벌레의 이야기에 너무 중심이 가 있어서 이야기상의 흥미를 떨어뜨리고 있는 게 아닐까요. 전반적으로 희화성을 더욱 높이고 훼인을 보는 시선을 다르게 잡아 보시면 글의 재미도 달라질 듯합니다. 훼인의 감정에 가장 밀착해 훼인의 글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싣다 보니 글이 학교교육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 설정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B: 작가 지망생의 일장춘몽을 그린 글로 생각됩니다. 주인공이 유명한 작가가 되는 과정이 몹시 과장되고 비현실적으로 그려진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런 경우 글 자체가 유치해 보이기가 쉽겠지요. 설정을 먹은 사슴벌레에게서 실을 뽑듯 소설을 뽑아낸다는 설정이 흥미롭지만, 벌레의 속성이 컴퓨터를 지나치게 닮은 점이 아쉽습니다. 딱 떨어지는 구성과 설정에 치중하기보다 이야기자체의 재미를 살렸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흡혈귀에도 장애 등급이 필요하다 : 캥

A: 대사가 글 전체를 지배하면서도 상황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흡혈귀가 인간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세계관이나 설정이 흥미롭습니다. 흡혈귀 등록증, 흡혈귀용 상품 등 독특한 설정들도 글 전체에서 설정을 위한 설정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어서 글의 재미를 더하네요. 상당히 공을 들여 만들어낸 설정으로 보입니다. 대사가 생생하기 때문에 독자의 가독성도 높은 편입니다.
다만 이 글의 결말 부분이 반전으로서 만들어져 있다고 보았을 때, 반전의 강도가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은 것이 아쉽네요. 입심 좋게 끌어간 이야기에 비해서 반전은 다소 힘이 빠져버리는 느낌입니다. 흥미로운 설정이니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여지가 있어 보이므로 이 세계를 배경으로 한 다른 이야기를 구상해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B: 재미있는 설정에 비해서 구성이 허술한 점이 아쉽습니다. 흡혈귀에 대한 설정이 재미있게 녹아나오는 경찰관과 두열의 대화가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어떤 사건도 만들지 못하고, 그저 구색을 맞추기 위해 남겨두었던 결말을 위한 구실을 할 뿐입니다. 공들인 설정만큼 구성도 치밀했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상생활과 연결시켜 흡혈귀를 생활인으로 그려낸 설정은 구체적이고도 흥미롭습니다. 입담이 좋은 것도 장점이겠지요.


O : chloe

A: 오르페우스, 에우리디케, 하데스, 케르케로스 등 신화 속 인물들이 등장하고 신화의 이야기가 이 글의 중심이 됩니다만 신화의 재해석이라기 보다는 신화의 내용을 여러 설정과 뒤섞어 더욱 모호하게 만들어버린 것에 지나지 않네요.
시를 서두에 배치하는 것은 멋스럽게 보이지만, 지나치게 멋 부린 방식으로도 보입니다. 서두의 첫 문장을 쓰는 것이 글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해 보면 이미 수준이 인정받은 시를 가지고 와서 서두를 시작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아주 편하게 가는’ 방법일 수도 있죠.
이 글의 큰 약점 중의 하나는, 원고지 130여 매에 달하는, 중편 정도의 길이에도 다 담지 못하고 버거워 보이는 복합적인 이야기 구조, 그리고 그 구조를 파악하기 힘들게 만드는 가독성 떨어지는 문장들입니다. 철학적인 듯이 겉멋이 들린 대화는 이야기의 핵심 사건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조차 서술과 함께하지 못해 모호합니다.
영문 번역 투의 사물 주어 문장, 그리고 과도하게 수식이 포함되어서 중심을 잡기 힘든 문장이 글 전체에 너무 많아 이야기를 더욱 파악하게 힘들어집니다. 애니메이션이나 뮤직비디오처럼 장면 전환을 연상하고 글을 쓰신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영상이 아니라 글로 내용을 전달해야 하는 소설에서는 가독성이 중요해 진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면 좋겠습니다.


B: 신화를 매개로 하여 시점과 차원을 다양하게 변화시키고 뱀파이어 등의 소재와 연계시킨 글로서 특히 다양한 은유와 비유를 사용한 문장이 눈에 띕니다. 다양한 은유와 비유는 문장을 풍성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글에서는 수식이 지나치게 많은 점이 아쉽습니다. 복잡하게 전환되는 구성은 난해하거나 산만하거나 둘 중 하나겠지요. 이야기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고 비약이 많은 점 때문에 산만한 글이 된 것 같습니다.


어디에나 있는 이야기 : 지오

A: 제목처럼 어디에나 있는 이야기네요. 150매에 아슬아슬하게 맞춘 분량 속에는 길고 산만하게 직장인들의 비애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전개는 전체적으로 장편의 스피드이면서도 이야기의 스케일은 단편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인물들의 성별이 명확하게 드러나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인물들이 성별을 포함해서 개성이 없다보니 후반부에 등장하는 연애 감정이 돌출되어 어색하게만 보입니다.
조직 안에서 개인은 때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유능하기 때문에 더욱 고생한다는 느낌을 받게 되기도 하지만, 그런 문제점을 일격에 해소하는 것이 백마 탄 왕자님 진영의 방문 때문이라는 것은 조금 작위적으로 느껴지네요. 사장을 찾아가 밉상스러운 무능한 팀장을 해고시키고 자신이 팀장이 된다는 결말, 조은과 동조하고 있는 직장인들이라면 통쾌하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중편 정도 되는 분량 안에서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중심을 잡을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조 은의 트라우마는, 잘 살려 냈다면 이야기의 깊이를 더할 수 있었겠습니다만, 무능하고 엉망진창인 팀에 남아있어야 하는 이유로만 쓰이고 있네요. 조 은이 진영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장면은 말하자면 글의 클라이맥스인 셈입니다만, 그 전까지 정작 조 은의 감정은 전혀 보이지 않아서 뜬금없고 갑작스럽습니다.


B: 사무실에서 일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길게 펼쳐지지만, 일상은 불필요할 정도로 세세하게 묘사되고 정작 등장해야할 사건도 주제는 찾기가 힘들군요. 이 글을 통해 무엇을 쓰고, 표현하고, 담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4월의 농담 : XX

A: 이야기거리가 될 법한 소재는 넘칠 듯 담겨 있는데 정작 이야기는 없습니다. 소재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그것만으로 매력적인 글도 있을 수 있겠지만 상징적인 듯이 보이던 여러 소재가 마무리된 결말도 갑작스럽기만 하네요. 맨홀에 대한 공포라든가 중심적인 소재를 잡아 이야기의 틀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이런 소재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해야 하겠죠. 많은 일이 일어날 듯 일어날 듯 하다가 결국 아무 사건도 없이 글이 끝난 느낌입니다.


B: 구멍을 두려워하는 주인공이 이계의 존재를 만나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 보니 바보의 마을이 나타났다. 구멍의 상징, 이계에서 온 낯선 여자의 정체, 맨홀의 역할, 바보의 마을의 상징 등 글 속에서 응당 그려져야 했을 것들이 하나도 그려지지 않은 채 그저 소재로만 그쳤을 뿐입니다. 그래서 사건만 있을 뿐 주제가 빠진, 껍데기만 남은 소설이 되어 버려서 아쉽습니다. 사건을 중심으로 하여 불필요한 장면묘사를 생략하는 묘미를 살렸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소녀와의 저녁식사 : 해나

A: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가 소녀에게 느끼는 감정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합니다. 식욕과 성욕을 동시에 배치하는 한편, 동성애적인 감정을 감성돔이라는 물고기의 특이한 생태에 빗대어 다루고 있는 점도 독특합니다. 아름다운 소녀에 대한 화자의 감정은 젊은 시절에 대한 동경이기도 하고 아이에 대한 동경이기도 하고, 또한 동성애적인 감정이기도 합니다. 동성애적 감정의 대표적 상징물로 물고기를 사용하면서 감정이 쌓여가는 것을 갈증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글의 전체를 지배하는 감정의 흐름이 그다지 새롭거나 독창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 아쉽습니다. 식욕과 성욕을 평행으로 배치한 것도 다른 글에서 이미 다루어진 방식이기도 하죠. 전작에 비해서 이야기의 구조는 안정적입니다만, 이 글만이 가지고 있는 독창성이 아쉽습니다.


B: 성욕을 식욕에 투사한 방식이나 글 전체를 흐르는 은밀하고도 긴장감 어린 분위기가 참신한 것은 아니지만, 한 여자가 가진 눅진눅진한 성애의 귀결까지 분위기를 잘 이끌어간 점이 인상 깊습니다.


뱀파이어 소녀 : 퍼플

A: 자신의 글 끝에 이 이야기는 이러저러한 이야기입니다 하고 설명을 달 필요는 없습니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잘 전해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독자의 읽기 능력 부족이거나 혹은 작가의 표현력 부족이겠죠. 소설은 소설 안에서 완결되어야 하고, 독자나 작가의 설명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일 뿐입니다.
소녀가 첫 남자에 대해서 집착하게 되는 감정을 포함해서 소녀의 감정은 무척 생생합니다만, 뱀파이어가 되고 그 뒤의 사건 전개까지 전체적으로 글에 독창성이 부족합니다. 전작에서도 그랬습니다만 전형적인 이야기를 어떻게 녹여내는가에 따라서 글은 매력적이 될 수도 있고 흔한 글의 하나로 그칠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의 결말 부분, 소녀가 흡혈하려고 한 것이 사이보그 소년이었다는 부분은 재미있는 반전이 될 수 있겠습니다만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감정 흐름 때문인지 임팩트가 떨어져 버려서 아쉽네요.


B: 큰 반전이나 특이한 사건 없이 글을 이끌어 나갈 때는 화자나 주인공 자체가 이끌어 가는 풍부한 분위기가 중요하겠지요. 지적인 소재와 음악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하여 이야기에 분위기를 부여하려는 노력이 엿보이지만, 전형성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흠입니다. 또한 글 전체에 흐르는 감수성 역시 작가가 스스로 빚어내는 것이라기보다 비슷한 글들을 많이 읽고 익힌 결과로 생각되는 점이 아쉽군요.


할리우드 스타 취재기 : 퍼플

A: 언론의 권력화 하에 익숙해져 처음 기자가 되었을 때의 기자정신을 잊어버리고 점차 타성에 젖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만, 주인공의 고민이 생생하게 닿기 보다는 한 겹 덮인 너울 속의 모습처럼 불분명합니다. 생생하고 탄탄한 묘사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만, 이 글이 단지 할리우드의 시사회 모습과 그 주변 풍경을 그리기 위해서 쓴 소설인 것은 아니겠죠. 글의 중심이 ‘나’의 심리적 변화에 있다면 그 심리 변화를 좀 더 파고들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B: 현실을 바탕으로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등장하는 직업이나 상황 등이 현실적이라기보다 작가의 기대와 추측으로 그려진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자인 주인공의 행보 역시 십대가 희망으로 그려내는 자신의 미래 모습처럼 남을 뿐입니다. 글 속에 그려지는 소재에는 치중을 하면서 정작 주제에 소홀한 점이 아쉽습니다.


에셔의 기억 : 열

A: 연인의 전화기 장난의 아이디어가 독특합니다. 시작 부분에서 연인이 가지고 있는 불만이나 투덜거림이 글에서 지나치게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조금 아쉽군요. 글에서 ‘한나’의 철없는 남동생이나 무례한 직장 동료가 다시 언급될 것이 아닌 이상, 이 정도의 분량을 들여서 꼭 나와야 했을 대사였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단지 현실에 지친 연인이 우연히 생각해 낸 게임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한 배경이었다면 단순하게 몇 줄로 요약해서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연인이 지친 상황이었다는 것은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으리라 보입니다. 글의 중심이 ‘라쇼몽’ 혹은 ‘에셔’에서 한나와 함께 일했던 여자와의 이야기라면 강태중 선배의 이야기도 압축할 부분은 압축하는 것이 좋겠네요.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계기를 모호하게 하는 것이 글의 중심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렇다면 좀 더 깊이 다뤄야 할 것은 두 사람의 연인으로서 보낸 시간들이 아닐까요. 한나의 현실이나 자신의 현실이 아니라 두 사람이 만나서 사귀게 된 과정이나 감정의 깊이 등이 다루어지고, 그것이 어떻게 시작되었던 것일까의 의문, 모호함으로 결말을 맺는다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B: 두 연인이 전화기를 가지고 시작한 장난으로 인해 남자가 “연애의 시작”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소재가 현실에서 있을 법하면서도 재미있습니다. 결말까지 이르는 과정만을 그리는 대신 두 연인의 모습, 그들만의 연애가 가지는 분위기 등이 그려졌더라면 결말이 훨씬 풍부한 정서를 던지지 않았을까 합니다.


접촉 : 열

A: 계급사회적 현실을 풍자해서 극단적인 계급구조로 짜내려간 설정이 흥미롭습니다. 하위층의 단결을 막기 위해 접촉 가능한 인간 수를 제한한다는 설정은 사람의 접촉과 단결이 개인으로 불가능한 결과를 실현하게 만든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클래식 계급의 비리를 목격하고 갈등하면서도 계급사회의 일원으로서 현실에 안주하는 결론을 내리는 주인공의 심리가 치밀하고 설정 안에서의 등장인물들도 개성적으로 잘 나타나, 짧지 않은 글이지만 길게 느껴지지 않고 독자의 흥미를 사로잡습니다.
가장 하위인 플로어 계급 출신으로서 레퍼런스 계급으로 신분 상승을 이뤄낸 주인공은 플로어 계급을 이해하고 공감하기보다는 보다 신분 상승을 이뤄 내고, 자신의 손으로 획득한 신분 계급 안에서 인정받고자 합니다. 그런 인물이 처음으로 계급 사회의 비리를 직면하게 되지만, 결국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가장 상류층인 클래식 계급이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이 조금은 석연치 않은 느낌을 남기네요. 작가분이 의도하신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자칫하면 결국 이 글속의 세계의 모순을 일으키는 근본 원인은 플로어 계급과 그 계급에서 레퍼런스 계급으로 신분상승한 사람들에게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B: 인간관계에 대한 고찰을 새로운 세계관 속에서 풀어내려한 글이지만 단지 현실을 비유하여 풍자하는 것에 그친 점이 조금 아쉽습니다.


나는 시체를 닦는다 : 하늘깊은곳

A: 흥미로운 소재와 발상입니다만 이야기 구조가 단순하고 빈약합니다. 시체 안치소의 독특한 구조에 집착해서 묘사하는 것보다는 자신을 버리고 간 애인의 시체를 자신이 일하는 시체 안치소에서 만난다는 사건에 더 중심을 두었으면 어땠을까요. 애인이 죽은 이유를 설명하는 장면은 마치 자신이 애인을 죽이기라도 한 듯이 지나치게 그럴싸하고 뜬금없습니다. 사전에 사인을 알려줄만한 복선이 전혀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죠.


B: 시체소에서 맞닥뜨린 옛 애인의 시체는 매우 흥미로운 소재인데 별로 부각되지 않은 점이 대단히 놀랍습니다. 글의 대부분을 발단에만 할애한 구성은 달라져야하지 않을까요?


불가사리 이야기 : 먼지비

A: 설화를 배경으로 한 글은 설화의 입담을 잘 살려내어서 맛깔스럽습니다만, 이야기의 전반이 불가사리 설화에서 그다지 많이 나아가지는 못했네요. 판소리의 소리꾼처럼 이야기의 주제를 요약해서 작가가 마무리하는 것은 이야기 투의 글과는 잘 어울리긴 합니다만 주제를 전체로 아우르기에는 너무 단순하지 않은지요. 만약 실제로 이 글의 결론을 마지막 문장으로 잡아 쓰신 글이라면 아쉬움이 남습니다.


B: 희화적인 문체로 설화를 맛깔나게 풀어낸 글입니다. 사소한 발단이 점점 큰 사건으로 확대되어 가는 구성은 작가의 글에서 이전에도 사용된 적이 있지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던 이전 글에 비해 적당한 선에서 깔끔히 마무리 되어서 좋았습니다.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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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remi 10.08.28 16:27 댓글 수정 삭제
    저는 장애등급이 될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하기야, 저번달은 작품이 그다지 많이 올라오지 않았군요.
  • No Profile
    별난 10.08.28 16:38 댓글 수정 삭제
    이번달은 선정작이 없어서 아쉽습니다. 그래도 불가사리 이야기 재미있게 봤어요.
  • No Profile
    퍼플 10.08.28 21:08 댓글 수정 삭제
    좋은 비판 감사드립니다. 다른 건 전부 수긍이 가고 이해도 되는데... 한가지만 여쭤봐도 괜찮을까요?(바쁘실텐데 죄송...)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기대와 추측'으로 그려진 것 같다고 판단하신 건지요. 이게 제 경험이어서 저로는 단 한가지도 기대와 추측으로 쓴 건 없거든요. 제 경험도 제대로 못 쓰는데, 다른 글은 제대로 쓸 수 있을까하는 절망감 때문에... 궁금합니다. 어떤 점에서 그렇게 생각하셨는지...(기분 나쁘신 질문은 아니겠지요..)
  • No Profile
    10.08.30 13:44 댓글 수정 삭제
    날카로운 비평 감사합니다. 좀 더 분발해야겠네요..
분류 제목 날짜
선정작 안내 거울 독자우수단편 선정1 2015.06.01
선정작 안내 선정작이 없습니다. 2015.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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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1 2015.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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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2 2014.12.31
선정작 안내 선정작이 없습니다. 2014.12.31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5 2014.12.01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2 2014.11.01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2 2014.10.01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5 2014.09.01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 2014.07.31
선정작 안내 선정작이 없습니다. 2014.07.31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2 2014.07.01
선정작 안내 선정작이 없습니다. 2014.06.01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2 2014.06.01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3 2014.04.30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7 201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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