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쌀쌀해진 날씨와 더불어 신종 인플루엔자가 극성을 부리는 요즘입니다. 모두 건강하게 지내시는지요? 이번 달은 플롯이나 주제 등을 깊이 고민한 글보다 즉흥적으로 쓰인 글이 많았습니다.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지, 형상화하려는 주제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은 소설 창작의 바탕인 동시에 골격입니다. 골격이 튼튼하지 않은 글은 그럴싸한 분위기나 현란한 말솜씨로 치장을 해도 방향성을 잃거나 자만심이 가득한 글에 그치기 쉽습니다. 소설 창작의 밑바탕이 되는 고민과 설정이 많이 아쉬웠던 달이었습니다. 또한, 중단편 게시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연작형태의 소설이 올라오는 추세인 것 같습니다. 따라서 본 심사단에서는 다음 달부터 원고지 150매 이상의 소설 및 연작형태의 소설은 심사에서 제외키로 하였습니다. 원고지 150매 이상의 중편소설이나 연작을 게재하실 분들은 중장편란을 이용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번 달의 심사 제외 작품은 아래와 같습니다. 게시판 공지에 명시된 대로 심사 대상은 원고지 70매 이상의 글입니다만, 근소한 차이로 분량이 모자라는 글은 심사에 포함했습니다. 히로웽 님의 ‘마법의 시대’는 인용 부분을 확인하여 이번 달로 이월했습니다.
* 분량 미달  
        는개 - 파옥초 (원고지 44매)
        비인 - 파옥초 (원고지 34매)
        Concept Black, Prologue - LeftHander (원고지 5매)
        우아한 생활인 : 세이지 (원고지 36매)


마법의 시대 - 히로웽

A: 마법의 시대가 끝났다는 종언이 던지는 쓸쓸하고 아련한 분위기를 풀어간 글입니다. 분위기를 풀기 위해 마지막 대마법사나 시인이 나누는 대화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어째서 마법의 시대가 끝나게 되었는지 분명하지 않고, 대마법사나 시인의 역할 역시 모호합니다. 설정은 모두 머릿속에 담고 분위기만 이끌어나간, 즉흥적이고도 완결성이 부족한 글입니다. 그러나 인물에 개성을 부여하는 능력이나 자신만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강점은 여전히 힘을 잃지 않습니다. 비문, 번역체 등 거친 문장을 다듬는 노력을 계속하시기 바랍니다. 강점이 분명한 만큼 글을 담는 그릇인 문장이 뒷받침되면 보다 더 완전한 글이 나오리라 기대합니다.


B: 전체적으로 이야기가 완결되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습니다. 단편 분량으로도 짧은 편의 글입니다만, 글을 진행하는 속도는 장편의 흐름이며, 그에 비해 사건이 전개되는 모습은 늘 갑작스럽고 설명이 부족합니다.
글의 서두와 마지막에서 극 중 인물 ‘마틴 로저스’가 쓴 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만, 인용 부분의 의미가 명확하게 와 닿지 않습니다. 첫 부분에서는 마법의 시대의 종말 뒤에 마법의 시대의 양상을 묘사하고 있습니다만, 단지 (중략)이라는 말로 처리하기에는 마땅히 있어야 할 연결 부분이 빠져 어색합니다. 마지막 부분 역시 주어가 빠진 문장으로 마무리하면서 중심 내용이 작가의 머릿속에만 머물고 말았습니다.
글 전체가 사건이 적고 에피소드적인 일화의 나열로 되어 있으므로 독자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 위한 문장의 힘이 특히 중요합니다만, ‘그 소일적인 즐거움은 메마른 목소리로 갈라졌다’ ‘귀갓길에 들었던 시인의 아니리는, …내 마법 애호심을 일깨웠다’ ‘그 바이올린 소리가 절 이끌었군요’ ‘주점에 들어서기 직전에 윌포드는 나를 흥분케 만들었다’ ‘나는 약간의 실망과 더불어 솟구친 작은 기대감을 느꼈다’ ‘대마법사는 전과 다르게, 자신도 굳은 표정을 지을 수 있음을 증명하며 답했다’ ‘감나무의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그 감나무에 손을 뻗는 네 노력은 분명 널 버리지 않을 거야’ ‘나와 윌포드 사이에 끼어든 잠깐의 침묵은 원치 않았던 친구처럼 깊게 내리깔려 무거운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어느 객석에서 쏟아진 맥주가 바닥과 접점을 만들어내는 소리가 그를 통해 들려왔다.’ 등, 초벌 번역 직후의 글을 보는듯한 문장이 글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면서 글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반감되었습니다. 좋은 문장을 많이 접해 보시고, 완성된 글을 충분히 숙고하며 퇴고하시면 본인만의 매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붉은 눈, 검은 혀 - 박하

A: 치정자의 죄를 등에 새긴다는 소재가 독특했습니다. 그러나 등에 쓰이는 죄의 의미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소년은 고통 받는 시민의 상징이며, 등에 쓰이는 죄는 시민을 괴롭히는 치정자의 가혹함으로 해석할 여지는 있습니다. 소년이 다른 사람으로 대치되는 것을 통해 가혹한 권력과 죄의 끝없는 순환을 그리고자 한 의도도 엿보입니다. 그러나 주제가 모호하고, 마음에 드는 분위기를 지닌 소재를 이것저것 끌어와서 즉흥적으로 갖다 붙인 느낌입니다. 그래서 등에 쓰이는 죄의 의미가 모호해졌고, 죄를 등에 새기는 행위에서 대속이나 희생의 의미도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마녀는 왜 죄를 등에 새겨야만 했는지, 소년의 역할은 무엇인지, 마녀는 왜 고해성사를 받는지, 검은 눈과 붉은 눈은 글 안에서 어떤 의미를 담는지 매듭지어지지 않아서 소재를 생뚱맞게 접합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독특한 소재가 지닌 분위기에 취해 분위기를 내는 것에만 집중하고,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표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얕습니다.


B: 안정된 문장으로 이야기를 파악하기 쉬운 가독성이 돋보이는 글이었습니다. 희생과 제물, 지배자, 고통 받는 민중, 모든 것의 배후에 있는 마녀 등 드물지 않게 다루어지지만 쉽게 쓸 수 없는 진중한 이야기를 침착하게 독특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써내려간 힘도 돋보입니다.
희생자인 민중들이 자신들과 같이 희생자인 노아에게 동정을 보내기는커녕 오히려 혐오감을 드러내며 더욱 고통을 준다거나, 독재자를 무너뜨린 영웅 역시 독재자의 길을 가게 된다든가 하는 희망이 없고 음습하기만 한 염세적인 세계관의 위에 이 모든 비극의 배경이고 원흉이기도 한 마녀가 최종적인 승자로 마무리되는 불편한 소설입니다. 카타르시스 이후의 무엇, 혹은 대안이 없는 암울하고 어두운 이야기이므로 독자에 따라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습니다.
노마의 등에 ‘백 두 번째 기록’ 이 완성되면서 새로운 백지를 마련하게 되고, 노아는 희생 제물로 죽게 됩니다만 ‘102’라는 구체적인 숫자가 무언가 의미하는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100, 10, 1000, 같은 숫자가 아니라 102라는 숫자로 독자의 시선을 끌게 될 때는 구체적인 이유가 있어야겠지요. 그 외에도 ‘붉은 돌’ ‘검은 가죽 뭉치’ 등도 독특한 소재로 독자의 시선을 끄는 데 비해 의미가 명확하게 전해지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요(妖生)생 - 파옥초

A: 실험적이라고도 할 수 있고, 나름의 독특한 분위기도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뒤집어 말하면 시도 소설도 아닌, 정체불명의 괴물 같은 글이기도 합니다. 내재율과 운율적 흐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산문시로도 보이지 않습니다. 조지훈 시인의 ‘시의 원리’를 언급하자면, 산문시는 미묘한 음악의 미, 즉 외재율은 발휘되지 않더라도 내용의 조리가 산문이 아닌 시의 정신에 따라 쓰인 것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본 글은 산문시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서사적인 소설의 형태가 어울립니다. 소설로 완성되었으면 좋았을 글입니다. 작가가 산문적인 서술에 자신감이 없어서, 미묘한 분위기를 앞장세운 장면을 시의 연처럼 이어나간 것은 아닌지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B: 원고지 197매의 긴 글입니다. 짧은 중편의 분량입니다만, 그 안에 들어 있는 내러티브는 더 많습니다. 서술을 늘려 긴 중편으로 구성하거나 혹은 단편에 적합한 내러티브만을 남기고 과감히 축약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환생을 통해 얽혀드는 인물들과의 관계 자체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습니다만, 독자가 인물의 관계를 바로 파악하기에는 어렵습니다. 구체적이지 않은 단절적인 서술과 시 형식의 행 구별이 가독성을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화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어느 인물의 대사인지 구별되지 않고 서사 서술과도 구별되지 않아서 더욱더 이야기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인물의 행동을 지시하는 지문과 대사만이 있는 희곡에서 등장인물의 명칭만을 빼고 옮겨 놓은 것 같으며, 만화의 대사와 나레이션만을 옮겨 놓은 것 같은 구조입니다. 전월의 세 작품과 금월의 ‘는개’나 ‘비인’(분량 부족으로 심사 대상에서 제외)에서도 이 점은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이 글은 긴 분량 안에 그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넣으면서 글의 단점이 더욱 두드러졌습니다. 독자에게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전하는 방법, 드러내는 방법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 글은 작가의 글 중에서는 인물의 특징이 선명한 편입니다만, 일반적으로 보았을 때 인물의 특징이 잘 드러났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한 인물과 그 인물의 환생과의 관계는 그보다 더 불명확합니다. ‘신선(엄마, 조은)’이 모든 사건을 가장 많이 보아 온 인물입니다만 그 인물조차 신선이 되면서 기억을 잃어 등장인물 중에 사건 전체를 파악하는 인물은 없습니다. 그런 인물들의 대사와 불친절한 서술만으로 독자가 사건의 전체를 파악하는 것은 더욱 힘들겠지요.


드래곤 - 파옥초

A: 연산군과 현대의 기자 스미스가 등장하는데도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는지 설명이 전혀 없습니다. 치밀한 설정은 글의 골격입니다. 뼈대조차 없이 즉흥적으로 쓰인 글은 작가자신의 카타르시스만으로 남을 뿐입니다. 연산군과 홍길동의 대비를 들어 연산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하는 의지는 보이지만 지식과 깊이가 얕고 주제에 대한 성찰도 고민도 적습니다.


B: 기 작가의 예전 글이라고 명시되어 있으며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글보다 이전에 쓴  것 같은 미숙함이 많이 드러나는 글입니다. 시 형식을 취하는 것은 다른 글과 같습니다만, 인용 부호도 포함되어 있고 대사의 주체도 명확하게 되어 있습니다. 행의 구분을 없애고 바로 서술 문장으로 만들어도 무리가 없는 문장입니다.
그러나 서술이 다른 글에 비해 많이 포함되어 있음에도 인물의 행동과 감정의 흐름은 독자를 이해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물들의 대사는 연극을 하는 것 같고, 비현실적입니다. 연산군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현대적 상황으로 데려와 현재의 정치 상황에 빗대어 현실 비판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려는 것으로 읽힙니다만, 작가 자신이 중심을 잡지 못해 박승철과 스미스의 격렬한 감정 표현이 공감을 얻기 어렵습니다. 스미스는 한국어를 잘 하는 외국인으로 나옵니다만, 어려운 단어는 충분히 사용하면서 ‘저의 생각은 Yes입니다.’ ‘King~’ ‘Oh~. Korea SuperMan 같은 캐릭터군요.’ 같은 표현을 쓰는 것은, 외국인이라면 한국어 사용이 이러하리라는 전형성에 사로잡힌 결과가 아닐까요.
글의 전반과 중반은 두 사람이 연산군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되어 있고 연산군의 죽음 이후 10년 만에 스미스와 박승철의 재회 장면이 글의 후반을 차지합니다만, 글에서 보았을 때 연산군에 대한 다른 평가가 후반부에 갑작스럽게 대두하면서 글의 균형을 오히려 깨뜨립니다.
‘물론’을 계속해서 ‘물런’으로 쓰는 것 같은 맞춤법 오류(혹은 반복되는 오타이겠습니다만)  는 퇴고를 통해 충분히 수정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완성된 소설을 반복해서 읽고 곱씹어 부족한 부분과 잘못된 부분을 고쳐 나가는 작업을 통해 글의 완성도가 높아질 수 있습니다.


새와 태양, 거인, 그리고 용 - Mr. Jones

A: 줄로 그어 놓은 전환표시 등 습작임을 분명히 한 소설입니다. 영웅, 괴물,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으나 설정이 충분히 풀어지지 않아서 독자에게 전달되기 힘듭니다. 머릿속에 펼쳐지는 이야기 중에서 좋아하는 장면, 대사들을 나열해 놓았을 뿐입니다.


B: 원고지 90매 정도의 글입니다만 담겨 있는 내용이 너무 많습니다. 신화 혹은 전설의 형식을 취하며 영웅과 괴물을 포함한 환상적인 세계가 펼쳐집니다만, 독자를 위한 설명은 부족하고 서사 역시 빈약합니다. 원형적 세계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화자가 ‘그런데 쉬-마루그는 그거하고 거리가 멀잖아요? 걔는 안 될거예요 아마.’ ‘엿이나 먹어. 전 엿 먹기 싫거든요.’ 같은 가벼운 말투를 섞어 쓰면서 글의 진정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는 서술로 나타낼 부분을 ‘끄덕.’이라는 인터넷상의 축약 표현으로 쓰는 것, ‘우주적 공포’같은 어색한 수식표현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쉬 마루그라는 이름을 줄여서 쉬미라고 부르는 이멜쟈에게 ‘삐진’ 쉬 마르그와, 그 상황을 설명하는 루카와 이멜쟈의 대화처럼 전형적인 장면들도 이 글 전체에서 꼭 필요한 부분인가 의문입니다.  
장면의 전환에 필요한 서술이 없이 줄을 그어 구별하면서 인물들의 대화만이 이어진다거나, 복선인 듯 보이는 심각하고 추상적인 대화가 자주 등장합니다만 그에 따라야 할 설명도 보충도 서술도 보이지 않다 보니 수많은 멋진 대사만이 나열되어 있을 뿐 글 안에서 일어난 일 자체는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단편의 분량에 비해서 등장인물은 많으나 그 인물들의 개성이 명확하게 잡힐 서술도 사건도 보이지 않다보니 작가만이 글의 내용을 알 것 같은 글이 되고 말았습니다. 독자들이 읽기 바라는 글이라면 독자에게 어느 정도 설명이 필요할지 숙고하시기 바랍니다. 작가의 머릿속에 무엇이 있는지 독자는 알 수 없습니다.


경계 - 하로리

A: 기승전결의 구조를 잘 갖춘 글이지만, 허술한 플롯이 가장 문제입니다. 연애 이야기와 살인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주된 사건이 무엇인지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두 사건 중 어떤 사건을 전경에 놓고, 어떤 사건을 배경으로 밀어 넣을지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연애 이야기와 살인 이야기가 배경과 전경으로 잘 구성된 글로는 라노벨인 키리사키(학산문화사)가 있으니, 창작에 참고자료로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태광이 범인임이 드러나는 부분은 갑작스럽고 억지스럽습니다. 또한 마지막 장면은 그럴싸하게 보이기 위해 막판에 추가된 대사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구태의연함은 경계해야 하겠지요.


B: 원고지 150매의, 상당한 분량의 글입니다. 분량과 비교해 보면 담겨 있는 이야기가 과도하지는 않고 서술과 묘사가 탄탄하여 쉽게 읽힙니다. 일인칭의 서술로 화자의 감정과 주변의 사건을 적절하게 배치하는 글 솜씨가 돋보입니다. 다만, ‘살인자의 얼굴은 시체 사진을 보는 것보다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남은 건 단지 세명이네’ 같은 번역투의 문장이나 [“쿵!”][‘피 비린내’]처럼 서술로 표현해야 할 것을 인용부호로 처리한 등의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퇴고 작업을 통해 수정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긴장감의 완급을 조절하면서 사건을 끌어나가는 힘이 돋보였습니다만, 복선이 부족하면서 결말이 갑작스러워 맥이 빠져 버립니다. ‘나’의 심리 묘사는 좋으나 상대적으로 친한 친구인 태광에 대한 관찰이 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은 것이 아쉽습니다. 독자에게 너무 힌트를 주지 않으려고 하는 의도가 보입니다만, 너무 힌트가 적으면 결말에서 독자를 이해시키기 어렵습니다.
덧붙여, 사건이 일어나는 배경이 고등학교야 하는 이유가 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학교라는 환경과 살인사건이 일어나야 하는 관계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생각할 수 있는 이유로는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이름표로 인물을 추정하는 과정 때문이 아닐까 했습니다만, 이름표가 필요한 환경은 학교 외에도 있겠지요. 그리고 학교의 이름표는 학생을 단시간에 파악하고 호명하기 위한 것인데, 영문으로 새겼다는 것은 일상적이지 않습니다. 그런 비일상적인 설정을 등장시키기 위해서는 타당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교복회사가 바뀌어서 이름표 폰트가 바뀌었다거나, 이름표를 잃어 버렸는데 다음날 벌써 사서 달고 있다거나 하는 것도 현실 상황과는 맞지 않습니다. 설정이 현실과 맞는지 조사하실 필요가 있겠습니다.


등장! - Mad Hatter

A: 지나치게 추상적인 점이 단점입니다. 토끼, 메기, 아이, 당근 등의 소재를 추상화시켜서 표현하려는 주제가 무엇인지 모호하고 분명하지 못합니다. 인식 혹은 인지의 변화가 상황을 바꾸어 결국 실존에 도달한다는 주제가 얼핏 보이려고 하긴 합니다만……억지스러운 해석이겠지요. 훈계나 교훈이 직설적으로 드러나는 점 역시 단점입니다. 감정서술이 약하며, 학술적인 용어와 표현이 많이 등장합니다. 장소에 걸맞은 옷이 있듯이, 소설에서는 논문이나  인문학 서적에 쓰이는 것과는 다른 용어나 표현이 사용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관념적이고 현학적인 용어가 많이 사용된다고 좋은 글이 되지는 않습니다. 허술한 플롯구성 그리고 소재와 주제가 느슨하게 결합한 점이 아쉽습니다.


B: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토끼를 생각나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아이와 토끼, 당근, 엄마 등 동화적인 소재들이 사용됩니다만 딱딱한 한자어투와 영어 번역투의 문장 때문에 소재와 균형을 이루지 못합니다. 서술은 많고 대화는 적으며, 그 안에서도 딱딱하고 어려운 어휘가 많습니다. 분량이 원고지 70매가 되지 않는 짧은 글인데도 읽는 동안 글이 길다고 느껴집니다. 사건을 서술하는 문장 외에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문장과 흔하지 않은 비유적인 문장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가, 과한 양념을 친 요리처럼 버겁습니다.
토끼의 이름이 ‘콜론’이라는 것이나 여러 가지 부분에서 상징적인 내용을 담으려고 한 의도가 보입니다만, 그 의도를 독자에게 잘 풀어내지는 못했습니다. ‘엄청나게 네모였다.’같은 어색한 문장이나 ‘그 모습이 아이의 마음을 잡아끌었다.’같은 번역투의 문장 때문에 독자와의 거리가 더 멀어집니다.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이야기를 얼마나 맛깔스럽게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글로 만들어내는가도 작가의 과제겠습니다.


사람 살려! - Mad Hatter

A: 앞서 ‘등장!’에서 지적한 단점이 역시 존재합니다. 스토리가 빈약하고 사소한 소재를 그럴 듯하게 포장한 글처럼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추상적인 주제를 구체적인 소재와 이야기에 투사해서 풀어낼 의도시라면, 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B: ‘콜론’과 ‘수현’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서 ‘등장’과 연작인 소설로 보입니다만, 수현의 캐릭터가 두 글에서 상당히 차이가 있습니다. ‘등장’에서는 아이로 지칭되며 대화 역시 초등학생 이하의 아이로 보입니다만, 이 글에서는 수현, 명우 등의 등장인물들이 초등학생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학생 주임(현재는 학생부장이라는 명칭을 사용합니다)이 교문을 지키는 것을 보아도 배경이 초등학교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학교 교육 전체에 대한 불신과 함께 권력에 대한 불신이 글 전체를 흐르고 있습니다만, 여과되지 않은 날것의 감정과 정제되지 않은 어휘 때문에 독자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가지 못하고 겉돌고 맙니다.
기 작가의 글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합니다만, 인물들의 내면 감정이 지나치게 추상적이라 이런 인물이 있을지 의심스러워질 정도입니다. ‘이 여자는 아무런 대안도 가지고 있지 못하면서 시끄럽기만 해’‘어쩐지 땡땡이를 치러 학교 밖으로 나가려다가 나를 보고는 태연함을 가장하고 있는 것 같군.’처럼 내면의 독백으로 처리한 감정은 인물들이 무대에서 연극 대사를 읊는 듯 어색하며, 정확히 명문화할 수는 없었지만 그 토끼는 명우에게 그런 인상을 불러일으켰고, 자신이 그런 기술에서 절대로 틀릴 리 없다고 생각하는 명우는 ‘자신이 그런 생각을 받았다는 것은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라는 괴기스러운 논리로 머리를 채웠다. 같은 감정 서술은 엄마를 부르며 울 정도 나이의 아이가 보이는 감정 흐름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살려내기 위해서는 독자들이 수긍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개연성 있는 사건을 사실성 있게 표현하는 힘이 뒷받침되어야 하겠습니다.


소원 - cena

A: 플롯을 잘 갖춘 글입니다. 흡입력과 재미도 있는 편이지만, 설정이 치밀하지 못합니다. 이상한 나라의 폴 이래로(?) 주인공을 빼고 모든 것이 정지해 버린 상황은 작가들이 자주 쓰는 매력적이고도 흥미로운 소재로 애용되었습니다. 흔한 소재를 사용하였기에, 비슷한 소재로 쓰인 다른 글과 차별되는 독특함이 문제입니다. 이글에서는 CCTV가 바로 독특한 소재로 보입니다.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소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지나쳤습니다. 또한 설정이 충돌하거나 모순이 생길 때마다 시종일관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내몰라합니다. 결말은 흥미롭고 재미있지만, 전형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점 역시 아쉽습니다.


B: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이 정지하는 세계. 한 번쯤 누구나 해 보는 상상입니다. 만화나 소설에서도 많이 다루어진 소재이기도 하지요. 그만큼 많이 다루어지는 소재라면 그 작가만의 독특한 개성이 포함되지 않으면 독자로서는 글을 읽을 재미가 없습니다. 일본 만화 ‘닥터 슬럼프’에서는 자신 외의 세상만을 시간이 멈추게 하여 마음껏 즐기던 인물이 혼자만 먼저 나이를 먹어 버려 늙은이가 된다는 일화가 등장했었지요. 물론 이 내용도 지금 똑같은 내용이 나온다면 이미 싫증이 난 이야기가 되어 버릴 것입니다. 글 전반을 흐르는 탄탄한 문장력이 돋보입니다만 인물의 개성은 상대적으로 약해 글이 전반적으로 어디서 본 듯한 글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글에서는 멈춰진 시간에서 CCTV만이 움직이고 있었다는 독특한 설정이 등장합니다. 사건을 의외의 파국으로 몰아가는 원인이 되면서, 이 글만의 개성적인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소재를 작가는 제대로 살리지 못합니다. 오히려 작가조차 이 설정을 정면으로 다루려 하지 않고, 어째서 그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는 말만이 나올 뿐입니다. 주인공은 계속해서 의문을 갖고 있지만, 정답은 글의 결말까지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 대신 나타나는 건 어딘가에서 본 듯한 흔한 결말뿐입니다. 자신만의 무엇을 만들어 내려는 숙고가 필요하겠습니다.


영원의 세계 - 브리그리

A: 모든 인류가 불멸의 삶을 살고 인구가 엄격하게 통제되는 사회라는 소재가 신선합니다. 인구가 통제되기 때문에 한 사람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 사람이 죽어야 하는 규칙이 생겨납니다. 등가교환의 법칙을 지키면서 임신한 아기를 낳을 방법을 찾는 이야기가 탄탄한 구성 안에서 잘 풀어졌습니다. 그러나 몹시 절박한 상황에 비해 분위기가 잔잔하여 생동감이 적어진 것이 흠이라면 흠입니다. 또한 주인공을 서구인으로 설정해야 했는지도 고민해볼 문제입니다. 주인공이 서구인이라면 소재 역시 서구적인 사회 맥락에서 해석됩니다. 이 글에서는 아기가 그렇습니다. 서구적인 사회 맥락 속에서 아기에게 가지는 정서와 한국 사회 맥락에서 아기에게 가지는 정서는 같을 수 없겠지요. 혈연에 강하게 집착하는 한국인이 주인공이었다면 이야기에 좀 더 탄력이 생기지 않았을까요?


B: 출생과 죽음의 의미라는 무거운 주제를 잡았습니다. 한 사람이 태어나려면 한 사람이 죽어야 한다는 설정을 위해 불멸의 세계라는 배경을 만든 것도 좋습니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내용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세계를 만드는 것이 환상소설에서 무척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이 글은 돋보입니다.
전체적으로 감정 묘사를 포함한 서술이 정서적인 문장으로 이어지는데, 감정이 많이 들어간 문장은 자칫 잘못하면 신파로 흐를 우려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잔잔하고 정서적인 분위기는 죽지 않는, 따라서 영원히 정지된 세계와 매우 잘 어울립니다만, 세계의 ‘현상’을 깨고 ‘변화’를 선택하는 주인공의 행동과 불균형을 이룬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모성애와 부성애, 아이의 탄생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인물들의 감성이 절박하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어쩌면 인물들의 서양식 이름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로라, 프랭크, 로랭스라는 이름들이 수연, 현우, 경식 같은 이름이었을 때 어떤 효과가 나게 될까요. 인물의 이름을 정하는 것은 인물을 설정하는 데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 글에서 인물들이 서양식 이름이어야 할 어떤 이유도 보이지 않습니다. 익숙한 이름들일 경우에 오히려 인물들의 정서가 더 잘 와 닿게 되지는 않을까요. 독자들이 상상하는 미래세계에 서양인들만 살고 있지는 않을 터입니다.


무림괴수 - Mothman

A: 연작인 시간보호군의 이야기로 시작되었다가 무협지로 전환된 글입니다. 시간보호군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로 등장했던 제라드 중령의 매력이 심각하게 훼손되었습니다. 인물을 전면에 내세운 글은 인물의 개성이 생명입니다. 특히 대사는 인물의 개성을 뚜렷하게 드러내게 됩니다. 이 글에 잠시 등장하는 제라드 중령의 대사는 지금까지 작가가 형상화한 개성과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개성과 매력에 치명타를 입은 셈입니다. 또한 이후 김훈을 주인공으로 하여 이어지는 무협 부분은 구태의연한 무협의 장면을 흉내 낸 작가의 즉흥적인 카타르시스로 보입니다.


B: 원고지 231장의 긴 글입니다만, 중편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제라드 중령(동명이인이길 바랄 정도로 연작의 캐릭터와는 거리가 있습니다만)과 슈트리펠 소위가 등장하는 전반부와 김훈과 백설희가 등장하는 무협 세계의 후반부는 전혀 별개의 글로, 두 세계를 이어주는 것은 괴수라는 하나의 소재밖에 없으며, 괴수가 어디서 왔는지 후반부에서 중요한 의미를 띄고 있지도 않는 만큼 별개의 글로 떼어내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
두 부분을 합한 상태로 보았을 때에도 글은 기승전결을 갖지 못하고 분량만 많은 산만한 글이 되었으며, 전 후를 나누어 보았을 때에도 글은 완결성을 가지지 못합니다. 전반부도 후반부도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단편도 중편도 아닌, 이도 저도 아닌 기형적인 글에서는 기 작가의 기존 글들에서 느꼈던 독특한 개성도 느껴지지 않아 아쉬움만이 남습니다.


Gryhphoneman #1 - Mothman

A: 슈퍼맨, 스파이더맨과 같은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악한이 될 뻔한 남자의 운명을 보호군이 바꾼 이야기입니다. 재미있는 소재를 잡아내는 능력이 작가의 강점입니다. 그러나 전작 중 우수했던 몇 편에 비해 소재를 충분히 풀어내지 못한 것이 흠입니다. 연작을 쓰는 작가는 항상 글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각 편마다 기폭은 있으나 독자가 안심할 정도로 일정 수준은 언제나 소화해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연작인데도 불구하고 인물의 개성이나 글의 분위기가 들쭉날쭉하다면 치명적인 약점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B: 독특한 소재를 풀어내는 작가의 장점은 살아있습니다만, 서술이 방만해지면서 전작에서 느껴졌던 재기 발랄함이 보이지 않아 아쉽습니다. ‘나도 겁이 들긴 했었다.’같은 잘못된 표현, ‘이 경험은 나에게 꽤나 위험한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와 같은 번역투의 물주구문이 여전히 자주 눈에 띄는 것도 안타깝습니다. ‘하의는 역시나 스판덱스 소재의 운동복이나 전신 수영복 중에서 그 재질이 질긴 섬유로 이루어진 녀석을 골라잡았다’처럼 제대로 서술해야 할 부분인데도 얼버무리고 넘어가 버리는, 그래서 작가 자신이 실제로 조사하지 않은 게 아닐까 생각하게 하는 부분도 눈에 들어옵니다.
작가는 한결같이 한 문장이 한 단락이 되는 서술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만, 한 장면에서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는 동작이 단락 구분으로 단절되면서 전체적으로 서술을 더 방만하게 보이게 한다는 걸 염두에 두셨으면 합니다. 많은 문장으로 된, 긴 단락 때문에 자칫 가독성이 떨어지는 예도 있습니다만 짧은 단락만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도 가독성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Bon Voyage, Monsieur Lupin! - Mothman

A: 연작 시간보호군입니다. 다행히 앞서 올라온 몇 편에서 사라졌던 재기발랄한 상상력이 돌아왔습니다. 아르센 뤼팽과 로스타드 중위의 정체의 관련이 흥미롭습니다.


B: 이번 달의 시간보호군 연작 가운데 가장 시간보호군의 개성과 재미가 잘 살아난 글이었습니다. 아르센 뤼팽을 실존인물로 믿는 인물들의 압박에 못 이겨 뤼팽을 실제 만들어내려고 하는 초반의 진행도 흥미로우며 뤼팽이 나타난 이후의 행적도 인물의 개성이 잘 살아났습니다. 다만 이 글도 시간보호군 연작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단편으로 보았을 경우, 시간보호군 연작을 전혀 보지 않은 독자에게 독자적인 하나의 단편으로서 생명력을 가지고 있을지는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필자는 시간보호군 연작 안에서 이 글을 읽었고, 그래서 흥미롭고 즐거웠습니다만.


내가 너를 무심히 바라본다 - yzombie

A: 기독교 사학자가 발굴한 신, 신의 말을 대언하는 TV, 운명을 알게 된 자들의 선택 등 소재가 상당히 독특합니다. 흔히 신의 농간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운명과 신에 대한 고찰을 ‘발목’이라는 소재에 담아 묵직하게 전개해가려한 의도가 엿보입니다. 추상적인 주제를 상징성을 지닌 소재에 담아 구체적으로 풀어나간 글이지요. 많은 부분에서 비약이 심합니다. ‘발목’은 신이 죽을 운명을 만들기 위해 던진 도구로 등장하지만, 왜 하필 발목이었는지 보여주었다면 좋았을 것입니다. 또한 발목만 남은 사람들이 앞서 등장하는데도 어째서 러너의 발목이 신의 발목인지, 그 필연이 어디에서 오는지 분명하지 않아 혼란스럽습니다. 소재 선정은 잘하시는 편입니다만, 아쉽게도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머릿속에서 절반도 정리가 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작가가 충분히 소화하여 정리하지 못한 주제는 글 속에 온전히 담기기도, 독자에게 전달되기도 힘듭니다. 다수 발견되는 비약과 모순 그리고 주제를 형상화하기를 포기하고 말미에서 아예 주인공의 입을 빌어 설명해버리고 마는 부분 등이 증거입니다.


B: 세기말의 강렬한 이미지의 세계에서 인물들이 사실성 있게 움직입니다. 운명이 정해진 세계에서 사람들은 바뀌지 않는 미래에 절망하며 자살을 택하고, 사제였던 주인공은 신을 믿기 위해서 신을 죽이려고 합니다. 설정도, 세계도, 인물의 동기도 매력적입니다.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잘 잡혀 있고 탄탄한 문장이 글을 뒷받침합니다. 상당한 필력의 작가라는 걸 알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다만 작가의 전작도 다소 그런 면이 있었지만, 이번 글에서는 더더욱 상징적인 문장이 많이 등장하면서 설명은 그에 비해 부족해, 독자가 작가의 의도를 따라가기 급급하여져 버렸습니다. “그녀가 있던 자리에는 그녀의 발목만이 남아있었다. 그것은 세계가 생기기도 전에 신이 던져 놓은 의지였다.” 강렬한 이미지의 문장입니다만 발목이 어째서 신의 의지인지 사휘는 알고 있으나 독자는 알지 못합니다. 사휘는 모든 것이 예정되어 있음을 깨달았지만, 독자로서는 어째서 그런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글의 분위기와 문장에 빠져 끝까지 읽어 오면 작가는 사제와 사휘가 열심히 설명해주는 걸 들을 수 있을 뿐입니다.
글의 초반에 러너의 오빠는 실종된 것으로 나옵니다. 러너가 사제들에게 추적을 당하는 것은 오빠의 동생이기 때문이며, 사제들은 오빠인 김현승이 신을 불사르려 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러나 오빠의 결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사휘가 극장에서 본 ‘계시’가 김현승의 결말인지, 사휘 자신의 미래인지, 혹은 신의 미래인지도 불명확합니다. 사휘는 계시에서 불타오른 인물의 얼굴을 보지만 독자는 보지 못하며, 결말에 가서도 그 인물이 사휘가 아니라는 것만을 알 뿐입니다. 글에는 수많은 의문이 나타나는데 작가는 끝에 가서야 사변적인 말로 사휘의 입을 빌려 불친절하게 설명해 줄 뿐, 독자의 의문은 풀리지 않은 채 남습니다.
작가가 어느 정도 독자에게 보여주고 어느 정도를 감추느냐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물론 독자가 다양한 해석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스스로 구성하는 열린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그 경우에도 작가는 독자가 해석할 수 있는 적절한 힌트와 복선을 주어야 합니다. 작가가 하나의 이야기, 하나의 결말을 독자에게 이야기하려고 한다면 말할 것도 없겠지요.
댓글 2
  • No Profile
    히로웽 09.11.01 10:56 댓글 수정 삭제
    너무 의미를 숨기지 않았나 싶었는데 역시나였군요. 좋은 평 감사합니다!
  • No Profile
    하로리 09.11.02 14:15 댓글 수정 삭제
    긴 글 꼼꼼히 읽어주시고 평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읽고 참조해서 다음엔 더 좋은 단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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