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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가 끝난 이후에 독자단편에 올라오는 글 수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공모에 응모하시는 분들이 열심히 글을 끝내시고 잠시 숨을 고르고 계시는 것이라 추측해 봅니다. 작품 수는 많이 줄어든 한 달이었지만 작품의 수준은 그렇지 않아서 행복한 기간이었습니다. 항상 변함없이 창작에 매진하시는 작가들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108호에서는 우수작으로 민아 님의 ‘별의 끝과 시작을 이어서’를, 가작으로 앨즈 님의 ‘육아 스트레스’를 선정하였습니다. 선정되신 두 분 축하드립니다. 더욱 건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4월 16일부터 5월 15일 자정까지 올라온 총 10편의 글 중 심사대상이 된 글은 4편이었습니다. 심사대상에서 제외된 작품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분량미달: 마지막 이파리(밤조심, 원고지 33매), 진단서(김경수, 원고지 59.5매), 배설물순간이동술(민근, 원고지 13매), 비밀정원의 남과 여(liar, 원고지 35매)
2) 분량초과: 눈물손(이니 군, 원고지 220매)
3) 수정작: 멸종(엄길윤)


1. 기타나 by 고래
A: 신비한 집시 여인 아엘로와 ‘나’와의 에피소드를 담담히 전개하고 있습니다. 탄탄한 문장에 서술도 안정적이지만 결말에 와서는 이걸로 끝인가 하는 당혹감이 드는군요.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 의문이 드는 것은, 제목이 여자의 이름이 아니라 남자의 이름인 탓도 있겠습니다. 플라멩고를 잘 추는 투우사라는 이름의 뜻이 왜 제목이 되었는지, 남자의 개성이 이 이야기에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는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야기는 아엘로의 신비한 분위기에 초점을 많이 맞추고 있습니다만, 날개가 돋아나는 집시 여인이라는 설정이 단지 양념으로만 사용된 것 같아 아쉽네요. 계속 경멸당하고 소외당하면서도 자신의 행위를 계속할 수 밖에 없는 아엘로의 이야기가 좀 더 깊이 있게 다루어졌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날개’는 다른 세계로 뻗어가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이 글에서는 아엘로를 소외당하게 하는 구속이 되지요. 이런 상징들이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면 글이 더 깊이있는 이야기가 되었을 것 같아 아쉽습니다.

B: ‘오르가즘에 닿으면 날개가 펼쳐지는 여자’라는 독특한 소재를 사용하여 매우 개성이 뚜렷한 글입니다. 날개, 깃털, 보지 못한 마지막 카드 등 신비로운 소재를 배치하여 비현실적인 분위기가 이야기에 힘을 더합니다. 다만, 소재에 비해 주제를 드러내는 과정이 단순한 점이 많이 아쉽습니다. 이 글은 타인과 yes다른 개성을 가진 인물이 여러 실패 끝에 자신의 소외와 고독을 수용하고 평범하게 대해주는 존재(사람)을 만나는 주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타인과 다른 개성은 오르가즘에서 펼쳐지는 날개로, 소외와 고독은 그 날개를 본 남자들의 혐오감으로, 구원의 만남은 기타노와의 열린 결말로 대응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제와 대응되는 소재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소재의 독특함과 분위기에만 지나치게 기댄 것은 아닌지요? 주제에 대한 접근은 ‘노라 존스’의 이야기에서 암시 정도로 그칠 뿐이고, 아엘로의 소외나 고통의 본질보다 그것이 뿜어내는 분위기만이 글을 담뿍 적시고 있는 점이 아쉽습니다.


2. 소행성 by Leia-heron
A: 이 글의 핵심은 어떤 관계가 양자에게 주는 의미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이겠습니다. 익시온의 신뢰감과 유노의 직업적 의무감이 처음에는 안전하게 공존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서로가 서로를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이 익시온의 비극의 원인이 됩니다. 믿지 않은 이가 생존하고 신뢰한 이는 배신당해 죽음을 맞이한다는 역설적인 결말은 서술하기 따라서는 무척 매력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러나 이 글에서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에피소드가 흥미롭게 벌어지다가 결말에 이르러서 맥이 빠지는군요. 익시온이 유노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 반전이 되어야 하는데 밋밋한 느낌입니다. 유노에 대한 신뢰감이 깨어진 직후까지 감정의 고조와 절정이 절실하게 와 닿았으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세계 설정에 상당히 공을 들인 듯, 여러 면에서 설정이 돋보입니다만, 사건이 주는 임팩트는 상대적으로 잘 살아나지 않았습니다. 소행성의 정체가 생명체라는 걸 알아낼 때까지의 공포와 위기감을 좀 더 강렬하게 표현할 방법을 모색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사건의 흐름과 인간의 감정의 기복은 모두 글에 변화와 리듬감을 줍니다. 이들이 강약 조절이 없이 단순히 서술되면 글이 지루하게 느껴지기 쉽지요.

B: SF 창작이 어려운 점 중 하나는 기술과 인간이라는 상반된 요소를 자연스럽게 엮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술에 치중하든, 인간에 치중하든 좋은 SF는 기술과 인간의 어울림이 자연스러운 것이겠지요. 이 글은 ‘워프 항해’라는 기술적 요소와 ‘스페이스 와이프’라는 인간적 요소를 함께 엮어가고자 한 글입니다. 이 경우에는 두 요소가 어떤 식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지가 이야기 구성의 관건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글은 장기간 워프 항해로 스페이스 와이프라는 것이 생겼다는 사실 외엔 워프 항해와 스페이스 와이프가 서로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서 워프 항해와 관련된 SF적 상상력과 스페이스 와이프와 관계되는 이야기가 서로 단절되면서 이야기 자체가 이분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워프 항해로 인해 생겨난 스페이스 와이프와 관계에 집중하거나, 반대로 스페이스 와이프와의 관계에서 워프 항해가 차지하는 비중을 높이는(단순한 배경으로만 두지 않고) 식으로 두 요소의 균형을 맞춘 자연스러운 이야기가 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글입니다.


3. 육아 스트레스 by 앨즈
A: 결혼 후 바뀐 생활에 스트레스와 권태감을 느끼는 남자의 최후를 그리고 있다고 요약하려니 이 글의 재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것 같군요. 여자의 정체가 나타날 때까지 시치미를 떼다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솜씨가 돋보입니다. 낙영의 최후 이후에 ‘세븐스타’라는 연결고리를 가지면서 새로운 사냥감 경태의 등장까지 이어지는 엔딩도 흥미롭습니다. 육아 스트레스로 인한 작은 일탈이 비극을 초래하는 이야기는 곱씹어보면 참 섬뜩한 이야기입니다만, 현실에 만족하는 심리의 묘사가 그럴싸해서 쉽게 이야기에 빠지게 만드는군요. 흔히 다루어지는 여성의 육아스트레스가 아니라 남성의 육아 스트레스를 다루면서 오히려 아내가 간접적인 가해자로 바뀌는 심리상태가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주인공 낙영이 먹히는 대상이 여자의 ‘아이’로 지칭되는 괴물들이라는 것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습니다. 결혼 전의 소박한 행복이 사라지면서 청교도가 되어야 할 것 같은 압박감, 아이가 태어나면서 자신의 예전 삶은 말 그대로 먹혀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죠. 여자의 마지막 대사가 “아빠가 너희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두들 알고 있지?” 라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소름끼칠 정도로 적절하지요.
여자의 입장에서는 남성 중심의 육아스트레스만을 다루는 시점에 조금 서운한 느낌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만, 가족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모두다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는 걸 받아들인다면 육아 스트레스도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B: 정확한 문장이나 세련된 표현에 대한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글입니다. 그러나 구성이 탄탄하고 무엇보다 소재를 탄탄히 엮어간 점이 돋보였습니다. 육아 때문에 변화된 가족관계와 역할로 인해 남자가 느끼는 소외감과 책임감은 자식에게 잡아먹히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지만, 이는 남편이나 아버지로서는 차마 표현하기 힘든 직설적인 감정입니다. 작가는 이러한 감정을 묘한 여인과 여인이 기르는 괴물로 형상화하였습니다. 매력적이지만 무자비한 여자와 이빨을 드러내고 덤비는 괴물은 매력을 잃었지만 여전히 연민이 느껴지는 아내와 순진무구한 자식의 그림자입니다. 즉, 이들은 낙영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무의식 아래 억압된 아내와 자식에 대한 공포입니다. 실체로 형상화된 이들은 낙영을 공포로 몰아놓고, 사랑을 강요하며 결국 그를 먹어치웁니다. 가장이 아내와 태어난 자식에게 느끼는 압박, 남편이나 아버지의 역할로 인해 소진되어 버리는 ‘자신’을 상징을 통해 잘 풀어내었습니다. 주제를 직설적으로 다루지 않고 다양한 상징과 중의적인 대화를 사용하여 자연스럽게 풀어낸 구성이 인상적입니다.


108호 독자 우수단편 가작에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4. 별의 끝과 시작을 이어서 by 민아
A: 동화같은 대사와 서술은 자칫 잘못하면 이야기를 가볍게 만들어버릴 수 있다는 위험이 있지만, 이 글에서는 그러한 위험성도 아슬아슬하게 극복한 것 같습니다. 성취를 위해 악마와 계약한다는 흔한 이야기와 악마와 사랑에 빠지는 흔한 이야기, 그 둘이 하나로 결합되면서 독특하고 인상적인 결말까지 이어지는 이야기가 명쾌합니다.
가수를 사랑한 어둠의 존재는 오페라의 유령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만, 가해자인 악마 역시도 제대로 된 악마가 아니라 유혹의 대상인 에니트와 마찬가지로 부모에 대해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는 재능 없는 젊은이라는 점이 이 이야기의 매력입니다. 악마에 유혹에 넘어가 성취를 택한 이가 맞을 수 있는 결말은 비극뿐이라는 에니트의 체념어린 고백 이후에 악마 슈미트의 놀라운 고백이 이어지면서, 이야기는 전혀 다른 결말로 이어지지요. 두 사람이 선택한 결말은 그들에게 순수하게 박수를 보낼 수 있는 지옥의 무대라는 결말이 신선합니다.
다만 에니트가 어떻게 슈미트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마지막 결말을 받아들였는지 궁금증이 이는군요. 에니트는 슈미트의 말대로 전혀 오염되지 않은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미트의 사랑을 받아들여 지옥행을 택한 것인지, 아니면 에니트의 생각대로 오염된 영혼이 지옥에 떨어진 것인지. 아마도 작가가 의도하신 결말은 전자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자신의 의지로 지옥을 선택하기까지의 에니트의 심리도 독자 입장에서는 무척 궁금하네요.

B: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나가면서 독자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흡입력이 있는 글입니다. 다소 진부할 수도 있는 소재이지만, 섬세한 구성으로 신선함을 더한 점이 인상적입니다. 에니트와 슈미츠가 단순히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재능 없는 젊은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 그리고 두 사람의 공통점이 결국 모든 사건의 원인이었다는 이야기가 아주 재미있게 엮어졌습니다. 에니트의 관점과 그녀의 영혼을 탐내는 악마의 이야기였다면 평범한 이야기로 그쳤겠지만, 재능 없는 두 사람의 공통점이 덧붙여지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로 변모하였습니다. 또한 이미 예정된 비극적인 결말을 향해 가는 것 같던 이야기가 의외의 반전으로 돌아서면서 인상 깊은 결말을 이끌어내었습니다. 탄탄한 이야기의 구조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장르문학에서 중요한 요소인 ‘재미’를 충실히 살린 것이 강점인 글입니다.

108호 독자 우수단편 우수작에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거울 독자우수단편에 선정되신 분들께는 책을 한 권씩 보내 드립니다. euseoha @ gmail. com 으로 우편물 수령할 주소, 성함, 전화번호 (택배 발송시 필요)를 보내 주세요.
댓글 3
  • No Profile
    엄길윤 12.05.26 02:18 댓글 수정 삭제
    헉!! 수정작은 심사를 받지 못하는군요! 이제야 알았습니다..ㅠㅠ 이번호 거울도 아주 풍성하네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다 갈게용^0^
  • No Profile
    민아 12.05.26 03:09 댓글 수정 삭제
    부족한 작품을 우수작으로 선정해주신 심사위원 분들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다만, 제가 현재 외국에 거주 중이다보니 상품을 받기 힘들 것 같습니다. 우수작으로 선정된 것만으로도 커다란 영광이니, 상품은 정말 아쉽게도 거절해야 할 것 같습니다 ㅠㅠ

    다시 한 번 우수작 선정 감사드립니다.
  • No Profile
    앨즈 12.05.28 20:53 댓글 수정 삭제
    기본적인 국어 공부의 모자람이 느껴져 굉장히 부끄러웠는데,

    가작으로 뽑혀 있어서 너무 놀랐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네요.ㅜ_ㅜ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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