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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3기 독자우수단편 선정단 2조 인사드립니다. 첫 인사이니만큼 이번에는 두 선정위원이 각각 인사를 드리려고 합니다.

김보영입니다.
제 비평이 비평가보다는 작가의 눈에 가까울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조심스럽게 발을 들여놓습니다. 주관적일 수도 있고 취향이 있을지도 모르고, 다른 비평가의 눈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눈도 필요하신 분이 있을 것이고, 저 이외에 다른 분들도 계시니 함께 보고 판단하셨으면 합니다.
제 눈에 좋은 글이 있고 칭찬하고 싶은 글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글은 작가의 유명세나 인지도, 등단여부와 상관없이 존재합니다. 그 분들께 조금이라도 칭찬과 격려를 해드리고 싶어 다른 선정단과 함께 합니다.

앤윈입니다.
소설 쓰기에 왕도가 없듯이 어떤 비평에도 당연히 정답은 없을 것입니다. 결국 글을 쓰는 사람은 작가이므로, 비평에 합리적인 부분이 있다면 작가 자신이 가장 먼저 알아챌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비평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합리적 지점들을 가지고 있었기를 바라고, 창작에 많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참신한 발상들도 많았고, 익숙한 이야기들을 새롭게 변주해내서 흥미로운 지점을 만들어낸 작품들도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세상과 어떠한 관계를 맺는 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고찰할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이 공간에서 많은 소통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모로 잘 부탁드립니다.

113호에서는 가작으로 사이클론 님의 <도시아이>를 선정하였습니다. 다음 달에도 작가분들의 건필을 기원합니다.

9월 16일부터 11월 15일까지 올라온 글은 모두 19편입니다. 이번 선정단은 짧은 소설도 심사하기로 했습니다. 단지 짧은 소설은 짧은 만큼 평도 짧아질 수 있습니다.  그 점은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점프 - 숨쉬는 돌
A:  정교한 설정이 돋보입니다만 장편의 줄거리에 가깝습니다. 단편소설은 장편과 달리 설정을 나열할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에피소드를 통해 표현되지 않는 설정은 있을 필요도 없고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실제로 표현되었기 때문에 앞의 설정설명을 전부 삭제해도 좋습니다.
예정된 죽음을 건조하게 걸어가는 첸과 우주선의 행보와 은은한 반전이 아름답습니다만 불필요한 설정이 감흥을 방해합니다. 이야기는 차라리 짧아도 상관없습니다. 짧으면 짧아서 시간이 없었다고 변명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설정에 늘어놓을 시간은 있으면서 이야기는 풀어가지 않은 것은 예산을 쓸데없는 곳에 낭비했다고 비난을 들을 만한 일입니다.

B: 우주비행에 매료된 항해사의 특별한 로맨스입니다. 하지만 초반에는 지루함을 견뎌내기 위해 상당히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섬세한 설정이다보니 설명을 쓰면서 즐거워했을 작가의 얼굴이 눈에 그려지는 듯 합니다. 하지만 매력적인 첫 문장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설정은 분명히 선명하고 섬세할 필요가 있지만, 그것을 반드시 소설 전반에 다 드러낼 필요는 없습니다. 한 세계에 대한 설명서가 아니라 소설이라면, 중요한 건 어떤 세계냐보다는 그 세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입니다. 굳이 긴 설명을 덧붙이고 싶다면 그 설정 자체에 주인공의 심리가 투영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어떨까요. 단, 마지막 장면은 참 아름다워요.


가객 - 숨쉬는 돌
A:  이 소설이 ‘마지막 점프’보다 좋은 까닭은 지면을 낭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은하이야기’ 옴니버스 시리즈의 어딘가에 끼어 있을 것 같은 작고 아름다운 이야기고, 한편으로서의 완성도는 부족한 편이지만 옴니버스가 의도라면 성공적이라고 봅니다.
단지 어떻게 해서 엔젤은 ‘그런’ 망상을 하게 되었는지, 그 대상은 어째서 할인지, 방사능이 어떻게 사고에 영향을 끼치며 왜 망상을 야기하는지에 대한 설득력이 조금 더 있었다면 좋았겠습니다. 중력적응장애 때문에 갑자기 쓰러지고 의식을 잃는 것도 좀 더 자연스럽게 설명이 되면 좋겠습니다.

B: 전 자체에 압도적으로 무게가 실려있는 엽편입니다. 안타까운 점은 반전에 무게를 싣기에는 그 과정에서 긴박감을 느끼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사건 그 자체는 모두 앤젤의 입을 통해서만 설명됩니다. 그리고 그 형식에 비해서 대사를 처리하는 방식이 세련되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초반에 형성된 서정적인 분위기가 세련되지 않은 대사들을 통해서 깨져나갑니다. 대사로 서사를 전개해 나갈 생각이라면, 대사를 사용하는 방식을 좀 더 고민해보셨으면 합니다.


코스모스 - CB진우
A:  저는 진부하다는 평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런 평을 들은 작가는 어디서부터 무엇을 고쳐야 할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몇 부분을 개선하면 좋다고 지적하기에는 전반적으로 많이 어려서 훈련이 많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누구나 젊음을 갖고 태어나고’ ‘언젠가는 내려놓는다’는 말은 독자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습니다. ‘그게 언제일까?’ 하는 질문은 어렵지 않고 ‘추억을 많이 만들라’는 말은 멋지지 않습니다. 그 말이 독자에게 멋지거나 어려우려면 좀 더 많은 기법이 필요합니다.
‘시간은 빠릅니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멍청이는 없길 바랍니다.’ 같은 말은 철학교수는 커녕 과학자, 학생, 일반인, 작가, 그 어떤 사람도 할 만한 말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소설이 있고 독자에게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감동을 주기도 하고 웃음을 주기도 합니다. 기쁨이나 슬픔, 때로는 공포나 분노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부함과 지루함을 주는 소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루함을 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자신의 진실이 아니라 자신이 아는 것을 쓰는 것입니다.  SF를 쓰는 사람이 빠지기 가장 쉬운 함정이기도 합니다. 앎이 아니라 진실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앎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듯 보이는 작가들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두가 자신의 진실을 이야기합니다. 앎이 독특하고 고유한 사람은 세상에 몇 안 됩니다. 하지만 진실은 모든 인류에게 독특하고 고유합니다.

B: 이야기의 중심 서사는 뒤에 있는 민혁과 누이의 재회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재회까지 가기 전에 교수와의 지루한 대화에서 진이 모두 빠지고 맙니다. 민혁과 교수의 대화는 어떤 서사도 없이 관념적인 대화 그 자체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누이와의 재회 장면 역시 서사의 얼개가 너무 헐겁다보니 감정을 관념적으로 묘사하는 데에서 그치고 맙니다. 이 소설에는 설정만 존재할 뿐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좀 더 진지하게 자신의 내부로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핼로, 소돔 - 라티
A:  소돔과 고모라의 신화를 좀비와 핵폭탄을 소재로 삼아 현대적으로 각색한 상상력이 재미있습니다. 단지 대부분의 사람이 알고 있는 유명한 이야기를 각색할 때에는 훨씬 더 세련된 기술이 필요합니다. 소돔은 이미 그 단어 자체가 ‘인간의 이기와 타락으로 인한 멸망’을 의미하는 전형적인 말이 되었고 수도 없이 변주되어 왔습니다. 이 작품은 조금 덜 노골적이거나 조금 더 비전형적인 시각이 들어갔다면 더 좋은 작품이 되었을 겁니다.
주인공의 첫 문장을 욕으로 시작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주인공의 첫 문장은 독자와의 첫 인사입니다. 낭비하지 마세요.
주석은 신중하게 다세요. 작가는 내가 아는 것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는지 가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의미 없는 주석은 작가의 지식만 드러낼 뿐입니다.

B: 신화적 소재들은 재구성하기 매우 좋은 소재들입니다. 이야기 내부에 인간 본질에 대한 통찰과 무의식이 깃들어 있기도 하고요. 자연스럽게 뒷이야기를 예상할 수 있었지만 신화적 이야기를 어떻게 변주할까, 기대되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성경에서는 롯의 부인에 훨씬 더 많은 상징을 부여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는데, 이 이야기에서는 마지막 장면에서 나타나는 롯과 두 딸의 교합을 묘사하는 데에 더 무게가 실려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의 처절함이 좋습니다.
그러나 맥락이 독자에게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모두에게 잘 알려진 이야기의 무게를 수정하는 것은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소설 안에서 롯의 부인이 하는 역할은 너무도 미미하고, 그에게 예언과 주의를 준 사람은 없습니다. 롯이 최후의 의인보다는 최후의 악인으로 그려진다는 점은 매혹적이지만, 다른 부분들은 어디에서 서사를 ‘뒤집거나’ ‘재해석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습니다. 오래 된 이야기를 끌어왔을 때는 현재적 의미를 찾아주어야 합니다.


아젠트 - 노 새
A:  필력이 안정적인 편이고 흥미로운 서두로 시작합니다. 어째서인지 모든 면에서 너무나 닮은 세 여자가 어쩐지 닮은 세 무속인으로부터 ‘AZENT'라는 동일한 메시지를 듣습니다. 이후에 탈영병 사건이 일어나고 그들을 제거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이 드러나며 속도감 있게 전개됩니다.
단지 여자와 무속인, 탈영병과 AZENT, 그리고 복제인간의 설정마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신탁은 어떤 형태로든 받을 수 있겠지만 한국인이 알파벳으로 된 신탁을, 그것도 아무리 복제인간이라지만 세 명이 동시에 받는 미스테리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비밀은 너무 단순합니다. 사실 저 단어는 무슨 의미든 될 수 있습니다. 어느 신께서 내린 신탁인지 몰라도 의미도 없고 미리 알 수도 없고 일어난 다음에야 알 수 있고, 알아 봤자 아무 소용도 없는 저런 신탁을 왜 힘들여 내렸을까요. 이런 문제는 억측의 황제인 명탐정 코난도 알아낼 방법이 없습니다. 알 방법이 없는 문제는 독자에게든 누구에게든 내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알아내면 뭔가 도움이 되어야죠.
AZENT가 무엇일까 하는 의문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은 재미있지만, 좀 더 독자들에게 공정한 규칙으로 게임을 만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B: 복제인간과 그들의 존재에 대한 고찰이라는 고전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매우 익숙한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익숙한 안정감이 느껴지지 않는군요. 첫 장면에 등장하는 세 주인공의 대사부터 작가에 대한 신뢰를 급격히 잃습니다. 대사가 지나치게 통속적인데다가 압축이 전혀 없어서 불필요한 부분이 많습니다.압축성이 없는 것은 대사만이 아닙니다. 탈영병과 점술인과 세 주인공의 에피소드가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습니다. 에피소드들이 등장한 이유를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AZENT라는 글자 자체에 착안해서 추리 게임을 진행하려고 한 것 같으나, 그다지 재미있는 추리는 아닙니다. 왜 이런 걸 추리해야 하는지조차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적어도 왜 이것이 등장했는지, 여기에서 어떤 감정을 조율하고 싶은지는 작가의 머릿속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위아더하나 - 유이립
A:  우리가 흔히 보는 좀비들의 기괴한 집단행동, 한쪽으로 몰리는 방향성, 본능에 충실한 성향을 ‘마음이 공유된다’는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 설득력 있고 재미있습니다. 흔히 인간 VS 좀비의 구도에서는 인간의 심리에 집중하는데, 이 소설은 좀비의 심리에 집중하는 면이 독특하고, 그 심리묘사도 세심하고 논리적입니다. 집단의식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개인의식’ 그 개인 의식이 독재자가 되었다가 왕따가 되고, 그 사람마저 수용되어 집단 전체가 하나의 인식을 갖게 되는 전개가 박진감 있고, ‘하나의 의식’을 갖게 된 순간의 혁명적인 변화의 묘사도 아름답습니다.
조금만 다듬으면 좀비소설 중에서도 돋보이는 작품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 소설의 아쉬운 점은 문장입니다. 문장에 비문이 많습니다. 다소 현실적인 문제인데, 보통의 편집자는 문장훈련을 철저하게 받기 때문에 일반 독자보다도 더 문장에 예민합니다. 문장이 좋지 않아도 독자에게는 환영 받을 수 있습니다만, 결국 소설이 출간되려면 독자보다 먼저 편집자를 통과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작가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문장은 그리 가볍게 여길 사항은 아닙니다. 유려하거나 아름다울 필요는 없지만 비문은 곤란합니다.
문장이나 맞춤법은 기술적인 문제라 작가의 장벽 중에서는 낮은 장벽에 속합니다. 문장이 길어지면 주어와 서술어가 일치하는지 항상 신경을 써 주세요. 수동태는 쓰지 마세요. 명사를 남용하면 번역어처럼 보입니다. 명사 대신 동사를 쓰세요. 훨씬 문장에 힘이 생깁니다. <격렬한 반발을 했다>는 <격렬하게 반발했다>, <허전함을 느꼈다>는 <허전했다>로. 맞춤법도 신경 써 주세요. 쉬운 맞춤법을 틀리면 작가의 신뢰도가 하락합니다.
문장 이외의 불만은 없는 소설이니 버리지 말고 다듬어 좋은 성과를 내시기 바랍니다.

B: 권력과 의지, 집단과 개인에 대한 통찰이 훌륭한 작품입니다. 특히 다른 좀비 집단이 나타나서 권력을 쥔 ‘녹색 눈’을 몰락시키는 장면, 생존을 위협하는 적 앞에서 단결하는 장면 등은 집단에서 나타나는 권력과 관계의 문제를 매우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뛰어난 통찰에 비해서 아쉬운 점이 많은 소설입니다. 우선 문장의 문제가 있겠습니다. 대부분의 문장이 뜻 자체를 분명하게 전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복문과 비문이 많고 문장의 의미를 불분명하게 하는 수동태도 매우 많습니다. 또 하나, 문장에서 파생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묘사입니다. 녹색 눈이 권력을 휘어잡는 과정은 박진감이 있는데도, 괴로워하는 좀비들의 모습이나 ‘뇌가 조여 고통을 받았다’, ‘머릿속을 울리는 승리에 대한 파동과 이미지들이 뇌속을 조금의 틈도 남기지 않고 빼곡하게 메웠다’ 같은 장면은 매우 불명확합니다. 묘사를 하기 위해서는 이 서사를 하나의 장면으로 전달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고립감’, ‘어린 애 같은 기분’, ‘비겁한 마음’ 같은 관념적인 수사들을 사용해서는 장면이 뚜렷하게 그려지지 않습니다.
한 가지를 더 지적하자면 매우 특이한 제목입니다. 특이한 제목은 강한 임팩트를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양날의 칼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의 경우 ‘위아더하나’라는 영어와 한글이 뒤섞인 제목을 사용했는데, 왜 이런 제목을 사용했는지도 알 수 없고, 내용 안에 제목이 녹아들지 못하니 오히려 제목의 독특함이 매우 거슬립니다.


때로는 개를 키우는 게 현명한 일이 될 수도 있다. - 망가진 베이스
A: 자살이 횡행하고 죽음이 떠도는 디스토피아의 근미래 세상을 떠도는, 어느 하드보일드한 살인자의 이야기입니다. 근미래일 거라는 짐작을 하면서도 이 세계에 일어나는 사건의 대부분은 우리가 지금 신문지상에서 보는 사건과 유사합니다. 일상적이고 무감각한 자살, 자살, 끝도 없는 자살. 희망이 없는 삶, 미래가 보이지 않는 시대. 자살의 메카가 된 한강교. 이 시대의 한국이라는 사회 자체가 블레이드 러너에 등장할 만한 미래 디스토피아의 세계라는 것을 절감하게 합니다. 윤지평이라는 사람의 죽음의 원인을 파헤치는 가운데 희망이 없는 주인공이 자살하지 않을 이유를 당장 돌볼 사람 없는 개 한 마리에서 찾는 것은 그만큼 더 현실감이 납니다.
그 갈등의 중심에 이북이나 제 3세계에서 온 사람들, 혼혈인과 순혈 국수주의자의 대립이 있습니다. 경쟁이 심화된 사회에서‘가장 생존싸움이 치열한’밑바닥에서부터 갈등이 번지는 것은 현실적이기는 합니다만, 한정된 면밖에 볼 수 없는 단편에서는 자칫 그것이 이 디스토피아 세계의 원인이나 대표적인 현상인 것처럼 보여질 수 있습니다.
세계를 묘사하는 능력이 나무랄 데 없고 건조한 절망감이 잘 표현된 작품입니다.

B: 세계에 대한 비관적 전망과 인간의 절망을 잘 섞어낸 좋은 작품입니다. 여러가지 요소들이 적절하게 맞물리면서 소설의 분위기를 훌륭하게 형성하고 있습니다. 윤지평의 죽음이라는 하나의 소재를 중심으로, 주인공의 비관적이며 하드보일드한 캐릭터, 건조한 문체,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세련된 방식으로 드러납니다. 절망을 그리는 작품은 작가 자신의 감정에 매몰되기 쉬운데,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 매우 좋습니다. 그 와중에 개 한 마리에 의지하는 주인공의 심리 묘사는 하드보일드한 서사에 강한 균열을 냅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끊임없이 일어나는 범죄의 기저를 제대로 그리지 못했다는 느낌입니다. 디스토피아적 세계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환멸과 냉소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만, 이렇게까지 범죄에 깊숙이 연루되어 있는 주인공이 범죄의 기저를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개를 등장시키면서 보여준 연민을, 세계관 전체로 확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연민을 작품 내부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연민이 일어나는 사건들에 개연성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Kyrie – 뻐꾸기
A: 한 편의 그림동화 같은 작은 소설입니다. 기억을 잃고 반복되는 죄를 짓고 반복되는 재판을 받는 죽은 자의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소년이 구원을 받는 과정이 생략된 기분이 들어 아쉽습니다. 단순히 신의 자비로움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소설적이기보다는 종교적입니다. 소설이라면 그 안에서 설명해야죠.

B: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얽혀 있는 실마리들을 한 번에 매끄럽게 풀어내는 솜씨가 뛰어납니다. 소년의 구원을 가장 중요한 소재로 잡고 들어갔다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작가가 책임져 줄 필요가 있습니다. 매끄럽게 소년과 키리에의 관계를 풀어갔음에도, 마지막 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풀려 나오지 않았다는 생각에 막연해집니다.


거울설화 - 너구리맛 우동
A: 거울을 소재로 하나의 민담, 설화의 형식으로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세계민담모음집’이나 ‘한국의 민담설화’ 어딘가에 몰래 끼어 들어가 있어도 자연스러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몰래 끼어 들어갈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민담과 설화가 단순한 듯해도 인류 역사에 존재했던 밤하늘의 별처럼 많은 이야기 중에 살아남은 이야기들입니다. 요소요소에 인간의 무의식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을 의도해서 만들고자 한다면, 논리와 이성으로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려는 것보다 더 어려운 도전이 될 겁니다.
아마도 이 이야기는 어른보다는 아이들이 더 잘 평가할 수 있을 겁니다.
굳이 어른의 눈으로 보자면 공주의 자살이나 감이 사람의 눈을 뽑게 되는 순간이 급작스럽고 극단적이라 독자가 이입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거울 속에 비치는 상이 사실 흉내내기 변신요괴라는 설정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그 요괴의 정신을 빼놓기 위해 매일 공주가 춤을 춘다는 전개가 재미있었습니다.

B: 민담의 형식을 빌어온 이야기입니다. 춤을 추는 공주들, 자기 자신과 사랑에 빠진 미녀, 거울 속의 요괴 등 익숙한 소재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이 이야기가 어떤 현실성을 갖는 것인지, 왜 민담의 형식을 빌어왔는지에 대해 짐작하기가 어렵습니다. 단순히 익숙한 소재들을 결합시키는 것만으로는 이야기의 의의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장미덩굴을 그리는 페페 - 너구리맛 우동
A: 앞서 이야기와 비슷하게 어디선가 본 듯한 민담의 구조를 갖고 있으면서도 더 흥미로웠습니다. 단지 이야기가 시작하려다 끝나는 느낌이 아쉽습니다.
짧은 이야기에서 독자에게 감흥을 주는 것은 긴 이야기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입니다. 데스카오사무는 “장편을 쓰려면 단편을, 단편을 쓰려면 네 컷 만화를, 네 컷 만화를 그리려면 한 컷 만화를 그려보라”고 했다고 합니다. 언제나 그것이 더 어렵습니다.
거짓말이 설화가 되어 전해진다는 설정은 좋으나 독자가 그 느낌을 받기 전에 이야기가 끝납니다. 왜 주인공이 선조처럼 거짓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그 거짓말이 왜 굳이 존재하는 설화를 파괴하는 것이어야 하는지, 짧게 언급된 ‘후예로서의 어떤 자부심’ 때문이라고 상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느낄만한 시간이 적습니다.
하지만 짧은 이야기를 요구하는 지면도 있고, 길이를 생각하면 이대로도 좋습니다.

B: 무게감 있는 전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야기가 사실은 거짓말(예술)이었고, 예술의 아우라가 현실의 아우라를 압도한다는 이야기는 감정적 파장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현실의 삶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효과도 있고,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도 있어 더욱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주인공이 선조의 거짓말을 알면서도 그 위에 새로운 설화를 덧붙이려고 하는 장면은 어떠한 ‘전설의 탄생’을 연상시켜 짜릿함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이런 식의 거짓말을 지어내는 이유와, 거짓말의 서사와 주인공의 삶에 개연성을 부여해 준다면 좀 더 탄탄한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극우의 길 - 니그라토
A: 주인공은 누이의 불행과 자신의 불행을 이유로 국내의 모든 외국인 노동자를 포함해서 외국인 노동자의 권리를 지켜주는 대통령까지 증오합니다. 아버지는 원하지 않는 대통령이 당선되었다는 이유로 자살까지 하고 주인공은 누이의 죽음과 관계없는 외국인들을 죽이러 다닙니다. 등장인물의 분노와 행동, 불행의 원인을 돌리는 방향, 불행에 대처하는 방법 모두가 비정상적입니다. 정신병적인 주인공의 모습은 잘 표현되었습니다만 작가 자신의 생각이나 증상이라고 착각되는 면이 심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B: 소설 내의 캐릭터가 일관되지 못합니다. 주인공부터 그의 누이, 아버지까지 일관된 성격을 보여주는 캐릭터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삼인칭 시점을 채택하고 있음에도 시점의 객관성 역시 보장되지 않습니다. 김경식은 정치적으로 매우 모순된 상태에 있는 게 분명해 보이지만, 작가 자신이 그것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습니까? 자신의 등장인물에 대해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작가가 주인공에게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방법을 익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실감이 없는 설정들이 너무 많은데다가 상황을 묘사하는 장면 역시 매우 단선적입니다. 서사의 흐름뿐만 아니라 상황에 대한 그림을 제대로 그리고 묘사를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영원한 체제 – 니그라토
A: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 사악한 개인보다 더 사악한 국가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선과 윤리라는 미명하에 체제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설이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읽힐 수는 있습니다만 모든 소설이 그러합니다. 소설도 생물과 같아, 부모의 의도와는 달리 자신만의 말을 하며, 독자적인 생명력을 갖습니다.

B: 지배 이데올로기가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났을 경우,얼마나 잔혹하게 개인에게 강요될 수 있는지를 디스토피아 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 좋습니다. 자칫 선전문학처럼 빠질 가능성도 있었으나 소아성애자라는 극단적 범죄를 중심으로 서술되었기에 그런 함정을 잘 빠져나가 권위적 체제에 대한 공포를 강렬하게 전달합니다. 분량이 짧고 역시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단선적이라는 점이 아쉽습니다만, 좀 더 섬세하게 다듬으면 앤서니버제스의<시계태엽 오렌지> 같은 작품들의 주제의식을 잘 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타는 세상 속에서 – 엄길윤
A: 독특하고 흥미진진한 재난물입니다. 조금씩 번져가서 결국 세상 전체를 삼켜버린다는 점에서 좀비물과 맥락을 같이 하지만, 여기서 번지는 것은 좀비 바이러스나 뱀파이어가 아니라 불입니다. 자신을 태우려던 불이 괴물처럼 번져 사람만 골라서 태우기 시작하고, 결국 도시 전체를 삼키고 맙니다. 이것이 자기 책임이라는 것을 느끼면서도 살고자 하는 의지를 불태우는 결말이 인상적입니다.
단지 도시 전체의 재난을 다루는데도 주인공과 외부인과의 교류가 없다시피 하고, 사회나 사람들이 불에 대처하는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기 때문에, 가끔씩 나오는 주인공의 독백처럼 ‘그냥 꿈인가’ 싶을 만큼 현실감이 떨어지는 면이 있습니다.
키 170에 인터넷에서 옷을 주문할 수 있고 지방이라지만 대학을 나온 사람이 쓰레기도 이런 쓰레기가 없는 사람인지는 의문이 들고, (지금 대한민국 국민 99%를 쓰레기로 몰아붙이는 사람을 갖고 독자의 공감을 얻겠다는 겁니까?)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사고의 변화 없이 결말을 낸 것도 아쉽습니다.

B: 현실과 환상이 구분되지 않는 설정은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위험부담도 따릅니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데 그 점을 매력이라고 짚기에는 불에 대한 설명이 너무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조가 심한 주인공의 캐릭터 그 자체로 문제라고 할 수는 없고, 주인공이 그런 캐릭터가 아니라면 마지막 장면의 효과가 현저히 떨어질 것이지만, 그럼에도 주인공의 성격 설정에는 여러 결함들이 있습니다. 이 소설 내부에서 주인공이 가지는 갈등상황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조와 불이라는 사건 그 자체뿐입니다. 주인공이 대화를 나누거나 사건을 만들어가는 등장 인물이 한 명도 없기 때문에 작가가 그려놓은 세계 자체가 매우 흐릿하게 느껴집니다.


finite infinite – 돌
A: 무한차원을 넘나들며 무한의 방식으로 무한의 사랑을 하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묘사와 표현이 다소 감정적이기는 하지만 풍요롭고 아름답고 감각적입니다.
하지만 과함은 모자람만 같지 않아, 지나치게 묘사에 치중하다 보니 전달력이 떨어지는 면이 있습니다. 작가의 감정이 독자보다 과하면 독자는 훨씬 빠르게 식습니다.
그런데 양자 안드로이드라고 해서 관찰에 의해 고정되지 않아요. 인간도 양자 집합체입니다만 차원을 넘지는 못합니다. 양자역학이 미시세계를 넘어서 거시세계에 적용되는 설정은 매력적이고 양자역학을 소재로 한 소설에서 많이 쓰이기는 합니다만, 그런 설정을 쓰려면 구라든 뻥이든 갖다 붙이기든 대충 얼버무리기든 뭐든 필요합니다.
대충 얼버무릴 때에는 서두에 설정부터 내보이는 것은 위험합니다. 독자가 설정부터 생각하게 만드니까요. 스타워즈는 ‘옛날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지 ‘워프의 작동원리는’ 하고 시작하지 않습니다. 그랬다간 독자가 영화관 나오면서 워프의 작동원리 이야기만 하게 될 거예요.

B: 사랑을 따라서 수많은 차원을 건너 뛰는 운명적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강한 감정은 강한 여운을 남기게 마련이죠. SF같은 장르적 화법을 가져왔을 때, 그 경이감은 극대화 될 수 있습니다. 좋은 포인트를 파악하고 들어간 것 같습니다만 결과물은 생각만큼 성공적이지 못하네요.
아름답고 서정적인 문장들이 계속해서 등장하는데도 감정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줄기를 따라가기보다는 오히려 과잉된 감정의 묘사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문장에서 드러나는 화자의 감정은 압도적이지만 로맨스의 상황이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감정을 따라가는 데에 무리가 따릅니다. 작고 내밀한 한 순간을 우주적 순간으로 도약시키기 위해서는 단순히 감정을 늘어놓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순간이 감정 뿐 아니라 서사적 맥락으로도 형상화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두 연인의 로맨스가 반드시 ‘특별’해야만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매우 평범할 수도 있습니다. 단, 그 이야기의 고유성이 있어야 합니다.


합리적 마녀사냥 – 비통
A: 깔끔하고 단순한 소설입니다. 어린 아이들을 ‘마녀’로 몰아 살해하는 청부업자가 만연하는데, 이유는 타임머신을 통해 그들이 미래의 범죄자가 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신념을 갖고 살던 주인공은 그 칼날이 자기 가족에게 돌아오자 비극적인 선택을 하고 맙니다.
독특하거나 새롭지 않은 이야기로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그렇지 않은 소설보다 더 정교하고 세심한 묘사가 필요합니다. 상황이 독특하면 상황만으로 전달이 됩니다. 상황이 평이하다면 심리묘사에 공을 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마지막 주인공의 선택이 단순하고도 고민 없는 선택이라, 독자를 맥 빠지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소설이란 ‘주인공이 무엇인가를 이루려 하는데 그것이 어렵다’로 요약할 수 있다고 합니다. 주인공이 독자보다 먼저 포기하면 곤란합니다. 독자들에게 주인공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는지, 얼마나 많은 방법을 연구하는지 느끼게 해 주세요.
깔끔하고 단순한 면은 단점일 수 있지만 장점도 됩니다. 무리 없이 잘 읽혔습니다.

B: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번 변주되었고 생각할 거리들을 남기는 소재입니다. SF라는 장르 자체가 미래의 기술과 그 기술에서 파생될 영향, 그 영향에 대한 관점을 제시하는 장르이니만큼 이런 서사는 현재에도 사람들에게 주는 감정적 파동이 강할 것입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아이를 죽여야 하는 상황에 처하자 자멸하고 맙니다. 플롯 자체는 충분히 충격을 줄 수 있는 플롯입니다. 하지만 이 소설이 그 정도의 충격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입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어깨를 총으로 쏠 수 있는 수준의 훈련을 받은 사람입니다. 어째서 자신의 아이는 쏠 수 없는 것입니까? ‘자신의 아이니까’ 라는 일반적 대답도 가능은 하겠으나, 소설에선 그다지 좋은 태도가 아닙니다.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극단적 선택을 한다면 그 선택에 대한 합리적 이유를 제공해 주어야 합니다. 도저히 그것이 아니면 안 되는 상황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결말까지 몰아가는 과정에서 조금 힘이 빠졌습니다.


용에게 가는 길 – 알레프
A: 액자 형식의 소설입니다. 파문당한 스승과 그 이유를 알고 싶어 산을 오르는 제자의 이야기와, 용에게 희생될 소녀를 데리고 산을 오르는 사내의 이야기가 모두 흥미롭습니다. 짧은 글인데도 긴 대하 서사시를 본 기분입니다. 생명력이 강한 소녀의 비극적인 운명과 사내의 선택, 그 전설로 인해 유발된 먼 훗날 스승과 제자의 갈등. ‘앞으로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증이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듭니다.
소녀와 사내의 이야기가 너무나 현대적이고 생동감 있고 현실적이고, 오히려 후대의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가 더 고전적으로 느껴집니다. 사내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묘사하는 이야기가 ‘민간에서 전하는 설화’라는 점은 조금 갸우뚱합니다. 사내 자신이 써서 미래에 남겼을까요? 스승과 제자의 문제는 ‘신’인 용의 죽음 그 자체인데 반해 소녀와 사내의 문제는 생존의 문제라, 두 이야기의 연결점이 애매한 점이 있습니다.
문장이 좋고 이야기에 성실함이 느껴집니다. 공을 많이 들인 소설입니다.

B: 맹신에도 그럴만한 조건과 이유가 존재하는 법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과연 진실로 구성되어 있을까에 대한 의문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제기되어 온 질문입니다. 그러한 의문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음모론들이 '인기 있는 서사'로자리하고 있는 것일 테지요. 어느 것이 진실인지 독자로서는 확신할 수 없으나, 세계를 믿는 제자와 세계를 의심하게 된 스승의 이야기는 흥미롭습니다.
이보다 더욱 매력적인 것은 나머지 하나의 서사입니다. 남자는 세상에 저항하지 못하고 부당한 일들을 받아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신 스스로가 세상의 부당함을 재생산하는 존재가 되고 맙니다. 현실은 소녀의 강한 의지 앞에서 드러날 뻔 하지만 결국 사람들은 여전히 진실을 알 수 없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야기의 본 서사인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가 액자 안에 들어 있는 소녀와 남자의 이야기에 비해 매우 박진감이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소녀와 남자의 이야기가 핵을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본래의 이야기에서 진행되고 있는 서사는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거든요. 그 서사 자체의 진행이 너무 더디다 보니, 액자 안에 있는 서사에 빚을 과하게 지게 되었습니다.


루씨 – 우리
A: 다소 모호하고 불친절한 소설입니다. 루씨, 미야, 진이라는 이름은 국적을 가늠하기 어렵고, 묘사를 통해서는 나이와 성별도 알기 어렵습니다. 진과 루씨의 관계가 연인인지 보호자인지 상담사인지도 알기 어렵습니다. 부모의 죽음은 삼풍 백화점의 사고를 연상할 수 있지만 역시 구체적인 사건의 형태를 알기 어렵고, ‘죽었대, 죽어버렸대’에서 죽은 대상이 미야인지 혹은 양육자인지 헷갈리는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불친절함은 상상의 여지를 남기면서 루씨의 증상에만 집중하게 하는 효과가 있고, 독특한 분위기를 만듭니다. 루씨의 불안하고 산만한 증상이 섬세하게 표현된 점이 좋았습니다.

B: 소설이라기보다 긴 형태로 된 시 같은 느낌이 드는 줄글입니다. 이미지가 좀 더 강했으면 그런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을 터이나 모호한 장면들에 덧붙는 설명들은 또 소설로 드러나길 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야기 내부의 흐름은 여전히 소설적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미야와루씨는 끈끈하게 연결된 것처럼 묘사되다가 뒤에 가서 그 끈이 설명 없이 흐트러집니다. 어떤 상황을 독자에게 설득하기보다는 ‘그래야만 했다’ 같은 문장으로 분위기를 강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점이 매력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기도 하지만, 이 상태에서는 그 시적 이미지가 강하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어느 한 쪽으로 줄기를 잡아서 서사나 이미지를 밀어붙이는 걸 권하고 싶습니다.


불을 껐다 켰을 때 - 3.54
A: 잠에서 깨었을 때 갑자기 사랑하던 사람에 대한 사랑이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리고 주인공은 성격마저 변한 듯합니다. 한 문장으로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궁금하게 만드는 서두, 또 한 문장으로 불안함의 여운을 남기며 끝내는 솜씨가 좋습니다.
전두엽은 인간이라는 종에 유달리 크게 발달된 부분이고, 전두엽 손상은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분시키는 다양한 부분의 손상을 가져옵니다. 융통성, 창의력, 독창성 등등. 이 소설에 나온 대로 성격이 변하거나 참을성이 없어지고, 가치관이 변할 수도 있습니다.
성적 억제가 문화고 성적 개방이 본능이라는 일반적인 관념과 달리 성적 억제를 본능으로 보고 그것을 억제하여 성적 개방의 시대가 온 것이 독특한 점입니다. 하지만 동성애 혐오와 근친혼 혐오가 생물의 본능인가, 시대나 문화의 산물인가는 작가가 그리 간단히 정의할 문제가 아닙니다.

B: 전두엽을 관장하는 센서라는 설정 하나만으로 이야기의 서사를 단단하게 만들어 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리없이 매끈하게 잘 읽히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변화를 겪었지만, 표면적으로는 드러나지 않은 채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결말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두엽이라는 설정을 사용하는 방식은 위험한 면이 있습니다. 물론 어떤 작가들은 폐기된 과학 이론을 바탕으로 SF를 쓰기도 합니다. 그럴 때 조차도 사실이 아닌 것을 서사에 끼워넣기 위해서는 새로운 우주를 창조해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이 명확하지 않다면 작가에 대한 신뢰도 자체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소설은 꾸며내는 이야기이지만 그 이야기의 기반은 현실에 제대로 있어야 합니다.


도시아이 – 사이클론
A: 어느 시골 마을에 온 서울 아이가 천진한 얼굴로 장수풍뎅이에 십자드라이버를 꽂아 돌리며 해부한 뒤 “건전지 없는 거야?”하고 묻습니다. 이 사건은 닭, 괴생명체, 기계, 사람으로 한 단계씩 한 단계씩 커져 가며 공포를 증가시킵니다. 서울 아이가 모습을 제대로 드러낸 순간은 장수풍뎅이를 해부한 한 가지 사건뿐인데도, 그 순간의 철없는 잔인함과 실행력이 강한 인상을 남겨 이어지는 초현실적인 사건의 원흉이라는 주인공의 추리에 공감하게 합니다. 처음에는 작은 사건을 보여주어 그럴싸한 현실감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 뒤, 사건의 강도를 한 단계씩 올리는 기법으로 SF적이고 판타지적인 사건에까지 설득력을 부여합니다. 한편으로 이 모든 일을 ‘설마 그럴 리가’ 하는 수준에서 멈추는 것으로 오히려 현실감을 줍니다.
무엇을 보여주어야 하는지, 어떻게 전개해야 하는지 잘 아는 작가의 솜씨입니다. 한 명의 독자로서 몰입해서 읽었습니다.

B: 근대의 SF에서 드러날 법한 공포가 잘 녹아 있는 소설입니다. 시골과 도시라는 대립 구도가 매우 낯익은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낯설게 다가온 것이 공포를 한 단계씩 전진시켜가는 과정을 치밀하게 그린 서사의 진행과정이 훌륭합니다. 공포를 느끼게 하기 위해서 작가가 감추어야 할 요소와 드러내야 할 요소를 잘 구분하고 있습니다. 천진함 내부의 악마성이라는 소재도 흥미롭습니다. 단, 천진함에 대한 갭을 느끼기에는 기찬의 악마적 측면이 독자에게 강요된다 싶을 정도로 해석의 여지가 없이 그려졌기에 좀 아쉽습니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대사와 문장입니다. 방언 화자들을 대거 차용했으나 그다지 현실감 있게 그려지지 못했습니다. 시골이라고 하면 꼭 왜관이나 문경만 있는 게 아니라, 이천 정도도 있습니다. 꼭 시골이라고 방언을 써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없으면 방언 화자를 굳이 등장시키지 않아도 좋습니다. 방언 화자를 등장시키려면 그만큼 언어에 대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또 하나는 문장입니다. 오탈자인지 맞춤법이 틀린 건지 구분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상당히 있고, 문장 구성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지 않은 복문들이 곳곳에 보입니다.

113호 독자 우수단편 가작에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거울 독자 우수단편에 선정되신 분들께는 책을 한 권씩 드립니다. pena12 @ gmail.com 으로 우편물 수령할 주소, 성함, 전화번호(택배 발송시 필요)를 보내주세요.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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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12.11.30 23:31 댓글 수정 삭제
    평에 감사드립니다! 참고하여 다음엔 더 나은 글 보여드릴 수 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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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클론 12.12.01 00:05 댓글 수정 삭제
    우수단편에 선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적한 부분은 고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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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그라토 12.12.01 00:58 댓글 수정 삭제
    '극우의 길'의 주인공이 정치적으로 모순되어 있다고 하셨는데, 저건 저소득층 국민이 선택할 법한 넷우익 사상이고, 자연히 자본 친화적인 우파와도 귀족 노조 친화적인 좌파와도 거리를 둘 수 밖에 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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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그라토 12.12.01 01:04 댓글 수정 삭제
    실제로 '극우의 길' 쥔공이 가질 법한 사상은 최근 유행하는 사이트인 일간베스트저장소의 여러 회원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요. '극우의 길' 쥔공은 그걸 실천했을 뿐이고요. 점점 약빨이 떨어져 가는 국민국가에 목멘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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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길윤 12.12.01 01:08 댓글 수정 삭제
    수고하셨습니다. 평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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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그라토 12.12.01 01:52 댓글 수정 삭제
    앤윈님이 '극우의 길'에 대해 평한 부분 중 비현실적인 설정이 많다는 건 납득할 수가 없군요... 거의 모두 팩트인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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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뻐꾸기 12.12.01 05:29 댓글 수정 삭제
    ……개인적으로는 그저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 감평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충고 감사드립니다. 다음번에 더 좋은 글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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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그라토 12.12.01 10:32 댓글 수정 삭제
    제 글 '영원한 체제'에 대한 두 분의 평은 그것이 디스토피아 소설이라는 것이로군요... 전 그 글을 썼을 당시 유토피아 소설로서 썼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세상이 올 경우 디스토피아가 될 가능성이 월등히 높다고 생각하는 바 두 분의 감평 뜻에 보다 어울린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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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비바람 12.12.03 01:18 댓글 수정 삭제
    진보하는 사람이란, 자신보다 나은 자의 충고를 적어도 일차적으로는 받아들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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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그라토 12.12.03 08:24 댓글 수정 삭제
    나비바람님, 전 '영원한 체제'에 대한 평에는 동의했습니다. '극우의 길'에 대한 평에 동의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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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그라토 12.12.03 10:39 댓글 수정 삭제
    '극우의 길'에서도 나왔지만, 외국인 노동자 유입을 반대하는 건 하층민들입니다. 독일에서도 저런 주장을 하는 네오 나치를 상류층은 경멸합니다. 즉 국가는 하층민들이 외국인 노동자에게 일자리 뺏기고, 근로조건 강제하향 당하고, 최저 임금 낮춤 당하고, 범죄로 죽음당해도 냉담하다는 거죠.
    그런 국가를 지배하는 부자들이 미래엔 인류를 멸망시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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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그라토 12.12.03 10:40 댓글 수정 삭제
    부자들의 인류 멸망 시나리오는 독자단편란에서 제 소설 '외계인이 오지 않는 이유'나 '쓸모'를 보심 됩니다. 특히 '쓸모'는 아마도 앤윈님이 지지할 법한 진보신당 경기도당 창간준비지 3호라는 작은 웹진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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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끄적이다가 생애 처음으로 받아보는 정성 어린 비평에 너무 기쁩니다. 글쓰기의 재미가 이런 거구나 하는 걸 거울 사이트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지적해 주신 말씀 소중하게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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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레프 12.12.05 17:20 댓글 수정 삭제
    소중한 평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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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작 안내 6월 심사평 및 2분기 우수작 안내4 2018.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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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작 안내 심사평4 2017.12.15
선정작 안내 업데이트 일자 변경 안내 2017.12.02
선정작 안내 심사평1 2017.10.31
선정작 안내 심사평 및 2017년 3분기 우수작 안내 2017.09.29
선정작 안내 심사평1 2017.08.31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후보작 심사평3 2017.07.31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후보작 심사평1 2017.06.30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3 2017.05.31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후보작 심사평 2017.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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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후보작 심사평 2017.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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