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1]

7시 27분. 누군가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까지 나는 사이즈가 몸에 맞지 않게 큰 마이를 뒤집어 쓴 채로 책상 위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눈을 뜬 나는 흐리게만 보이는 눈앞의 인물에 초점을 맞추려 했다. 하지만 어젯밤 내내 쓰이지도 않는 글을 쓰느라 혹사당한 뇌가 반응이 느린 것인지 좀처럼 멍한 상태를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그런 내 상황을 모르는지 평온했던 수면의 방해자는 말을 꺼냈다.

“저기...”

목소리를 인식한 머릿속의 신경세포들이 빠르게 활성화됐다. 여자 목소리였고, 정확하게는 아는 여자의 목소리였다. 그것도 미인. 단정한 긴 생머리의 그녀는 거의 손을 대지 않은 교복을 입은 채로 조심스럽게 나를 현실로 끌어내려고 하고 있었다. 그 사실에 나는 조금 놀랐는데, 왜냐하면 자는 나를 깨울 정도로 가까운 사이의 미인을 나는 한 명밖에 알지 못하고, 그 사람은 지금 눈앞의 그녀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아는 여자라고 하기에는 그녀와 나는 모자란 관계 속에 있다. 나와 같은 3반 학생인 변승엽의 여자 친구인 그녀는 여자들만으로 구성된 반인 2반 학생이었다. 내 기준으로 남들에게 아는 사람이라고 얘기하려면 적어도 열 마디는 말을 섞어야 하는데, 그녀와는 세 마디 정도를 했을 뿐이었다. 그런 고로 그녀와 나는 알긴 하지만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
나는 목소리에 가래 낀 흔적이 최대한 없기를 바라며 짧게 대답했다.

“응?”
“승엽이는 아직 안 왔어?”

이 때 손목시계를 봤기 때문에 7시 27분에 그녀가 나를 깨웠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제 고3이라 8시에 자율학습이 있다 하더라도 이 시간에 오는 학생은 주번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주번은 변승엽이 아닌 나라는 사실을 그녀에게 전달하려다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 안 왔는데.”  
“응...”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조차 알아채기 쉬울 정도로 시무룩해진 모습으로 들어왔던 교실 문으로 다시 나갔다. 나가는 그녀의 녹색 마이 어깨부분에 흰색의 벚꽃 잎이 붙어 있는 것이 보였지만 내 알 바는 아니라는 생각에 알려 주지는 않았다. 대신 아직 남아있는 30분간의 잠을 기대하며 나는 책상위에 엎드려 눈을 감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기대는 나를 배신했다.잠이 막 들려던 차에 누군가 다시 와서 문을 연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잠을 즐기기 위해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은 얼굴모를 두 번째의 방문자는 잠시 후 문을 세게 닫고는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 덕분에 진작 이렇게 할 걸, 하는 생각을 하며 바야흐로 원하던 단잠을 잘 수 있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자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그녀가 나를 깨운 뒤 7분 뒤인 7시 34분. 그녀가 죽었기 때문이다.

[2]

사인은 아마도 낙사. 그녀는 학교 건물 옥상에서 바닥으로 추락했다고 했다. 낙하 에너지가 꽤 강했는지, 혹은 학교 건설 당시의 시공 업체가 돈 좀 아꼈는지 등을 하늘로 향한 채 널브러진 그녀의 몸은 깨진 콘크리트 조각들이 받치고 있었다. 그녀의 팔다리는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흉하게 퍼져 있는 대신 정리된 모습으로 몸에 붙어 있었고, 지나칠 때마다 코끝을 자극하던 그녀의 긴 생머리는 퍼져가는 핏물 속에 흩어져 엉키고 있었다. 너무 튀지 않고 깔끔했던 회색 스커트와 조끼는 우중충한 색의 핏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아직 사태를 수습할 만한 사람은 도착하지 않았는지 그녀의 시체는 고등학교 건물 앞에서 무방비로 호기심 어린 눈들에게 유린당하고 있었다.  
호기심과 다른 이유 몇 가지로 시체를 보고 있던 나는 문득 생각나 시간을 확인했다. 7시 36분이었다. 그녀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무슨 소리인지 창밖을 보고 확인하는데 1분 남짓, 그리고 건물 밖으로 나와 그녀한테 도착하는 시간으로 다시 1분을 제외하면 34분쯤에 그녀는 추락한 모양이었다.  
좀 더 자세히 시체를 확인해 볼까 하는데 교사가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다들 교실로 돌아가! 빨리!”

아직도 시체를 둘러싸고 속닥거리는 애들을 교사가 쫓아내는 가운데 교실로 들어가려던 내 시선을 그녀의 어깨가 붙잡았다.
거기엔 하얀 벚꽃 잎이 붙어 있었다. 아직 찬 기운이 도는 봄바람에 흔들리면서도 그것은 그녀의 마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달려온 교사가 벗은 재킷에 가려져 안보이게 될 때까지, 나는 흔들리는 벚꽃 잎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3]

그 날 오전 수업동안에 나는 맨 앞자리에 앉아 누가 뭐래도 명확한 모범생의 역할을 훌륭하게 연기해 냈다. 물론 연기만 할 뿐이라 내 머릿속에 그날의 진도는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수업 시간 내내 추락한 그녀 생각만 한 것도 아니다. 나는 다른 한 명의 여자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점심시간, 어깨 가에서 찰랑거리는 머리의 소유자인 그 여자는 지금 내 앞에 앉아 호기심 첨가율 100%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사람이 죽었어요, 와트슨.”

나는 그녀의 그런 말투가 싫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하고 얘기할 때는 전형적인 여고생의 말투를 구사했지만, 나하고 일에 관련된 얘기를 할 때에는 높임말을 썼다. 게다가 와트슨 이라니. 어쩌자고 나를 그런 이름으로 부르는 건지 모르겠다. 스스로는 홈즈라고 불리고 싶은 건가 싶었지만, 나는 이 여자 앞에서는 그렇게 요령부리기가 싫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죽습니다, 니은 씨.”

높임말까지는 맞춰줬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싫어하는 그녀의 본명을 확실하게 말했다. 그녀는 입 꼬리를 살짝 올리며 사람 불안하게 만드는 미소를 짓는 것으로 불만표시를 했다. 분명 미인의 범주에 속하는 얼굴이지만 그녀가 그런 미소를 지을 때면 나는 움찔 하고는 한다. 하지만 더 이상 해코지를 하는 대신 그녀는 사무실에서 가장 좋은 의자에 몸을 파묻어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이것은 그녀가 나름 생각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 생각 속에 뭐가 있는 지는 그녀 자신만이 알고 있을 터이다.
사무실이라고 말했지만 이 방은 사실 교사들의 회의실이었다. 하지만 니은은 어떤 수단을 사용하여 이 방을 자신이 만든 추리 소모임의 부실겸 사무실로 만들어 버렸다. 평소에 니은이 추리거리라고 가져오는 학생들의 연애 이야기나 비행 사건을 들어보자면 이 여자는 남의 약점을 잡는 데에 있어서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 재능은 확연하게 선생들을 향해서도 빛을 발휘한 듯 했다. 다른 교실과는 다르게 라디에이터가 아닌 전기식 히터와 에어컨을 가지고 있는 이 방을 순순히 여학생 한 명에게 넘겨준 것을 보면 말이다. 덕분에 큰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둔 채 니은과 나만이 앉아 있는 형태로 이 방은 낭비되고 있었다.

“와트슨은 이번 사건이 자살이라고 생각해요?”
“그거야 국과수나 경찰이 밝혀내겠죠. 이게 겨울산장에서의 밀실 살인도 아닌 바에야 추리만으로 사건을 해결할 수는 없으니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세요.”

우리가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의 한 건물 내에 있는 학생만 이천 명 정도. 게다가 같은 재단이라는 이유로 부지를 나눠 쓰고 있는 외고와 중학교까지 치면 학생 수는 숫자로 표현하기만 해도 짜증날 정도이다. 그 중 알리바이가 없는 사람만 뽑아도 세 자릿수는 가볍게 넘을 텐데 공권력의 개입 없이 이런 사건을 해결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아니, 그 공권력도 사건을 자살로 해결해 버리는 게 가장 손쉽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테니 별 다른 수사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시간과 인력의 절약. 효율을 따지는 사회에서 내거는 캐치프레이즈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는 거 치고는 꽤나 집중해서 생각하는데요?”

니은의 말을 듣고서야 나는 무의식적으로 입에 볼펜을 물고 흔들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담배를 끊은 뒤로 생긴 생각에 잠겼을 때의 내 버릇을 니은은 알고 있었다.

“자살입니다. 다른 선택지는 없어요.”
“그럼 그 이유가 뭘까요? 그 애는 남자친구도 있고 성적도 수준급이었는데. 반 애들과 사이도 좋았고 가정환경에 대해서도 딱히 문제되어진 게 없었어요.”

벌써 그렇게 조사를 했나요, 라고 비꼬려던 나는 입을 다물었다. 니은도 오늘 죽은 여학생과 같은 2반이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에 무리가 오지만 어쩌면 둘은 꽤 좋은 사이였을 수도 있다. 지금은 저렇게 평소대로 호기심만으로 달려드는 모습을 하고 있지만 어쩌면 니은은 다른 동기부여가 있는 지도 모른다. 그녀를 죽게 만든 이유에 대한 복수전, 같은 거 말이다.
흔들리는 흰 벚꽃 잎이 떠올랐다.

“...뭔가 이유가 있겠군요.”
“모든 죽음에는 다 이유가 있답니다, 와트슨.”

다시 사람 불안하게 만드는 미소를 지어보인 니은은 푹신한 인조가죽 의자 속으로 파고들었고, 나는 싸구려 모나미 153 볼펜을 입에 물고는 흔들었다.  
그렇게 의뢰인도 없는 우리들만의 수사는 시작되었다.

[4]

“이번 사건의 피해자 이름은 박선예. 여자 문과반인 2반 학생이고 지난 2년 동안의 성적은 평균 90점대로 반에서 5등 안에는 들어요. 학원에서 본 모의고사 점수로는 서울권 내 대학은 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니은은 사망자 본인에 대한 조사를 따로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녀에 관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쩐지 둘의 사이를 물어보기에는 껄끄러워 나는 다른 질문을 하였다.

“보통 어중간하게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그런 거 있지 않나요? 반에서 1~2등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악감정 같은 거.”
“그럴 사람은 아니에요.”

딱 잘라 나온 대답이었지만 제대로 아는 사이인 그녀가 나보다는 좀 더 확신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 나는 이의를 달지 않았다. 내가 별다른 토를 달지 않자 그녀는 계속 정보들을 나열했다.

“성격적인 면에서는 활발하지는 않았지만 잘 웃어주는 사람이었어요. 나름 그룹도 있어서 옆에는 언제나 다른 여학생들이 있었고요. 기본적으로는 신중한 성격이었지만 연애에서만은 조금 끌려 다닌다는 게 보이기도 했어요.”

연애라면 우리 반인 3반의 변승엽과의 연애일 것이다. 하지만 이 나이대의 연애에서는 여자가 어느 정도 남자한테 끌려 다니는 건 그다지 이상할 것이 없는 점이었다. 대신 그런 것과는 별개로, 나는 여기가 남녀공학 인만큼 흔히 있을 만한 일을 질문했다.

“제가 보기에도 꽤 미인이었는데, 피해자에게 다른 남자들이 달라붙지는 않았나요?”

대답을 하려던 니은은 그 전에 잠시 살벌한 미소로 나를 움찔하게 만들고 나서 입을 열었다.

“와트슨, 여자 앞에서 다른 여자의 미모를 인정하는 발언은 삼가 주세요. 아무튼 껄떡대는 사람이 없었냐는 질문에는, 꽤 많았죠. 하지만 2학년 때 지금까지의 연애 대상자, 당신 반의 변승엽과의 교제를 시작한 이후로는 모두 딱 잘라 거절했어요. 다만-”
“어디에나 무분별한 속담의 신봉자는 있기 마련이죠. 예를 들면 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 같은.”
“잘 아시네요. 제일 심했던 사람은 5반의 김시현이었어요. 좋게 말하면 자유롭게 노는 영혼이었고 나쁘게 말하자면 양아치랄까. 굳이 용의자를 뽑아야 한다면 이 사람은 들어가겠네요.”
양아치라고 해서 좋아하는 여자에게 까지 나쁜 짓을 한다고 생각하는 건 논리상으로 오류가 있다는 것이 개인적인 의견이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안하면 조사가 끝이 없을 것 같아서 나는 이번에도 니은의 말을 받아들였다. 굳이고 자시고 지금은 일단 용의자를 추려놓고 봐야 했다.

“김시현 말고 달리 또 용의자에 포함시킬 사람은 없나요?”

내 질문에 니은은 눈을 감고는 의자에 뒷목을 기댄 채 머리를 인조가죽에 문질러대기 시작했다. 나름 생각을 꺼내려는 작업 같아 보이지만 정전기 때문에 머리가 다 일어나지 않을 까 하는 걱정이 생겼다. 보다 못한 내가 작업을 말리려고 하는 찰나, 그녀의 입에서 이름이 하나 나왔다.  

“강예슬.”
“그게 누군데요?”
“같은 2반 학생인데, 변승엽을 좋아한다는 소문이 있었어요.”

이번에도 미약한 소문에 의존한 용의자 선정이었지만, 나는 강예슬의 이름을 머릿속 수첩에다가 적어 놓았다. 니은에게서 들은 정보들을 머릿속에 끼적이던 나는 한 가지 중요한 용의자를 빼먹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용의자는 또 한 명 있어요. 변승엽.”
“연애는 애증의 관계니까? 일리는 있네요.”
“그것도 그렇고, 어쨌든 사건 7분 전쯤에 그녀는 승엽이를 만나러 왔었거든요.”

자신의 정보 안에 없던 증언이 나오자 니은은 눈을 뜨고는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나 역시 처음에는 그 눈빛을 피하지 않고 되받아쳤지만, 잠시 후 눈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그 때라도 그녀를 죽지 않게 할 만한 수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라는 사고가 내 머릿속에는 남아있었던 모양이었다. 사실 그녀가 죽기 전에 마주쳤었다는 얘기를 니은에게 안하고 있었던 것도 그런 맥락이고 말이다.

“...다음부터는 그런 중요한 정보는 제깍제깍 보고해요, 와트슨.”

의외로 별 말 안하고 넘어가는 니은이었지만, 그녀는 딱히 나를 찔러댈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으로서는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스스로를 찔러대고 있으니까 말이다.  

[5]

점심시간을 이용한 기본 정보수집이 끝난 다음, 우리는 남은 오늘 동안 선별한 용의자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탐문수사는 사람을 상대로 정보를 뽑아내는 것에 자신이 있는 니은이 하기로 했다. 물론 거기에는 그녀의 미모도 한 몫 하는 것일 테였다. 나는 서류를 뒤지는 역할을 맡았지만, 사실 좀도둑처럼 어딜 숨어들어 가야 할 필요는 없었다. 여태까지 모범생 스타일을 유지한 덕에 나는 몇몇 선생들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고, 그에 따라 가끔씩 서류정리 하는 것을 도와줄 일이 생기고는 했다. 예를 들면 지금 내 앞에 있는 학생부 상벌점기록 같은.
손으로는 점수를 기록하고 있었지만 내 눈은 용의자 선상에 있던 인물들의 상벌점들을 세밀하게 체크하였다. 변승엽과 강예슬 두 사람은 벌점 없이 상점만 있었지만, 예상대로 김시현의 기록부는 벌점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 역시 큰 범죄 없이 흡연이나 복장불량의 자잘한 이유로 받은 벌점이 다였다. 결국은 셋 다 크게 일을 벌일 타입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별다른 소득 없이 노동을 한 것이 짜증나 학생부의 의자에 앉은 채로 이빨자국이 여기저기 남은 모나미 볼펜을 손으로 돌리고 있는데 새로운 서류가 눈에 띄었다. ‘자율 상담 기록부’라는 이름을 가진 서류는 딱히 흥미를 가질 것이 없었지만, 첫 번째 페이지의 담당학생란에 쓰여 있는 이름은 관심이 갔다. 서류를 집어 들어 몇 페이지 넘겨 본 나는 다른 이름들 몇 개를 확인하고는 볼펜을 입에 물었다. 적어도 나중에 니은을 만나 할 얘기는 생긴 듯 했다.

[6]

“강예슬은 자율 상담이라는 이름하에 고민거리를 가진 학생들을 따로 만나 상담한 모양이더군요. 학교에서 지원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장소도 제공받고 커피포트랑 다기세트 같은 것도 받은 모양이에요. 재미있는 점은 상담한 학생 목록에 박선예와 변승엽, 김시현이 모두 있었다는 점이죠.”

다음 날 점심시간의 사무실, 나름 들떠서 얘기하고 있는 나를 니은은 의자 속에 파묻힌 채로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어딘지 무안해진 내가 속으로 아홉 정도까지 셌을 때야 그녀는 말했다.

“...그거 신기한데요. 제가 알기로는 강예슬은 자기 전용 컵을 들고 다니며 남이 쓰지 못하게 할 정도로 폐쇄적 성향이 강한데.”
“그럼 무슨 결벽증 같은 게 있는 건가요?‘
“딱히 다른 물건들은 상관안하는 거 보면 결벽증은 아닌 거 같고, 여하튼 개인적으로 양보하지 못하는 구석이랄까, 그런 게 있어요. 그래도 챙겨주는 성격은 있으니 말이 아주 안 되는 것도 아니에요.”
“말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실존하는 사실인데-요.”

뭔가 한 번 따져보려는 내 의지는 다시 한 번 몸서리치게 만드는 미소로 나를 긴장하게 만든 니은에 의해 꺾이고 말았다. 나는 그 건에 대해서는 더 말을 안 하기로 마음먹었고, 그런 나를 본 니은은 만족했는지 자신이 조사한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건 오늘 아침에 들어온 정보인데요, 김시현이 강예슬과 개인적인 만남을 어제 가졌다는 군요.”
“개인적인 만남이라면, 김시현이 상대를 강예슬로 바꿨다는 건가요?”
“글쎄요, 제가 찾은 사람도 지나가면서 보기만 한 정도라고 해서. 하지만 그럴 듯하기도 해요. 어쨌든 강예슬도 나름 매력 있는 여자니까.”  
확실히 강예슬은 매력적이기는 했다. 하지만 내가 학생부에서 본 그녀의 사진에서는 청순한 이미지의 박선예와는 조금 다른, 어딘지 남자를 홀리고 다닐 것 같은 분위기가 나서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계속 쫓아다니던 여자가 죽은 날에 다른 여자랑 연애를 한다는 것도 좀 그런데요.”
“거기에 관해서는 나중에 강예슬이나 김시현, 둘 중 한명에게 물어보도록 하죠. 그리고 변승엽에 관한 거 말인데...”

심히 인정하기 싫다는 표정으로 그녀는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나로서도 그저 어깨를 으쓱일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변승엽은 어제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학교 측에서는 집에도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즉, 실종상태인 것이다.

[7]

우리는 같은 날 강예슬과 김시현을 둘 다 만나보고 싶었지만, 김시현은 불량학생답게 과감하게 보충수업을 도망쳐 버림에 따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강예슬 한 명 뿐이었다. 그녀는 만나고 싶다는 니은의 말에 자신이 상담실로 쓰는 방으로 우리를 초대한 상태였다.
상담실은 다용도실을 개조한 듯 작고 아담한 분위기였다. 안의 도색은 베이지색 위주로 편안하게 되어 있었고, 곳곳에 여자아이다운 캐릭터상품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마리아님이 어쩌구 같은 제목이었던 소설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희화화되어 그려져 있는 것을 만져보려 하는데 니은이 탁 소리가 날 정도로 내 손을 쳐서 말렸다. 강예슬은 그런 모습을 보고는 싱긋 웃었다.

“니은이는 뭘 마실래? 그래봤자 선택지는 인스턴트 커피, 레몬 티, 코코아 셋 중 하나지만.”
“레몬 티로 줘. 그리고 얘는 코코아면 족해.”

나는 니은이 내 기호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해야 할지, 아니면 실제로 학생 같은 말투를 쓰는 니은을 처음 본 것에 놀라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하지만 둘 중 어느 얘기도 이 자리에서는 할 수 없어서 나는 그저 확인을 원하는 강예슬에게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에 비해 니은은 보다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제법 잘 만들어 놨네. 나도 진작에 상담이나 한번 받아 볼 걸.”
“글쎄, 너는 상담 같은 건 필요 없지 않아? 그 추리 소모임이라는 거 소문이 자자하던데. 아, 거기 테이블에 앉아 있어.”

작은 흰색의 테이블에 나와 니은이 앉아 기다리는 동안, 강예슬은 쟁반위에 컵 세 개를 얹은 상태로 걸어왔다. 내 코코아는 흰 머그 컵에, 그리고 니은의 레몬 티는 투명한 유리잔에 준비되어 나왔다. 그리고 아마도 커피로 추정되는 향을 내고 있는 강예슬의 음료는 분홍빛에 하트가 그려져 있는 머그컵에 담겨 있었다. 셋이 첫 한 모금을 마실 때 나는 슬쩍 눈을 돌려 강예슬 컵의 하트를 살펴보았다. K.Y.S. 와 B.S.Y.라는 이니셜이 하트 안에 초콜릿 색으로 쓰여 있었다. 강예슬의 변승엽 사모 설에 조금 더 무게를 실어주는 증거였다. 혹은 둘의 애정을 증명할 수도 있고.

“맛은 좀 괜찮아? 내가 아직 물 양을 잘 조절 못해서.”
“맛만 좋은데 뭘, 안 그래?”
“으응, 딱 좋은데.”

0.5초간의 사나운 눈빛이 강예슬의 눈을 피해 나한테 꽂히고 난 다음에야 나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코코아를 홀짝였다. 사실, 꽤 맛있었다. 내가 방관하는 쪽으로 태도를 굳혔다는 것을 안 니은은 강예슬과 대화를 시작했다.

“다름이 아니라 선예 때문인데, 괜찮겠어?”
“뭐, 괜찮아. 나로서도 걔 죽음은 좀 석연치 않으니까. 너도 들었을 거 아냐, 소문.”
“그것도 그렇긴 한데, 오늘은 새로운 소문이 들어왔거든. 너가 시현이랑 만난다는.”

적당히 달착지근한 코코아를 마시면서 나는 강예슬의 눈을 살펴봤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어느 한구석으로 움직이지 않고 니은과 당당히 마주치고 있었다.

“그런 일로 만난 건 아냐. 좀 개인적인 일인데...그냥 걔랑 내가 사귀지는 않는다는 것만 알아둬.”
“그래? 그럼 됐어. 다른 질문으로는...너 승엽이가 어디 갔는지 알아? 집에도 안 들어오고 있다는데.”
“선예 빈소에 가있는 거 아냐? 일단은 남자친구잖아.”
“...그럴지도 모르겠네. 너는 빈소에 가봤어?”
“나도 아직. 오늘 보충 째고 갈려 했는데 네가 할 말이 있다 길래. 내일 가지 뭐.”
“그럼 나도 내일쯤 들려볼까...”

니은의 말을 끝으로 몇 초간 정적이 흘렀다. 가만히 코코아만 즐기던 나는 이 분위기를 깨야 한다는 이유 없는 사명감을 느끼며 강예슬에게 말했다.

“커피 향 좋은데, 나 좀 마셔봐도 돼?”

말이 끝나고 나서야 니은이 내 발을 찬 것은, 그녀도 내 말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제야 나도 아차 싶었지만, 강예슬은 생각과는 다르게 담담한 반응을 보여 왔다.

“그래. 아, 입 댄 데 조심해. 나 간접키스 싫어하니까.”

나는 신음소리를 흘리며 강예슬이 내미는 머그컵을 받았다. 니은 쪽을 슬쩍 보니 그녀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컵을 손에 든 채로 잠시 고민하다가 강예슬에게 돌려줬다.

“혹시 모르니까. 나는 꽤 신사라서.”
“큭큭. 소심하긴.”

강예슬은 웃으며 컵을 받았다. 나도 같이 웃고 싶었지만, 마음속에 궁금함이 넘쳐흐르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 니은의 얘기와는 달리 그녀는 자기가 마시던 컵을 나에게 그냥 주었다.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하던 나는 상담실에서의 나머지 시간은 니은과 강예슬이 얘기하는 가운데 건성으로 보내 버렸다.

[8]

그날 밤에 내가 따라오는 발소리를 눈치 챈 것은 비교적 바깥의 차도보다 조용한 지하철역 안이었다. 내 발소리와 약간 어긋나 있는 발소리는 제법 소리를 죽인 채로 나를 따라오고 있었지만, 늦은 밤이라 고요한 지하철역에서는 불협화음을 심하게 티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니은에게 말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어쩌면 몸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는 일에 그녀를 데려오는 건 아니다 싶어 혼자 해결하기로 했다. 이길 자신은 없었지만 시간만 어느 정도 끌면 공익이나 역무원이 와서 해결해줄 터였다.
나는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핸드폰을 꺼내 슬쩍 뒤를 확인했다. 거기에는 학생부 기록상으로 봤던 김시현의 얼굴이 있었다. 조금은 아프게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자 자연스럽게 한숨이 나왔다.
  어느 정도 마음을 다잡은 나는 승강장에 내려와 지하철 문 입구가 표시된 곳에 섰지만 김시현은 나를 불러 세우지도, 그대로 선제공격하지도 않았다. 의아해진 나는 다시 한 번 뒤를 확인해 봤지만 김시현은 나랑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뒤에 서 있었다. 곧 지하철이 들어온다는 방송이 나오자 나는 사람 없는 조용한 곳이 나오면 해결하겠다는 생각인가 싶어 그 때를 기다리기로 하고 주머니에서 흉기가 될 만한 물건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있는 물건은 열쇠, 핸드폰, 동전 몇 개였지만.
내가 방심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전철이 들어오는 소리에 섞여 누군가의 숨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렸을 때였다. 그리고 그 사람은 아주 쉽게 나를 밀쳐 승강장 밑으로 떨어뜨렸다. 다행히 머리부터 떨어지지는 않아 바로 선로위에서 일어설 수는 있었지만 옆에서 아주 좋지 않은 기분이 들고 있었다.
죽음 그 자체가 찾아오고 있었다.      
나는 열차가 어디까지 들어왔는지 확인하지도 않은 채 반대편 선로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막상 목전까지 다가온 열차를 확인하면 몸이 공포로 인해 굳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기관사가 울린 경적이 내 몸을 뒤흔드는 것을 느끼며 나는 가운데 턱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는 나를 빨아들여 갈기갈기 찢고 싶어 하는 바람들을 뿌리치며 가까스로 반대편 선로위에 착지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는 생각을 할 여유도 없었다. 뒤를 돌아봤지만 이미 정차한 열차에 막혀 날 승강장에서 밀어버린 사람은 확인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범인을 포기한 나는 승강장 끝의 계단을 통해 반대편 승강장으로 올라왔다. 하지만 아직 마음을 놓을 때는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김시현의 첫 번째 주먹을 얼굴에 정통으로 맞았을 때, 이미 내 다리는 흔들리고 있었다. 이건 불리한 싸움이다. 이쪽은 아직 패닉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반해 상대방 쪽은 격투에 있어서의 경험도, 능력도 한 수 위다. 이미 진 싸움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여기서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맞게 되면 그 뒤에 선로위로 내팽개쳐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제 2, 제 3의 공격은 악착같이 방어해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저 팔로 머리만 가드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김시현은 그대로 목표를 바꿔 몸을 노려 때리기 시작했다. 구역질이 자동으로 나올 정도로 아팠다. 조금만 버텨서 시간을 끌어보기에는 내 몸은 너무 허약했다. 나는 잠시 몸을 측면으로 돌려 오른손을 비게 하고는 주머니에 집어넣어 아무 물건이나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타이밍을 재어 김시현의 공격이 물러난 직후 오른손을 크게 휘둘렀다. 손에 살짝 감촉이 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오른손에는 열쇠가 쥐어져 있었고 김시현은 눈을 부여잡고 있었다. 하지만 심한 상처는 아니었는지 녀석은 곧 눈에서 손을 뗐다. 김시현의 오른쪽 눈꺼풀에서 피가 배어나오는 것을 보며 나는 한 명을 실명으로 몰고 가지 않은 것에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이 상황에서 치명타를 못 입힌 것을 아쉬워해야 할지 혼돈스러웠다. 그래도 김시현이 정말 눈 마주치고 싶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다시 덤벼들려 할 때에는 후자 쪽의 기분이 좀 더 강하게 드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목숨이 걸렸던 것 치고는 결말은 손쉽게 끝났다. 막 나한테 달려들려던 김시현을 뒤에서 누가 불렀고,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본 김시현에게 그 누군가는 라이트스트레이트를 그대로 먹여주었다. 체력적으로 소모가 심한 다음이었기 때문인지 김시현은 그대로 쓰러졌다. 내가 어안이 벙벙해 하고 있는데 난입자는 예의 그 살벌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솔직히 좀 쪽팔리지 않아요? 싸움도 못하고.”
“...원래 와트슨은 싸움 못합니다.”
“그럼 내가 홈즈인가요? 킥킥”

역시나 그 이름을 원하는 거였다. 멋진 펀치 한번으로 김시현을 쓰러뜨린 니은은 쓰러진 시현을 데려가려 역무원들이 올 때까지 뭐가 좋은지 내내 싱긋 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도 오래 갈 수는 없었다. 경찰이 관계되면 김시현이 무슨 말을 하던 간에 당분간 우리 행동에 자유는 없어진다는 것을 깨달은 내가 니은의 손목을 잡고 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날 밤거리를 뛰어가며 내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은 워낙 단련을 안 한 허약한 육체 때문인지, 아니면 내 손에 들어갈 정도로 얇지만 강한 힘을 가진 손목 때문인지 나는 고민에 빠졌다.

[9]

다음 날 아침은 꽤 시끄러웠다. 뉴스에서 지하철에서 떠밀린 사람의 극적인 생존이나, 밤에 순찰하던 경찰이 괴한에게 습격당해 권총을 빼앗겼다는 등의 큼직한 사건들이 연달아 나왔기 때문이다. 모두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부모님들은 걱정이 담긴 말투로 얘기했다. 덧붙이자면 어제 못난 아들은 어디선가 싸움질을 하고 여기저기 멍들어서 들어왔으니 그럴 만 했다.
흉악사건들의 연속으로 잔소리가 심해진 것은 학교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례적으로 오전 보충수업 때 들어온 담임은 학생들에게 안전사항들을 별 감정 없이 나열하여 읽어 주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담임이 뭐라 하건 각자 보고 있는 문제지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당장 그들한테는 문제지의 정답률이 더 중요했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총소리가 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한창 말을 하던 중이었던 담임은 총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이윽고 상황을 파악한 학생들이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교실 앞문으로 총을 든 범인이 당당하게 들어왔다.
변승엽이었다.

[10]

교실 안은 그야말로 혼돈의 강림 상태였다. 하지만 변승엽은 차분히 돌아보며 자신의 목표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그가 손에 든 38구경의 권총도 나를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두 번째 발포.
나는 아슬아슬하게 몸을 옆으로 피해 맞지 않았지만, 대신 내 뒤에 있던 여학생이 맞아 버렸다. 그녀는 어깨에 피를 흘리며 교실 바닥에 옆으로 쓰러졌다. 교실은 아까보다 좀 더 아비규환적인 상황으로 바뀌었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큼 변승엽이 나를 노리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한 나는 총을 맞은 여학생에게 다가갔다. 쇼크 때문에 얼굴이 파랗게 질려있었지만 치료만 잘 받으면 목숨엔 지장이 없어 보였다. 나는 잠시 생각 후 그녀의 이름이 손혜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혜원아, 혜원아, 정신 차려.”

나는 그녀가 정신을 잃지 않도록 뺨을 치며 이름을 불렀지만, 금세 지금의 행동이 시간끌기밖에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단 변승엽의 손에서 총을 뺏어야 했다.
타-앙! 세 번째 총소리가 들렸다. 다시 한 번 학생들이 소리치는 것과 함께 패닉 상태에 빠진 학생들이 교실 밖으로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시간이 없다. 시간이 없다.
나는 일단 옆에 굴러다니는 볼펜을 주어다가 입에 물었다. 그리고는 근처 책상들을 옆으로 세워 급조한 바리케이드 비슷한 것을 만들었다. 그 다음엔 재빨리 책상 뒤에 딱 달라붙은 채로 마이를 벗기 시작했다. 마이를 벗는 과정에서도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정보들을 검색하고 있었다. 경찰. 리볼버. 6발. 4-2. 2-4였나? 근데 무슨 숫자지 이게?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데 변승엽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실은 꽤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찾았다.”

끝이다. 끝이다. 끝이다.
순간, 흔들리는 흰 벚꽃 잎이 떠올랐다.
아니, 아직은 끝이 아니다. 나는 마이를 왼편으로 집어 던지고는 뒤이어 오른쪽으로 뛰어나갔다. 네 번째 총성이 들렸다. 나는 아직 살아 있었다. 총에 맞지도 않았다. 하지만 곧 자신을 향해 뛰어오는 나를 발견한 변승엽이 총구를 내 쪽으로 돌렸다. 천천히 방아쇠를 당기는 녀석의 손가락이 보임과 동시에 나는 몸을 날려 그대로 드롭킥을 날렸다. 다섯 번째 총성과 함께 열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내 발에 차이는 변승엽의 몸도 느껴졌다.
무자비한 중력에 이끌려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자 고통이 엄습했다. 하지만 총 때문은 아니다. 아닌 듯 했다. 나는 아픈 몸을 윽박질러 최대한 빨리 일으키고는 총을 찾았다. 검은색의 권총은 쓰러진 변승엽의 오른편 1미터쯤에 있었다. 나는 바로 달려가 총을 집으려 했지만 변승엽이 누운 상태로 내 다리를 거는 바람에 넘어졌다. 이젠 턱까지 아려온다. 하지만 내 눈은 아직도 권총을 향해 있었다. 멀지 않다. 팔만 뻗으면 될 것 같은 거리다. 그리고 동시에 내 몸은 뒤에서 몸을 일으키는 변승엽을 느낀다. 의자 같은 것이 끌리는 소리도 들리는 것이 녀석이 흉기를 손에 넣었다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괜찮다. 괜찮을 것이다.
나는 재빨리 기어가 권총까지 손을 뻗었다. 묵직한 금속이 느껴졌다. 동시에 내 뒤에 선 누군가로 인해 그림자가 진다. 뭔가를 손에 들고 있는 듯 꽤 키가 커 보인다.
나는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총구를 돌렸다. 변승엽의 얼굴이 보였다. 별로 당황해 하지도 않고 있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나는 망설이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11]

상황이 정리되고 나가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기본적으로 경찰이 들고 다니는 권총 안에는 공포탄 2발에 실탄 4발. 변승엽 녀석이 총알을 뺏다 낀 것인지 아니면 실린더를 돌렸었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공포탄 2발은 마지막으로 돌려져 있었다. 사실 꼭 그렇다는 확신은 없었기 때문에 제대로 2-4의 의미를 깨달았다 하더라도 딱히 달라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어쨌든 다행이었다. 자칫 머리에 구멍 뚫린 시체가 될 수도 있었던 내 급우는 얼굴을 부여잡고 교실 바닥을 뒹구는 정도로만 끝났기 때문이다. 어쩌면 눈을 실명할지도 모른다. 평생 지워지지 않는 흉터가 생길지도 모르고. 하지만 나는 안간힘을 다해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나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었다. 적어도 그 편이 내게는 위안이 되기 때문이었다.

[12]

결국 그 뒤로 경찰에게 사건해명 등을 하는데 시간은 3일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나와 니은이 박선예의 죽음을 조사하고 있다는 얘기는 안했지만, 경찰에 잡힌 김시현이 착란상태에서 내 이름을 말했기 때문에 몇 가지 얘기는 해야만 했다. 박선예와 관련된 얘기들을 경찰에게 해주니 경찰은 그녀가 자살 전에 마지막으로 만났던 나에게 죄를 추궁하기 위해 두 남자가 나를 습격했다고 판단 내렸다. 게다가 그 쪽 방향으로 경찰이 생각할 수 있도록 얘기를 몰아가다 보니 어쩐지 나까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실은 어째서 내가 이틀에 걸쳐 목숨을 위협받았는가에 대한 진실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경찰조사 중에는 니은에 대한 꼬투리를 잡히기 싫어서 그녀와는 3일간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그녀 쪽도 같은 생각인지 먼저 연락이 오지도 않아 나는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아쉬웠다. 다행히 그런 노력의 끝에 경찰은 지하철역에서 시현을 때려잡은 사람이 지나가던 행인이었다는 다소 무리 있는 내 주장을 받아들이는 척 했다. 시간과 인력의 절약. 효율을 따지는 사회에서 내거는 캐치프레이즈다.
3일간의 결석 후 학교를 찾아간 나는 조례시간에 임시담임을 통해서 강예슬과의 상담이 예약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강예슬 측에서는 내가 신청했다고 했고, 나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녀는 무슨 말이라도 나에게 할 것이 있을 터였다. 박선예와 애정관계로 얽힌 사람들 중 이제 남은 사람은 그녀 혼자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내 기대를 부응하기라도 하듯, 그녀는 빈 상담실의 테이블 위에 옥상에서 보자는 쪽지만을 남겨놓았다.
아마도 박선예의 자살 이후로 옥상은 자물쇠로 잠가져 있었겠지만, 새로운 침입자에 의해 자물쇠는 데뷔 후 몇 일만에 절단 나 있었다. 나는 바닥에 널브러진 자물쇠에 애도의 뜻을 표한 다음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따뜻한 햇살이 눈을 찔렀다.

“혼자 왔어? 니은이를 데려올 줄 알았는데?”

강예슬은 옥상 난간 쪽에 서서 나를 보며 말했다. 나는 어딘지 불길한 예감이 들면서도 태연한 척 대답했다.

“솔직히 말하면 요 몇 일간 못 봤어. 지금이라도 가서 데려올까?”
“아니, 됐어. 너만으로도 충분해.”

나와 강예슬과의 거리는 스무 걸음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강예슬이 숨을 고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적어도 그냥 조용히 얘기하고자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닌 듯 했다. 그래서 그녀가 내 쪽으로 걸어왔을 때 나는 약간의 안도감을 느꼈다.

“저기 말야-”

그녀는 어딘가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억양으로 말하면서 내게로 계속 걸어왔다. 나는 뒤로 물러나고 싶은 생각도 잠시 들었으나, 그러기에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초콜렛 맛이 너무 강렬했다. 내가 잠시 갈등하는 사이 그녀는 내 앞까지 와 내 목에 두 팔을 둘렀다. 그리고는 무슨 말을 할 것처럼 입을 벌렸다가 다시 다물어 살짝 입을 벌린 상태 그대로 내 얼굴을 향해 다가왔다.
나는 이번에는 갈등하지 않고 재빨리 몸을 빼 뒤로 물러섰다. 잠시 표적을 놓친 그녀는 고개를 까닥였지만, 별다른 당황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매력적인 웃음을 지었다.

“그래, 어쩐지 그럴 줄 알았어.”

그녀는 다시 몸을 돌려 천천히 한걸음, 한걸음 나에게서 멀어졌다. 다시 불안해진 내가 그녀를 부르려는 찰나, 그녀가 다시 말했다.

“그런데 어째서야? 대부분은 걸려들던데.”
“...말했잖아. 나는 신사라고. 적어도 지금의 레이디는 너가 아니거든.”
“흐음-역시나. 인기 없는 타입이구나.”

일곱 걸음 째, 그녀는 몸을 돌렸다. 하루 종일 보고 있어도 지겹지 않을 그녀의 몸이 매끄럽게 돌아 다시 나를 향했다. 그녀의 표정은 어쩐지 밝아보였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다 말해줄게. 너도 니은을 통해서 알았겠지만, 나는 내 컵을 남한테  쓰게 하지 않아. 왜냐하면 뭐랄까-웃지 말고 잘 들어. 내 입에서는 나도 모르는 어떤 물질이 나오는 모양이야. 그래서 그걸 마신 사람은 다들 변해 버리더라고. 으음-굳이 말하면 뒷일을 생각하지 않게 된다고나 할까? 고등학교 입학하고 어느 날 알게 되었어. 덕분에 가족은 풍지박살 났지만, 그래도 그 정도로 끝난 걸 다행으로 생각해. 학교에서의 자율 상담을 그렇게 가족을 끝장내 본 적 있는 내가 맡은 것도 웃기는 일 아니니? 아, 미안. 얘기가 샜네. 어쨌든 난 그 뒤로 다른 사람이 피해보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했어. 컵도 내 컵만을 쓰고, 음료수도 남들이랑 나눠 마시지 않았어. 그리고 키스도 자제했고. 겨우 이런 걸로 얼굴 붉히지 마.”

나는 열이 느껴지는 얼굴을 살짝 돌려 그녀의 시선을 외면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그녀가 킥킥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마음먹고 쓰기로 한 거야. 그만큼 이번 사랑은 소중했거든. 방법은 간단했어. 저번에 너한테 시도했듯이 내가 쓰는 잔으로 한모금만 마시게 하니 끝이었지. 선예가 그 물질에 확실하게 접촉된 것을 확인한 후에, 나는 그 애한테 승엽이의 태도에 대해 열심히 비판했어. 사실 그날 상담도 승엽이가 다른 여자애한테 눈독 들이는 걸 깨달은 선예가 신청한 거였거든. 결국 확실하게 승엽이의 마음을 얻고자 선예는 여기서 떨어졌지.”

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고 그와 함께 어디선가 날라 온 벚꽃 잎이 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고개를 돌려 담담히 고백중인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뒤에 니은이랑 너가 사건을 조사한다는 사실을 알았어. 너는 몰라도 니은이는 인기가 많기 때문에 하는 일들이 모두 주목을 끌거든. 그래서 이번에는 시현이한테 갔지. 입술 한 번 주고 나서 너를 어떻게 해주면 내 모든 것을 주겠다고 하니까 그대로 너한테 달려가 버리더라고. 참 불쌍하기도 하지. 왜 너네 둘 중 더 눈에 띄는 니은이 아닌 너를 노렸는지는 이제 알겠지? 그래도 니은이는 내 친구니까 따로 손을 대기 싫었어. 뭐, 이렇게까지 된 마당에 이제 친구관계는 물 건너 간 거겠지만.”
“그럼 승엽이는 왜? 아침 뉴스에 사건이 보도되었다는 건 늦어도 그날 밤에 너가 일을 저지른 거야. 시현이 만으로는 안심을 못 한 거야? 아니면 이래도 저래도 결국 나는 죽일 생각이었던 거야?”
“그렇게 말하니 내가 엄청 나쁜 애처럼 보인다, 야. 그냥 나는 승엽이가 주변 사람들의 눈 때문에 나랑은 못 사귀겠다고 하니까 저질러 버린 거야. 그 애가 나랑 사귀지 않고 너에 대한 복수를 하려 한건 내 예상 외였다고.”  

모든 것이 드러났다. 하지만 나는 아까부터 이 옥상이 마음에 안 들었다. 특히 그녀가 모든 것을 말했다는 사실과 함께는 더더욱 마음에 안 들었다. 나는 그녀를 향해 다가갔지만 그녀는 뒷걸음질로 천천히, 그리고 확실히 난간을 향해 갔다.

“그러지 마, 어차피 끝난 일이잖아.”
“글쎄, 잠시 후면 나도 끝난 사람이 되어 있을 텐데 뭐.”

이윽고 난간이 그녀의 다리에 닿았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고,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녀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우리 둘 사이의 거리는 너무 멀었고, 내 다리는 너무 느렸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녀가 마지막으로 입을 움직여 말한 작고 연약한 한 마디를 듣는 것 밖에 없었다.

“...미안...”

[13]

의자에 몸을 파묻은 자세 그대로 내 얘기를 다 들은 니은은 집게손가락 끝을 입술에 두들기며 뭔가 생각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사람을 깔보는 듯 한 미소를 지었다.

“와트슨, 역시 당신은 홈즈가 되려면 멀었어요.”                    
“예?”
“역시 알아차리지 못했군요. 강예슬은 말이죠, 정말 뛰어난 거짓말쟁이에요.”

그녀는 마이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작은 다이어리 하나를 꺼내 내 쪽으로 밀었다. 다이어리를 받아 펼쳐보니 강예슬의 것이었다. 내가 건성으로 페이지를 휘리릭 넘기고 있는데 니은이 말했다.

“제가 접어둔 페이지를 한번 읽어봐요.”
“...누구도 우리를 이해 못 할 거야. 하지만 선예야, 설령 사람들의 돌을 맞게 되더라도 그건 네가 아닌 나일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너만은 내가 지켜줄게...”

그제야 나는 이해가 되었다. 강예슬은 정말로 대단한 거짓말쟁이였던 것이다. 박선예는 변승엽과 강예슬, 두 사람의 연인이었다. 나는 이 새로운 기준에 맞춰 사건을 되짚어 보았다. 아마도 강예슬은 박선예를 우연이었든 고의였든 간에 그 물질에 접촉시키고 나서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설득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박선예는 변승엽과 강예슬 두 사람 다를 좋아했기 때문에 남은 두 사람을 걱정하지 않고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방법으로 자기정체성의 혼란을 끝맺음하였다.
박선예가 강예슬과 헤어진 후 승엽이를 찾아왔다가 만나지 못하고 옥상에서 떨어지기까지의 7분. 그 사이에 강예슬은 박선예가 왔을 거라고 생각된 우리 반에 찾아왔지만, 조금 늦은 관계로 그녀가 볼 수 있었던 것은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는 척 하는 나뿐이었다. 결국 잠시 후에야 그녀는 박선예를 볼 수 있었다. 비록 산 자와 죽은 자라는 다른 입장이었지만. 그래서 그녀가 아는 한 마지막으로 박선예를 붙잡을 기회가 있던 사람은 나였던 것이다.  
김시현이 니은이 아닌 나를 공격한 이유? 그야 강예슬은 박선예의 죽음을 막지 못한 나를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강예슬이 변승엽에게 그 물질을 접촉시킨 이유 역시 나를 제거함과 동시에 자신이 좋아하던 선예의 남자친구이자 불성실한 태도로 그녀를 괴롭힌 변승엽에 대한 질투와 분노의 처벌을 내리기 위한 것이었다.

“강예슬의 컵에 쓰여 있던 K.Y.S.와 B.S.Y.는 강예슬과 변승엽이 아닌 강예슬과 박선예였군요.”    
“뭐, 그런 거죠. 그녀가 당신에게 싸구려 악당처럼 모든 것을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죽은 박선예가 양성애자라는 사실을 숨겨주기 위한 거였어요. 단지 죽은 사람을 위해 자신이 죽는 순간까지 거짓말을 하다니, 정말이지 대단한 거짓말쟁이에요.”
“그런 사람의 거짓말을 당신은 어떻게 알아낸 거죠?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당신이 정체모를 방법으로 이 다이어리를 입수했을 거 같지는 않은데요.”
‘정체모를’부분에서는 다시 한 번 니은의 미소가 사나워졌지만, 그녀는 곧 표정을 풀고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나도 그녀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한창 날리고 있는 벚꽃 잎들이 보였다.  

“...기억나요, 빈소 얘기? 당신이 변승엽에게 습격당한 날, 박선예의 빈소에 찾아갔었어요. 거기서 울고 있는 강예슬을 만났었죠. 그때만은 감정이 제어가 안됐는지 강예슬은 진짜로 슬프게 울고 있었어요. 그게 우리 앞에서 그녀가 자기의 진솔한 모습을 보인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니었을 까 싶네요.”

흔들리던 흰 벚꽃 잎. 그렇게 약해보이는 데도 바람에 날라 가지 않고 마지막까지 그녀에게 붙어 있었다.  

“강한 사람이었네요.”
“강한 사람이었어요.”  

잠시 우리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벚꽃 잎을 구경하고 있었다. 요 며칠 동안의 정신없는 나날에 비해 너무나도 평화로워 보이는 광경이었다. 그 광경을 나는 조금 더 즐기고 싶었지만, 니은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의해 짧은 평화는 막을 내렸다.

“그러고 보니 총 든 정신이상자하고 싸우다니. 싸움도 못하는 와트슨 주제에 너무 건방진 거 아니에요?”
“...이제야 말하지만, 전 와트슨보다는 필립 말로가 좋거든요.”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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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슬립을 읽고 홧김에 이틀만에 써버리기는 했지만, 다 쓰고 보니 그저
안쓰러울 뿐...

뭔가 괴상망측 작품이 되고 말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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