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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 이야기의 우물

2014.11.01 00:1011.01

 아주 조용히 많은 이야기들이 우물 안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한율은 새벽마다 샘에 낚시대를 드리워 그 중 하나를 건져 올렸다. 제책하는 실과 제본용 풀로 촘촘히 짠 망에 싱싱하게 퍼득이는 이야기를 넣은 그는 가게로 돌아와 예약 손님을 위해 회를 쳤다. 쓸데없는 지느러미를 쳐내고 살을 발라내고 백합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뼈를 들어내 휙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뼈대만 남았으나 여전히 살아있는 이야기는 먼지와 머리카락, 음식물이 범벅된 쓰레기통에서 필사적으로 퍼덕이다가 부드럽고 쫄깃한 제 살들이 식탁으로 나가 사람들에게 먹힐 때면 겨우겨우 조용해졌다.

 먼 곳에서 이 시골까지 그의 이야기를 맛보러 일부러 온 사람들은 이야기의 은은하게 빛나는 살들을 입에 넣으며 다들 한율의 기술이 최고라고 말들했다. 뼈까지 씹으면 더 맛났으리라고 몇몇 미식가들이 말했으나 아주 소수였고, 보통은 솜씨 좋게 발라낸 생살을 원했다. 예리한 칼날로 떠서 뼈에서 막 발라내 퍼득퍼득 떨리는 살점을.

 이야기들은 우물 속에서 건져올려질 날을 기다리며 휘돌고 있었다. 한율의 우물은 주변에서 이야기가 제일 많았으며, 생생했고, 아름다웠다. 사실 모든 이야기들은 아름답다. 지느러미 끝부터 뼛속까지 전부. 그러나 한율의 가게를 들르는 대부분의 손님들은 비늘을 걷어내고 뼈를 발라내 가지런히 진열한 이야기를 원했다. 비슷비슷한 모양새의 이야기를 더욱 정제해 보기 좋게 늘어놓은 회 정식.

 한율은 가끔 자신의 이야기를 손님용 식탁 위에 그냥 내놓는 상상을 했다. 유연하고 생기 넘치는 이야기가 몸을 뒤틀며 퍼득퍼득 뛰어오르면 고상하게 진열된 식기는 흐트러지고 식탁 아래로 쨍강쨍강 맑은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내릴 터였다.

 혹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낚아올리는 상상도 했다. 이제껏 보지 못한 지느러미나 전혀 다른 색의 비늘이 난. 맛도 다른. 비록 단골 손님들은 떨어지겠으나 손질하는 재미는 넘칠 것이다.

 그러나 재미와 매상을 맞교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숨을 내쉰 한율은 제 식칼을 바투잡고 오늘 새로 낚은 이야기를 향해 내리쳤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꼬리가 잘려 떨어지고 손바닥 아래 축축한 몸이 퍼득 튀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한참 낚싯대를 드리웠지만 이야기는 잡히지 않았다. 어둠이 드리운 우물 안은 고요했다. 지느러미가 수면을 치는 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한율은 그 날 밤늦게까지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가 빈 망을 들고 돌아왔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일주일이 지나자 비축분이 다 떨어졌다. 비상시를 위해 냉동고에 보관했던 것들을 해동하여 정성껏 요리했으나, 역시 갓 잡아 올린 것보다 맛은 떨어져 기대하고 찾아왔던 손님들은 떨떠름한 기색으로 돌아갔다.

 한율은 들어온 모든 예약을 취소하고 [휴가중] 판을 내걸었다. 다행이도 적금이 있었다. 모아둔 비상금도 있었다. 그는 여행배낭을 챙겨 훌쩍 길을 떠났다. 뚜껑을 덮고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들여다 본 우물 안은 오래되어 말라버린 구덩이처럼 물소리조차 없었다. 그는 깊은 수면 아래 어른대던 비늘조차 아름답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어디로 갔나 궁금해 하며 자리를 떠 여행을 시작했다.




 이야기가 더 이상 올라오지 않을 때 사람들은 곧잘 여행을 하곤 한다. 음악을 들려주는 사람, 산책을 하며 우물을 쉬게 놔두는 사람, 새 이야기를 사 오거나 남의 이야기를 맛보며 돌아다니는 사람 등 대처방법은 가지각색이었다. 한율은 이야기가 올라오지 않기는 처음이었으나 예전부터 그러할 경우 여행을 하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그는 이전까지 한 번도 그의 마을을 떠나 본 적이 없었다. 그의 우물은 여기 있었고 올라오는 이야기는 항상 싱싱했으며 떠날 이유가 없었으므로. 그러나 그는 하나 둘 숲과 산과 도시와 바다로 떠나는 친구들을 은연중에 부러워했다. 한율의 세계는 그의 우물만큼 좁았고 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여행을 하며 그는 평범한 사람들을 만나고 진부한 일상을 경험했으나 처음 마을 바깥에 걸음을 딛은 그에게는 모두 새로운 일 뿐이었다.




* 백 개의 새장이 종을 울리면

 한율이 처음으로 묵은 민박집은 근처 마을 외곽에 있었다. 버스가 다 끊겨 역 앞에서 잡아탄 택시에서, 택시기사의 입담에 제 직업을 밝히자마자 기사는 그 민박집으로 차를 몰았다.

 “우리 마을에서 이야기하면 그 할멈이지. 아주 장관이야. 일부러 그 집에 묵으려고 오는 도시 사람도 있어!”
 “그렇게 이야기 맛이 좋나요?”

 한율의 물음에 기사는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얘기가 아닌데. 가면 알지, 알아. 척 보면 알 걸.”

 과연 그의 말대로였다.
 



 30년 동안 민박집을 운영했다는 할머니는 그에게 차근차근 빨래 너는 곳, 욕실, 잠자리를 소개했다. 풀과 나무가 무성하게 우거진 정원 때문에 모기가 많다고 말한 그녀는 찬장에 산처럼 쌓인 모기약 한 병을 빼 주었다. 한율은 모기가 많아봤자, 라고 생각했는데 밤에 5분 간격으로 깨서 살충제를 분사하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나중에는 뿌리기도 지쳐서 머리 끝까지 이불을 치켜올리고 설잠을 잤다. 얇은 베이불이었는데도 머리통까지 덮어쓰니 후덥지근하고 땀이 삐질삐질 났다. 어쩌다가 발이 이불 밖으로 나갔는지 발바닥을 물려 아침엔 깨자마자 연신 발바닥을 긁어야 했다. 꼴이 볼썽사나워 그는 시뻘건 눈을 껌벅이며 하품을 했다.

 그 집에서 이틀 묵기로 했던 한율은 하루 만에 떠나고 싶어졌다. 조심스레 운을 떼는 그를 주인 할머니는 너그럽게 웃으며 이해해 주었다.

 “나도 가끔 힘들어요. 그치만 모기로 성가신 건 한때고, 여기가 내 집인걸요. 바깥 양반이 벽돌을 쌓았구 내가 시멘트를 발랐죠.”

 정문에서 현관까지 깔린 돌길도 하나하나 잘 생긴 돌을 골라 부부가 함께 놓았다고 말하는 그녀의 웃음은 고왔다. 한율은 망설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보기 위해 딱 하루만 더 체류하기로 했다. 모기 물린 데 바르려고 연고를 사러 간 약국에서 만류했던 까닭이었다.

 “그 집에 묵으면서 못 봤단 말이야, 그걸? 그 집서 잔 의미가 없네, 없어. 아깝게시리!”

 이런 소리를 들으면 아무래도 약이 오르기 마련이다.

 한율은 약봉지를 들고 제가 떠나온 곳과 닮아 별 새로울 것 없는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논두렁에서 작은 이야기들이 꼬물거리며 모래 안으로 파고들었다. 냇가에는 제법 실한 이야기들이 기운차게 퍼덕여 낚시 생각이 절로 났다. 문득 한율은 돌과 진흙 사이로 어른거리는 묵색 비늘을 보았으나 금방 사라져 확신을 할 수 없었다. 그는 바지를 걷고 잡으려 들어가려다 그만 두었다. 시골에는 외부인에게 내보이지 않는 굵직한 이야기들이 한두 개 묻혀 있기 마련이었다.

 그 외에는 볼 것이 없었다. 탁 트인 논밭에는 바람만 지나갔고 사람이 없어 시골길은 한적했다.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수건을 목에 걸친 마을 사람 몇몇과 마주쳤다. 창 아래서도 볕에 탄 얼굴에 주름이 빼곡했다. 어디서 왔소? 묻다가도 민박집 이름을 대면 아, 그 집. 하고 여상스레 지나쳤다. 관광객이 잘 찾는 집이긴 한 모양이었다.

 민박으로 돌아온 한율은 마당 평상에 앉았다. 울타리 너머 멀리로 경운기 소리가 들려왔다. 여름도 이제 끝물이었다. 곧 따가운 여름볕이 가시면 수확하느라 다들 일손이 바쁠 터였다. 김매기는 한참 전 끝났고 신경써야 할 폭풍도 지나가고 수확하기 전 딱 한가로운 시기 잘 찾아왔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한율은 모기에게 물려 근지러운 뒷목을 긁었다.

 “그래도 사람이 많이 없네요.”
 “젊은이들은 다들 도시로 갔으니까요. 돌아오는 사람도 별로 없구. 나랑 바깥양반만 해도 젊을 때는 도시 사람이었는걸요.”
 “처음 자리 잡을 때 텃세가 심했을 것 같은데요. 시골이면 다 그렇다고들 하던데.”

 할머니는 곱게 웃었다. 

 “초기에는 조금 힘들었지만, 얘네들이 있으니까 버텼죠. 다 내 자식들 같으니까. 이웃은 처음엔 싫어했는데 얘네가 있으니 농사 일에 도움도 되고, 젊은 사람들이 와서 음식도 사 먹고 하니 좋나 봐요. 잘 됐죠, 다.”

 녹음이 짙은 나뭇잎이 그늘을 드리워 빛살이 잎 사이로 어른거렸다. 나뭇가지에 수없이 매달린 새장들이 햇살을 반사해 반짝였다.

 한율은 하릴없이 기다렸다. 저녁 어스름이 지자 모깃불을 들고 나온 할머니는 수박을 썰어주곤 앉아 부채를 부쳤다. 여름 땡볕 열기로 달달하게 익은 수박을 어석어석 베어 먹고 있자니 후득후득 날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자못 장관이었다. 온갖 종류의 새들이 잎사귀 더미를 뚫고 혹은 지붕 아래로 헹글라이더처럼 호선을 그리며 낮게 내려와 정원의 수반에서 이야기를 하나씩 낚아채 날아올랐다. 퍼덕이는 이야기에서 물이 튀고 기운차게 상승한 새들은 제 새장으로 들어가 열심히 싱싱한 만찬을 즐기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새장들이 서로 부딪치며 소리가 쨍그렁 쨍그렁 만종의 울림처럼 깊고 멀리 퍼져나갔다. 몇몇 오색빛 작은 새들은 모기를 간식 삼아 콕콕 채어 삼킨 후 제 크기에 걸맞는 이야기를 냉큼 물어 목구멍으로 넘겼다. 재잘거리는 새 울음과 깃털 파닥이는 소리로 작은 정원은 삽시간에 명랑하게 복작거렸다. 할머니가 모깃불을 껐다.

 “오늘은 모기가 없을 테니 편히 잘 수 있을 거예요.”

 할머니의 예전 말 대로 ‘한때’였다. 그 날 밤은 살충제가 필요없었다. 가끔 창문 밖으로 새가 깼다가 다시 잠들며 구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새벽 해가 뜨자 새장을 떠나는 수많은 날개 소리에 한율은 일찍 잠을 깼다.







* 대피소에서 라면과 함께

 한율은 조난당할 뻔 했다. 산을 만만하게 본 소치였다.

 퉁퉁 부은 발목으로 절뚝거리며 등산로를 걷던 그는 주저앉았다. 그를 지나쳐 갔던 등산객들이 알려줬는지 설렁설렁 등산로를 타고 내려온 중년 남자가 와서 그를 업고 수월하게 산을 올랐다. 산 중턱 대피소에 그를 내려놓은 남자가 능숙하게 처치를 해 준 덕분에 간신히 발목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지만, 염려 섞인 권유로 한율은 그곳에 며칠을 더 머무르게 되었다.

 “산을 타려면 등산화를 신어야지.”

 타박을 한 아저씨는 대피소에 근무하는 직원이었다. 설악산에서 근무하다 3년전 이 산으로 왔다 했다. 허기져 하는 한율에게 빵을 건넨 그는 자기 몫의 반을 잘라 울타리에 기대 멀리멀리 뿌렸다. 대피소 아래 흐르는 시내에 떨어진 빵 부스러기는 둥둥 떠가다 작은 물보라와 함께 사라졌다. 이곳에도 이야기가 살고 있었다.

 “누구 이야기인가요? 혹시......”

 당신의 이야기냐, 는 뜻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등산객들 이야기지.”
 “자기 이야기를 여기 버리고 가나요?”
 “버린다? 자기들은 별로 그런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아. 그냥 내려놓고 가는 거지. 집에는 놔 둘 장소도 없고 키울 생각도 없으니까.”

 졸졸 흐르는 냇물은 저 아래 계곡으로 이어졌다. 발목이 나은 후 내려가 들여다 본 계곡의 이야기들은 한율이 본 것들 중 가장 컸다. 직원 아저씨는 등산로의 낙엽을 쓸며, 가끔 곰이며 여우가 내려와 이야기를 낚아간다고 말해 주었다. 싹싹 쓸린 낙엽이 수면에 뿌려졌다가 둥둥 떠내려가고 많은 치어들이 먹이가 떨어진 줄 알고 몰려왔다가 흩어졌다.

 대피소에서는 취사장이 있었지만 야외 벤치에서 고기를 굽고 술병을 따는 사람들도 많았다.아직 다리를 절뚝거리던 한율은 심심하면 그들 사이에 들어가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다양한 나이대의 관점에서 들었다. 끼어들기는 의외로 쉬웠는데, 한때 칼질을 하던 솜씨로 그는 코펠에 파와 마늘과 김치를 능숙하게 썰어 넣고 참치캔을 따 끝내주게 맛난 라면을 만들 수 있었다. 라면 냄새는 앞마당 널리널리 퍼졌는데 대피소 직원 아저씨가 인정할 정도로 신의 솜씨였고 한율은 침을 삼키는 등산객들에게 한마디 했다.

 “같이 드실래요?”

 시장도 밥반찬인데 프로의 솜씨가 더해지자 그의 라면은 인기가 대단했다. 흥이 돋은 몇몇 이들이 얼큰한 음식엔 횟감이 필요하다고 자기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숙련된 손놀림으로 회를 치며 그가 물었다.

 “제가 써도 괜찮나요?”
 “어차피 갖고 있어도 별 소용없는 거, 그냥 써!”
 “내 것두 가져가. 버리려고 가져왔는데 마침 잘 됐네.”

 흰 살에 초고추장을 듬뿍 찍어 입에 가져가던 아주머니가 제 이야기를 내어놓았다. 얼근하게 술에 취한 아저씨가 겔겔 웃었다.

 “이놈의 여편네야, 고런 피래미를 어따 써 먹으라구. 한 입 거리도 안 되겠구만!”
 “뭐? 이게 다 누구 탓인데 이래, 잘 키우게 집이나 큰 거 사줬으면 또 몰라!”

 한바탕 부부싸움이 벌어지려는 것을 일행이 급하게 뜯어말렸다.

 산을 한바탕 탄 등산객들로 대피소는 날마다 북적였다. 매일 새로운 등산화가 문지방을 밟고 들어오며 또 떠나갔다. 피어오른 산안개를 헤치고, 내리꽂히는 땡볕을 이겨내며, 때로 위험한 폭우에 흠뻑 젖어 대피소에 들어온 등산객들은 피로에 절어 축 늘어졌다. 더러는 놀고 마실 체력이 남아 일상의 시름을 다 떨치며 흥겹게 놀고 깊게 푹 잤다. 다음날 무거운 몸을 일으킨 이들이 등산 스틱을 고쳐잡고 떠나면 풍광 좋은 산 곳곳에 발자국이 남았고 대피소 아래 계곡은 꼬물거리는 치어들로 차고 넘쳤다. 산짐승들을 살찌우는 일등공신이었다.

 한동안 대피소에 거주하며 라면이며 김치찌개며 삼겹살까지 손 안 대 본 메뉴가 없고 등산객들 주사도 겪을 만큼 겪자 한율은 짐을 쌌다. 대피소에서 빌린 등산화로 산길을 조심조심 밟아 내려왔다. 산 아래 고인 호수에는 낚시꾼들이 낚시대를 드리우고 이야기를 낚고 있었다. 이곳에서도 잡히지 않는 이야기는 먼 바다로 흘러갈 것인데, 그곳에서 낚인 이야기가 손에서 손으로 건네져 밥상에 올라간다면 버린 자신의 이야기와 맞닥뜨린 주인은 어떤 표정을 지을지 한율은 궁금했다.






* 도시 :: 작고 작은 수많은 이야기들

 한나절 내도록 버스를 타자 도시가 나타났다. 한율이 TV에서만 봤던 대도시였다. 복잡하게 전선과 자동차와 창문들이 얽힌 이곳에서 한율은 더 많은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의외로 이야기를 찾는 것조차 몹시 어려웠다. 도시의 강은 탁했고 공기는 매캐해 이야기가 살기 좋은 장소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의외의 장소에서 그림자 같은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새벽의 습기와 매연이 뒤섞인 아침 안개가 뿌옇게 거리에 내려앉으면 연기처럼 존재감이 옅은 이야기들은 안개 속을 유영하며 공기를 찼다.

 수직으로 드높게 치솟은 빌딩과 어슷하게 하늘을 자른 수다한 전선들 사이를 기웃거리면 이야기들은 쉽게 발견됐다. 마땅히 몸 담글 곳이 없어서인지 그들은 온갖 곳에 파고들어 있었는데 존재감은 매우 옅었고 사람들은 웬만큼 크고 화려한 이야기가 아니면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음식점에서 내주는 물통, 비 온 후 보도블럭에 고인 빗물, 심지어 기름 뜬 강물의 아래서도 이야기들은 숨 쉬고 있었다. 흔한 현상인지 보행자들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 뜻밖의 장소에서 조우하는 이야기들은 거리 횟집의 큰 어항에 그득하니 들어찬 이야기들과 같은 종이라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작고 섬세한 비늘을 반짝였다.

 그는 이 작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누구의 것들인지 궁금해 했으나 주인은 잘 나타나지 않았다. 이야기들은 대부분 방치되어 있다가 공기처럼 가볍게 삼켜지고, 소모되고, 말라갔다. 도시에는 우물이나 구덩이를 팔 땅이 적은 만큼 사람들은 물통이나 텀블러-긴 컵같이 생겼다-에 이야기를 따로 담아다니는 것 같았다. 한율은 불꽃 같은 진주홍 스카프를 감은 여자가 벚꽃이 그려진 예쁜 텀블러에 자신의 스카프와 같은 색의 이야기를 담고 까페를 나서는 것을 보았다. 식수대에 풀색 흙색 군복을 각 잡고 입은 군인이 경직된 발걸음으로 다가가 역시 위장색으로 물색을 띤 물고기가 담긴 수통에 물을 채우는 것도 보았다.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가 커피를 담았던 종이컵을 헹궈 자신의 물고기를 넣는 것도 보았다. 어디에나 강이 흐르고 자신만의 우물이 있는 시골에서는 보지 못했던 풍경이었다.

 그가 이야기 때문에 여행을 왔다고 하면 도시 사람들은 희한한 인종을 보는 눈을 했다. 불쌍해 하기도 했다. 도시에 널린 것이 이야기였다. 하나 가져갈래요? 하면서 종업원이 이야기가 담긴 물컵을 건네기도 했다. 누구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거리에서는 가판대에서 바싹 튀긴 이야기들을 종이에 싸서 팔았다. 기름기가 묻어나는 튀김옷을 씹으면 잘라내지도 않은 지느러미가 씹히곤 했는데 맛은 굽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식고 흐물흐물한 식감에 토할 뻔하고 전부 공원의 비둘기에게 선사하기도 했다. 겉이 바삭바삭하고 아직 훈기가 가시지 않아 김이 무럭무럭 나는 부드러운 속살을 씹으며 행복해 하기도 했다. 손가락 만한 작은 이야기들은 기름에 잘 튀겨진 것이면 입으로 쏙쏙 들어가는 감칠맛이 있어 시원한 맥주랑 같이 먹으니 천국이었다.

 이토록 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한율은 제 이야기를 한 마리도 건지지 못하는 자신이 바보스럽게 느껴졌다. 도시 사람들에게 이야기는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이고 하찮게 보였다. 가끔 비가 오면 후두둑 꽃잎보다 작은 수많은 이야기들이 떨어졌다가 빗물과 함께 하수구 구멍으로 사라졌고 몇몇 굵직한 이야기들은 고인 물 속에서 팔딱이다 튀김을 파는 사람들의 그물에 걸렸다. 익숙하고 무심한 손놀림으로 슥슥 배를 가르고 창자를 긁어내며 가판대 주인들은 이 이야기들이 도시 사람들이 버린 녀석들이라 했다. 저들도 살고 싶은 모양이었는지 도시의 이야기들은 아주 가볍고 작게 진화했다고. 아마 이 이야기들은 구름 속에서 숨쉬고, 짝짓기하고, 알을 낳다가 비가 내릴 때 너무 무거워진 것들만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것이라고. 알과 새끼들은 구름결에 남아 계속 살아간다고.

 “저게 우리 밥줄이지. 없으면 이 주변 노점상들 다 망하지, 망해.”

 가판대 주인은 하늘의 구름을 가리키며 다른 손으로는 계속 노릇노릇 구워지는 이야기 튀김을 뒤집었다.

 아침 안개가 낀 날 아파트촌을 지나다 보면 몇몇 창문이 열리고 한 바퀴 거리를 돌고 돌아오는 이야기들을 맞아들이는 사람들이 눈에 띄기도 했다. 도시라는 삭막한 환경에서도 이야기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생존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들을 키우며 살고 있었다. 마을의 샘과 우물을 떠올리며 한율은 이야기들에게 집집의 어항이나 물통은 작지 않을까? 생각하다 기차역에 가서 표를 끊었다. 손바닥 한 움큼만큼 고인 물들을 매일같이 보고 있자니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 길고 먹먹한 뱃고동소리

열차를 타고 한숨 잤다가 눈 뜨니 밤이었다. 삼삼오오 내리는 승객들을 따라 내려 바다에 면한 방을 찾았다. 제일 헐은 곳을 골라 한 숨 자곤 바닷가를 한 바퀴 돌았다. 포구에 밧줄로 묶여 늘어선 배들과 철이 아니어 사람 없는 해변가가 황량했다.

파도가 핥은 자국이 허연 물거품으로 남는 모래밭을 몇 번 뒤적이다 돌아섰다. 워낙 많은 고깃배 탓인지 이야기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넓고 깊은 물이 있는데도. 한율은 황량한 바다 주변을 뱅뱅 돌았다. 열차를 타며 기대했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헤엄치는 바다란 얼마나 장관일는지. 결과는 겨울 밭뙈기처럼 텅텅 빈 자리여서 한율은 내심 섭했다. 둥실둥실 부풀었던 기대감이 빵 터져나가고 그는 여관방에 들어앉아 남은 돈을 셌다. 다시 돌아갈 길이 까마득했다. 돈은 남았으나 논밭과 산과 도시를 돌아 바다까지 왔는데 성과가 없었다.

이곳은 젊은 피가 다 빠져나간 작은 항구였다. 한율은 근처 횟집에 기어들어 경력이 있다 말하고 칼을 잡았다. 드문드문 도시에서 날것을 먹으러 오는 손님이 있어 일손이 필요했던 가게는 쉽게 그를 받았다. 배는 소소하게 이야기들을 건져왔고 바다가 사나운 날은 수조에 있는 것을 썼다. 남의 이야기를 다듬으며 한율은 고향에 있을 제 우물을 생각했다. 백 마리 새들이 일용할 이야기가 들어있던 작은 수반과, 등산객의 이야기로 살찌던 계곡을 회상했다. 안개 속에서 떠돌다 제 집으로 돌아가던 도시 이야기들의 궤적을 떠올리며 한율은, 그의 이야기들도 문득 우물을 박차고 나와 제 주인을 찾아 하류로, 하류로 내려오고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바다 비린내가 몸에 배고 이른 새벽 가게문을 열며 새로운 생활패턴에 익숙해질 무렵 사장이 말을 걸었다.

“예전엔 어디서 일했냐?”
“OO군에서요.”
“계속 알바만? 아니지?”

사장은 한율에게 칼을 맡긴 후 아침저녁으로 담배만 태웠다. 이야기를 낚아 온 어부들과 술잔을 잡으면 가게 셔터를 내릴 때까지 놓지 않는 술꾼이었다. 한율은 가게의 단칸방에서 술냄새를 풍기는 사장과 머리를 반대로 하고 자다 새벽 알람이 울리면 부스스 일어나 어젯밤 어부들이 수조에 넣어놓고 간 싱싱한 이야기들을 다듬었다.

“가게가 있었는데......잘 안 되더라구요.”

사장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장부 계산이 깔끔해서 자기 가게가 있을 줄 알았지. 그래서, 어때? 이야기는 나올 것 같아?”
“그러면 여기 있겠습니까. 금방 돌아갔지요.”

한율은 저도 모르게 퉁명스러워졌다. 사장은 그렇구만, 하고 넘겼는데 한율은 쉽사리 미안해져서 그 날은 산 대피소에서 많이 했던 얼큰한 김치찌개를 끓여 주었다. 건너편 국밥집에서 가져온 수육을 곁들여 내자 사장은 소주 세 병을 반주 삼아 맛나게 상을 비우고 초저녁부터 골아 떨어졌다.

바다의 날들은 귀를 싸하게 닦는 파도소리와 지느러미에서 묻어나오는 비린내의 나날이었다. 점심 장사는 몇 없는 관광객과 낮부터 소주잔을 기울이는 단골을 받았다. 손님이 빠져나가면 잠깐 가게 문을 닫고 해변가를 걸었다. 쓰레기와 기름이 둥둥 떠다니는 수면 아래 이야기들은 어른거리다 더 깊은 물속으로 헤엄쳐갔다. 저녁 장사는 여느 밥집과 달리 8시부터 느지막하게 시작했는데, 근처 시내에서 오는 직장인들의 회식장소로 이 집이 손꼽혔기 때문이었다. 사장의 솜씨는 제법 뛰어난 축에 속해 알음알음 입소문 따라 찾아오는 이들이 많았다. 월급쟁이들은 멀쑥한 양복을 입고 들어왔다가 폭탄주와 담배연기에 절어 3차로 노래방을 뛰었다. 한율은 상을 치우며 사장에게 한 소리를 듣곤 했다. 넌 언제 돌아갈 거냐? 제 가게가 있었다는 말을 한 이후로 하루에 한 번씩 빠짐없이 듣는 소리긴 했는데 짜증은 나지 않았다. 그저 그도 궁금했다.

뒷정리를 끝내고 식당 문을 닫으면 그는 담배 한 가치 태울 기력도 없었다. 의식이 뚝 잘리듯 골아 떨어졌는데 휴일에는 정오를 훨씬 넘기며 잤다. 그렇게 그가 정신없이 노동을 하는 동안 사장은 어쩌고 있었냐면, 한율이 이야기를 다듬고 남긴 지느러미며 꼬리를 바다에 던져 넣었다. 아침 저녁의 일과였다. 점심과 저녁 사이에는 근처 슈퍼에서 팔백 원짜리 빵 두 봉지를 사서 하나를 한율에게 먹으라고 갖다주고, 다른 하나는 반쪽만 먹고 남은 빵을 뜯어서 바닷물에 던져 넣었다. 간혹 갈매기가 빵조각을 채 가기도 하면 그는 성질을 부리며 고함을 쳤는데 길지 않았다. 지나치게 시끄러워지면 민박집 할매나 옆가게 주인이 나와 소리를 질렀고 사장은 금방 쭈그러들어 봉지 안 남은 빵을 털고 들어왔다. 주변 사람들은 사장의 그런 기행에 대해 이해해주는 것 같았다.

어느 날 밤이었다. 한율은 툭툭 비오는 소리에 눈을 떴다. 소나기 같았다. 후두둑, 창을 치는 빗소리가 멈췄다가 또 조금 있으니 후두둑, 이어졌다. 비 오나 보네, 하고 창밖을 보다 허전한 감에 돌아보니 옆에 누워 있던 사장이 없었다.

시간을 보니 새벽 3시였다. 한 시간 지나면 어차피 일어날 때였지만 있어야 할 사람이 없으니 걱정이 됐다. 술에 절어 길거리에 널부러져 있는 것은 아닌지. 대충 옷을 주워 입고 나오다 또 후두둑 떨어지는 물방울에 그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바다 쪽에서 긴 뱃고동 소리가 들려왔다.

운동화 뒷축을 구겨신고 나가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작은 우박 세례 같은 짧은 소나기는 내렸다가 그치기를 거듭했고 어느덧 뿌연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골목골목을 헤매다 포구로 나오자 시야가 탁 트였다. 사장은 방파제에 서서 바다를 보고 있었다.

긴 뱃고동 소리가 다시 들려왔는데 더 가까워진 듯 했고, 배는 보이지 않았다.

옆에 가 서자 사장은 한율을 힐끗 보고 바다로 고개를 돌렸다. 담뱃불이 붉게 껌벅였다. 검은 먹물 같은 수면은 방파제에 부딪쳐 찰랑찰랑 소리를 냈다. 한율은 까묵한 어둠 건너편을 한참 보다 물었다.

“사장님 이야깁니까?”
“그래.”
사장은 담배를 뻑뻑 빨다가 후두둑 물방울이 떨어져 담배가 꺼지자 혀를 찼다. 라이터를 꺼내 젖은 끝에 겨우 불을 붙이자 길고 깊은 울림이 다시 들려왔다. 한율은 그제서야 그 긴 소리가 뱃고동소리가 아님을 깨달았다.

깊게 내쉬는 숨이 수면에서 폭발하듯 솟구쳤고 한 호흡 후에 후두두둑 소나기처럼 쏟아진 물방울에 어깨가 다 젖었다. 한율은 주머니를 뒤졌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대신 사장이 앞주머니에서 안주로 나왔을 땅콩 몇 알을 꺼내 바다에 던져주었다. 길고 둔중한 울음소리가 뒤를 따랐다. 한율은 물었다.

“고래도 땅콩을 먹나요?”
“몰라, 짜샤. 알아서 먹고 살아야지.”

동물도감에 고래는 플랑크톤을 먹고 산다고 적혀 있었지만, 사장의 이야기인 고래라면 술안주도 마다하지 않을 것 같았기에 한율은 토를 달지 않았다. 다시 긴 울음소리가 포구를 울렸다. 먹먹하게 어두운 바다 너머에서 작은 산처럼 거대한 것이 올라오며 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넓고 미끈한 지느러미가 표면을 쳤고 생겨난 파도가 방파제를 넘어 그들의 발목까지 적셨다가 하얀 포말과 함께 쓸려나갔다. 한율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물러났으나 별을 가릴 것처럼 커지던 그림자는 곧 내려갔다. 다시 한번 철썩, 파도가 방파제를 치고 넘쳐흘렀다.

사장이 꿍얼거렸다.

“요번에도 못 나는구만.”
“......어떻게 고래가 날아요?”
“좀 날면 어때?”

어차피 이야긴데. 말하지 않은 뒷말을 읽은 한율은 고개를 내저었다. 날치도 아니고 가볍지도 않은 고래가 어떻게 나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는데 고집불통에 술주정뱅이인 사장에게 말해봤자 소용없을 터였다. 그러고 보니 술 냄새가 지독하게 났다. 사장은 하품을 한번 하고 돌아서 갈짓자 걸음으로 휘적휘적 바다 쪽으로 걸어갔다. 기겁한 한율은 그를 부축해 집으로 끌었다.

열흘 후 한율은 짐을 쌌다. 사장은 시원섭섭한 듯 했다.

“드디어 가냐?”
“예.”
“이야긴 좀 나올 것 같아?”
“가 봐야 알죠.”

일견 무성의한 대답에도 사장은 그래, 하고 머리를 주억거렸다. 그 날 현율은 사장과 술을 마셨다. 제 이야기라며 피라미 몇을 들고 온 사장은 이미 전작(前酌)이 있어 얼근하게 취한 얼굴로 슥슥 회를 떠 안주거리로 냈다. 소문대로 사장의 요리는 손에 꼽을 만했다. 현율은 작별 선물이라며 숙취 해소 음료 한 박스를 꺼내 놓았다. 맘내키는 대로 술 먹고 죽으란 소리냐며 사장은 칼을 든 채 낄낄대다 칼끝을 엄지손가락에 푹 박았다. 피가 철철 났다.

한바탕 구급상자와 붕대와 소독약이 바닥에 굴러다니고, 조금 소란스러운 후 한율은 엄지를 골무 낀 것 마냥 칭칭 감은 사장을 방에 처박고 자기도 그 옆에 구겨져 한숨 잤다. 마지막 밤치곤 부산스럽고 정신없었으나 오히려 아쉬울 틈이 없어 좋았다.

그날 밤에도 그는 우물 속에 잠든 용의 꿈을 꾸었다. 먹먹하도록 깊고 고요한 물바닥에 가라앉아 또아리를 튼 용. 섬세한 발톱과 아름다운 비늘을 어둠 속에 감추곤 움직이지 않는 용. 갸름한 목을 모래에 묻고, 하늘거리는 등갈기와 수염을 물살에 맡기곤 승천을 꿈꾸는 용. 하늘이 열리고 날아가기를 기다리는 이야기의 꿈을 꾸었다.


-End.

(2014.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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