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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심사단 앤윈, pena입니다. 이달부터 김보영 님 대신 pena가 심사단에 합류하였습니다. 폭넓고 깊은 식견을 보여주셨던 김보영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앞으로 pena의 부족한 평도 너그러이 잘 부탁드립니다. A와 B는 매달 무작위로 바뀝니다.

이달에 올라온 작품들 중에는 맞춤법이나 단락나누기 등에 대한 지적을 한 작품들이 있었습니다. 글은 머릿속의 영감을 문자라는 도구를 사용해 펼치는 하나의 수단이자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맞춤법과 단락 등은 글을 이루는 기본적인 붓, 또는 선과도 같습니다. 아주 사소한 기반부터 탄탄한 글을 쓰시길 기원합니다.

2월 16일부터 3월 15일까지 올라온 작품 중 심사 제외를 신청한 편을 뺀 11편 중 티아리 님의 <너는 눈을 감는다>를 우수작으로, 썬펀님의 <나랑 바꿀래>를 가작으로 선정하였습니다.





나는 자석의 기원을 이렇게 쓸 것이다 - 너구리맛우동

A : 이야기가 처음 생성되는 과정을 파헤쳐 들어가는 메타소설입니다. 자석에 대한 이야기 자체는 상당히 흥미롭고 설득력도 있어 보입니다만, 주인공이 그 이야기를 떠올리는 과정은 메타소설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쉽고 간편하네요. 이 이야기의 경우 단순히 자석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 자체가 아니라 그 과정을 추적해 나가는 것이 ‘이야기’의 매력이 될 텐데, 그 부분이 조금 아쉽습니다. 그럼에도 원형적 이야기가 원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연상될 수 있다는 사실은, 그것이 밝혀지는 자체만으로도 매우 신기합니다.

B : 본인이 수필이라고 작중에서 말씀하셨지만 수필인지 소설인지 끝까지 모호한 부분이 있습니다. 소설이었다면 액자 안의 이야기에 살을 붙이고 캐릭터를 만들어 풍부하게 했어야 할 것이고, 수필이었다면 이 과정 자체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모호합니다. 과제 때문에 이야기를 만드는 고민을 하고 완성하는 과정은 액자구조의 액자로서는 개연성 외에 다른 모든 것이 희미합니다. 액자 속 이야기는 친숙한 이야기를 비튼 재미있는 부분이 있어 그것대로 살리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외계인이다 - 얼빠진소

A : 외계인들이 나타나서 지구인들을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과정에 대한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굳이 주된 인물을 찾아보자면 앤의 상실을 추적하는 존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주인공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이렇게 유보적인 문장으로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 주인공의 캐릭터가 도무지 제대로 잡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존 뿐 아니라 앤, 숀, 빌, 질, 존 등 이 수많은 한 글자 외국 이름들이 대체로 마찬가지입니다. 더욱이 이름들이 서로 헷갈리는 효과까지 만들어내고 있지요. 
굳이 이름을 서로 헷갈리게 만들어서 의도한 효과가 무엇입니까? 이름 뿐 아니라 캐릭터성마저 분명하지 않아 서사 자체가 불분명하게 느껴지는 것을 의도한 것은 아니리라고 추측합니다. 이 외계인들의 목적은 대체 무엇입니까? 왜 이들을 연구하려고 하는 것이며, 어째서 이렇게 두려운 존재로 그려지는 것입니까? 외계인을 침략자로 바라보는 일반적인 상상력에 크게 기대있는데, 그에 비해서는 그 상상력의 근거를 너무 서술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앤은 어째서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며, 존의 이물감은 무엇에 근거하고 있습니까?
설명이 많이 필요한 소설입니다. 

B : 동아리 표어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캠퍼스 소설일까 했는데 외계인과의 조우를 다룬 소설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외계인을 다룬 미국 드라마를 연상시키는 소설입니다. 이는 소재와 등장인물의 이름만이 아니라 소설의 전개속도에서도 나타나는데, 지문에서는 깊은 이야기가 없이 이야기 전개를 하는 반면, 대화는 압축되지 않고 갑자기 보통 일상적으로 대화할 법한 자잘한 군더더기가 많습니다. 이는 마치 드라마 스크립트를 보는 느낌입니다. 
거의 마지막까지 사건 자체보다는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반응을 그리는 데 치중하다가 마지막에 관련된 사람의 설명과 반대쪽의 일지로 정리하는데, 이는 대화문과 지문의 속도차이처럼 자신이 쓰기 쉬운 방향으로 써 나간게 아닐까 의심하게 됩니다. 이걸 읽으면서 본 미스터리 부분에 대해 재미를 느끼거나 명쾌하게 사실을 알아낼 수가 없습니다. 미스터리의 기본은 숨기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얼마큼 잘 드러내는지에 있다는 점을 유념하고 독자의 입장에서 좀 더 생각한다면 더 좋은 글이 나올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잘한 부분에서 이중모음을 틀리게 쓰거나 틀린 단어를 쓰고 계시니 쓰는 단어 하나하나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시면 좋겠습니다.


청개구리의 꿈을 꾼 이야기 - 너구리맛우동

A : 청개구리의 민담에 기반하여, 청개구리의 꿈을 꾸고 나서 꿈속(말하자면 평행 세계라고 볼 수 있을)에서 성층권 너머로 올라가 폭발해 버린 청개구리의 어머니가 사소한 복수를 한다는, 정확히는 했을 수도 있겠다는 추측을 하는 명랑하고 귀여운 이야기입니다. 전해져오는 이야기의 세계와 그 이야기가 현실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고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꾸준한 관심에 저도 상당히 흥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무의식의 영역이 어떤 방식으로 현실과 연결될 수 있을지에 대한 가능성을 타진한 점이 특히 흥미로웠습니다.

B : 익히 잘 아는 청개구리가 꿈에 찾아왔는데 잘 생각해보지 못하고 답을 해주었다가 계속 그에 관련된 생각과 일화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귀엽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작가분이 옛이야기를 고쳐서 발전시키는 데에 관심이 많으신 듯합니다. 다만, 이번에도 “개구리”라고 이름붙인 개에 관한 일화가 좀 더 구체적이고 풍성했다면 소설적으로도 균형이 맞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안 알려 줌 - Tom_Ashy

A : 컴퓨터로 섬세하게 사람들이 연결되고 관리되고 있는 미래세계를 배경으로 한 청소년 성장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떤 세계에서든 청소년들의 정서가 비슷한 양태를 취한다는 것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으면서도 재미있네요. 어른들에게 인정받지 못하지만, 나름대로의 장점을 가지고 있으며 자아가 분명한 태미라는 주인공의 정서를 따라가는 과정은 즐거웠습니다. ‘우치치우’라는 아이디도 너무 그 나이 또래답고요. 세계보다는 자기 자신의 삶을 선택해서, 억압적인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전시킨 청소년의 사고가 결국 세계를 억압 속에 남겨두게 된다는 결론도 재미있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독특한 세계관을 제시한 데에 비해서 세계관이 정확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분위기도 잘 모르겠고요. 성장에 따라 상당히 억압적인 미래가 결정되는 모양인데, 그 시스템에 대한 설명이 상당히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종류의 세계관을 제시한다면, 세계관 자체가 주제와 떨어지기 어렵게 붙어있을 때 느낄 수 있는 매력이 있을텐데, 세계관은 소설의 내용과 별개로 따로 동동 떠다니는 느낌이네요.

B : 한때 폭발적으로 넷에서 유행했던 말이 떠오르는 제목대로 넷과 관련이 많은 작품이었습니다. 사람의 직종이 모두 등급으로 나뉘고 관리되며 그 중심에 미국의 옥토 회사라는 곳이 있는, 가벼운 디스토피아성 미래를 배경으로 한 작품인 것 같습니다. 어린 나이에 해커로 전과 전력이 있는 주인공이 개인의 욕구를 위해 일을 벌이다가 세계의 비밀을 알게 된다는 전개는 흥미로웠고, 술술 읽히는 이야기를 따라가기 쉬웠습니다.
다만 이 이야기에는 갈등과 욕구는 있되 장애는 없다시피 일이 풀려나가기 때문에 상당히 비현실적인 느낌입니다. 배경이나 인물의 나이와 상관없이 조금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도록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술술 읽히는 것의 반대로 독자가 긴장할 여지가 별로 없었습니다. 사소하게는 중간에 작년에 태미의 나이가 아홉 살이었다는 부분이 나오는데 전체 분위기로 봤을 때 태미가 현재 열 살일 것 같지는 않습니다. 치명적인 오류가 될 수 있는 부분은 잘 훑어보고 맺으심이 좋겠습니다.


너는 눈을 감는다. - 티아리

A : 비극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어머니와 딸이 일그러진 애증을 가지게 되는 과정을 아름답게 풀어낸 소설입니다. 언어를 잃어버리게 된 딸이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 매우 설득적이면서도 선연한 이미지로 나타납니다. 현실적인 이야기임에도 소설적 ‘분위기’의 설득력을 잃어버리지 않은 점이 특히 매력적입니다. 어머니도 딸도 악인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악인이 아닌 이들이 어떠한 상황을 통해 나락으로 떨어지고 서로를 증오하게 만드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환경과 자아,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원초적 비극성’에 대해서 다시 고민하게 만듭니다. 단순하면서도 힘이 있고 매력적인 서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악어의 눈물’이라는 단어가 연결되는 과정도 아름답습니다.
다만, 조금 미안한 이야기를 하자면, 작가는 “칼 끝이 목에 닿는 순간”부터 “온몸으로느낄수있다미안해” 까지의 문장을 매우 공들여서 썼을 것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너무 관념적인 단어들이 나열되고 있어서 그 정도의 효과를 발휘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이 전과 변한 것이 없으나, 어머니의 세계가 무너졌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았을까요? 언어를 경제적으로 사용하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B : 글을 쓰는 꿈을 가졌으나 생활에 매몰된 엄마와 찬란한 재능을 가졌고 노력했지만 사고로 인해 글을 잃은 딸이 빚어내는 애증의 비극입니다. 차분하게 2인칭으로 전개한 이야기가 모여서 마지막 결론으로 터뜨리는 솜씨가 좋았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났던 일과 그 일들에서 ‘너’가 느낀 감정을 섬세하게 잘 그려내지 않았다면 마지막에 ‘너’가 한 행동이 뜬금없거나 과잉으로 보였을 가능성이 크지만 잘 해낸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앞부분을 읽을 때에는 평범한 자학이나 청소년 방황 이야기로 흘러갈까 우려될 정도로 평범하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앞부분에 좀 더 흡입력이 있었다면 금상첨화였을 듯싶습니다.

3월 우수작에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나는 니그라토다 [intro] - 뫼비우스

A :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팬픽? 서사가 너무 없어서 평을 할 말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B : 내용이나 인트로라는 덧붙임에 의거하여 평을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단편 - 어느 지방 사서

A : 서사가 부재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납득이 되지 않는 일련의 이미지들이 띄엄띄엄 나열되어 있다는 느낌입니다. 주인공이 맡은 의뢰가 정확히 무엇이며, 주인공이 무엇을 느꼈는지를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주인공 자신도 스스로에 대해 이해가 별로 없는 듯 하네요. 글쎄, 윌리엄 버로스 등을 떠올리며 다시 읽어보기도 했습니다만,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한 정보가 제게 너무 없어서 말을 보태기가 쉽지 않습니다.

B : 담긴 사건이 무엇인지, 기본적인 정보부터 알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이 어려움을 가중시킨 것이 문단의 부재인 듯합니다. 분량상 한 문단으로 칠 수도 있는 만큼이나 이 글 안에는 장소와 시점의 이동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문단만 적확하게 썼더라도 조금은 혼란이 덜했을 것입니다. 


레스토랑 - 어느 지방 사서

A : 지아와 규빈이라는 두 주인공이 등장하여, 약간 맛이 간 듯한 강도 이야기를 이끌어나갑니다. 규빈도 지아도 현실에서 미래를 향해 자신을 기투하는 ‘현실적 인간’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몽환적인 분위기가 현실감을 지우는 와중에, 지아가 규빈을 쏠 때까지의 과정이 응축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멋진 이미지입니다.

B : 영화의 한 장면을 하나의 흐름으로 묘사한 듯한 단편입니다. 한때 굉장한 바람을 일으켰던 왕가위 감독의 영화들이 떠오르는, 설명 없는 연출이 인상적입니다. 다만 선명한 이미지를 강렬하게 남기기 위해서는 묘사에 쓰는 단어들을 더 중립적이고 시각적으로 배치했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홍콩영화에 대한 이야기나 꽤 비싸 보이는 차처럼 가치 판단을 독자에게 넘기는 단어를 최대한 배제하는 것이 작품의 무심하고 건조한 분위기를 더 잘 살릴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걷는다. - 어느 지방 사서

A : 소설이라기보다는 시에 가까워 보이는 글입니다. 지아와 민우의 행동이 어떤 인과관계로도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하나의 서사로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럽습니다. 시와 소설의 경계도 물론 흐려질 수 있겠으나, 이 이야기에는 플롯이라는 게 전혀 존재하지 않는 듯 하군요.

B : 문장부호, 전하고자 하는 주제, 등장인물의 행동에 따르는 개연성 등이 전혀 보이지 않는 글입니다. 단순한 이미지를 창조하는 데에도 사람들이 주로 느끼는 심상을 면밀히 관찰하고 옮기는 작업, 작품 내에서의 질서와 인과관계를 작가의 마음속에서 확립하는 작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낌없이 주는 괴물 - 정원

A : 주인공이 ‘괴물’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였다가, 결국 복수를 당한다는 내용의 공포소설입니다. 서사 자체는 매우 익숙한 형태를 띠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서 주인공이 느껴야 할 깨달음을 그냥 몸으로 느끼게 해 주는군요. 
‘흰색의 부드러운 털에 공처럼 동그란 몸, 초록빛 보석의 눈’이라는 묘사가 그렇게 실감나게 다가오지는 않네요. 괴물이라는 단어와 적절하게 어울리는지도 의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결론으로 가서 주인공이 자신의 죄에 대해 통렬하게 반성하며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반격을 받아야만 어떤 카타르시스와 공포를 동시에 제공할 수 있을텐데, 그렇게 이야기를 응집력 있게 이끌어가는 데에는 실패한 것으로 보입니다. 시작부터 이미 결론을 전제하고 시작하고 있으며, 괴물이 주인공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주인공이 괴물에게 철저한 배신감을 느낄 정도로 깊은 감정적 유대를 가졌는지도 구체적으로 나와있지 않고요. 둘 중에 하나는 해 주었어야 결론에서 작가가 원한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B :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한없는 사랑을 뒤엎는 패러디로서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모든 걸 주었던 과정을 하나씩 따라가면서 거기에 “더 귀한 걸로 갚아줄 테니까”라는 말미를 붙인 것은 필요한 과정이었겠지만, 맨앞에 남자의 끝을 보여주는 바람에 불안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읽었습니다. 아낌없이 앗아간 끝의 비참한 반전을 독자들에게 보이고 싶었다면 앞부분은 없는 것이 나았을 듯합니다.


나랑 바꿀래 - 썬펀

A : 밥 먹고 누워서 잠만 자던 아이가 소가 되어서 고생을 하는 꿈을 꾼다는 옛날 이야기가 있지요. 그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공포소설입니다. 주인공은 개가 되었다가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거쳐 결국 아버지를 개인 상태로 내버려 둡니다. 아버지야말로 이 소설 속에서 그나마 ‘악인’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줄 수 있는 인간이므로, 아버지가 마지막에 개가 되는 것은 상당히 합리적으로 느껴지는 면이 있네요. 아이가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를 개로 골랐던 이유가 ‘아버지가 돈을 벌어오기 때문에’라는 점은 상당히 천진하면서도 비정합니다. 개가 된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얻어맞는 장면을 보면서 두려움과 함께 죄책감을 느끼는 부분도 매우 개연성이 있습니다.
한 가족을 통째로 개로 만들고 나서 떠나가는 앨리스의 모습, 그리고 아버지가 다시 ‘한 가족을 개로 만드는 과정’을 되풀이 한다는 점은, 인간이 흔히 동족의 일부를 ‘개’에 비유해서 욕하곤 한다는 점에 비추어 나름대로의 충격을 줍니다. 하지만 몸이 바뀐다는 설정 그 자체를 완전히 끝까지 밀어붙이지는 못 했다는 생각도 떨쳐낼 수 없습니다. 주인공은 단지 아버지와 어머니를 지켜보는 것 이상도 이하도 할 수 없고, 바뀐 아버지가 어머니의 새 남자를 지켜보는 과정에서도 섬세한 감정선을 잡아내기는 쉽지 않군요. 그럼에도 여러 장점이 있는, 무엇보다 재미있는 소설이었습니다.

B : 처음에는 초등학생이 자기 신세를 한탄하다가 맘껏 놀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개와 몸을 바꾼다는, 천진하고도 귀여운 이야기로 시작했다가 점점 공포스러워지는 이야기입니다. 개의 몸을 입고서만 목격할 수 있었던 아빠의 비밀이라든가, 다시 몸을 돌려받기 위해서 해야 하는 선택 등 점점 서스펜스가 착실하게 강해져서 재미있게 끝까지 읽을 수 있었습니다. 초등학생인 주인공의 수준을 배려한 것인지 몰라도 전체적인 묘사나 문장에 깊이는 없었지만 주제 면에서 더 깊은 부분을 바라기에는 한계가 있는 소재이자 주제였던 듯합니다. 앨리스가 그렇게 개로서 다가가서 몸을 바꾸자는 제안을 하는 데에 무언가 이유가 있다거나, 그렇게 해서 밝혀진 가족의 비밀이 표면적인 데 머물지 않고 인간사의 깊은 부분을 들쑤시거나 새롭게 보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거나 하는 식으로 시도해볼 수 있었겠지만, 과하게 교훈을 추구하는 글이 되었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현재의 글은 과하지 않게 잘 소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3월 가작에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거울 독자 우수단편에 선정되신 분들께는 책을 한 권씩 보내드립니다. 

티아리 님, 썬펀 님은 pena12 @ gmail . com으로 우편물을 수령할 주소, 성함, 전화번호(택배 발송시 필요)를 보내주세요.

댓글 7
  • No Profile
    티아리 14.03.31 23:12 댓글 수정 삭제

    좋은 평가와 충고에 감사드립니다. 퇴근 길에 들어와 보았는데 선물같은 소식을 만나게 되어 즐겁네요. 과분한 평가도 그렇지만 새로 평을 맡으신 Pena 작가님과 제가 좋아하는 앤윈 작가님 두 분의 평을 받아보게 된 점이 더욱 영광입니다. 

  • No Profile
    어느 지방 사서 14.04.01 10:49 댓글

    감사합니다. 그동안 제글의 문제점이 무엇인줄 몰랐는데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No Profile
    얼빠진소 14.04.01 15:47 댓글

    저 나름대로 서술트릭에 집중하느라 정작 소설의 완성도도 물론이고 원하는 반전도 끌어내지 못 한 것 같습니다.

    지적 감사드리며 앞으로 정진하겠습니다.

  • No Profile
    유이립 14.04.02 19:20 댓글

    저 좋은 분위기에 죄송한데 저번에 우수작으로 뽑혔습니다. 메일로 주소랑 연락처 보냈는데 책이 안 왔네요. 저만 그런가요? 다른 분들은 혹시?

    염치없어서 죄송합니다.

  • 유이립님께
    No Profile
    pena 14.04.03 00:19 댓글

    앗, 제가 담당하고 있습니다만, 모든 분의 연락처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고 하다가 한 달이 훅 지나가버렸네요. 곧 도착할 거예요 죄송합니다!

  • 유이립님께
    No Profile
    썬펀 14.04.03 19:39 댓글

    저도 못 받았어요 ^^; 

  • No Profile
    정원 14.04.07 16:36 댓글

    좋은 심사평 감사드립니다!

    제가 모르는 점을 짚어주셨다기 보다는 저도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냥 괜찮아~ 이러면서 무시했던 단점(?)을 '안 괜찮아!' 이렇게 말씀해주시는 느낌이네요ㅎㅎ 주위에서도 고치라고 했던 점이 심사평과 매우 흡사해서요. 앞으로도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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