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가작 기억이 남긴 흔적들

2014.09.01 00:0709.01


1


기억에도 냄새가 있다면 어떤 냄새가 날까? 임진강에서 아버지의 뼛가루를 날려보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아버지의 뼛가루에서는 기억의 냄새가 났다. 하나밖에 없는 가족을 위해서 흘리던 땀의 냄새, 낡은 구두의 닳고 닳은 가죽 냄새, 둘이서 살던 반지하 방의 뚝뚝 떨어지던 눅눅한 물 냄새, 아들이 대학교에 합격했다고 했을 때 흘리던 따뜻한 눈물의 냄새. 그 기억의 냄새가 뒤섞이고 있었다. 강변에 난 푸른 풀잎의 싱그러운 냄새, 흘러가는 강물의 고요한 냄새, 그 속에 사는 벌레들 덕분에 말랑말랑하게 다져져 있는 부식토의 향기와 섞여서, 천천히 엷어진다. 당신을 짓누르던 그 모든 것들을 사뿐히 내려놓고 날아가시는 것 같았다.

 

시험이 모두 끝나고 학부생들의 답안지를 걷다가 연락을 받았다.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더니 의사는 폐암이라고 했다. 그것도 이미 전이가 많이 진행됐다고 했다. 시한부. 그렇게나 많이 들어왔는데도 직접 입에 담으려니 어색했다. 난 아버지와 친밀하다고 말할 수 있는 관계는 아니었다. 논문이 바쁘다, 이제 곧 마무리 단계라고 핑계를 대며 만나지 않은지 벌써 넉 달째. 아마 연락을 받지 못했다면 더 오랫동안 못 봤을 것이다. 눈에 띄게 초췌해진 아버지가 몇 달 만에 보는 아들에게 처음 한 말이 이러했다.

“태민아, 네 할아버지 찾아야 한다.”

그동안 수도 없이 들어왔고, 그때마다 대답을 미뤄온 부탁이었다. 하지만 이젠 외면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마지막 부탁이 아닌가. 텀 페이퍼를 떠안은 심정이었다. 게다가 제출 기한도 얼마 안 남은 녀석을 말이다.

당장 휴학계를 내고 작업에 착수했다. 내심 어려울 것 없다 여겼다. 한국 사학계에서 가장 흔한 주제가 한국전쟁 아닌가. 국방부에서 한국전쟁 관련 자료를 열심히 모아놓았을뿐더러, 널린 사례조사형 한국전쟁 논문들을 살펴보면 뭔가 좀 걸려드는 게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성과는 없었다.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쓸모있는 자료가 하나도 안 나온다니. 그 많은 사료 속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뉘일 자리 한 곳 없다니. 건진 것은 달갑지 않은 불편한 가능성과 추측들뿐이었다.

“죄송해요. 아버지.”

연명 치료조차 중단한 아버지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아버지는 집요하게 날 다그쳤다. 그래도 뭔가 찾기는 했을 것 아니냐고. 무슨 실마리라도 없느냐고. 아버지는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생각했던 것 같다. 서로 간에 언성이 높아졌다. 화가 난 나는 알게 된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아버지는 나지막한 숨소리만 내다가 힘겹게 말했다. 

“그래도 찾아줬으면 좋겠구나. 꼭 찾아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회한 섞인 얼굴로 내 손을 만지작거리며 덧붙였다.

“이렇게 큰 짐을 맡겨서 미안하다.”

그게 아버지의 유언이 되었다. 딱 이틀 뒤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결국 운명하셨다. 가족에 대한 책임만으로도 평생 버거워했던 아버지였다. 이제 곧 떠나가실 분에게 역사의 등짐까지 지워 보낸 불효자 탓인지,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은 작고 초라했다.

 

기억에 냄새가 있다면, 기억의 소리는 어떨까. 기억의 소리는 T-34 전차의 디젤 엔진 소리, 7.62mm 소총탄이 공기를 찢으며 내는 날카로운 파공음. 쓰러진 동료 옆에서 의무병을 부르는 갈라지는 목소리와 텅 빈 참호 속에 떨어지는 빗방울의 소리와 같다. 강물과 함께 흩어져버린 냄새와는 달리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를 거쳐 넘겨받은 기억의 소리는 계속해서 내 귀에 들러붙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피곤해져서 돌아오는 고속버스에서는 내내 잠만 잤다. 그때부터였다. 그 소리와 함께 종종 할아버지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여전히 눈을 감지 못하고, 기억들 속에 묻혀 있는 할아버지를 찾기 위해 난 한영 시로 향했다.

 

 

2

 

“제발 협조 좀 해주실 수 없을까요?”

직원은 매몰차게 거절했다.

“절대 안 됩니다. 학생 지도 교수님이 직접 오셔도 도와드릴 수가 없어요. 법적으로도 안 되는 건 당연하고요… 아시잖아요. 이런 걸로 범죄 악용되는 경우도 많다는 거.”

이번에도 빈손으로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이걸로 세 번째 퇴짜다. 문화관광 부서, 도서관 관리 부서, 노인복지 부서까지. 무슨 대단한 요구를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한영 시의 과거를 연구하는 데 필요한 인터뷰 대상자들을 찾기 위해 협조를 구했을 뿐. 문화관광 부서에서는 문화재 관리라면 몰라도 그런 문제는 우리 담당이 아니라고 했고, 도서관 부서에서도 시의 역사는 도서관이 아니라 박물관에서 다룰 문제라고 했다. 노인복지 부서의 반응도 저러하니, 애초에 관공서에서 도움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쓸쓸한 발걸음으로 시청 청사를 걸어 나오며 생각했다.

‘이젠 발품 팔며 돌아다니는 수밖에 없나.’

직접 노인들을 찾아다니며 수소문을 해야 한다니. 도서관이나 관공서 찾아다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난관이 될 것이 분명했다.

 

“글쎄, 요즘 그런 거 아는 노인네가 몇이나 되려나.”

할아버지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옆에 있던 할머니가 맞장구쳤다.

“뭐하러 그 시절을 굳이 들추겠어. 간신히 먹고 살만해졌는데, 어렵고 힘들던 때 들춰내서 뭐 좋은 거 있나?”

자초지종을 간략히 설명하자 조금이나마 반응이 달라진다.

“그런 일이라면 도와주고 싶기는 한데… 그래도 진짜 이 동네에는 아는 사람이 없어. 노인네들 중에도 외지 출신들이 많고. 저쪽 동네 가보면 허인화라는 친구 있을 텐데, 그 친구한테 물어보면 혹시 대답해 줄지도 모르겠구먼.”

“어차피 못 찾을걸.”

조용히 화투를 치고 있던 할아버지가 퉁명스레 말했다.

“우리 부모님도 그때 돌아가셨구먼. 근데 백날을 찾았는데도 결국 못 찾았어. 근데 육십 년도 넘은 시체를 어떻게 찾아?”

나는 할아버지의 말을 애써 무시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이웃 마을에 도착해서 수소문한 결과, 허인화라는 사람은 작년에 죽었다고 했다. 스멀스멀 현기증이 올라왔다.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던 할머니가 말했다.

“혹시 그 유족회인지 뭔지 하는 것들이랑 관련 있는 거 아니야?”

나는 귀가 솔깃해져서 물었다.

“유족회라뇨?”

“왜, 6·25 때 이 동네에서 사람들 많이 죽었잖아. 그때 죽은 사람들 후손이나 가족들 모아서 무슨 단체 만들었다고 하던데.”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나 참, 유족회라니. 그렇게 따지면 이 동네 노인 중에 절반은 유족인지 뭐시기가 될 텐데. 그래서 뭐하려고?”

“나야 그건 모르지. 아무튼, 한 씨 집안 둘째 딸이 열심히 하고 있다던데.”

“엥? 젊은 처자가 무슨 일로?”

“한 씨들이 그때 많이 죽기는 죽었잖아.”

“그래도 60년 전 일인데 젊은 사람이 할 일도 없나?”

“그 집안이야 원래 돈도 많으니까…”

어르신들은 유족회의 정확한 명칭이나 연락처까지는 알지 못했다. 유족. 입속으로 발음하면서 묘한 느낌이 든다. 쓰디쓴 가루약을 머금고 있는 것처럼 텁텁했다. 이게 몸에 도움이 되는 약인지, 아니면 독약인지는 모를 일이다. 그래서 목으로 넘기기가 망설여졌다. 그러나 이런 기회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최소한 한국전쟁 당시 피해를 본 사람들을 중심으로 단체가 구성된 것 아닌가. 당시를 기억하는 생존자들이나 증언자들을 무더기로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보니 유족회는 인터넷에 그럴듯한 홈페이지를 마련해 놓고 있었다. 한영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유족회. 늘여놓으면 참 긴 이름이다. 전화하자마자 높은 톤의 여자 목소리가 들려온다. P 대학 재학 중인 대학원생인데 유족회의 협조가 필요한 일이 있어 연락했다 말하니, 바로 내일 점심 시내에서 보자고 했다. 

 

약속 장소에 나온 여자는 도시적인 느낌이 나는 미인이었다. 큰 눈과 투명한 피부에 어울리는 옅은 화장. 하지만 그녀의 말투는 외모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담고 있었다.

“한송현이라고 해요. 어떤 용건으로 오신지는 모르겠는데, 솔직히 반갑기도 하지만 좀 당황스러웠네요. 유족회 일에 관심을 두고 연락해 오시는 분은 근 몇 달간 처음이거든요. 아무리 열심히 홍보하고 도움을 요청해도 응하는 사람들은 얼마 없죠.”

세일즈맨이나 상사맨의 느낌이다. 상대방의 반응을 살필 여유는 없다. 공격적으로, 그리고 쉴 새 없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늘어놓고 펼쳐낸다. 그녀 역시 그러했다. 내가 커피를 입에 대는 와중에도 그녀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와중에 P 대학 사학과에서 이 문제를 다룬다니 더더욱 반가웠어요. 솔직히 학계에서도 한영 시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에 관심이 없기는 마찬가지거든요. 뭐 괜찮은 논의 하나라도 나오면 그거 활용해서 열심히 홍보할 텐데, 어째 논문 한 편 찾아보기가 힘들어요.”

그녀는 시계를 확인하더니 말했다.

“아무튼 함태민 씨, 오늘 같이 가주셔야 할 곳이 있어요. 오래 걸리는 일은 아니니까 빨리 마무리하고 태민 씨 용건을 해결해보도록 합시다.”

“네? 같이 갈 곳이라뇨?”

그녀는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일 채비를 마치고 있었다. 나도 얼떨결에 반도 안 마신 커피 컵을 들고 일어섰다. 아직도 뜨거웠다.

“어서 따라와요. 이러다 늦겠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그녀에게 뒤늦게 따라붙었다.

“태민 씨는 그냥 앉아있기만 해 주셔도 돼요. 최악의 경우라도 솔직하게 느끼는 대로 말만 해 주시면 되고요.”

“무슨 일로 가는 것인지는 알려주셔야죠. 도대체 이게 뭡니까?”

“김석근이라고 한영 시 시의원에게 찾아가는 길이에요. 우리 유족회에 관심 가져주는 정치인인데, 외부인들도 관심이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확실하게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하거든요.”

화를 낼 틈도 없이 그녀가 또 덧붙인다.

“다 왔어요. 다행히 안 늦었네요.”

 

김석근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거참…. 중요한 일, 좋은 일 하고 계신 건 알아요. 근데 추모비 건립이나 추모제는 좀…”

한송현이 목소리를 높여 반박했다.

“왜요? 다른 지역에서 선례가 없는 것도 아니에요. 인민군에 맞서서 지역 주민들이 용감하게 들고일어난 사건이라고요. 역사학적으로도 큰 의의가 있는 사건이에요. 그렇죠, 태민 씨?”

“네? 아, 그렇습니다. 한영 시의 사례는 국가가 개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봉기한 사례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일단 적당히 그럴듯하게 둘러댔다. 그녀를 돌아보니 몰래 엄지를 치켜세우며 한쪽 눈을 찡긋한다. 내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한심해졌다.

적극적인 세일즈에도 불구하고 김석근은 결국 확답을 주지 않았다. 정치인 특유의 실없는 웃음을 지으며 애매하게 말을 흐렸을 뿐이다. 그러면서 마지막에는 이렇게 덧붙였다.

“저도 땅 파먹고 정치하는 게 아니거든요. 추모제나 위령비니 하자면 다 돈인데, 유권자분들의 지지도 저조하고…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녀는 사무실에서 나오자마자 김석근의 명함을 꼬깃꼬깃 구겨 땅에 집어던졌다.

“정치인이라는 족속들이 원래 저렇죠.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게 참…”

“도움이 되어드리지 못해 죄송하네요.”

“괜찮아요. 태민 씨가 무슨 책임이 있겠어요. 사실 저 양반 말도 틀린 건 없어요. 정치가 자선 사업도 아니고, 이 동네 사람들부터 관심이 없는데 어쩌겠어.”

여전히 명함을 자근자근 밟고 있는 것이 좀 설득력은 좀 떨어져 보이지만, 화를 좀 가라앉힌 것 같긴 하다.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이제 제 용건을 좀 처리해도 될까요?”

“네. 이렇게 도움을 받았는데 당연하죠. 자, 무슨 일로 유족회의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한영 시에서 한국전쟁을 경험하신 어르신들의 증언이 필요해요.”

그녀의 눈이 살짝 가늘어진다.

“논문이라도 쓰시나 봐요?”

“아, 그건 아닙니다. 한국전쟁 당시 할아버님께서 이곳에서 돌아가셨거든요. 근데 아직도 유해를 못 찾아서….”

“아이고, 제가 그것도 모르고!”

눈이 휘둥그레진 그녀는 덥석 내 손을 잡으며 목소리를 높인다.

“우리 유족회 회원 되실 분이었구나. 지금 당장 가입원서 쓰시면 되겠네요.”

“아, 아닙니다.”

“사양하실 필요 없어요. 우리는 구구절절 회비 이런 거 안 걷습니다. 순수하게 후원금으로만 운영하는 곳이니까 부담감 가지실 필요 없…”

나는 손사래를 치며 어렵사리 그녀의 말을 끊고 오해를 풀 수 있었다.

“제 할아버님은 군인이셨습니다.”

아. 그녀가 탄식하듯 한 마디 내뱉는다. 붙잡고 있던 손길이 스르르 풀려나간다. 순식간에 얼굴이 빨개지더니 고개를 숙이고 힘없이 말했다.

“괜히 설레발을 쳤네요. 미안해요. 어디 보자… 근데, 그런 사람들은 보통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서 찾아주지 않나요?”

나는 대답하지 않고 잠시 뜸을 들이며 먼 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설명도 안 했는데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간다.

“하긴, 그쪽에서 도와줬으면 이렇게 직접 내려오실 일도 없었겠죠. 연락처야 협조해드릴 수 있어요. 일단 연락처 파일에서 중요한 개인 정보는 지워야 하니까 내일 이맘때 다시 한 번 보죠.”

 

3

 

“안녕하세요. 한영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유족회의 한송현이라고 합니다. 최무진 선생님 좀 바꿔주실 수 있을까요? 예, 안녕하세요. 선생님…”

한송현 특유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유족회 회원들에게 전화를 걸면서 인터뷰 약속을 잡고 있다. 원래 연락처만 넘겨받은 다음엔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연이어 실패하는 것을 보더니 전화하는 말투나 태도부터 글러 먹었다며 그녀가 발 벗고 나선 것이다.

“그냥 기억나는 것 얘기만 해 주셔도 된다니까요. 이거 듣겠다고 서울에서 내려온 분도 있어요. 할아버지? 아 진짜….”

물론 그녀 역시 큰 난관을 겪고 있었다. 열 번 넘게 전화를 했는데 인터뷰 일정까지 잡는 데 성공한 경우는 딱 두 번. 그녀는 지친 듯 한숨을 토하며 말했다.

“쉽지 않네요.”

저런 반응은 나도 익히 경험해 봤다. 한영 시 공무원들은 물론이고, 나이 많은 노인들까지도 한국전쟁의 기억에 흥미가 없었다. 그래도 그때 가족을 잃은 사람들까지도 이럴 줄이야.

“유족분들도 생각보다 반응이 냉랭하군요.”

그녀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사실 내가 이 일 하면서 제일 힘든 것도 그거예요. 유족들은 둘째치고, 그때 살았던 분들이나 목격자, 당사자들조차도 관심 없고 협조도 잘 안 해줘.”

“왜 그럴까요? 어르신들은 보통 젊은 사람들한테 과하다 싶을 정도로 그 시절 이야기 많이 하시던데…”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나지막이 한 마디 내뱉었다.

“너무 많이 바뀌어서 그래요.”

뜸을 들이는 그녀에게 눈짓으로 재촉하니 계속 말을 이어간다.

“한영 시가 너무 빨리 변했어요. 왜, 한국전쟁 때만 해도 기껏해야 수천 명 모여 살던 마을이었거든. 박정희 정권 때 섬유공업 투자도 많이 받고, 경부고속도로도 지나가니 그때부터 사람들이 와르르 몰려들어서 번듯한 도시가 된 거예요. 원래 살던 사람들이 넋두리를 해봐야 뭐해.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관심도 없는데. 그러다 보니 그 일을 겪은 어르신들도 점점 무뎌진 거예요. 외지 사람들과 부대끼고 한집 살면서 ‘한영 시민’이 되어갔던 거지. 옛날의 기억은 억지로 잊고, 삭이면서…”

잔뜩 들떠 있던 평소의 분위기와는 달리, 그녀의 얼굴에는 쓸쓸함이 떠올라 있었다. 20대 중반 여자의 표정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짙은 향수가 담겨 있었다. 나는 그 표현력 넘치는 얼굴에 매료되어 할 말을 잃고 넌지시 그녀를 바라보기만 할 따름이었다.

 

첫 번째 인터뷰 대상자인 황현식이라는 할아버지의 집에 찾아가는 길. 나는 예상치 못한 파트너와 함께하게 됐다.

“굳이 이렇게 동행하실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은데요.”

그녀는 살폿 웃으며 대답한다.

“저도 필요해서 가는 건데요 뭐.”

그녀는 유족회 회원과의 인터뷰에 동석하겠다고 했다. 인터뷰를 주선한 사람 입장에서 마냥 빠지기도 그렇다는 것이다. 완곡하게 거절하려 했지만, 그녀는 회원들에게 오랜만에 인사라도 해야겠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사실 나로서도 나쁠 건 없었다. 인터뷰 대상자들과 안면이 있는 사람이 함께할수록 친밀감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거기서 우리 아버지와 할아버지, 큰할아버지가 총살을 당했어. 나는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을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니까. 무슨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이 사람을 죽이더라고. 아까 말한 그 대위 놈 있잖아? 그놈이 쏴! 하니까 타다당 하고 쏴. 그러면 여덟 명이 픽 쓰러져. 다음 사람들 데려다 놓고 쏴! 하니까 또 여덟 명 쓰러져. 그렇게 십 분도 안 되는 사이에 오십 명도 넘게 죽어 나갔거든. 그때 내가 여섯 살이었어. 그렇게 사람이 죽는다는 게 이해가 안 갔거든.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시체를 다 수습한 다음에도 매일 그곳에 갔어.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와서 날 안아주지 않을까 싶어서. 그날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비석에 기대 멍하니 앉아 있었지.”

할아버지의 말은 이상하게도 미끄럽고 차가워서, 단어와 문장이 의미와 결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부유했다. 그것들이 나를 둘러싼 공기 전체에 두루 퍼져 피부에 닿을 지경이 되어서야 어렴풋이 지각할 수 있었다. 도처에 널린 죽음과 명령에 의한 조직적인 학살과 통곡하는 사람들의 의미를. 기억의 조각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애써 외면하고 있었고, 아닐 거라 믿고 있었던 결론들로 발전해 갔다. 그것은 정말 소름 끼치는 경험이었다. 문득 과거를 잊으려 하는 한영 시의 노인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외지 사람들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나 소름 끼치고 기억하기 싫은 경험을 다시 되살리고 복기하는 것만으로도 힘들고 괴로운 일이기에, 그들은 지우고 외면했던 것 아닐까.

“그때 인민군 병사들이 와르르 산 방향으로 달려가더라고. 한두 명도 아니고 마을에 주둔해 있던 백 명 남짓한 병사들이 한꺼번에.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국군 병사들도 나타났어. 산개해서는 산으로 접근하는데, 미리 올라가서 진을 치고 있던 인민군 병사들과 총격전이 벌어졌지. 국군 병사들이 몇 명씩 쓰러지고… 그러다가 우연히 반대편에 숲이 우거진 곳을 봤는데, 그쪽으로 우회해서 접근하던 병사들도 저격을 당해 하나둘 쓰러지더군. 가까운 곳에서 사람이 총에 맞아 비명을 지르고, 피를 흘리는 것을 봤는데 그제야 실감이 나더라고. 이게 전쟁이구나. 이게 사람이 죽는 거구나.”

이야기를 듣던 한송현이 질문했다.

“50명 가까이 민간인 학살이 있었고, 주변에 여기저기 비석이 있는 곳이면… 지금 마석산 초입 부분 맞나요? 청화가든이라는 고깃집 있고.”

“맞아!”

“숲이 우거진 곳이면… 청화가든 반대편에 큰 언덕 있는 곳 아니에요?”

할아버지는 골똘히 생각에 잠기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그래, 그렇지. 그 언덕 따라 올라가다가 국군 병사가 총에 맞았을 거야. 아니 아가씨는 그걸 어떻게 다 알아? 나도 잘 기억이 안 나는걸.”

“다 방법이 있죠.”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그녀와 같이 안 왔으면 큰일 날 뻔했다. 친밀감을 형성하는 병풍 역할을 기대했는데, 아예 인터뷰어 자리를 뺏어갈 기세다. 동네 지리를 꿰고 있어서 그런지 할아버지가 이야기하면 바로바로 알아들었고, 당시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도 대부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유족회 활동을 허투루 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식사를 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한송현 씨는 어쩌다가 유족회 활동을 시작하신 거예요? 사실 어르신들도 크게 관심 없고, 다들 잊어가는 사건인데.”

“그런 말 많이 듣죠. 젊은 사람이 왜 그런 일에 마음을 두느냐고. 밝고 희망찬 일도 아니고 당장 성과가 나올만한 일도 아닌데. 무슨 소명의식이 있는 건 아니에요. 글쎄… 어디부터 설명하는 게 좋을까.”

그녀가 감상에 젖는다. 표현력과 감정 넘치는 얼굴은 여전하다. 그 눈을 조용히 응시한다. 나는 속으로 저 깊은 흑갈색 눈이 정말이지 마음에 든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한다.

“우리는 명절에 가족들 모여도 참 단출해요. 기껏해야 스무 명 모일까 말까 하거든. 계속 궁금해하다가 아홉 살 설날 때인가 물어봤었어요. 우리 친가는 왜 이렇게 친척이 적느냐고. 그때 처음 들었죠. 한국전쟁 때 인민군에게 우리 가족이 몰살을 당했었다고. 물론 한영 전체에서 많이 죽었죠. 근데 우리 집안은 유독 심했어요. 지주 집안인 데다 봉기를 일으킬 때 주동자 역할을 해서… 한참 어렸던 할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 빼곤 다 죽었어요. 그 많던 가족들이 다 총살당한 거예요.”

쏴아아아아아-. 귓속 어디선가 기괴한 낮은 음성이 울린다. 머릿속의 모세혈관들이 터져 나가는 것 같다. 눈앞에 하얀 물감들이 번져간다. 기억의 흔적들이 선명한 궤적을 그리며 어지럽게 교차했다. 그것이 공명하며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일까. 그것이 여기저기 떨어져 만든 모자이크일까. 사실 판매원 같은 말투와 이상하리만치 활기찬 모습 때문에 잊고 있었을 뿐, 그녀 역시 유족회 회원이다. 그것도 사람들이 관심 없는 유족회 활동에 앞장서서 나설 정도로 열성 회원이다. 그녀도 나처럼 기억의 흔적들을 품고 있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상상해 본다. 되돌릴 수 있다면. 유족회에 연락하지 않았다면. 그녀에게 연락처 제공 이상의 도움을 받지 않았더라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나와 그녀 사이에 여기저기 얽혀 있는 기억의 파편들을 치워낼 수 있다면. 그 사이 한송현은 처연하게 한 마디 덧붙인다.

“아, 그렇다고 오해하시면 곤란한 게… 저는 무슨 보상이나 책임을 요구할 생각은 없어요. 보도연맹 사건처럼 한국 정부에 피해를 본 사람들도 정부가 계속 발뺌하는 통에 보상 못 받고 있는데, 우리야 언감생심이죠. 근데 최소한 잊지는 말아야 하잖아요. 그렇게 많은 사람이 국가 대신에 들고일어났고, 그 때문에 죽었는데. 근데 아무도 모르는 게 너무 화가 나요. 추모 행사라도 열고, 장소라도 한편 만든다면 조금이라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슬픈 기색을 지우려 안간힘을 쓰던 그녀는 어렵사리 이 말을 마치더니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그래, 기억이라는 것을 마음대로 지우고 돌이킬 수 있다면 인생이란 이렇게 너저분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위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깨를 살며시 감싸며 그녀를 다독였다. 잠시 흠칫했지만, 그녀는 곧 내 손길을 받아들이며 아까보다 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삶이란 이렇게 위선과 기만으로 기워진 넝마 자루에 불과한 것이다. 과거를 잊고, 거부하면서 어렵사리 스스로를 지켜갔던 이 도시의 노인들처럼 말이다. 그러나 마음 한쪽에 작은 의구심이 남았다. 그렇다면 내 팔에 기대어 있는 이 여자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느냐고. 그 강렬한 불협화음과 흰 얼룩들은 도대체 무엇이냐고.


4

 

우리는 며칠 간격으로 만나며 하루에 적어도 두 명 이상의 생존자를 인터뷰했다. 길고 지루한 작업이었다. 인터뷰 시간이 걸핏하면 바뀌는 탓에 남는 시간도 많았다. 피로감이 능률을 떨어트릴 때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신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태민 씨, P 대학 사학과면 혹시 김명환 교수님이 지도교수 아니에요……?”

“예. 김명환 교수님 아래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아셨어요?”

“학벌로 티 내는 것 같아서 처음엔 말 안 했는데, 저도 사실 그 학교 행정학과 출신이거든요. 동문인데 그냥 말할 걸 그랬나.”

“그랬군요. 왠지 더 반갑네요.”

“사학과에서 한국전쟁 전공하시는 분은 한 분밖에 없잖아요. 역시 한국전쟁 전공일 줄 알았어. 전공 주제 선택하는 데 할아버님 영향도 있었겠네요.”

나는 대답하지 않고 애매한 표정을 짓는다. 그녀는 암묵적인 동의의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계속해서 말한다.

“사실 저도 그쪽 공부를 하고 싶었거든요. 근데 부모님도 고향에 내려와서 뭔가 하길 바라시고… 그렇게 막상 고향에 내려왔는데, 정치나 사업이나 영 적성에 안 맞더라고요. 그러다 시작한 게 유족회 일이었죠.”

“부모님께서 어지간히 속 좀 썩이셨겠는데요.”

“네. 지금도 앞길이 창창한 애가 도대체 뭐 하는 거냐고 그러시죠. 근데 저로서는 좀 야속하기도 해요. 결국 그때 돌아가신 분들 아버지 입장에서는 삼촌 큰아버지 되잖아요. 근데 부모님조차도 그분들을 기억하고 잊지 말자는 사업에 반대하시는 게 좀 슬펐어요. 과연 누가 그 사람들을 기억해줄지, 더 많은 시간이 지나면 정말 모두가 잊어버리고 마는 것 아닌지…”

그녀는 수줍게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새삼스러운 얘긴데, 그래서 태민 씨가 참 부러워요. 지금 하고 계신 공부라는 게, 곧 과거의 흔적들을 더듬고 끄집어내는 일이잖아요. 사람들이 잊지 않도록, 계속 그걸 상기시키고 다시 살펴보는 거. 그게 역사니까…”

물끄러미 날 바라본다. 내가 잘못 읽은 것이 아니라면, 그 눈빛은 동경과 선망의 눈빛이었다. 부끄러워졌다. 잘 알고 있지 않나. 내가 하고 있는 공부가 그렇게 당당하고 올곧은 것도 아니고, 내가 하려는 일 역시 정의롭고 옳은 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나는 위선 속에 숨어들었다. 태연한 척, 어떤 죄책감이나 자괴감도 느끼지 않는 것처럼 웃으며 장단을 맞춰간다.

“송현 씨 말 들으니 괜히 미안해지네요.”

“에이, 태민 씨가 미안하실 이유가 뭐 있어요.”

“사실 다 사람들의 관심 때문이잖아요. 한영 시민들이 관심이 없으니 목격자나 당사자들도 침묵하고 잊게 되고, 그러다 보니 유족회도 잘 될 리가 없고, 침체된 유족회 때문에 송현 씨도 힘들고… 근데 원래 역사 속에 묻힌 사람들을 다시 끄집어내고, 잊히지 않게 하는 게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의무잖아요?”

한송현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대답한다.

“그렇게까지 말해 주시니 고마워요.”

밝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또다시 자괴감이 밀려온다. 하지만 이번엔 날 감싸던 죄책감의 무게가 조금 더 가볍게만 느껴진다. 이렇게 무뎌져 가는 것일까. 나는 진지하게 무게를 잡으며 덧붙였다.

“물론 송현 씨에게나 역사적으로나 중요한 사건이지만, 그걸 혼자서 짊어지고 계신 걸 보니 좀 안쓰러워요. 그걸 짊어진 송현 씨 역시 또 다른 피해자가 되어버리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고… 거기에 대해선 저 같은 사람들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는 셈이죠.”

내 말을 듣더니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턱을 매만지면서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슬쩍 고개를 들어 올린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피어 있었다.

“맞아요. 저도 원래 역사를 되돌아보고 기억하는 건 누구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모든 사람이 함께해야 할 일이죠. 그래서 하는 얘긴데요…”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인다. 긴장했는지 잠시 얼어있는 듯하더니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말을 이어간다.

“태민 씨가 도와주실 수 없을까요?”

“네?”

“태민 씨가 하는 공부가 그런 거잖아요? 이번에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이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밝혀보자는 거예요. 그렇게 절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기억하고, 떠올릴 수 있도록.”

혼란스러웠다. 걷잡을 수 없는 거짓말을 한 스스로에 대한 역겨움과 그녀에 대한 죄책감과 함께, 한송현이라는 여자에 대한 종잡을 수 없는 감정도 피어났다. 사실 처음부터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와 같이 과거의 기억을 망각하지 않고 직시하려는 사람을 나도 좋아한다고. 동경한다고. 돕고 싶다고. 

그러나 이것 역시 확실했다. 나와 그녀 사이엔 강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 둘뿐만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삶의 궤적들이 지류가 되어 만들어낸 강이었다. 가늘게 이어진 수많은 기억의 하천들 사이에 접점은 없었다. 나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건 단순하고도 막연한 감정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 감정에 스스로를 맡겨도 괜찮을까. 마음을 정리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나를 보는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때 그녀가 갑자기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놓치고 말았다.

“아앗!”

나는 괜찮으냐고 물으며 재빨리 손수건을 건넸다. 화상을 입거나 옷이 크게 얼룩지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녀는 황망하다는 얼굴로 찻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괜찮아요. 당장 답변하기 힘드시면 다음에 말해 주세요. 대답은 그때 듣도록 할게요.”

자리를 정리한 그녀는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을 응시하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일어난다.

“오늘은 이 정도로 마무리하죠. 목요일 뵈어요.”


마지막 인터뷰는 길고도 인상적이었다. 다른 인터뷰 대상자들과는 달리 이기민 할아버지는 국군이 마을을 수복하고 인민군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선두에 섰던 군인이었기 때문이다. 한송현은 내가 인민군 소탕 작전에 참가했다가 전사한 군인의 손자이고, 찾지 못한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왔다고 소개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이기민 할아버지는 따뜻한 눈으로 날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성이 함 씨라고? 함 씨면 흔한 성이 아닌데… 잠깐 생각좀 해 보자.”

이기민 할아버지는 골똘히 고민한 끝에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우리 중대 사람 중에서 함 씨는 없었던 것 같은데. 인민군이라면 모를까. 아마 다른 중대였나 봐. 이거, 도움이 되어줄 수 있을까 모르겠네.”

한영 시에 주둔했던 인민군 부대는 태백산맥 산줄기를 타고 도망치지 못한 채 마석산 부근에 고립됐고, 능선을 따라 포위섬멸 작전이 펼쳐졌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기억력 덕분인지, 한송현의 적극적인 참견 덕분인지는 몰라도 굉장히 내실 있는 인터뷰가 되었다. 국군의 진격 경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교전이 있었던 위치가 어디쯤인지도 상당히 정확하게 추론해 낼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매복에 걸려 전사한 전우들과 정상의 큰머리바위에서 최후의 순간까지 저항하다 사살당한 인민군 지휘관의 모습까지 생생히 기억해냈다. 한송현은 마석산 부근의 지도까지 들고 와서 꼬치꼬치 캐물었고, 위치를 표기하는 작업까지 끝나니 제법 그럴듯한 지도가 만들어졌다. 지도 작업이 잠시 쉬어가는 틈을 타서, 나는 어르신께 조심스레 물었다.

“토벌 작전이 끝난 다음, 영현은 어떻게 처리하셨나요?”

“최대한 고이 수습해서 한영 시 주변에 묻었어. 국군 전사자들의 경우에는 가족들이 많이들 거둬갔지. 근데 급박한 와중에 숲이 우거지거나 지형이 험한 곳에서 전사한 전우들 몇몇은 결국 찾지 못했어. 그게 못내 아쉬워.”

“혹시 인민군들 시신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할아버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기더니, 담담히 말했다.

“따로 거둬서 매장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한영 시는 이야기가 다르지.”

나는 재빨리 덧붙였다.

“학살자들이었으니까요. 이해가 갑니다.”

“그래도 죽은 자리에 적당히 땅을 파고 가매장하는 식으로는 처리했어. 뭐, 화풀이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나름 자제력을 발휘했다고 생각해.”

그렇게 마지막 인터뷰는 끝났다. 남은 것은 현장 방문뿐이었다.

 

한송현은 마지막 현장 검증까지도 따라왔다. 인터뷰를 통해 완성한 지도만 있어도 괜찮았겠지만, 지도와 현장은 또 느낌이 다를 것이라며 끝까지 함께 가자고 매달리니 이길 도리가 없었다. 우리는 산등성이를 따라 올라가며 지도에 표기된 전사자 위치를 훑어나갔다. 최후의 교전이 있었던 큰머리바위 부근에 표지를 박으면서 우리의 하이킹은 끝났다. 나는 이마에 고인 땀을 훔쳐내며 말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녀가 평소답지 않게 조금 어색한 얼굴로 손수건을 건넨다. 내가 저번에 준 것인데, 깔끔하게 다려져 있다. 나는 감사 인사와 함께 이마를 대충 닦아내고 손수건을 품에 넣었다.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뭔가 아쉬운 표정 탓에, 나도 모르게 잘못을 저지른 느낌이다.

“뭘요.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저 혼자서 이 넓은 마석산을 발굴할 수는 없죠.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연락해 보려 합니다. 그쪽에서 협조가 어렵다고 하면 사람들을 고용해서라도 와야겠고요.” 나는 깍듯이 인사를 하면서 덧붙였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어요. 송현 씨 도움이 아니었다면 이런 성과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겁니다.”

“뭘요. 저도 재밌고 좋아서 한 일인걸요.”

“아무튼, 그동안 고마웠어요.”

내 말을 들은 그녀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그럼… 저번의 대답은…”

아. 인터뷰와 현장검증 때문에 잊고만 있었던 문제였다. 또다시 마음속으로 고뇌가 찾아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번민의 시간이 짧았다. 애초에 나 스스로 알고 있지 않나. 이렇게까지 해 놓고서, 더 위선자가 될 수는 없었다.

“죄송합니다.”

“그렇군요.”

그녀는 내 말을 듣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에 뵈어요.”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글쎄요, 다시 뵐 기회가 있을지….”

“아뇨. 다시 뵐 수 있을 거예요.”

그녀는 깍듯이 인사를 한 다음 뒤돌아섰다. 나는 그녀에게 잘 가라는 인사 한마디도 남기지 못했다. 정작 해야 할 말은, 그녀의 뒷모습이 잘 보이지도 않게 되어서야 나왔다.

“미안해요. 정말, 정말 미안해요.”

치밀어오르는 혐오감에 머리가 아찔해졌다. 또다시 도망치고 회피한 나에 대한 혐오감이었다. 고개를 돌려 저만치에 있는 큰머리바위를 바라보았다. 그리 크지 않은 저 바위 주변에 시간의 더께가 내려앉아 있는 것 같았다. 마음은 진정되었지만, 그 내밀한 무게와 울림을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도망치듯 마석산에서 내려왔다. 그곳에 묻힌 사람과 그의 죄와 죽은 사람들과 그녀에 대한 생각들이 끊임없이 날 괴롭혔다. 그날 밤 어렵사리 눈을 붙인 나는 꿈속에서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녘에 일어났다. 여름이라 새벽인데도 벌써 박명이 밝아 있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편지를 썼다. 문장이 질척거렸다. 어지럽게 엉켜버린 기억들과 죄책감과 후회 때문에 한 줄 넘어가기도 쉽지 않았다. 엉겨붙은 문장들을 몸속에서부터 억지로 짜내 한쪽을 간신히 채운 다음 편지를 끝맺을 수 있었다. 편지를 우체통에 넣은 다음 물기를 머금은 햇빛을 맞으며 마석산을 다시 올랐다. 가까이 다가가서 본 큰머리바위는 여기저기 패이고 부서져 있었다. 곧 바위 주변을 부지런히 파 내려가기 시작했다. 간밤에 내린 비 탓에 땅이 부드럽게 질어져 있었음에도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반세기도 넘는 역사의 무게라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다시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이마에 땀인지 빗물인지 모를 것들이 맺힌다. 그래도 두어 시간 정도 파헤친 끝에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저기 흩어진 뼛조각들과 군번 줄. 조선인민군 대위 함희석. 기억의 흔적을 더듬어 어렵사리 찾아낸, 내 할아버지.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쏴아아아아아아-. 예전의 그 낮고 이상한 소리가 다시 귓가에 울려온다. 그러나 이번에는 불협화음이 아니다. 사방을 물들이는 죽음과 씻을 수 없는 죄와 수많은 사람의 슬픔과 반세기의 거짓이 한데 어우러져 만든 화성이었다. 시야를 물들이던 흰 얼룩들은 아예 흰 커튼이 되어 눈앞을 뒤덮는다. 어지럽게 교차하던 기억의 흔적들이 이제 맞물려 들어가고 있다. 

한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할아버지의 유골함을 품에 안았다. 가볍디가벼운 뼛조각일 뿐인데, 지독할 정도로 무겁고 피곤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꾸만 차올라오는 땀을 닦기 위해 손수건을 꺼냈다. 새하얀 손수건의 한구석에 빨간색으로 H라는 머리글자가 정성스레 수놓아져 있었다. 나는 잠시 비틀거리다가 쓰러지듯 주저앉고 말았다. 기괴하고도 지독한 그 저음이 더 크게 울려왔다. 등 뒤에 기대고 있는 이 바위가 진동하면서 내는 소리라도 되는 것일까. 나는 도망치듯 마석산을 내려왔다. 그리고 그 길로 한영 시를 떠났다.


5


한송현 씨께


말이란 안개와 같습니다. 갑작스레 나타나서는 주변을 뒤덮고 제멋대로 시야를 흐리다가도, 그것이 사라지고 나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제가 지난 한 달간 송현 씨께 내뱉었던 말들 역시 그러했습니다. 이 편지는 그렇게 제가 토해낸 거짓된 말과 행동을 사과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저는 1950년 9월 한영 시에서 사망한 인민군 대위, 함희석의 손자입니다. 사죄드립니다. 한송현 씨께, 그리고 돌아가신 송현 씨의 친척분들께 사죄드립니다. 그분들뿐만 아니라, 억울한 죽음을 맞았던 이곳 사람들의 원혼에 사죄드립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요. 저는 제 할아버지가 국군 전사자인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며 당신을 속였습니다. 저 자신도 속였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당신에게 공감할 수 있고, 올곧은 일을 하는 역사학도인 것처럼 스스로를 위장했습니다.

처음엔 확신이 없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어떤 위치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인터뷰와 조사를 하니 명백해졌습니다. 할아버지는 한영의 유일한 인민군 지휘관이었고, 그 모든 일을 주도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과연 내가 학살자의 후손이라는 것을 솔직하게 밝히면 협조를 얻을 수 있을까. 제대로 된 인터뷰가 가능할까. 저는 이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저를 괴롭히는 할아버지의 꿈에서, 기억과 과거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숨기고자 했습니다.

게다가 송현 씨에게 호감을 느꼈습니다. 당신은 내가 지금껏 생각해본 적도 없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신경 쓰지도 않고 잊어가는 것들을 들춰내고 책임지려 했습니다. 그래서 좋았습니다. 당신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올곧고 바르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송현 씨는 절 이해해줄지도 모른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실을 밝혔다가 버림받고, 당신을 잃을 것 같아 두려웠습니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해서 사과합니다. 숨기고, 거짓말을 했던 그 모든 것들에 대해 죄송합니다.


함태민 드림


내가 하염없이 따라갔던 기억의 흔적들을 한데 모아 차곡차곡 쌓아본다.

내 할아버지는 그녀의 친척들을 학살했다. 그들은 죽었다. 완전히 죽었다. 그들은 혹독한 1950년의 겨울을 견뎌내고 봄이 되어 눈이 녹는 것을 기뻐하지 못했다. 전쟁 끝에 폐허가 되어버린 땅을 다시 일구며 뿌듯함을 느끼지도 못했다. 한산하던 그 고을에 공장이 생기고 도로가 놓이고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지도 못했다. 수십 명, 어쩌면 백 명도 넘었을 가족들이 추석에 함께 모여 송편을 빚는 일도 없었다. 반세기의 세월이 지나고, 그들의 손녀뻘 되는 한 여자아이가 질문을 던진다. 할아버지, 우리는 왜 이렇게 친척들이 적어?

국군의 총에 맞아 할아버지 역시 죽었다. 아마 자신이 저지른 일의 무게를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총을 쏘며 저항하다가, 머나먼 고향 땅을 떠올리며 죽음을 맞았다. 할아버지는 고향에 남겨둔 아내와 재회하지 못했다. 어린 아들의 머리를 매만지며 함께 연을 날리러 갈 수도 없었다. 함께 전멸한 다른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고향에 돌아가 자신이 조국수호전쟁에서 전사했다는 것조차 증명할 수 없었다. 오히려 적국에 투항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까지 받았다. 냉대와 차별 속에 한 많은 생을 마감한 할머니를 보면서 아버지는 결심한다. 갓 태어난 아들을 데리고 저주스러운 자신의 조국을 탈출하기로. 천신만고 끝에 북한을 떠나서 새로운 나라에 정착한 아버지에게 여섯 살배기 아들이 말한다. 아버지, 옆집 승우네 아줌마가 나보고 빨갱이네 자식이래요.

그것은 고정된 기억들이다. 이미 다 써 버린 건전지다. 필라멘트가 끊어져 버린 전구다. 마을 변두리에 있는 외딴 흉가다. 온전히 남아있는 유리창은 하나도 없고, 새빨간 그래피티 자국과 천장을 돌아다니는 쥐들만 남아있는. 되돌릴 수 없고, 완성되어버린 기억들이다. 그 기억들에 아직 끝나지 않은 기억들을 조금씩 덧붙인다. 찰흙으로 소조를 하듯, 천천히… 나 말고는 아무도 몰랐더라면, 아니 나 자신조차도 다시 떠올리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기억들을…. 

새터민 적응 시설에서 나와 유치원을 다닐 때부터 그랬지. 기억도 나지 않는 탈북과 내가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사실 다 싫었지. 그래서 속였어. 내 정체를 숨기고, 위선과 가식으로 날 가렸어. 그러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 심지어 아버지한테도 그랬어. 난 북한과 아무 관련 없다고. 유치원 때부터 여기서 다녔고, 아는 북한 사람 하나도 없다고. 무슨 상관이냐고 그랬지. 할아버지도 그렇게 잊었어. 아버지만, 아버지만 아니었다면 평생 잊고 살았을 거야.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강박증처럼 꿈속에 나타날 지경이 되어서야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 그리고 한영 시에 왔고, 어른이 된 아이들이 다시 만나고, 그들의 기억이 교차하며 새로운 기억을 만들고, 마침내 남은 것은…. 

흩어져 있던 기억들이 한데 모여 연민과 위선과 너저분함과 슬픔과 동경이 섞인 조각이 되었다. 그 조각을 바라보니 눈앞에 하얀 손수건이 펼쳐진다. 난 필사적으로 그것을 떨쳐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손수건은 걷히지 않고 계속해서 펄럭인다. 선명하게 박혀 있는 붉은색 머리글자가 눈앞에서 떠나지 않는다. 다시 그 음성이 들려온다. 온전한 화음이 되어 울려 퍼진다. 쏴아아아아아아-.


6

 

임진각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낯설었다. 기껏해야 한 달 전에 들렀는데도 꺼려지고 두려워지는 것이다. 하지만 지구의 극점이 자석을 끌어당기듯, 그곳은 내 품 할아버지의 뼛가루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할아버지의 유골에선 철 냄새가 났다. 과열되어 못 쓰게 되어버린 기관총 총열과 가슴에서 흘러내리는 핏내음과 고향을 그리워하며 바라본 밤하늘을 가로지르던 별똥별과 추억이 담긴 결혼반지와 짙은 후회를 머금은 잿빛 계급장의 냄새가 났다. 아마 그 기억의 색깔이나, 소리 역시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쇠 냄새가 나는 그 뼛가루를 날려보냈다. 한 줌도 안 되는 고운 입자들이 강 건너 북녘으로 돌아갔다. 나 자신을 옭아매고 내몰았던 과거의 짐들도 함께 날려보내는 심정이었다. 이젠 괜찮아. 더는 과거와 대면할 필요가 없어. 진짜로 해방된 거야. 기묘한 안도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편안하고 나긋한, 한없이 침전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른한 느낌 속에 유골함에 담긴 할아버지의 군번 줄을 함께 강물에 놓아주려다 멈칫했다. 난 잠시 고민하다가, 그녀에게서 받았던 손수건으로 군번 줄을 감쌌다. 기억과 기억이 공명하며 만들어내는 그 무거운 울림이 느껴졌다. 난 그것을 품에 넣은 다음 발걸음을 돌렸다.

파주에서 곧장 서울로 향했다. 한 달 만에 들른 학교는 여전했고 연구실 역시 변함없이 아늑했다. 급작스러운 휴학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은 내 자리를 치우지 않겠다고 했다. 등받이를 살짝 눕히고 앉으니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다. 지난 일들은 사소한 일탈에 불과할 뿐이지. 어두운 과거도 깨끗이 털어냈고, 예전처럼 연구실에 틀어박혀 논문을 읽고, 사료를 검토하고, 실없는 농담과 가식을 주고받으며 차곡차곡 글줄을 쌓아나가면 되는 것 아니겠나? 네가 얼마나 이날을 그리워했어?

가방에 넣어둔 랩탑을 꺼냈다. 계절학기 수업이 끝나려면 어차피 한 시간은 남았다.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기엔 상당히 애매한 시간이다. 마침 막간에 처리하기에 딱 좋은 일이 있었다. 재빨리 완성하고, 수업을 마친 교수와 면담까지 하면 금상첨화다. 논문 연구계획서 서식 파일을 연다. 제목 부분에 커서를 대고 재빠르게 타이핑한다.

“기억의 정치 : 1950년 9월 한영 시의 사례를 중심으로.”

개요와 문제의식, 선행 연구와 방법론까지. 첫 문장이 세 문장이 되고, 세 문장이 다섯 문장이 된다. 쓰고 있는 문장이 지렛대처럼 다음 문장을 성실하게 끌어올린다. 향후 연구 일정에 대한 부분만 남기고 잠깐 타이핑이 멈춘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마지막 문장을 써넣었다.

“따라서 이 시기 한국전쟁을 경험한 한영 시 주민들을 중심으로, 심층적인 면담 조사를 통해 사례를 구체화하고 종합적으로 조망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수님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다음 학기에도 휴학하고 지방에 내려가야 할 것 같다. 시계를 보니 아직도 십 분 정도는 여유가 있었다. 연구계획서는 더 고칠 부분이 없어 보이니까 교수를 어떻게 설득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하면 어떨까.

“기억에도 냄새가 있다면, 어떤 냄새가 날 것 같으세요?”

 

 

* 본 작품에 등장하는 지명이나 인물, 사건은 모두 창작의 결과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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