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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심사단 김이환, 박애진입니다. A와 B는 매달 무작위로 바뀝니다.


이달은 소재를 바로 제목으로 짓는 등, 제목에 신경을 쓰지 않은 글이 많이 보였습니다. 소재를 제목으로 썼다는 건 소재 이상으로 글을 쓴 이가 자기 글의 지향점을 의식하거나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글은 감각과 느낌만으로도 쓸 수 있습니다. 나중에야 내가 그 때 어떤 글을 쓰고 싶어 했고, 써왔다는 걸 알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제목을 지을 때는 이야기를 돋보이고, 더 많은 의미를 넣을 수 있는 제목을 고심해주시기 바랍니다. 제목이 밋밋하면 글도 밋밋하리라는 편견이 생깁니다. 읽기 전부터 독자에게 편견을 심지 않도록, 소재를 제목으로 쓰는 이상으로 함축적이며 글의 본질에 닿는 제목을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1월 16일부터 2월 15일까지 올라온 작품 중 심사 제외를 신청한 편을 뺀 12편 중 먼지비님의 <맹렬한 호랑이 보다 맹렬하게>, 유이립님의 <way to mother>를 우수작으로, 썬펀님의 <옥과 해골>, 룽게님의 <모든 것이 폭로되었다.>를 가작으로 선정하였습니다.



몰도비아 - 착각, 온실속의 화초

A : 다소 어정쩡한 느낌의 제목입니다. '온실 속의 화초'가 상투적인 표현이라 그렇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잘 살고 있던 여성이 과거의 남자를 만나서 혼란을 겪는다는 내용은 흔한 소재이고 글 역시 예측하기 어렵지 않은 방향으로 흐릅니다. 주인공이 남자와 처음 만났을 때 대화는 없고 주인공의 과거 회상만 길게 이어지는 부분은 당혹스러웠습니다. 주인공의 과거를 설명할 필요는 있지만 회상만 사용하지 않고 두 사람의 대화를 곁들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문장 역시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서툴기도 하고 1인칭인지 3인칭인지 시점이 헷갈리는 부분도 있습니다. 주인공이 과거의 남자를 만나서 겪는 미묘한 혼란스러움을 잡아내는 부분이나 음악을 사랑하는 주인공의 감성을 묘사하는 부분 등은 흥미로웠습니다. 그러나 결말이 다소 어정쩡한 느낌으로 끝을 맺어서 아쉬웠습니다.

B : 좋은 목소리를 타고 나 가수의 꿈을 키우던 여자가 있습니다. 결혼 후 어쩌다보니 꿈을 잊고 살았고, 우연찮게 만난 한 때 같은 꿈을 꾸던 친구였던 남자를 통해 다시 꿈을 꾸려 하는데, 남자는 진심으로 보기 어려운 유혹/수작을 겁니다.
한 때 꿈이 있었지만 이루지 못하고 결혼했고, 마음 한 쪽에 아쉬움은 있어도 사는 데 큰 지장은 없었고, 옛 친구를 만나 반가웠을 뿐인데 그 친구가 어처구니없는 수작을 걸어 내가 뭘 잘 못했는가, 라는 의문으로 끝나서 허탈했습니다. 이 이야기만으로는 짧지 않은 글을 쓸 이야깃거리로 부족합니다. 제목도 이야기의 방향을 너무 대놓고 드러내서 글을 읽는 내내 결말을 예측하게 되고, 예측한 결말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일상을 다룰 때는 누구나 알기에 압축해서 서술할 부분이 있고, 그 일상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도 공감할 만큼 세심하게 서술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세심한 서술이 아쉬웠습니다. 막연한 일상만을 그려,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고, 여자가 진짜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알기 어렵습니다. 지루한 일상의 단면도 더 세밀하게, 꿈을 꾸던 때도 더 빛나던 한 순간을 그려 대조하고, 여자의 마음도 더 명확하게 드러나도록 그리면 어떨까 합니다.
문장도 비문이 많고 어색합니다. 문장의 기초를 좀 더 다지기 바랍니다.



니그라토 - 인육교실(人肉敎室) 

A : 완성한 글이 아닌 글의 일부분을 잘라서 툭 던져놓은 것 같았습니다. 서론이 없이 느닷없이 본론과 결론이 나온다고 할까요. 게다가 마지막 두 단락에서 등장하는 논리는 솔직히 황당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B : 소설의 형식을 외피만 빌린 연설문으로, 단편 소설로 기본 구성을 갖추지 못해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Mr.Nerd - 산타 할아버지의 밤

A : 마지막에 반전을 품고 있는 코믹한 글입니다. 도입부의 부조리한 대화와 상황이 무섭다가 계속 읽다보면 코믹한 정서로 바뀝니다. 초반에 의도적으로 이상하게 멋을 부린 문장이 등장하는데, 재미있기는 하지만 과하다는 느낌도 듭니다. 중반 이후에 나오는 여러 패러디와 만나면서 같이 조악해지는 효과가 나는 것 같습니다. 초반의 무게감에 비해서 후반으로 가면 흐름이 평범해지는 듯해서 조금 아쉽습니다. 산타의 이야기는 정리하지만 주인공과 아들과의 관계는 정리하지 않는데, 이것이 반전의 일부분이기는 하나 한편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남은 채로 글이 끝나는 것 같아서 마음에 걸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작은 반전이나 산타클로스와 주인공의 찌질한 태도 등이 재미있습니다.

B : 선물이 산타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는 결말을 놓고 보니 ‘산타 할아버지의 밤’이라는 제목이 유쾌하게 다가옵니다. 각종 패러디를 섞은 대화도 재밌었지만 길고 과했습니다. 꼭 살리고 싶은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과감히 버려 전체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막상 본론은 짧고 허무하게 지나갑니다. 왜 산타가 남자를 찾아왔는지, 선물은 뭔지는 풀렸지만, 아버지가 어릴 때 자기에게 했던 일을 그대로 반복한 이 남자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는 아무 실마리 없이 남습니다.
폭력성이 없던 사람이라면, 잠깐 화가 나거나 이성을 잃었다고 해서 심한 상해를 입힐 정도까지 폭력을 쓰긴 어렵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더 구체적인 정황이 있어야 합니다. 사소하다면 사소하지만 도입부 대사를 부인과 자기 아이의 대사이며 최소한의 복선이라 가정할 때, ‘그 애’라는 말도 걸립니다. 자기 아이를 ‘그 애’라고 하지 않습니다.



김미루 - 산 중턱에서

A : 독특한 글입니다. 감정이 갑자기 폭발하듯이, 순간적으로 떠오른 착상에서 흘러나오는 에너지로 글을 끌고 갑니다. 논리나 이야기 흐름이 불규칙하지만 이미지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글에서는 이를 단점이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대신 이런 글은 흡입력 있는 문장이 필요한데 이 점에서 조금 아쉽습니다. 더 매끄러운 문장이었으면 글의 기괴한 분위기가 잘 살았을 것입니다. 시작하기는 쉽지만 절정과 결말을 만들기는 어려운 형식의 글인데, 절정 이후 결말까지 좋았습니다. 적당한 지점에서 끝맺었고 마지막까지 이야기가 가진 독특한 분위기가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B : 기이한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세계입니다. 무작정 나아가며 때로 싸우고, 누군가를 희생시키기도 하고, 자기 자신이 제물이 되기도 합니다. 어느 면 삶 그 자체와 닮았고, 읽기에 따라 여러 상황에 대입해 다양하게 해석할 여지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기이하며 음울한 상상력으로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좋아해 흥미 있게 읽었습니다.
문장이 매끄럽지 못하고 비문이 많습니다. 이 글처럼 추상적이며 글을 쓴 이가 만들어낸 비현실적인 세계에서 진행되는 글일수록 독자에게 명확한 이미지를 전달하기 어렵기에 문장을 정확하게 구사해야 합니다. 본인의 색채를 잃지 않으며 이야기 구조를 강화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견마지로 - 아버지의 시간

A : 매력적인 배경을 한 SF 소설입니다. 사람들은 달에 유리 돔을 건설하고 우주여행을 하며, 바쁘지만 근사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커다란 배경에 비해 이야기는 지나치게 단순한 것 같습니다. 시간여행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주인공과 나이차이가 많이 나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아버지가 싫으면서도 또 은근히 아버지 역할을 기대하지만, 단지 몇 살 더 많은 남자일 뿐인 아버지는 주인공의 기대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글은 이 긴장감을 흥미롭게 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의 갈등이 아버지의 부성애로 해결되는 결말은, 흔하기 때문에 그래서 상투적으로 만들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금의 결말은 상투적이면서도 감정은 과잉되어 있어서 다소 아쉽습니다. 배경 설정에 공을 많이 들인 만큼 이야기의 흐름에도 공을 들였으면 합니다.

B : 머나먼 우주로 나가서 건설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아 있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의 시간이 다르기에, 떠난 사람에게는 몇 년이 흘렀을 뿐이나, 남은 사람은 반평생이 흐릅니다. 자기 역시 아들을 두고 아버지와 같은 길을 가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돌아온 아버지는 자기와 형제처럼 보입니다. 자기처럼 아이를 두고 가야 하는 아들을 위해, 아버지가 대신 임무를 받아 돌아오지 않을 길을 떠납니다.
소재는 좋았지만 이야기 진행이 밋밋했습니다. 열두 살에 어머니마저 잃고, 혼자 살며 얼마나 힘들었는지, 자라며 아버지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서술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입장에서도 자기에게는 긴 시간이 아니었는데 손자까지 생긴 상황에서 온 감정, 느낌, 생각도 더 서술했어야 합니다. 자랄 때 곁에 없었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잇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독자에게 부자지간에 감돌 수많은 감정들을 전달할 수 없습니다. 두 사람 다 별 다른 감정 서술이 없다가 헤어지며 절규하니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독자는 글을 쓴 이가 서술하지 않은 걸 알아서 상상해주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일을 이어야 한다는 법도 억지스럽고, 그 일을 아버지가 대신 맡아 떠나준다는 것도 너무 짜 맞춘 인상을 줍니다.
부자지간은 어려운 주제입니다. 같은 집에 살면서도 남처럼 지내거나 서로 미워하는 부자지간도 많습니다. 아버지에 대해, 자식에 대해, 자식이자 아버지라는 입장과 인물에 대해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박효선 - 나락

A : 배경이 어디일까요? 과거일까요, 현재일까요? 아니면 가상의 시대일까요? 이 글은 마치 배경을 설정하지 않고, 혹은 배경을 일부러 지우고 쓴 듯해서 이상합니다. 독자가 당연히 알아야 하는 단서가 없으니 글 자체가 와 닿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찾아오는 갑작스러운 결말도 와 닿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설정을 다시 고민해보셨으면 합니다.

B : 아름다운 미모로 인해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여인이 있습니다. 여인은 딸에게 자기처럼 살지 말라 하고, 딸은 그 유언을 지키고자 합니다.
이야기가 너무 막연하고 추상적입니다. 어머니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얼마나 화려했는지, 언제부터 모든 게 떠나가기 시작했는지, 그 끝은 얼마나 초라했는지를 장례식에 사람이 없었다는 서술 이상으로 낱낱이 보여줘야 합니다. 갑작스레 아마도 아버지인 것 같은 사람이 나타나며 이야기가 마무리되는데 허탈합니다. 나락이라는 게, 그것도 삶에서 정점을 찍었다가 바닥으로 무너진다는 게 무엇인지 모르고 쓰셨습니다.



니그라토 - 살인자 지망생

A : 마음속 어두운 생각을 털어놓기는 어렵습니다. 아무리 소설 속의 허구라고 가정하더라도 독자의 눈치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깊고 어두운 생각까지 털어놓은 시도는 좋았으나, 이런 성취는 소설이 아닌 수필의 성취입니다. 이 글은 소설이라고 하기 어려우며 니그라토님도 이를 잘 아시는 것 같은데 이 점을 수정하지 않아 아쉽습니다.

B : 혼잣말이나 넋두리에 가깝지 단편 소설로 보기 어려워 평하지 않습니다.




마지굿 - 색출

A: 가벼운 콩트입니다. 미처 알아채지 못한 반전이 재미있었습니다.

B : 동양인과 흑인을 백인보다 얕잡아보는 시선이 존재합니다. 마지막에 새치 이야기가 없었다면 지나치게 도식화한 글로 보였을 것 같습니다. 새치 이야기가 나오기 전 본문을 더 생생하게 살렸다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룽게 - 모든 것이 폭로되었다.

A : 예고도 없이 세상에 종말이 찾아옵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와중 주인공은 개인적인 종말을 맞습니다. 모든 사람의 생각이 연결된다는 소재는 새롭지는 않지만 막상 문장으로 묘사하기는 어렵습니다. <모든 것이 폭로되었다>는 이를 성공적으로 해냅니다. 글에서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는 행위를 책을 읽는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책을 읽을 때 책 속 여러 캐릭터의 마음을 동시에 아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캐릭터들이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이 글은 이런 질문에 대한 흥미로운 해답 같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타인의 마음을 볼 수 있어도 원래 이해하지 못하던 관계는 결국 이해 못한다는 결말과 함께 끝맺습니다. 글은 세상의 종말과 개인의 종말을 오가고 있는데 어느 쪽을 중심 내용으로 둬야할지 확실히 정하지 못한 것 같은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글이 가진 재미에 비하면 사소한 단점으로 보였습니다. 좋은 글이었습니다.

B : 어느 날 갑자기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서로의 내밀한 곳까지 모두 알게 됩니다. 아무 이유 없이 서로 연결되어버렸습니다. 결과는 악몽입니다. 누구도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 마음 속 어두움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이 속에서 화자, 화자의 부인인 은래, 직장 동료인 듯 그 이상인 듯 사이에 걸쳐있는 선화 세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모든 게 폭로된 것 같아도 한 개인을 온전히 알 수 없다는 서술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전 세계에 재앙이 닥친 속에서 화자, 은래로 대표되는 개인은 어떻게 살아남고 앞으로 나아가는가, 로 더 명확히 초점이 맞던가, 이야기를 확장해 인류가 어떻게 살아남는가, 로 갔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양쪽을 애매하게 오갑니다. 선화라는 인물의 역할도 불분명합니다. 어릴 때부터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욕망에 노출되었기에, 사람들이 속을 다 드러내어도 충격을 덜 받습니다. 그래서 이 연결을 메신저처럼 사용하기까지 하는데도, 화자에게 부인에 대해 조언을 하는 정도 외에 다른 역할 없이 사라집니다.
제목도 소재를 그대로 제목으로 옮긴 양상이라 글에 대한 기대를 갖기 어렵습니다. 제목은 글의 많은 면을 드러냅니다. 제목이 소재를 따왔다는 건 이 이야기에 소재는 있되, 이 소재를 통해 하고픈 이야기를 명확히 잡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야기의 방향을 좀 더 뚜렷이 정하시고, 더 함축적인 제목을 고심하시길 권합니다.

2월 가작에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썬펀 - 옥과 해골

A : 편지 형식의 글입니다. 처음에는 받는 사람을 염두하고 쓴 편지 같지만 곧 그렇지 않음이 드러납니다. 마음에 맴돌던 울분을 편지로 쏟아내고 있습니다. 울분은 나중에는 힘없는 개인이 시대를 향해 내뱉는 처절한 외침 같이 변합니다. 주인공의 말투도 사용하는 단어도 낯설어서 처음에는 잘 느껴지지 않으나, 밑바닥에 쌓여 있던 격한 감정이 어느 순간 수면 위로 솟아오르며 폭발합니다. 주인공이 독립운동을 하면서 겪은 고통, 허무, 슬픔 등이 변명과 체념을 오가며 흘러나와 하나의 비극적인 이야기로 완성됩니다. 시대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불행하게 만드는지, 극한의 상황 속에서 인물이 겪는 괴로움이 어떤 것인지 훌륭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편지 형식의 글은 어려운 서사를 쉽게 풀어놓기 위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글은 형식과 내용이 잘 어울리며, 후반에는 형식을 넘어서는 놀라운 순간을 보여줍니다. 낯선 단어와 말투가 다소 어렵긴 하지만 그래서 색다르기도 했습니다. 좋은 글이었습니다.

B : 일 천황 폭살을 시도했던 이봉창 의사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어느 시대인지 불분명한 시점에서 시작해 조금씩 실마리를 던지며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초반에 너무 과하게 숨기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당시 시대상을 더 세밀하게 보여주는 모습들이 있었다면 하는 점이 아쉽지 않은 건 아니지만 흥미롭게 잘 풀어갔습니다. 용기 있게 어려운 일을 행한 사람이라 해서 인격적으로도 아무 흠 없는 사람이라는 걸 뜻하지는 않을 겁니다. 한 인간으로 불완전한 면과 사명감을 가진 사람의 양면을 잘 그렸습니다. 역사적 인물을 글쓴이의 시각으로 재구성한 면도 좋았습니다.

2월 가작에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먼지비 - 맹렬한 호랑이보다 맹렬하게

A : 전쟁터 속의 소년병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허구의 배경 같기도 하고 허구를 차용한 은유 같기도 합니다. 종교 때문에 벌어지는 내전이나 그 속에서 죽어가는 소년병은 현실에서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맹렬한 호랑이보다 맹렬하게>는 소년들을 여리고 순수한 희생자로 만드는 신파에 빠지지 않고 대신 전쟁 속의 복잡한 모순을 견뎌나가는 소년들의 삶을 보여줍니다. 소년들은 어른보다 더 어른스럽게 그리고 영웅적으로 행동하는데, 이를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소년들의 모습이 독자에게는 더 비극적으로 느껴집니다. 소년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도 누구보다도 용감하면서도 동시에 냉소적입니다. 이런 이상한 모순이 전쟁의 본질일 것입니다. 이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소년들의 모습을 탁월한 문장으로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신앙심과 복수를 무엇보다도 높은 가치로 두고 전쟁에 참여하는 소년들이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소년들이 가볍게 던져버린 그 삶입니다. 영웅처럼 행동하던 인물이 막상 영웅이 되자 자신을 의심하고 결국 괴담 속의 귀신으로 남아버리는 결말이 글의 감정을 완성하고 있습니다. 글을 읽는 동안 이상하게도 아름다운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짧고 비극적인 삶을 살았지만 그동안 높은 이상을 추구했던 소년들의 모순적인 태도를 정확하게 포착하는 것이야 말로, 한없이 나약하지만 또한 어느 순간 세속적인 것을 초월하는 우리 인간에게 보내는 찬사로 보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좋은 단편이었습니다.

B : 호랑이는 맹렬한 동물입니다. 그래서 ‘맹렬한 호랑이’는 같은 말을 반복한 것처럼 느껴졌고, 거기에 그보다 ‘맹렬하게’ 까지 붙어서 비슷한 단어 셋이 나열되어 제목에서는 호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본문을 읽으며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지금도 지구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떠올릴 수 있는 배경으로,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한창 사춘기라 부모님에게 응석도 부리고, 반항도 할 나이의 소년들이 병사가 되어 성전을 치룹니다. 글에서 피비린내가 나는 듯 했고, 어둠 속에서 보면 안 되고 보고 싶지 않은 그 무엇이 보이는 듯했고, 수많은 해석과 생각들이 머리를 떠돌며 몰입해서 읽었습니다. 괄호로 서술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적절하게 쓰였습니다. 마음이 아팠고, 슬펐으며, 두려웠습니다. 내용에 적절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아름다운 글이었습니다.

2월 우수작에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유이립 - way to mother

A : 뜬금없이 종말이오고 ‘여와’라는 이름의 주인공은 구세주 역할을 부여받습니다. 반은 은유 같기도 하고 반은 농담 같기도 한 설정입니다. 혼자 몸도 지키기 어려운 상황에서 왜 위험을 무릅쓰고 아이를 낳으려고 하는지 논리적으로 이해가 가지는 않습니다만, 이런 논리가 중요한 글은 아닙니다. 어머니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움직이는 여성을 다루고 있으나 ‘어머니’ 이미지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호러와 허무 개그 사이를 오가는 동물들의 행동도 재미있습니다. 원숭이 무리는 꽤 매력적인 악당이기도 합니다. 주인공이 목표를 이루느냐 이루지 못하느냐를 궁금해 하며 글을 읽는 독자에게 쾌감을 주며 독특한 뒷맛을 남깁니다. 꼼꼼히 신경을 쓴 배경 설정이 단순한 이야기에 생명력을 준 듯합니다. 결말까지 개성을 잃지 않았고 잘 마무리 지었습니다. 단순하면서도 개성 있는 단편을 읽는 즐거움을 잘 살린 글이었습니다.
 
B : 갑작스레 세계가 멸망하고, 햄스터는 원숭이 이마에서 짜부라져 죽고, 미친 원숭이는 바나나를 달라고 하고, 여자는 적수가 안 되니 아들을 낳으라며 갖은 멋을 부리던 호랑이는 허무하게 죽어버리네요. 인류가 멸종하고 홀로 남은 여와는 인류를 이어가고자 스스로 인공수정을 합니다. 여와는 여호와/야훼를 우리식으로 한 이름이고, 처녀 수태라고 봐야하는가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굳이 상징을 분석하고 해석을 덧붙이지 않아도 이야기 자체만으로 재미있었습니다. 글을 쓴 분만의 기묘하면서 독특한 세계가 보입니다. 아픈 아이를 돌보느라 직장에 늦어 곤욕을 치르면서도 당당했던 담당자, 마지막 엄마가 되었다는 여와의 서술은 감동적이었습니다.
글은 눈길을 끄는데 제목이 밋밋합니다. 꼭 영어 제목이어야 하는가 싶기도 하고요. 이 외에는 달리 흠잡을 곳이 없습니다. 몰입해서 읽었습니다. 무엇보다 모성처럼 상위 개념이자 보편적인 진리를 진부하지 않게 푸는 건 정말이지 쉽지 않은데, 그 부분을 훌륭하게 해냈다는 점에서 찬사를 보냅니다.

2월 우수작에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거울 독자 우수단편에 선정되신 분들께는 책을 한 권씩 보내드립니다. 
먼지비, 유이립, 룽게, 썬펀님은 pena12 @ gmail . com으로 우편물을 수령할 주소, 성함, 전화번호(택배 발송시 필요)를 보내주세요.


댓글 3
  • No Profile
    유이립 14.03.03 01:12 댓글

    좋은 평 감사합니다. 근데 메일 주소는 pena12 아닌가요? 21로보내니 오류메일이 전송됐습니다.

  • 유이립님께
    No Profile
    mirror 14.03.03 13:02 댓글 수정 삭제

    12가 맞습니다. 본문 수정했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 No Profile
    먼지비 14.03.18 00:01 댓글

    부족한 글에 좋은 평 감사드립니다. 더 좋은 글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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