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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10월 독자우수단편 선정단 박애진과 김이환입니다. (심사평에서 A와 B는 무작위로 바뀝니다)
 
 

9월 16일부터 10월 15일까지 올라온 9편의 단편 중 심사 제외를 신청한 한 편을 제외한 8편을 심사했습니다. 이 달은 유독 장르 소설에서 흔히 사용된 코드 혹은 설정을 차용한 글이 많이 보였습니다. 어떤 ‘장르’의 소설을 쓸 것이냐, 이전에 소설에서 가장 중요하며 기본이 되는 것은 진정성입니다. 진정성이라는 말이 어렵다면 진솔함, 솔직함이라고 받아들이셔도 무방할 듯합니다. 다른 말로 어떤 장치와 설정과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 것인가, 그 이전에 그 장치/설정/소재로 어떤 이야기/주제를 전달하고 싶은가, 지금 내가 진정 하고 싶은 내면의 이야기는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주셨으면 합니다.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서 소재를 찾아 현실감 있게 쓰지 못하면서, 세계 멸망이라는 큰 이야기를 제대로 그릴 수 있을 리 없습니다. 본인이 잘 아는 이야기와 발을 딛고 있는 현실에서 시작한 고민에서 글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글을 쓴 사람이 잘 모르며 쓴 이야기는 아무도 설득할 수 없고, 어떠한 감동도 줄 수 없습니다.
 
읽고 봐 온 것의 재생산 이상의 글이 눈에 띄지 않아 선정작을 내야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없지 않았으나, 거울 독자우수단편 선정은 당장 완성도 있는 작품을 쓰는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글을 쓰고 발전하고자 노력하는 분을 격려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기에 심사숙고 끝에 lippmarl님의 <춘곤증>을 가작으로 선정했습니다.
 
 

 

죄인 - 플루터비
 
 

A : 배우자의 치매 때문에 고통 받는 주인공과 이어지는 비극적인 살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치매 환자인 가족을 살해하는 사건이 뉴스에서 자주 언급되는 요즘입니다. 환자의 가족이 겪는 고통은 중요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으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소재를 다루려면 그만큼 사려 깊은 시선이 필요합니다. <죄인>에서 주인공이 살해자가 되기까지의 상황은 주인공이 겪는 비극을 강조하기 보다는 상투적인 상황의 나열로 보입니다. 문장이 거친 것을 비롯해서 글 전체적으로 테크닉이 부족합니다. 더 좋은 글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습이 필요해 보입니다.
 
 

B : 한 남자가 오랜 세월 함께 살아 온 부인을 살해합니다. 사람들은 그를 비난하지만, 그는 치매에 걸린 부인을 더 돌볼 수 없었기에, 그리고 여전히 변함없이 사랑했기에 살해했습니다. 사랑하기에 죽일 수밖에 없다는 건 어려운 주제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삶을 축약해서 다루었고, 치매에 걸렸을 때의 모습도 막연한 상식선 이상을 보여주지 않았기에 설득력도 감동도 주지 못했습니다.
 
긴 세월 한 사람을 변함없이 사랑하기란 어렵습니다. 독자들이 이 이야기에 공감하도록 그간의 세월을 느낄 수 있는 장치를 제공해야 합니다. 정확한 나이는 나오지 않았지만 부인이 치매에 걸렸고, 그 이후로도 오래도록 돌봤으니 대략 70대로 가정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스무 살 때라면, 1960년대 정도가 될 수 있겠습니다. 그럼 글 속에서 60년대라는 걸 알 수 있는 장치들을 넣어야 합니다. 예를 들자면 심지를 올려 성냥을 켜서 불을 붙이던 난로를 쓰다가 보일러로 바뀐다던가 하는 모습처럼 세월이 흐름에 따라 세상이 변화하는 장면을 찾아 넣는다면, 독자들이 두 사람이 함께 한 시간의 무게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무게를 독자들에게 전달한 다음에야 부인이 자기를 알아보지 못했을 때의 충격을 독자가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뒤 자기도 늙어 힘이 없는 사람이 치매에 걸린 사람을 돌보는 게 얼마나 고된 일인지, 그래도 방치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돌보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우면서도 슬픈지를 구체적으로 그려야 하고, 그 뒤에야 살해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치달아 갈 수 있습니다.
 
부인이 치매에 걸리기 전까지 두 사람은 평범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두 사람만의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요리를 좋아하는 세세한 여자”라는 표현은 너무 막연합니다. 독자들은 이렇게 막연한 인물에 공감하지 않습니다.
 
독자 단편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에 자주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본인이 실제로 잘 아는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늙어가는 것, 자식에게 버려지는 것, 평생을 함께 해 온 부인을 살해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글을 쓰는 이는 막연한 상상만 했을 뿐 알지 못합니다. 글을 쓴 사람이 알지 못하는 이야기로 글을 읽는 이를 설득할 수 없습니다.
 
프랑스 영화 중 “아무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말년에 이른 부부의 사랑, 치매, 홀로 부인을 돌보다 부인을 살해하게 되기까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한 번 보시길 권합니다.
 
마지막 아들도 언젠가 자기 모습이 될 지도 모른다는 서술은 사족이 아니었나 합니다.
 
 

 

역(逆) - 송형준
 
 

A : 처음 두 단락은 군더더기처럼 느껴졌습니다. 글은 사람들이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이미지에 집중하고 있는데, 날개 달린 인간의 출현을 꼭 논리적으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인간에게 날개를 붙이려면 아무리 논리를 맞추려고 해도 과학적인 설명이 어렵습니다. 지금의 설정은 그다지 과학적이지도 논리가 맞지도 않습니다. 또한 날개달린 인간에 대한 설명은 있으나 나무로 자라나는 사람이나 땅 속의 빛 같은 설정은 설명이 없고, 이런 불균형도 혼란스럽습니다.
 
눈이 내리는 어둠 속을 날개 달린 사람과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가 복잡하게 엉키는 순간의 이미지는 강렬합니다. 주인공이 글에서 풀어놓는 상념은 우리가 외롭거나 힘들 때 어두운 길을 혼자 걸으면서 느끼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솔직히 풀어놓고 있으며 이점이 매력적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문장을 더 세공했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 ‘내 눈 앞에 기억 저 편에 묻힌 줄 알았던 어떤 영상의 필름이 돌아가고 있다.’ 같은 문장은 아름답기보다는 상투적인 느낌이 먼저 듭니다.
 
 

B : 발전으로 인한 폐해, 원시 상태로 돌아가고픈 인간의 갈망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전체적으로 설정이 과합니다. 굳이 도입부에 이카루스의 이야기를 넣을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카루스의 이야기가 상징하는 바와 이 소설의 지향점이 잘 맞는 것 같지도 않았고, 사람에게 날개를 달아야만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아니었습니다.
 
과학의 발전을 법이 따라가지 못해 생기는 모습들이 나오는데, 과정에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모습도, 날개가 없이 걸어 다닐 때도 일어날 수 있는 사고인데, 굳이 날개까지 달아 사건을 만들어야 하는지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날아다니는 사람, 날아다니는 차가 나오는데도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걸어 다니는 인간이, 지상을 돌아다니는 차로 인해 일어나는 사고 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시체나무’라는 기괴하며 독특한 설정이 나왔는데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고, 전체 이야기에 잘 섞이지도 못했습니다.
 
다리가 퇴화해 걷지도 못할 정도라면 사는 모습도, 집 구조도,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낯선 모습을 보여줬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은 중반을 넘어 화자가 다리가 퇴화되었다는 서술을 하기 전에는 독자가 다리가 퇴화되었다는 사실을 미리 알기 어려워, 뒤늦게 알려주는 격이 되었습니다. 앞부분부터 차근차근 보여줬어야 합니다.
 
공들여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모습을 통해 과학과 기술, 인간 종의 변화와 발전 이전의 순수했던 상태로 돌아가고픈 욕망을 서술했는데, 안타깝게도 지금 상태로는 차들이 날아다니고, 사람에게 날개가 달리니 교통사고가 잦아 걸어 다녀야 한다는 이야기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현재 사람들은 두 발로 걷고 있습니다. 현재의 사회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진정 회귀해야 할 어떤 그리움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바다로 - 이겸
 
 

A : 아이를 안은 산모가 숲 속을 뛰고 있는 상당히 극적인 장면으로 시작하는 글입니다. 글은 산모, 의사, 군인 세 사람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아이가 바다로 돌아간다는 짧은 이야기를 다른 시선으로 세 번 반복하는 셈입니다. 처음에는 상황을 던지고 두번째에서는 설정을 풀어놓고 세번째에서 뒷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은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글 전체적으로 작위적인 면이 많으며 이것이 이야기의 흥미를 지우고 있어서 아쉽습니다. 아이를 낳은 어머니가 아이를 살리기 위해 도망가는 상황은 자연스럽게 제시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막던 의사는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는데, 이 상황을 통해 작가님이 말하고 싶었던 바가 있었던 것 같지만 작위적인 상황이라는 느낌이 먼저 듭니다. 산모를 추적하던 군인이 느닷없이 어머니를 회상하면서 태도를 바꾸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의사보다도 더 비인간적으로 보이던 군인이 한순간에 마음을 바꾸고 이성적이지 않은 태도로 돌변하는 것을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작위성이 캐릭터의 감정이 독자에게 절실히 와 닿지 않게 만들고 글을 맥없이 만들고 있어서 아쉬웠습니다.
 
 

B : 비극적인 장면을 그리고자 설정을 짜지 않기를 바랍니다. 설정 자체가 이야기 속에 녹아 있어야지, 비극을 위해 이야기를 진행하면 곤란합니다. 왜 출산공무원이 생기고, 나라에서 아이들을 거두어 갔는지, 돌연변이를 만드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 이야기 내에서 최소한의 설명이 있어야 합니다, 인구가 갑자기 줄어 억지로라도 아이들을 낳게 해야 하는 상황인지, 그렇다면 인구는 왜 줄었는지, 군인이나 고위층도 기꺼이 자기 아이들을 내놓았는지, ‘단 한 번 세상을 되돌릴 기회’는 무엇이었는지, 돌연변이 군인을 만들어야 할 위기 상황이 있는지, 있다면 무엇인지, 누구와 싸우기에 필요한지 등등 이야기에 빈 곳이 너무 많습니다.
 
아이들을 나라에서 강제로 데려가고, 건강한 여자들에게 강제로 출산하게 하고, 군사용 돌연변이를 만드는 것 등등은 이미 장르 소설에서 많이 쓰인 장치입니다. 그 장치들을 몇 차용한다고 이야기가 되지 않습니다. 자기만의 세계와 이야기를 고심해주시기 바랍니다.
 
 

 

변화 - 나즈
 
 

A : 히키노모코리로, 그러니까 집에서 이미 좀비상태로 살고 있던 주인공은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자 세상으로 나옵니다. 반전을 품고 있는 단편입니다. 반전이 초반에 살짝 언급되어 있지만 냄새를 따라가는 주인공이 좀비라고 상상하기는 어려운 명료한 사고를 하고 있는 듯 보이기 때문에 사실은 주인공이 좀비였다는 반전이 재미있습니다. 단순한 구조에 비해 작품의 설정을 길고 자세히 설명합니다. 설정이 이야기 중간 중간 삽입된 것이 아니라 초반과 후반에 한꺼번에 설명되기 때문에 이야기의 규모에 비해 설정이 길게 느껴집니다. 물론 좀비 장르에서 세상에 멸망해가는 모습 자체가 글을 읽는 즐거움의 일부이므로 그런 면에서는 긴 설명을 받아들일 수 있으나, 그래도 더 재미있게 설정을 풀어놓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주인공이 좀비라는 반전이외에, 좀비가 되어서도 세상에 어울리지 못한다는 반전이 한 번 더 등장하는데 이런 결말이 정확히 어떤 의미로 삽입되었는지, 독자에게 놀라움을 주려고 넣었는지 혹은 주인공의 허무한 삶을 강조하는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변화했지만 변화하지 않았다’는 마지막 문장까지 읽어도 잘 이해가가지 않습니다.
 
 

B : 드라마, 소설, 영화에서 눈에 띄는 좀비 작품들이 나오며 최근 좀비 소설이 강세인 듯 합니다. 매 달 한두 편은 좀비를 소재로 한 소설이 올라오는데요. 이미 많이 쓰인 소설에서 아주 약간 변형한다고 해 다른 좀비물과 다른 독창적인 좀비물이 되지 않습니다.
 
이 글의 경우, 어쩌다 집에서만 지낸 사람이 좀비가 된 후에도 내면은 변하지 않아 다른 좀비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인데, 그게 다입니다. 흔히 좀비물 혹은 세계멸망물에서 나오는 전기가 끊기고, 구획이 나뉘고, 안전지대가 된 곳이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면 그곳도 안전하지 않다는 설정/이야기들을 그대로 차용했습니다. 게다가 어색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주인공을 쓰러뜨린 남자가, 주인공이 요청하지도 않고, 자기 상황에 대해 설명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혼자 지내왔다면 모를 수도 있겠”다며 현재 상황이 어떤지 줄줄이 읊는 장면은 굉장히 어색합니다. 전체 이야기에 필요한 장면도 아니고요. 어차피 주인공은 관심도 없고 자기 집으로 돌아갈 뿐이니까요.
 
글을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본인이 인상 깊게 읽거나 본 작품을 차용해 글을 쓰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늘 자기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너무 상투적인 글을 쓰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돌아보며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 공장장님 - 니그라토
 
 

A : 이제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은 ‘사회 비판 소설’입니다. 이런 소설들은 주인공의 비참하고 우울한 삶을 따라가면서 동시에 작가의 가치관이 반영된 사회 비판을 첨부합니다. 결말에서 주인공의 삶을 더 비참하게 만들어 한국의 어두운 현실을 돌아보게 하려 애씁니다. 이 글도 그런 경향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글에서 주인공이 하는 생각(그리고 아마도 작가의 생각)이 보여주는 가치관을 두고 논쟁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걸렸던 것은 제목 ‘우리 공장장님’의 ‘우리’는 과연 누구일까 하는 점입니다. 주인공이 독자에게 친근하게 느껴지도록 할 생각으로, 아마도 주인공과 독자의 거리를 ‘우리’라는 단어를 통해 가깝게 표현해서 보편성을 끌어낼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프리메이슨’ 같은 낯선 단어를 모두 다 잘 알고 있는 개념인 것처럼 사용하는 행위는 자제했어야 합니다.
 
 

B : 구체적인 공간 배경과 직업을 설정하고, 나름대로 자료를 조사하며 주장에 근거를 부여해, 더 설득력이 있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 점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자료 제시와 이야기가 따로 놀고, 독자에게 들키지 말아야 할 것을 들켰습니다. 근거를 제시하며 주장하는 바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이미 결론을 내려놓은 상태에서 거기에 맞춰 근거를 제시하려 한 글이라는 점이 그렇습니다. 글을 쓰는 이는 모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를 위해 글을 씁니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너무 쉽게 들키면, 소설이 아니라 연설문이 됩니다. 훈계나 연설, 내 말이 다 맞다는 주장을 하고자 쓴 글을 읽기 위해 시간을 쏟기에는 세상에는 좋은 이야기와 소설이 너무 많습니다. 하고픈 말만 외치는 글은 올라가지도 않는 고음을 내려 목소리를 쥐어짜는 노래가 귀를 괴롭히듯이, 독자를 괴롭힐 뿐이니까요.
 
이제껏 니그라토 님의 글을 읽으며 더 나은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단지 글로 배설할 뿐인지 의문을 가져 왔습니다. 조금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 건 반갑습니다만 이 정도로는 한참 부족합니다. 글은 무작정 많이 쓴다고 늘지 않습니다. 매번 저번 글에서 부족한 점은 무엇이었는지, 이번에 쓸 글에서는 어떤 부분을 채워나가고 더 발전시킬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하며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내려갈 때에만 발전합니다. 니그라토 님은 비슷한 글만 재생산하고 있습니다.
 
거울 독자우수단편 선정과 심사평은 더 나은 글을 쓰고자 노력하는 분들을 위해 존재합니다. 듣지 않는 사람에게 말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독자우수단편 선정단의 하루도 24시간입니다. 발전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글에 한정된 시간을 쏟을 수 없습니다. 단순한 재생산 이상을 넘어선 글을 쓸 수 있다는 걸, 더 적극적으로 발전된 글로 보여주지 않는다면 수차 썼던 평들 이상으로 달리 드릴 말씀이 없고, 다른 평을 찾아 쓰기 위해 시간과 공을 들일 이유도 없습니다. 착상이 떠올랐다고 바로 쓰지 마시고, 이 글이 저번 글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저번 글보다 나은 점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며 매 글 한 편, 한 편에 시간과 열정을 쏟아 써주시기 바랍니다.
 


 

수조 - 초연
 
 

A : 사람이 방에 갇혀 있고 방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주인공은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해 하고 살아남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반대로 상황을 귀찮아합니다. 주인공의 태도는 글을 맥 빠지게 만듭니다. 반전을 통해서 이유를 설명하고는 있지만, 죽을 위기에 빠졌는데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주인공이라니 그다지 재미있는 인물은 아닙니다. 여자 친구의 임신과, 양수가 가득한 자궁처럼 밀실에 가득찬 물에 빠져 죽는 주인공을 비교한 상징은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결말에서 왜 이런 전개가 되었는지 설명하는 반전이 놀랍지 않고, 그저 툭 던져지듯이 간단히 서술되기 때문에 오히려 허망하게 느껴집니다. 좋은 아이디어와 상징을 더 재미있게 연출하는 방법을 고민해보셨으면 합니다.
 
 

B : 아마도 죄책감을 가지고 체념한 채 서서히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일단 이런 방법으로 자살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데 왜 굳이 이런 방식을 택했는지 나오지 않았습니다. 물은 어디서 공수하고, 문틈은 얼마나 잘 막았기에 물이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않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촬영은 어떻게 했는지, 인터넷에는 어떤 경로로 퍼졌는지 또한 서술되었어야 하고요.
 
바람을 피웠다면 유부남이었는지, 유부남이라면 5일간 부인은 남자를 찾지 않았는지, 애인이 있었을 뿐인지, 어린 여자라면 얼마나 어렸는지, 이런 구체적인 정황이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이 남자의 죄책감의 무게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자들은 한 사람이 이런 가혹한 방법으로 자살을 택하기까지의 감정선을 “임산부를 살해해서”라는 말로 납득해주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사소한 다툼이 살인까지 되는 것, 바람피운다는 것, 경찰들이 자살과 살인사건에 대해 갖는 인간적이거나 직업적인 감정들에 대해 글을 쓴 이가 아는 것 같지 않습니다. 잘 아는 이야기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는 것 또한 작가의 기본 자질입니다. 본인이 아는 이야기에서 글을 시작해주세요.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 엄길윤
 
 

A : (고갱의 그림에서 따온 듯한) 긴 제목이 글의 내용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글은 거창한 제목에 어울리는 거대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원시 상태의 지구, 외계문명, 창조, 진화, 인류의 출연, 문명의 발달, 환경오염, 인간성의 상실, 인류 문명의 종말 같은 많은 소재를 빠른 속도로 제시하지만 사실 내용은 간단합니다. 전부 줄이면 ‘자연보호’입니다. 글 안에서는 각각 선택된 이유가 있을 테지만, 이 소재들이 많이 반복되어온 것들이라서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상투적으로 보이는 결과를 가져온 듯합니다. 자연을 보호하자, 환경오염을 줄이자, 기계는 나쁘고 자연은 좋다, 등은 중요한 주제지만 어찌 보면 다들 아는 이야기고 많이 반복되어온 이야기입니다. 독자는 늘 보던 것이 아닌 신선한 소재를 기대합니다. 더 창의적인 소재를 고민해보셨으면 합니다.
 
 

B : 제목이 하고 싶은 이야기 그 자체인데다 일반적인 의문점입니다. 제목은 이야기의 얼굴입니다. 제목에 하려는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으면 읽기도 전에 질립니다. 일반적인 의문점을 담았기에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이야기를 하려는가 싶은 기대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이미 SF에서는 고전적인 소재인 결국 돌고 돌아 인간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이야기를, 생명과 인류의 발생부터 시작해 길고 지루하게 늘어놓았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늘 자기 이야기가 새롭고 전에 다른 사람은 한 적이 없으며, 있다 해도 나만큼 잘 풀지는 못하리라는 생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많이 읽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좋은 글을 읽으며 눈을 높이는 것만이 아니라 이미 다른 사람이 수차례 변주한 이야기는 피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항상 경계하며 자기 이야기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춘곤증 - lippmarl
 
 

A : <춘곤증>이라는 제목이 글 내용과 어울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긴 이야기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제목 같습니다. 제목에 더 멋을 부려도 괜찮을 듯합니다.
 
소설은 두 시점으로 번갈아 진행되는데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3인칭일 때는 과거를, 여주인공인 창녀의 시점일 때는 현재를 설명하는 것 같으나 읽다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챕터를 나누지 말고 통일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좀비를 소재로 다뤘지만 흔한 좀비 아포칼립스 이야기는 아닙니다. 창녀와 창녀에게 연정을 느끼는 소년이라는 캐릭터는 소설에서 흔히 접할 수 있지만 좀비 소설 속에 들어와 있으니 신선한 결합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창녀와 소년 사이의 이야기에 좀비가 끼어들 때면 좀비 소설이라는 설정이 글과 잘 어울리지 않아 보일 때도 있습니다. 긴 이야기인데 구조가 탄탄하다는 느낌보다는 진행할 때마다 사건이 툭툭 던져지고 그에 맞춰 이야기가 흘러가는 느낌이 들어서 그 점도 아쉽습니다. 하지만 긴 이야기를 끝까지 밀어붙이고 결말을 맺어, 이야기가 주는 복잡한 감성을 결국 완성한 노력에는 좋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B : 짧지 않은 글을 끝까지 쓴 것에 대해서는 칭찬하고 싶습니다. 뒤에 갈수록 이야기에 힘이 빠지고 뭉개지는 면이 있었습니다만 많이 노력한 글입니다.
 
장르 소설을 처음 쓰기 시작하는 분들의 경우, 이제껏 읽어온 글에서 설정을 차용해 뒤섞어 이야기를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이 글도 그렇습니다. 좀비가 세상을 뒤엎고,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한 실험에서 일이 터지고, 극단적인 상황에서 인육을 먹는 등등은 이미 여타의 소설에서 많이 쓰인 장치입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고 합니다. 이미 쓰인 장치라도 글을 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이미 쓰인 이야기의 변주 이상은 되지 못했습니다.
 
상상 속의 일, 이 글처럼 좀비가 창궐하고 세상이 멸망하는 일을 그릴 때에도 언제나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어야만 이야기에 설득력이 생깁니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섬인데, 글을 쓴 분이 섬이라는 공간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습니다. 대부분의 섬이 자기 발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섬에는 바이러스가 창궐하지 않아 사람들의 모습이 변하지 않았다면 전력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겁니다. 유지하지 못해 전기가 끊겼다면 어쩌다 그랬는지 나와야 합니다. 섬 주민들은 몇이나 되는지, 외지인은 얼마나 들어온 상태에서 일이 터졌는지, 섬사람들은 평소 뭘 먹고 살았는지, 밭을 일궜다면 얼마나, 낚시를 하거나 해산물을 채집했다면 얼마나, 육지에서 식량을 조달했다면 얼마나 되는지, 그 식량을 조달하는 돈은 어떻게 벌었는지, 기본적으로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섬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흐릿합니다. 잘 모르는 곳을 배경으로 할 때에는 철저한 자료 조사와 연구가 필요합니다. 글을 쓴 분의 막연한 상상속의 섬이기에 이야기 또한 붕 떠 있고, 현실감이 떨어집니다. 창녀는 왜 이 소년을 계속 받아줬는지, 사람들이 머물 곳이 없어 천막까지 치는 중에 왜 별장은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지, 경찰은 어떻게 계속 병력을 유지했는지, 애초에 섬에 경찰이 몇 명이나 있었는지, 경찰은 어떻게 질서를 유지했는지, 얼마나 훈련을 받은 사람들인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채 이야기에 필요한 만큼씩만 등장했다 사라집니다.
 
별장 주인은 섬에 처박혀서 연구를 했는데, 그럼 섬에 제일 먼저 바이러스가 시작했어야 맞지 않을까 싶고, 납득할 수 없는 점들이 너무 많습니다.
 
또한 이야기가 너무 과합니다. 고립된 섬에서 늙은 창녀와 기둥 서방격인 소년과 손님인 땜통의 삼각관계, 혹은 세계가 멸망할 위기에서 배 한 척에 고립된 군인들 간의 먹고 먹히는 갈등, 한 사람을 살리려다 세계를 멸망시킨 연구, 이 각각의 소재만으로도 단편부터 장편까지 나올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쓸 때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나만 잡아 튼튼한 토대 위에 서술하시기 바랍니다.
 
 

10월 독자단편 가작에 선정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거울 독자우수단편에 선정되신 분들께는 책을 한 권씩 보내드립니다.

lippmarl님은 pena12 @ gmail.com 으로 우편물을 수령할 주소, 성함, 전화번호(택배발송시 필요합니다) 를 보내주세요.

(상품인 책 발송은 1~2주 걸릴 수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댓글 3
  • No Profile
    엄길윤 13.10.31 23:13 댓글

    평 감사드립니다! 요새는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이야기에 표현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실감하곤 합니다. 얼른 수정해야 겠어요.

  • No Profile
    이겸 13.11.02 17:04 댓글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No Profile
    플루터비 14.03.26 00:29 댓글

    이제야 평을 읽어보네요. 감사합니다. 앞으로 좀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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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 way to mother 2014.03.01
우수작 맹렬한 호랑이보다 맹렬하게 2014.03.01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3 2014.02.01
우수작 고양이의 보은 2014.02.01
가작 악몽 2014.02.01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4 2013.12.31
우수작 쿠소게 마니아 [본문삭제]1 2013.12.07
가작 화초가 2013.12.15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3 2013.11.30
가작 소녀 2013.11.30
가작 광고 (본문 삭제) 2013.11.30
선정작 안내 독자 우수단편 선정3 2013.10.31
가작 춘곤증 2013.10.31
선정작 안내 독자 우수단편 선정1 2013.09.30
선정작 안내 선정작이 없습니다. 2013.09.30
선정작 안내 독자 우수단편 선정3 2013.08.31
가작 발톱 2013.08.31
선정작 안내 선정작이 없습니다. 2013.07.31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2 2013.07.31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2 2013.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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