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0.

그에게는 그 팔 한 자루가 남아 있었다.

 

1.

그건 방문 선교사인 그가 위성 이아페투스의 리큐 기지의 축제에서 전통 사교춤을 추다가 일어난 일이었다. 물론 ‘전통 춤’이란 표현엔 큰 어폐가 있다. 위성자치의 시대에 ‘비 온 뒤 죽순 자라듯’ 졸속 기념상품으로 만들어진 20년 된 흔한 춤들 가운데 하나였으니까. 뭐, 이젠 비든 죽순이든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되었지만 말이다. 축제장은 리큐 기지처럼 수천 명만 거주하는 기지에서는 보기 드문 큰 파티장이었다.

 

중력이 지구의 1/44인 이아페투스의 오레오-다이브 춤은 두 사람이 서로 두 손 깍지를 끼고 허공에서 몸을 던지는 것이 전부다. 그렇게 수십 초 동안 느리게 떨어지는 사이 서로 몇 바퀴 돌고, 다시 바닥의 탄성으로 뛰어오를 때 서로 꽉 잡고 하다보면 괜찮은 운동이 된다. 눈으로 둘러 싸여 검은 흙과 대비되는 기지의 동쪽 면을 바라보는 것도 절경이었다.

 

그녀는 열세 번째 춤 상대였다. 열두어 번을 리큐 기지 댄스 룸의 바닥을 튀어오를 쯤, 그녀가 붉은 머리를 흔들며 다시 말을 걸었다. 자기 이름을 진이라고 부르라 했다.

 

“지구에서 오셨다고 했죠? 전 3년 전에 고요의 바다에 가 봤어요. 아름다운 곳이었죠.”

“아뇨. 정말 지구에서 왔소. 그 지구에서. 달이랑은 다르지.”

 

‘지구’가 그 위성인 달을 의미하게 된 지는 꽤 오래 된 것이 사실이다. 오염이 적고 중력이 작은 달이 급속히 개발 되면서 모 행성 지구를 대신해 우주 시대의 전초 기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마치 한국의 서울이 옛 성곽 지역이 아닌 한강 남쪽, 강남을 의미하게 된 것과 같다. 그는 달이 아직 지구를 대표하기 전 태어났기 때문에, 달을 지구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꼭 지구라고 고쳐주는 버릇이 있었다.

 

“지구 시대 사람이라고요? 생각보다 나이가 많으시다는 거네요. 아, 전 사실 그거 말고는 지구를 잘 몰라요. 하지만 여기가 재미없는 곳이란 건 알죠.”

“재미가 없소?”

“이 기지는 너무 작고 멀어요. 모든 게 예스럽잖아요. 아, 아저씨랑은 다른 의미로요.”

 

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며 허공에서 스텝을 밟았다. ‘사람 나이를 얼굴로 분간 할 수 없는 지금, 내 나이가 그렇게 많은 건가?’ (그는 겨우 스물 셋, 백 스물 셋이었다. 20세기로 치면 40대로, 아직 살날이 살아온 날보다 더 많이 남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녀는 서른 아홉이라고 했다.) 그 렇게 그녀의 말뜻을 골똘히 생각하다가… ‘어이쿠’, 박자를 놓치고 그녀의 발을 걷어찼다. 굵은 그의 팔과 통통한 그녀의 팔이 엉키고 꺾였다. 그들은 중심을 잃고 뱅뱅 돌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의 늙은 팔에서 우두둑 하는 소리가 났다. 쿵.

 

춤은 그 정도로 끝이 났다. 그의 왼쪽 팔도 끝장이 났다.

 

두 사람이 함께 찾아간 의료-조립 센터는 축제 기간에는 응급실만 문을 열었다. 작은 기지 리큐다운 일이었다. 그는 너덜거리는 부러진 왼팔을 그냥 축 늘어지게 두고, 오른 팔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다른 사람들이 교체하라고 한소리 씩 했을 때 고쳐야 했다고 그는 생각했다. 아파서 신음이 났다. 그는 오른 손으로 성호를 그었다.

 

“아이구, 내 팔을, 놓지 않으려다가 그렇게 된 거요?”

“고의로 꺾은 건 아니었어요. 그렇게 쉽게 부러질 줄 몰랐다고요.”

 

그렇게 쉽게 부러질지 몰랐다는 말에 그는 한숨을 내뱉었다. ‘나이는 속일 수 없는 거야, 녹슬고, 늙고, 부러지는 거지. 이제 슬슬 시작이구나.’ 이 시대에도 산산 조각난 팔을 복원하려면 일단 베어서 분자단위로 재조립을 해야 한다. 보통 한 주일(그의 시간단위와 달리, 이 위성에서는 열흘) 넘게 걸리는 작업이었다. 응급실의 의료기술관은 햇병아리 티가 났다. 이리저리 접합 기계를 돌려 보더니,

 

“혹시 미리 복제해두신 팔은 없으신가요? 그게 훨씬 빠르겠는데요.” 하고 건성으로 물었다. 하지만 방문 선교사인 그에게 따로 팔이 있을 턱이 없었다. 손만 복제한다고 해도 지구 화(貨)로 천만 원이나 하는 판이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제 팔을 쓰세요.”라고 하지 않았더라면 그의 난감함은 더했을 것이다.

 

“저어, 필요하시다면 제 팔을 쓰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안 그래도 하나 남겨 놓았었거든요? 저에겐 이제 필요 없는 팔입니다. 잠시 쓰신다면 상관없어요.”


마르고 창백한 인상의 남자가 공손하게 말을 꺼냈다. 키도 그와 비슷해 보였다.

 

“이런 고마울 데가 있나! 이 보답을 어떻게 해야…….”

 

그는 한 손으로 덥석 마른 남자의 손을 잡았다. 낯선 곳에서 만나는 친절은 어디서나 감사한 일이었다. 그는 다시 한 번 마음속으로 감사 기도를 했다.

 

“고마워하실 일 없습니다. 단지, 대신해서 부러진 팔을 잠시 맡아두었으면 싶어요. 재수술이 준비될 까지 며칠이면 됩니다.”

“그렇게 하시죠. 나쁜 제안은 아닌 것 같은데요.”

 

라고 의료기술관이 참견했다.

 

“그럼 당신을 증인으로, 이 감사한 분의 팔을 빌리도록 하죠.”

 

준비 된 팔을 새로 다는 데는 두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비용은 아가씨가 댔다. 마른 남자의 이름은 리준명, 직업은 흔한 빙산 굴착기사라고 했다. 한 면이 빙산, 다른 면이 화산지대로 이루어진 이아페투스에서는 눈사태가 가장 큰 문제였다. 일은 굴착기가 대신하지만, 사고가 많아 팔을 따로 사둔 모양이었다.


2.

의료 센터를 나서는 그의 걸음은 가뿐 했다. 그녀도 그를 뒤쫓아 갔다.

 

“선교사였어요?”

“요새 같은 시대엔 별로 자랑은 아니지만, 그렇소. 보편교회의 신부지. 이런 곳이라도 한명쯤은 신부가 있어야 하니까요. 믿기지 않겠지만, 토성에서는 제가 유일한 신부에요. 신자들이야 서른 명이 채 되지 않지만 말예요.”

“그런 사람은 동화 홀로그램에만 나오는 줄 알았는데! 놀랍네요.”

 

그녀는 대뜸 합장을 하려고 고개를 숙이다가 살짝 엎어져 떠올랐다. 리큐 행성에는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나 그 후손들이 많았다. 합장을 하는 모습도 신사나 절에서 배웠을 것이라고 신부는 짐작 했다. 진의 직업은 과학자라고 했다.

 

거리는 내내 축제 판이었다. 사람들은 가볍게 유영하면서 찐득거리는 먹거리나 가벼운 폭죽을 던지고 쏘아 댔다. 저기 멀리 허공 위에서 대머리 남자가 이리 오라며 두 손을 흔들었다. 손에는 티타늄 염주알을 들었고, 안경은 머리보다 더욱 반짝 거렸다.

 

“어이! 친구! 어디서 오시는가?”

“자네가 누구지?”

“모두의 벗이지! 여기! 공덕 좀 쌓고 가라고!”

허공에 뜬 ‘부처의 남자’는 다가오며 등짐을 흔들고 주머니를 열어보였다.

 

“그냥 지나가요.”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요.”

 

그는 웃으며 오른팔로 안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는 달려가서 지불 버튼을 누르고 스님과 하이파이브를 쳤다. 손은 잘 맞지를 않았다. 시주 전용 홀로그램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구화 오천 원은 무사히 전송되었다.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 남을 믿는 건 바로 자신이 정직하기 때문이란 걸 명심해!”

“별말씀을. 평화가 당신과 함께.”

“같이 가요!”

 

뒤에서 진은 만두를 우물거리며 뒤를 따랐다. 그 사이에 벌써 노점에서 값을 치른 모양이었다. 그도 모히또 한잔을 사들고 통로를 걸어 나갔다. 새로 단 왼팔은 아직 어색했다. 마른 남자의 팔은 그의 오른팔과 달리 매끄러웠다. 손은 뼈마디가 컸지만 핏줄이 곤두섰고, 피부가 얇고 부드러웠다. 특히 윗 팔뚝이 근육이 없었다. 술을 시원하게 들이키자 닭살이 빳빳이 돋고 팔들이 곤두섰다. 그래도 젊은 팔이었다. 무리한 운동이 금지 되고 올렸다 내리기만 가능한 팔을 계속 쓸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3.

사고 이후 한주 반(14일)이 흘렀다. 가을 추분 축제로 시작되는 우주력은 5,9,10요일이 휴일이었지만, 그에게는 이번 4요일이 가을 달의 두 번째 일요일이었다. 그는 점심 경에 리큐 기지의 다섯과 미사를 치렀다. 홀로그램으로 스물여섯 명이 더 출석했지만 그들은 성체를 받아먹을 수 없는 인원이었다. 그는 홀로그램 편의주의의 시대에 혀를 찼다. 그는 기술을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신앙의 세계까지 침투해 오는 것에는 영 거부감이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는 ‘옛날 사람’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주어진 동작과 대답, 간단한 대화만 할 수 있는 “분신”들을 보내 놓는다는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홀로그램으로 돈이나 음식조차 주고받는 마당에 막을 도리는 없었다. 


막 예배당을 나서고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또 홀로그램이구나.’ 하고 선교사는 생각했다. 

 

“온 우주로 뻗어가는 이아페투스 (화면 전환) 스터츠스톰(sturzstrom, 빙산사태) 안전센터의 리준명 씨는 빨리 복귀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립니다. 스터츠스톰 안전센터의 리준명 씨는 빨리 복귀 바랍니다. 본 대원은 굴착기와 함께 복귀 바랍니다. 이상. (화면 전환) 하고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합니다. 이아페투스로 오세요! 음양의 조화, 이아페투스. 프런티어로 나아가자! 리큐 기지!”


'리준명?' 얼핏 이름이 눈에 설었다. 


진 이 어느새 뒤쫓아 와서 말을 걸었다. 그녀는 그 날 이래 공소에 나와 미사에 참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신부는 진이 출석하는 이유가 종교적 동기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안함이나 혹은 인간적인 호감이겠지.’ 그냥 그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가고 있었다.

 

“참 예쁜 경당이에요. 나중엔 좋은 성당이 될 것 같아요.”

“중요한 건 겉모습이 아니라 그 안에 있지요.”

“근데 아까 리준명 말예요, 그 팔 빌려주었던 사람 아니에요?”

 

그들은 급히 의료센터로 달려갔다.

 

4.

“리준명 씨는 분명히 그저께 날짜로 팔을 찾아갔구요. 그런데 지금은 실종 상태지요. 여하튼 이거 큰일이네. 하지만 저희 센터에서는 접합을 제외한 더 이상의 책임은 없습니다.”

 

기술관은 오늘도 딴청이었다. 그보다 진이 더 격분해서 소리를 질렀다.

 

“증인이란 사람이 이럴 수 있는 거예요?”

“계약이 공적 계약이라는 증인이란 사실과 접합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 외에는 없습니다.”

“그럼 당분간은 그가 돌아올 때 까지 이 마른 팔을 써야 한다는 거군요.”

 

신부는 팔을 흔들어 보였다. 기술관은 본격적인 수색에 나서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기지가 크지도 않을 뿐더러, 굴착기 위치추적장치도 있다는 것이었다.

 

“걱정할 게 하나도 없어요. 정 발견 되지 않는다고 해도, 저희 병원은 여러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늘 그렇듯이, 문제는 비용이죠.”

“사람이 사라졌는데 그런 말이 나옵니까?”

 

그조차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센터는 늘 이런 식이었다. 어디서나.


“이보세요, 바빠지는 건 우리 쪽이라구요. 첨단 원격 나노 진료를 받는다면 가격은 비쌀 수 밖에 없어요. 여기는 지구가 아닙니다.”

 

그는 진에게 먼저 귀가하라고 말을 했다. 일단 좀더 기다려볼 참이었다. 진이 귀가하고 30분 뒤, 뒤쪽 전광판에서 다시 기사가 나왔다.

 

"정오 코너. 리큐의 전통 춤을 배워 봅시다. 팔을 서로 곧게 뻗고 긴급 속보. 리준명씨 발견, 수색 중단. 사건 종결 되었습니다 그리고 돌려주세요! 자 그리고 다음 춤 동작으로 넘어갑니다."


“곧 돌아오겠네요.”

 

리준명 씨는 돌아왔다. 흰 천에 쌓인 상태로. 그리고 그의 굵은 왼쪽 팔은 자신의 목을 정확하게 조르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놀랍도록 평안했지만 근육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리고 신부는 자신의 팔이 리준명의 목을 조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5.

“리준명, 서른 네 살. 사인은 자살 추정, 이미 DOA(Dead on arrival, 도착 상황에서 죽어있음), 뇌파를 통한 질식을 목표로 한 것으로 추정 됨. 굴착 로봇의 자세와 정확히 일치함.”

 

한 시간만에 나온 이것이 리준명 씨의 최종 진단이었다. 수사 본부와 의료 센터의 합동 결론으로, 리씨가 4주일(40일) 전 우울증 치료를 받은 것이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다고 발표되었다. ‘저에겐 이제 필요 없는 팔입니다’란 말이 계속 사무쳤다.

 

“그렇게 되었어요. 리큐 기지의 자치법령에 따라, 시신은 1주일 내로 화장 될 겁니다.”

“그럼 전 제 팔을 돌려 받을 수 없는 겁니까?”

“문제의 팔은 범행의 도구입니다. 게다가 외국인 신분이시죠. 구금하지 않는 걸 다행으로 아셔야합니다. 도구는 조사 후 유사 범죄를 막기 위해 함께 소각될 것 입니다.”

“이의 제기 할 수 없는 겁니까? 센터가 증인 아닙니까?”

“다시 말씀 드립니다. 문제의 팔은 범행의 도구입니다.”

 

수사관의 홀로그램은 계속 같은 말만 뱉어냈다. 그는 집에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리큐 기지의 공식 보도에서 리준명의 죽음은 더 이상 알려지지 않았다. 단지 사람들은 인트라 텔렉스를 통해 “어떻게 되었느냐”, “더 이상 말 할 것이 없다.”라는 말만 반복하며 주고받았다. 리큐 기지가 생긴 이래 처음 생긴 사건이므로 그럴 만도 했다. 오로지 그 뿐이었다. 그렇게 가는 거지.

 

6.

다시 한주가 끝나는 10요일(겸 토요일)의 회합은 최악이었다. 

진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출석하지 않았다. 홀로그램을 통해 출석한 이들도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여러분들은 그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많은 이들이 말이 없었다.


“저도 많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아무도 말을 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 조차도, 대단히 조심스럽습니다. 그냥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서, 이렇게 자리를 모아보았습니다.”


표정이 굳은 사람들이 하나둘 말을 꺼냈다.


“유족들에게, 누가 되니까,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말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바르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그 생각에 파묻힐 필요는 없는 것 아닙니까.”

“유족들에게 누가 됩니다. 모두가 엄숙한 상황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 모두가 누구일까?’ 하고 신부는 자문했다.

 

“저는 죄인이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다. 반성하고 반성해야합니다. 이만들 돌아가세요.”

 

경당을 나와 신부는 터벅터벅 걸었다. 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몸이 자꾸 붕붕 떠오르려고 해서, 신부는 새삼 놀랐다. 120년을 살면서 온갖 일을 겪었지만, 이번 일만큼은 그도 많이 흔들리고 있었다. 저 멀리서 다시 땅딸막한 승려의 홀로그램이 말을 걸었다.

 

“어이! 친구! 어디서 오시는가?”


자동 응답인 모양이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고 지나쳐갔다.

 

“홀로그램이라고 무시하는 거야? 너무 그러지 말라구!”

“무시하는 건 아니오.”

 

‘저 승려는 무슨 쓸모가 있는 걸까? 그러는 나 자신은?’ 그는 비틀거리며 골목을 빠져나갔다. 언론 센터로 찾아가려는 것이었다. ‘인터뷰라도 하면 무엇이라도 나오겠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언론 센터는 리큐 기지의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7.

“미안하지만, 인터뷰는 받을 수 없습니다. 아시잖습니까. 여기는 리큐 기지를 홍보하기위한 곳이에요. 이런 ‘우중충한 사건이’ 밖으로 세어나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홀로그램 방송 기자 에인라이크는 고개를 저었다.

 

“삼천 명중 일개인의 사건일 뿐이죠. 더 중요한 문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짧게 써드릴 수는 있습니다만 사건을 더 키워봐야 좋을 게 있을까요? 소송 문제도 있구요.”

 

저명한 르포 기자라는 장금범 씨, 정확히는 그의 홀로그램에게도 거절당했다. 그의 방에는 수많은 타자 기사들이 그의 머릿속 생각을 그대로 글로 옮겨 적고 있었다. 텔렉스 인트라넷에서 출판 될 내용들이었다. 타타타타 하는 타자소리에 신경이 날카로워 질 것 같았다.

 

‘이아페투스 제7광산 개발 문제, 새로운 로봇 개발, 리큐 기지 자치 문제, 화성계의 대선, 목성계의 팽창적인 위성 확장, 하긴 그런 문제가 더 중요하다가 말할 수도 있겠지. 수천 명이 죽어나가는 사고도 있는데 한 사람이 무어가 중요하냐는 말. 하지만 이렇게 언급조차 하지 않는 건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어. 리큐로 오는 이민자가 줄어든다고? 정작 여기서는 사람이 죽어 나가고 있는 걸! 내가 일개 선교사여서 이런 대접을 받는 것 일까?’

 

“좋아요. 다음에 뵙겠소.”

 

그는 좁은 사닥다리를 손으로 잡고 중력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지하 문이 열리자 나온 사람은 땅딸막한 승려였다. 머리는 그대로 빛나고, 안경은 더욱 빛나던 그 사람.

 

“당신이군요. 실물을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연고가 없는 사람이 바로 연고가 되는 거지비. 난 당신을 처음 봤소만. 이로서 오늘의 연고가 생긴 거우다. 반갑수다. 혜오라고 부르시오.”


자동 번역기에서 중국어는 곧잘 북한 사투리로 번역이 되는 모양이었다. 통역기의 말투가 조금 다르다는 걸 알았는지 상대는 통역기를 돌렸다.

 

둘은 악수를 나누고 털썩 주저 앉았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 티벳 법황청이 몰락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래서 이리저리 오다가 리큐 기지같은 벽촌에서 걸승이나 하게 된 것이지. 

하지만 그 때 그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거든.”

“무슨 일이요?”

당신과 똑같은 일.


혜오의 얼굴에서 묘한 웃음이 솟았다.


나의 경우는 폭발 사고였지. 당신의 억센 팔이 그 청년의 목을 졸랐다면, 나는 단추 하나로 끝이었으니까. 내 엄지가 그렇게 쓰일 건 뭐람.”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기로 하셨습니까?”

“불가로 따지면 내 죄가 아닌 거지. 그걸 실행한 건 죽은 그 사람 자신이었으니까. 하지만 같은 사건이 계속 해서 벌어지고 있다니 이거 문제가 있군요. 당신 생각은 어때요.”

“난 나의 신에게 용서 받고 싶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무관심에 대해서. 그리고 말하지 못하는 거에 대해서. 그건 우리 의무인데 말이죠.”

“의무는 아니라 보지만, 그건 좋은 일이야. 당신 양심이 아직 썩지 않았다는 증거니까.”

“그러기를 바라야지요. 그런데 한 명이 더 그랬다니 정말 시끄럽겠군요. 전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다음에 다시 뵙는게 어때요?”


하고, 그는 혜오에게 인사를 했다.

 

8.

“우리가 말하지 않고 있지만 사실은 말해야하는 것에 대해서 기도합시다. 주님, 이웃을 버린 저희를 용서하소서. 거듭나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두 번째 주일에 경당은 다시 가득찼다. 처음 보는 사람이 많았고, 홀로그램은 더욱 많았다. 진도 출석해 있었다. 방송에는 나오지 않아도 막연한 불안감이 사람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상처가 널리 퍼지고 있었다.

 

모임이 끝나자 진이 찾아왔다. 그는 진에게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서른 네 살이면, 나보다 아흔살이 어린데, 아직 결혼도 하기도 이른 나이인데, 당신보다 다섯 살이 적은 나이인데. 멀리서 지구를 제대로 본 적 있소? 난 서른 살 때 처음 봤지. 정말 아름답더라고. 그리고 모든 별은 모든 별의 아름다움이 있지……. 여기서 보는 별만 해도 아름다운데, 눈과 땅을 치우는 사람이 그런 애정이 없었을까?”

“모르죠. 사람은 자기가 무언가 잃어야 소중한 걸 아니까. 우리만 안타까운 걸지도.”

“그런데 겨우 그렇게 가다니. 우울증으로 죽었다는 이야기, 믿을 수 있소? 선뜻 남에게 자기 팔을 건네는 사람이? 난 그가 좋은 곳으로 가길 바라요. 자살은 죄지만, 큰 죄지만, 주님이 그를 용서하기를 바랍니다.”

 

진은 그를 우울한 표정으로 쳐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방금 든 생각인데, 어쩌면 자살이 아닐지도 모르죠. 자살 바이러스라고 하죠? 뇌파가 기계를 움직이게 할 수 있다면, 기계 오작동이 거꾸로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건 아닐까요?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그게 아니더라도……. 막을 방법은 많았어요.”

 

“그래요.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소. 아니, 아무것도 시작 된 게 없소.”

 

마르고 창백한 몸보다 눈이 맑은 사람이었다. 그는 가래 끓는 목을 가다듬었다. 목에서 목청껏 소리가 흘러나왔다. “준명 씨! 이준명!”


9.

“그래서, 다시 만나자는 곳이 이런 장소였소?”


혜오는 짓궂게 물었다. 수사본부 지하 조사실이었다. 검은 화산암을 대충 파서 만든 곳이라 습기 차고 축축했다. 철창 밖의 혜오 옆에는 진이 앉아 있었다.

 

“자살사건 조사로 끌려오다니. 리큐 기지의 수준도 알만 하군요.”

“홀로그램 서른 명이라니, 돈도 많이 깨졌겠어요. 사방에서 이준명을 외치는 홀로그램 잡아가고 잡아가기도 힘들었다고 하잖소. 수사원들도 방해 전파를 쏘느라 골치깨나 썩었을 거야.”

“광장에서 사람 이름 외치고, 제대로 조사하라고 외치는 게 죄가 되는군요.”

“약간은 경솔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다고 그가 돌아오는 건 아니잖아요.”

“뭐가 경솔해요. 제가 신부님이었다고 해도 그렇게 했을 거에요.”

 

신부의 왼팔은 다시 덜렁거렸다. 범행(?) 도구인 그의 왼쪽 팔을 다시 자르고 작은 기계팔을 붙여놓은 그의 모습은 어린 아기 같아보였다. 머리는 크고, 팔과 손은 작은, 그런 모습. 심지어 오른팔도 자살 가능성이 있다며 마찬가지 처방을 받을 뻔 했지만, 그저 꽁꽁 묶는 것으로 일단락 되었다. 신부는 자신의 꼴이 웃겨서 웃음부터 터져나왔다. 보통 이럴 때는 마음이 아파야하는데.

 

“두고 보세요. 추방 되어도 다시 돌아올 겁니다.”

“그러지는 않을 것 같아요. 잠깐 겁을 준 것에 불과하지. 당신 덕분에 리큐 기지의 사건은 제대로 우주 뉴스를 탔거든. 밖에서 어떻게든 제재가 들어올 거에요. 대전쟁으로 라사가 박살나버린 우리였으면 어림도 없었을 거야. 교황청이 직접 나선다고 하더군. 곧 해결 될 겁니다. 잘못을 딱히 한 게 있어야지 말이지.”

 

혜오는 술술 잘도 말했다. 마치 미래라도 갔다 온듯이.

 

“여하튼 이런 모습으로 뵙게 되어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백 스무 살이면 아직 그럴 혈기가 있지. 사실 난 이백 살이 넘었거든……. 혹시 달마 대사의 제자들에 대해서 들어본 적 있소?”

“아니요.”

“달마가 토굴에서 도를 닦는데, 혜가라는 승려가 와서 도를 구했소. 달마가 그를 신뢰하지 않자, 혜가는 스스로의 결심을 증명하기 위해서 팔을 잘랐거든. 그러자 달마가 이렇게 말했지. ‘부처님은 법을 위해 온 몸을 던졌는데 너도 팔을 던졌구나.’ 그래서 혜가가 후에 달마의 직계 제자인 선종 2조가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도 온 몸을 바쳐서 인류를 구했죠. 제가 비할 바는 절대 아니지만.”

“뭐 곧 회복 될 겁니다. 그 이상한 쇠 팔만 떼어버리면 말이죠.”

 

혜오가 껄껄 거리며 웃었다.

 

 

 

10.

‘조사 결과 무혐의’라는 당연한 결과가 나온 것은 일주일 만이었다. 그의 구금은 화성과 목성에서까지 화제가 되어, 신부가 풀려나오는 리큐 기지 수사국은 언론 로봇의 촬영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그는 멀쩡한 듯이 한 팔을 흔들며 나왔다. 이런 그의 모습은 수억 개의 홀로그램으로 빛의 속도로 몇 시간 떨어진 지구까지 투사되리라. (단신보도겠지만 말이다.)

 

이 사건은 많은 이들에게 부당한 투옥에 대한 문제이며, 진상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맥락에서 해석되었다. 이를 두고 입방아를 찧는 것은 호사가들의 몫이다. 그는 혜오, 진과 함께 냉동 창고에서 꺼낸 준명의 한쪽 팔과 혜오가 건넨 엄지를 땅에 묻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했다. 진상조사에 필요한 것은 그의 팔이지, 준명의 팔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진상이 밝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죽은 자를 기억하는 것은, 같은 일이 더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둡니다.”


얼음과 화산암이 만나는 곳에서 진이 너스레를 떨었다.

 

“에이 신부님도 너무 진중하신 거 아녀요?”

“앞으로 당분간 토성계 전체를 대표할 사람인데, 신중해야하지 않겠어요.”

“몸 조심해야 해. 아직 더 깊이 들어가야 할지도 모르니까. 토성은 목성과 화성이 맞부딪치는 곳이야. 한번 시작하면 터져 나올 의혹이 한두 개겠어?”

“네, 함께 나가야죠. 저는 한 팔로, 혜오 스님은 네 손가락으로.”


그는 싱긋 웃으며 왼쪽 의수를 내밀었다. 혜오도 네 손가락으로 그 손을 잡았다. 신부는 손을 흔들었다. ‘그건 그렇고, 춤은 언제쯤 다시 출 수 있을까? 에이, 한 팔로도 못 출 것은 없지.’ 라고 생각하면서.


* 이 세계관에서는 토성계가 위성 이아페투스를 중심으로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이아페투스는 한 면의 하얀 얼음과 반대면의 검은 퇴적물이 두드러지게 대비되는 토성의 3번째로 큰 위성으로, 대기는 없으며 중력은 매우 적다. 또한 10일을 일주일로 하며 1년 중 36주와 나머지인 5일(윤년에는 6일)은 일주일에 들어가지 않는 휴일로 하는 우주력을 사용하고 있다. 리큐의 화폐 단위는 리큐 달러로 존재하지만, 지구 화폐가 더 많이 통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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