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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독자단편 심사단 박애진, 김이환입니다. A와 B는 무작위로 바뀝니다.

이번 달에는 작위적인 분위기의 글이 많았습니다. 작가가 억지로 끼워 맞춘 것 같은 이야기 전개는 독자에게 감흥을 주기 어렵습니다. 작가에겐 자신의 글 하나하나가 소중하지만, 독자들은 다른 많은 글에서 얻은 감성과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작위적인 글을 쓰지 않으려면 지나치게 많이 사용되는 방식은 피하고, 기존의 이야기 전개 방식을 답습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잘 모르는 소재는 꼼꼼히 조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번 달에는 Nikias님의 <기억이 남긴 흔적들>을 가작으로 선정하였습니다. 



정의의 용사와 세계의 적 - 청소마라

A 천사 그림을 찢어버린 주인공은 역시 그림을 그리던 소년을 만납니다. 둘은 사실 한 다리 건너 아는 사이였습니다. 우연히 만난 사람이 아는 사람이었다는 내용은 많은 소설에서 사용하는 설정이지만 이 글에서는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먼저 듭니다. 이야기를 주제에 끼워 맞췄다는 느낌이 먼저 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단순한 이야기인데도 작위적인 분위기가 많고, 군데군데 정확하지 못한 문장들이 아쉽습니다. 하지만 소설의 결말부에서 자신의 작은 행동이 위로가 될까 회의하면서도 소년에게 말을 건네는 주인공의 모습이 주는 따뜻한 감성은 좋았습니다.

B 어릴 때 꿈을 이루지 못하고 평범한 삶을 택한 사람이, 이제 갓 꿈을 꾸기 시작한 아이를 만나 격려합니다. 따뜻하면서 한편으로 서글프기도 한 글감은 잘 잡았습니다. 다만 기본기가 부족해 장면이 제대로 서술되지 않아 다음 장면을 읽어서야 앞 장면을 이해합니다. 이를테면 그림을 그린 종이를 학교에서 버렸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는 것 등이 그러합니다. 언제 어디서 그렸고, 어디다 버렸는지 글을 쓴 이의 머릿속에만 있었고 제대로 서술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읽는 이 입장에서는 선생님의 등장이 갑작스럽습니다. 다른 말로 납득할 만한 복선이 없습니다.
또한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그만 두고, 직장에 취직하고, 그림 그리는 아이를 찾기까지 모든 일이 너무 쉽게 진행됩니다. 
예술가의 길은 쉽지 않습니다. 내가 구상하거나 추구했던 글/그림/음악이 다른 이가 이미 완성해 놓은 것이라는 걸 알게 되는 경험은, 창작을 꿈꾸는 많은 사람이 한 번쯤 겪는 일입니다. 부모님이나 가족의 반대도 마찬가지고요. 그 정도에서 멈췄다면 그렇게 간절한 꿈이었던 걸로 보이지 않습니다.
현대 사회는 안정적인 직장인이 되기 쉽지 않습니다. 직장인이 되는 게 그림을 계속 그려 화가/일러스트레이터/만화가 등등이 되는 것보다 과연 더 쉽고 안정적인 삶일까요? 직장 모습이 너무 막연해 직장 생활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 썼다는 걸 알게 합니다. 
어릴 때 버린 그림/꿈을 보고 자기 꿈을 꾸는 아이의 모습은, 화자가 한 번쯤 듣고 싶었던 말을 해주는 화자의 자화상으로 보일 뿐,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을 주기에 부족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쓰는 건 쉽지 않습니다. 좀 더 기본기를 다지고, 하고 싶은 이야기에 더 몰두하고, 막연한 상상 이상으로 현실의 모습이 어떠한지 고민하고, 자료를 찾고, 해당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직장인의 모습을 물어보는 열정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이 글과 주제는 조금 다르지만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읽어보시기 권합니다. 아이의 모습,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 그리고 훗날 어른이 된 모습이 되어 어린 시절 자기 모습과 겹치는 아이를 보는 시선을 그린 작품입니다.



항로 - 미드

A 배 위에 모인 세 사람이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 벌이는 무시무시한 갈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배나 항해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없습니다. 전체적으로 묘사가 두루뭉수리하기 때문에 배에 대해 조사를 치밀하게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야기를 전개한 느낌을 먼저 받습니다.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행동이나 감정 역시 잘 와 닿지 않고, 결말도 충격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몽환적이면서도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는 예측 불가능한 이야기는 인상적이었습니다.

B 아무 맥락 없이 몽환적인 분위기만으로 밀고 가는 글이라 읽기 곤혹스러웠습니다. 시대 배경이 불분명한데 오뎅탕을 시켰느니 하는 부분들을 보면 현대물처럼 보입니다. 배에 있는 세 인물이 다 자기만 살아남았다는 데에 대해 관조하는 태도를 취해 인물들 간에 변별이 없이 셋이 한 사람처럼 읽힙니다. 사람이 몇이나 죽고, 음식이 떨어져 가는데도 긴장도 위기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마지막 “아니, 열네 명 정도.”도 뜬금없고, 배에서 일어났던 일에 최소한의 현실성도 부여하지 못해 갑자기 현실에 돌아왔을 때 충격과 낯섦도 없습니다.
“파리대왕”은 섬으로 표류하게 된 아이들이 그 속에서 문명의 모습을 잃고 변해가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그러다 마지막 현실에 한 번에 다가오죠. 원작은 소설이고, 영화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한 번 보시길 권합니다.



외계인 슈트 - 알렢

A 지구를 침공한 외계인을 물리치는 코믹한 글입니다. 캐릭터도 재미있고 주고받는 대사도 재치 있습니다. 외계인 옷을 입은 주인공이 계속 해서 마주치는 민망한 상황도 즐겁습니다. 글이 쉽게 읽히는 장점도 있습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이야기의 흐름이 단단하게 짜인 구조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소 즉흥적인 것 같습니다. 때문에 결말의 반전에서 감흥이 크지 않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지금은 구조가 지나치게 단순합니다. 결말을 암시하는 복선이 더 잘 깔려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B 외계인이 침략했습니다. 주인공은 강압에 의해 외계인을 공략하기 위해 입으면 외계인처럼 보이는 슈트를 입고 우주선에 들어갑니다. 우주선은 파괴했지만 슈트가 너무 잘 작동한 바람에 주인공만이 아니라 슈트를 입었던 사람은 모두 지구인도 외계인도 아닌 새로운 종이 되어 지구를 정복합니다.
소재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이야기를 살리지 못했습니다. 왜 모스크바여야 했을까요. 우리말로 된 소설을 읽는 대다수의 독자들에게 낯선 곳입니다. 그렇다면 낯선 곳을 설정했어야 할 이유, 그 공간에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보여줬어야 합니다.
주인공은 옷을 입기 싫어하고, 박사는 입히려 합니다. 말장난 같은 두 사람의 공방은 지구에 위기가 처한 상황에서 적절하지도, 재치도 없었습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보면, 지구가 사라질 위기를 피해 달아날 때 챙겨야 할 필수 물건으로 수건과 맥주가 등장합니다. 어처구니없는 장난 같은데도 설득력이 있던 건, 외계인이 지구에 하는 행위가, 실제 지구에서 벌어지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야기에 최소한의 현실감을 부여해주시기 바랍니다.



왼쪽 눈썹이 흔들리는 여자. - 이니 군

A 글은 갑작스레 찾아온 사랑을 다룹니다. 퇴역한 군인이 젊은 동양인 여성을 보고 사랑에 빠집니다. 흔들리는 왼쪽 눈썹을 보고 반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런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사랑의 본질인 것 같습니다. 주인공 스스로도 설명 못할 감정이 글을 꽉 채우고 있습니다. 노병은 겉으로는 강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온갖 복잡한 감정을 품고 괴로워합니다. 불안하기 때문에 매력적인 주인공이 끌고 가는 이 이야기는 시작부터 끝까지 흥미롭습니다. 다 읽고 나서 돌이켜 보면, 이야기 자체는 평범한 짝사랑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흔한 로맨스도 캐릭터가 색다르고 풀어내는 방식이 색다르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곤 합니다. 재미있는 글이었습니다.

B 가족 안에서 가장으로 존중받거나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했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스스로를 참 군인이라 믿고 살아온, 상남자/마초라 할 수 있는 나이 든 백인 남자가 있습니다. 서양인들은 동양인들을 실제 나이보다 어리게 보고, ‘기가 센’ 서양 여자보다 온순하고 남자 말을 잘 따른다 믿고, 신비롭게 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런 속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진행됩니다. 손자까지 있는 나이 많은 남자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제대로 말하지 않는 20대 동양 여인에게 사랑에 빠집니다. 나이차가 과하게 나는 지라 여자만이 아닌 다른 누구에게도 자기감정을 제대로 말하지도 못하고, 홀로 플라토닉한 사랑을 하다 여자가 사실은 창녀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세상에 마음을 다 할 순수란 없고, 그것이 마지막에 에릭이 눈물을 흘린 이유인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든 혼자 착각해 혼자 키운 마음에 혼자 열을 올리다 혼자 상처받았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쓸 때 이미 많이 사용된 클리셰는 아닌지, 지나치게 한 쪽에 치우쳐 일방적인 감정을 토로하는 건 아닌지 고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괄호 안에 쓴 영어도 현장감을 살린다기보다는 몰입을 방해했습니다.




지구를 먹어요! - 바닐라된장

A 재미있는 제목과 재미있는 소재의 글입니다. 지구를 왜 먹는다는 건지 궁금하게 하는 제목에 맞는 황당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괴상한 요리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은, 재치 있는 상상이 돋보이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글은 갑자기 다른 쪽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실연당한 남자가 감정을 곱씹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가 이를 유머로 바꾸고 있습니다. 이 둘은 전혀 다른 이야기인데 글에서 충돌하고 있어서 독자를 고민하게 합니다. 실연한 남자가 차라리 세상이 망하기를 상상하는 이야기 같기도 합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글이지만 그만큼 독특한 글이었습니다.

B 식도락은 어느덧 유행이 아닌 일상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먹고, 저렇게 먹고, 레스토랑에서나 볼만한 요리를 집에서 쉽게 하는 방법을 인터넷에서 찾고, 사진을 찍어 올리고……. 이런 현재의 모습에 지구를 먹는다는 착상을 덧붙였습니다. 재미있고 흥미로웠는데, 다른 이야기도 음식 이야기와 섞으며 식상해졌습니다. 지구와 달 이야기까지만 하거나, 지구를 먹는 더 다양한 방법이 나왔다면 어땠을까 합니다.



태초의 책 - 윰밍

A 황제의 폭정 때문에 사람들은 괴로워합니다. 황제에게 맞서던 주인공은 임무를 받고 길을 떠납니다. 책을 태우는 황제의 모습은 실제로 있었던 역사상의 사건 혹은 우리의 현실을 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태초의 책과 등장하면 신화적인 이야기로 옮겨갑니다. 녹빙화, 연잎, 수호수, 새를 타고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주인공 등의 이미지는 아름답습니다. 묵직한 주제에 잘 어울리는 이미지입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어떤 일이 일어날지 쉽게 예측이 될 만큼 단순하고 때로는 작위적인 느낌을 줘서 아쉽습니다. 특히 결말로 갈수록 환상적이긴 하지만 그만큼 작위적인 느낌이 듭니다.

B 민담/동화/설화처럼 흘러가는 이야기입니다. 무난하게 흘러가는 듯 한데 조금씩 아쉽습니다. 동화든 판타지든 만들어진 세계라도 그 세계 안에서는 일정한 질서와 규칙이 있어야 하는데, 그 때 그 때 편의대로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황제가 ‘태초의 책’을 가져오라 명하고, 아란이 그럼 무엇을 해줄지 물었을 때 황제의 대답이 석연치 않습니다. 태휘에게 안내해달라고 하는 부분도 뜬금없습니다. 태휘가 태초의 책이 있는 곳을 알 리 없으니까요. 무쇠신을 얻고자 머리카락을 줬는데, 머리카락으로 신발을 만들며 돌려주는 것도 잘 이해가 안갑니다. 다음 관문에서 준 녹빙화는 그냥 받고요. 세 번째 관문은 말로 넘어갑니다. 처음에는 머리카락을 주고, 다음에는 녹빙화를, 그 다음에는 또 무언가 귀중한 것을 희생하며 앞으로 나아갔다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태양을 향해 갈 때는 신화처럼 붕이 된 태휘를 타고 날아가, 대기가 없는데도 숨을 쉬지 못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더니, 돌아올 때는 대기가 문제가 됩니다. 갈 때 문제가 없었다면 올 때도 문제가 없어야 하고, 올 때 문제가 된다면, 갈 때도 장애가 되었어야 합니다.
이런 부분과 문장을 조금 다듬는다면 좋은 글이 될 것 같습니다.



소년, 소녀를 만나다 - 지음

A 독특한 문장이 독특한 이미지를 끌어냅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짧은 문장들은 마치 머릿속 이미지를 그대로 받아 쓴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산만한 구조는 아니고, 내리는 비와 흐르는 땀, 어둠과 그림자, 번개와 전등의 불빛 같은 구조가 계속됩니다. 제목을 봐서는 소녀가 소년을 만나는 사랑 이야기 같지만 그렇지 않고, 소녀 안에 존재했던 또 다른 존재를 만나는 이미지를 글로 형상화한 것 같습니다. 후반부로 가면 이야기가 새롭게 진행되지 않고 반복만 지나치게 많아지는 느낌이 드는 점이 아쉽습니다.

B 강렬한 심상은 있지만 문장력이나 이야기 구조가 뒷받침해주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어떠한 존재인지,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좀 더 보여줘야 소녀의 공포와 갈망에 이입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문장이나 문단이 반복되는 것으로는, 소녀가 매일 밤 같은 꿈을 꾸고, 갈망하고, 고통스러워한다는 걸 표현하는데 부족합니다. 문장은 짧고 간결하게 쓰더라도 같은 단어의 사용을 줄이고 다양한 단어를 쓰면 문장이 훨씬 풍성해져 독자에게 더 많은 것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뜻을 가진 다른 단어는 없는지 사전을 찾아보는 것도 방법 중 하나입니다.



마법단추 - 이름없는신입

A 우연히 단추를 얻은 소녀는 단추가 가진 신비한 힘에 매료되었다가 곧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됩니다. 욕망에 대한 교훈은 소녀가 괴물을 만나면서 다른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중간 중간 아쉬운 문장도 있지만 동화적이면서도 어두운 분위기를 구성하는 문장들이 아름다웠습니다. 여러 편의 동화를 하나로 합친 것 같은 같은 이야기입니다. 괴물을 만나면서 이어지는 일들은 또 다른 이야기로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여러 이야기가 접목된 방식을 선택했으니 그에 어울리는 독특한 주제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지금은 이미 결말이 난 이야기가 다시 시작을 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래도 동화 같은 이야기, 어두운 분위기, 독특한 진행과 결말이 기묘한 느낌을 주는 재미있는 글이었습니다.

B 평을 쓰기 쉽지 않은 글이었습니다. 크게 이상한 구석은 없지만, 달리 감동을 받을 만한 지점도 없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다는 건 뭘까요? 예쁜 외모와 화려한 옷을 바라면 자신을 잃은 걸까요? 텅 비었다는 건 어떤 뜻일까요? 단추를 바꾸기 이전에 딱히 착했다는 서술도 없었고, 예뻐진 이후에 달리 못된 짓을 한 것도 없습니다. 소녀가 엉망이 된 몰골이 될 정도로 가혹한 벌을 받아야 했던 이유도 모르겠고, 그래서 괴물을 구한 뒤 그게 자기 자신이며 잃은 게 없었다는 말도 무슨 뜻인지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동화의 형식을 빌린다고 해도 최소한의 개연성은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기억이 남긴 흔적들 - Nikias

A 주인공은 아버지의 부탁을 받고 할아버지의 기록을 찾습니다. 할아버지의 과거를 찾아가는 동안 주인공은 다른 많은 어두운 사실과 마주합니다. 한국의 근현대사에서는 많은 비극적인 일이 있었지만 이 기억들은 젊은 세대와 단절되어 있습니다. 글은 이와 같은 무거운 소재를 다루고 있습니다. 무거운 감정이 글을 지배하는 글은 분위기가 고루해질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이 글도 묵직한 주제를 말하는 만큼 읽는 동안 다소 지루하기도 했습니다. 독자에게 흥미롭지만 가볍지 않게 이야기를 풀어놓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주제를 끈기 있게 끝까지 파고들어간 시도, 결말에서 주인공이 보여주는 희망적인 모습은 좋았습니다.

B 한국전쟁은 우리나라에 지울 수 없는 주름을 만들었습니다. 해외여행을 가 외국인을 만나면 피차 가장 흔하게 하는 질문이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입니다. 한국인이라고 말하면 많은 외국인이 북한사람인지 남한사람인지 묻고, 이 질문은 많은 우리나라 배낭여행자를 당황하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나라인데 잠시 갈라져있다고 여기지, 다른 나라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빨갱이’, ‘종북’은 종종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공격할 때 쓰이고, 할아버지나 증조할아버지에 대해 쉬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인민군이었던 주인공처럼 말입니다.
북한 사람은 모두 ‘돼지’로 그렸던 반공 애니메이션들을 지나 ‘쉬리’가 개봉한 게 1998년이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가 창작된 게 1947년이지만, 한국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그리기 어려운 주제입니다. 무관심하고 지난 일로 흘려보내고픈 사람과 기억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과 기억을 드러낼 수 없는 사람, 당시의 증언까지 생생하게 잘 그렸습니다. 아쉬운 점은, 많은 이들이 당장 주인공의 상황에 이입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현재 대다수의 젊은 세대에게 한국전쟁은 교과서에 나오는 사건 중 하나이고 생생하게 자기의 부모/조부모 세대가 겪은 일로 여기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현재 젊은 세대에게 당면한 일들에 견주어 너무 멀게 느껴지는 점도 그렸다면 좀 더 생생하게 읽힐 수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가작에 선정되신 Nikias 축하드립니다.


거울 독자 우수단편에 선정되신 분들에게는 거울 책을 한권 보내드립니다. Nikias님은 pena12 @ gmail.com 으로 우편물을 수령할 주소, 성함, 전화번호(택배발송시필요)를 보내주세요.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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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없는신입 14.09.01 04:53 댓글
    심사위원님들 시간이 되신다면 답변 부탁드립니다.

    괴물은 소녀의 자아를 상징합니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다는 건 '원하지 않는 것을 원함'으로써 진정한 자신을 외면한다는 것을 뜻하고, 
    자아란 선과 악의 경계가 없이 존재하는 것이기에 주인공을 착하게 설정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제가 쓰고자 했던 건 욕망으로 무너지는 자아, 그걸 스스로 구하는 자아회복의 이야기입니다.

    마법단추는 과도한 욕망, 욕망을 이루게 해주는 힘.
    흑단추 = 소녀의 심장, 의지. 깨닫지 못하는 용기.
    괴물 = 소녀의 진정한 자아
    숲 = 소녀의 마음
    호수 = 소녀 마음의 거울, 심리적 시각.
    괴물의 정원 = 소녀의 순수한 영혼의 깊은 내면. 진정한 안식처.
    화형대에 등장하는 환상여인 = 소녀의 마음속에 남은 마지막 욕망.
    환상여인이 괴물에게 쏘는 화살 = 욕망이 자아를 공격
    괴물을 구하는 소녀 = 나를 구하는 나. 자존감의 회복.


    본문 中에
    <심장 쪽에서 뭔가 잡혔다. 소녀는 망토 안주머니에 달린 흑단추를 발견했다.>
    “아…… 이게 여기 있었구나.”>

    심장 쪽에서 뭔가 잡혔다는 표현은 흑단추를 심장, 용기, 의지를 상징하려고 한 것이고..
    소녀가 여기 있었구나.. 라고 말하는 건.
    우리 스스로가 나의 심장, 용기, 의지를 평소에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텅 비었다는 건... 마법단추(욕망)와 흑단추(심장)를 맞바꿨으니 텅 비었다는 뜻이구요.

    소녀의 몰골은 벌을 받아서 그런 게 아니라
    소녀가 마법단추를 사용한 만큼 나타나는 결과인데
    이건 외모지상주의 한국사회에서의 성형중독과 성형 부작용을 의미하는 동시에 
    끝없는 욕망으로 인한 페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노파는 인생의 멘토, 심리치료사의 역할이고.. 노파가 마법단추를 찌르는 건
    욕망의 해체, 직시를 의미합니다.

    하늘에서 흑단추(심장,의지,용기)가 많이 쏟아지는 건, 
    지금까지 누렸던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데는 
    강인한 심장과 의지, 용기가 많이 필요하다는 뜻이고요..

    소녀가 도망간 숲은 자신의 마음속이고..이건 심리적 도피를 뜻하기도 합니다.
    숲 속의 정원은 소녀의 진정한 자아를 공간, 시각적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소녀가 삭막한 숲의 큰 호수(내면의 거울)를 오랫동안 바라보는 장면은 
    자기 자신의 내면을 오랫동안 바라본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 뒤에 내면의 거울에 괴물(자아)이 등장하는데.. 
    소녀가 자아를 인지하기 시작했다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소녀가 흑단추 망토를 입고 마을로 내려오는 것은 소녀가
    자신의 숲(내면)에서 머물지 않고 흑단추라는 용기, 심장, 의지를 가지고 
    외부(마을)로 뻗어나오는 것을 뜻합니다.

    사냥꾼은 사회적 타인, 내면의 잡음, 
    환상의 여인은 소녀가 가진 마지막 미련, 욕망을 뜻합니다.
    환상의 여인이 소녀에게 화살을 쏘지 않고 괴물에게 쏘는 것은 
    욕망이 인간을 파괴하는 방법이 진정한 자아를 헤치는 것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고요..

    그래서 소녀가 괴물을 구한 것은 결국 자기 자아를 구한 것이고, 
    자아는 항상 내 안의 어딘가에 있기 때문에 
    노파는 소녀에게 아무 것도 잃어버린 게 없다, 보지 못했을 뿐이다.. 라고 말하는 겁니다. 
    흑단추 망토(단련된 용기와 심장), 구해낸 괴물(자아)은 결국 내 안에 존재하는 것들이니까요.

    소녀는 정원에서 흑단추를 다듬게 되고 (심장, 용기, 의지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마음훈련)
    처음엔 숨어있던 자아(괴물)가 소녀를 돕지만,
    소녀는 그로인해 사회적 공격(사냥꾼)과 마지막 욕망(환상의여인)을 물리치고 
    자아(괴물)를 지키며 한 사람으로서 완벽한 성장을 하게 됩니다.

    소녀가 거울을 볼 때, 괴물이 소녀로 변하는 장면은 실제로 괴물이 소녀의 모습으로 변하는 걸 수도 있지만, 
    소녀의 높아진 자존감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저는 성장과 자존감의 회복, 인간의 심리를 판타지적 요소로 풀고 싶었습니다.

    제가 사용한 상징들이 묘사나 설명이 부족해서 충분히 드러나지 않은 것인지,
    그 상징들을 포함하고도 작품에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말씀이신지 궁금합니다.
    심사평에 상징에 대한 언급이 하나도 없으셔서 이렇게 질문을 올립니다.

    정확한 평을 들어야 저도 발전을 할 수 있어서...
    저에겐 매우 중요한 문제라 꼭 답변 부탁드립니다.
    부족한 작품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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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없는신입 14.09.01 09:35 댓글
    간밤에 득도하였습니다.
    홀로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의 의문은 
    심사위원님들의 답변이 딱히 필요없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상징을 잘 드러내지 못했다면 그것도 제 실력부족이고,
    상징이 잘 드러났다 해도 스토리 개연성에 문제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찬찬히 검토해보겠습니다. 평가 감사합니다. 

    긴 글 읽어주신 분들께 치느님이라도 대접해드리고 싶지만 마음만 드립니다. ㅎㅎㅎ
    추석 잘 보내세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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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니 군 14.09.01 11:27 댓글

    귀한 평 감사드립니다. 더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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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닐라된장 14.09.01 16:15 댓글

    아직 많이 부족하네요. 평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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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ikias 14.09.01 19:51 댓글

    지적해 주신 부분들을 계속 고민하다가 결국 해결하지 못한 상태로 글을 냈는데, 역력히 드러났던 것 같습니다. 좋은 감평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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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3 2014.04.30
가작 텅 빈 지하철에서 (본문 삭제) 2014.04.30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7 2014.03.31
우수작 너는 눈을 감는다 2014.03.31
가작 나랑 바꿀래 2014.03.31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3 2014.03.01
가작 옥과 해골 2014.03.01
가작 모든 것이 폭로되었다 2014.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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