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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 고양이의 보은

2014.02.01 10:4902.01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작은 아파트였다. 내 나이와 얼추 비슷한 나이를 먹은 이 아파트는 오래된 만큼 낡았다. 하지만 낡은 아파트치곤 썩 좋아 보여서 그런지 입주민은 항상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기대를 안고 입주한 주민들은 금세 이 아파트의 거대한 문제를 알아채고 인상을 찌푸렸다.

돈이 조금 부족했던지 설계에 문제가 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아파트의 사람들은 서로의 사생활에 원치 않게 간섭했다. 아파트의 벽은 지나치게 부실했다.

옆집에서 자꾸 우리 흉보는 거 같지 않아요?” 하는 말을 흘리면, “거 미안하게 됐수다.” 하는 소리가 옆집에서 들릴 정도였다.

특히나 이런 문제는 5층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원래 4층으로 완공될 예정이었던 이 아파트는 건설 도중 높이를 늘려갔고, 금세 4층 위에는 작은 방이 하나 생겼다. 그 작은 방을 어떻게든 사람을 살게 하겠다고 문을 만들더니 그 작은 다락방 5층에도 금세 입주자가 들어찼다.

설계 단계부터가 부실했던지 5층의 방음 상태는 특히 심각했는데, 방음은커녕 오히려 소리가 아파트 벽을 타고 전 세대에 울려댔다. 여기에 그 어떤 입주민도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하나 더 있다면 5층에 전입한 부부였고,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문제였다.

윗집에서는 항상 남자가 여자를 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덩달아 들리는 울부짖음은 환상의 하모니를 이루었다. 방음과 전혀 관련 없던 낡은 아파트는 부부의 싸움을 수개월간 가감 없이 중계했다. 1층부터 4층까지 윗집을 나무라지 않는 집이 없었다. 그러나 싸움은 멈추질 않았고, 또 벽은 너무 얇았으며, 천장은 항상 울려댔다.

아파트가 조용해진 것은 이듬해 봄이었다. 1층 이 씨가 윗집 남편을 신고했다. 처음 신고는 소음공해였으나 곧 경찰은 남편을 폭행죄로 연행했다. 이윽고 그는 구속되었고, 아파트는 건설 이후로 가장 조용한 시기를 맞았다. 우리 집을 제외하면.

4층 구석에 마련된 우리 집 위에는 예의 부부가 살던 집이 있었다. 전과 같이 윽박지르는 소리는 나지 않는다. 지금은 아내 혼자 살고 있기에 조용할 때는 정말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밤만 되면 울리는 소리는 나를 괴롭히기에 충분했다.

천장은 아주 작게 진동했다. 결코, 큰 소리는 아니다. 하지만 천장 이곳저곳에서 나는 불규칙한 소리는 내 본능적인 부분을 건드렸다. 나의 이성적인 부분이 이 소리를 무시하고자 했으나, 그렇게 할수록 소리는 내 머릿속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심장이 답답하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매일 밤만 되면 다음 날 아침까지 울려대는 통에 난 항상 수면부족에 시달렸다.

밤새 부부싸움으로 건물이 울릴 때조차 이렇진 않았다. 나는 이 작은 소리가 신경 쓰여 한숨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심지어 이젠 환청마저 들려댔는데, 집 밖에서도 소리는 종일 내 귓바퀴를 맴돌았다. 집 안에서도, 집 밖에서도 내가 잘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일주일이 지났을 때 나는 내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내겐 너무 길었고, 소리는 내 온몸을 두드리는 것만 같았다. 소리를 어떻게든 해결해야만 했다. 나는 참을 만큼 참았다. 윗집에 항의를 하는 게 무례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때 나를 움직인 것은 천장이 아니라 현관에서 들린 작은 소리였다. 불면증과 두통 사이에서 들린 작은 소리는 나를 일으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이질적이고, 또렷했다. 둔탁하게 울리는 소리였다. 마치 작은 망치로 현관을 내려치는 것만 같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현관에 나가 보았다. 현관 렌즈를 확인하여 보니 렌즈에 비치는 것은 텅 빈 복도뿐이었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현관을 두드리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고민하던 내가 현관문을 열자, 현관문에 붙어있던 고양이가 눈에 띄었다. 며칠간 먹을 것을 먹지 못했는지 삐쩍 마른 고양이었다. 나는 고양이를 쫓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고양이는 무슨 생각인지 현관문에 찰싹 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

나는 고양이를 그대로 둔 채 문을 닫았다. 그러나 고양이는 언제 들어왔는지 내 뒤에서 야옹 하는 울음소리를 내었다. 나는 어떻게든 고양이를 내쫓으려 하였으나 고양이는 잽싸게 내 손을 피해 도망쳤다. 어느새 고양이는 제집인 것 마냥 내 침대 아래로 몸을 묻었다. 내쫓을 정신이 없었다. 우선 억지로라도 피곤한 몸을 눕히기로 했다.

 

기절하듯이 잠든 내가 일어난 건 다음 날 정오가 지나서였다.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밤새 윗집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은 것이다. 일주일만의 숙면이었다.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느낌이었다. 집을 나섰을 땐 걸음걸이부터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몸이 가볍고, 정신은 또렷했다. 그간의 스트레스는 한숨 잠에 모두 소진되었고, 그 자리를 가득 채운 건 일종의 포만감에 가까웠다.

윗집은 다음날도, 그 다음 날도 조용하기만 했다. 소음은 그날 이후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신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집에 눌러앉았다.

고양이를 길러본 적은 없었으나 잠시 돌보는 것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원치 않던 애완동물이지만, 쫓아낼 생각은 없었다. 왠지 고양이가 소음을 없애준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고양이가 사라지면 다시 잠을 설치게 될 것만 같았다.

근처 애완용품점에 수시로 들러 양육법을 물었다. 가게 주인의 추천에 사료도 구입했다. 처음 침대 아래서 나올 생각을 않던 고양이도 금세 건강해져 온 집안을 날래게 뛰어다녔다. 며칠이 지났을 때, 고양이는 처음 비쩍 말랐던 모습이 거짓인 것 마냥 여기저기 살이 붙어 꽤 통통해졌다. 하루가 갈수록 건강해지는 모습을 보니 왜 사람들이 애완동물을 기르는지 조금을 알 것도 같았다.

물론 시행착오가 없던 것은 아니다. 고양이는 꽤 활발하게 움직였는데, 때로는 도가 지나칠 정도로 활발했다. 어느 날 커튼 뒤에서 바퀴벌레가 한 마리 튀어나왔다. 고양이는 잽싸게 커튼에 매달렸고, 바퀴벌레는 집안 곳곳을 누비며 도망쳤다. 곧 고양이는 사방을 고양이 흔적으로 뒤덮었다. 발톱 자국은 벽지를 온통 헤집었고, 유리란 유리는 모두 깨져 나뒹굴었다. 커튼과 옷들은 둘 또는 셋으로 나뉘었다. 그리고 내 인내심도 둘로 나뉘었다.

살면서 화를 낸 적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았지만, 동물에게 화를 낸 적은 처음이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나를 본 고양이는 잠깐 움찔하더니 사뿐사뿐 걸어와 내 앞에 섰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무언가를 내려놓더니 침대 아래로 재빠르게 도망쳤다. 겨우 이걸 잡기 위해 집을 헤집다니. 몸을 축 늘어뜨린 바퀴벌레는 이미 죽은 듯 움직일 줄을 몰랐다.

어이가 없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오히려 화가 가라앉았다. 내가 화를 어느 정도 삭혔을 때, 고양이가 침대 밖으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내 화가 풀린 것을 확인한 고양이는 사뿐히 다가와 야옹 하고 울었다. 마치 칭찬해달라는 듯 애교를 부려댔다.

고양이는 뭐가 잘못인지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당연히 모를 것이다. 이건 고양이의 잘못이 아니라 내 잘못이었다. 잘 먹이고 재울 생각만 해선 안 되었다. 고양이를 가르치고 타이르는 것도 내 몫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동물에게 화를 내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나는 많은 시간을 고양이를 위해 투자했다. 사 층짜리 캣타워를 설치하고, 이불을 깔아 잠자리를 만들었다. 집 한편에는 배변을 위한 모래도 깔아놓았다. 고양이가 물고 깨물만한 장난감을 구입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고양이와 놀아주었다. 고양이는 캣타워를 오르내리다가도 내가 장난감을 흔들면 곧바로 장난감에 달려들었다.

고양이를 위한 교육도 순조로웠다. 고양이는 무언가를 찢고 부숴댔고 또 그만큼 혼이 났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크게 고양이를 혼냈는데, 고양이도 조금씩 집안 물건을 건들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아 갔다. 꽤 오랜 시일이 지나자 고양이는 그릇처럼 깨지기 쉬운 물건 옆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고양이를 혼내는 한편, 칭찬의 방법으로 고양이용 캔을 구입했다. 매일 조금씩 고양이를 교육했고 내 말을 잘 들으면, 그때마다 고양이에게 고양이용 캔을 특식으로 제공했다. 고양이는 먹을 것을 주면 곧잘 사양하지 않고 먹었다. 가뜩이나 통통했던 고양이는 이제 꽤 살이 붙어 동글동글해졌는데, 그게 또 작은 풍선 같아 자못 귀여웠다.

훈련은 확실히 성과가 있었다. 다시 바퀴벌레가 나타났을 때 고양이는 바퀴벌레를 쫓다가도, 바퀴벌레가 찬장에라도 올라가면 바로 움직임을 멈췄다. 결국, 사방을 날래게 뛰어다니면서도 고양이는 집안 그 어떤 것도 건드리지 않고 바퀴벌레를 잡아내는 데 성공했다. 고양이는 바퀴벌레를 물어다 나에게 가져왔고, 나는 잘했다는 듯 고양이를 쓰다듬어주었다. 고양이는 내 다리에 얼굴을 부비며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내었다.

고양이는 바퀴벌레를 물어오는 게 나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고양이는 시시때때로 바퀴벌레를 잡아댔고, 아침마다 밤새 잡은 바퀴벌레를 자랑하듯 보여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바퀴벌레를 물고 있는 고양이를 쓰다듬어 주었다.

 

고양이는 나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고양이와 함께 지내면서 확실히 알 수 있던 것은 우리 집 고양이가 정말 바퀴벌레를 잘 잡는다는 것이었다. 나의 일과는 바퀴벌레 시체와 함께 시작되었는데, 고양이는 우리 집에 그렇게 바퀴벌레가 많았나 싶을 정도로 꾸준히 바퀴벌레를 잡아왔다.

매일 아침을 바퀴벌레 시체와 보내던 어느 날 나는 까무러치게 놀라 소리를 질렀다. 고양이는 나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마 평소처럼 칭찬해달라는 것 같았다. 망설이던 나는 일단 평소처럼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고양이 입에는 내 주먹보다 큰 바퀴벌레 한 마리가 생존을 위해 바동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바동거리던 바퀴벌레는 몸이 반 쪼가리가 돼서야 고양이에게서 탈출할 수 있었다.

고양이의 입에서 두 동강 난 거대한 바퀴벌레는 그동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겨우 바퀴벌레라는 생각은 이제 버렸다. 정말 그렇게 큰 바퀴벌레가 우리 집 어딘가에 살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바퀴벌레가 집 밖에서 들어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고양이가 우리 집에 오기 전까지 나는 바퀴벌레를 한 마리도 본 적이 없던 것이다. 그렇게 커다란 것들이 우리 집 어딘가에서 우글거린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나는 고양이가 어디서 어떻게 바퀴벌레를 잡는 것인지 확인해보기로 했다. 밤이 되자 나는 잠을 자는 척 누워 고양이를 지켜보았다. 불을 끄고 취침등을 켰다. 취침등에 비친 캣타워가 길게 그림자를 만들어 냈다. 캣타워 꼭대기에 올라선 고양이는 두 눈을 밝게 빛냈다. 고양이는 캣타워 위에서 전혀 움직이지 않았는데, 가만히 앉아있다가도 무슨 소리가 나는 순간 귀를 쫑긋거리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리 야행성 동물이라지만, 밤을 새우며 주변을 경계하는 게 마치 보초를 서는 병사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게 실제로 보초를 서는 것이라는 걸 깨다는 건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다.

캣타워의 그림자가 작게 일렁였다. 귀를 쫑긋거리던 고양이가 뛰어오른 건 일순간이었다. 찬장을, 장롱을, 책상 위를 누비며 뛰어다니던 고양이는 무언가를 쫓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고양이를 보며 불을 켠 내가 본 것은 고양이에게서 도망치는 네 마리의 바퀴벌레였다. 그중 한 마리는 아침에 본 바퀴벌레만큼 거대했다.

이상한 일이지만, 네 마리의 바퀴벌레는 흩어지지 않고 함께 움직였다. 바퀴벌레들은 어떻게 움직여야 고양이가 움직임을 주저할지 잘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깨지기 쉬운 물건, 건드렸을 때 흔적이 남는 물건을 바퀴벌레는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고양이는 용케도 접시 더미나 책 더미를 건드리지 않은 채 뛰어다니고 있었다.

바퀴벌레와 고양이의 추격전이 끝난 것은 냉장고 앞을 지나칠 때였다. 도망치던 바퀴벌레들은 무슨 생각인지 갑자기 고양이에게 달려들었고, 고양이는 적극적으로 응전했다. 작은 바퀴벌레 한 마리는 고양이의 손에 눌려 죽었지만, 그 덕에 남은 세 마리의 바퀴가 고양이 등에 올라탈 수 있었다. 고양이가 바퀴를 떨어뜨리기 위해 앞발로 몸을 긁어댔다. 그때 냉장고 위에서 두 마리 대왕 바퀴벌레가 고양이 위로 떨어졌다. 그때서야 나는 알 수 있었다. 바퀴벌레는 지원군을 기다리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다섯 마리 크고 작은 바퀴벌레들은 사방에서 고양이를 물어댔다. 고양이가 몸을 굴리며 바퀴벌레들을 털어내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조직적인 움직임이었다.

고양이는 몸을 굴리는 걸로 안 되겠는지 양발을 이용해 온몸을 긁어댔다. 결국, 버티지 못한 작은 바퀴벌레들이 몸에서 떨어져 나왔고, 고양이는 그것들을 눌러 죽였다. 작은 바퀴벌레들이 모두 죽자 큰 바퀴벌레들은 망설이지 않고 냉장고 아래로 도망쳤다. 그러나 내가 냉장고 아래를 살펴보았을 때 보이는 것이라곤 작은 먼지 덩어리들뿐이었다.

 

그날 이후로 고양이는 변했다. 고양이는 평소의 순한 모습과 다르게 매우 포악해졌다. 내가 집안에 돌아올 때면 나를 향해 하악질을 해댔다. 그런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집으로 들어서면 고양이는 사납게 울며 나를 노려보았다. 고양이는 심심하면 마구 벽을 긁어댔고, 벽을 타고 올라가 천장을 두드리기도 했다. 사방이 고양이 손톱자국이었다.

이런 모습은 바퀴벌레가 나타났을 때 극에 달했다. 어쩌다 한 마리가 나타나면 그대로 집안은 난장판이 되었다. 고양이는 사납게 울어대며 사방을 뛰어다녔다. 바퀴가 천장으로 기어오르기라도 하면, 고양이는 그 뚱뚱한 몸으로 묘기를 부리며 벽을 타고 뛰어올라 천장에 있는 바퀴벌레를 으깨놓았다. 마치 둥근 공이 벽에서 튕겨져 나오는 것 같았다.

바퀴가 죽은 자리에는 어김없이 뭉개진 시체가 눌어붙었다. 내가 시체 잔해들을 치우고 나면 그 자리에는 어김없이 까만 자국이 생겨있었다. 휴지로 닦아보았지만, 까맣게 묻어나올 뿐 문댈수록 자국은 선명하게 번져 나갔다. 곧 우리 집 흰 벽지는 사방이 얼룩덜룩해졌다.

이렇게 바퀴벌레를 잡고 나면 고양이의 행동은 더욱 기고만장해졌다. 고양이는 벽을 타고 올라 천장을 두드리고 하악질을 해댔다. 밤낮 없이 날뛰는 고양이 덕에 나는 다시 잠을 설쳤다.

그리고 이런 내 고생은 전염병처럼 온 아파트로 퍼져 나갔다. 윗집의 사건 이후로 주민들은 소음에 민감했고, 하나둘 우리 집에 찾아와 주의를 주었다. 나는 고개를 조아리며 죄송하다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암만 고양이를 혼내도, 고양이는 한결같았다. 고양이를 교육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반면 고양이는 날이 갈수록 사나워졌다. 신경이 곤두선 고양이는 이제 사람을 향해서도 손톱을 새웠다. 기껏해야 고양이가 할퀴고 달려드는 게 문제가 있을까 생각도 했었지만, 끊임없이 달려드는 고양이 때문에 내 양팔은 언제나 상처투성이였다. 고양이는 내가 집안에만 들어서면 달려들었는데, 마치 나를 집 밖으로 내쫓으려는 것만 같았다. 이젠 그 둥근 몸집이 혐오스러울 지경이었다. 거대한 살덩어리 괴물이 내 집을 빼앗으려고 하는 것이다.

내가 고양이를 통제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고양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더는 없었다. 분양을 하던, 기관에 맡기던, 하다못해 고양이를 내다 버리더라도. 나는 고양이를 위해 최선을 다했고, 이제 고양이를 아파트에서 내모는 일만 남았다.

 

시설에서 연락이 왔다. 고양이를 맡아줄 테니 언제 시간이 되냐 물어왔다. 나는 당장 내일 맡기기로 약속을 잡았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고양이를 떼어놓을 때가 된 것이다.

그래도 마지막 날인데 아쉬운 마음이 없진 않았다. 나는 마지막 저녁으로 오랜만에 특식을 제공하기로 했다. 그러나 고양이는 생선 캔에 입도 대지 않았고, 도리어 사방을 날뛰다 캔을 엎어뜨렸다. 나는 머릿속까지 화가 치밀어 올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때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참다못한 1층 주민이 우리 집을 찾아왔던 것이다. 그는 아파트 주민 중에서도 특히나 소음에 민감했는데, 윗집 부부를 신고한 것도 이 남자였다. 그는 며칠간 잠을 못 잤는지 얼굴에 까만 다크서클이 길게 내려와 있었다.

! 이거 너무 시끄러운 거 아냐? 잠 좀 자자고. 잠 좀 자자!”

나는 평소처럼 죄송하다고, 고양이는 이제 다른 곳에 맡기겠다고 말했으나, 모처럼 화가 난 남자를 진정시킬 순 없었다. 그는 자신의 화를 해소할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는 씩씩대며 우리 집에 들어왔고 나를 향해 계속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곧 그의 화는 의도치 않은 방법으로 해소되었다.

고양이는 어김없이 집안에 들어선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벽을 타고 올라온 고양이는 남자의 얼굴을 할퀴었다. 그는 깜짝 놀라 얼굴을 부여잡았고, 고양이는 다시 달려들 것 마냥 사납게 울었다. 그가 화풀이 대상을 정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에게 화를 억누를 생각 따윈 없었다. 그는 그대로 다리를 냅다 휘둘렀다. 배를 얻어맞은 고양이는 그대로 바닥에 부딪혀 꿈틀댔다. 힘겹게 일어선 고양이는 집안으로 도망쳤고, 남자는 신발도 벗지 않은 채 고양이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고통에 쩔뚝이던 고양이는 남자를 피할 수 없었다. 남자는 고양이의 목덜미를 집어 들더니, 그대로 베란다로 나섰다. 그리곤 축 늘어진 고양이를 망설임 없이 밖으로 내던졌다. 어떻게 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남자는 홧김에 저질렀는지, 저지르고 나니 심각함을 알았는지, 꽤나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남자는 슬그머니 베란다 밖을 내려다보았다. 남자는 그대로 얼굴을 찌푸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남자는 미안하다며 실없이 웃다가 헐레벌떡 도망쳤다.

고양이는 축 늘어져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는 것이라곤 고양이로부터 번져나가는 빨간 피 웅덩이뿐이었다. 충격적이진 않았다. 의외로 담담한 기분이 들었다. 그저 고양이 한 마리가 죽었을 뿐이다. 오히려 고민하던 문제가 해결됐다는 것에 후련한 감정마저 느껴졌다. 고양이는 죽었고, 내 고민은 모두 해결되었다.

 

그날 밤 꿈을 꾸었다. 현관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작은 소리는 매우 이질적이고, 또렷했다. 분명 나는 이 소리를 알고 있었다. 소리는 둔탁하게 울려댔고, 내 머릿속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내가 현관문을 열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현관문을 열어보니, 문 앞에서 작은 고양이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무심코 내가 문을 닫으려 하자 고양이는 잽싸게 집 안으로 뛰어들었다. 어느새 침대 아래로 파고든 고양이는 야옹 하며 울어댔다. 삐쩍 마른 모양새며 제집인 것 마냥 침대로 파고드는 것까지, 정말 처음 고양이를 보았을 때 그 모습이었다.

하지만 꿈속의 나는 평소보다 더욱 난폭하고 충동적이었다. 나는 침대 아래를 더듬었다. 고양이는 사납게 울며 내 손을 피했지만, 금세 나는 고양이를 찾을 수 있었다. 나는 고양이를 집어 들어 침대 밖으로 내팽개쳤다.

나는 다시금 떠올렸다. 분명 이건 환각이고 꿈이다. 그리고 그걸 알고 있기에 할 수 있는 일도 있는 법이었다.

고양이는 그대로 바닥에 부딪혀 꿈틀댔다. 힘겹게 일어선 고양이는 도망치려 했으나 고통에 쩔뚝이느라 움직임이 더뎠다. 나는 고양이의 목덜미를 집어 들곤, 그대로 베란다로 나섰다. 목덜미가 잡힌 고양이는 축 늘어진 채로 그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든 것을 포기한 눈빛이었다. 나는 축 늘어진 고양이를 망설임 없이 밖으로 집어 던졌다.

고양이는 하늘을 날았다. 저 높이 날아오르던 삐쩍 마른 고양이는 점점 몸체를 불려갔다. 점점 살이 찌더니, 곧 어디론가 뛰어갈 것 마냥 튼튼해졌다. 고양이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하늘 높이 올라갈수록 고양이는 점점 살을 찌워갔다. 고양이는 금세 내가 알던 그 통통하고 둥근 풍선처럼 살이 쪘다. 하늘로 솟아오르던 고양이는 갑자기 빨간 풍선으로 변했다.

그렇게 풍선은 하늘을 날았다. 풍선은 하늘 높이 솟아오르며 계속 몸집을 불려댔다. 더욱 높이 올라가던, 더욱 크게 몸을 불리던 풍선은 어느새 하늘을 가득 뒤엎었다. 하늘 어디에도 빨간색이 가득했다.

풍선이 모든 푸른색을 빨간색으로 물들였을 때, 풍선은 제 할 일을 마친 듯 갑작스레 사라졌다. 풍선은 빨간 물감이 담긴 물풍선이었다. 풍선은 펑 하는 소리를 내며 터졌고, 빨간 물감을 사방으로 퍼뜨렸다. 끔찍한 소리였다. 그리고 끔찍한 꿈이었다.

잠에서 깬 나는 아직 일어나기엔 많이 이른 시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나를 깨운 것은 오랜만에 들리는 작은 소리였다.

천장이 울려댔다. 결코, 큰 소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머릿속 깊은 곳까지 울려댔다. 순간 화가 났다. 이상한 꿈을 꿔서 그랬는지 몰라도 나는 평소보다 민감했다. 나는 집을 나서 계단을 올랐다. 평소에 생각으로만 했던 일이지만, 행동은 빨랐다. 오히려 결심하고 나니 쉬운 일이었다.

윗집 현관 앞에 도착한 나는 무작정 현관을 두드렸다. 대답은 없었다. 나는 다시 현관을 두드렸다. 두드리다 못해 발로 찼다. 답답함에 못 이겨 손잡이를 돌려보니 현관문이 맥없이 열렸다.

문을 활짝 열었다. 무슨 배짱인지 나는 신발을 신은 채로 그대로 집 안에 들어섰다. 집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혹시나 싶어 집안을 여기저기 뒤져보았으나 무언가 소리를 낼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바닥에 먼지가 수북이 쌓인 걸 보니 실제로 아무도 살지 않은지 꽤 된 것 같았다. 그러나 소리는 이 집을 계속 울려댔다. 정말이지 이상한 일이었다.

윗집에서 나와 나는 다시 계단을 내려왔다. 정말 착각일 수도 있다. 고양이가 죽은 충격에, 방금 꾼 끔찍한 악몽에 들린 환청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한숨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갈 것으로 생각했다.

금세 우리 집 현관에 도착했다. 나는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때 천장에서 무언가가 내 머리 위로 떨어졌다. 손으로 털어내어 보니 까맣고 꿈틀대는 것이 바퀴벌레인 것 같았다. 주먹만큼 커다란 바퀴벌레였지만, 요 며칠 워낙 많은 바퀴벌레를 봐서 그런지 그저 덤덤했다. 나는 발을 움직여 바퀴벌레가 도망가기 전에 바퀴를 신발로 뭉갰다.

그때 다시 천장이 울렸다. 익숙한 소리였지만, 분명 평소와는 달랐다. 평소보다 더욱 크고 분명하게 들려왔다. 자세히 들어보니 소리에는 무언가 규칙이 있는 것 마냥 일정했다. 마치 천장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천장의 소리는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가 곧 하나로 모였다. 하나로 모인 소리는 천장 여기저길 돌아다니더니 내 머리 위에서 멈췄다.

그리고 천장이 무너졌다. 내 머리 위, 바로 내 눈앞에 거대한 덩어리가 떨어졌다. 거대한 덩어리는 마치 사람처럼 두 팔과 두 다리가 달려있었다. 나는 왠지 이 덩어리가 성인 여성이 다소곳이 누워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꼭 덩어리가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만 같아 더욱 기괴했다.

덩어리는 새까만 색깔이었다. 덩어리가 까만 것보단, 까만 것들이 덩어리를 뒤덮고 있는 것 같았다. 까만 것들은 계속 꿈틀대며 움직였다. 꿈틀대던 까만 덩어리는 갑자기 작은 덩어리를 토해냈다.

고민하고 있을 세는 없었다. 나는 바로 현관문을 열었다. 그러나 나갈 수는 없었다. 내가 문을 열자마자 작은 덩어리는 나를 타고 올랐다. 까만 것들은 나를 감싸 넘어뜨렸고, 넘어진 날 잡아끌어 집 안으로 옮겼다. 나를 옮긴 까만 것들 일부가 우르르 뭉치더니 현관문을 당겨 닫았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조직적인 움직임이었다.

그제야 나는 알 수 있었다. 고양이는 끊임없이 경고하고 있었다.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무너진 천장으로 바퀴벌레가 쏟아져 내렸다.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바퀴벌레는 금세 집안 모든 곳을 까맣게 만들었다. 까만 덩어리가 내 몸을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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