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우수작 개나 고양이

2017.02.28 19:0702.28

개나 고양이

– 의심주의자 –

집에 가는 길목에 쓰레기장이 있다. 아파트 단지와 빌라 단지를 나누는 벽돌 담벼락 구석진 곳. 마침 분리수거 전날이라 종량제 봉투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평상시 같았으면 그냥 이번주도 쓰레기가 많네, 하고 지나갔을 테지만 그 날은 쓰레기 더미가 움직였다. 쓰레기 더미가 스스로 움직였다기보단 그 속에 뭔가 파묻혀서 움직대는 것 같았다. 안쪽에서 부시럭대는 소리가 들렸고, 더미 위쪽에 쌓인 봉투들이 끓는 냄비뚜껑마냥 움찔댔으니까. 속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길짐승일 것이다. 산비탈에 자리한 동네라서 가끔 너구리 같은 게 내려온다는 얘기도 듣긴 했다.

 “크흠.”

 헛기침을 해봤더니 움직임이 뚝 멈췄다. 부시럭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일 분, 이 분이 지나도록 정적. 사람 목소리가 들리니까 놀라서 경계하는 모양이다. 근처에 있던 벽돌 조각을 툭 차서 쓰레기 봉투 더미 쪽으로 날렸다. 벽돌 조각은 비닐 사이로 쏙 들어가버렸다. 아무 반응이 없는 걸 보면 이미 어느 구멍으로 빠져나간 모양이다. 도둑고양이가 먹을 것을 찾아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쏘삭이던 것 아닐까. 뭐, 그렇게 생각했다.


이모에게 요즘 동물 시체가 유독 많이 보인다는 얘기를 들었다. 낮에 장보러 가시거나, 아니면 아무 때라도 밖에 나가면 두세 번에 한번 꼴로 쥐새끼나 고양이 죽은 걸 보신다고. 사람이 해코지를 했는지 뭐가 파먹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참혹한 꼴이라고 하셨다. 내장이 다 발겨져 있다나. 아침 먹는 시간에 그런 얘기를 하시는 이유를 모르겠어서 그냥 얼굴만 찌푸리고는 밥을 먹었다. 이모도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하신 말씀은 아니었는지 식사를 계속하셨다.

 그 날도 역시 집중은 전혀 되지 않았다. 학원에선 딴생각 하느라 강의 제대로 못 들었는데, 집에서도 공부할 의향은 전혀 없구만. 공무원 시험을 보겠다고 공부한 기간이 삼 년을 꽉 채웠다. 나도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성실하게 임해보기로 마음먹었지 않았나.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결과를 가져오라고 화를 낸다. 시험을 아직 안 봤는데 결과를 어떻게 가져오나.

 책 오 분 들여다보고 핸드폰 십 분 들여다보면서 시간을 허비하다 보니 열 시도 넘었다. 오늘도 이렇게 성과 없는 하루를 보냈다. 하루 뿐인데, 뭘. 그런 하루가 쌓여서 몇 해가 지났다는 사실은 굳이 떠올리지 말자. 갑자기 답답해졌다. 내가 이걸 공부한다고 붙을 수 있을까? 경쟁률이 수백 대 일인데 말이다. 내 실력을 내가 모른다. 내가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도 잘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공부를 허투루 하고 있다. 아마 예측된 허탈함 이상의 결과를 얻기는 힘들겠지.

 그래서 바람이나 쐴 겸 야밤에 산책을 나왔다. 쓰레기장을 지나가는데 전신주에 A4용지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최근 쓰레기장에서 난동을 부려 종량제 봉투를 흩어놓는 사람이 있습니다. 적발시 고발조치함.”

 난동을 부리는 사람? 어떤 놈이 술 마시고 행패를 부리는 건가. 도둑고양이가 먹이 찾아서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찢어놓는 일은 많이 있었지만 사람이 그런 짓을 한다면 참 할 일 없는 인간이다. 이런 좁은 동네에서야 소란 피우고 다니면 금방 발각될 텐데. 동네 분위기가 좋지는 않지만 또 흉흉하지도 않다. 그냥 조용한, 슈퍼 한번 가려면 비탈길을 10분 정도 걸어내려가야 하는 산 중턱의 빌라촌이니까. 가끔 술취한 아저씨들이 오밤중에 고성방가를 하기도 하지만 험악한 사건이 일어났던 기억은 없다.

 생각 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큰길가에 도달해 있었다. 급하게 지나치는 차 엔진소리가 대기를 채웠다. 모든 소리가 저 소음의 벽에 파묻힌다. 그냥 지나다닐 때엔 몰라도,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을 때 얼마나 큰 소음인지 알 수 있다. 내 귀에 직접 소리를 쏘는 이어폰 소리를 가릴 정도니까. 비탈을 다 내려오자마자 칼같이 발길을 돌렸다. 최근 이 년간 학원 갈 때를 제외하면 여기보다 멀리 나간 적이 없다.


간만에 동네 친구와 술을 마셨다. 둘 다 형편이 마땅찮았기에 실내 포장마차에서 찌개 하나 시켜놓고 소주를 마셨다. 둘이 한 병을 비우고 나서 친구가 난데없는 얘기를 했다.

 “너 산에서 삵 나온다는 얘기 들었냐?”

 “삵? 살쾡이?”

 “어. 요즘에 삵이 나와서 고양이 잡아먹고 난리도 아니라더라.”

 서울 한복판에 웬 삵?

 “그게 말이 되냐. 그거 그 천연기념물 아니야? 이 산이 산책로 다 내서 사람 안 다니는 곳이 없는데. 차라리 너구리 같은 거라면 몰라도.”

 “너구리가 고양이 잡아먹냐? 동네에 고양이가 씨가 마를 지경이라더라. 전부 도둑고양이긴 하지만. 나도 고양이 반토막 난 거 보고선 하루를 꼬박 밥을 못 먹었다.”

 “아니, 진짜 삵이라 해도 왜 고양이만 잡아먹어? 고양이가 뭐 쥐새끼 잡듯 잡을 수가 있나.”

 “나야 모르지. 덩치가 훨씬 큰데 천적 아니냐? 같은 고양잇과니까 영역싸움 같은 걸 하는 걸 수도 있지. 뭐, 아니면 말고.”

 그렇게 쓰잘데기 없는 소문을 안주삼아 소주를 들이켰다. 둘이서 세 병 반을 마시고, 친구가 만 원, 내가 나머지를 계산했다. 밤 열한 시가 넘었기에 다음을 기약하며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소주를 너무 오랜만에 마셔서 그런지 생각보다 많이 취했다. 힘빠진 걸음걸이로 터벅터벅 비탈을 오르는데 근처에서 부시럭대는 소리가 들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난 이미 쓰레기장을 지나는 중이었고, 종량제 봉투 더미가 들썩이고 있었다.

 취한 와중 예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또 도둑고양이 같은 게 쓰레기 봉투를 들쑤시나보다. 전에 쓰레기장에서 난동을 부린다고 써붙여놨던 것도 사실은 유기동물의 짓 아닌가? 사람이 그랬으면 진작에 누가 봐서 잡았겠지. 난 그렇게 생각하며 발을 타악 굴렀다.

 “에비!”

 움직임이 멎었다. 난 또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

 “야!”

 종량제 봉투 더미가 폭발했다. 정확히는 안에서 뭔가 튀어나오면서 쌓여 있던 봉투와 그 내용물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검고 덩치큰 네발짐승 같은 게 쏜살같이 담벼락을 타넘어 사라졌다. 난 우와악 괴성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덕분에 안에서 튀어나온 그것을 확실하게 포착하지 못했다. 어안이 벙벙하여 찬바닥에 주저앉아 있다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확 풍겨왔고, 동시에 전신주에 붙어 팔랑거리는 경고문이 눈에 들어왔다. 이거 잘못하면 내가 휘말리게 생겼는데. 재빨리 일어나 옷을 털며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보는 사람은 없었다.


한동안 학원에서나 집에서나 그 생각만 했다. 쓰레기 봉투 더미에서 튀어나온 그 검은 짐승의 정체는 뭘까? 개는 담벼락을 수직으로 타오르지 못한다. 아마 너구리도 그러지 못할 것이다. 고양이 치고는 너무 컸다. 정말 살쾡이인가? 하지만 살쾡이였다면 그렇게 털이 새까맣지는 않았겠지. 너무 더러워져서 원래 색을 잃은 건지는 몰라도.

 그 후로도 보름이 다 되도록 쓰레기장 어지럽힌 범인을 잡았다는 소문은 없었다. 전신주에 붙어있는 종이는 비바람을 맞아 거의 뜯겨나가기 일보직전이었고. 다만 고양이가 죽어나가는 일은 멈췄는지? 주변인들의 증언과 달리 나는 동물 시체를 본 적이 없다. 내가 워낙 다니는 길로만 다니기도 하거니와, 밖에 나오는 경우는 학원 갈 때와 집에 올 때 뿐이니 당연하겠지만. 내가 들쥐나 고양이 따위를 그림자 때문에 실제보다 큰 것으로 잘못 봤을까. 술에 취한 상태였으니 더 그럴 가능성이 높고.

 어느 날 보니 기어이 쓰레기장의 안내문이 떨어져 있었다. 복사용지를 붙여놨던 박스테이프 반쪼가리만 남았다. 범인이 잡혀서 뗀 걸까. 살쾡이나 족제비, 혹은 다른 짐승이 잡혔다면 아마 동네에 소문이 났거나 최소한 이모가 들었을 것이다. 심심한 동네니까 그런 사건도 이야깃거리가 되곤 한다. 하지만 전혀 들은 바가 없다. 아니면 그냥 바람에 날려 떨어진 것일 수도 있다.

 황색 줄무늬 고양이 한 마리가 느긋하게 길을 가로질러 갔다. 고양이 녀석들은 나한테 아무 신경도 안 쓴다. 나도 마찬가지. 딴 데 정신팔린 고양이를 본의 아니게 놀래킨 적은 있어도 서로 먼저 다가가는 일은 없다. 지금 내 앞을 지나는 누런 고양이도 날 가볍게 무시했다. 동네서 고양이들이 죽어나간다더만 녀석은 아무 생각 없어 보였다. 어슬렁 걸어가다가 길에 주차된 차 밑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나도 그냥 가던 길을 갔다.


다음날 드디어 고양이 시체를 목격했다. 물론 기대하던 경험은 아니다. 누런 털에 핏자국이 엉겨붙고 신체부위가 여기저기 떨어져나간 채 담벼락에 걸쳐있었다. 비위에 안 좋은 광경이었지만 잘 생각해보니 뭔가 이상했다. 잡아먹으려는 걸 저렇게 해 놓지는 않았을 텐데? 혹시 어떤 미친놈이 고양이한테 해코지를 하고 다니는 건가. 아침부터 심란한 광경을 봤더니 그 날 하루는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언제는 공부를 열심히 했냐마는. 집에 오는 길에 이모가 하는 가게에 들렀다. 이모에게 할 얘기가 있었다.

 “술 마시러 온 거는 아니고요. 잠깐 말씀 좀.”

 이모는 반가운 표정으로 종업원에게 카운터를 맡기시곤 나와 함께 구석 자리에 앉았다.

 “전에 요즘 고양이 시체가 많이 보인다고 하셨잖아요.”

 “그랬지.”

 “지금도 그런가요? 지금도 막 길거리에 한마리씩 죽어 있고 그런가요?”

 “아니, 요즘은 또 안 보이던데. 그건 왜 물어보냐?”

 “어쩌면 그 고양이 해치는 게 뭔지 본 것 같아서요.”

 “그래?”

 이모에게 그 커다랗고 검은 짐승 얘기를 했다. 쓰레기 봉투 더미 속에 숨어있다가 놀래키니까 튀어나와서 도망갔다고. 똥개나 도둑고양이라고 하기엔 덩치가 너무 컸다는 것도. 덧붙여 친구에게 삵이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소식도 전했다. 이모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더니 대답했다.

 “글쎄다. 살쾡이는 아닐 걸. 말이 살쾡이지 그거 맹수다, 맹수. 아무데나 안 나와. 그냥 고양이끼리 싸운 거 아니냐.”

 요즈음 고양이 시체가 늘어난 까닭에 대해서는, 고양이끼리 서열이나 영역다툼으로 서로 싸우거나 심지어는 죽일 때도 있다고 말하셨다. 하지만 이토록 집요하게 다른 고양이들을 찾아 죽이기도 하나?

 “원래 한 구역에 고양이들 서열이 있어. 제일 센 놈이 대빵인데, 그게 한 동네에 대빵이 두 마리가 되면 어떡하겠냐? 서로 막 싸우겠지. 서열 다툼을 하는 거니까 진짜로 고양이끼리 막 죽이고 그런다고.”

 “그게 말이 돼요?”


이모의 이야기가 사실이건 아니건 난 범인이 같은 고양이가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찬물을 한잔 마시고 이모 가게를 나섰다. 이제 막 겨울에 접어드는 계절이었지만 외투 깃을 여미고 으슬으슬 떨면서 걸었다. 집으로 향하는 오르막길. 길가에 제멋대로 주차를 해놔서 사람과 차가 다니는 구역이 분간이 되지 않았다. 지나가는 차나 사람도 없고 내 발소리만 들려, 이상하게 조용하다고 느낀 찰나 온몸의 털이 쭈뼛했다.

 ‘파스스스.’

 들어본 적 없는 소리를 들어서 소리가 난 방향을 살폈다. 건물과 건물 사이 비좁은 틈새에서 뭔가 검은 덩어리 같은 게 튀어나와 있었는데, 입간판 그림자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았다. 덩어리는 조금씩 꿈틀대는 것 같았다. 저게 뭐지? 동물인가? 저게 소리를 낸 것 맞나? 순간 승합차 한 대가 지나가며 전조등 빛이 닿았다. 덩달아 검은 덩어리의 모습도 드러났다. 검고 뻣뻣한 털로 온몸이 뒤덮인, 커다란 짐승을 봤다. 퍼런 두 눈이 전조등을 반사하며 나를 노려봤다.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놈은 이미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 방금 본 그게 도대체 무엇이건 간에 내가 실제로든 TV에서든 본 적이 있는 동물은 절대 아니었다. 대형견 정도의 몸길이에 빽빽한 가시 같은 털에선 검은 광택이 번득였고, 가늘고 길다란 다리를 휘적휘적 움직여 걸었다. 순식간이었는데도 난 확신할 수 있었다. 놈이 바로 쓰레기장의 그거라고. 덩치와 검은 털, 잽싸게 움직이는 모습까지 똑같았다.


아무에게도 말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안 믿을 테니까. 내가 잘못 봤을 수도 있는 노릇이고. 대신 여러모로 검색을 해봤다. 크고, 검은색이고, 털이 빽빽하고, 도심지에 나타날 수 있는 짐승. 당연히 걸리는 결과가 없었다. 이런 야생동물이 서울 한복판에 돌아다닌다면 진작에 소문이 나서 생포되건 사살되건 했을 터.

 인터넷에선 찾기 힘든 정보도 있기에 도서관에서 동물 도감을 찾아보기도 했다. 학원을 빠져나오기 위해 내면의 목소리에게 둘러댄 핑계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뭐라도 단서를 얻을 수 있을까 해서. 그 중 호저란 녀석이 가시가 잔뜩 돋은 모양새가 살짝 비슷한 듯하기도 했으나 아니었다. 내가 본 놈은 호저보다 훨씬 크고 다리도 아주 길었다.

 놈을 직접 찾아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굉장히 뜬구름 잡는 듯한 일이지만, 호기심이 생겨버렸기 때문에 놈의 정체를 알아야만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약간 재미있어보이고 했고. 또한 만약 내가 실제로 도시를 돌아다니는 정체불명의 야생동물을 찾아낸다면 그 후에 벌어질 일이 기대되기도 했다. 소문 나서 동물농장 같은 데라도 출여하는 것 아닐까?

 공부해야 할 놈이 쓸데없는 짓 한고 다닌다고 부모님에게 욕먹지 않는 선에서 생각해둔 준비물을 마련했다. 일견 골치아파 보였지만 의외로 간편하게 해결되었다. 야생동물의 공격에 상처를 입지 않을 수 있는 복장은 겨울 옷을 껴입고 장갑을 끼면 그만. 놈의 모습을 담을 카메라로는 내 비싼 핸드폰이 있었다. 연락처가 많지도 않고 게임을 하지도 않는데 쓸데없이 좋은 기계로 사서, 카메라 성능 하나는 쓸만했다. 미끼가 따로 필요할까? 냉장고에 있던 소시지 몇 개를 사용하기로 했다. 별 거 아니구만.

 보름 정도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동네를 배회했다. 주말에도 산책 나간다는 핑계로 집을 나섰다. 하지만 열흘 정도 지난 시점에, 찾을 수 없다고 인정해야 했다. 정말로 놈을 찾고 싶었다기보단 공부 안 하고 노는 핑계로 정체불명의 동물을 찾아다닌다고 생각하는 쪽이 편리했던 건 아닐까. 수험생 노릇을 오래 하다 보면 별 한심한 이유로 공부를 기피하기 마련이다.

 기실 제대로 된 탐색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골목마다 걸어다닐 뿐이었다. 오래 산 동네인데 아직 못 가본 골목이 많은 건 신기했지만 정말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두운 구석은 이런저런 이유로 위험해 보였기 때문에 들어가지 않았다. 몇 주가 지나자 놈을 목격했던 선명한 기억도 희미해지고, 그냥 잘못 본 거라는 생각이 자리잡았다. 어두운 데다 마음이 놀라서 실제보다 크게 봤던 것이다. 그래도 집과 학원만 왕복하는 생활에서 일탈하여 기분전환의 계기로 삼을 수 있었다.


“공부는 잘 돼가냐?”

 일요일 아침식사 시간에 아버지가 물었다. 일요일만큼은 학원으로 도피할 수 없다.

 “그럭저럭요.”

 그럭저럭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지만 거짓말했다. 잘 된다고 거짓말하지 않은 게 어딘가. 정도가 심한 거짓말은 양심의 가책도 더 큰 법.

 “그럭저럭 해갖고 되겠냐. 너 벌써 올해로 몇 년째 공부하고 있지?”

 “삼 년…….”

 “햇수로 따지면 이제 사 년째 들어가는 거 아니냐? 원래 그렇게 오래 준비해야 하는 시험이냐, 아니면 언제 결과를 가져올 건데?”

 묵묵부답.

 “공부가 니 길이 아닌 것 같으면 아예 다른 길을 찾던가. 언제까지 너 밥 먹여주고 재워줘야 되냐. 졸업은 또 언제 할래?”

 “졸업은 아직 안 낸 서류가 있어서…….”

 “왜 안 냈어? 뭔가 미흡한 부분이 있는 거야, 아니면 그냥 졸업하기 싫어서 미루고 있는 거야?”

 “그건 당연히…….”

 당혹스런 시간은 어머니가 방에서 나와 상에 앉는 순간까지 계속되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나를 사이좋게 구박했다. 하지만 아버지에겐 일상적인 잔소리일 뿐인 것이 내겐 묵직한 위협처럼 느껴졌다. 학원비를 받지 못하면 학원을 다니지 못하고, 그렇게 되면 공부에 차질이 생겨서가 아니라 집에서 도망칠 핑계가 없어지기에 무서웠다. 내가 그에 대해 겁먹을 자격이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집에 있기 싫어서 슬쩍 나섰다. 갈수록 쌀쌀해지는데, 옷을 너무 대충 걸치고 나왔나 싶었다. 예의 그 비탈길을 따라 걸었다. 쓰레기장을 지나, 자그마한 슈퍼를 지나, 대로변까지. 그리고 돌아서서 왔던 길을 도로 따라 걸었지만 이대로 집에 가기는 싫었다. 저번에 쏘다녔던 것처럼 골목 순방이라도 해볼까 싶어 세탁소 께에서 진로를 틀었다.

 겨울 오전엔 햇살이 따갑다. 바람이 찬데도 햇빛을 좀 받고 싶어 후드를 젖혔다. 어깨를 펴고 싶었지만 힘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걸음거리가 궁상맞구만. 그늘과 볕, 골목과 찻길을 좌로 우로 수놓으며 돌아다녔다. 일요일 낮이라서 그런가,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가끔 창문을 여는지 닫는지 드르륵 하는 소리, 멀찌감치서 들리는 애들 소리, 차나 오토바이가 지나가는 소리, 그리고……

 ‘파스스스.’

 그 자리에서 우뚝 발길이 멎었다.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다. 뻣뻣한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려온 쪽을 살폈다. 건물 그림자에 가리긴 했지만 낮이다 보니 확실하게 식별할 수 있었다. 온몸에 검고 뻣뻣한 털이 수북하게 돋았고 덩치는 대형견 만한 정체불명의 짐승. 사람 손바닥 만한 머리에 달린 퍼렇고 탁한 눈으로 날 지켜보고 있었다. 놈의 몸이 떨리며 파스스 하는 소리가 들렸다. 털끼리 부대끼는 소리일까.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나? 하지만 걸어가던 자세에서 그대로 멈춰서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이 균형을 잃으며 휘청했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자세를 고쳐잡는 순간 놈도 움직였다.

 “으아악!”

 난 제풀에 펄쩍 뛰었지만 놈이 내게 달려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게서 멀어져갔다. 그것도 위쪽으로. 돌출부도 없는 콘크리트 벽에 매달려 길쭉한 사지로 기어올라갔다. 벽에 납작하게 붙어서 사지를 뻗는 모습이 나무늘보와도 흡사했다. 훨씬 잽싸고 훨씬 새까맸지만. 길고 날카로운 발톱도 분명하게 보였고, 꼬리는 아주 짧거나 혹은 없는 듯했다.

 대체 저게 뭐지?


그 후로 몇 달간 내가 바라던 것보다 자주 놈을 목격했다. 자주라는 것은, 몇 주에 한번씩 잊을만 하면 나타났다는 뜻이다. 주변에 아무도 없고, 또 내가 방심한 다음 순간 어김없이 시야 한구석에 검고 뻣뻣한 털이 날리고 있거나, 후다닥 사라지는 검은 형체가 보였다. 놈은 나를 찾아낼 수 있었다. 하긴 나는 항상 다니는 길로만 다녔으니까 아주 쉬운 일일 터이다. 아마도 놈이 나보다 동네 지리를 더 잘 알 것이다. 어쩌면 냄새를 기억하고 있을 수도. 겨우내 춥지도 않은 건지 줄기차게 동네를 누비고 다니는 듯했다.

 하지만 왜 나를 쫓아다니는지는 모르겠다. 경계하는 건지, 그냥 관심이 생겨서 지켜보는 건지. 나로선 어느 쪽이든 상관 없고 이제는 사라져 줬으면 좋겠다. 왜일까? 놈이 나타날 때마다 사진 한 장씩만 찍어도 일종의 자료가 될 것이다. 잘만 하면 온전한 동영상을 찍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헌데 말이 쉽지, 언제 어디서 나올지 알 수도 없거니와 눈도 마주치기 전에 벽 타넘어 사라지는데 무슨 사진을 찍는단 말인가?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닐 수도 없고.

 마치 놀림받는 것처럼 신경에 거슬리기에 한번은 길바닥에 굴러다니던 녹슨 철근 조각을 주워서 괴물이 숨어들어간 구멍으로 집어던졌다. 이미 또 어딘가로 이동했겠지만. 놈은 일정한 거리 이상 다가오지 않았고, 내가 눈치채는 순간 부지불식간에 사라져 버리곤 했다. 무시하고 싶어도 특유의 털이 떨리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오면 알아채지 못할 수가 없었다. 꼴에 털이 마찰하는 소리에도 여러 종류가 있었는데, 거칠게 파스스 떨리는 소리에서부터 쏴아아 하는 소리까지 다양했다.


오늘은 이모 가게에 손님이 없었다. 인생과 인간에 대해 사뭇 진지하게 토론하던 중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그 주제를 꺼냈다.

 “전에 고양이끼리 서열 싸움 얘기하신 거 말이에요.”

 “고양이가 뭐? 내가 그런 얘기를 했었나.”

 종업원은 카운터에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중이었고, 이모와 나는 구석자리에서 땅콩 한 그릇을 놓고 물을 마셨다.

 “네에, 요전에…… 사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좀 다른 얘기인데요.”

 “뭔데.”

 “관련이 없는 건 아닌데, 그러니까, 고양이가 덩치가 엄청 크면 말이에요.”

 “아아, 무슨 얘기 하는지 기억났다. 그거? 고양이끼리 싸운다는 거?”

 “네, 네에.”

 “그거 아니었댄다. 사람 짓이래.”

 “네?”

 “어떤 미친놈이 주인 없는 개나 고양이만 찾아다니면서 잡아죽였댄다. 일부러 시체를 헤집어놓기도 하고, 그거를 무슨 동영상을 찍어서 올렸대나 뭐래나. 또라이 새끼.”

 “사람이라고요? 경찰에 잡힌 거에요?”

 “그렇지 않을까? 나도 그냥 누가 말하는 거 지나가다가 들은 거라서. 확실히는 몰라.”

 “결국 고양이도 아니고 살쾡이도 아니고 사람 짓이라는 말씀이죠?”

 “내가 직접 본 건 아니야.”

 이모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믿거나 말거나로군. 땅콩 두세 알을 집어먹고는, 물 한컵을 마시고 일어섰다. 이모가 등받이에 기대며 물었다.

 “요즘 힘드냐?”

 “어…… 뭐 괜찮아요.”

 과장된 미소를 지어보이자 이모도 익살스럽게 웃어주셨다.

 “얌마, 뭐 시험공부라는 게 그렇지. 똑똑한 애들은 몇 달 하고서도 고시 붙고 그런다고는 하는데 사실 걔들은 타고나기를 그렇게 난 놈들이고. 다 머리가 거기서 거기인 놈들이 어떻게든 딴놈 밟고 올라서려고 아둥바둥 하는 건데 안 힘들겠냐.”

 “그런가요…….”

 “답답하면 종종 놀러와. 너무 자주는 말고. 언니 눈치 보인다.”

 “네. 감사해요.”

 멋쩍게 웃어보이고는 가게를 나섰다. 집에 가기 싫었지만 이미 시간이 너무 늦었기 때문에 잔소리 듣지 않으려면 가야 했다. 야밤에 싸돌아다닐 기분도 아니고. 늦겨울에 내린 눈이 미처 녹지 않아 질척했다.


집에 다 와갈 무렵 또다시 스산한 기분이 들었다. 차도 사람도 지나다니지 않는 밤 골목길. 담벼락 위에 웅크리고 있는 검은 그림자. 블록 하나를 돌아가기 싫어 택한 지름길이었는데 하필이면 이 때 말이다. 멀찌감치 서 있는 가로등 불빛을 받아 이전보다도 한층 더 커보였다. 미세하게 떨리며 소리를 내는 굵은 털들. 벽돌담 꼭대기를 부여잡은 발톱은 하나하나가 내 손가락 만했다.

 한발짝씩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잠시 서로를 노려보다가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을 꺼네 잠금을 풀고, 카메라를 켜고 나서 들이댔더니 그새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액정에서 나오는 빛 때문에 시야에서 놓친 것이 분명했다.

 맥이 빠져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는데 이번엔 뒤에서 버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비교적 진심으로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지금 날 가지고 노는 거지? 천천히 몸을 돌리자 개 한마리가 골목 어귀에 떨어진 과자 봉투 냄새를 맡고 있었다. 본래 희었을 털이 때를 하도 타서 거무죽죽했다. 개는 코끝으로 봉투를 들어올려 주둥이를 밀어넣더니 건덕지가 없는 것을 깨닫고 종종걸음으로 사라져 버렸다.


한동안 놈이 나타나지 않았다. 털 떨리는 소리는 물론이거니와, 황급히 숨어드는 그림자조차 포착할 수 없었다. 어찌 마음은 후련해졌는데, 한가지 의문이 남았다. 고양이를 괴롭힌 범인이 사람이라면, 결국 그 검은 놈은 고양이와 아무 관련 없었다는 얘길까? 그냥 쓰레기장을 뒤지는 야생동물이었을까?

 문득 궁금해져서, 내가 사는 동네 이름을 포함한 뉴스를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인터넷 뉴스엔 별의 별 시덥잖은 내용까지 다 올라오지 않는가. 대충 한 달 전 날짜부터 쭉 찾다 보니 동물학대 어쩌구 하는 뉴스가 딱 하나 걸렸다. 한 청년이 연속적으로 유기견이나 유기묘를 잔혹하게 살해하다가 주민 신고로 적발되었다는 것. 동영상을 업로드했다거나 하는 내용은 없었다. 뭐, 그거야 사소한 부분이니까. 어쨌든 이모 얘기는 사실인 듯했다.

 별 생각 없이 스크롤을 내리다가 댓글란을 보게 되었다. 동물학대범에 대한 분노의 댓글이 서너 개 정도 달린 가운데, 이상한 댓글이 하나 있었다.

 ‘제 친군데요, 절대 동물학대범 아니고 현장에서 오해받은 겁니다. 유기견 유기묘 해친 건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에요. 친구와 저는 그걸 쫓다가 동물 괴롭히는 걸로 오해받아서 경찰에 신고당했어요. 괴물이 한 짓입니다. 어떻게 해도 믿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이런 데라도 하소연하고 있네요. 친구 나쁜 사람 아닙니다.’

 동물학대범의 진실은 괴물을 쫓던 것이라. 괴물 말이다. 내가 본 그놈과 같은 괴물일까? 나 말고도 녀석을 쫓아다닌 사람이 또 있었다는 사실.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어쩌면 이미 수상쩍은 짐승의 소식이 암암리에 퍼져서 각지의 흥미를 가진 사람들이 찾아왔을지도. 그러다가 갑자기 허탈해졌다.

 인터넷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올린 댓글이 내 경험과 일치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런저런 논리를 뭉치고 다져서 오히려 난 동네를 돌아다니는 그것이 정체불명의 괴물 같은 건 아니라고 믿게 되었다. 뭐든지간에 산에서 내려온 야생동물인데 나를 포함한 사람들이 제멋대로 오해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시꺼멓고 지저분하고 사람을 경계하는 야생동물이 수상해 보이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하루는 유난히 공부가 잘 되어서 기분이 괜찮았다. 그래봐야 기출문제 한 세트를 틀리지 않고 풀었던 것에 불과하지만. 집에 와서 늦은 저녁을 먹고, 퇴근한 부모님께 인사하고, 방에서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며칠 전부터 해오던 중대한 고민에 대해, 조금 전 결심이 섰기 때문이다. 결의에 찬 내 시선과 손가락은 서울시 공무원 원서접수 페이지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저 시험을 보겠다고 신청한 것 뿐인데 진이 다 빠졌다. 상당부분은 이것저것 설치하라고 하는 귀찮은 홈페이지 구조 때문이다. 누워서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다가, 인터넷을 보다가 새벽 두 시가 지나서 잠들었다. 얼마나 단잠을 잤을까, 꿈을 꾸는데 하늘에서 통 통 하고 쇠북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꿈에 집중할 수가 없어 아주 거슬렸는데, 그러다 퍼뜩 의식이 들며 깨달았다. 꿈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뭔가 내 방 창문을 규칙적으로 두들기는 중이었다.

 누운 자리에서 목만 움직여 고개를 창문 쪽으로 향했다. 내 방에 난 창문은 골목에 면해있는데 2층인지라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든다. 그 불빛을 커다란 그림자가 가리고 있었다. 가시가 촘촘하게 돋아난 것처럼 거슬거슬한 윤곽, 길다랗게 내뻗은 네 개의 다리, 기이하게 떨리는 손바닥 만한 머리통. 그 놈이 내 방 창문에 들러붙어 있었다. 머리가 진동하면서 움직여대는 바람에 창문을 툭툭 건드려 소리가 났다.

 “으아아악!!”

 온 몸에 소름이 돋아 이불을 박차며 일어났다. 다리 한 쪽이 이불에 감겨 균형을 못 잡고 침대에서 굴러 떨어졌다. 그러는 와중에도 놈을 시야에서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방에선 야단법석이 벌어졌는데 괴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저놈이 창문을 깨고 들어오려는 건가?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으나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입만 벌리고 있었다. 일각이 천추 같은 몇 초가 흐르자 방 밖에서 둔탁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뭐냐, 뭔 일이야?”

 아버지 목소리였다. 다시금 놀란 나는 방문 쪽을 돌아봤다가 급하게 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검은 그림자가 쏜살같이 창문 위쪽으로 올라가 사라지는 장면을 간신히 포착할 수 있었다. 나는 뛰는 가슴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대답할 말을 찾았다. 잠에서 급하게 깼더니 목이 메어 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침대에서 떨어졌서 좀 놀랐어요.”

 “뭐?”

 아버지가 궁시렁대는 소리와 함께 발소리도 멀어져갔다. 방 안에 정적이 내려앉고 내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 내가 너무 과하게 놀란 걸까. 몸이 떨리면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혹시라도 파스스 털 떠는 소리가 다시 들려올까봐. 동이 틀 때까지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몇 시인지도 모르는 채 일어나 방에서 나왔더니 이모가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계셨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이모는 날 돌아보며 물었다.

 “너 밤에 뭐 소리지르고 날뛰고 그랬다며?”

 아버지가 얘기한 건가. 예민한 양반, 별 걸 다 보고하는군.

 “그냥 좀 놀랄 일이 있어서요.”

 “흠…… 잠은 제대로 자는 거 맞냐? 요새 어디 안 좋아?”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는 작은 소파에 주저앉았다.

 “그, 어디부터 말해야 될지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이모는 고개를 돌려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어디부터 말해야 하지?

 “혹시 요전에 고양이 죽인 범인 얘기 기억하시나요?”

 이모는 살짝 미간을 찡그리더니 피식 웃었다.

 “아직도 그 얘기야?”

 “사실 좀 복잡해서요. 그, 뭐라고 해야 하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 사람 아니라고 생각해요.”

 “엉? 사람이 한 짓이 아니라는 소리냐.”

 “네. 갑자기 이런 얘기 좀 뜬금없겠지만 뭐가 그랬는지 저는 알 것 같거든요.”

 “뜬금없긴 하다만.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요즘에 계속 그게 보여서 이제는 좀 무서워요.”

 “뭐가 보인다는 거야?”

 “그거요. 괴물. 전에도 한번 말씀드린 적 있는데, 그때는 좀 확신이 없었지만…….”

 이모는 다시 미간을 찌푸리며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괴물?”

 나는 놈의 생김새를 묘사했다. 털, 발톱, 몸집, 거미 같은 몸통. 벽을 타오를 수 있으며 쓰레기장을 뒤져서 먹이를 찾고, 거기다 어젯밤 내 방 창문에 붙어있던 일까지. 내 얘기를 다 들은 이모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말이 되냐, 그게?”

 “어이 없는 소린 줄 알지만 진짜에요. 인터넷에서 찾아봤는데 이 동네에서 저랑 똑같이 이상한 괴물 같은 걸 본 사람이 있었다고요.”

 “그놈의 인터넷은.”

 이모는 또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 공부하느라 힘든 건 알지만 너 부모님도 힘들어. 언제까지 집이랑 학원만 왔다갔다하면서, 제대로 시험을 치는 것도 아니고, 응?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래?

 “그게 중요한 문제는 맞는데요, 저한테도 급한 사정이에요.”

 “급한 일 뭐. 너 몇 살이지? 이제 스물일곱이잖아. 너희 부모님이랑 내가 열심히 일해서 돈벌어가지고 이 집에서 먹고 살고 너 공부도 시켜주고 하는데 너는 언제 사람 구실 할래.”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라…….”

 “그거 말고 무슨 얘기가 필요해? 니 아버지도, 나도 언니도 삼 년이나 봤으면 다 알아. 너 공부 제대로 안 하는 거. 니 아버지 요새 회사에서 힘들어서 마음고생도 심한데 너까지 왜 그래?”

 어제 드디어 시험을 보겠다고 신청도 해놨는데, 말하고 싶지 않았다.


현관문을 나서면서 어젯밤 일이 생각나 집 옆쪽으로 돌아가봤다. 멀찌감치서 내 방 창문 밑을 살폈더니, 깃털 같은 게 수북히 떨어져 있었다. 깃털이 짙은 회색에 꽤나 긴 것으로 보아 비둘기 같은 새인가? 게다가 창문 바로 밑에 깃털이 잔뜩 날려 있다는 점이 수상쩍었다. 놈이 붙어있던 자리 아닌가. 오싹했지만 더 이상 생각하기 싫어 잽싸게 도망쳤다.

 오랜만에 피시방에 와서 시간을 때웠다. 컴퓨터로 하는 게임은 안 한지 오래라서 기억을 더듬어 할만한 게임을 찾았다. 별 재미도 없는 것을 몇 판이고 했더니 시간은 금방 잘 갔다. 그래도 결국은 집에 들어가야 하기에 갈수록 더 흥이 식었다. 계산을 마치고 나오니 이미 어둑했고 배가 고팠다. 친구에게 연락을 시도해 결국 저녁 약속을 잡았다. 뭘 먹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의지와 상관없이 발을 움직여 집에 다 왔는데, 인적 없는 길에서 놈의 소리를 들었다.

 ‘파스스스.’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구석에서 새어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난 낮에 본 광경이 떠올라 집 건물을 둘러서 간신히 어깨너비가 되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콘크리트를 바른 회백색 담이 칙칙해서 낮에도 내다볼 일 없는 구석이건만.

 발소리를 내지 않도록 헛된 노력을 기울이며 한걸음씩 나아갔다. 창문이 있는 지점에 도달하기도 전에, 골목의 어둠 속에 도사린 검은 형체를 식별할 수 있었다. 땅바닥에 웅크리고선 털 떠는 소리를 냈다. 가로등 불빛이 들어 놈의 탁한 청색 안구가 희미하게 빛났다. 어떻게 할까 잠시 망설이다가 핸드폰을 꺼냈다.

 이제 내가 어디 사는지도 알았으니 경계할 필요도 없다는 뜻일까, 놈은 내가 핸드폰을 꺼내는 와중에도 미동조차 없었다. 추워서인지 어째서인지 후들거리는 손으로 잠금을 풀고 화면을 터치해 카메라를 켰다. 지난번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시선은 괴물에게 고정한 상태로 화면을 더듬었다.

 ‘찰칵’

 인공적인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렸으나 놈은 여전히 꿈쩍도 않았다. 제기랄, 플래시가 안 터져서 아무것도 안 찍혔을 것이다. 나는 놈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반쯤 어림짐작으로 플래시 기능을 켰다. 그리고 다시 카메라를 녀석에게 들이대는 순간, 검은 화면 너머로 검은 덩어리가 내게 달려드는 광경을 포착했다.

 “악!”

 외마디 비명조차도 다 지르지 못하고 숨이 턱 막혀 버렸다. 놈의 머리통이 내 배를 강타했으니까. 나는 뒤로 벌렁 나자빠져서 스마트폰을 놓쳐 버렸다. 아니, 핸드폰을 걱정할 때가 아니지. 거의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렸지만 놈의 앞다리가 머리와 팔 사이로 파고들었다. 꺼슬꺼슬한 털이 이마와 뺨을 할퀴었다. 그 발톱이 내 턱에 닿는 순간 섬뜩한 느낌이 들어 크게 버둥거렸다.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했지만 목에 상처가 나는 것은 피했다. 대신 발톱이 입가를 할퀴어 뺨에 큰 상처를 입었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생살이 찢기는 감각. 하지만 아플 새도 없이 피가 턱을 따라 줄줄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골목이 좁아서 팔다리를 크게 휘두를 수 없었고, 놈이 내 등과 목덜미를 긁어대는 동안 기다시피 해서 가로등 밑으로 달려나갔다.

 불빛이 있는 장소로 나왔는데도 괴물의 힘이 빠지는 기색은 없었다. 나는 상체를 마구 뒤틀며 팔을 흔들어 놈을 떼어내려고 했다. 오른다리에 매달린 털투성이 짐승을 벽에다 대고 뻥 찼다.

 “끼이이익!”

 타격이 있는 건가? 매달리는 힘이 현저하게 약해진 것이 느껴져 다시 벽을 찼다. 이번엔 놈도 가만히 있지 않고 미끄러지듯 다리를 놓고 빠져나왔다. 덕분에 나는 벽을 차서 다시 비명을 질렀으나 괴물 역시 나를 더 공격하지 않고 골목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나무늘보와 거미를 합쳐 놓은 듯한 생김새와 움직임. 사람 팔 만큼 긴 네 다리를 휘적휘적 움직여 기어갔다.


뺨에서 나온 피가 옷깃을 적셨고, 그 피가 식어 축축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일단 가슴을 쓸어내렸다. 스마트폰을 주워 주머니에 쑤셔넣고서는 주변을 둘러봤다. 나에겐 일대 소동이 벌어졌는데 이웃 사람들은 내다보는 이 하나 없고. 갑자기 뺨이 미친듯이 쓰라리기 시작해서 저절로 신음이 새어나왔다. 비척거리는 발걸음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도어락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이 부들거렸다.

 집은 컴컴했고 아무도 없었다. 우선 피를 닦아야, 아니 소독과 지혈인가?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수건을 가져다가 싱크대에서 뜨거운 물로 적신 후에 다시 짜서 뺨을 닦았다. 거울을 보고 나서 목덜미와 어깻죽지에도 긁힌 상처가 수도 없이 있음을 알았다.

 구급약통을 뒤져 연고를 찾았다. 요즘 외상 연고엔 소독 성분도 들어있다고 하니까. 일단은 병원에 가기 전에 잔뜩 발라둬야 할 터이다. 상처는 점점 더 고통스러워졌다. 연고를 되는 대로 손바닥에 짜서 뺨에 처덕처덕 발랐다. 그새 턱에 고인 핏방울이 바닥에 똑 떨어졌다. 쓰라림을 참을 수가 없어 연고를 바르던 손으로 뺨을 부여잡고 발을 쿵쿵 굴렀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턱을 움직이면 더 아플 것 같아서 속으로만 바람을 뺐다.

 바닥에 웅크려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딱딱한 물건으로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톡. 톡. 황망하게 고개를 들어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살폈다. 거실 창문에 거대한 거미 같은 그림자가 들러붙어 있었다. 놈의 발톱이 창문을 건드리며 톡 톡 하는 소리가 났다. 보일러를 켜지 않아 집에는 냉기가 감돌았고,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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