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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12월 거울 독자 우수단편 심사를 맡은 박애진, 김이환입니다(A와 B는 계속 바뀝니다). 

일상 생활에서 겪는 좌절, 고통, 분노, 냉소 등을 다룬 글이 점점 많아집니다.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는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글들이 대부분 비슷한 내용으로 이어지다가 비슷한 결론을 내리는 점이 아쉽습니다. 억지 희망을 찾는 글을 쓰라는 건 아닙니다. 단지 자신의 소설이 프로와 아마추어, 신인과 거장을 포함한 동시대 다른 많은 작가들이 이미 많이 사용한 소재를 다루고 있음을 인식하셨으면 합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이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번 달에는 규정 분량을 초과한 단편 하나(<모두를 파괴할 힘> 210매), 심사 제외를 신청한 네 편의 단편(<괴우주야사 외전: 최고신족, 최강제국에 항복>, <괴우주야사 외전: 욕망의 부름 받으라>, <착하게 살자>, <괴우주야사 외전: 이름 겨루기>)을 제외한 다섯 편의 단편을 심사하였고, 아쉽게도 우수작을 선정하지 못했습니다.


창원여행 그것은 옳았는가 - 중독안돼

너무 겉멋이 든 글이었습니다. 전역한 후 친구를 만나 저녁 한 끼 먹고 온 간단한 이야기인데 문장과 표현이 과합니다. 고등학교를 가리키는데 굳이 “그와 내가 같이 속했던 집단”이라는 표현까지 쓸 이유가 있을까요? 동영상으로 쉽게 돈을 벌고 있을 뿐인데 이태백까지 들먹이며 “행동을 하고 있군.”이라는 말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주인공이 생각이 과한데 비해 막상 시간이 비자 pc방에서 게임을 하듯,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이태백, 플라톤, 소크라테스까지 거창한 인물들을 들먹이며 스스로와 견주는데 그럴 만한 인물들이 아닙니다. 말만 했을 뿐 실제 무얼 하는지 제대로 그린 게 없기 때문입니다. 
문학 작품을 많이 읽은 듯 보이는데, 문장을 멋 부리며 따라하는 식으로만 받아들이고 작품의 핵심은 놓친 듯합니다. 자의식 가득한 주인공의 독백일 뿐 소설이 될 만한 ‘사건’이 없습니다. 문장에서 힘을 빼고 이야깃거리가 될 만한 사건을 찾아 그리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잠시 책에서 눈을 돌리고 실제 주변에서 소재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B 주인공은 창원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여행을 시작해서 친구를 만나기까지 도입부가 긴 편인데, 그렇게 길 필요가 있나 싶습니다. 창원이라는 공간이 주인공과 친구 사이의 대화에서 중요한 배경을 차지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또한 긴 도입부 때문에 글의 균형이 잘 맞지 않는 것도 같습니다. 이를테면 뒤에 등장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친구의 여자 친구에게도 충분한 시간이 있었으면 합니다. 주인공과 친구가 나누는 대사는 다소 작위적입니다. 글의 주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데, 이런 방식이 주제를 전달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을지 고민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지금은 대사가 작위적이어서 글이 전체적으로 뻣뻣한 느낌이 듭니다.



푸념 - 칭소마라

A 제목 그대로 푸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처음 글을 쓰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내 이야기가 매우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독자의 눈으로 보기에는 흔한 이야기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 이야기 역시 그렇고 그런 수많은 사람들이 하는 ‘푸념’ 이상이 아니었습니다. 주인공이 무려 자살을 시도하는데도 글이 밋밋합니다. 자살을 하기 까지 과정이 설득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말 같지도 않은 일들에 허덕이며 괴로운 중에도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이 정도 푸념으로 자살을 하다니요. 독자를 설득하기에 한참 부족합니다.
일상적인 소재나 인물로 이야기를 쓸 때는 힘을 빼고, 보편성을 획득하도록 해야 합니다. 평범한 인물인데 특별한 양 그리면 지루합니다. 최소한 “이런 인물은 세상에 넘치도록 많아.” 라는 마음가짐만 가지고 써도 나아집니다.

B 문장의 조합이 독특합니다. 어떻게 보면 개성 있고 어떻게 보면 어수선한 논리로 문장과 문장이 연결됩니다. 글은 분량이 꽤 지나도록 소설이 아니라 거의 수필에 가까운 자기 고백으로 이어지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사건을 풀어놓습니다. 주인공이 자살을 결심하는 극적인 이야기지만, 자살이 요즘의 소설에서 많이 다뤄지는 소재라서 그다지 극적으로 보이지 않기도 합니다. 슬픈 현실이지만 정말로 그렇습니다. 이야기는 주인공의 꿈이었다는 내용으로 마무리 되는데, 이것이 상당히 맥 빠지는 결말임은 알고 계실 겁니다. 글의 단순한 구조를 고려하면 나름 어울리는 결말이기는 하지만, ‘알고 보니 꿈’이라는 결말이 가지는 약점이 없어지진 않습니다.



임모럴리스트 - Jo2's

A 이만큼 긴 글을 쓰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름 최선을 다 해 설정을 만들고 이야기를 쓰시느라 애쓰셨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이야기는 글을 쓴 분의 머릿속에만 있을 뿐, 읽는 사람들을 전혀 설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 전에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부터가 힘듭니다.
먼저 이들은 인간이 아닌 다른 행성에서 사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어떻게 인간과 다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가 있고, 아버지는 훌륭한 요리사인데도 요리는 음식을 쓰레기를 끓인 것보다 못하는 어머니가 합니다. 왜 일까요? ‘슈퍼영웅R’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걸 이해하려면 영웅과 배덕자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영웅과 서로 대적하는 배덕자에 대해 원래 타고난 유전자가 그렇다는 것 이상으로 흥미로운 대립 구도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영웅과 배덕자의 대립 구도도 납득하기 힘든데, 등장인물이 ‘슈퍼영웅R'을 열심히 보는 이유 중 하나인 ‘레가트 프리데릭’이라는 인물을 알아야 합니다. 이 인물은 ‘전 은하를 통틀어 최강의 영웅’이었다는데, 이 설명은 길고 화려한 수식일 뿐 독자들이 그 인물의 뒤를 이을 다른 영웅을 기다릴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순간순간 재미있는 부분들이 없었던 건 아니나 전반적으로 너무 산만하고 이야기에 몰입하기 어렵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 그렇습니다. 과감히 가지를 쳐야 합니다. 전설의 영웅, 일종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영웅과 대적자, 평범한 한 가정 중에서 하나만 골라 집중해서 이야기를 써보시기 바랍니다.

B 독특한 분위기의 소설입니다. SF 소설이면서 오디션 프로그램을 소재로 삼아 도덕성에 대해 다룹니다. 처음에는 주인공의 시선으로 시작했다가 중간에 오디션 프로그램 제작자의 시점이 끼어들어서 혼란스러웠습니다. 물론 3인칭 시점이므로 인물을 따라 시점을 이동할 수는 있지만, 이야기의 주인공이 텔레비전을 보는 스펙인지, 아니면 영웅 오디션에 참가한 안드레와 마슬린인지, 혹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들인지 다소 혼란스럽습니다. 독특한 설정이 많이 등장합니다. 때문에 내용이 간단하면서도 또 간단하지 않은 글이 되었습니다. 저는 다소 희한한 분위기의 소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뜬금없이 괄호를 사용하거나, 영웅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황당한 소재를 다룬 것도 그렇고, 독특한 분위기의 소설입니다. 분위기가 독특하기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글이 다소 낯설었습니다. 이 점이 글에서 재미를 느끼는데 약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편견 - 나즈

A 편견으로 상처 입은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편견으로 상처를 입히는,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 이야기입니다. 주제는 잘 잡았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서술로 설명하거나 대화로 풀어 지루했습니다. 두 남녀가 겪은 일들이 모두 피상적입니다. 한두 가지라도 인물들이 겪은 일들을 깊이 있게 그려 보여주었다면 하는 점이 아쉽습니다. 무엇보다 소설은 중심 사건이 필요한데, 소개팅으로 만난 남녀가 잠시 대화하다 끝난 게 전부입니다. 다음에는 사건에 좀 더 집중하는 이야기를 써보시기 바랍니다.

B 편견을 갖지 말자는 교훈적인 소재입니다. 편견을 다른 방식으로 극복한 두 인물이 등장하고, 이야기의 끝에서 독자는 새로운 교훈을 얻습니다. 좋은 이야기긴 하지만 인물도 구성도 단순하고, 때문에 고루한 느낌을 줘서 아쉽습니다.



산책과 한 마디 - 칭소마라

A ‘푸념’ 보다는 나은 글입니다. 적어도 고양이나 지현이라는 인물 등을 만나며 최소한의 ‘사건’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뭘 하든 그냥 허무할 뿐이라는 이상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지 못합니다. 1인칭이 아닌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글을 쓰면 어떨까 합니다. 화자를 1인칭으로 할 경우, 글쓴이 자신과 인물 사이의 거리가 좁아집니다. 글쓴이와 인물 사이가 좁아지면, 독자에게 인물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자기는 알지만 독자는 모른다는 걸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3인칭으로 서술하며 글쓴이와 다른 인물을 만들고, 그 인물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는 사람에게 인물을 보여주는 훈련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지현도 화자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본질적으로 비슷한 인물입니다. 여러 인물을 등장시킬 경우 인물들의 성격이나 고민, 고민을 해결하는 방법을 다르게 만드시기 바랍니다.

B 글이 다소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한 문장을 썼는데 뒤에서는 퇴고 때문인가 걱정하고, 햇볕을 받아야 좋다면서 밤에 산책을 나갑니다. 이후 이어지는 사건들도 느슨하게 이어져 있습니다. 주인공과 함께 글을 끌고 가는 여자 캐릭터는 개성이 없습니다. 애니메이션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귀여운 캐릭터를 너무 뻔하게 의도하는 느낌입니다. 이런 단점들 때문에 글이 허술해 보입니다. 단편소설의 밀도를 더 갖췄으면 합니다. 글의 반전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푸념>보다는 더 소설에 가까운 구조를 취하고 있는 것도 좋았습니다. 더 노련하게 이야기를 풀어놓는 방법을 고민하셨으면 합니다.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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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독안돼 15.01.01 02:42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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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칭소마라 15.01.03 02:57 댓글

    평가 감사합니다! 고민도 하고 좀더 신중하기도 해야 하고 좀 뜸해지겠네요! 일단 지금 쓰는 거 다 완성하고 3인칭도 다시 한번 노력해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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