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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독자 우수 단편 심사위원단 박애진 김이환입니다. A와 B는 계속 바뀝니다.

이 달은 아직 미숙한 글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소재도 너무 평범했습니다. 처음 글을 쓸 때는 진짜 겪은 일, 생각해서 만들어 낸 이야기가 정말 대단하고, 특별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독자의 눈으로 읽을 때는 달라집니다. 독자는 글쓴이가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느끼며 썼는지가 아니라 단지 글만으로 읽기 때문입니다. 좋은 글을 많이 읽으며 눈을 높이고 좀 더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자기 글을 평가하시길 바랍니다.

이번 달에는 깃님의 <이야기의 우물>을 우수작으로 선정했습니다.



나즈 - 레종

A 오래 전에 있었던 짧지만 인상 깊었던 만남을 몇 년 후 용기를 내 다시 이어가는 이야기입니다. 만나고, 함께 있던 순간들에 대한 서술은 나쁘지 않았습니다만, 그간의 이야기가 다소 피상적이고 전체로 보아 밋밋합니다. 그래도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아 읽는데 무리는 없었습니다. 

B 글을 꽤 읽고 나서야 도입부의 배경이 일본의 어느 카페라는 걸 이해했습니다. 나즈님의 의도인지 모르겠으나, 글 후반부는 매끄럽게 읽히는데 비해 도입부는 그렇지 않은 걸 보면 퇴고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하얀 꽁초의 산은 오랜 시간 계속된 열띤 토론의 결과가 지닐 가치를 증명해 주고 있는 듯 했다’처럼 지나치게 어려운 문장도 종종 등장합니다. 라디오 헤드의 Creep은 좋은 노래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지만, 그렇게 때문에 글에서 소재로 사용하면 상투적으로 보일 위험이 있습니다. 원 나잇 스탠드로 만난 여자와 낭만적인 사랑을 한다는 소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재미있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 가능성이 있는 소재지만, 그렇기 때문에 많이 사용하는 소재고 상투적인 내용으로 흐를 가능성도 큽니다. 원 나잇 스탠드 상대방이 감기에 걸려 있거나 걷다가 발뒤꿈치가 까지는 상황 등은 재미있었지만, 평범한 결말을 보여주고 흔한 이야기로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나즈님이 의도한 풋풋한 젊은이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라기보다는, 아직 가능성을 다 보여주지 못한 서툰 이야기로 보입니다. 이 점을 염두하고 수정했으면 합니다.



Joaquin - 시선이 머무는 곳

A 부제 그대로 짧은 사랑에 대한 추억입니다. 많은 이들이 겪는 일이기에 몰입하고 공감하며 읽게 되거나 너무 흔한 이야기가 되어 지루해질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이 글은 후자였습니다. 이야기에는 읽는 이들이 시간을 쏟아 읽을 만한 특별한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평범한 만남, 평범한 이별, 평범한 이별 후 이별에 대한 짧은 감상으로는 독자를 만족시키기 어렵습니다.

B ‘나의 짧았던 사랑의 기록’은 없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글 내용을 서두에서 직접적으로 밝히고 있으니 오히려 맥이 빠지는 느낌입니다. 이 글도 대학생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두 번의 연애를 했는데, 두 번 다 상대방을 사랑했지만 배려하는 방법을 몰랐거나 혹은 마음이 이어지지 않아 연애에 실패했다는 내용입니다. 연애 도중 있었던 작은 사건들이 재미있습니다. 사소한 디테일들이 연애 이야기에 현실감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크게 바라보면 두 번의 연애를 그냥 차례대로 나열했을 뿐입니다. 두 개의 사건이 아닌, 하나의 단편 소설을 읽고 싶었던 저는 결말이 다소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joaquin님이 글에서 털어놓는 솔직한 감정은 이 글의 분명한 장점이지만, 이 감정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를 더 고민해보셨으면 합니다.


니그라토 - 아프로디테와 인간

A 화자는 아무 의심 없이 아프로디테가 만들어주는 거짓 풍요를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별다른 반감이나 의문을 갖지 않고 힘든 삶을 사는 아버지를 따라갑니다. 아버지의 예상대로 어느 날 아프로디테는 떠납니다. 긴장도, 갈등도, 재미도 없습니다.

B ‘큰 변화가 되겠군요’라는 말이 결말이 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소 불분명해 보이는 결말입니다. 이야기가 중간에서 끝난 것 같은 느낌도 줍니다. 요약하면 금의 시대가 가고 은의 시대가 오는 이야기인데, 어찌 보면 이 요약이 글의 전부입니다. 캐릭터도 단순합니다. 아버지는 노력을 했고 아들과 같이 살아남습니다. 이야기도 인물도 단순하니 정말 한 편의 글을 읽은 건가 싶습니다. 좀 더 독자를 놀라 게 할 만한 요소가 글 안에 갖춰져야 할 것 같습니다.



하속 - 다시 쓸 수 있게 된 이야기

A 글을 쓴다는 것은 실질적인 행위입니다. 그런데 이 글의 화자는 어느 면, 피상적으로만 글쓰기를 이해하는 걸로 보입니다. 혹은 글을 쓰고 있다는 그 자체에 취해 있는 듯 하기도 합니다. 지나치게 강한 자의식은 독자가 글에 몰입하지 못하고 튕겨 나오게 합니다. 화자가 일상에서 겪은 일들도 막연하고, 본인에게는 큰일이겠지만, 넓은 시야로 보자면 누구나 겪는 평범한 일일 뿐이라, 단편 소설로 읽기에는 부족합니다.

B 다시 사랑 이야기입니다. 이번 달은 이런 글이 많은데, 한 달에 비슷한 소재가 겹치는 것이 신기합니다. 좌절해서 한동안 글을 쓸 수 없었던 주인공이 다시 글을 쓰게 되는데, 변화를 만들어 낸 건 젊은 여인과의 우연한 만남입니다. 자주 쓰이는 소재입니다. 문학 뿐 아니라 영화에서도, 젊은 예술가 뿐 아니라 나이 많은 거장들도 같은 소재를 사용합니다. 많은 사람이 사용하기 때문에 상투적인 내용이 되기 쉬우며 조심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이 글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수필에 가깝게 보일만큼 작가가 직접 주인공의 입이 되어 글 속에서 소리 내어 말합니다. 주인공과 만나는 여성의 입에서도 작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것 같습니다. 글을 쓰는 어려움에 대한 고민은, 저 역시 글을 쓰는 입장으로서 동감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우연히 만난 여인의 말에서 힘을 얻었다는 내용 이외에는 작가의 무거운 자의식이 무겁게 자리 잡고 있고, 그것 이외의 흥미로운 점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하속 - 전부의 실현 타나토스

A 세상이 멸망하고 20명이 살아남았는데 인물들 간에 변별력이 없습니다. “인간은 모두 똑같아요.”로 시작한 남자의 말에 20명이 아무도 반박하지 못하고 동의했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모두 동의할 수밖에 없는 말이 맞는지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몇몇 서술이 연설이나 강연처럼 보이는데 역시 그다지 설득력이 있는 말로 읽히지 않고요. 어떤 사람들에게는 설득력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정말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말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인물들이 인형처럼 화자의 말에 동의하는 관객 노릇만 하고 있습니다. 그럴 거면 굳이 20명씩이나 만들 필요가 있었나 싶습니다. 다른 인물들이 이야기 속에서 동의하는 걸로는 화자의 주장에 무게가 실리지 않습니다. 독자들이 이 이야기 속에서 화자가 하고 싶은 말을 느끼고 동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야기가 너무 피상적이고 어깨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갔습니다. 인물의 성격이나 관계를 독자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하지 못하고, 많은 부분 미숙합니다. 너무 무겁고 어려운 주제를 잡지 마시고 좀 더 일상적인 소재와 주제로 된 글을 쓰며 기초를 갈고 닦으시기 바랍니다.

B 지구에 종말이 오고 스무 명의 사람만이 남습니다. 정확히 어떤 종말이 왔고 어떤 존재가 종말을 만들었는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야기라기보다는 생각을 모아놓은 느낌이 들 정도로 구체적인 상황이 없습니다. 글의 비어있는 다른 부분은 주인공과 그녀 그리고 n과의 이야기가 채우고 있습니다. 글에는 그들의 이야기와 생각이 가득한데, 조리 있게 풀어놓기 보다는 사람의 생각을 그대로 들여다보듯 난해하게 흘러가고 있어서 정확히 어떤 이야기인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몇몇 부분의 논리는 잘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모든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놓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이 글은 죽음에 대한 무거운 상념이 혼란스럽게 드러나고 있어서, 지구에 종말이 오고 아직 살아있는 스무 명의 사람들이 그것을 돌려놓을 수 있다는 흥미로운 시작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흥미를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베렌 - 정치적 만렙

A 자기 부인이 바람을 피워 아이를 갖게 된 것과 그 아이와 부인을 보는 자기 심정을 히데요시와 그의 친아들인지 아닌지 논란이 있는 아이 이야기에 빗대었습니다. 이 둘을 이은 건 나름 재미있는 아이디어였지만 그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부부의 대화로만 밋밋하게 끝났습니다.

B 도입부에 집에 누가 왔었는지 남편이 의심하는 부분이 복선입니다. 이를 무마하려는 아내의 행동이나 남편과 아내의 대사, 캐릭터 묘사들은 매끈하게 잘 표현했습니다. 사극을 볼 때까지는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계속 되지만 아이디어는 사극에서 끝납니다. 텔레비전 속의 사극과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병치시키면서 반전을 끌어내고 있는데, 이 아이디어가 정말로 반전이 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설득력이 높지도 않고, 결말이라기보다는 이후로 이어질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으로만 보입니다. 마지막에 남편의 결심을 또 다른 이야기로 풀어내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혹은 아내의 부정을 열려있는 신발장으로 보여주듯, 남편의 결심을 다른 어떤 것으로 보여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의 결말은 다소 아쉽습니다.



깃 - 이야기의 우물

A 이야기를 우물에서 길어 올리고, 회처럼 살을 떼서 팔고, 가끔 정제하지 않은 이야기를 꿈꾸는 한율의 모습은 작가의 은유로 보입니다. 우물에서 이야기가 마른 후 어떻게 될지 궁금했는데 용두사미로 끝나 아쉽습니다. 한율이 여행하며 들른 곳들은 재미있는 서술들이 보이긴 했으나 본질적으로 ‘아름답지만 화자가 바란 것은 아니다.’로 반복되니 지루합니다. 좀 더 설득력을 얻으려면, 왜 그렇게 다양하고 흥미로운 곳에서 화자가 이야기를 얻지 못하고 지나쳤는지 매번 다른 갈등이 있어야하지 않나 싶습니다. 한율이 어떤 이야기를 찾는지 고민하거나 자기만의 이야기를 향한 갈망도 별로 보이지 않아, 용이 등장하는 꿈을 꾸며 끝나는 결말이 다소 뜬금없습니다.

B 우물에서 ‘이야기’를 낚지 못하자 주인공은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 떠납니다. 이야기를 상징할 다른 소재를 사용할 수도 있을 텐데, 이 글에서는 이야기를 그대로 ‘이야기’라고 부릅니다. 아마도 물고기의 모습을 한 것 같지만 이야기는 어쨌든 이야기입니다. 재미있는 아이디어입니다. 현실적인 배경에 판타지적 설정을 하나만 추가하고 글을 이끌어 갑니다. 주인공은 이야기를 찾아 여러 곳을 여행하고, 이런 짧은 이야기가 모여 하나의 단편이 됩니다. 이미지도 아름답고 디테일한 설정이 생생하면서 밀도 높습니다. 옴니버스식 구성이 감정을 풍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다 읽고 나면 긴 여운이 남습니다. 주인공이 마지막에 커다란 이야기를 꿈꾸는 결말은 작은 이야기가 모여 결말에 다다르면서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가 되는 것과 겹쳐져 흥미로웠습니다. 오랜만에 감동을 받은 좋은 글이었습니다.

독자 우수단편에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거울 우수단편에 선정되신 분들에게는 거울 책을 한권 보내드립니다. 깃님은 pena12 @ gmail.com 으로 우편물을 수령할 주소, 성함, 전화번호(택배 발송시 필요)를 보내주세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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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즈 14.11.01 01:36 댓글

    평 감사합니다. 좀 더 좋은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니그라토 14.11.01 08:51 댓글

    아프로디테가 헤파이스토스(대장장이, 기계의 신)과 결혼하는 것을 마지막에 언급함으로서, 이 글에서의 아프로디테가 향후 나타날지도 모를 인간 노동을 모두 대신해줘서 인류를 풍요로 이끌 인공지능을 상징한다는 것을 암시했는데, 부족했나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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