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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심사단 pena, 앤윈입니다. A와 B는 무작위로 바뀝니다.

서사를 만든다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고 설레는 일입니다. 다만 나 혼자서 즐거울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함께 즐겁게 만들기 위해서는 얼마나 보여줄지 얼마나 친절해야 할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죠. 하지만 그 고민의 과정까지도 창작이 갖는 고통과 행복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그 중간 어딘가를 함께 찾아나가는 과정에 같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저 역시 많이 배우는 기분입니다. 이번 달에는 네 편의 투고작이 있었습니다만 가작이나 우수작에 선정한 작품은 없습니다.
 * 심사과정에서 착오로 누락된 한 편의 평을 추가하였습니다. 선정결과는 같습니다. 누락되어서 오래 기다리신 깃 님에게 사죄 말씀 드립니다.



장마 - 그래서 나의 나는

A : 처음에 읽을 때 남자의 취향 치고는 특이하다 생각했지만,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받아들이는 이이다"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며 수십 번이나 겪었지만"이라는 말을 보고 '녀석'의 정체를 조금 특이한 남성으로 생각했습니다. 의도한 함정이었군요. 중간에 '여자 두 명이 앉아 있다'는 말은 두 번째 읽었을 때에야 눈에 들어왔네요. 그런데 이 반전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여상하게 동성끼리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 그렇게 보기엔 각 인물에 대해 이입할 만한 시간과 디테일이 부족해 보입니다. 목표지점을 확실히 하고 그에 필요한 것을 보완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B : 반전 그 자체에 서사의 모든 힘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여성과 여성의 사랑만으로는 그렇게 크게 반전의 힘이 실리지 않네요. 분량의 탓도 있을 것이고, 둘 사이의 사랑에 집중되기에는 서사가 부족한 탓도 있을 것입니다. 내부를 좀 더 풍성하게 만든다면 (그리고 여러 가지 장치들을 더 한다면) 반전에도 힘이 실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낙폭이 너무 적어요. 문장 속에 발랄한 비유들이 돋보입니다. 다만 너무 과도하게 나갈 때도 있기는 하네요.


부엉 - 표절방지기

A : 짧은 분량이었지만, 작가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부분에 대해서 담담하고 날카롭게 풍자한 점이 좋았습니다. 다만 모든 작가들이 두려워하는 부분이 무의식적인 표절 가능성인 만큼 이런 이야기는 소설로도, 단편영화로도 이야기된 바가 있습니다. 표절방지기를 다룬 이야기에서 말하니 공교롭지만 그런 매체들을 찾아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B : 표절을 방지할 수 있는 기계가 결국 창작을 수행하는 기계까지 화하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사람이 흥미를 느끼는 서사라는 것은 일정한 틀을 가지게 마련이고 인간은 그런 부분에 대해 너무나 많은 연구를 거듭해 왔습니다. 이제는 실제로 창작을 수행하는 기계가 있고,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많은 작가들이 자신이 ‘작가’로서 존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해 가장 고민을 하는 부분도 이 점이겠지요. 두려움을 포착한 날카로운 시선은 훌륭합니다. 다만 그 고민을 끝까지 밀어붙이진 않으신 것 같아요. 그렇다면 작가가 글을 쓰는 행위는 과연 무엇일까요? 그 부분에 대해서까지 진지하게 고민을 해 보시면 좀 더 풍성한 소설이 나올 수 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대사 처리가 뒤섞인 부분이 있습니다. 의도적인 장치로 보이지는 않는 것으로 보아 단순한 실수로 보이네요. 꼼꼼한 퇴고를!


어느 지방 사서 - 탐정

A : 탐정이 처음에 하던 일에 대한 디테일이, 탐정이 실제로 받는 메인 의뢰 부분보다 상세합니다. 또한 수상한 점이 많은 그 의뢰는 용의자로 의심받는 딸이 찾아와서 이야기로 풀 것처럼 하다가, 그나마도 탐정이 거절했고요. 허무함, 또는 흥미나 무엇으로도 움직일 수 없는 탐정의 무감각한 일상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면 전체적인 톤을 더 단정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그것이 목적이었다 해도 일상 부분과 메인 이야기 부분의 분량을 비슷하게 맞추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정서나 느낌을 전달하고자 한다면 좀 더 섬세하게, 가능하다면 '기승전결이 있는이야기'를 담은 글을 쓰시길 부탁드립니다.

B : 탐정이 대체 무슨 사건을 맡았던 것인지, 어떤 관계에 놓였던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저렇게라도 돈을 받으니까 생계가 유지되는구나…… 정도의 정보만 알게 되었네요. 이야기가 분명히 있고, 주인공도 움직이고 있는데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으니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래서 ‘무슨’ 이야기인 거죠?


조나단 - 이상한 처녀귀신

A : 지속적으로 귀신의 부름을 듣다가 드디어 주인공인 처녀귀신을 만난 밤의 일화를 다룬 작품입니다. 전제로 사람의 본질은 어떤 상황에서 드러나는가를 주제의식으로 앞과 뒤에 깔았는데, 본편인 일화와 처녀귀신이 오해한 이유는 아주 가벼운 편이라 어울리지 않는 느낌입니다. 아주 작은 일화에서 사람의 본질이 보일 수 있고, 그런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소설의, 특히 단편소설의 강점이겠습니다만, 이 단편에서 성공적으로 그런 순간을 포착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본 내용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고, 앞뒤의 '말하는' 부분을 줄이는 것이 작품의 완성도에 더 나은 방향일 듯합니다.

B : 일반적인 처녀귀신의 스탠다드형에서 벗어난 아주 귀여운 처녀귀신의 이야기입니다. 한참을 원한을 털어놓다가 자신이 완전히 다른 사람을 찾아왔다는 것을 알고 당혹스러워 하는 처녀귀신의 캐릭터와, 그 이야기를 굳이 중간에 끊지 않고 끝까지 다 들어 준 다음에 처녀귀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는 주인공의 캐릭터가 어우러져서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이 뒤에 두 사람이 다시 만날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좀 아쉽기도 하네요. 이야기의 서사 자체는 즐거운 소품이었으나, 소품으로 끝내기 싫다고 생각한 작가의 욕망이 앞뒤에 과도한 의미 부여를 한 듯 합니다. 사람의 본질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끌어낼만큼 무거운 이야기는 아니네요.


깃 _[펌] 귤말랭이 괴담

A : 제목에 [펌]을 단다든지 '이건 내가 겪은 일인데'를 비롯하여 '힘들게 썼는데 올려줌?'으로 마무리하는 방식, 중간중간 채팅체처럼 어미를 생략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최선을 다해 섬세하게 현대적 구전문학을 재현한 작품입니다. 심사에서 제외되지 않도록 제목에 표시라도 해두었다면 더 좋았겠습니다만, 변명이 되겠군요. 심사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시대적이고 성별차별적인 아픔이 깔린 뒷이야기가 섬뜩하고 애잔합니다. 다만 정말로 블로그 글이나 게시판 글이었다면 자연스러웠겠지만 앞의 사족이 굉장히 깁니다. 이 소재를 이런 식으로 처리하는 게 가장 나은 방식이었을지 고민해보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예를 들어 거울에서는 정도경 작가님의 {참기름} 같은 것이 개인사와 괴담을 연결시킨 사례라고 할 수 있는데, 소설로서 균형과 전개를 맞추면서도 구전적인 느낌을 살릴 수 있을 듯합니다. 그게 아니라 꼭 이 형식이어야만 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B : 1930년대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의 파시즘 정권이 지배했을 때 마누엘 코르테스라는 공화국 지지자는 처형이 두려워서 자신의 집에서 숨어 지내기 시작합니다. 독재정권이 곧 끝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웬걸, 독재정권은 1970년대까지 지속되고 코르테스는 그때까지 집 안에 숨어 지내게 되죠. 한국에서는 <벽 속의 요정>이라는 제목으로 손진책 연출가가 각색하기도 한 이야기입니다. 6·25를 배경으로 빨갱이로 몰린 남편을 평생 벽 속에서 먹여 살리는 여성의 이야기를 모노드라마로 다루고 있지요. 매우 신기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어느 나라에서든 비극적인 경험들을 통해서 환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인 서사입니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로 6·25라는 배경을 더욱이 모노드라마도 아니고 체험기도 아닌 ‘대중서사’의 방식을 차용해서 서술하고 있다는 게 매우 흥미롭습니다. 과연 그 귤말랭이를 누가 만들었을까도 재미있는 이야기고요. ‘매일같이’ 친구가 밥을 먹고 오는 바람에 그 할머니의 ‘오빠’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하는 전형적이면서도 극단적인 추측까지 가능하게 한다는 점, 그리고 그것을 명확하게 규정지어주지 않아 독자에게 상상하게 한다는 점도 대중서사로서 훌륭한 미덕입니다. 다만 왜 ‘귤말랭이’가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로 드러나야 하는지는 제게는 상당히 의문이네요. 맛있기는 했겠으나, 중요한 단서로 드러나는 점은 하나도 없거든요. 그럼에도 신선한 시도였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저 자신도 네이트 판이나 일베, 오유 등에 올라오는 글을 읽듯이 즐겁게 읽어내려갔습니다.
댓글 2
  • No Profile
    부엉 14.06.02 16:38 댓글

    평가 감사드립니다! ^^ 그런데 대사 처리가 뒤섞인 부분이 있다고 하셨는데 정확히 어느 부분인지 알려 주실 수 있으신가요? 저는 제가 쓴 글이라서 그런지 다시 읽어도 잘 보이지가 않네요.. 가르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No Profile
    14.09.28 08:08 댓글 수정 삭제

    평가 감사드립니다.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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