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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총평입니다. 이 달에 올라온 글들은 대부분 가장 중요하게 공을 들여야 할 부분을 회피한 글이 많이 보였습니다.
사건이나 글 전체에 구체적인 실재감, 박진감,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꼭 묘사해야 할 부분, 꼭 갖춰야 할 부분을 어렵다고 회피하고 넘어가고 쓰기 쉬운 부분만 쓴 느낌이 강합니다.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지금 당장 쓰고 싶은 것, 지금 당장 한 편의 이야기를 완성시키는 것 이상으로, 그 이야기가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어떤 장치가, 설정이, 배경지식이 필요하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무엇을 더 해야 하는가에 대해 좀 더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아키님의 “로드런너 - 꿈의 지팡이”는 꿈을 향해 ‘계속’ 나아간다는 걸 보여 주기에는 단편에 등장한 상황에 별 내용이 없었습니다.
'나'에 대해서도 트레저 헌터라는 것 외에 독자가 알거나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부분이 없어서 주제는 뚜렷했지만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더불어 ‘꿈의 지팡이’ 라는 지팡이 이름 등, 장치들이 너무 직접적이라 감흥을 받기 어려웠고 의성어의 경우 잘못 남발할 경우 글이 유치해보인다는 점을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다담님의 “왕의 노력”은 시로 쓰려 했다면 운율이나 대구를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시가 아니라 엽편을 생각하셨다면 조금 더 재기발랄했다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환타지 동호회 2호 단편집에서 “공주를 구하는 것은 언제나 왕자”를 참조해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땅콩샌드님의 “임무완수”는 사건의 지평선이라거나 하는 부분들을 너무 뭉개고 흐릿하게 넘어갔습니다.
글을 쓴 분이 정말로 하고픈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감춘 것이라기보다는, 글을 쓴 분도 막연하고 추상적인 이미지만 가지고 있었다고 보입니다.

미소짓는독사님의 “작은 문학도의 이야기-그가 젊었던 시절”은 미소짓는독사님이 지금까지 올리신 글 중에서 제일 좋았습니다.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고, 구체적인 비교들이 나와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액자로 쓰인 고블린 상인 자매의 비중이 너무 커서 조금 걸리적거렸다는 점만 제외하면 아버지의 일상적이면서도 그 세계의 법칙이 되는 이야기를 잘 보여주고 있어서 넘치지 않고 좋았습니다.
굳이 더 지적하자면 연작 단편을 쓰고 계신데 엘프 나라에 있는 하플링인 ‘나’가 너무 약합니다.
첫 글이 피상적이어서 성격 각인에 실패한 것 같습니다.
고블린 자매를 떠나 주체가 되는 화자 역시 굉장히 약합니다.
건필하세요. ^^

rubycrow님의 “모든 꽃은 그저 꽃일 뿐이다”는 마지막 그 문장을 살리기 위해서는 흰 장미, 빨간 장미, 백합에 얽힌 이야기가 더 뚜렷했어야 하는데 주인공이 받는 압박에 비해 너무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이야기가 지나치게 일관성이 없었습니다.
오빠가 책임감을 가지고 여동생을 돌보는 이야기도, 아버지를 대신한 존재인 귀족에게 호의를 품으며 세상을 지긋지긋해 하는 사춘기 소년 이야기도 아니었으며 주인공의 성격도 일관성이 없었습니다. 냉소적이며 관조적인 척 하며 여동생에게 별 관심없는 듯 보이다가 여동생을 위해 (동생의) 친부를 죽이는 모습 등등이 그러했습니다.
인간이란 한 가지 성격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만 한 인물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기에는 설득력이 약했습니다.
사소한 지적입니다만 아버지가 두 부인의 눈치를 보느라 바람도 제대로 피우지 못했다는 구절과, 바람둥이인데 사생아가 없었다는 두 표현의 모순은 즉흥적으로 쓴 글이지 공들여 쓴 글은 아니라는 인상을 심어줬습니다.
이야기가 필요 이상으로 꼬여있습니다.

“용”은 총평과 연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쓰기 쉬운 면, 쓰고 싶은 면만 쓴 글이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이무기가 그 여의주 두 개를 잉태해서 그렇게나 소중하게 여기게 되는 과정을 공감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절규해도 이 글은 실패한 글입니다.
더불어 1000년간의 수련이 용이 되고자 하는 갈망이 얼마나 강했으며, 이무기와 용의 차이가 얼마나 대단해서 그런 갈망을 가지게 되지 않을 수밖에 없나 역시 보여줬어야 합니다.
그런 여러 가지 구체적인 면, 대비가 없었습니다.
이 글이 감동을 가지려면 그 수련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용이라는 경지가 이무기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걸 공감하지 않고는 '그럼에도' 여의주를 택하는 이무기의 심정이 어째서 그렇게 아프고 중대한 것인지 알 수 없고, 또 '그럼에도' 여의주를 택하게 되는 과정이 없이는 저렇게나 중요한 걸 내팽개친다는 것에 개연성이 부여되지 않습니다.
독자들은 냉정해서 화자가 운다고 따라 울지 않습니다.

최인주님의 “다락방”은 마지막 ‘과연 우리는 누구에게 이 죄를 물어야 할 것인가?’라는 화자의 질문이 너무 뜬금없었습니다.
단편 게시판의 댓글에도 “예루살렘 롯”이 추천되어 있는 걸 보았습니다.
“예루살렘 롯”역시 화자가 쓴 편지로만 되어 있는데 그 글은 몹시 구체적입니다.
그런데 “다락방”은 이미지만 가지고 쓴 글로 구체적인 감이 없습니다.
그렇게 어정쩡하고 막연한 실체에 공포감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또한 예루살렘 롯은 20세기 초 지식인이 쓴 글이라는 점 (즉 편지를 중점적으로 소통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 때문에 편지가 길고 구체적이고 말투가 엄숙해도 그러려니 하는데
이건 고등학교 때 알던 친구가 썼을 법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위급하고 무서운 상황에 문학적 비유를 동원해 가며 편지를 쓰고 있었다는 점이 그러했습니다.
배경과 문체와 캐릭터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너무 일상적이지 않아서 그저 “글”로만 읽힐 뿐, 박진감이 떨어졌습니다.

amusa님의 "순간"은 마지막 그 한 순간에 독자가 정말 공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구구절절하고 자세한 설정보다 연인의 죽음과, 동생이 세뇌를 당한 이야기들이 더 구체적으로 살아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엽편으로 보기에는 너무 치장이 많고, 단편으로 보기에는 부족했습니0다.
글을 쓴 분께서 잎글이라고 붙였고 짧은 순간을 가지고 쓰신 글이니만큼, 거기에 더해
마지막 문장을 위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짧은 글에서는 특히나 마지막 문장이 나타나기 전까지의 모든 이야기가 쉽게 한번에 이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그 마지막 문장이 나타났을 때 반쯤은 놀라고, 또 반쯤은 그럴 줄 알았어, 라고 독자가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글은 복잡하고 두서가 없습니다.
실제 시간상으로 늘어놓고 보면 그렇게 복잡할 글도 아닌데도 불구하고요.
역시 사족이 많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 글을 잎글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슨 단체니, 인터뷰니, 책이 나왔느니, 하는 사족을 모두 빼고 큰 줄기에 따라서 깔끔하고 이해하기 쉽게 전개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아니라 '순간'과 영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더 길어져어야 합니다.
소재에 따라서 글의 길이가 결정되기도 하지만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 따라서 글의 종류가 결정되기도 하니까요.
이 글은 소재가 아닌 방식의 문제였다고 보입니다.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글의 완결성을 위해서, 너무나도 아깝지만 과감히 버려야 할 것들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주시기 바랍니다.

블루베리님의 “들개”는 결말이 너무 뜬금없었습니다.
그로 인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당연히 믿어왔던 일상, 가족이 공포로 다가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트라우마 극복기인지, 농노를 착취하는 악독한 영주의 이야기인지, 인간이 개를 닮게 되었다는 다른 관점의 이야기인지, 모든 이야기가 두루뭉술하게 섞인 상태에서 생뚱맞게 함께 걷는 여인이 아름답다며 이야기가 끝납니다.
단편이든, 장편이든, 하나의 글 속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 글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지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pilza2님의 “검은 깃털, 하얀 날개”는 진부했습니다.
글솜씨는 나쁘지 않으나 주제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반복해서 나온 “날개”, “영혼의 자유로움”이라는 장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지는 않더라도 글쓴이가 가진 뚜렷한 형상은 있는지 고심하게 되는 글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너무 많은 설정은 안 좋다고는 하지만 일단 글을 쓰는 이는 드러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생각하고 그중에서 드러낼 것을 결정했어야 합니다.

괴소년님의 “개”는 많은 화제가 나오는데 그 화제들 사이에 연관성이 없습니다.
도시간의 역학 관계, 그녀의 이야기, 그녀가 떠나간 이유, 죽은 개를 안고 하는 야생에 대한 이야기, 각각의 화제 사이에 연관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개로 변하는 결말과 화자의 심정이 뜬금없습니다.


거울의 평이 글을 올리신 분들께 어떻게 다가갈지 늘 조심스럽습니다.
건필하세요.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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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콩샌드 05.07.30 07:56 댓글 수정 삭제
    흠흠, 역시 아직 힘이 부족하군요. 좋은 평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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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끙; 앞부분 자매이야기만 써놓고 막혀서 한 2달정도 처박은 다음 뒷 이야기를 쓰니 이런 결과가;;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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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칼자 05.07.30 16:03 댓글 수정 삭제
    좋은평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좋은 글 올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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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루베리 05.07.30 23:27 댓글 수정 삭제
    흠흠... 그렇군요^^; 인간들이 들개로 변하는 내용의 다크팬터지였는데... 여운과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게 하자...라는 의도였는데 결과는 실력 부족. 허허. 더 노력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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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ubycrow 05.08.05 18:50 댓글 수정 삭제
    지적 감사합니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결혼 전에' 바람둥이었다는 이야긴데, 쓰다가 빼먹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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