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안녕하세요. 6월 독자우수단편 선정단 날개와 김이환입니다. A와 B는 계속 바뀝니다.

 

독자단편을 읽고 비평을 적을 때마다 작가님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그리고 독자게시판을 찾는 다른 방문자들에게도 비평이 가이드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집니다. 그래서 비평을 쓰기 더욱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아무쪼록 이 심사평이 많은 긍정적인 일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5월 16일부터 6월 15일까지 올라온 총 10편의 글을 심사하였고 빈테르만님의 <성검의 궤적>을 우수작으로, 하루만허세님의 <워프 기술의 회고>를 가작으로 선정하였습니다.

 

 

 

데팅스에 관하여 / 고설

A : 데팅스라는 흥미로운 이름을 사용한 흥미로운 제목입니다. 이야기도 제목만큼이나 독특합니다. 기괴한 내용이 전개되죠. 주인공의 정체모를 동생 데팅스로 인해 초콜릿으로 만든 집이 몰락하는데, 데팅스를 비롯해 주인공도 집도 가족의 이야기도 전말이 밝혀지지는 않습니다. 뜻을 모르겠는 이야기 속을 헤매는데도 마치 쉽고 단순한 이야기처럼 시침 뚝 떼고 이어지는 진행을 따라가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간혹 설명이 명확하지 않거나 서툰 문장이 아쉽습니다. 또한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왜 가족들은 초콜릿 집에서 사는지 데팅스가 어째서 재난의 원인이 되는가는 결국 독자의 상상에만 맡기는데 이런 아리송한 배경이 아쉽습니다. 혹시 이 글이 사람이 아닌 동물이나 다른 존재의 이야기인가 상상하면서 읽기도 했으나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B : 마치 번역 소설처럼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글입니다. 초콜릿으로 지어진 집은 마치 동화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는 환상소설입니다. 초반에 느껴지는 글의 정서는 상당히 이색적이고 앞으로의 전개에 기대감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제목에서도 강조된 '데팅스'에 관한 것이 잘 드러나지 않는 느낌이었고, 전체적으로 짧은 소품 같아서 독자가 사유를 전개할 틈을 잘 내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단편소설을 구성할 만한 에피소드의 갯수가 부족한 느낌이고 분량의 한계 탓으로 인물들이나 사건이 잘 드러나지 않아서 전체적으로 무엇을 이야기하려 하는지 모호해진 것 같습니다.

 

  흔들리는 별의 밤 / gock

A : 광공해 때문에 별이 잘 보이지 않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별이 가득한 하늘을 그리워하는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아름다운 밤하늘을 통해 서정적인 분위기를 전달하고 동시에 별을 쉽게 볼 수 없는 각박한 도시 생활이나 환경오염을 비판하는 교훈적인 이야기는, 아름답기는 하지만 그만큼이나 흔한 소재이기도 합니다. 이 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별에 대한 긴 서두 이후 조용히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잔잔한 아름다움이 있지만 그만큼 굴곡이 없는 전개입니다. 글은 힘든 일상을 벗어난 순간 느낀 서정적인 감성을 성공적으로 구축하고 있으나 반전이나 놀라운 결말은 없습니다. 단지 지하철에서 잠들었다가 꿈을 꾸고 다시 꿈에서 깨어날 뿐입니다. 짧은 구성 안에서 목표로 한 이미지를 잘 구현하기는 했으나 더 참신한 이야기를 통해 감성을 전달했으면 어땠을까 합니다.

 

B : 차분하고 정적인 분위기 또 신비한 분위기가 인상적인 글입니다. 별에 관한 사유로 도입부가 시작되고,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도중에 환상을 보는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문장도 안정적이고 무난한 글이지만, 그 무난함이 많이 아쉬움을 주는 글이었던 것 같습니다. '별'에 관한 사유는 아무래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기본적인 것들이고 독자들에게 새로움을 주기보다는 진부하다는 인상을 주는 것 같습니다. 이 진부함이 이 글의 가장 큰 아쉬움처럼 느껴지는데요. 사유나 문장들, 벌어지는 사건, 묘사가 다 1차적으로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사건들이고, 특별함이 없고, 어디선가 본듯한 느낌을 주어서 식상한 것 같습니다. 아무도 떠올리지 않은 발상, 사건 그리고 자기만의 문장을 써보려고 한다면 짧은 글이어도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꿈꾸는 꿈 / 특수문자

A : 마치 중얼거리는 말을 듣는 것 같은 단순한 글입니다. 글의 내용과 잘 어울리기는 하지만 아마추어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단순한 아이디어의 소설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소설이란 무엇인가 고민이 필요했던 글 같습니다. 어찌 보면 그냥 작가가 내키는 대로 쓴 글 같습니다. 문장도 사건도 즉흥적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작가의 의도는 그렇지 않았을지 모르나, 글에서는 설득력을 찾기 어렵습니다. 단조로운 문장과 느슨한 전개가 아쉽습니다. 꿈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하나의 구조를 갖추고 있으리라 예상하면서 읽었는데 그냥 꿈이 깨면서 끝이 나서 허무하기도 했습니다.

 

B : 제목이 많은 것을 드러내고 있는 짧은 글입니다. 단편이라기보다는 엽편처럼 읽히는데요. 처음에 루시드 드림(자각몽)을 제시하고 꿈들을 나열하는 글인데, 구조적으로도 완결성을 갖추지 않은 것이 아쉬웠습니다. 일종의 꿈이라는 소재를 갖고 소설을 써야겠다는 발상만 읽히고 이야기 전개에 뚜렷한 대립과 갈등이 보이지 않고, 인물의 형상화도 잘 이루어지지 않아 독자가 몰입할 여지가 없이 글이 나열되고 끝난 느낌입니다. 굉장히 자유로운, 말 그대로 꿈을 그대로 옮긴 듯한 글인데, 그냥 꿈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본격적인 이야기로 가공을 해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각몽을 소재로 긴 구상을 한 다음에 거기에 맞는 현실적인 사건들과 매력적인 인물을 설정하고 이런 꿈들도 나오고 이런 것들이 암시와 복선으로 작용해서 대단원을 맞는 글이라면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음악과 물속의 뇌 / 특수문자

A : 이 글 역시 소설이란 무엇인가 고민이 더 필요한 글 같습니다. 이야기를 단순히 늘어놓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독자를 어떻게 설득할지 많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음악이 갑자기 없어지고 외계인은 갑자기 주인공 앞에 나타납니다. 주인공은 이후로도 다양한 사건을 겪지만 이 모든 것이 단순하게만 흘러갑니다. 분명 작가가 글 안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감정과 사건 등이 있을 텐데 지금은 아무 계산 없이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습니다. 제목마저도 소재를 그저 나열하고 있을 뿐이죠. 때문에 결말까지 모두 읽어도 별다름 감흥을 받기 어렵습니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줄거리를 써내려간 글 같기도 합니다.

 

B : 음악에 대한 사유를 서술하고, 또 갑자기 음악이 없어진 세계를 그립니다. 그런 다음에 갑자기 우주선이 나타나 지구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지구는 멸망합니다. 유일하게 산 주인공은 식물인간 상태로 외계인들에게 보호되다가 뇌만 보존됩니다. 그러다 기계로 부활해서 외계인들 사이에서 가수가 되어 노래를 만들다가 우주선을 만들어 탈출합니다. 일단 이 서사의 간극이 지나치게 방대한 것을 하나의 짧은 글에 우겨 넣은 듯해서 아쉬웠습니다. 사실 음악에 대한 서술만으로도 하나의 단편이 나올 수 있고, 음악이 없어진 세계를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글이 나올 수 있습니다.(유머가 사라진 아이작 아시모프의 SF 단편이 떠오르네요.) 또 세계가 멸망하고 나서 유일하게 보호된 이야기만으로도 역시 단편이 아니라 장편도 나올 수 있습니다.(영화 [AI]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한편 외계인들 사이에서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역시 여러 매체에서 다룬 소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각각의 중요 소재들이 다 장편으로도 활용될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서사인데, 이를 하나의 짧은 분량 안에 넣어 놓으니 위화감이 듭니다. 사건들의 간극이 큰 만큼 개개의 사건에 대한 배경 묘사나 사건 정황에 대한 서술이 지나치게 적어서 핍진성이 크게 떨어집니다. 즉, 허구이지만 있을 법한 사실이다, 다른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라는 사실감이 들지 않고 눈으로 어떤 사건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글로 그냥 설정을 늘어놓는 느낌입니다. 분량이 단편소설과 장편소설을 가르기도 하지만 이야기의 성격에 따라 각각 장편소설에 걸맞는 이야기와 단편소설에 걸맞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단편소설은 장편소설에 걸맞은 이야기를 모두 합쳐놓은 듯해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압축적이고 줄거리 나열인 듯해서 소설에 몰입이 잘 될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고 싶습니다 / 김효

A : 독특한 제목의 책과 책 포식자라는 역시 독특한 존재가 등장합니다. 평범한 현실 속에 환상적인 사건이 하나 둘 침투하는데 마치 별다른 일 아닌 것처럼 차분히 진행하는 태도가 재미있습니다. 사건이 성긴 구조로 흘러가는 것 같으면서도 나름의 균형을 유지하는 흐름도 흥미롭습니다. 때문에 독자도 어렵지 않게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고 글은 결말까지 이런 분위기를 놓치지 않습니다. 글은 책을 읽는 즐거움을 잃어버린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쉽게 공감할 만한 이야기입니다. 분명히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사라지는 책처럼 일상에서 흔히 겪는 상황을 재미있는 픽션으로 풀어놓고 있습니다. 다 읽고 나면 유쾌한 이야기인데 읽는 동안에는 어딘가 모르게 막막한 분위기를 풍기는 점이 다소 의아합니다. 하지만 쉽게 읽히는 재미있는 글입니다.

 

B : 기묘한 느낌의 환상성을 가진 소설입니다. 책 포식자의 존재 설정 등인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었습니다. 다만, 뚜렷한 갈등이 보이는 사건 전개가 없어서 구성이 파편화된 느낌이었고, 꿈과 현실이 중첩된 부분들이 묘한 느낌을 줍니다. 갑자기 찾아온 이색 생물체와의 조우는 어찌보면 환상소설에서 흔한 구성인데, 초반에는 그런 능청스러움이 반갑고 재미있고 유쾌하게 읽히기도 하지만, 이것을 가지고 뚜렷한 서사를 만들지 않고 잠시 내비치기만 하고 급하게 독자가 이게 무슨 엔딩이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별다를 것 없이 이상한 포인트에서 글이 끝나 버려서 당황스럽게 만드는 글 같습니다. 책 포식자에 대해서 더 실재감 있는 서사를 구성하고 구조에 신경을 썼다면 매력적인 글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싶어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나의 그리운 안나 / 김문석

A : 외로운 여자 안나와 그녀를 둘러싼 세 사람 유디트, 폴, 토모의 이야기입니다. 안나는 낯선 외국에 홀로 남은 이방인처럼 외로워하지만 그녀를 달래줄 수도 있고 그런 의무도 있는 세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불완전한 사람들은 가까이 있지만 때로는 훌쩍 떠나기도 하면서 서로를 맴돌고 이야기를 만들어 갑니다. 글에서 계속 언급되는 ‘바람’이나 ‘하데스’는 나름의 은유를 품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분위기가 매력적인 글입니다. 짧고 건조한 문장은 순간의 이미지를 간결하게 전달하며 글의 슬프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훌륭히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다 읽고 나서 제목에서 안나를 그리워하는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되는, 여운이 길게 남는 글이었습니다. 하지만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고 이해되는 내용도 상투적이어서 아쉽습니다. 특히 사건이 하나로 모이는 결말부는 어떤 감정을 주기 보다는 그냥 모호하게만 느껴집니다. 인물들 간의 대사가 문어체이고 후반부에서 특히 심해져서 몰입이 다소 방해되는 점이 아쉽습니다.

 

B : 이국적인 배경으로 모호한 대사들이 인상적인 글입니다. 배경이나 분위기가 시적인 정서를 띄고 있습니다. 굉장히 안정적인 문장들이지만, 전체적으로 구성에 있어서는 산만한 느낌도 듭니다. 영화로 치자면 씬이 잘게 나누어져 있고 이를 유기적으로 연결시키기보다는 나열만 해놓은 듯해서 독자가 전체적인 이야기의 얼개를 재구성하기가 어렵습니다. 분위기나 대사들이 참 좋고, 인물을 그리는 방식도 좋았습니다. 다만, 이들의 관계 묘사나 심리 묘사가 부족한 것은 아닌가 싶었고, 구성도 더 단순하고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갔으면 어땠을까 싶네요.

 

  장난감 졸업식 / 유이립

A : 장난감을 좋아하지만 지금은 별다른 꿈도 야망도 없이 마트 직원으로 생활하는 주인공이 있습니다. 비싼 장난감들을 바라보며 아쉬워하지만 그의 월급으로는 구입하기 어려워 그냥 쳐다만 보던 주인공 앞에서 장난감들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이후 장난감들이 벌이는 일련의 사건은 흥미롭습니다. <토이스토리>나 <스몰 솔져> 같은 영화가 연상되고 이야기 흐름이 비슷하기도 하지만 글의 목표는 다릅니다. 주인공은 악당을 물리치고 위험에 빠진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지만 누구도 그가 영웅인지 알지 못합니다.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겪는 구질구질한 상황이 잘 살아있고 20대 젊은이가 느끼는 막막한 현실과 미래에 대한 고민도 글에 잘 녹아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글이 지나치게 밀도가 높고 분량도 긴 것 같습니다. 그 순간에는 좋은 문장이고 좋은 장면이더라도 글 전체에서 조명했을 때 방해가 된다면 과감히 삭제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높은 밀도가 반드시 설득력을 만들진 않기 때문입니다. 마트를 현실적인 공간으로 만들고 주인공의 감정이나 행동을 확실히 독자에게 보여주기 위해 사건도 많으며 서술도 많아서 글의 규모가 커지고 분량도 길어진 듯합니다. 이 점이 아쉬웠습니다.

 

B : 누구나 이 글을 읽으면 픽사의 극장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떠올릴 것입니다. 분량에서부터 야심에 찬 글로 보이고 상당히 잘 읽히고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토이 스토리]에 많이 기댄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난감들이 살아 움직이고, 이들의 법칙이 있고, 이들의 목표가 있는 것 등, 여러가지 설정이 닮아 있어서 마음 편하게 읽히지는 않았습니다. 단독적인 작품으로 기능하기에는 여러모로 어려운 점이 많아 보였고, 일종의 팬픽션처럼 보이는 면도 있습니다.
  물론 차별점도 있었고 이 소설만의 매력도 많이 보였습니다. 장난감 졸업식을 통과의례의 은유로 잡고, 일종의 기묘한 성장소설로 읽힙니다. [토이 스토리]와 달리 음울한 면도 진중한 면도 있습니다. 독자를 빨아들이는 흡인력이 있고, 뒷내용이 궁금해서 끝까지 읽게 만듭니다. 영상적으로 상상이 잘 되는 부분들이 있어서 흥미롭게 읽힙니다.

 

  안식일 / 갈고리달

A : 자살예방센터 상담원인 주인공은 매일 전화기 너머의 죽음을 마주하며 살아갑니다. 일은 고통스럽고 극한의 감정 소모를 겪는 동안 사건이 일어납니다. 결말은 비극적입니다. 읽으면서 누구도 죽지 않는 결말을 원했는데 글은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복선은 이미 깔려있죠. 주인공도 등장인물들도 모두 지쳐있고 희망은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죽음이 더 행복한 길 아니냐며 쉽고 간편한 길을 제시하는 사이비종교단체가 있고 주인공도 그 안으로 끌려들어갑니다. 이야기의 중반까지 읽었을 때는, 자살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보다도 더 지쳐있는 상담가라는 아이러니를 통해 자살률이 치솟는 막막한 사회 현실을 비판하는 내용의 글 같았습니다. 보통 자살을 소재로 삼은 글들이 그렇게 흘러가기도 하고요. 그렇지 않고 이 소설이 죽음을 마주하다가 결국 죽음에게 굴복하고 마는 사람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면, 소설 속 사건들이 독자에게 더 설득력이 있도록 방향이 정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신주와의 대화에서 주인공과 독자의 생각을 바꿀만한 계기가 있었으면 합니다. 죽음을 늘 마주하고 그것에 사로잡혀 있지만 그래도 자살은 안 된다고 생각하던 주인공이 행동을 바꾸는 이유가, 현아를 대하는 태도가 뒤집히는 명확한 이유가 있었으면 합니다. 지금은 글의 주제가 다소 애매한 상황들 위에 얹혀 있는 듯합니다. 그 점이 아쉽습니다.

 

B : 상담자와 사이비 종교를 결합해서 독특한 분위기의 소설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디테일이 살아 있는 직업 묘사가 좋았습니다. 핍진성, 또는 현실감이 잘 드러난 작품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머릿속에 잘 그려졌고, 인물의 내면을 따라가면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전개도 무난하고 이야기도 계속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다만, 읽으면서 과연 이 종교의 정체는 무엇인지, 주인공과 현아는 어떻게 될 것인지 기대하면서 읽게 되었는데, 끝마무리는 갑작스러운 종결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굉장히 재미있게 읽다가 마지막에 팍 식어버린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과연 이 작품에 이러한 엔딩이 걸맞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했고요. 분량의 문제라면 중편으로 늘려도 무방해 보이는 글이었습니다. 마지막 엔딩이 작가의 메시지나 주제의식을 오히려 흐리게 만든 느낌이었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워프기술의 회고 / 하루만허세

A : 마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쭉 지켜보는 것 같은 구성의 작품입니다. 이런 인터뷰 형식의 단편 소설은 쉽게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고 유머나 재치 있는 상황을 쉽게 연출할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물론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야 이런 장점도 살아납니다. 워프기술의 회고는 재미있는 아이디어이고 몇몇 즐거운 상황들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길이나 등장하는 다양한 사건에 비해서는 가벼운 아이디어 같습니다. 결론에 비해 서론이 긴 느낌인데, 사건이 어떻게 흘러가는지가 빨리 밝혀지지 않으면서 독자에게 초조한 느낌을 줘야 글이 가지고 있는 농담이 살아나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길이가 어울릴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가벼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이야기를 만든 만큼 글도 더 가볍고 속도감 있게 흘러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또 다른 아쉬운 점이라면 방송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사가 다소 딱딱합니다. 특히 뉴스 아나운서의 잘 정돈된 조리 있는 말투는 독자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를 글로 구현해내려면 세심한 노력이 필요한데, 이 점이 잘 되어있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B : 외계인과의 첫 접촉을 다룬 단편입니다. 이를 한 방송에서 여러 인터뷰를 했다는 가정으로 풀어나갔습니다. 형식적인 면에서 테드 창의 단편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소고 - 다큐멘터리}를 떠올리게 됩니다. 이런 페이크 다큐멘터리(또는 모큐멘터리) 장르를 취할 경우, 이야기 진행에 따라 대사로만 점진적으로 내용을 알려주는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닌데요. 약간 지루한 반복이라는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점진적으로 내용이 밝혀져서 흥미롭기도 합니다.
  초반에 외계인의 생체 시간과 인간의 생체 시간이 다른 것을 대비시키는 방식도 흥미로웠습니다. 듀나의 꽁트 {성녀, 걷다}를 연상케 했는데요.(영국 드라마 [닥터 후] 시즌 7 9화인 {HIDE}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이를 깊이 파고들지 않고 소설 전체적으로 우화와 풍자로 사용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퍼스트 콘택트를 주요 소재로 삼고 있지만, 초점은 퍼스트 콘택트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알레고리처럼 읽혔습니다. 노골적으로 읽히는 부분들이 아쉬운 점이 있었고 좀더 압축되고 간결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6월 독자단편 가작에 선정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성검의 궤적 / 빈테르만

A : 오랜만에 만나는 정통 판타지 소설입니다. 검과 마법이 등장하고 용병이나 기사처럼 판타지 세계의 익숙한 인물들이 얽히고설키면서 사건 속으로 빠져듭니다. 인물들은 비장한 전투 속에서 만나 목숨을 건 싸움을 하다가도 갑자기 유머 섞인 대사를 나누는데 대사와 상황이 어색하지 않게 잘 맞물려 있으며 양쪽의 분위기를 매력적으로 살려냅니다. 이야기의 진행도 때로는 치밀하다가 때로는 빠르고 과감하며 맺고 끊는 호흡이 적당합니다. 등장하는 인물도 각자의 개성이 있고 매력적입니다. 검과 사람이 만드는 여러 대립구도나 그들의 이름이 바뀌거나 왜곡되는 상황이 만드는 구조를 되새기면서 읽어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단편 판타지 소설에서 구현하기 하기 힘든 인상적인 장점이 많은 글이었습니다.

 

B :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성검' 또 '마검'이 등장하는 전형적인 소설입니다. 오랜만에 읽어서인지 기사들이나 성검, 마검, 용족 이런 설정들이 반갑고 즐거웠습니다. 귀족, 용병, 이런 설정들이 친근하게 다가오고 어색함 없이 잘 쓰인 것 같습니다. 잘 쓰인 판타지 단편이라는 느낌입니다. 과거에 어떤 비극이 있었고, 이것이 글 안에서 내막이 드러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효율적으로 설명이 되고, 정보 전달에 문제가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후반부에 진실이 드러나는 부분들이 약간 단순하면서도 따라가기 벅찬 느낌이 있었습니다. 몇몇 인물들이 너무 전형적이고 1차원적으로 그러져서 아쉽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용병 자매의 캐릭터가 잘 형상화되고 매력적으로 그려져서 끝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6월 독자단편 우수작에 선정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거울 독자우수단편에 선정되신 분들께는 책을 한 권씩 보내드립니다. 하루만허세님과 빈테르만님은 pena12@gmail.com 으로 우편물 수령할 주소, 성함, 전화번호 (택배발송시 필요)를 보내주세요. (상품인 책 발송은 1~2주 걸릴 수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댓글 2
  • No Profile
    하루만허세 13.07.01 15:46 댓글

    부족한 글을 가작으로 선정해주시니 좀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찔리는 구석이 있는 게 정확한 지적때문입니다. 

    속도감, 중복되는 듯한 지루한 면이 있었고, 대사의 딱딱함 문제도 있었고, 특히 한국사회의 알레고리-노골적으로 읽힌다는 부분이 사실이 그러해서 깊숙이 찔렸습니다.  들켰다! 부족한 부분을 콕콕 찔러주시니 평 받는 것이 적절한 도움이 됩니다. 평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게다가 가작으로 선정해주시니 아이고, 왜 이렇게 부끄러운지.....그런데 사방을 둘러봐도 쥐구멍이 없으니 들어갈 수가 없네요. 이참에 쥐 한 마리 키워봐야겠습니다.  아이고 평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 No Profile
    빈테르만 13.07.01 20:39 댓글

    으아 너무 과분한 영광이라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팬픽으로 시작했었던 이야기라 감정이 너무 들어가서 

    어색한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을텐데 가감 없이 평해주시고 지적도 겸해주셔서 큰 힘이 됐습니다.

    깊은 감사드립니다.


분류 제목 날짜
우수작 way to mother 2014.03.01
우수작 맹렬한 호랑이보다 맹렬하게 2014.03.01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3 2014.02.01
우수작 고양이의 보은 2014.02.01
가작 악몽 2014.02.01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4 2013.12.31
우수작 쿠소게 마니아 [본문삭제]1 2013.12.07
가작 화초가 2013.12.15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3 2013.11.30
가작 소녀 2013.11.30
가작 광고 (본문 삭제) 2013.11.30
선정작 안내 독자 우수단편 선정3 2013.10.31
가작 춘곤증 2013.10.31
선정작 안내 독자 우수단편 선정1 2013.09.30
선정작 안내 선정작이 없습니다. 2013.09.30
선정작 안내 독자 우수단편 선정3 2013.08.31
가작 발톱 2013.08.31
선정작 안내 선정작이 없습니다. 2013.07.31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2 2013.07.31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2 2013.06.30
Prev 1 ...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 27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