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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독자우수단편 선정단입니다. 이달의 후보작을 선정합니다. 우수작으로 2차례 이상 선정되시거나 연말에 최종 우수작으로 선정되신 분께는 거울 필진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이번 호 독자우수단편은 2020년 6월 1일부터 2020년 6월 30일 사이에 창작 게시판 단편 카테고리로 올라온 작품들 가운데 심사 기준을 만족한 작품을 추려 심사, 후보작을 추천하였습니다.

독자우수단편 후보작으로는 kangbomb 님의 「이너프」가 선정되었습니다. 

이번 달은 작품 수도 많았지만, 안정적인 문장으로 술술 읽히는 재미있는 글을 올려주신 분이 많아 한 편만 고르기 매우 어려웠습니다. 매번 귀한 작품을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드리는 한편, 후보작이나 우수작의 선정은 어디까지나 심사를 맡은 개인(들)의 취향과 성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만큼 선정 여부가 작품의 우열을 정하는 것이 아님을 꼭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kangbomb 님의 「이너프」 :
흥미롭고, 동시에 몹시 현실적인 이야기가 교차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우선 이 이야기의 인물은 결핍을 교환하는 걸로 이야기가 끝나는데 이 세계관에서 더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을 것 같아서 궁금해집니다.
각 인물의 성격이나 배경도 찬찬하게 짜인 듯 한데, 훌륭한 전개에 비해 마무리가 성급한 듯 하여 아쉽습니다. 이야기가 끝난다기 보다, 끝냈다는 느낌을 받아서 결말부에서 아까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다른 인물의 이야기나, 다른 관점의 이야기 등 이 이야기 속 세계의 남은 이야기들이 궁금합니다.

ilo 님의 「여름 산책」「우연」 :
예쁜 문장이 인상적이지만, 소설이라기 보다는 짧은 서신이나 SNS 기록물 같은 느낌입니다.

차원의소녀 님의 「게이인 너를 사랑했다」 :
감정 표현에 초점을 둔 작품으로서,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면 모두 작가분이 표현하고자 하는 어떤 진실한 소용돌이에서 태어나는 것일 터입니다. 그러나 이 글은 감정의 격렬함이 끌어내는 반짝이는 부분들에도 불구하고 소설이라고 보기에는 (현재로서는) 부족합니다. 좀 더 형식을 갖추거나, 혹은 더 많은 독자를 만날 수 있을 만한 스타일로 발전시켜 나갔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김성호 님의 「천국에 혼자 있을 자신은 없어서」 :
섹슈얼리티를 다루는 김성호 님의 감성은 때때로 문제작이 되거나 정말로 문제가 되어 버릴 듯한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인상을 줄 때가 있는데, 어떤 소재이건 작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중요하고 소중한 특징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이 글은 소설로서는 정체성(?)이 모호해 보입니다. 아예 포르노적인 재미를 추구한 것도, 아주 문제적인 논쟁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어서 어느 쪽으로 봐도 아쉽게 느껴집니다.

김성호 님의 「2017년」 :
이 글의 초반부(와 그 설정이) 많은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어서 좋았는데, 후반부가 그저 감정적인 토로로 그친 감이 있어서 많이 아쉽습니다.

꺼부기 님의 「웅녀가 살아있다」 :
신비한 젊은 여성을 바에서 우연히 만나고, 그녀가 별로 특이할 게 없는 남성 주인공에게 아주 길고 웅대한 역사를 선사하는 류의 이야기입니다. 문장도 깔끔하고 이야기의 소재로 등장하는 역사 인물들도 모두 흥미롭지만, 좀 더 특징적이고 인상적인 한 방이 있었다면 더 좋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술술 읽혔고 즐겁게 읽었습니다.

윤도흔 님의 「미노타우로스의 미궁」 :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스타일의 문장이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만 흥미로운 관계성에도 불구하고 신화의 원형에서 가져온 소재 외에 서사가 제대로 개진되지 않아 평가하기 어려운 작품이 되지 않았나 합니다.
더 다채롭고 많은 이야기를 읽고 싶어요.

코코아드림 님의 「사지말고 입양하세요!」 :
개에 대한 이야기와 개 같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그렇게 잘 어우러지는 것 같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문장이 안정감 있어서 술술 읽히는 점이 좋았습니다.

강엄고아 님의 「임여사를 지키는 神vengers」 :
흥미로운 전작만큼 재미있는 후속작이었습니다. 어서 누군가 시트콤이나 시리즈 무대극으로 만들면 좋겠어요.
이번엔 시즌투(!)의 서장 같은 이야기였는데, 후속편이 궁금합니다.

양윤영 님의 「면담기록 xxxx」 :
매우 멋진 작품이었습니다. 문장도 이야기와 잘 어울리고 아름다웠습니다. 다만 주인공이 외국인이 아니라 외계인으로 설정된 이유가 없지 않나 싶어 아쉽습니다. 다른 종족, 다른 처지의 두 사람이 공통점을 발견하고 사랑의 이름으로 공감을 이루는 것은 물론 아름답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낯섦에서 발생하는 두려움을 충분히 보여주는 것도 중요한 듯 싶습니다.

마음의풍경 님의 「가을장마」 :
잘 읽히는 재미있는 이야기였습니다. 다만, 이야기의 중후반부가 짧은 괴담으로 자주 있는 이야기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서 아쉽습니다. 권선징악도 좋지만 이야기의 진상이 좀 더 재미있게, 다른 방식으로 풀릴 수 있었지 않을까 합니다.

여현 님의 「무슨 소리」 :
호러 소설가가 호러가 된다는 설정이나 상황이 흥미롭습니다. 좀 더 서사나 묘사가 풍부한 작품이 될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여현 님의 「나무이야기」 :
이야기가 상황을 보여주기 보다 서술로 전부 제시되는 부분이 많아 아쉽습니다. 좀 더 단편적으로 다듬거나, 아니면 아예 중장편으로 구상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류휘 님의 「도착지는 화성이었다」 :
화성탐사대와 사고와 남겨진 자들이 투쟁과 지난한 세월과 기억과 망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부분이 특히 좋았고, 설정과 이미지 모두 매력적입니다. 현실의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들의 은유는 픽션으로부터 미끄러지거나 도드라지기 쉽기 때문에, 읽는 사람도 긴장하게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이번 달은 2020년 2분기 독자우수단편 우수작을 선정하는 달입니다. 우수작으로 2차례 이상 선정되시거나 최종 우수작으로 선정되신 분께는 거울 필진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드립니다.

4월 후보작인 아메리카흰꼬리사슴 님의 「아웃백」과 6월 후보작인 kangbomb 님의 「이너프」 중에서 아메리카흰꼬리사슴 님의 「아웃백」을 2분기 우수작으로 선정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A: 좀비 아포칼립스 사회에서 각자의 자식을 잃은 한 여성 정치인과 남성 엔지니어의 이야기를 교차하면서 진행합니다. 화자, 시점이 자주 바뀌어 독해가 어려운 면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담담한 필치로 그려낸 사회상, 인물의 내면 묘사, 그들의 선택이 대단히 인상적이었습니다.

B: 이제 나이 어린 이들이 죽는다는 건 무엇인지 한국 사회는 모든 재난 속에서 대답해야 만 하는 처지가 되었네요. 바이러스에 대한 소설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재난 속에서 먼저 희생되는 이는 누군지, 남은 이의 의무와 몫은 무엇인지. 결말까지 내달리는 속도가 독자를 멋지게 사로잡는 소설입니다. 두 부모의 정서가 교차하는 장면들도 그렇고요. 아쉬운 점이 있다면 서사 그 자체에서는 교차시점이 그다지 큰 역할을 하지 못한 거 같아요. 이야기의 중심에는 도하의 아버지가 있어서, 하주의 어머니는 말은 많지만 이야기 바깥을 맴돌고 있네요. 그럼에도 교차시점이 어긋남 없이 잘 맞물린다는 것만으로도 작가의 역량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웃백'이라는 말의 이중적 울림도 매력적입니다.

C: 아메리카흰꼬리사슴 님의 아웃백은 인물들의 황폐한 내면에 대한 심상이 정교하고 아름답습니다. 동면시설이 사실은 처음부터 동면시설 허가를 받지 않고 지어졌다는 사실을 드러낼 때의 화자를 하주 어머니로 선택하는 작가의 감각에 감탄했습니다. 아마도, 최종적이리라 여겨지는 두 인물의 선택 역시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스산하고 쓸쓸한 인물들의 심상에 비해 구조적인 면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짧은 분량의 단편에서 주된 인물이 다른 상황에 놓인 상반된 인물로 바뀌니 집중도와 긴장감 모두 낮아집니다. 장점이 커서 단점이 더욱 아쉽게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D: 호주 아웃백에서 시작된 O바이러스가 관광객을 통해 전 세계로 퍼지고 바이러스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진도에서 피난처를 건설하는 상황이 현재의 상황을 떠오르게 해 마음이 무겁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의 마음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는 마음이 교차하고, 다른 듯 같은 입장인 두 사람의 대화가, 아포칼립스적 상황에서 길을 잃고 황량하게 허공을 떠도는 듯합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 사랑하는 이를 포기하게 되는 것은 어떤 배경 안에서든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아포칼립스 자체겠지요.

E: 우선 문장이 좋았습니다. 그 차분하고 정갈한 문장으로 비정한 현실을 묘사하는 매력적인 이야기입니다. 무엇보다도 현실의 메타포를 쉽게, 다만 어떤 공정함이나 쉽게 연상시키기 위해 가져오는 대신 원숙하고 우아하게 다루어 이야기와 잘 맞물리게 하는 솜씨가 멋집니다. 덕분에 읽는 사람에게 즉각적인 불편함을 넘어 아주 다양한 감정을 불러 일으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그 결핍을 반추하며 재앙과 맞서는 사람들의 행방이 쉽게 구원을 말하지 않기에, 독자는 작가와 함께 바로 여기에 남아 우리들 자신이 아는 각자의 '아웃백'의 개념을 떠올리게 됩니다.

댓글 2
  • 마음의풍경 20.07.15 11:31 댓글

    읽어주시고 평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노력하겠습니다.

  • No Profile
    여현 20.07.20 18:25 댓글

    이번에 올려본 글들은 무조건 재밌게만 써보자, 는 생각으로 만들었었는데.. 적고 나자 스스로도 재미조차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좀 더 생각해보려구요ㅎ.. 늘 감사합니다. 작가분들의 입장에서 성의있고 믿을 수 있는 비평을 보고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는데, 다른 분들의 글에 대한 비평도 본문과 함께 읽고 생각해보곤해요.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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