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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작 안내 11월 심사평

2020.12.15 00:0012.15

안녕하세요, 독자우수단편 선정단입니다. 이번 호에는 훌륭한 작품이 너무 많아서 우수작을 선정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우수작으로 2차례 이상 선정되시거나 연말에 최종 우수작으로 선정되신 분께는 거울 필진이 될 기회가 주어집니다.

이번 호 독자우수단편은 2020년 11월 1일부터 2020년 11월 30일 사이에 창작 게시판 단편 카테고리로 올라온 작품들 가운데 심사 기준을 만족한 작품을 추려 심사, 후보작을 추천하였습니다.

독자우수단편 후보작으로는 계수 님의 「그렇게 전사는 뻐꾸기를 구하고」와 양윤영 님의 「미아」가 선정되었습니다.

 

라그린네 「안개 속의 피사체」
러브크래프트를 연상시키는 공포물입니다. 어디에서 온 건지 알 수 없고, 위력을 짐작할 수도 없는 미지의 존재가 그 존재를 마주한 이들의 눈을 비자발적으로 ‘상하게 하는’ 과정이 차근차근히 진행됩니다. 마지막의 반전도 괴담 장르를 충실하게 재현합니다.

붉은파랑 「마음에서 우러나는」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연상시키는 이야기를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조명한 소설입니다. 괴로운 기억들은 인간을 움츠러들게 하고, 도전하지 못하게 하고, 때로는 옹졸하고 치졸한 인격을 만들기도 하지요. 인간은 연속적인 존재라서 그 모든 고통은 마치 인간을 성장시키는 것처럼 복합적으로 작동하겠지만요. 그런데도 이 기억 하나만은 끊어내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이 어디 한두 명일까요. 세상에서 한 발을 떼고 있는 듯, 무심한 자세로 그 원초적인 욕망을 이야기한 분위기가 특히 매력적입니다. 고통의 향은 왜 더 향긋한 걸까요. 뇌과학과 삶을 연동해서 상상한 깊이 있는 소설입니다.

소울샘플 「체리블랙 루프 스테이션을 위한 앙상블」
매우 미래적인 이야기입니다. 아이돌 산업과 현재의 엔터테인먼트 마케팅 포인트, 정치 사회적 이야기가 데이터·인공지능에 관한 이야기와 멋지게 갈마드네요. 데이터로 구성된 인격들이 서로 어떻게 싸우고 하나가 되는지를 설명해내는 과정이 놀랍고 흥미진진합니다. 다양한 정보(록 음악의 역사, 기타 사운드의 종류 등)를 불친절하게 늘어놓는 게 소설 내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도 매력적입니다. 이야기의 통이 크기 때문에 전체가 완전히 친절하게 설명되진 않지만, 이 소설은 그걸로 충분하네요. 어차피 자본주의 사회의 마케팅이란 그리 친절한 건 아니니까요.

양윤영 「여섯 번째 꿈의 감각」
우리는 서로 다른 배경에서 태어나서 서로 다른 것들을 바라보고 상대의 감각을 상상하며 살아갑니다. 절대로 서로의 시선을 온전하게 공유할 수 없지요. 하물며 다른 감각을 가졌다는 것이 전제되는 관계에선 어떨까요. 영적인 존재를 물리적으로 상상하고, 거기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타자를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뽑아낸 묵직하고도 아름다운 소설입니다. 그 모든 환경 위에 서 있음에도 개별자로 태어난 이들은 끊임없이 ‘노력’할 수밖에 없겠지요. 외롭고도 따스한 일입니다.

미믹응가 「FLY WITH ME」
조선조 사이버펑크 소설이네요. 대체역사 소설인가 하면서 읽었는데 ‘정부청사로 쓰이던 건물’이 등장하는 거로 봐서는 현재 역사의 연속선상에서 한반도에 무슨 큰일이 일어났나 봅니다. 디스토피아적 분위기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점이 매력적이고, 특히 채윤이 ‘최강소방’으로서 전진하는 후반부는 짜릿합니다. 평행세계를 연상시키는 ‘빠져나옴’으로 소설이 마무리되는데, 이렇게 빠져나오는 게 현실에 소설을 잇는 정도의 파장은 없는 게 안타깝습니다. 만약 그런 상황을 생각했다면 좀 더 다른 세계의 존재를 분명하게 암시해줘야 할 것 같아요. 새-인간이 다른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거나……. 어떤 형태로건 연결을 만들어주는 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역사적 배경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닌데, 마지막에 가서 이렇게 빠져나오도록 만들기 위해선 적어도 동전의 양면처럼 평행세계가 붙어있는 세계관은 좀 더 성실하게 설명해 줄 필요가 있겠네요. (소설 전체에서 반복해서 ‘화재(火災)’가 ‘화제’라고 쓰인 건 단순한 오기일까요, 아니면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만약 특별한 의미를 담아서 썼다면 한자를 함께 적어주는 게 좋겠습니다.)

점선면 「프로파일러」
“인격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묻는 흥미로운 설정입니다. 단편에 적합하게 어울리는 설정이기도 하네요. 아마 실제로 인격을 복제한다고 이렇게 되진 않겠지요. 인간이란 자신이 놓인 상황에 따라 매번 새로운 선택을 하는 존재니까요. 하지만 정말 재미있는 상상이네요. 작품이 시종일관 낡은 90년대 범죄 영화 분위기를 풍기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가능하다면 CPS 시스템이 무력해지는 부분까지 나아간 연작을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계수 「그렇게 전사는 뻐꾸기를 구하고」
인간은 모두 샘을 내지요. 그리고 그 샘을 극복해내면서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샘과 질투를 사랑으로 극복해내는 사랑스러운 청소년 소설입니다. 단편에 적합한 정도로 짧은 시간대를 다루고 있는데, 그 안에서 다루는 감정은 폭발적이네요. 전형적인 이야기를 흡인력 있으면서도 서사가 생생하게 살아 숨 쉬도록 깎아냈습니다. 소설 내부에 디테일이 살아 있다는 점도 매력입니다. 청소년들이 흔히 접할 법한 ‘타우린 음료수’와 미래의 위험을 연결시킨다거나, 마치 10대를 대상으로 한 웹드라마같은 장면 장면의 진행도요. 작은 고양이를 쓰다듬는 것 같은 소설이었습니다.

양윤영 「미아」
향연에서 아리스토파네스는 우리가 안드로기노스로 태어났기 때문에 외로움을 겪게 된 거라고 말하지요. 뮤지컬·영화로 유명한 <헤드윅>이 이 이야기를 널리 퍼뜨렸고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마치 정신질환을 처음으로 진단받은 환자처럼 마음이 안정되는 면이 있습니다. 태초부터 안고 태어난 이 외로움이 ‘명명’되는 감각 때문이겠지요. 고통이 고통스러운 가장 큰 이유는 그 무의미성 때문일 것이고요. 사랑하는 존재를 잃어버린 자의 외로움을, 아마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외로운 공간일 우주공간이라는 망망대해에서, 물리적인 언어로 풀어낸 멋진 작품입니다. 아마 마음의 실체가 인력을 가질 수는 없을 거예요. 그러나 마음을 눈으로 보고 다룰 수 있다면 우리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겠죠. 등이 붙은 사람들처럼, 서로를 알지 못하지만 멀리서도 외롭지 않은 도플갱어들처럼. 별을 이루고 있는 자신에 대해 아주 작고 아주 넓게 생각하게 되는 훌륭한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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