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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작 블런더버스

2017.03.31 20:1803.31

블런더버스

– Pip –

1

- 그래서, 하실거요 마실거요?

 낮은 탁자에 발을 얹은 남자가 입을 열었다. 은전 한 닢으로 셈을 치룬 독주는 벌써 병의 반이 넘게 사라졌다. 드워프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층 방에서 올려다본, 어지러이 샘솟은 건물들의 지붕들과 공장들의 증기가 노을을 깎아내린다. 드워프는 잔을 매만졌다. 둘의 사이에 앉은 오크가 드워프를 내려본다. 드워프의 두배는 족히 되는 키로 그를 내려보는 꼴이 영 유치하다.

 - 어떻게 생각하나, 영감?

 - 글쎄.

 드워프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노무자 일로 버는 돈이 하루에 은전 한 닢. 세 명이 일을 했으니 은전 세 닢. 그 중 술값을 뺀 두 닢이 탁자에 얹어져 노을을 맞는다. 드워프는 다시금 잔을 매만졌다. 방삯으로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럭저럭 끼니는 때울 수 있는 돈이다. 드워프는 손을 뻗어 탁자 위의 은전 하나를 집어들었다. 남자가 이야기하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드워프는 상인의 자식으로 났다. 형제들은 전쟁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집에 남았다.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 삶은 보잘것없지만 안락한 삶이다. 형제들은 드워프에게 비웃음을 흘리며, 전장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는 바른 사람이었다.

 - 그래도 될지 모르겠는걸.

 - 아니 영감님. 거 생각해봐요. 우리 셋이 하루에 버는 돈이 은전 세 닢이요. 이 방은 한 달에 마흔 닢이 나가. 그러면, 거기에 이따금씩 술마시고 밥도 먹구. 여자는 안만나나? 달에 그래두 두어번씩은 안아줘야 살맛이 나는거지. 그렇게 살아서 지난 달엔 얼마 남았소? 다섯 닢이요 다섯 닢. 영감. 우린 뭘 먹고 살어? 평생 이러고 사시게?

 남자가 소리질렀다. 목소리에 짙은 한탄이 배어있다. 드워프는 남자가 말하는 '건수'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현장에서 감독이 시시덕거리면서 소장에게 했다는 '매주 수요일 나가는 물건' 이야기. 남자는 지친 기색도 없이, 새참시간부터 일당을 받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도 끊임없이 속삭였다. 저놈들이 누군줄 아느냐. 깡패들이다. 그런 놈들이 뭘 가지고 나갈 것 같냐. 그것도 몰래. 저 놈들은 수도 얼마 되지 않아서, 그저 동네 삥이나 뜯으러 다니는 양아치들 뿐이다. 그러니 일을 치고 나서도 무서울 건 없다. 털어온 돈으로 밑천으로 뭐라도 좀 해보자. 하는 이야기를, 남자는 드워프에게 고했다. 어쨌거나 나이가 많으니 결정을 지어주지 않을까. 하는 계산이다. 드워프는 남자의 비열한 눈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런 벌이로 매일같이 숨막히게 사는 것도 밀기울로 배를 때우는 더러운 기분이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드워프는 입을 열었다.

 - 생각 좀 해보겠네.

 - 에이 씨팔. 영감. 뭐 사람이 남자답지 못해.

 남자는 탁자에 얹은 발을 바닥에 굴렀다. 남자가 성난 것이, 발 구르는 소리에 그대로 느껴졌다. 남자는 은전 두 닢을 집어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거. 나는 아가씨나 만나고 와야겠네. 왜요. 형님. 형님은 지난주에 갔고 영감은 지지난주에 갔는데, 이번주는 나잖아. 그치? 그니까, 재미 좀 보고 옵니다. 말씀마따나 생각 좀 해보시고.

 남자는 은전 두 닢을 집어드는 꼴을 아니꼽게 바라보던 오크에게 쏘아붙였다. 이내 남자는 방을 나섰다. 쾅 하고 방문을 닫는 것이 어지간히 성질이 난 모양이다. 오크는 남아있는 잔을 들이켰다.

 - 영감. 어떻게 생각하시오. 이거.

 드워프는 창밖을 바라보다 창틀과 그 문을 바라보았다. 술기운이 가슴께를 기어오른다.

 - 글쎄. 저 놈도 아가씨는 만나야 하지 않겠는가. 화대를 내긴 해도, 나름대로 사이가 깊은 것이 언제 살림이라도 차려보려고 하는 것 같은데.

 - 지금 그 이야기가 아니잖소?

 오크는 드워프의 답이 없는 입을 멀뚱히 바라보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몸을 살짝 비틀거리는 것이 그도 술이 오를 만큼 오른 듯했다.

 - 내일 밤이라니까, 빨리 좀 생각해보는 게 좋겠소. 나도 이렇게 살려고 여기 터 잡은건 아니니까. 뭐라도 해야겠거든.

 문 옆의 큼지막한 코트를 집어든 오크는 드워프를 돌아보았다.

 - 바람 좀 쐬고 오겠소. 영감. 좀 거하게 마신 것 같은데, 일찍 잡시다 우리는.

 드워프는 오크가 자리를 비운 뒤에도 한참동안 하늘을 바라보았다. 노을이 땅을 덮고 어스름이 떠오른다. 밤하늘의 별이 반짝였지만 이내 거리의 가스등불에 가리워 땅에 빛을 내주었다. 드워프는 몸을 일으켰다. 탁자를 짚는 손이 엇나갈뻔 했지만 겨우 균형을 잡았다. 드워프는 방 구석에 있는 자그마한 침대에 몸을 누였다. 술이 올라 눈이 뻑뻑하지만 잠에 들지는 않았다.

 아랫층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오크가 또 무얼 하나 깨먹은 모양이다. 이내 계단을 쿵쿵거리며 올라오는 발소리가 영락없는 주인할매의 것이다.

 - 어이, 거기! 있는 거 알아!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멎자마자 문을 두들기는 거센 소리가 드워프의 귓전을 때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배꼽 언저리까지 오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게밀게밀한 눈을 감았다. 잠에 들고 싶었다. 잠깐이나마 자유로워지고 싶다. 그의 수염 끝에 수염을 한곳으로 묶어주는 금가락지가 느껴졌다. 이 녀석을 팔 수는 없다, 조용히 사는 내가 드워프라는 인종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이 녀석 때문이다-

 그래도, 이렇게 살기는 싫다.

 드워프는 점점 눈이 감겨오는 것이 느껴졌다.

 - 방금 당신네 오크가 또 화병 하나를 깼어! 이것까지 쳐서 다음주에 마흔 다섯닢 받을테니 그거 알…

 주인할매의 목소리가 까물까물 사그러든다. 드워프는 잠에 들었다.

2

드워프는 꿈을 꾸지 않았다.

3

드워프는 코와 귀를 덮는 이 두건이 신경쓰였다. 숨이 들락날락하질 않는다. 입가에 축축하게 배어난 침이 찝찝하다. 오크는 반쯤 잘라둔 통나무에 몸을 기대었다. 그가 나무를 밀어내면 그대로 나무는 길가를 덮어버릴 것이다. 드워프는 납작 엎드린채로 저 너머 도시쪽의 길가를 바라보았다. 언제쯤 그 차가 오는지, 아예 안오는 건 아닌지 싶다. 드워프는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닌가 싶어 남자를 돌아보았다. 오크의 옆에 쪼그려앉은 남자는 언제라도 튀어나갈 것처럼 쪼그려 앉아 길가를 노려보았다.

 - 그런데, 자네.

 남자가 드워프를 돌아보았다.

 - 나무를 무너뜨리면 다음엔 어떻게 할 생각인가?

 남자는 드워프를 바라보며 품을 뒤졌다. 권총 한 정이 나왔다. 남자는 그것을 드워프에게 건네었다. 드워프는 오금이 찌르르한 것이 느껴졌다. 몇 번쯤 총을 본 적은 있지만 쥐어본 것은 처음이다. 드워프는 권총을 받아들었다. 그의 손이 와르르 떨리는 것을 보며 남자가 코웃음을 쳤다.

 - 그냥 겁만 줄거요. 제기, 영감. 겁은 많아가지고.

 총을 받아든 드워프는 손으로 그것을 훑어보았다. 가늠자와 노리쇠, 아마도- 황동색의 장식없는 밋밋한 몸체, 그리고 여섯개의 약실. 인간용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손잡이가 그의 손에는 영 길쭉하게 느껴졌다. 손잡이가 차갑다. 가을날의 쌀쌀한 공기가 차갑다고 생각했지만 이것은 다르다. 금속성의 냉기가 손바닥을 에인다. 드워프는 권총을 손에 쥔 채로 길가를 바라보았다. 무엇이라도 기어나올 것처럼. 권총을 쥐고 있으니 안그래도 느리게 가던 시간이 끝을 알 수 없을 것처럼 늘어졌다.

 저 너머에서 큼지막한 증기차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드워프의 가슴팍에 식은 땀이 범벅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조심스레 돌아가자고 해볼까’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 무렵에 두 개의 불빛이 길가에 드리웠다. 붉은색의, 열화석이 박힌 차의 전조등이었다. 남자의 심호흡이 드워프의 어깨에 무게를 지운다.

 - 지금.

 오크는 그 말을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나무를 밀어내었다. 우지직하는 소리가 나무 밑둥을 우레처럼 울린다. 드워프는 귀를 틀어막았다. 우직한 몸통위에 가지가 만발한 통나무가 길가를 덮었다. 적잖이 빠른 속도로 길을 지나던 증기차는 기이익하는 소름끼치는 소리를 뿜어내며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이내 나무를 비껴나가지 못하고 그 한가운데에 차체를 들이받았다. 또다시 굉음이 드워프를 덮었다. 드워프는 남자를 되돌아보았다. 남자는 여전히 수풀에 몸을 숨긴 채 우그러진 증기차를 주시했다.

 에-이-시-팔- 하는, 늘어지는 욕설과 함께 조수석과 짐칸에서 그림자가 움직인다. 둘 다 작지는 않은 키였다. 드워프는 우그러진 차의 전조등에서 품어져나오는 빛이 그들을 덮는 것을 보았다. 둘 중 한 명의 손에는 장총이 들려져있다. 드워프는 귓등이 시려오는 것을 느꼈다. 저걸 어떻게 겁만 준단 말이-

 탕

 귀청이 떨어져나갈것만 같다. 드워프의 오른편에서 총소리가 울렸다. 장총을 든 그림자의 머리가 픽, 하고 흔들리더니 그 몸이 무너져내린다. 동시에, 드워프는 그를 지나쳐 튀어나가는 남자의 그림자를 보았다.

 - 움직이지 마! 움직이면 그대로 갈아버릴테니까. 형님 와보쇼!

 나무를 무너뜨리고 급히 몸을 움츠렸던 오크가 달려나갔다. 손에 식은땀이 흐른다. 이대로 몸을 돌려 숲속으로 달아나는 것은 어떨까. 그는 생각했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남자의 그림자는 총부리를 짐칸으로 돌리고, 달려나가는 오크를 향해 소리쳤다.

 - 형님, 남은 애들 있으면 끄집어내쇼. 뒤는 봐줄테니까. 영감도 이리 오시고!

 드워프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머릿속이 하애지고 열기가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도망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생각에, 작은 다리를 놀려 그들에게 다가갔다.

 어물거리는 전조등의 빛 앞에서 남자는 짐칸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오크는 조수석에 있던 이의 멱살을 잡고, 그대로 그의 턱주가리를 주먹으로 갈겼다. 오크는 그가 쓰러지기가 무섭게 운전석에 앉은 이까지 끌어내었다. 이미 정신을 잃은 운전석에 앉았던 이는, 오크의 손에 밀 가마니처럼 풀썩하고 끌려나왔다. 오크는 그를 이미 쓰러진 이들 옆에 던져두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드워프는 그의 눈 앞에 널부러져있는 세 명의-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몸뚱어리들을 보았다. 그의 머릿속이 복잡하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이 사람들은 누군지, 그리고 왜 이 사람들이 죽었는지, 하는 것들에. 그는 눈앞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 형님, 더 없대요?

 남자가 여전히 짐칸을 겨냥한채로 오크에게 물었다. 오크는 응. 하고 나지막히 고개를 끄덕였다.

 - 영감님.

 남자가 드워프를 돌아보았다. 드워프는 멍한 얼굴로 시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에 들린 권총의 무게가 비현실적이다.

 - 영감님!

 드워프는 움찔, 하는 몸짓과 함께 고개를 들어 남자를 보았다.

 - 그 새끼들 쏴버려요.

 드워프의 손이 떨렸다. 눈에 띌 정도로. 그것을 바라보는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 아니, 쏘라구요. 뭐가 어렵나. 하나는 이미 죽고 둘은 반쯤 죽은 새끼들인데. 죽은 애도 한번 더쏘고 나머지도 쏴버려요. 형님은 이리 오고.

 남자는 몸을 낮추고 차체를 더듬어 차의 후미로 향했다. 오크는 그의 뒤를 따랐다.

 드워프는 다시 바닥에 쓰러져있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하나는 이미 이마 언저리에 총구멍이 난 채로 쓰러졌다. 나머지 둘은 옅게나마 숨이 붙어있는 듯 했다. 붉은 전조등 빛 아래에서 그 가슴이 위태롭게 위아래로 달음질을 치고 있다. 드워프는 그들을 겨누었다. 그리고, 그의 형제들을 생각했다.

 이 병신아 원래 서로 잡아먹는게 세상이야

 예전처럼 땅갈아먹고 살던 시대는 끝났어

 우리는 드워프야

 철의 정령은 죽었지만 우리는 죽지않았어

 우리는 드워프야

 신따위는 필요없어

 병신같은 것 빨리 오지 못해

 너따윗건 평생 호구잡히다 뒤지고야 말걸

 배냇병신

 드워프는 손을 들어 숨이 붙어있는 남자를 겨누었다. 갓 어린애 티를 벗은 어린 인간이다. 어둑어둑한 코트 옷깃 아래로 그의 피 몇방울이 떨어져있다- 남자와 오크는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 한참동안이나 답이 없다. 드워프는 이대로 남자와 오크가 올때까지 시간이 지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쓰러져있는 이 둘은 그대로 숨을 거두고, 모두가 돌아가는 것으로. 그의 마음에 평생 남을 짐이 되겠지만, 드워프는 그렇게 일이 끝나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그가 총을 겨누던 남자가 눈을 뜨기 전까지는.

 드워프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가 겨누고 있는 총 아래로 남자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드워프는 그 눈이 죽어가는 이의 마지막 발악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

 드워프가 총을 겨누고 있다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남자는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품안에 손을 찔러넣었다. 그의 몸은 죽은 듯이 힘을 잃었지만 그 눈에는 다른것이 담겨있었다.

 삶에 대한 의지와 갈곳없는 증오. 그에게 총을 겨눈 이를 향한 살의였다. 드워프는 숨이 막혀왔다. 그는 절대 이 남자를 죽이지 못한다. 두려웠다. 이 남자에게 그는 죽을 수 밖에 없다. 그는 방아쇠를 당길 수 없었다. 그는 남자의 눈에 도는 광기와 증오가 체념으로 변하기를 애타게 바랬다.

 남자는 품안에서 단검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드워프를 향해 휘둘렀다. 떨리는 손으로, 드워프에게 닿지 않는 단검을 미친듯이 휘둘렀다. 단검의 궤적은 드워프의 근처에도 가지 못한 채 허공에서 맴돌았다. 남자의 입에서 조용한 절규가 새어나왔다. 메어가는 목에서 마지막으로 터져나오는 기합이, 뒤틀린 꺽꺽대는 소리가 되었다.

 드워프는 그 눈이 두려웠다. 눈에 담긴 살의가,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는 그 남자를 악마로 바꾸었다. 난도질당한 기분이었다.

 드워프는 총구를 내렸다. 그리고 남자에게서 물러났다. 그는 그 남자를 죽일 수 없다.

 연신 단검을 휘두르던 남자는, 드워프를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단도를 손에서 떨구었다. 대신에 그는 몸을 일으켜 숲을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천천히, 떨리는 손으로. 그의 몸이 자꾸만 허물어져갔지만 남자는 계속해서 팔을 움직였다. 등을 완전히 내보였음에도 드워프는 그가 두려웠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드워프는 그 자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두렵다. 드워프는 자리에 멍하니 앉은 채로 수풀을 향해 사라져가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영겁과 같은 시간이 흘렀다. 남자와 오크는 드워프가 주저앉아 얼어붙어있는 것을 보았다. 시체가 하나 부족한 것도. ‘와. 시팔. 이것 좀 봐.’ 하며 오크가 들고 나온 상자를 보던 남자의 얼굴이 구겨졌다.

 - 영감님. 뭐야. 왜 하나가 없어.

 남자는 그대로 수풀쪽을 바라보았다. 바닥에 피를 머금은 흙이 얼마간 멍울져있다.

 - 이런 썅.

 남자는 그대로 수풀쪽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총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유유히 수풀 사이로 걸어나왔다. 그리고 그대로 드워프의 허벅지를 걷어찼다.

 - 씨발놈의 영감탱이. 제일 쉬운 일을 주는데 그걸 못해?

 남자는 침을 뱉었다. 그가 뱉은 침이 드워프의 이마에 맞았다. 남자는 쓰러진 이들의 품을 뒤적여 총기나 돈이 될만한 것들을 전부 박스에 던져넣었다.

 - 하. 이런 씨발 진짜. 좆될 뻔 했네. 이거. 형님. 갑시다.

 남자는 오크에게 고개를 까딱이고 도시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크가 드워프를 내려다보았다. 드워프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힐난이 가득 담긴 눈을 마주치기가 두려웠다. 오크는 이내 고개를 젓고, 그가 짐칸에서 들고 나온 상자를 어깨에 걸친 채로 남자를 따라 나섰다.

 드워프는 그들이 자리를 뜬 후에야 그들이 떠난 자리를 바라보았다. 떠나가는 오크의 뒷모습에 불신이 가득 서려있는 듯 했다. 눈물이 나왔다. 그들에게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영감은 어떻게 해. 몰라요. 시팔. 지가 알아서 오겠지. 어차피 이 돈이면 이제 서로 얼굴 볼 일 없는데!

 남자는 드워프가 들으라는 듯이 한껏 목소리를 높였다.

 드워프는 그 자리에 앉아 그들의 그림자마저도 사라질 때까지 그들이 떠나간 쪽을 바라보았다.

 전조등 불이 꺼져들어갈 때 즈음에야 드워프는 몸을 일으켰다.

4

- 사장님. 왜 그렇게 풀이 죽었어요?

 드워프는 술잔을 기울였다. 주변이 시끄럽다. 여기저기 기둥 언저리에 붙들린 등불 아래로 몸들이 뒤엉긴다. 그의 어깨를 휘감은 인간 여자의 분과 싸구려 향수 냄새가 체취와 뒤엉겨 토악질이 나올 것만 같다. 그의 가슴 언저리의 여자의 손길이 느껴진다. 그는 다시금 독주 한잔을 털어넣었다. 그의 주머니 언저리에 자그마한 주머니가 짤그랑거리는 소리를 토해낸다.

 드워프가 방으로 돌아왔을땐 이미 어두워질만큼 어두워져 도시가 고요했다. 그가 살고 있는 삼등 시민구역 다일라튜드를 빼면.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과 흐르는 술, 여성들의 교성이 끊이지 않는 곳에서, 그는 허물어지듯 거리를 헤치고 하숙집의 계단을 올랐다. 걸음걸음이 무겁다. 방문의 문고리는 간악하게 또아리를 틀고 그를 바라보았다. 방안에서 간간히 흘러나오는 웃음소리가 그의 눈앞을 아득하게 했다.

 - 사장님. 오늘 너무 빨리 마신다. 무슨 일 있어요?

 드워프는 여자의 가슴팍을 쥐었다. 그의 한손에 꽉 잡히는 가슴과, 그 젖무덤 아래께에 있는 꼭지가 그의 손을 간지럽혔다. 그의 혓바닥이 그녀의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그는 아랫도리에 뭉근한 감촉이 몰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씨발놈의 것. 꼴에 남자라고 구멍엔 귀신같이 기어오르는구나. 그는 여자의 머리칼을 쓸어넘기고, 목을 핥으며 거기에 입을 맞추었다. 여자의 입에서 억눌렸던 신음이 새어나왔다. 그는 여자의 손을 잡아 끌었다. 남은 술은 술병째로 들이키며 그는 안내받은 방으로 향한다.

 드워프의 가슴팍에 주머니가 던져진다. 그는 반사적으로 그것을 잡았다.

 - 거 심부름값이라고 생각하고, 한잔 걸치고 오쇼.

 남자와 오크는 박스 안에 있는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박스가 절반정도 비어있는 것을 보니, 어느정도는 처분한 것 같았다. 박스에는 장총 몇정과 권총, 탄알들이 어지러이 쌓여있다. 이게 다 얼마야. 형님. 대박이오. 하는 말에 오크도 귀가 입에 걸린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드워프는 손바닥에 얹어진 주머니를 살짝 열었다. 금빛으로 반짝이는 금전 하나와 은전 몇닢이다. 적은 돈은 아니다. 주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는 고개를 들어 다시 물건을 정리하는 그 둘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드워프의 눈길이 불편한지, 겨우내 몸을 일으켜 그를 바라보았다.

 - 영감님. 이거 가지고 술이라도 한잔 걸치시고, 여자도 한번 보고 그래. 응? 많이 쳐줬잖아.

 드워프는 말이 없다. 그는 드워프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아니 영감님. 왜요. 자존심이 상하는 거 같아? 솔직히 우리가 다 했잖아요. 그니까, 응.

 남자는 드워프의 어깨를 툭툭. 하고 두번 두들겼다.

 - 아니다. 영감님도 고생 많았다. 즐기고 오시라구요.

 남자는 다시 자리에 앉아 박스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장총들을 한아름 꺼낸 그는, 그것들을 포개어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는 드워프를 돌아보지 않고 말을 이었다.

 - 이것도 처분하면 돈은 좀 더 줄게. 알았죠? 내일 나랑 형님은 방 뺄거니까 뭐 앞으론 알아서 하시고.

 드워프는 조용히 주머니를 혁대에 매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 방을 나섰다. 그의 뒤켠에서 작게 씨발. 꼴에 자존심은 있어가지고.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는 방을 나섰다.

 - 아… 하아… 사장님. 오늘… 하아…

 여자는 격렬하게 몸을 뒤틀었다. 툭 튀어나온 광대가 흉측하다. 그녀의 눈가에서 분칠 아래 주름이 그대로 드러난다. 드워프는 그녀가 혐오스러웠다. 그는 계속해서 허리를 움직였다. 찔러넣었다. 불쾌한 희열이 허리를 감기 시작하는 것을 느낀다. 여자의 생기없는 신음소리와 함께, 그의 허리는 점점 더 격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너따윗건 평생 호구잡히다 뒤지고야 말걸

 배냇병신

 드워프는 손으로 여자의 어깻죽지를 붙잡았다. 그녀의 활처럼 휜 허리 위로 가슴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것을 미친듯이 핥았다. 평소에 그녀가 이렇게 굴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녀는 공문을 처리하는 듯한 의무적인 표정으로, 다리를 벌리고 일이 끝날때까지 기다리곤 했다. 일이 끝나면 값싼 담배 한 대를 피워물었다. 언제쯤 나갈것이냐는 눈길을 보내며. 오늘은 특별하다는 것을 드워프는 알고 있었다. 평소보다 돈을 세 배는 더 주었으니까. 드워프는 오늘 '사장님'이 되었다. 여남은 번을 만났지만, 그가 사장님이었던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드워프는 더러운 돈으로 그가 '사장님'이 되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토악질을 하고 싶었다. 여기서 은전 한두닢을 더 내면 토악질을 해도 치워주겠지. 그렇지. 드워프는 웃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새파랗게 어린 것한테 호된 꼴을 당했다. 그의 머리를 돌로 찍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도끼가 있다면 그의 정수리에 내리찍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미간 사이를 산탄총으로 갈겨버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그는 다시 웃었다. 웃음소리에 여자는 당황한 듯 했지만, 이내 얼굴에 웃음을 띠고 더 큰 신음을 내뿜었다. 그녀의 다리가 드워프의 허리를 감싸는 것이 느껴진다.

 - 사장님… 하아… 사장님…

 그의 머리에 핏기가 올라오는 것이 느껴진다. 몸 곳곳이 쾌락으로 몸부림친다. 짐승처럼 그는 허리를 계속해서 움직였다.

 - 사… 사… 하앗…

 그의 허리가 번개처럼 찔려들어가, 움찔거리며 떨린다. 여자는 흐르는 땀과 함께 그를 감싸안았다. 그의 몸이 그녀의 위에 무너진다. 그녀는 짧은 드워프의 몸을 감싸안고 정수리에 입을 맞추었다.

 - 오늘 좋았어요. 사장님.

 드워프는 이제 도망치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그는 손을 뻗어 선반 위의 술병을 집어들었다.

 오늘까지만 마시고, 내일부터는.

 한 병을 통째로 비운 그는, 여자를 보내고 거꾸러져 잠에 들었다.

 깊은 잠이었다.

5

드워프는 꿈을 꾸었다.

 전장에서 죽어버린 형제들이, 침대맡에 서서 그를 에워쌌다.

 병신같은 놈

 남자구실도 못하는 것이 뭐

 철의 정령의 수치야

 테레빈의 수치라고

 너따위것은 노움으로나 태어났으면 좋았을걸

 네가 그러고도 드워프냐

 평생 그렇게 살라지

 드워프는 잠에서 깨지 못했다.

6

드워프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머리가 아프다. 그는 어디론가 끌려간다. 누군가에게 들쳐업혀진 채로 밤거리를 헤치고 끌려간다. 드워프는 정신을 잃어간다. 익숙하지 않은 거리의 모습이다. 그를 들쳐업은 이에게서 말소리가 들린다.

 ……친 새끼. 배짱도 좋아……털고 사창가에서 뒹굴고 있…

 웃음소리.

 가물가물하다.

 드워프는 정신을 잃는다.

7

이마가 차갑다. 드워프는 숨을 쉬었다. 무언가가 흘러들어간 콧구멍이 화끈하다. 그는 눈을 떴다.

 방은 어둡다. 탁자 위의 촛불 두개가 겨우내 방을 밝힌다. 남자가 서있다. 못보던 남자다. 그는 고개를 돌린다. 그의 왼편에 오크가 앉아있다. 그는 손을 뻗는다. 손이 뻗어지지 않는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팔다리와 가슴팍이 의자에 묶여있다. 소리를 지른다.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단단하게 매여있는 재갈이 그의 입을 파고든다. 드워프는 몸을 뒤튼다. 아주 조금씩 움직일 뿐, 전혀 움직임이 없다. 풀어헤쳐진 셔츠와 바지가 전부 젖었다. 그는 물을 뒤집어썼다. 머리가 깨질것처럼 아프다.

 남자는 오크에게도 물을 끼얹었다. 오크도 눈을 번쩍뜨는 것이 보인다. 오크도 그와 같이, 손과 발을 움찔이다 소리를 지른다. 재갈에 막혀 소리가 나지 않을 뿐이다.

 - 날이 밝았어요. 선생님들.

 남자가 허리를 굽혀 드워프와 오크를 번갈아가며 바라본다. 촛불에 비친 남자의 피부는 밝지 않다. 뾰족한 귀의 끝에 촛불을 받아 광채가 어린다.

 - 자. 선생님들. 그 좀 당황하셨을건데. 그죠? 당황하셨지.

 밝은 목소리에도 드워프는 다리가 떨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정신은 없지만 상황이 느껴진다. 잠들었을때의 기억이 드문드문 고개를 든다. 죽는다. 나는 여기서 죽는다. 드워프는 정신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 아니 선생님. 좀 진정하시고. 여기 옆에 분은 진정하고 계시잖아요.

 드워프는 오크를 돌아보았다. 오크는 조용히 검은 엘프를 응시했다. 그의 눈매가 날카롭다. 드워프는 다시 엘프를 바라보았다. 엘프는 잠시동안 둘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 진정하셨네요. 선생님들. 여기 왜 오셨는지 아시죠?

 엘프는 드워프에게 허리를 기울였다. 그의 눈과 반뼘도 되지 않은 거리에서 엘프의 눈이 멈춘다.

 - 아시겠지. 무슨 일을 하셨는데.

 엘프는 몸을 돌려 그들에게 등을 보이며 걸었다. 저 앞에 문이 있는 듯이 그는 그곳을 두들긴다.

 - 일어났습니다.

 그래. 그것은 문이었다. 문이 열렸다. 음습한 빛이 흘러나온다. 엘프의 뒷모습 너머로 두명의 그림자가 보였다.

 - 저 둘이 맞나?

 우직한 목소리가 물음을 던졌다. 이윽고 가녀린 목소리가 답했다.

 - 네… 네. 맞아요. 저 둘이에요.

 드워프는 그 목소리를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뿐.

 - 그래. 알았다. 사례는 해야지.

 짤그랑. 하는 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려온다. 여자가 답했다.

 - 감사합니다. 전 이만…

 - 그래. 가봐. 네 기둥서방한테도 무슨 일 있으면 부르라 그래. 그 친구 똘똘해보이던데.

 - 네… 감사합니다.

 이윽고 발소리가 들리고, 누군가가 사라졌다. 여자가 떠나간 듯 했다. 우직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 맞대.

 - 어떻게 할까요?

 잠깐의 정적 후에,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온다.

 - 돼지밥으로 줘버려. 뭐.

 드워프는 고함을 질렀다. 그것은 저항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성대를 타고, 주변 건물에 혹시 있을 사람을 깨우기 위해 차올랐다. 그것이 재갈에 막히니, 추잡한 소리가 되었다. 문이 닫혔다.

 촛불이 그리지 못하는 짙은 어둠 속에서 기쁨에 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 들으셨죠. 선생님들?

8

정신이 아득하다. 눈앞이 흐리다. 생이빨이 세 개 뽑혔다. 촛불 아래서 칼날이 춤을 춘다. 그의 차례가 끝났다. 살점이 베어나가는 고통의 시간이 끝났다. 무거운, 상처위의 남은 고통이 살을 갉는다. 그는 왼편을 돌아본다. 베인다. 오크의 팔뚝에 예리한 칼날이 스며들어간다. 오크는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그 근육선을 타고 칼날이 헤엄친다. 웃음소리가 들린다. 기쁨의 찬 웃음 소리는 흩뿌려지는 피에 맞추워 기괴한 춤을 춘다.

 병신같은 놈

 네가 그러고도 드워프냐

 그는 시선을 돌린다. 바닥에 시선을 내리깐다. 석재 바닥에 발이 에일것처럼 차갑다. 바닥엔 더러운 자욱들이 덕지덕지 끼어있다. 거의 검은색에 가까운 붉은색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의 전에 거쳐갔던 사람들이다. 그는 고개를 들어 촛불을 바라본다. 초연하지 않다. 탁자 위에는 온갖가지 칼붙이가 늘어서있다. 그의 앞니와 어금니 두개가 나뒹굴고 있다. 말라붙어가는 그의 피가 탁자에 범벅이 된 것이 보인다.

  입안이 뜨끈하다. 그의 입이 꿀럭꿀럭 치어올라오는 피로 가득찼다. 그것을 밀어낸다. 입안의 불쾌함과 같이 피가 뿜어져나온다. 재갈을 적시던 토사물의 더러운 냄새가 코를 찌른다. 공포에 기어올라온 구토는 멎은지 오래다. 집에 가고 싶다. 나의 집에. 그는 어린시절 살던 집을 떠올렸다. 그 작은 토굴과 영원히 빛나는 갱도를 떠올렸다. 이런 짓은 하는 게 아니었다. 술에 찌든 속이 다시금 뒤집어진다. 그는 헛구역질을 한다. 으엑. 으에엑. 속에서 신물이 기어올라온다. 눈앞이 흐려진다.

 철의 정령의 수치야

 너따위것은 노움으로나 태어났으면 좋았을걸

 그는 왼편을 돌아본다. 오크의 팔뚝에 꽃이 피어났다. 붉다. 녹색 피부에서 붉은 꽃이, 그의 상박과 하박을 덮는다. 벗겨진 피부가 꽃잎이 되고, 그 안에 드러난 뼈와 근육들이 꽃술이 된다. 아름답다. 흐려진 눈 앞에서 잔상이 춤을 춘다. 오크가 신음을 흘린다. 오크는 강인한 종족이다. 피가 흐를 뿐이다. 오크의 몸이 요동친다. 흐르는 칼날이 다시금 웃는다. 정중한 웃음이 수줍은 웃음에서, 광기가 가득찬 웃음이 된다. 선생님 죽지 마세요 아직 힘드신 것 아니죠

 그는 정신을 잃는다. 눈앞이 어지러워진다. 입안에 따스함이 말라붙어간다.

 아니

 그는 정신을 잃지 않는다. 다시금 그의 얼굴에 찬물이 부어진다. 마른 입술에 물기가 와닿는 것이 기분이 좋다. 그는 고개를 든다. 엘프는 웃고 있다. 친절한 웃음이다. 선생님 그러시면 안되죠 옆을 보셔야지 어딜 보시는 거에요

 엘프는 다시 고개를 돌린다. 그의 양손에 들려진 단검이 부딪히며 불꽃이 인다. 오크의 오른팔에 꽃이 만개했다. 오크의 가슴도 헤쳐진다. 엘프는 정중하고 섬세하게 칼날을 놀린다. 야채껍질을 발라내듯이 피부의 포를 뜬다. 그것들이 펼쳐진다. 여기저기 피어오른 꽃들이 수줍다. 오크의 가슴에서 피가 튀어오른다. 엘프의 얼굴에 피가 와닿는다. 웃음소리가 더해진다. 방안을 가득 채운다.

 씨발새끼

 그 씨발새끼가 이랬던거야

 그는 고개를 든다. 천장을 바라본다. 그는 냉철해지기로 했다. 머릿속이 뜨겁다. 그는 남자를 떠올린다. 그 새끼. 쥐새끼. 그 새끼가 일러바친것이 틀림없다. 그 여자는 누구였나. 문 앞에 있던 그 여자는 누구였나. 그 새끼의 창녀가 분명하다. 더러운 년. 씨발 것들. 생살을 씹어먹을 것들

 정신이 갉힌다. 눈이 스러져간다. 눈꺼풀이 무겁다. 아무것도 없다. 잠에 들고 싶다. 그는 다시 왼편을 바라본다. 엘프와 눈이 마주친다. 엘프의 웃음기가 가신다. 드워프는 알고 있다. 엘프는 지겨워졌다. 그의 눈에 비친 광기가 드워프의 눈앞을 헤집는다. 엘프는 웃음짓는다. 몸을 흔들어보지만 소용없다. 죽고 싶지 않아. 제발. 제발. 죽고 싶지 않아. 제발. 나를 보지 말아줘. 제발.

 엘프는 그에게 다가온다. 그의 입가에 웃음소리가 새어나온다. 엘프는 다시 양 손에 든 단검을 부딪힌다. 빛이 난다. 그가 무어라고 이야기했지만 드워프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엘프는 오른손에 든 단검을 탁자에 박아넣는다. 단검이 박혀든다. 드워프가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가까운 거리에. 드워프는 요동친다. 엘프는 웃는다. 왼손에 든 단검의 날을 쓸어내리며 미소짓는다. 엘프의 얼굴에 튄 피들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엘프는 드워프의 이마에 손을 얹는다. 따뜻한 손길이다. 드워프는 잠시나마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엘프가 드워프의 오른쪽 귓바퀴를 잡았다. 칼날이 반짝인다.

 안돼 제발 거기만큼은 제발

 살려줘

 죽고 싶지 않아

 다 죽일거야 너까지도

 제발

 묶여있지만 않았다면

 제발

 엘프가 웃는다.

9

엘프의 웃음이 허물어진다. 드워프는 짧은 순간에, 초록색 머리통이 엘프의 어깻죽지를 덮치는 것을 보았다. 오크가 엘프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것을 바라본다. 오크의 볼이 난도질되어 입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으적. 오크는 풀려나지 않았다. 몸을 세차게 흔들어 의자를 오른편으로 넘어뜨렸을 뿐이다. 엘프의 목에서 검붉은 피가 뿜어져 나온다. 그의 얼굴에 고통이 서린다. 엘프는 오크를 끌어안듯이 오른손의 단검으로 오크의 뒷통수에 단검을 박아 넣는다. 엘프의 숨결에 피가 배어나온다. 엘프는 기침을 한다. 쿨럭. 목덜미에 흐르는 피가 그의 목구멍으로 타고 들어가, 입으로 토해져 나온다. 엘프는 발작을 하듯이 몸을 떤다. 몇번 더 기침을 한다. 그의 시선이 드워프에게로 향했다. 그는 입을 벌렸다.

 잠잠해졌다.

 드워프는 눈앞에 쓰러진 오크와 엘프를 바라보았다. 바닥에 피가, 그의 발을 덮을 만큼 흥건하게 흘렀다. 촛불이 비치는 바닥이 검붉게 물든다. 드워프는 엘프를 바라본다.

 씨발새끼

 씨발새끼

 드워프는 책상에 박힌 단검을 바라본다. 날카롭다. 그는 몸을 틀었다. 두뼘쯤 되는 거리다.

 그는 의자를 들썩였다.

 씨발새끼들

 감히 누굴

10

웃음소리가 왁자하다. 그들이 웃었다. 술잔이 다시 맴돈다. 소년은 이곳 사람들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멋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내가 말이야- 누군가를 범한 이야기, 돈을 뜯어낸 이야기, 죽인 이야기가 허공을 떠돌았다. 익숙하지 않은 술이 자꾸 눈앞을 흐리게 한다. 한 모금 한 모금마다 눈앞이 다른 방향으로 뒤집히는 것 같다.

 그는 윗층에 끌려 올라간 둘을 떠올렸다. 오크를 옮기는 데에는 장정 네 명이 달라 붙어야만 했다. 어떻게 우리를 털고 사창가를 맴돌 생각을 하지? 그의 맞은편에 앉은 남자가 말했다. 그러게요. 소년은 웃었다. 어딘가 모자란 놈들이 틀림없다. 이렇게 잘나가는 사람들 물건을 건드려?

 소년은 엘프를 떠올렸다. 음침한 사람이었다. 항상 조용히 책을 읽으며, 차를 마신다. 그들을 '건드린' 사람들을 징벌한다. 엘프는 그것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이라고 했다. 소년은 그가 단단히 미쳤다고 생각했다.

 - 야. 꼬마야. 윗층에서 미친 놈 좀 불러와라. 또 신나서 헤집고 있나보다.

 소년은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소년이 그의 집에서 우유배달을 할 즈음에 그에게 동전 한 닢을 더 쳐주었던 사람이다. 나이가 적잖이 된 사람인데도 서글서글하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소년은 그 남자를 존경했다. 나도 저런 사람이 될거야. 그럼에도 지금은 별로 올라가고 싶지 않았다. 술이 오를 만큼 올라, 에이. 아저씨가 가세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 남자는 다시 입을 열었다.

 - 그 놈이 해놓은 거 네가 다 치워야 돼. 빨리 안 가면 하루 종일 닦는다.

 남자는 한껏 불타고 있는 통에서 열화석을 하나 집어들어 랜턴의 윗부분에 집어넣었다. 불을 한껏 머금은 열화석이 주황빛을 은은하게 내뿜는다. 소년은 어쩔 수 없이 식탁 위에 놓인 열화석 랜턴과 투명한 술 한 병을 집어 들었다. 오호. 이 자식 봐라. 하는 웃음소리들이 들려온다. 세 명의 남자들이 소년을 보고 웃고 있다. 소년은 그것이 비웃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 에이 씨. 금방 갔다 올게요. 이거 다 먹지 마요.

 소년은 그들을 뒤로 하고 계단을 올랐다. 그의 뒤편에서 야-아. 그거 다 마셔버릴라구 따지도 않은 술을 가져가냐-라는 소리가 들린다.

 소년은 집에서 뒹굴고 있을 그의 부모를 떠올렸다. 소년이 들어오건 말건 그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동생들이 일곱이 있는데도, 부모는 밤에 술에 취해 침대에서 뒹구는 것을 그치지 않았다. 그딴 것도 부모라고. 소년은 이 곳에 살기로 했다. 잔심부름을 하고 살더라도 그의 부모보단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계단을 오른 소년은 왼편 복도 끝으로 향했다. '도축실'의 문앞은 고요했다. 소년은 그가 이후에 살게 될 삶을 떠올린다. 거리의 사람들이 고개 숙이고, 처녀들은 그를 보면서 가슴을 설레하겠지. 아아. 꽃집에 사는 그 여자라면-

 소년은 문고리를 잡아돌렸다. 그리고 거꾸러져가는 술기운 속에서 방안이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엘프가 쓰러져있다. 오크는 의자에 묶인 채로 엘프 위에 거꾸러져있다. 온몸에 벗겨진 피부 때문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 오크의 뒷통수에 큼직한 구멍이 뚫려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박혀있지 않다-

 소년은 그의 배를 날카롭게 찢어들어가는 칼날을 느꼈다.

11

드워프는 바닥에 쓰러진 소년이 비어져 나오는 내장을 집어넣으려 손을 허우적거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의 옆에 나뒹구는 술과 랜턴이, 그리고 소년의 놀란 표정이 그의 심기를 어지럽힌다. 몇 번인가 허우적거리던 소년이 손짓을 멈추었다. 드워프를 바라보는 표정은 변함이 없다. 드워프는 술병과 열화석 랜턴을 바라보았다. 술병을 따니 강렬한 냄새가 차오른다. 드워프는 그것을 한모금 마셨다. 뒤집어진 속에 술이 들어가, 잠시나마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구토가 목구멍을 비집고 올라왔지만 그는 그것을 참아내었다.

  드워프는 엘프의 바지춤에서 뽑은 권총과 술병을 들고 몸을 낮추었다. 아래층에서 왁자한 소리가 들려온다. 여기는 몇층인가. 그의 오른편 복도 끝에 비친 창문에서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이층이다. 그는 바닥을 쓸듯이 기어, 계단 난간에서 아래층을 훔쳐보았다. 세 명의 남자들이 술잔을 돌리고 있다. 시끄러운 목소리들이 그의 머리를 어지럽힌다. 그는 오른손에 쥐어진 권총의 감촉을 느꼈다. 그는 총을 쏘아본 적이 없다. 여기서 총을 쏜다고 해서 저 세 명을 다 죽일 수 있을까.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것도 옳은 생각은 아니었다. 세 명 말고도 더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는 어둠 속에 몸을 녹였다. 열화석 등불이 도는 아래층의 식탁을 빼면, 건물에는 어둠이 잠잠히 내려앉았다.

 그는 뒤를 돌아 창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소년을 바라보았다. 반쯤 흘러내린 내장이 소년의 배 위를 덮는다. 그는 그 옆에 널부러진 술병과 열화석 랜턴을 바라본다.

 드워프는 웃음지었다.

 남자들은 소년이 내려오지 않는 것을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다. 건물이 지나치게 고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즈음에 그들의 앞에 큼지막한 술병이 날아들었다. 그들의 몸 여기저기에 적셔진 술의 냄새가 고약하다. 놀라움에 고개를 들었을때, 그들은 드워프를 보았다. 그리고 공중에 날아드는 반짝이는 무언가를 보았다. 열화석이었다.

 드워프는 불타는 이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텅. 하는 불쾌한 소리와 반동이 몸을 떨리게 했다. 그들 중 한명의 왼쪽 어깨가 밀려나며 몸이 허물어진다. 드워프는 그 반동의 감각을 기억했다. 그리고 침착하게, 다른 한명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남자는 복부에 총탄을 맞은 채 바닥에 쓰러진다. 드워프가 마지막 남은 남자를 향해 총구를 움직였을 때 이미 그 남자는 살점이 익어가고 있었다.

 드워프는 빠르게 계단을 내려왔다. 그의 총구가 어디를 향할지 모른 채, 그는 보이지 않는 곳을 겨누었다. 그의 계단 끝 문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그는 그곳을 향해 방아쇠를 세 번 더 당겼다. 드워프는 남자들이 있던 식탁을 훑었다. 여전히 불씨가 타오르는 가운데 권총 두 정이 놓여있다. 그는 그것들을 허리춤에 찔러 넣었다. 아마도 권총에 들어가는 탄알은 여섯 발이다. 재장전을 할 시간도 없고, 하는 법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른 권총을 챙기는 수 밖에. 그는 식탁 너머의 창문에서 빛이 내어나오는 것을 보았다. 드워프는 의자에 걸린 큼지막한 코트를 둘러쓴 채로, 창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12

드워프는 뒷골목을 헤치며 달린다. 석재 건물과 목재 건물이 어지러이 놓인 것에, 그는 이곳이 이등 시민 구역과 삼등 시민 구역의 접경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언가에 씌인 것처럼 드워프는 달렸다. 그는 불타오르는 건물에 쓰러져있을, 죽어나간 이들을 떠올렸다. 그가 배를 그어버린 소년을 기억했다. 불타오르는 남자를 기억했다. 그가 쏘아 죽인 남자들을 기억했다. 그는 살아있었다. 살아있다는 쾌감이 그의 온몸을 찢고 뛰쳐나올 것만 같았다. 그의 아랫도리가 평생의 삶 그 어느때보다 뻣뻣하게 솟아올랐다. 그 피와 힘에 취해, 드워프는 그의 몸이 남성성의 쾌감에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계속해서 발버둥쳐야만 했다. 살아야만 했다.

  그는 달려가는 발을 덮는 물웅덩이의 감촉을 느꼈다.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저 너머 뒤켠에서 오크와 드워프다- 둘 중 하나야- 시팔- 빨리 쫒아-하는 외침이 들려온다. 그는 우뚝 멈춰섰다.

 오크와 드워프.

 나는 드워프다.

 그는 뒷골목 한가운데에 무릎을 꿇었다. 물웅덩이가 달빛을 받아 더러운 도시의 풍경을 그려낸다. 그리고, 그의 모습이 비친다. 얼굴 이 곳 저곳에 드러난 칼자국들은 어제까지 없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의 턱을 뒤덮는 수염을 보았다.

 드워프는 수염을 기르지, 그것은 드워프의 긍지야

 병신같은 것, 너따위가 수염을 기른다고 다 드워프냐

 그는 수염을 부여잡았다. 수염 끝에 매여진 가락지가, 그의 수염을 단단하게 묶는다. 그는 가락지의 감촉을 느꼈다. 이백년 즈음 전에 사라진, 드워프들의 도시가 음각된 가락지였다. 드워프의 역사가, 가족이, 삶이, 정신이 서려있는 것이었다.

 드워프는 가락지를 어루만졌다. 다시 수염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단검으로 그것을 잘라내었다.

 그는 드워프가 아니었다.

13

그녀는 새벽잠이 없었다. 인간은 삶이 끝을 향해 달려갈 때에야, 그 어느때보다 삶의 많은 것들을 눈에 담고 싶어한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그녀는 집 앞 의자에 앉아 거리를 바라보았다. 영원히 불이 꺼지지 않는 거리라고 해도 그 거리의 존재를 해치는 사람들이 없는 시간은 존재한다. 그것이 지금이었다. 하늘이 어두움을 걷어내고, 연청색 빛을 흩뿌린다. 그녀는 이 시간이야말로 하루 중에서 가장 기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방을 세를 내주니 먹고 살 돈은 나왔다. 그녀는 매일같이 거리를 바라보았다. 삶을 그리고 젊은 시절을 그렸다.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이라도, 그녀는 삶을 바랬다. 그녀는 거리의 끝에서 자그마한 형체가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익숙한 형체였다. 언젠가, 아니 매일같이 보던 형체다. 그녀는 잠시 삶에 대한 사색을 접어두기로 했다. 먹고 살기 위해선 일을 해야하니까. 그녀는 그녀의 집으로 다가오는 형체를 향해 소리질렀다.

 - 어이 당신!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야! 방을 아예 뒤집어놓았잖아! 이딴 식으로 할거면 당장 나가!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에 만족했다. 이 순간에 그녀는 귀부인이고 여왕이었다. 백성 앞에 그녀는 자애로워질수도, 더없이 잔인해질 수도 있었다. 몇 년간 살아오면서 그녀는 이러한 순간을 하나하나 기억할 수 있었다. 초췌한 행색의, 무엇보다 수염이 없는 그 남자는 그녀의 앞을 지나쳐 계단으로 향했다. 그녀는 다시금 소리쳤다.

 - 내 말 안들려! 당ㅅ…

 그녀는 그녀의 미간을 향해 겨누어진 권총을 바라보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일은 있었던 적이 없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큼지막한 코트 소매가 권총까지 가린 채로, 그녀를 향했다.

 - 아가리 닥치시오. 찢어놓기 전에.

 남자는 계단을 올랐다. 그녀는 주저앉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14

남자는 한껏 뒤집어진 방안을 바라보았다. 그의 탁자가 있던 자리도, 오크의 침상과 옷장이 있던 자리도, 쥐새끼가 잠자던 침대까지도 전부 뒤집혀있었다. 아무것도 없다. 값어치 될만한 것들도, 방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던 상자도, 쥐새끼의 옷가지까지도. 예상했던 일이다. 하지만 쥐새끼의 침대 밑 바닥이 뜯어져있던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 아래에는 동전 몇 개가 떨어져있다. 쥐새끼는 계속해서 돈을 빼돌렸던 것이 틀림없다. 남자는 웃었다. 영악한 새끼.

 남자는 단검을 꺼내 남은 수염을 말끔히 깎아냈다. 그의 옷가지를 걸쳤다. 피가 빼짓이 묻어난 셔츠와 바지, 약실이 비어있는 권총은 구석에 던져버렸다. 남자는 방을 나섰다. 어디로 가야할 지 알고 있었다.

15

남자는 문을 두들겼다. 해가 슬슬 떠오르는 이 시간에 열만한 곳은 아니지만, 동시에 돈과 욕망이 있는 한 문을 닫지 않는 곳이다. 마담이 문을 열었다. 머리를 질끈 묶고 소매를 걷어붙인 것이 청소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 무슨 일이에요. 이 시간에.

 그녀의 얼굴에 짜증이 잔뜩 서려있다. 아침에 오는 손님들은 먹잘 것이 없다. 걸핏하면 바닥에 구토를 쏟을 만큼 취해있거나.

 - 영업하시오?

 마담은 그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수염 없이 비루하게나마 옷을 차려 입은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노움이다. 취한 것도 아니었으나 부유해 보이지도 않았다. 얼굴 여기저기 난 상처가 반갑지 않다. 언젠가 본 듯 했지만 썩 기억이 나지는 않는 얼굴이다. 마담은 그를 보내버리기로 했다.

 - 안해요. 무슨 꼭두새벽부터 구멍장사야.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자는 주머니를 뒤적였다. 흥. 뭐가 나온다고. 라고 코웃음을 치는 마담의 손에 금가락지가 얹어졌다. 이것저것 복잡한 문양이 음각된 것이, 가격이 상당히 나가 보인다. 마담은 웃었다. 얘기가 달라졌다. 마담은 남자를 안으로 들였다.

 - 한잔 하시겠어요?

 - 여자한테 들여보내시오. 그 여자로. 그.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계단을 오르던 남자가 말했다.

 - 그 금발 여자로.

16

여자는 눈을 부비면서 방문을 열었다. 그녀에게 술병을 받아든 남자는 쥐고 있던 잔에 그것을 따라내어 들이켰다. 여자는 그 사람이 두려웠다. 어디가 두려운 것인지 찝어 말할 수는 없었다. 여자는 마담의 채근에 겨우내 일어나 술병을 받아들었다. 어떤 미친 놈이 아침부터 마담을 이렇게 들뜨게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돈푼깨나 쥐어준 것이 분명했다.

 남자 앞에서 그녀는 천천히 페티코트의 단추를 풀었다.

 남자는 등을 보이며 옷을 벗는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창문 너머로 새어나오는 빛이 그녀의 머리칼을 적셨다. 여자는 어렸다. 아름답다. 세상 물정 모르는 순수한 여자의 얼굴이다. 남자는 아직 잠들지 않은 아랫도리를 느꼈다. 쥐새끼의 머리를 꺾어버려야했다. 남자는 코트와 셔츠를 벗고 침대로 앉았다. 여자는 침대에 누워 마담이 원하는 말을 읊었다.

 - 사장님. 저를 더럽혀주세요.

 남자는 천천히 그녀의 다리 사이로 들어왔다. 그녀는 그의 흉측한 물건이 그녀를 헤집을 준비를 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여자는 그녀의 연인을 생각했다. 이것도 빨리 끝나길. 떠날 수 있기를…

 그것이 들어선다.

 - 아아…

 여자는 옅은 신음을 흘렸다. 남자는 침대를 짚은 채 계속해서 허리를 움직였다. 긴장되지 않았던 여자의 몸에 힘이 들어간다. 여자는 남자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 사장님… 너무 좋아… 아아…

 남자는 그런 여자를 바라보며 허리를 계속해서 움직였다. 아랫도리의 쾌락이 있어야할 곳을 찾은 듯이 요동친다. 남자는 여자의 흘러내릴 것 같은 가슴을 쥐었다. 그의 허리놀림이 점점 격렬해진다.

 - 하아… 사장님…

 남자는 여자의 양쪽 가슴을 손으로 감싸안아 주무르다 그녀의 양 어깨에 손을 짚었다.

 그리고 그녀의 입을 막았다.

 - 그 새끼 어딨어.

 여자의 몸이 굳었다. 그녀의 신음이 한 순간에 멎었다. 그녀의 당황한 눈길이 남자를 흥분시켰다.

 - 이 썅년아. 그 쥐새끼 어디있냐고.

 여자는 남자를 천천히 뜯어보았다. 남자가 누군지 깨달았다. 남자를 어디서 보았는지 깨달았다. 어째서 그 남자가 두려웠던 건지 깨달았다. 그녀는 벗어나기위해 몸을 틀었다. 남자의 허리가 그것을 막아섰다. 다시 찔려들어온다.

 여자는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남자의 우악스런 손길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남자는 난폭하게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자가 지르는 비명은 남자의 손에 무의미한 신음이 되었다. 남자는 그의 손을 통해 느껴지는 여자의 절규가, 그 진동이 주는 쾌감에 몸을 떨었다. 그는 지금 한 생명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 그는 허리를 계속 움직이며 여자의 귀에 속삭였다.

 - 소리쳐봐. 도망갈 수 있나.

 점점 더 난폭하게 고개를 쳐드는 남자의 아랫도리에, 여자는 몸이 찢어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녀의 절규가 점점 커졌다. 남자는 오른손으로 여자의 관자놀이를 때렸다. 짝. 남자는 여자의 아랫도리가 조여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즐거웠다. 여자의 몸부림이 점점 격렬해졌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관자놀이를 타고 흐른다. 그의 허리는 멈추지 않는다. 그녀의 비명이 격렬해지는 만큼, 남자의 허리는 그것을 벌하듯이 난폭해졌다. 여자는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방안은 고요하다. 남자의 신음과 아랫도리를 부딪히는 음란한 소리가 울려퍼진다. 남자는 배갯잇 아래에 숨겨둔 단검을 꺼내들었다. 그것을 보고 동그래진 눈으로 다시 비명을 지르는 여자의 귀에 남자가 속삭였다.

 - 조용히 해. 찢어버린다.

 여자의 손이 남자의 어깨와 얼굴을 때렸다. 죽고 싶지 않다는 의지를 보였다. 남자의 아래에 깔린 채로 여자는 다시 비명을 질렀다. 남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 그 새끼 어디있는지 말하면, 살려주지.

 여자의 몸부림이 약해졌다. 여자는 불신이 가득 담긴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표독스러운 눈에 눈물이 흐른다. 남자는 웃었다. 여자는 그 웃음이 포근해보인다고 생각했다.

 여자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손을 살짝 떼었다. 언제라도 비명을 지르면 다시 틀어막을 수 있을 정도로 살짝. 여자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그의 손을 통해 느껴졌다.

 - 그… 그분은…

 남자는 허리를 찔러넣었다. 이전보다는 훨씬 상냥하고 부드럽다. 여자는 신음을 흘렸다.

 - 어제… 하앗… 밤에 떠났어요… 흐으… 내일… 데리러… 아아… 온다고…

 - 그래? 그것뿐이야?

 여자는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정도면…

 남자의 손이 다시 우악스럽게 그녀의 입을 덮쳤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그녀는 다시 몸부림쳤다. 남자는 단검을 침대 밖으로 던져버렸다.

 - 죽어도 서방은 못넘겨 주겠다 이거지?

 여자의 눈이 공포로 물들었다. 그녀는 죽을 것이다. 이 사람이 그녀를 죽일 것이다. 그녀는 미친듯이 남자의 몸을 할퀴었다. 남자의 허리가 더없이 난폭해진다. 여자는 울부짖었다. 눈물이 터져나올 것 같다.

 남자는 여자의 배를 후려갈겼다. 여자의 아랫도리가 바싹 오므라드는 느껴진다. 그의 손 너머로 여자의 쿨럭거림이 전해진다. 남자는 미소지었다. 잔인한 웃음이다.

 - 그럼 됐어.

 남자는 허리를 멈추지 않고 여자의 몸을 때렸다. 그녀의 배에 주먹을 꼽아넣고 가슴을 후려갈겼다. 그녀의 몸 이곳 저곳에 멍과 벌겋게 올라온 피부들이 피어났다. 남자는 주체할 수 없는 쾌감에 신음을 내뱉었다. 정복한다. 가진다. 부순다. 찢는다.

 여자가 정신을 잃어갈 즈음에, 남자는 그녀의 목을 졸랐다. 그녀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마와 얼굴에 핏줄이 불거져나온다. 그는 그녀를 정복했다는 느낌에 허리를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격렬하게 저항하는 만큼, 더 난폭하게.

 남자가 일을 끝마쳤을때에는 여자의 입가에 거품기가 묻어났다. 눈을 부릅 뜬 채로 여자의 고개가 베개에 힘없이 늘어뜨려진다. 그녀의 숨은 멎은 지 오래였다. 남자는 옷을 다시 입고 술을 들이켰다. 어느때보다 만족스럽다. 그녀의 얼굴에 침을 뱉어준 남자는 방을 나섰다.

 마담이 들어서기까진 시간이 있을 것이다.

 남자는 사창가를 떠났다.

17

해가 떠오른다. 다리 아래 수도를 흐르는 오물들이 물과 뒤섞여 침침한 빛을 보낸다. 남자는 하수도의 입구에 걸터앉아 술병을 들이켰다. 쥐새끼는 알아챌 것이다. 그 쓰레기들의 건물이 불탄 것도, 그의 여자가 어떤 꼴을 당했는 지 까지도. 어디론가 도망치겠지. 그래봤자 이 도시 안이다.

 쓰레기들은 남자를 쫒고 있다. 더 이상 도시는 그가 걸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남자는 하수구 입구로 들어섰다.

 해가 발하는, 터져나올 것 같은 빛을 뒤로 하고 그는 어둠에 잠겨들어갔다. 편안하다.

 쥐새끼를 잡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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