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이쪽이세요

김성호

1

1년이 되었을 거라고, 짐작할 뿐이다. 이쪽이 죽은 지 말이다. 이쪽이란 말은 처음 들었을 때 어떤 경계심이 느껴지는 단어다. 네 편과 내 편을 가르는 말, 그래서 초면에 실례하지 않을 수 있는 말. 이쪽이에요? 그에게 처음 꺼낸 말이 멍청하게도 그것이었다. 그는 네, 이쪽이죠,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게이 술번개 모임에서였다. 나는 술에 조금 취한 상태였다. 술게임을 하다 그와 키스를 하게 되었고, 그 때문에 그 옆자리에 앉아있었다. 담배 타임이 이어지고, 남은 사람들을 둘러보다 나는 그에게 문득 그렇게 물었다. 당연히 이쪽인데 이쪽이냐고 묻는. 그때 우리는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나는 그를 ‘이쪽’이라는 이름으로 저장했다. 이쪽은 말이 없는 편이었다. 동글동글한 이목구비에 찐빵 같은 볼, 기다란 목, 180센티미터의 큰 키에 8등신 비율, 그를 겉으로만 수식하자면 그랬다. 영원히 그 모습으로 있을 것만 같던 이쪽이 죽었을 때. 나는. 그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죽을 수가 있지, 그런 생각이 더 컸다. 그때 처음으로 죽음이란 말이 가진 비현실성과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울기엔 여전히 이해가 부족했다. 이쪽의 빈소를 지키고, 운구차를 따라가고, 발인을 할 때에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모든 감정들이 타인의 것이 되어버린 것처럼, 감정들이 조종당하는 것처럼, 내 마음대로 조절이 되지 않았다.

지금처럼 울 수만 있었더라면 차라리 좋았을 걸.

나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영화 시작 전 문구를 기억한다. <바비를 위한 기도>라는 제목이 다시 나타난다. 실제 주인공의 모델이 된 사람들의 사진이 흘러간다. 나는 멈추지 않는 눈물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어떠한 감정의 폭발을 먼발치에서 관조하는 듯한 기분으로 바라다본다. 바비를 죽인 건 누구일까. 다름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엄마? 가족에게 동생을 아웃팅 한 형? 그게 누구이든 책임을 지기엔 이미 늦어버렸다는 사실만이 생선 뼈다귀 마냥 잔해로 남을 뿐이다. 나는 달력을 본다. 11월이다. 오늘은 10월 31일. 11월에 이쪽은 죽었다. 11월의 며칠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리 기억해내려고 애써도 헷갈렸다. 네이버 지식인에 물어보니 일종의 기억상실증이라고 했다. 병원에 가보세요. 나는 병원에 가보았다. 그러나 기억이 나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의사는 시간이 흐르면서 충격에서 벗어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오늘을 죽지 않고 살아냈으니 이제 11월이고, 11월은 어떻게 살아내야 하나 했는데, 좋은 이유가 생겼다. 이쪽의 기일이 언제인지 11월 하루하루를 살아내면서 느낌이 오기를, 기억이 나기를 바라야 했다. 버틸 수 있을까. 나는 나를 알 수 없다.

문이 열린다. 나는 노트북을 덮는다. 세령 씨가 들어선다. 그의 손엔 오늘도 뭔가가 들려있다. 간호복 차림의 그가 내 앞으로 다가선다. 그는 점심을 먹었느냐고 묻는다. 나는 아직, 이라고 대답한다. 그럼 이거 드실래요? 그가 내게 샌드위치가 담긴 봉투를 건넨다. 괜찮다고 말하지만 그는 자신도 괜찮다며 얼른 건넨 뒤 한 쪽 테이블에 가 앉는다. 나는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짓는다. 매일 드시던 거 드시겠느냐고 묻는다. 그는 머리를 주억거린다. 초코칩 밀크쉐이크를 만들기 시작한다.

치매 걸린 분들이 늘어나서 걱정이에요.

그가 말을 꺼낸다.

제가 ‘오과장’ 할아버지 얘기한 적 있죠? 그 할아버지가 오늘은 나보고 태석이라고 막 부르면서, 사실 너 좋아한다고, 우리 결혼하자고 하는 거 있죠. 이름이 태석이면 남자일텐데, 설마 동성애자나 뭐 그런 걸까요.

글쎄요.

이번에 젊은 요양사가 들어왔어요. 남잔데, 소문이 안좋아요.

나는 그에게 초코칩 밀크쉐이크를 갖다 준다.

술버릇이 나쁜가봐요. 전에 있던 요양원에서 노인 한 명을 죽어라 팼대나 뭐라나. 남자들이 페미니즘 좀 배웠으면 좋겠어요. 사실 그건 페미니즘 같은 사상의 문제도 아니죠. 인간으로서의 기본 예의와 인성이니까. 그런 인간을 받아준 우리 요양원도 한심하죠. 월급은 쥐꼬리만큼 주면서 이젠 그런 남자가 화나서 때릴까봐 눈치까지 봐야하다니. 하여튼 술 처먹고 사람 때리는 것들은 다 음주운전하고 똑같이 처벌해야 돼요.

성한 씨는 술 담배 안하죠?

네. 커피 만드는데 술 담배하면 안되죠.

성한 씨는 취미가 뭐예요? 한가할 때 누구랑 놀아요?

같이 영화도 보고, 노래방도 가고, 밥도 먹고 카페도 가던 친구가 있었는데,

나는 문을 열어둔다. 차가운 바람이 살을 할퀸다.

죽었어요.

2

벧엘 교회, 라고 적힌 책자를 들고 맞은편의 롯데백화점만한 교회 건물을 올려다본다. 무슨 돈으로 이렇게 큰 건물을 지은 걸까. 돈 많은 기독교 신자가 후원을 많이 하는 걸까. 나는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거대한 흰색 트리가 3층 난간에까지 뻗어있다. 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사람들이 속속들이 들어서는 중이다. 일요일 정기 예배 시간이다. 나는 사람들을 따라 널따란 예배당으로 걸음을 옮긴다. 세종문화회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커다란 예배당이다. 3층까지 예배석이 마련되어 있다. 나는 자리를 뺏길 세라 얼른 1층 앞쪽의 자리 한 곳을 꿰차 앉는다. 목사가 들어오고, 예배가 시작된다. 찬송가의 리듬이 흥겹다. 나는 조금씩 발로 리듬을 타며 알지도 못하는 노래를 따라 흥얼거린다. 내가 왜 교회를 왔는지, 문득 나는 의문이 생긴다. 주변에 교회나 성당을 다니는 이들은 없었다. 없다. 이쪽도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 싶지만, 그래도 궁금해지는 것이다. 교회를 가고 싶다는 바람은 예전부터 간간이 있었다. 다만 교회를 위해 내야 할 시간과 돈, 어느 곳을 다녀야 할 지 알 수 없는 어려움 등으로 미뤄오던 터였다.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사람들이 두 손을 가슴 정중앙에 모은다. 마치 잘못 건드리면 깨지고 부서지는 유리알을 감싸듯. 그냥 어느 날 문득, 교회가 가고 싶어졌다. 일종의 반항심 같은 것이기도 했다. 동성애자인 내가 동성애자를 배척하는 교회에 가서 마음껏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부르짖고 하나님을 마음에 품어도 다른 이들은 모를 것이었다. 그저 나를 독실한 기독교 신자, 시스젠더 헤테로 남성, 비퀴어 쯤으로 알 테니. 하지만 그런 치기 어린 생각은 두 번째였다. 첫 번째 이유는 외로워서였다. 카페 손님이 있고 세령 씨가 있지만 그런 일상생활 속의 얄팍한 관계 말고,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그런 무거운 존재를 원했다.

하나님만큼 무거운 존재가 있을까.

있다면 누가 추천해주길 나는 바란다.

11월 2일이다. 아무런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는 거실 한 가운데에 마련해놓은 제사상을 쳐다본다. 1일 자정에 펼쳐놓은 제사상이다. 과일과 떡, 치킨과 피자, 아보카도, 초밥 등이 올라가 있다. 이쪽이 좋아하던 음식들을 잔뜩 올린 상이다. 11월 중 기일이 언제인지 모르니 1일부터 제사를 지내자고, 한 달 내내 지내자고 아이디어를 낸 내 또 다른 자아를 탓해야 했다. 음식들은 이미 상하기 시작한 것도 있고, 다른 것들도 머잖아 윙윙거리는 파리를 몰고 다니며 썩어갈 것이다. 나는 두 번 몸을 접고 다시 두 번 몸을 접는다. 절을 흉내 낸다. 검은 정장 차림으로 나는 가만히 서있다. 매일 절도 해야 한다. 언제가 기일인지 알 수 없으므로. 이 역시 나의 또 다른 자아가 낸 아이디어다. 악몽을 꾸지 않게 해주세요. 나는 이쪽의 사진이 담긴 액자를 응시하며 속으로 중얼거린다.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흰 천으로 덮인 이쪽을 끌고 간다. 나는 그 뒤를 쫓으며 이쪽의 이름을 부른다. 그러나 그 누구도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나는 달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다리는 슬로우 모션에 걸린 것처럼 한없이 느리다. 한순간 모든 게 정지한다. 시간에 박제 된 양. 나는 천천히 걸어갔다. 흰 천을 벗긴다. 이쪽이다. 핏기 없고, 창백하고, 생전 어떠한 말도 뱉지 않아 허공을 베어 문, 석고처럼 굳은 입술, 나는 그 입술에 내 입술을 가져간다. 나는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선다. 타오르는 불처럼 뜨거웠다. 이쪽의 몸 어딘가에서 일기 시작한 불길이 순식간에 상반신을 집어삼킨다. 불은 곧이어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에게로, 바닥으로, 벽으로 번져나간다. 나는 침을 삼킨다. 곧이어 나는 문 바깥으로 밀려난다. 문은, 철제문은 화장터의 그 오븐 뚜껑 같은 문이다. 나는 불에 타는 이쪽을 보며 괴성을 지른다. 아악, 악, 문 틈새로 피가 새어나온다. 뜨겁고 차가운 피다. 비명이 들린다. 이쪽의 목과 가슴과 배를 찌르는 칼이 보이고, 칼을 쥔 손목이 보이고, 손목으로 이어지는 몸들이 보인다.

똥꼬충 새끼들아!

에이즈 옮기지 말고 집으로 꺼져라!

너희 부모가 불쌍하다, 더러운 새끼들.

수없는 말들에 베이고 베인 나는 그러나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

새벽 네 시다.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나는 부엌으로 가 물을 마신다. 악몽을 꾸지 않게 해달라고 그렇게 빌었는데. 나는 거실 불을 켠다. 제사상 위의 액자 속에서 흘리듯 웃고 있는 이쪽을 곁눈질한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를 기억한다. 퀴어문화축제에서였다. 고양시에서 처음 열리는 퀴어축제였다. 고양시의 모든 교회 신도들이 총 집합한 듯했다. 그들 말고도 일반적인 포비아들도 많았을 것이다. 혐오세력 때문에 부스가 정상적으로 설치되지도 못했다. 행진은 당연히 물 건너간 상황이었다. 트럭 아래 들어가 눕질 않나, 서로 팔짱을 낀 채 40도 가까이 육박한 더위를 무릅쓰고 아스팔트 도로에 눕질 않나. 그러던 중 이쪽이 사라졌다. 나는 이쪽을 찾아 온 군데를 다 돌아다녀봤지만 어디에도 그는 없었다. 다시 이쪽을 만났을 때 나는 채 마르지 않은 핏자국을 밟고 서있었다. 엠블럼에 피가 묻은 SUV 차량 한 대가 서있었다. 응급구조대와 경찰들이 주위에 포진해 있었다. 이쪽과 애인으로 사귄 지 3년이 되는 해였다.

3

기독교 용품 가게에서 십자가를 하나 샀다. 나는 카페 문을 열었다. 세령 씨는 오늘 휴무였다. 노인요양원에 출근하지 않을 때는 카페에 오지 않는다. 한가했다. 유리창을 투과하는 햇빛은 아무 것도 담지 못한 채 겉 표면에 미끄러지기만 할 뿐이다. 나는 치즈 케이크 한 조각을 꺼내 접시에 담는다. 이쪽이 좋아하던 케이크다. 언젠가 우리는 치즈 케이크 하나와 초콜릿 라떼를 하나 시켜놓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클로짓으로 살던 시절, 그때의 사랑에 대해서 말이다. 누구에게도 커밍아웃 하지 않았을 때였다. 이쪽은 좋아하던 남자애가 있었는데, 토론 시간을 항상 기다렸다고 했다. 나는 왜냐고 물었다. 내가 토론을 좀 잘했거든. 이쪽이 내 손을 자기 뺨으로 가져가며 말을 이었다. 책을 읽고 토론하고, 토론 결과를 발표하고 다시 청중에게 질문을 받는 그런 형식이었어. 그때 내가 마구 질문을 쏟아냈지. 당황해하면서 웃는 게 눈에 빤히 보였어. 그게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어. 설렜고. 좋았어. 무슨 질문이었는데? 잘 기억이 안나. 이쪽이 미간을 찌푸렸다. 너는 어때? 너도 누굴 좋아했을 거 아냐. 나는 음, 가만히 생각하는 척 했다. 나는 연극을 했었어. 국어 시간이었는데 ‘의자는 잘못 없다’라는 희곡을 개작해서 연극을 하는 거였어. 그때 나하고 걔가 부부 역할을 맡았지. 나는 남편이었고 걔는 아내였어. 사실 그 설정만으로도 떨렸지. 부부라니. 생각해봐. 그러게. 뺨을 맞는 씬이 있었어. 뺨을 어떻게 때릴까, 그것 때문에 의견이 갈렸는데 나는 그냥 진짜 맞겠다고 했지. 그래서 리허설 때 걔가 내 뺨을 쳤어. 근데 너무 세게 쳐서 고개가 돌아갈 정도였어. 걔가 곧바로 와서 안아주면서 미안하다고, 괜찮느냐고 했지. 그 순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 나는 몇 번이고 뺨을 내주고 싶었어. 조금이라도 오래 그 애의 손길에 닿아있고 싶었어. 그랬구나. 지금 내가 때려줄까? 이쪽이 킥킥대며 웃었다.

문이 열린다. 세령 씨가 들어온다. 나는 조금 놀란다. 화사한 원피스를 입은 그는 예뻤다. 나는 저번에 죽었어요, 대답한 걸 떠올린다. 이쪽이 퀴어문화축제에서 살해당했다, 는 사실까진 말하지 않았다. 그때 그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채 또 오겠다며 카페를 나섰다. 나는 아무 것도 말할 용기가 없었다.

그는 도넛 상자 하나를 내게 건넨다.

맞은편 도넛집에서 세일해서 샀어요. 하나 드세요.

전 괜찮은데요. 잘 먹겠습니다.

참, 제가 그 할아버지 얘기 했나요? 오과장 할아버지. 태석이란 사람 찾는. 글쎄 알고보니까 진짜 동성애자래요. 제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여태까진 없었거든요. 살면서 단 한 번도. 막 에이즈 걸렸단 소문도 있던데요.

그래요?

나는 창문 바깥을 건너다본다. 거리엔 사람이 없다.

왜, 밴드 퀸의 프레디 머큐리도 동성애 때문에 에이즈 걸려서 일찍 죽었잖아요. 어제 남자친구랑 봤는데. 아직 보헤미안 랩소디 안 보셨어요?

볼 시간이 없어서요.

나는 멋쩍게 웃는다.

근데, 남자친구가 이런 거 질투 안해요?

내가 물었다.

세령 씨는 웃는다.

성한 씨 알고 있어요, 남자친구도. 요양원에 젊은 사람이 없어서 제가 심심한 걸 알아요. 그냥, 제 동료나 친구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물론 저도 그렇고요.

그렇구나.

근데요, 궁금한 게 있는데.

말씀하세요.

카페 차리기 전엔 뭐하셨어요? 학교 다니셨나?

일순 나는 가슴 한 쪽이 선뜩해진다.

그냥, 아르바이트 하고 공장에서도 일하면서 지냈어요.

아, 그러셨구나.

교도소의 그 썩어가는 악취를 나는 다시 맡는다. 벗겨지고 또 벗겨져도 계속 나타나는 지옥의 면면들. 한 쭈꾸미 음식점에서였다. 나는 친구들과 밥을 먹고 있었다. 퀴어 친구들이었다. 옆자리에서 계속해서 거슬리는 말들이 들려왔다. 게이들이 어쩌구, 동성애자들 결혼, 퀴어축제 저쩌구, 갖은 혐오가 창틀에 비껴 떨어져 고이는 빗방울 같이 군집을 이루는 말들이었다. 나는 술에 취해 있었다. 그 말이 귓가로 흘러들었던 순간을 기억한다.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들에게 다가섰다. 술병을 들었다. 내리쳤다. 막 ‘에이즈가...’ 단어를 내뱉던 놈의 머리를. 둔탁한 소리와 함께 유리병이 조각조각 산산이 흩어져버렸다. 한순간 놈의 신음소리만이 겉도는 정적이 도래했다. 씨발, 다시 말해봐. 나는 소리쳤다. 사장이 달려와 계산 안해도 좋으니 밖에 나가달라고 사정했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그놈들과 함께 가게 밖으로 나왔다. 맞은 놈이 욕을 지껄이면서 달려들었다. 나는 그에게 맞으면서도 주머니 속의 칼을 잊지 않았다. 칼을 꺼내 찌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친구들이 말릴 새도 없었다. 나머지 두 명은 도망갔고, 내 칼에 맞은 놈은 손을 앞으로 휘저으며 그만하라고 애원했다. 나는 이쪽을 떠올렸다. 이쪽을 차로 치어 죽인 년을 생각했다. 너 같은 쓰레기들 때문에 우리가 죽어난다고, 알아? 나는 그렇게 외쳤다. 내가 널 죽여도 변하는 건 없겠지. 너 하나 죽는다고 뭐가 바뀌겠어. 오히려 우리에 대한 혐오가 더 거세질지도 몰라. 그렇지만, 그래도, 나는 널 죽여야겠어. 최소한 내 삶은 조금이라도 바뀔 테니까. 네 삶도. 친구들도 도망가고 없었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허공에 흩뿌려지고 있었다.

뭘 그렇게 생각하세요?

세령 씨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반복한다. 나는 머리를 좌우로 흔든다.

잠깐, 생각할 게 있어서요.

뭔데요?

꼬치꼬치 캐묻는 그에 짜증이 일었다. 나는 억지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4

마감 시간이다. 오늘은 요양원 노인 열 명과 일반 손님 여섯 명이 다녀갔다. 곧 가게를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엄습했다. 나는 엊그제 산 십자가를 꺼냈다. 손에 잡힌 십자가는 묵직했다. 손과 발에 못이 박힌 예수를 나는 내려다본다. 한참 동안, 응시하다 깨닫는다. 어렸을 적 십자가에 걸린 예수를 보고 자위를 했던 적이 있다. 매끈하게 드러난 몸과 팔, 중요부위 만을 아슬아슬하게 가린 천, 얄따란 다리. 얼굴은 내 취향이 아니었지만 막 자위를 시작한 내게 흥분을 일으킬 정도는 되었다. 그때 나는 영화 <엑소시스트>에 나오는 악령 들린 주인공 레건의 십자가 자위 씬을 떠올렸다. 나는 악령에 들린 것도 아닌데 남자인 예수를 보고 성적 흥분을 느끼고 자위를 하다니. 내가 동성애자라서 그런가. 그래서 악령에 들린 것만큼이나 끔찍하고 무섭고 문란한 존재인 걸까. 세면대 위에 어지러이 흩어진 정액을 보면서 자괴감이 들었다. 어떤 악령이 날 집어삼킨 건지 궁금했다.

나는 십자가를 살펴보다 흠집 하나를 발견한다. 예수의 발 부분 한 쪽이 떨어져나가고 없었다. 십자가를 다시 박스에 넣는다. 마지막 정리를 한 뒤 불을 끄고 가게 문을 닫는다. 거리는 크리스마스 느낌이 물씬 풍긴다. 나무와 화단에 걸린 트리 조명이 반짝인다. 잘게 부서진 구름들 사이로 부옇게 모습을 드러낸 달은 그리 밝지 않다. 십자가를 환불할 생각이다. 교회는 그리 멀지 않았다. 교회 옆에 자리한 기독교 용품 상점으로 나는 천천히 발을 옮긴다. 가게는 어둡다. 문을 닫은 줄 알았는데 내부에서 어렴풋이 빛이 새어나온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간다. 카운터에 남자가 한 명 있다. 어느 시골의 문방구처럼 온갖 물건을 위태롭게 쌓아놓은 게 눈에 띄었다. 갖가지 크기의 성경책들, 십자가, 성모 마리아 상, 예수 상 등등. 나는 조그만 상자를 내민다. 환불해달라고 말한다.

환불이라니?

늙은 남자는 대뜸 말을 놓는다.

예수님 발 부분이 떨어져나갔어요. 환불해주세요.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 어제 분명 확인하고 가져갔잖아요. 멀쩡했는데.

다른 사람하고 헷갈리셨나 보네요. 전 따로 확인 안했는데요.

그리고 예수님을 어떻게 환불하나. 그건 예수님 모욕하는 일이야.

남자는 고작 만원짜리 십자가에 양심을 팔고 있었다.

얼른 환불해주세요. 아까 처음 꺼냈는데 발 부분이 떨어져나갔다니까요.

에이, 안돼.

나는 한숨을 내쉰다. 카운터에 십자가 박스를 내려놓는다. 주변에 쌓인 십자가들 중에서 하나를 골라 집는다. 카운터에 모자란 만큼의 돈을 더 낸다. 가게를 나선다. 늙은 남자가 뒤에서 뭐라고 말을 지껄인다. 들릴 듯 말듯 했다. 환불 앞에선 예수도 별 수 없었다.

버스가 덜컹거리며 도로 위를 내달린다. 오늘이 며칠인지 까먹어 핸드폰을 확인한다. 11월 9일. 아직까지 떠오르는 기억은 없다. 이쪽의 기일이 언젠지 여전히 알 수 없다. 어쩌다 까먹게 된 걸까. 모른다. 이쪽은 버스 오른쪽 줄의 맨 앞에 앉기를 좋아했다. 앞문 바로 앞자리 말이다. 앉았을 때 거기가 편하다고, 앞이 탁 트여 좋다고, 꼭 운전하는 것 같아 좋다고 했다. 나는 맨 뒤 자리를 선호했다. 자리 중 제일 높은 자리. 이쪽은 버스 대형 면허를 따는 게 꿈이었다. 나는 진짜 버스 기사라도 될 거냐고 물었더랬다. 이쪽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않았지만, 인생은 모르는 거니까, 하고 모호한 대답을 했다. 나는 자리가 나도 이쪽의 뒤가 아니면 앉지 않았다. 그래서 매번 이쪽은 자리를 늦게 발견한 척, 내가 먼저 앉도록 배려했다. 배려와 배려가 뒤섞인 사랑이 매번 편하거나 사랑스러운 건 아니었다.

5

아파트 505호. 나는 벨을 누른다. 문이 열린다. 엄마가 나타난다. 우리 대장, 하며 나를 껴안는다. 나는 얼굴 근육이 제멋대로 헤벌쭉 위로 당겨지는 걸 느낀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성한이야?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빠다. 나는 백화점 문화상품권 몇 장을 엄마에게 내민다. 그는 뭘 이런 걸 다, 하면서 아빠가 보기 전에 재빨리 지갑에 감춘다. 나는 소파에 앉는다. 오랫동안 보지 못한 검은색 푸들 로보가 나를 반긴다. 낑낑거리며 발에 몸을 비비고 껑충껑충 뛰고 바닥에 배를 내보이며 드러눕기를 반복한다. 역시 집이 좋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는다.

오는데 오래 안 걸렸어?

응. 차 안 막혀서 계속 달려서 왔지.

제사는 지냈어?

누구?

엄마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네 남자친구 말이야. 어제가 기일 아니었어?

어제라고?

네가 달력에 동그라미까지 쳐놨잖아.

엄마가 달력을 갖고 와 보여준다. 숫자 8에 붉은 동그라미가 쳐있었다.

아닌데.

나는 내 방 달력을 확인한다. 그곳엔 23일에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뭐가 맞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침대에 드러눕는다. 침대에선 세제 냄새가, 페브리즈 냄새가 났다. 그 속에 이쪽이 있었다. 본가에 살 때, 한창 이쪽과 연애를 즐길 때 이쪽은 걸핏하면 우리 집에 놀러왔다. 엄마아빠 둘 다 아직 맞벌이 상태로 회사에 나간 덕이었다.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한 로보는 이쪽이 놀러올 때마다 짖어댔다. 냄새를 맡으면서도 끊임없이, 의심을 풀지 않고 계속해서. 우리는 밥을 먹고, TV로 영화를 보고, 섹스를 했다. 그게 하나의 패턴으로 자리잡기까지 한 달 정도가 걸렸다.

너는 커밍아웃 어떻게 했어?

이쪽이 물었다. 섹스를 마친 후 깊이 잠에 곯아떨어진 뒤 아침에 깬 순간이었다. 엄마아빠가 일본으로 3박 4일 해외 여행을 간 지 이틀째이기도 했다.

부모님?

응.

그냥, 치킨 먹으면서 했어. 5월 3일인가, 13일인가. 그때 저녁 먹을 때였을 거야.

안 두려웠니?

그렇게까지는.

나는 이불을 턱 밑까지 끌어당겼다.

밑밥을 많이 깔았거든. 평소에 성소수자 얘기도 하고, 토론도 같이 보고.

동성애에 반대하십니까? 물었던 대통령 후보를, 그 질문에 네, 했던 현직 대통령을 나는 잊지 않고 있었다. 그때 아빠는 그래도 동성애가 에이즈 원인인 건 맞아, 했다. 나는 아니라고 했다. 콘돔을 안 끼면 이성애든 동성애든 양성애든 걸릴 수 있는 병이 에이즈라고 말했다. 그리고 통계 수치로도 동성 간 보다 이성 간의 에이즈가 더 많다고도. 엄마는 가만히 있다 요새는 그런 세상이 아니야, 하며 거들어주었다.

그렇구나.

이쪽이 말했다.

나는 영원히 못할 것 같아.

언젠간 하게 돼 있어.

내가 웅얼거렸다.

부모님이 어려우면 가까운 친구한테 말해보든지.

그럴까. 그 애들은 날 이해해줄까.

언제부터 우리가 이해 받아야 하는 존재였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묻는 방향이 틀렸으므로 나는 입을 다물었다. 대신 이쪽을 내 쪽으로 끌어안았다. 판판한 그의 가슴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각이 진 콧망울 위로 뻗은 콧대, 크게 찢어진 두 눈, 가벼운 입술을 나는 차례차례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설사 실패해도 실망할 건 없어. 당장 대통령부터도 우리를 반대하는 걸. 하물며 사람들이 우릴 욕하고 반대하는 건 당연한 거지.

당연하지 않아.

이쪽이 말했다.

왜 당연해. 대통령이 반대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까지 대통령 같은 인간이 되는 건 아니잖아.

네 말이 맞아.

나는 피식 웃었다.

죽지 마.

이쪽이 문득 내뱉는다.

죽지 말라고.

너나.

나는 말했다.

6

세령 씨가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커피를 갈고,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우유를 따르고, 초코칩을 올리며 붐비는 사람들의 주문에 맞춰 일하기 바빴다.

오늘은 사람이 많네요.

그러게요.

나는 말했다.

몇 시쯤 되었을까. 한 남자가 카운터로 다가섰다. 나는 주문하시겠어요? 묻는다. 혹시 김성한씨 맞으신가요. 남자가 물었다. 나는 네, 맞는데요, 했다. 그리고 주먹이 날아왔다. 나는 얼굴 한 가운데를 정통으로 맞아 나가 떨어졌다. 소란은 삽시간에 벌어졌다. 기름을 타고 번지는 불길처럼 나는 남자가 휘두르는 주먹에, 발길질에 얻어맞기 바빴다. 여러분들, 이 새끼가 누군지 아십니까. 우리 형 죽인 놈이에요! 더러운 게이 새낀데, 아무 짓 안하고 가만히 있는 사람을 죽인 살인자 새낍니다! 그는 가게 물건을 쓸어버렸다. 손님들이 비명을 지르며 가게를 나갔고, 누구는 경찰을 불렀고, 누구는 영상을 찍었다. 나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그를 마주보았다. 내가 죽인 그 남자와 어느 정도 닮은 면이 있었다. 나는 그에게로 달려들었다. 똑같이 주먹을 휘두르고,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잡아 그의 머리를 후려쳤다.

세령 씨가 그만하라고 비명을 질렀다. 날 떼어놓은 게 세령 씨인지 경찰인지 알 수 없었다. 남자는 씩씩대며 나를 노려보았다. 경찰에 다녀왔고, 병원에 다녀왔다. 세령 씨는 옆에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수술을 해야 한다고, 병원에 입원하라는 의사의 명이 떨어졌다. 나는 엄마에게 연락을 했고, 엄마는 곧바로 올라온다고 했다. 세령 씨의 남자친구라는 사람이 나를 방문했다. 세령 씨는 울면서, 무서워서 일단 남자친구를 불렀다고 했다. 그는 괜찮으냐고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려다 목에 칼을 꽂은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와 다시 가만히 머리를 뉘였다.

듣고 보니까, 어때요?

내가 물었다.

뭐가요?

내가 살인자라는 거. 내가 동성애자라는 거 말이에요.

토막 난 침묵이 줄을 이었다.

좀, 놀라긴 했어요. 그래도 성한 씨가 성한 씨인건 변하지 않잖아요. 상관없어요. 성한 씨가 착한 사람이라는 거, 알고 있으니까.

오늘이 며칠이죠?

나는 묻는다.

11월 16일이요.

오늘도 아니네요.

뭐가요?

같이 영화도 보고, 노래방도 가고, 밥도 먹고 카페도 가던 친구가 죽은 날이요.

7

가게를 다시 연다. 11월 30일이다.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커피를 만든다. 아무 것도 한 게 없었다. 반창고를 붙이고, 마스크를 쓴 채 손님을 받는다. 누구에게도 내 비참한 꼴을 보이기 싫었다. 세령 씨가 오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내가 싫어진 것이라고, 그래서 오지 않는 거라고 생각한다. 문이 열린다. 한순간 나는 얼어붙는다. 이쪽이다. 이쪽이 문을 열고 카운터로 다가온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를 마주했다.

초코칩 프라푸치노 하나요.

나는 이쪽에게 진동벨을 건네고, 이쪽이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것을, 자리에 앉는 것을 멀뚱히 건너다본다. 나는 초코칩 프라푸치노를 만든다. 진동벨을 누른다. 이쪽이 와서 가져간다. 문이 열린다. 세령 씨다. 나는 세령 씨에게 다급히 손짓을 해보인다. 그 친구가 왔어요. 내가 말했다. 누구요? 같이 영화도 보고, 노래방도 가고, 밥도 먹고 카페도 가던 친구 말이에요. 그가 카페 안을 살핀다. 그러고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아무도 없는데요? 되묻는다. 나는 이쪽이 앉은 자리로 시선을 옮긴다. 아무도 없다. 초코칩 프라푸치노 하나가 탁자 위에 놓여있을 뿐이다.

괜찮아요?

오늘인가 봐요.

나는 그렇게 말한 뒤 카페 문을 열고 나갔다.

집에 도착한 나는 여전히 거실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제사상을 바라다본다. 곰팡이가 피고 썩어가기 시작한, 벌레들이 꼬이기 시작한 음식들이다. 나는 그 앞에 앉아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벌레가 파먹은 빵을, 치킨을, 초밥을, 피자를 먹는다. 쉰내가 났고 맛이 역했다. 그래도 나는 꾸역꾸역 삼켰다. 제사를 지냈으니 그 음식을 먹는 게 도리다. 나는 이쪽이 먹다 만 음식들을 주워 먹으며 그동안 채우지 못했던 이쪽의 빈자리를 채운다. 11월 30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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