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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 최후의 생물

2007.11.30 23:1711.30

파악 님의 “불후의 명곡”은 하려는 이야기에 충실하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 점이 좋았습니다. 디테일을 살려 더 긴 이야기로 풀어써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결말이, 간결하면서도 임팩트가 있어야 했는데 희미하게 끝나버려 아쉬웠습니다.

you 님의 “에피소드”는 짧지 않은 분량임에도, 캐릭터를 설명하는데 너무 많은 걸 할애해 이야기가 헐거워져 재미를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캐릭터의 성격은 전체에서 중요한 사건/이야기와 어울릴 때 재미있어지기 마련인데, 사건과 캐릭터 묘사가 따로 놀아 아쉬웠습니다.

호워프 님의 “소년의 행복”은 긴 이야기를 잘 풀어갔으나, 이야기 진행이 설명적이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다른 형태로 문한반복된다는 결말은 너무 많이 사용되어 진부한 면이 있습니다. 좀 더 참신한 결론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Wehmut G님의 “최후의 생물”은 짧지만 감각적이면서 인상이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독자우수 단편에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 주소로 우편물 수령하실 주소, 성함, 전화번호(택배 배송시 필수)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Wehmut G 

 지구의 수명은 다했고, 모든 생물들은 사막에 버려진 갓난아기처럼 서서히 종말의 붉은 선을 넘었다. 최후의 인간에게는 먹을 수 있는 최후의 열매가 한 줌 있었다. 그는 혹독한 갈증과 허기에 고통 받고 있었고 이미 땅속에 묻힌 인간들처럼 무기력했다. 만약 그의 손안에 쥐어진 조그만 열매들을 입에 넣고 씹을 수 있다면 눈에는 빛이 돌아오고 메마른 입술이 다시 붉은 빛을 띠었을 것이다. 하지만 땀과 먼지로 범벅 된 열매를 내려다보던 인간은 그것을 문질러 닦을 힘으로 땅에 주저앉는 것을 선택했다. 책상다리를 하고 콘크리트 벽의 잔해에 기대앉은 그는 두 손을 포개어 열매를 받쳐들었고, 건조해진 눈으로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그는 깨달았다. 앞으로 걸어가는 동안 지평선은 언제까지나 앞을 가로막고 있지만, 문득 뒤를 돌아보았을 때 자신의 출발점이 보이지 않는다면 어느새 지평선을 넘어버린 것이라는 사실을.
 이상한 이야기일까? 하지만 모든 생물에겐 출발점이 있다. 그것이야말로 생물의 근본이기 때문에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앞으로 얼마를 걸어가든, 날아가든, 헤엄쳐가든, 혹은 땅굴을 파더라도 모든 생물은 출발한 장소를 떠나지 못한다.
 해가 졌다.
 달이 떠올랐다.
 달이 지고, 다시 해가 떴다.
 최후의 인간은 생각했다. 일어서서 앞으로 한 발짝만 더 움직이면 지평선을 넘을 수 있다고.
 모래 같은 바람이 불어 그의 얼굴을 할퀴었다.
 그는 자신에게 남은 생명력이 얼만큼인지 알고 있었다. 열매를 입에 넣고 씹든가, 벽을 짚고 일어서서 지평선을 넘어가던가 둘 중에 하나- 그만큼 정확하게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는 죽음에 가까워져 있었다.
 그는 다시 생각했다. 지평선, 그래. 아련해 보이지만 실은 코앞에 와있는 거야. 허리를 조금만 숙여도 내 코가 지평선을 넘을 걸. 나는 이렇게 가까이 왔어. 그런데 내 출발점은 어디지?
 고개를 반쯤 돌리고, 다시 눈을 흘겨 뒤를 본 그는 생각했다.
 벽. 어쩔 수 없지. 그럼 떠올리는 수밖에. 난 부산에서 태어났지. 정확히는 해운대였어. 딱히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살만한 가정에서……아니, 정정해야겠군. 실은 찢어지게 가난했어. 그래도 목구멍이 찢어질 정도는 아니었지. 다행히 남부럽지 않게 번듯한 차림새로 나다닐 수는 있었고……아니야, 이게 아니야.
 지금 나는 최후의 인간이지. 인간은 나밖에 없어. 인간이 바로 나라고. 그럼 인간의 출발점에 대해서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 인간이 어디서 출발했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하하, 아닐 거야. 나는 척색동물문 포유강 영장목 사람과에 속하는 생물로 호모 사피엔스지. 약 200종이나 되는 영장목의 한 종이었어. 아프리카에 사는 성성이과 녀석들과 참 비슷하지. 특히 민꼬리 원숭이들 하고는 유전형질에 비슷비슷한 점이 꽤 있어. 우리 둘 다 꼬리가 없잖아. 그 친구는 털이 좀 많아서 지저분하지만. 그럼 내 출발점은 아프리카인가? 아냐, 차라리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낫지.
 에이, 어느 쪽이든 원숭이는 싫어. 차라리 창조론이 나아. 난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거야. 그런데 내 뒤엔 벽이 있으니까 뒤돌아봐도 에덴은 볼 수 없어.
 실은 다 뻥이야! 휴거는커녕 천년왕국도 오지 않았잖아? 젠장, 나는 근본도 없는 놈이었나?
 한없이 실망한 그의 고개가 풀썩 꺾였다. 죽은 듯 했지만 그는 손바닥 위의 열매를 보고 있었다. 얼굴은 무표정했고 눈도 먼지 낀 유리눈알 같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우는 중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머릿속으로 울먹이며 중얼거렸다. 내겐 돌아갈 곳이 없어. 그러니까 지평선을 넘을 수도 없어. 중간에 콱 하고 끼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거야.
 생각에도 에너지가 든다는 사실은 우리도 잘 알고 있다. 이러는 동안에도 그의 생명력은 고갈되었고 마침내 허리를 한번 비틀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 힘을 짜내 열매를 받친 두 손을 들어올렸다. 보랏빛 열매가 손금을 따라 굴러 떨어졌고 아슬아슬하게 그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마지막 남은 에너지로 그는 턱을 움직였어야 했다. 하지만 어깨를 한번 기우뚱하더니 그대로 드러누워버렸다.

 나무에서 촉각을 뗀 나는 깊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무거웠는지 나 스스로도 숨의 육중함을 느낄 정도였다. 나는 콧잔등이 시큰해지는 것을 참으면서 다시 선조 나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최후의 인간은 그 뒤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촉각 끄트머리를 나무에 꽂고 모든 신경절을 통일시켰다. 하지만 선조 나무는 치열했던 번식의 투쟁만을 보여줄 뿐 최후의 인간에 대해서는 보여주지 않았다. 결국 인간은 죽어버린 것이다. 열매를 입에 넣었지만 씹을 힘이 없어서 비참하게, 비참하게.
 “무얼 보았습니까?”
 010이 촉각으로 내 머리를 건드리며 말했다.
 “멸종한 동물을 보았지.”
 “식물만 있었던 게 아니군요.”
 그가 손으로 촉각을 잡아당긴 뒤 핥기 시작했다. 나는 배를 떨면서 말했다.
 “포식자였어. 모든 걸 다 먹어 치웠지. 마침내 이 선조 나무의 씨앗이 들어있는 열매까지 입에 넣었어. 다행히도 씹지 못하고 죽어버렸지만.”
 “오.”
 010이 자신의 촉각을 씹어버리곤 습관적인 경련을 일으켰다. 그는 놀라울 정도로 감수성이 깊었다.
 “그게 아니에요, 101. 어쩌면 그게 아니에요.”
 010이 촉각을 내밀었다. 나는 그와 촉각을 서로 엮고 서로 다른 능력의 결과물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게 아니었어요, 101” 010이 두 손을 휘저으며 배를 흔들었다. “그는 열매를 먹으려던 게 아니었어요. 이 별이 사막이었을 때의 건조한 공기로부터 열매를 보호하려면 입 안에 넣는 수밖에 없었던 거에요.”
 나는 네 개의 다리를 접고 가슴과 배를 땅에 대었다. 두 촉각 끝을 흙 속에 묻었다. 아직 촉각에 남은 010의 능력이 선조 나무의 뿌리 아래 묻힌 것을 보여주었다.
 화석화된 거대한 두개골, 벌려진 턱뼈와 텅 빈 눈구멍을 휘감고 있는 가장 오래된 뿌리들.
 “이토록 거대한 별이라니, 이토록 거대한 열매들이라니. 101, 우리 종족들을 모두 이주시키기로 해요. 고향 별에는 로봇들과 공장이 있지만, 그깟 쇳덩이들이 무슨 소용이랍니까? 이제부터는 열매에 달라붙어 직접 즙을 마시고 꽃가루를 날라요. 나뭇가지 사이에 집을 짓고 날개를 비비며 노래를 합시다.”
 010은 벌써부터 날개를 비비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연신 네 다리를 굽혔다 펴며 통통한 배를 튕겨 올렸고 집게입을 딱딱거렸다.
 나는 울었다. 아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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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rror 07.12.01 08:35 댓글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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