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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 언제나 함께 이기를

2006.04.28 21:5304.28

roland ( r o a d t o t h e w e s t @ h a n m a i l . n e t )



  아직도 욱신거리는 오른쪽 눈 주위를 살살 어루만진다. 시큰거리는 통증이 가끔 얼굴을 찡그리게 만들지만, 그래도 현재 기분만큼은 가히 최고라 할 만큼 좋은 상태다. 덕분에 아픈 부위를 만지면서도 바보같이 실실 웃음이 나오고 만다. 이젠 누구도 감히 나에게 덤빌 수는 없으리라. 언젠가 어렸을 무렵, 다시 약육강식의 시대가 도래 했다고 한 로더 씨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약육강식이 뭐냐는 질문에 로더 씨는 미소 지으며 대답해줬다. 강자만이 살아남는 세계. 그건 바로 내가 원하는 바다.
  오늘 낮에 드디어 내 영원한 증오의 대상인 레미지를 때려눕혔다. 레미지는 나보다 세 살이 많은 녀석이다. 그러니까 아마도 지금은 19살일 것이다. 그 자식은 나랑, 아니 이곳에 있는 모두와 마찬가지로 별로 먹은 것도 없는데도, 빌어먹게 키가 컸고 덩치가 좋았다. 다만 성격이 개 같고 끔찍이도 더러워서, 그 역겨운 냄새 때문에 마주보고 3초 이상 대화를 나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만약 내가 그런 끔찍한 상황에 놓였다면 아마 바로 주먹을 날려 그놈의 시궁창 같은 입을 뭉개버렸을 것이다. 또 머리도 꼴통이었다. 아마 자기 배설물을 다시 처먹는다면 그 정도의 바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입에서 내뱉는 말들은 하나같이 상소리였다.
  레미지는 나를 눈에 가시처럼 여겼다. 언제나 나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었으며 발광을 해댔다. 이유는 모른다. 언젠가부터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나는 그보다 어렸기 때문에 힘에서 상대가 되지 못했었다. 그래서 뒤에서 이를 갈면서도 직접 상대할 힘을 기를 때 까지는 그저 참고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대신 내가 힘을 길러서 저 새끼를 손봐주는 날이 온다면 기필코 죽여 버릴 것을 스스로에게 맹세했다.
  시간은 쏜살 같이 흐른다. 우리가 셀터 안에서 살게 된 지도 여러 해가 지났다. 세상은 파멸한지 오래다. 전쟁과 핵폭탄이 원인이라고는 하지만 더 자세한 이유를 알기에는,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고, 그건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였다. 여하튼 수십 명의 어린아이들이 전쟁 중에 이 셀터에 수용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십여 년을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동안 꾸준히 몸을 단련시켜 힘을 키웠다. 다행히 선천적으로 튼튼한 몸이었는지 꽤 만족스러운 결실을 얻었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언제 자빠져 죽었는지도 모르는, 나를 낳아준 인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게 된 건 그때뿐이었다. 아니, 하나 더 있긴 하다. 내가 이 세상에 외톨이가 아닌, 소중한 누나와 함께할 수 있게 해줬다는 것.
  여하간 힘을 기른 나는 서서히 레미지를 압박해갔다. 그 녀석의 단짝인 브램블과 -이 녀석은 똑똑하고 정상적인 놈인데 왜 레미지랑 붙어 다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레미지가 없는 곳에서 사소한 일로 시비를 벌이다가 결국 싸움이 붙어 때려눕히고 말았다.    나는 우리를 보살피고 있는 세레나 씨가 말리러 올 때 까지 브램블을 두들겨 팼다. 세레나 씨는 언제나와 같은 그 창백한 얼굴로 한 숨을 내쉬며 말했다.
  정말 힘들어 못 살겠구나. 너희는 틈만 나면 싸움질 벌일 궁리만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로더 씨에게 또 뭐라고 말해야 좋단 말이냐.
  로더 씨는 전쟁이 일어났을 때 우리 어린아이들을 이 셀터 안으로 데려와 목숨을 건져준 사람이며, 세레나 씨와 더불어 유일한 어른이기도 했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더 많은 어른들이 우리를 보살폈지만, 모두들 죽고 지금은 로더 씨와 세레나 씨 둘만이 남아있다. 그들은 어떤 이유로 그렇게 일찍 죽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재수가 없었던 건 분명하다. 어쨌든 세레나 씨와는 달리 우리는 로더 씨의 얼굴을 거의 보지 못했다.
  브램블과의 싸움 이후로 레미지는 분노에 휩싸인 동시에 나에 대한 두려움도 가슴 속에 품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를 경계하며 부딪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일어날 일은 어떡해서든 일어나게 되는 법이다. 그건 바로 오늘 낮의 일이었다. 남자들은 모두 식당에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세레나 씨는 배식하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곧 자리를 떴다. 몸이 안 좋은지 지친 모습이었다. 그녀의 얼굴이 평소보다도 유난히 창백해 보여, 언제 앞으로 고꾸라져서 거품을 물고 뒈져도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내가 싹싹 비운 식판을 들고 세척장으로 가고 있을 때, 레미지가 어떤 멍청이를 하나 데리고 내 앞에 나타났다. 얼마 전 사소한 이유로 내가 박살내버렸던 녀석이었다.
  “이 새끼가 신세를 졌다며.” 레미지가 녀석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로 말했다.
  “응. 고자질을 아주 잘 하게 생겨서 진짠가 알아보려고.” 나는 비웃어 주었다.
  레미지는 열 받은 것 같았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새끼 보고 앞으로도 조심하라 그래.”    
  나는 우쭐해져서 그렇게 말하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뒤에서 레미지가 말했다.
  “그래, 조심해야. 그리고 네놈의 썅년 같은 누나도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요새 부쩍 내 아랫도리가 근질근질하거든.”
  이건 전적으로 그 새끼의 실수였다. 나를 욕하거나 괴롭히는 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지만 누나를 모욕했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이성을 잃기 까지는 0.1초도 걸리지 않았고, 나는 곧바로 식판을 휘두르며 그 새끼를 향해 뛰어들었다. 싸움은 쉬웠다. 처음엔 그 무식한 주먹을 휘둘러 나를 엿 먹였지만 초반에 주도권을 빼앗긴 돼지새끼는 이내, 내 주먹을 막는 데만 급급해졌다. 곧 그의 얼굴은 피범벅이 됐지만 그만둘 생각 따윈 없었다. 맹세컨대 다시는 그 시궁창 같은 입을 놀리지 못하도록 완전히 죽여 놓을 생각이었다. 나는 녀석의 개 같은 붉은 머리카락을 부여잡고, 얼굴을 차가운 땅바닥에 계속해서 처박았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달려들며 가녀린 팔로 내 팔을 붙잡았다. 레미지 패거리라고 하기엔 너무 같잖은 힘이었기에 나는 소리쳤다.
  “방해하지 마! 건드리는 새끼는 전부 죽여 버릴 테니까!”
  “그만둬, 테리!”
  뒤에서 필사적으로 내 팔을 붙잡으며 소리치는 갈라진 목소리에 나는 움찔하며 주먹질을 멈췄다. 나를 붙잡은 것은 세레나 씨였다. 그녀는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레미지를 타고 앉아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만해, 테리. 자, 천천히 레미지를 놓아줘. 많이 다쳤어.”
  나는 그 말에 따르기로 했다. 무엇보다 여기서 계속했다간 빌어먹을 레미지보다 그녀가 먼저 죽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모두 방으로 돌아가. 어서!”
  그녀는 이 상황에 질렸는지, 예의 그 지겨운 설교조차 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마지막까지 피투성이가 된 레미지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나는 기쁨을 만끽하며 어둠속에서 낄낄거렸다. 그때였다. 녹슨 철문이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열리고, 안으로 누군가 들어섰다. 가녀린 몸을 보고 세레나 씨인가 했지만, 그건 바로 누나였다. 누나는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찾아 눌렀고, 곧 파지직 소리와 함께 불이 들어왔다. 나는 갑작스런 빛에 눈살을 찌푸리며 몸을 반쯤 일으켜 앉았다.
  누나의 손에는 구급상자가 들려있었다. 기분 탓 인지는 몰라도 누나는 애써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그녀는 다가와서 앉으며 구급상자를 열었다.
  “나는 괜찮아.”
  그녀는 내 말에 대꾸하지 않고 이름 모를 연고를 꺼냈다.
  “다치지 않았다니까” 라며 나는 신경질을 냈다.
  누나는 역시 대꾸하지 않고 자기 손가락에 연고를 묻혀, 내 입술에 발랐다. 나는 누나를 몹시도 좋아했지만 이런 점은 끔찍이 싫었다. 누나가 화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일만 할 때는, 난 반대로 안절부절 못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누나는 대충 치료를 끝냈는지 구급상자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누나를 본 것은 꽤 오랜 만이었기에 나는 이렇게 일찍 헤어지고 싶지는 않았다. 좀 더 얘기 나누고, 같이 있고 싶었다. 그게 비록 나이에 맞지 않은 어리광일지라도.
  “사실 그 녀석을 때리다가 손목도 약간 삐끗한 것 같아. 붕대 좀 감아줘.”
  누나가 일어나려고 했을 때 나는 재빨리 말했다. 누나는 잠시 주저하다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앉았다. 물론 붕대만 있다면 사실 나 혼자서도 충분히 감을 수 있다.
  “요새 누나를 거의 못 봤던 것 같은데.”
  누나는 말없이 붕대를 감으며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세레나 씨의 일을 돕기로 했어. 일을 배우기 시작한 지 열흘쯤 되었을 거야.”
  “뭐?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아직 잔일들만 하고 있는 정도니까. 서서히 배워나가겠지. 그리고 넌…”
  누나는 붕대 감는 것을 멈추고 고개를 돌아 나를 바라봤다. 차가운 눈빛이었다.
  “요새 맹수에 쫓겨 다니는 동물 마냥,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언제 공격 받지나 않을까 벌벌 떨면서 사람이 많은 곳엔 잘 안 다녔잖아.”
  “벌벌 떤 적 없어.”
  나는 기분이 상한 탓에 신경질을 내며 말했다. 사실이긴 했지만 굳이 침묵을 지킴으로서 누나의 의견에 동의하고 싶지는 않았다.
  누나는 붕대의 끝부분을 가위로 자르고 테이프를 붙여 단단히 고정시켰다. 약간 뻑뻑하게 감았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느낌이었다.
  “그러면 이제 누나가 로더 씨의 방에 들어가서 청소도 하고, 밥도 차려주고 한단 말야?”
  “그렇게 되겠지. 아직은 아냐. 가끔 심부름은 하지만.”
  누나는 다시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있었다.
  “그거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닌걸.”
  “어째서?”
  “그냥. 이유 따윈 없어, 옘병할.”
  내가 욕을 하자 누나는 나무라듯이 나를 쏘아봤다. 아하, 욕을 할 때만 나랑 눈을 마주치는구나. 제기랄.
  “누나보다 나이 한 두 살 많은 여자들이 세레나씨를 돕지 않았던가? 그 애들은 더 이상 안 하는 거야?”
  “르노 언니랑 클라라 언니는 바깥 세계로 나갔어. 남자들도 분명 같이 갔을 텐데?”
  음, 대충 알만했다. 언젠가, 가장 먼저 스무 살이 되었던 몇 명이 셀터에서 벗어나 바깥세계로 나갔었다. 전쟁이 일어난 이후, 우리는 10년 넘게 셀터 안에서만 꼭꼭 숨어서 살아왔으므로 바깥세계가 어떻게 변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가장 나이가 많고 건장한 이들이 그 일을 맡게 되었던 것이다. 덕분에 질서가 무너져, 레미지 같은 병신이 날뛰기는 했지만. 어쨌든 바깥 세계로 나갔던 이들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고, 생사조차 파악할 수가 없었다. 연락도 없는 인간들의 생사 따위를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잠깐 잠깐. 그러면 누나도 일을 돕다가 곧 바깥 세계로 나가게 된단 말이야? 누나는 나보다 겨우 한 살 밖에 많지 않잖아?”
  “아마 그렇지는 않을 거야. 세레나 씨는 이제 우리들을 감당할 만큼의 힘이 없을 정도로 늙고 지쳤어. 앞으로 내가 그녀가 했던 일을 대신하게 되겠지.”
  “그래, 누나는 누구보다도 똑똑하니까.”
  나는 그녀가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대꾸했다. 만약 누나가 바깥으로 나간다면 나도 따라 나갈 생각이었다.
  더 이상의 대화가 없자, 누나는 구급상자를 정리하고는 문으로 향했다.
  “절대 무리 하지 마. 바보같이 일만 하지 말란 말야.” 내가 말했다.
  “웬만한 일들은 여럿이서 같이 하니까 힘들진 않아. 그리고… 우리들은 이제 다 컸는걸. 세레나 씨 처럼 구제불능 어린애들을 돌보는 게 아니니까 그다지 어렵지는 않을 거야.”
  누나는 미소 지으며 내게 잘 자라고 말하고는 문을 닫았다. 오늘 처음, 그리고 실로 오랜만에 보는 누나의 웃는 얼굴이었다.

  *               *               *

  며칠이 지났다. 평온하지만 지루한 날들이었다. 내 생명을 위협하던 존재가 사라졌다는 게 이렇게 지루한 일이었을 줄일지는 꿈에도 몰랐다. 이젠 아무도 내게 같잖은 시비를 걸지 않게 되었다. 이건 나름대로 짜증나는 일이었다. 재미가 없다고나 할까. 이 좁아터진 어두운 곳에서 살아가면서, 어떠한 짜릿한 자극 하나 없이 지내야한다니 끔찍한 일이었다.
  차츰 신경질을 내는 일이 잦아졌다. 이런 마음을 다스리고 자극을 찾기 위해 약한 녀석들을 괴롭혀보기도 했지만, 곧 그런 내 모습이 레미지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을 깨닫자 자기혐오에 빠져 그만두고 말았다. 정말 끔찍한 나날이었다.
  그런 괴로운 현실에서 한줄기 가느다란 빛을 발견한 것은 우연에 의해서였다. 나는 겁쟁이란 별명을 가진 토드에게 볼 일이 있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한 숙소로 들어섰다. 이곳은 예전 머저리 레미지 일당이 즐겨 모이던 장소였지만 이젠 두려울 게 없었다. 숙소 안에는 브램블 혼자였는데, 그는 자그마한 가죽가방에 개인적인 짐을 싸고 있었다. 흔치않은 광경이었다.
  “뭐하는 거야?”
  “여.”
  그는 잠시 고개를 돌려 나를 향해 인사했을 뿐, 하던 일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문에 기대 다시 물었다.
  “뭔가 재미있는 냄새가 나는데? 지금 뭐하는 거냐구.”
  브램블을 가죽가방이 빵빵해질 때까지 물건들을 집어넣고는, 확인이라도 하듯 가방을 두어번 손바닥으로 소리 내어 두들겼다. 그리고는 가방끈을 잡아 어깨에 걸치고는 나를 향해 걸어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문밖으로 나가려는 것이었겠지만.
  “별 거 아냐. 네 누나가 와서 말하기를 로더 씨가 짐을 싸서 오랬다는군.” 그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그는 웃으며 말했다. 멋진 미소였다. 사실, 그 쓰레기 레미지만 아니었더라도 우리는 진작에 친해졌을 것이다.
  “그래. 아마도 바깥세계로 나갈 준비를 하는 거겠지.”
  “언제 가는데?” 나는 가슴속에서 깊은 호기심이 생겨나는 것을 느끼며 대답을 재촉했다.
  “글쎄, 당장은 아니겠지. 여러 가지를 배워야할 테니까 말이야. 아무 것도 모르는 지금 상태에서 바로 나간다면 아마 1시간도 안돼서 죽고말걸. 아마 너희들과 따로 생활하면서 교육을 받기위해 짐을 싸서 오라는 걸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는 말이었다. 셀터를 벗어난다면 우리는 아직도 무지한 5살짜리 어린애나 다름없었다. 내가 말없이 길을 비켜주자 그는 내 어깨를 두드리고는 문을 나섰다. 그가 복도를 걷기 시작했을 때, 나는 퍼뜩 정신이 들어 물었다.
  “그런데 왜 네가 가는 거야?”
  “나도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나이도 그렇고, 덩치도 어느 정도 되기 때문 아닐까? 사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이도 그렇고 힘도 그렇고, 모든 면에서 레미지가 우선이었겠지만 너도 알다시피 누군가가 레미지를 피떡으로 만들어 놔서 말야.”
  나는 그의 말에 크게 웃었다. 브램블 역시 웃고 있었다.
  “그럼 잘 지내라. 사고 좀 그만 치고.” 그가 말했다.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복도 너머로 사라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멍하니 서있자니, 순간적으로 어떤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며 나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바깥세계로 나가는 것은 분명 흥미로운 일이었다. 특히 지루하기 그지없던 나의 불행한 삶을 한 번에 날려줄 요소이기도 했다. 나는 결국 누나를 찾기 시작했다. 로더 씨를 만나기 위해서는 누나에게 부탁하는 것이 상책이리라. 하지만 내 뜻을 굽힐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나는 도전하고 싶었고, 또 다른 약육강식의 세계에서도 꼭대기에 서고 싶었다.
  지금이 한창 저녁식사를 준비할 시간이라는 점을 감안해 취사장으로 달려갔다. 역시나 였다. 누나는 세레나 씨를 거들며 비상식량 봉지를 하나씩 뜯고 있었다.
  “누나!” 나는 숨을 헐떡이며 그녀를 큰 소리로 불렀다.
  누나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세레나 씨와 일을 거들던 다른 여자아이들의 시선도 일제히 내게 쏠렸다. 곧 세레나 씨의 얼굴은, 이곳에는 절대 사고뭉치를 들여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여긴 웬일이니?”
  누나는 앞치마에 젖은 손을 닦으며, 의아함과 반가움이 반반 섞인 표정으로 다가왔다.
  “잠깐 시간 낼 수 있어? 할 말이 있는데.”
  급한 일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내 모습을 보며 누나는 고개를 돌려 세레나 씨에게 허락을 구했다. 세레나 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재빨리 누나의 손을 잡고 조용한 곳으로 갔다. 그런데 누나에게서 유독 눈에 띄는 점이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안 좋은 쪽이었다.
  “얼굴이 왠지 모르게 창백한 것 같은데? 요새 너무 무리하고 있는 거 아냐?”
  “응?” 얼굴을 찡그리며 묻는 내 말에 누나는 화들짝 놀라며, 차가운 물에 오랫동안 손을 담가 빨개진 손으로 두 뺨을 살포시 만졌다.
  “무리하냐구.” 나는 재차 물었다.
  “아냐, 오늘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피곤해 보이나봐. 그런데 할 말이 있다며?”
  나는 그녀가 일부러 말을 돌리는 것 같아 언짢았지만 우선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혹시 누나, 이번에 바깥세계로 나가는데 뽑혔어? 남자는 브램블이 간다던데.”
  “아니, 헤이나가 갈 거야. 그게 궁금했던 거니?” 누나가 미소 띤 얼굴로 대답했다.
  헤이나는 누나보다 한 살 어린 여자애였다. 나는 안심이 되면서도 어쩐지 부끄러워져 잽싸게 내 진짜 목적에 대해 말하기로 했다.
  “아니, 그것도 있고. 사실은 말야.” 나는 조심스레 누나의 반응을 살핀 뒤, 말을 이었다.
  “나를 로더 씨에게 데려다 줬으면 해서. 누나라면 그를 쉽게 만날 수 있잖아. 늘 그의 방을 들락날락 하니까.”
  “로더 씨를… 왜?”
  누나의 표정이 굳어졌다. 물론 누나가 반대할 것이라곤,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황할 건 없다. 조리 있게 설득하면 그만이다.
  “물론 브램블 대신 내가 바깥으로 나가게 해달라고 말하기 위해서지.”
  순간 누나는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으로 충격 받은 듯,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뒤로 휘청거렸다. 나는 깜짝 놀라 재빨리 그녀의 팔을 잡았다.
  “누나, 괜찮아?”
  그렇게 물어보긴 했지만, 전혀 괜찮아 보이지는 않았다. 누나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갑작스레 가녀린 두 팔로 나의 양 어깨를 힘껏 움켜잡았다.
  “너 그게 무슨 소리야!” 그녀는 마치 화가 난 사람처럼 보였다.
  “들어봐. 누나가 나를 걱정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나는 꼭 가야겠어. 그러고 싶어. 그러니까 나를 로더 씨와 좀 만나게 해줘, 응?”
  내 확고한 말투에, 나를 바라보던 누나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이내 심한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갑자기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한 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누나의 행동엔 뭔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 걱정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겠지만, 그것과는 거리가 먼, 뭔가 다른 구석이 있었다. 그래, 그건 단순한 걱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뭔가에 겁이 질리거나, 두려워할 때나 지을 법한 표정과 행동이었다.
  “…너.”
  누나가 떨리는 음성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파란 빛을 뿜어내어, 어쩐지 섬뜩한 느낌마저 자아냈다.
  “다시는 그런 소리하지 마. 나는 절대 허락 못해. …네가 아무리 날뛰고 발광을 해도 나는 절대 너를 로더 씨와 만나지 못하게 할 거야. 너는 절대 그 분을 만날 수 없어. 그러니까 헛된 생각 하지 말고, 돌아가서 애들이랑 유치한 장난이나 하면서 놀아. 알아들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의견엔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 나는 누나가 말한 유치한 장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그 위에서도 군림하기 위해 바깥으로 나가야만 한다. 그건 거역할 수 없는 나의 운명이다.
  내가 아무런 대답이 없자, 누나는 살며시 내 어깨에서 손을 뗀 후,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취사장으로 돌아갔다. 축 처진 어깨엔 근심이 가득해보였다. 나는 일말의 가책을 느꼈지만, 그 가책은 내 결심을 바꾸어 놓을 만큼 강한 것은 아니었다.
  계획했던 일을 시도하려면, 누나가 신경을 쓰지 못하는 지금이 적기였다. 곧 저녁식사 시간이 찾아올 것이므로 누나는 한동안 취사장을 빠져 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녀가 주위를 기울이지 못할 때, 로더 씨를 만날 필요가 있었다.
  로더 씨의 방은 이 거대한 셀터 안에서도 가장 깊숙하고도 어두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나는 그곳에 가본 적이 거의 없다. 애당초 갈 일이 없었다. 10살도 되지 않던 꼬맹이였을  무렵, 다른 녀석들과 탐험놀이를 하다가 우연히 길을 잘 못 들어, 커다란 철문 앞까지 가봤던 것이 기억의 전부다. 그곳은 셀터의 복도 어디에나 천장에 달려있는 형광등조차 없어 항상 어둡고 음습했다. 어둠 속에 놓여있는 위압감 가득한 철문의 존재는 어린 꼬마들을 압도하기엔 충분했다. 그곳은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게끔 만들었다.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싶은 느낌이랄까. 우리는 비명 지르고 싶은 마음을 꾹 참으며, 눈을 질끈 감고 복도에서 달아났다. 지금 생각해봐도 생생히 떠오르는 오싹한 체험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두려울 게 없다. 현재의 나는 예전의 겁 많던 꼬맹이가 아니다. 그 당시 모든 두려움은, 세상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고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가 만들어낸 음울한 환상일 뿐이다.
  나는 재빨리 달렸다. 내 뒤로 식당, 도서실, 각종 창고들이 스쳐 지나쳤다. 이윽고 복도의 양 옆으로 가지런히 늘어선 문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내 앞에 어둠이 짙게 깔린 길이 펼쳐지자, 어느새 내가 천천히 걷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곳은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었다. 또한 그걸 바라보는 내 기분 역시 놀랍게도 어렸을 적과 똑같았다. 나는 내가 마른 침을 삼키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스스로를 비웃으며 당당히 어깨를 폈다.
  차갑고 위압감이 느껴지는 철문 앞에 다다르자,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망설임 없이 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문에 귀를 대고 안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는지 알아보려 했지만 허사였다. 오른쪽 귀에 오싹한 차가움만이 느껴질 뿐이다. 아무도 없는 걸까? 나는 이젠 어떡해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철문 너머에서 “들어와.” 하는, 주의 깊게 듣지 않았다면 하마터면 놓칠 뻔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쾌재를 부르며 작은 핸들을 돌려 문을 열었다. 문은 아무런 소리 없이, 스윽 하고 너무나도 쉽게 열렸기에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방안 역시 그다지 밝다고는 보기 힘들었다. 책상위에 놓인 작은 램프만이 빛의 전부였다. 방 오른편에는 작은 침대가 놓여있었고 문의 정면에는 램프가 올려져있는 책상이 있다. 책상위엔 램프 말고도 여러 가지 책이 흩어져 있었다. 책상 바로 옆에는 그다지 크지 않은 책장에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고, 책장 오른쪽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문이 있었다. 문은 닫혀있어서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누구지?”
  작지만 절도 있는 목소리였다. 나는 그의 질문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는 책상 앞에 앉은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책을 읽고 있었다. 그는 내가 방에 들어선 이래로 한 번도 책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어떻게 보지도 않고, 세레나 씨나 제 누나가 아니란 걸 아셨죠?”
  “하하. 그들은 그런 식으로 난폭하게 문을 두들기진 않거든. 가만…”
  그는 말을 멈추고 등을 돌려 나를 쳐다봤다. 그 순간 나는 그만 놀라고 말았다. 내가 그를 마지막으로 본 건 꽤 오래전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가 쓰고 있는 안경 뒤로 보이는 모습은, 예전과 거의 변한 것이 없었다. 짙은 갈색 머리도, 이마에 살짝 새겨진 얇은 주름도, 날카로워 보이는 파란 눈도, 굳게 닫힌 붉은 빛의 입술도, 모두 시간이 정지한 듯 그대로였다.    “지금 누나라고 했었나? 그럼 너는 분명 테리, 테리 가필드가 맞겠구나.”
  그는 입 꼬리를 살짝 올려 웃으며 말했다. 그 모습은 마치, 예전에 내게 약육강식에 대해 설명해주던 날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나는 멍청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그래. 오랜만이군. 그런데 이곳엔 무슨 일이지? 내 방에 자의로 누군가 찾아온 건 정말 드문 일인데 말야. 아니, 사실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구나.”
  그는 안경을 벗어 책상에 올려놓고는 등을 의자에 기댔다. 그가 말없이 웃으며 나를 바라보자, 나는 곧바로 얘기를 꺼내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제가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온 건… 이번에 선택된 브램블 대신 저를 바깥세계로 나가게 해달라고 부탁드리기 위해섭니다.”
  “그래, 이유라도 있나?”
  “물론이죠. 제가 바로 바깥세계로 나가기 적합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현제 셀터 안의 모든 남자들보다 강하거든요. 아마도 들어서 아시겠지만 레미지도…”
  내가 조심스레 반응을 살피자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 알고 있지. 이 작은 방안에서도 셀터 안의 소식은 모두 접하고 있단다.”
  “네. 그러니까 나이도 제일 많고, 힘도 세던 레미지 녀석도 제가 침대에 누워있게 만들었죠. 전 누구보다도 자신 있어요. 강한데다 의욕까지 넘치죠. 아마 제가 나간다면 지금까지와는 달리, 여러 정보들을 셀터로 가져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 그렇구나…. 그런데 말이다. 그 생각은 네 누나도 알고 있는 거냐?”
  “예? 아, 예. 말해봤지만 반대하더라구요. 하지만 아무리 누나라 해도 절 막진 못해요.”
  내 강한 말투에 로더 씨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그의 표정은 새파란 어린 것들과는 달리, 짙은 그늘로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때 철문을 노크하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로더 씨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거 곤란한걸. 저 소리는 아마도 네 누나일 게다.”
  이런 제기랄. 내가 당황하는 사이, 로더 씨는 들어오라고 말했다. 문이 스르르 열리고는, 누나가 작은 쟁반위에 따뜻한 차를 올린 채 안으로 들어섰다. 순간 누나와 내 눈이 마주쳤다.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그녀는 깜짝 놀라며 쟁반을 떨어트렸다. 곧 컵이 산산조각 나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죄송합니다, 로더 씨.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
  누나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               *               *

  취침시간이 되어 침실은 일제히 소등되었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다들 열심히 떠들어대고 있다. 나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잠을 청해보려 했지만 무리였다. 소란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나는 베개를 던지며 소리를 질렀다.
  “다들 아가리 닥치고 쳐 자, 새끼들아!”
  그러자 대화가 일순간에 끊기더니 분위기가 싸해졌다. 나는 불편한 기분을 잔뜩 느끼며 모포를 머리끝까지 덮었다. 습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마저 사라지고 기침소리 하나 없는 적막이 찾아온 순간, 낡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누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나는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분명 그건 누나의 목소리였다. 나는 모포를 팽개치고 이층침대의 위에서 뛰어내렸다.
  “여긴 무슨 일이야?”
  “할 말이 있어서.”
  누나는 아직도 일할 때 입는 낡은 옷을 입은 모습 그대로였다. 우리는 방에서 나와, 복도의 막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곳엔 지금은 쓰이지 않는 나무상자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굴러다니는 나무상자를 하나 끌고 와서 누나를 앉혔다. 누나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래, 할 얘기가 뭔데?”
  누나는 한참이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복도에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너,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누나가 무슨 얘기 하려는지 짐작이 가는데, 나는…”
  “아니, 너는 짐작도 못 할 거야. 우선 아무 말 말고 내 얘기를 들어줘.”
  유달리 굳은 그녀의 표정 때문에 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라도 하듯이 가슴에 두 팔을 얹고 심호흡을 했다. 나로선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누나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보였다.
  “믿기지는 않겠지만, 네가 더 무모한 행동을 하기 전에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얘기해야겠어. 테리, 비웃지 말고 잘 들어. 로더 씨는… 흡혈귀야.”
그야말로 뚱딴지같은 말이었고, 진지하기 그지없는 누나답지 않은 말이었다. 나는 내가 잘 못 들었나 싶어 ‘뭐?’ 하고 되물었다. 하지만 누나의 표정이 워낙 심각했기에, 단순한 장난으로만 생각되지는 않았다.
  “그자는 흡혈귀라고.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는. 그래, 나도 네 맘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어이없다는 표정은 짓지 마. 하지만 사실이야. 나도 세레나 씨의 일을 돕기 전까지는 몰랐어. 하지만 셀터 안 모든 사람들 중에서 내가 그들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놓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어.”
  “흡혈귀라니, 도대체 무슨…”
  갑자기 누나가 나를 와락 껴안았다. 그제야 나는 그녀가 심하게 떨고 있음을 알게 됐다. 허튼 소리를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하물며 재미없는 농담 따위는 더더욱 아니었다. 나는 떨고 있는 누나의 등을 토닥이며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잠시 후, 그녀는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는지 내 품에서 떨어졌다. 그리고는 몹시 추운 사람처럼 자신의 몸을 두 팔로 감쌌다.
  “로더는 전쟁 이전부터 흡혈귀였던 거야. 그가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는 알지 못하겠지만 여하튼 무척 오랫동안 살아왔겠지. 흡혈귀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더 오래 살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어. 그 결과가 바로 이 셀터와 우리들이야. 무슨 소린지 이해하겠니?”
  나는 당연히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고개를 젓자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할까. …그는 미쳐 돌아가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곧 일어날지도 모르는 전쟁이 현실로 닥치는 것을 두려워했어. 물론 어쩌면 그는 핵이 터져도 살아남을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인간이 모두 죽어서 그 역시 피를 섭취하지 못하면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게 돼. 그래서 그는 영겁의 시간을 살아오면서 모은 수많은 돈으로 이 셀터를 지은 거야. 자신의 먹이를 직접 모아놓기로 한 거지. 그리고 그 먹이가 바로 우리들이야.”
  나는 벌어진 입을 쉽게 다물지 못했다.
  “그리곤 실제로 전쟁이 벌어졌어. 그렇기 때문에 그는 앞으로도 영원히, 자신의 생명이 이어질 수 있도록 조그만 사회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거야. 그래서 어린 아이들을 이곳에 수용한 거지. 단순한 먹이로만 우리를 대했을 경우, 우리가 모두 죽게 되면 모든 게 헛수고였겠지. 그래서 인간들이 다시 세대를 이어갈 수 있도록 우리를 키운 거야. 또 다른 사회를 만들고, 언제나 그랬듯이 그는 그 안에 잠복해, 어둠속에서 인간들의 피를 빨려고 계획한 거야. 그러니까 이 셀터는 안전하게 먹이를 구할 수 있는 그의 정원인 셈이야.”
  “…그렇다면 지금까지 바깥세상으로 나갔다던 사람들?”
  “그의 방에서 책장 옆에 있던 문을 봤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빌어먹을.
  “그들은 가장 먼저 선택된 희생양이야. 그들은 거기에 갇힌 채 로더에게 피를 제공하는 거야. …우리는 이제 스스로 행동하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장했고 로더 역시 그 점을 잘 알고 있어. 그래서 아마도 머지않아 차근차근 셀터 안에서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일이 시작될 거야. 남녀는 짝을 짓고, 자식을 가지고, 자신들의 피를 영원히 이어나가려 하겠지. 그건 곧 로더의 생명도 그만큼 무한해 진다는 얘기고. 하지만 그로써도 그동안 피를 섭취하지 않을 수는 없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계획이거든. 그래서 바깥세계로 내보낸다는 꾀를 생각해내서, 그 방에 가두고는 마음껏 피를 빠는 거지.”
  “그럼 누나는 그가 사람의 피를 빠는 것은 직접 봤어?”
  내 질문에 그녀는 흠칫 놀라더니 양 팔로 스스로를 더욱 세차게 끌어안았다.
  “…그래. 그가 세레나 씨의 피를 빠는 것을 몰래 본 적이 있어. 세레나 씨 역시 그에게 지속적으로 피를 주고 있어. 때문에 그녀가 요새 그렇게 부쩍 기력이 떨어진 거야. 너무 오랜 세월 동안 피를 빨린 탓이지. 아마 그녀는 곧 죽고 말 거야. 지금가지 죽어갔던 다른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누나의 마지막 대답은 나에게 어떤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그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 강렬한 분노를 이끌어내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의문이라기보다는 확신에 가까웠다.
  “…그 새끼가 누나의 피도 빨았군. 그렇지?”
  누나는 대답이 없었다.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맙소사.
  “그래, 그 새끼가 누나의 피도 빤 거야. 이런 제길… 이 개새끼를 죽여 버리고 말겠어!”
  내가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이끌려 벌떡 일어서자 누나가 내 팔을 붙잡았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잔뜩 고여 있었다.
  “이러지마! 네가 그를 어떻게 죽인다고 그러는 거야! 나는 그에게 피를 주는 대가로, 그가 너를 영원히 건드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았어. 너만 조용히 있어주면 우리는 지금까지처럼 안전하게 살 수 있어. 그러니까 제발… 테리.”
  나는 눈앞이 캄캄해진다는 게 어떤 것인지 톡톡히 실감하게 되었다. 이 작은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고 자만하던 이는, 실은 가녀린 여성의 헌신적인 보호 안에서 키워지는 작고 여린 꽃에 불과했다. 입술을 깨물었다. 너무 힘껏 깨문 탓에, 피가 배어 나왔다.
  “누구도 나를 말릴 순 없어. 그건 누나라도 마찬가지야. 기필코 내가 그 새끼를 찢어발길 거야. 지금까지 그 새끼가 마신 피보다 더 많은 피를 몸에서 끄집어내주겠어.”
  “제발… 너는 무리야….”
그녀는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고, 내 팔을 꽉 잡고는 고개 숙인 채 흐느꼈다. 나는 천천히 몸을 숙여 그녀를 꼭 껴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나는 멍청한 놈이라서 아마도 무턱대고 덤비다 죽고말거야. 그런 운명인거지. 하지만 영리한 누나가 나를 도와준다면 얘긴 달라져. 누나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그 빌어먹을 새끼를 죽일 수 있을 거야. 안 그래?”
  나는 울고 있는 누나를 꼭 껴안으며,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이제 남은 일은 로더에 대한 누나의 증오심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 보는 것뿐이다.

  그 후로 이틀이 지났다. 나에게 이 셀터의 비밀을 털어놓던 날 밤, 겨우 마음을 진정시킨 누나는, 자기에게 며칠간의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동안 그녀가 필요한 준비를 해놓겠노라고 말했다. 그래, 누나의 치밀한 성격과 나의 힘이 만난다면 무서울 건 없었다. 나는 느긋이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되도록이면 일은 빨리 끝장내는 편이 유리하다.
  나는 누나를 기다리는 이틀 도안, 식사도 꼬박꼬박했고 운동도 거르지 않았다. 힘과 평정심을 충분히 유지하고 있어야할 필요가 있다. 다만 간혹 세레나 씨와 마주치면, 나는 충동적으로 그녀를 흠씬 두들겨 패주고픈 욕망에 사로잡혔다. 로더와 한통속으로 누나를 끌어들이다니, 죽어 마땅한 년이다. 나는 주먹을 굳게 쥐고, 그년을 노려보다가 이내 돌아섰다.  
  그리고… 새벽녘 서서히 꿈의 나락으로 빨려 들어갈 무렵, 누나가 찾아왔다.
  
  *                *               *

  우리는 전에 대화를 나눴던 복도 끝으로 갔다. 누나는 품속에서 망치를 꺼낸 뒤,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뾰족하고 튼튼한 나무를 구해야 돼. 말뚝으로 써야하니까.”
  그녀가 택한 방법은, 예전에 읽었던 어린이 책에나 나올법한 고전적인 방법이었다.
  “그딴 건 만들면 돼.”
  나는 일렬로 늘어서 있는 기자재창고에서 만족할 만한 나무토막을 꺼내, 누나가 가져온 조각칼로 날카롭게 다듬었다. 깎아내면 깎아낼 수록, 날카로움은 더해졌다. 그것은 점차 매혹적인 모습으로 변해갔다.
  “이틀간 그가 잠드는 시간을 주시했어. 얼마 후면 그가 잠이 들 거야. 그때 움직이자. 문제는 세레나 씨야. 그녀가 아침식사 준비를 위해 일어나는 건, 로더가 잠들기도 전이거든.”
  “그년도 죽여 버리면 돼. 그딴 년은 맨주먹으로도 3초면 충분해.”
  “그러지마. 그녀는 나쁜 사람은 아냐.”
  내가 코웃음 치자 누나는 엄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사실… 오늘 일을 마무리 짓고 둘이 앉아서 차를 마실 때, 내가 그녀의 차에 수면제를 탔어. 하지만 오래된 약이라 효과는 장담 못해.”
  “알았어. 만약 잠들지 않았다면 내가 정중히 재워줄게. 단 한 방으로. 그거면 됐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무척 초췌해진 모습이었다.
  “누나는 한 숨도 못잔 것 같은데.”
  “너도 마찬가지야.”
  “나는 문제없어. 거사를 위해 신경을 날카롭게 다듬은 것뿐이니까. 자,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았어. 누나는 좀 자둬.”
  나는 누나의 몸을 끌어당겨 나에게 기대게 했다. 그녀는 잠시 뒤척이다 얼마 후에 새근새근 소리를 내며 잠이 들었다. 누나가 깨지 않게 주의하며, 나는 몇 번이고 누나의 얇은 손목에 채워져 있는 시계를 자꾸만 바라봤다.
  이윽고 누나가 말한 시간이 찾아왔다. 막상 기다리던 때가 찾아오자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누나를 깨웠고, 우린 말없이 준비한 것들을 손에 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복도는 어두웠으며, 고요했다. 작은 발소리를 내는 것조차 죄를 짓는 것 같아 소리를 죽이려 애쓰며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나아갔다. 나는 모든 것을 빨리 마무리 짓고 싶었다.
  다행히도 세레나 씨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 조용히 방문을 열어 바라본 그녀의 얼굴엔 핏기가 하나도 없이 창백해서, 이미 그녀가 죽은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나는 한참동안이나 세레나 씨를 바라봤다.
  우리는 다시 서둘러 걷기 시작했다. 수많은 문을 지나쳤다. 드디어 끝이 보였다. 음습한 복도 끝에 자리한 철문을 바라보자 가슴의 두근거림이 급격히 빨라졌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발걸음이 느려져만 갔다. 한심한 꼴이었지만 결국 나는 5미터정도 남은 자리에서 멈춰서고 말았다. 심호흡을 해봐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테리.”
  누나가 불안한 목소리로 부르며 내 어깨에 손을 올렸을 때 깜짝 놀란 나는, 비명을 지르면서 그곳에서 달아날 뻔 했다. 나는 천천히 숨을 가다듬으며 내 어깨에 올려져있는 누나의 손을 잡았다. 손이 너무나도 차가워 오히려 마음이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그래, 그 빌어먹을 새끼가 내 누나의 피를 빨았다.
  나는 다시금 몸속 깊숙한 곳에 잠식해 들어오는 분노에 만족해하며 발을 내딛었다. 이제 남은 일이라곤 이 분노가 사라지기전에 그 새끼의 심장에 말뚝을 박아 넣는 일뿐이었다.
  말뚝과 망치를 누나에게 맡긴 후에, 성큼성큼 나아가 철문에 달려있는 핸들을 돌렸다. 역시나 기분 나쁠 정도로 철문은 매끄럽게 열렸다. 마치 방이 나를 끌어들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공포가 점점 불어나기 전에 얼른 뒤돌아서, 누나의 손에서 말뚝과 망치를 낚아챘다.
  “누나는 여기 있어. 그리고 만약 내 비명소리가 들려도 절대…”
  누나가 내 뺨을 어루만지는 바람에 말을 멈춰야만 했다.
  “넌 괜찮을 거야. 기다리고 있을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미소를 뒤로 한 채 방으로 들어섰다. 시간이 지나면서 눈이 차츰 어둠에 익숙해졌다. 조심스레 발을 내딛을수록 내 증오의 대상에 가까워졌다. 드디어 내 앞에 로더의 모습이 선명히 드러났다. 유달리 창백해 보이는 그의 피부가 음산한 느낌을 자아냈다.
  이제 끝을 낼 시간이었다. 나는 정확히 그의 심장부근에 말뚝을 올려놓았다. 처음 한 방이 중요하다. 이게 빗나가기라도 하면 큰 위험을 초래하고 만다. 나는 크게 숨을 내쉬며 망치를 든 오른팔을 높이 치켜 올렸다. 그리고는 강하게 내리치는 순간- 섬뜩하리만치 차가운 감촉이 내 오른팔을 감쌌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극한의 공포가 나를 지배했다.
  어느새 로더가 눈을 뜨고는 누운 채로 손을 뻗어, 망치를 든 내 팔을 잡고 있었다. 나는 힘을 줘서 재빨리 그에게서 벗어나려 했지만 허사였다.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평범한 체구에서 나온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굉장한 힘이었다.
  “네가 이럴 거라곤 예상하고 있었지. 다만 너는 내 생각보다도 더 단순한 것 같군.”
  나는 이를 악물고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몸을 흔들었지만 여전히 손가락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그가 쥐고 있는 팔이 너무 아파 으스러지는 느낌이었다. 저절로 신음이 새어나왔다. 로더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키고는, 이번엔 다른 손으로 내 목을 움켜 잡았다. 그의 힘은 굉장해서, 금방이라도 숨이 멎어버릴 것만 같았다. 필사적으로 누나에게 도망치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입에선 단 한마디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눈물이 흘렀다. 억울함이나 분함 때문이 아니었다. 나보다 월등히 앞서는 존재에 대한 생전 처음 맛보는 두려움에서였다.
  로더가 침대에서 완전히 일어나 한 손으로 내 목을 움켜쥐고 들어올렸다. 숨이 막혀 발버둥 쳤지만 괴로움만 더 할뿐이었다. 그는 웃고 있었다. 우월한 자만이 질 수 있는 미소였다.
  “야생동물은 본능으로 알 수 있단다. 자기보다 강한 존재를. 그런데 어리석은 인간들은 그렇지가 못하거든. 그래서 사라진 거야, 너희 인간이란 족속들은. 난 너의 더러운 피 따위는 빨지 않겠다. 그냥 이대로 목뼈를 으스러트려 주지. 아마도 기분 좋은 소리가 날 거야. 듣고 있노라면 너도 만족할 게다.”
  “테…리?”
  그때였다. 문 너머로 누나의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렸을 때, 나는 순간적으로 로더의 주위가 그리로 향했음을 직감했다. 그 순간 나는 재빨리 말뚝을 휘둘러 그의 눈에 쑤셔 박았다. 로더가 고통에 울부짖는 소리와 방으로 들어선 누나의 비명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달아나, 누나!”
  나는 연신 기침을 하며 로더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와 소리치며 방에 있는 낡은 문으로 향했다. 내 혼신을 다한 발길질 두 방에 문짝은 힘없이 나가떨어졌다. 브램블을 두고 갈 순 없었다. 로더의 끔찍한 비명을 뒤로하고 방으로 들어서자, 널브러져 있는 두 남녀가 눈에 들어왔다. 브램블과 헤이나, 어느 쪽도 본인이라 믿기 힘든 몰골이었다. 나는 브램블의 뺨을 세차게 때렸다. 이윽고 브램블이 눈을 떴다.
  “…테…리?”
  “그래, 일어설 수 있겠어? 빨리 여기서 빠져 나가야돼!”
  내가 브램블을 부축해 일으키려는 순간, 내 몸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벽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대로 벽에 부딪혀 쓰러졌다. 어느새 로더가 피가 흐르는 눈을 손으로 막은 채 방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가 무시무시한 힘으로 나를 벽으로 던져버린 것이다. 등에 극심한 고통이 밀려와 일어설 수가 없었다.
  “애먹이는구나, 어린 것이. 그 오랜 세월 동안 나에게 이렇게 큰 상처를 준 것은 네가 처음이야. 나도 생각을 바꿨다. 너에게 내 피를 마시게 해 불사의 몸으로 만든 다음, 영원한 고통을 주겠다. 너는 갇힌 채로, 내가 네 누이의 피를 탐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될 거야.”
  그가 으르렁 거리며 다가왔다. 나에게 남은 선택은 단 하나뿐이었다. 조금이라도 녀석을 붙잡고 늘어져 누나가 도망칠 시간을 버는 것이다.
  내가 남은 힘을 쥐어 짜내 로더에게 달려들려 했을 때, 그 전에 먼저 그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는 분노의 괴성을 지르며 몸을 흔들어댔다. 등 뒤에는 브램블이 매달린 채 피 흘리는 로더의 눈을 손으로 쑤셔대고 있었다.
  “테리, 빨리 도망쳐! 얼마 버티지 못해!”
  그 순간 누나의 흐느낌이 들렸다. 그 소리는 가까운 곳에서 들렸다. 누나가 이곳으로 오고 있는 것이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사투를 벌이고 있는 두 사람을 지나쳐 방을 뛰쳐나갔다. 누나는 바로 문밖까지 와있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로더의 방을 벗어나 어두운 복도를 벗어날 무렵,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끔찍한 비명소리가 어둠 속에 울려 퍼졌다. 가엾은 브램블의 마지막 포효였다.

  누나는 이미 실패했을 때의 준비를 해놓았었다.
  이 선택이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었어.
  그녀는 지친 얼굴로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커다란 가방 두 개엔 얼마간 지낼 수 있는 비상식량과 생필품들이 들어있었다. 나는 그녀의 이런 치밀한 모습에 새삼스레 감탄하고 말았다. 누나는 만류했지만 내가 두개의 가방을 전부 어깨에 짊어졌다.
  우리의 도피처는 뜻밖에도 셀터 밖이 아니었다. 반대로 셀터의 가장 깊숙한 곳이었다.
  “셀터는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거대해. 그는 진정으로 이곳에 새로운 세상을 만들 생각이었나 봐. 사람들의 수가 지금 우리가 생활하던 공간의 수용범위를 넘어섰을 때를 대비해 여러 숨겨진 구역들이 있어. 나도 세레나 씨를 도우면서 알게 된 사실이야. 그런 곳들이 거미줄처럼 널려져 있고, 그 크기와 규모는 아마 로더 자신도 잘 모를 거라고 생각해.”
  누나의 말에 나는 잠자코 고개만 끄덕였다. 만일 정말로 이곳에서 또 다른 사회를 건설할 생각이었다면, 로더는 생각보다도 더 미쳐있는 게 틀림없다.
  “어차피 그로서도 오늘 있었던 일을 떳떳이 밝힐 수 있는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안전해. 그가 복수심에 가득 차 직접 우리를 찾아 나서지만 않는다면 말이야. 물론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겠지. 자, 여기야.”
  오랜 세월 동안 그 존재를 숨기고 있었던 굳게 닫힌 문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문은 취사장 뒤쪽으로 난 문을 통해, 몇 개의 갈림길을 지나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보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가 없군.”
  나는 순수한 마음으로 감탄했다. 취사장에 출입하는 인원은 제한되어 있으니 이곳은 누군가에게 발견될 염려 없이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는데 적합한 곳이었다.
  “아마 우리가 지나온 갈림길 반대편에도 몇 개의 문이 존재할 거야. 우리는 수많은 선택 중에 겨우 하나를 골랐을 뿐이야.”
  누나가 벽에 기대 가쁜 숨을 쉬며 말했다. 그녀는 지친 모습이었다.
  문은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으므로 열기가 쉽지 않았다. 핸들을 잡고 힘을 줄때마다, 아까 다친 등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오랫동안 씨름한 끝에, 나는 문을 반쯤 열고는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테리, 빨리 가는 게 좋겠어.”
  누나가 가방 하나를 집어 들며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은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조금 쉬는 게 낳지 않겠어? 힘들어 보이는데.”
  “두려워서 그래. 여기서 벗어나면 한결 나아질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누나가 들어가기 쉽도록 문을 완전히 열었다. 앞에 펼쳐진 것은 또다시 찾아온 어둠. 그리고 아래로 뻗어있는 끝이 보이지 않는 철제 계단.
  누나는 손전등을 꺼냈다. 손전등에서 나오는 빛은 거대한 어둠에 비해 너무나도 초라해 우습기까지 했다. 문을 닫자, 마지막 빛이 가늘어지다가 결국엔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힘들고도 외로운 여정이었다. 무엇보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나를 지치게 했다. 목적이 없는 행동은 정신적 고통을 수반한다. 그리고 나약하게 만든다. 도중에 쉴만한 공간이 드문드문 있었지만 누나는 멈춰 서지 않았다.
  “가장 깊숙한 곳까지 가야 돼.”
  나는 누나의 말에 반대하지 않았다. 내가 결정한 것보다 그녀의 뜻대로 행동하는 것이 훨씬 나은 길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지친 누나가 이 여정의 끝에 당도할 수 있느냐는 점이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내려갔다. 마치 우리가 내뱉은 불필요한 말을, 로더가 듣고 우리를 뒤쫓는 걸 두려워하기라도 하듯이.

  *               *               *

  가방을 짊어지자 묵직한 느낌이 가득하다. 가방 안에는 통조림이 가득 들어있다. 나는 창고 문이 잘 닫혔는지를 확인하고는, 이내 발을 돌렸다. 우리가 지내고 있는 곳에서 창고까지는 거리가 있는 편이었기에, 이렇게 한 번 왔을 때 최대한 가져오는 편이 좋았다.
  이 지하세계로 내려온 지도 꽤 오랜 나날이 지났다. 일주일 이후로는 날짜를 세는 것을 그만뒀기에 정확히 며칠이 지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 뒷머리가 어깨까지 흘러 내려온 것으로 보아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점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곳의 생활은 적응하기 나름대로 나쁘진 않았다. 극심한 추위가 괴롭긴 했지만, 이 마지막 층의 동력도 찾아내 약한 빛이나마 얻을 수 있게 되었고 거대한 창고들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얼마든지 가져다 사용할 수도 있었다. 창고 옆으로는 위에서와 마찬가지로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지만, 누군가가 기나긴 계단을 내려올 것을 염려한 누나는 거처를 계단 밑의 복도에 마련했다. 덕분에 필요한 물자가 생기면 약간의 수고를 감수해야만 했다.
  사실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진정으로 걱정하는 것은 누나가 자꾸 약해져 간다는 사실이다. 매일을 함께하고 있음에도 나날이 초췌해지고 있다는 걸 실감할 정도다. 위에 있는 세계에서 떠난 직후 누나는 눈에 띄게 상태가 안 좋아졌다. 기침도 잦았고, 살이 자꾸만 빠져 앙상한 뼈마디가 드러났다. 지하세계로 내려온 직후에는 우리가 지낼 공간을 마련하느라 분주히 움직였지만, 요사이엔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만 있다.
  누나를 생각하다보면 또다시 조급해져, 자연스레 발걸음이 더욱 빨라지다가 결국에는 뛰게 된다. 육중한 무게의 가방이 부담스럽지만 신경 쓸 겨를 따윈 없다. 어서 빨리 누나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손목시계를 바라보니 떠난 지 대략 20분정도 시간이 지난 것 같다. 요사이 내가 누나의 시계를 차고 있었다.
  여하튼 부지런히 달린 덕분에 시간을 많이 절약해, 평소보다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복도로 통하는 문을 열자 싸늘한 기운이 온 몸을 감싼다. 안쪽도 추운 편이지만 이곳엔 비할 바가 되지 못한다. 여기선 재빨리 땀을 닦아줘야 한다. 안 그러면 뻗어버리기 십상이다.
  “…누나?”
  옷깃으로 땀을 훔치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항상 누워있던 자리에 누나가 보이지 않았다.  
  “테리!”
  내가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를 때, 나를 부르는 작은 목소리가 나를 들렸다.
  “누나! 지금 뭐하는 거야?” 나는 소라기 나는 쪽을 돌아보며 누나에게 물었다.
  그녀는 복도 가장 어두운 구석에서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광경이었다.
  “테리, 목소리 낮춰!”
  그녀는 속삭이듯 내뱉었다. 굉장히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내가 당황해하자, 그녀는 시선을 돌리며 뼈마디만 남은 손가락을 치켜 올려 계단을 가리켰다.
  나는 고개를 들어 계단을 쳐다봤다. 하지만 아무 것도 이상할 게 없어 다시 누나를 바라봤으나, 누나는 손가락을 입으로 갖다 대며, 조용히 하고 귀 기울여보라는 표시를 했다.  
  잠시 후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계단을 내려오는 발자국소리가 들린 것이다! 소리는 아직 먼 곳에서 들렸으나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어떡해야할지 묻기 위해 누나를 바라봤으나, 내 앞에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병자가 한 명 있을 뿐이다. 이제는 내가 누나의 보호에서 벗어나 그녀를 지킬 차례다. 신은 내게 마지막으로 기회를 준 것이다.
  나는 발소리를 죽이며 다가가 누나를 부축해서 일으키려 했다.
  “누나는 안으로 들어가 있는 게 좋겠어. 안전한 곳에 숨어 있어.”
  하지만 그녀는 내 손을 거부했다.
  “아냐, 테리. …나를 미끼로 써.”
  “뭐!”
  그녀는 앙상한 손으로 재빨리 내 입을 막았다. 생각보다 더 야윈 손이었다.
  “쉿, 목소리가 너무 커. 조용히 들어 봐. 내가 주위를 끌고 있으면, 네가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기가 훨씬 수월할 거야. 그러면 너는 훨씬 유리한 상태에서 움직일 수 있어.”
  “하지만 그건 누나가 너무 위험해!”
  “난 괜찮아. 괜찮아, 테리. 너만 무사하다면.”
  “나는 괜찮지 않아!”
  누나는 지친 미소를 지으며 내 머리를 쓸어 넘겼다. 내가 어렸을 적 울보였을 때, 나를 달래주던 따뜻한 손길 그대로였다.
  “잘 봐, 테리. 내 몰골을. 나는 너에게 짐만 되고 있어. 이제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 것도 남은 게 없어. 네가 조금이라도 건강한 모습으로 지내는 걸 지켜볼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해.”
  그녀가 내 볼을 토닥였다. 누나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그녀를 계단이 끝나는 곳에서 잘 보이는 벽 쪽에 기대게 했다. 그리고는 그녀가 춥지 않도록 모포를 가져와 덮어주었다. 그런 뒤에, 짐을 모아둔 곳에서 작은 칼을 하나 꺼냈다. 볼품없는 칼이었지만,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무기였다.
  “어서 숨어.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아.”
  누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가까워질듯 하면서도 쉽사리 가까워지지 않는 발소리를 듣고 있자니 조바심이 일어 가만히 웅크리고 있기가 고역이었다. 특히 가녀린 누나를 위태로운 곳에 홀로 버려두었다는 사실이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나는 여전히 소중한 사람 하나 지킬 힘도 없는 쓰레기였다.
  분노가 치밀어 당장 뛰쳐나가, 단번에 칼로 목을 그어주고 싶었다. 그 누구라도 상관없다. 누나와 나의 안녕을 방해하는 이는 합당한 대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것이 로더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내가 로더를 해치울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내 목을 조르던 그의 차갑고 강인했던 손의 감촉을 잊지 못한다. 깊숙한 곳에 가라앉아있던 고통이 발자국소리와 함께 서서히 다시 떠올랐다. 어느새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래, 나는 지하세계로 내려온 후에 의식적으로 그 날의 기억과, 로더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기 위해 애썼다. 그것은 더할 나위없는 치욕이었고, 공포로 움츠리게 했으며, 무엇보다도 현실 그 자체라는 점에서 나를 괴롭혔다.
  이제 발자국소리는 꽤 가까운 곳까지 다가와 있었다. 소리는 이제 바로 위에서 들리고 있었다.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무엇보다 불안한건 그 숨소리에 적의가 가득 담겨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흉폭한 야수의 것과도 같은.
  나는 누나를 바라본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누나를 안전한 곳에 숨긴 뒤 지켜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눈이 마주친 누나는, 내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도 나는 본능이 이끄는 대로 일어서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캉. 그때였다. 소리가 바로 내 머리 위에서 들렸다. 나는 질겁하며 다시 황급히 몸을 숨겼다. 이제는 빌어먹을 신에게 기도하는 것밖엔 남지 않았다. 부디, 부디 누나를 지켜주기를.
  계단 틈새로 내려오는 발이 눈에 들어온다. 느릿느릿한 몸놀림이다. 그의 하체가 보이기 시작하고, 서서히 그의 모습 전체가 드러나고 있다. 이미 그는 누나를 발견했을 것이다. 누나는 그 자를 바라보며 떨고 있었다. 가뜩이나 좋지 않았던 얼굴이 더욱 파리해졌다.
  분명 로더는 아니었다. 그는 저렇게 몸이 비대하진 않다. 오히려 키는 컸지만 마르고 날렵한 편이다. 여하튼 로더가 아니라는 점에서 최악의 상황은 피했기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는 이제 계단을 모두 내려와 누나 앞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내 쪽에선 그의 뒷모습만을 간신히 확인할 수 있는 정도였다. 저런 덩치는 흔하지 않다. 잠깐… 흔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내겐 너무 익숙한 모습이다. 제기랄, 씨팔! 나는 그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내가 이 조그만 세상에서 가장 증오했던 존재. 그는 레미지였다.
  나는 바로 괴성을 지르며, 칼을 들고 녀석을 향해 뛰어 들었다. 그게 실수였다. 내 괴성을 들은 그는, 재빨리 몸을 틀어 내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나도 일격이 빗나갔음을 본능적으로 깨닫고는 방향을 바꿔 순식간에 그의 지방 가득한 배에 칼을 쑤셔 넣었다. 치명타는 아니더라도 이 정도면 충분히 싸움을 내 페이스로 끌고 올 수 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나는 그의 거대한 주먹에 정통으로 맞고 뒤로 나가떨어졌다. 무시무시한 힘이었다. 누나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레미지는 나를 보며 킬킬 거렸다.
  “오, 오랜만이다, 병신아.”
  “그래, 돼지새꺄.” 나는 얼얼한 뺨을 어루만지며 대꾸했다.
  그는 배에 꽂혀있는 칼엔 신경 쓰지 않은 채 만족스러운 듯 웃고 있었다. 전혀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버젓이 서서 나를 노려보며 웃고 있을 뿐이다.
  “그, 그 날 네가 준 고통은 빠,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어. 이번엔 내, 내 차례야.”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는 말을 더듬고 있었다. 내게 얻어터진 후유증 때문일까. 그의 입에선 침이 질질 흘렀고, 배에선 피가 뚝뚝 떨어졌다. 바닥은 짙은 검은색으로 물들어갔다.
  “그렇겐 안 될걸. 확실히 숨통을 끊어 주지. 여기엔 참견장이 세레나도 없고 말야.”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표정으로 엉덩이를 털며 일어섰다. 어쨌든 내가 유리한 상황이다. 지금 녀석의 모습은 허세일 뿐이다. 하지만 그 녀석은 이젠 대놓고 껄껄 웃어댔다.
  “하, 하지만 나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와, 완전히 변했거든. 바로 로, 로더 씨에게 말이지.”
  “뭐!” 새파랗게 질린 내 얼굴이 그를 만족시키고 말았다.
  “내가 치, 침대에 누워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고 분노에 떨고 이, 있을 때 말야… 어느 날인가 왼쪽 누, 눈에 안대를 찬 로더 씨가 나를 찾아왔어. 그, 그는 나를 보며 비웃었어. 나는 그의 표, 표정 때문에 더욱 더 너에 대한 증오가 치밀어 누, 눈물까지 흘렸어. 그, 그러자 로더 씨가 웃으면서 가, 가까이 다가와 내 귀에 속삭였어. 보, 복수하고 싶냐고. 꿈, 꿈에도 잊지 못할 감미로운 복수를 원하느냐고. 나, 나는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지. 그, 그랬더니 그가 내게 기회를 준 거야! 바, 바로 이, 이렇게!”
  레미지는 자신의 목을 내보였다. 그곳엔 증오에 의해 선명히 기록된, 작은 구멍 두 개가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영, 영생뿐만 아니라 가공할 히, 힘을 얻었어.”
  그는 완전히 얼어붙은 내게로 천천히 걸어왔다. 나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내 피를 대가로 말야. 그, 그러니 나는 이제부터 네, 네 모가지를 들고 피, 피를 듬뿍 마실 거야. 머, 먹다 토할 때 까지. 아, 안심해. 네 누나는 데리고 가서 로, 로더 씨와 둘이서 실컷 가지고 놀다가 곁으로 보내 줄 테니까.”
  그는 이제 내 앞에 서 있었다. 나는 그의 압도적인 모습에 뒤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 그날은 무척 즐거웠어, 테리. 무척이나.”
  레미지는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덕분에 칼에 찔려 배에서 나오는 검붉은 피가 내 위로 떨어졌다. 그것은 살아 움직이듯, 화사하게 내 낡은 바지 위로 퍼져 나갔다. 곧이어 그가 내 머리를 발로 후려 갈겼다.
  “그, 그토록 상쾌하게 어, 얻어터져본 건 오랜만이었어. 세, 세상이 아작 나기 전에는 꼬, 꼰대한테 실컷 터졌었는데 말야. 내가 뭐, 뭔 일을 저지를 때 마다 그, 그 새끼는 신난다는 듯이 나를 두들겨 팼어.”
  그는 바닥을 뒹굴며 괴로워하는 내 배를 계속해서 걷어찼다. 어찌나 강하게 찼는지 입에서 피가 터져 나올 정도였다. 나는 고통에 울부짖었고, 누나는 내 모습을 보며 비명 질렀다.
  “그런데 네 녀석이 나를 패, 팰 때의 얼굴이, 내, 내 꼰대랑 완전히 똑같았단 말이지.”
  레미지는 이번엔 몸을 숙여 주먹으로 내 얼굴을 사정없이 내려쳤다. 끔찍한 고통 덕에 돼지새끼가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지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소리로 웃어댔다. 그는 내 멱살을 잡고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댔다.
  “이, 이거 봐. 피, 피를 질질 흘리고 있는데. 아주 맛있겠어. 사실 나, 나 한동안 피 맛을 보지 못했거든. 그, 그 개 같은 로더 새, 새끼가 내게는 찔끔찔끔 맛보여주기만 했어. 이렇게 마, 맛있는 피를 말야. 너, 너는 모르겠지. 피가 얼마나 맛이 좋은지. 그건 정말 환상적이야. 마, 말로는 표현할 수 없어.”
  그는 황홀한 표정으로 내 얼굴에 난 피를 자신의 손에 묻혀 게걸스럽게 입에 쳐 넣었다.
  “그, 그건 말, 말이지. 언젠가 여, 여럿이서 페룰라인가 하는 년을 잔, 잔뜩 겁준 다음 따먹었을 때보다도 훨씬 기, 기분이 좋거든. 날카로운 송곳니를 누, 누군가의 피부에 푹 쑤셔 넣으면 오, 오줌을 지릴 정도라니까. 그 순간엔 뵈는 게 없어. 아, 아무 생각도 못하고 마지막 한 방울마저 빠, 빨아먹을 때, 때까지 멍하니 있는 거야. 기, 기분이 너무도 황홀해서 머, 멈출 수가 없어. 내, 내가 그렇게 쌩쌩하던 어떤 새끼를 고, 골로 보내놨더니 그 씨발 로, 로더 새끼가 얼굴을 찌푸리면서 그 후로는 내게 피를 거의 주, 주지 않았어!”
  그는 거센 힘으로 와락 내 목을 졸랐다. 나를 로더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로더 이 개새꺄아아!”
  레미지는 커다란 주먹을 치켜들었다. 그래, 이 한 방이면 모든 게 끝나겠지….
  “레미지!”
  뒤에서 들려오는 찢어지는 목소리에 레미지는 주먹을 멈췄다. 그곳엔 우리가 전혀 신경 쓰지 읺던 누나가 있었다. 그녀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간신히 버티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레미지. 피가 마시고 싶지 않아? 자, 이리 와서 얼른 내 피를 마셔.”
  누나가 목을 드러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를 유혹하는 끈적한 목소리였다.
  “미, 미친년. 너, 너는 로더 씨에게 데, 데리고 갈 거야. 로, 로더 씨의 말을 듣지 않으면….”
  그는 방금 전에는 그토록 증오하던 로더에게, 이번엔 존칭을 써가며 두려워하고 있었다. 정신이 오락가락한 듯 했다. 이 돼지새끼는 완전히 맛이 갔다.
  “왜 내 피를 로더 같은 놈이랑 나눠마시려는 건데? 지금이라면 네가 이 따뜻한 피를 전부 차지할 수 있어.”
  “다, 닥쳐, 이년아! 이, 이런 개, 개 같은 년이….”
  레미지는 고래고래 악을 쓰며 발광했다. 그 바람에 나는 그의 억센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누나는 계속해서 그에게 다가갔다.
  “지금이라면 내 피는 너 혼자 질릴 때까지 마실 수 있어. 하지만… 나를 로더에게 데려가면 그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너에게 절대 내 피를 나눠주지 않을 거야.”
  누나는 유혹하듯 관능적으로 레미지의 목을 감쌌다.
  “내 피를 마시고 싶지 않아?”
  레미지는 신음소리를 내며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본능과 본능 너머에 존재하는 두려움. 그는 둘을 놓고 저울질 하고 있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건 레미지만이 아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누나가 무슨 의도로 하는 행동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레미지, 어서.”
  누나가 그의 귀에 속삭였다. 그러자 레메지는 마침내 결심한 듯 괴성을 지르더니 누나를 덮쳐서 쓰러트렸다. 그는 난폭하게 얼굴을 누나의 목 언저리에 파묻었다. 이런, 제기랄! 어서 이 개새끼를 누나에게서 떨어트려놔야 한다. 그리고 기필코 죽여 버릴 테다.
  나는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비틀거리며 둘을 향해 다가갔다. 그때 레미지에게 목을 내준 누나가 손을 뻗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은 누나의 짐이 놓여있는 방향이었다. 그녀는 레미지를 감싸 안고 신음하면서도, 눈은 나를 향해 그곳으로 가라고 재촉했다.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누나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 기어갔다. 내가 지나간 길엔 바닥에 피로 새겨진 내 손바닥이 발자국처럼 점점이 놓여졌다. 나는 아득해지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그녀의 가방을 여는 데 성공했다. 옷가지와 생필품, 손전등 같은 것들이 차곡차곡 쌓아져 있었다. 조바심 끝에 가방을 뒤집어엎었다. 그러자 가방 밑바닥에서 익숙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말뚝과 망치. 거친 나무와 서툰 솜씨로 만들어져 볼품은 없었지만, 그것은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내가 없을 때, 누나가 틈틈이 만든 듯하다. 그녀는 언젠가 튼튼한 나무토막을 하나만 가져다 달라고 했었다.
  이제 남은 일은 이것을 한 번에 녀석의 심장에 박아버릴 수 있는 힘을 끌어내는 것뿐이다. 이곳에 내려와서도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은 내 자신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말뚝과 망치를 양 손에 꼭 쥔 채, 성큼성큼 다가갔다. 도중에 몇 번이나, 고꾸라져 다신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았지만, 거리는 점점 좁혀졌다. 빨리 움직여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누나는 점점 위험해진다.  
  녀석은 누나의 피를 빠는 데 완전히 정신이 팔려 있었다.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지 바로 옆에 서있는 나에겐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자신이 지껄였던 말 그대로였다. 누나는 그 점을 간파하곤, 우리가 살아날 유일한 실마리를 발견해낸 것이다.
  이제는 녀석을 처형할 시기가 왔다. 우선 녀석의 배때기에 박혀있던 칼을 뽑아냈다. 그리고는 그 녀석의 뒤통수에 쑤셔 박았다. 머리에서 검은 피가 솟구쳤다. 돼지새끼는 뒤통수에 칼이 박혔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누이의 피를 탐닉했다. 이런 망할 새끼. 찢어발겨도 시원찮을 개새끼. 나는 소리를 지르며 누나에게 착 달라붙어있는 녀석을 뒤집었다. 녀석의 눈은 천국을 향해 있었다. 지금은 황홀경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지만, 자신이 피를 빠는 것을 방해받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 순식간에 나는 다시 피투성이가 될 터였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녀석의 심장에 말뚝을 갖다 대고 망치로 내려찍었다.
  푸직. 내 얼굴에 대량의 피가 쏟아졌다. 녀석의 비명이 어둠 속에 한가득 울려 퍼진다. 나는 재차 망치로 내려쳐, 말뚝을 녀석의 심장에 깊숙이 박아 넣었다. 레미지는 증오의 눈길로 손을 뻗어 나를 붙잡으려 했지만 허사였다. 말뚝 끝부분이 쪼개질 때까지 힘주어 내리치고, 또 내려쳤다. 점차 녀석의 거친 숨소리가 잦아들었다. 결국 간헐적으로 몇 번씩 크게 숨을 토해내더니 이내 완전히 멈춰버렸다.
  나는 미소 지었다. 녀석의 눈이 서서히 감긴다. 씨발놈, 누구 맘대로 그렇게 편안한 모습으로 눈을 감는단 말인가! 망치를 던져버리고 녀석에게 올라타 주먹으로 얼굴을 연신 내려친다. 이 새끼는 눈 감을 자격이 없다. 공포에 가득 찬 눈길로 나를 원망하며, 또 원통해 하면서 죽어야만 한다. 녀석의 얼굴이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주먹을 날린다. 그래, 이제야 조금 나아진 모습이다. 너는 눈, 코, 입이 제대로 달려있을 때보다 이게 더 어울려.
  상쾌한 기분을 주체할 수가 없다. 내 몸이 조금 더, 더 큰 쾌락을 원한다. 이번엔 뒤통수에 꽂혀있던 칼을 뽑아 녀석의 배를 난도질한다. 내 몸이 녀석의 피로 물들어간다. 이것은 승자에게 주는 훈장과도 마찬가지다. 이 새끼가 뭐라 지껄였더라. 내 목을 찢어서, 그걸 들고 피를 마시겠다고 했던가. 그래, 내가 똑같이 해주도록 하마. 돼지 목을 들고 흘러넘치는 피로 샤워를 하리라….
  녀석의 목을 자르려 할 때, 누군가 나를 와락 껴안는다. 새로운 적? 나의 안녕을 방해하는 또 다른 적? 아니었다. 나를 안은 채 눈물을 쏟고 있다. 엉엉 울고 있다. 이건 누구…?
  “테리, 그만! 이제 그만 해!”
  내 손에 쥐고 있는 칼을 빼앗으려 한다. 나는 어쩐 일인지 순순히 내준다. 그렇게 해도 별반 위협이 될 것 같지는 않아서다.
  내 얼굴에 묻은 피를 자신의 옷소매로 닦기 시작한다. 소용없는 짓이다. 옷 전체가 피로 물들어 내게 부여된 훈장의 흔적을 모두 지울 순 없다. 이것은 내 자긍심의 증거이다. 그런데… 조금씩, 조금씩 피가 닦이자 내 앞에서 울고 있는 이의 얼굴이 선명해진다. 어찌된 영문인지 따라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다. 소중한, 너무나도 소중한 얼굴….
  “…누…나?”

  잠든 누나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눈은 움푹 꺼져 있고, 몸은 수척해져 있다. 가느다란 팔다리는 약간만 힘을 주어도 경쾌한 소리와 함께 뚝 부러져 버릴 것만 같았다. 얼굴에는 핏기가 조금도 남아있지 않다. 누나는 그 날 이후로 쭉 잠들어 있다. 간혹 눈을 뜨고 나를 찾을 때가 있다. 그럴 땐 얼른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는다. 그러면 누나는 안심한 듯 또다시 스르르 잠속으로 빠져든다. 큰 소리로 누나를 불러보지만 허사다. 그녀는 잠자는 것조차 힘겨워 보인다.
  한동안은 나 역시 끔찍한 고통에 몸부림치며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누워서 시간을 보냈다. 움직일 수 없는 몸과는 달리, 마음은 점점 불안해져 자꾸만 어딘가로 줄달음치려 했다. 그 동안 여러 생각을 했다. 온갖 상념들이 머릿속에서 휘몰아쳤다. 무엇보다도 힘겨운 여정이었지만 나는 그 안에서 내가 나아갈 길을 찾아냈다. 최선의 길이라 믿고 싶은…, 하지만 사실 갈림길 따위는 없는 외로운 길. 나는 망설임 없이 그 길을 걷기로 마음먹었다.
  어느새 몸은 한결 나아져 있었다. 때문에 나는 계획한 바를 행동에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누나에게로 가서, 그녀를 모포로 감싼 뒤 일으켜 등에 업었다. 하지만 그녀는 애처로울 정도로 가벼웠다. 나는 손목시계를 바라봤다. 시간은 멈춰있다. 아마 레미지에게 얻어터질 때, 어딘가에 부딪혀 고장 난 듯 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지내던 주변을 천천히 둘러본다. 우리가 가져온 두 개의 가방은 가지런히 놓여 있다. 두 가방은 서로에 의지한 채 차가운 벽에 기대어 어둠을 응시하고 있다. 바닥에는 아직 핏자국이 선명하다. 핏자국은 일정한 궤적을 그리며 복도로 나가는 문 앞에서 끊겨있다. 반대편에는 알아보기 힘든 비참한 모습을 띈 무언가가 버려져 있을 것이다.
  자, 이제 출발하자. 스스로에게 말을 걸며 힘을 불어 넣는다.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이다.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계단이 내는 차가운 소리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내려올 당시엔 둘이서 내는 발자국소리가 일정한 리듬을 유지하면서 울려 퍼졌지만, 지금은 홀로 걷는 외로운 발소리만이 덧없이 사라져 간다.

  *                *                *

  나는 핸들을 돌려 문을 열었다.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로더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가 똑같은 광경을 본 기억이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일처럼 느껴졌다.
  “누구지?”
  그가 책을 한 페이지 넘기며 물었다. 책상위엔 따뜻한 김이 피어나는 차가 단아한 찻잔에 담겨 놓여 있었다. 은은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누군 것 같습니까?”
  내 질문에 그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나는 아주 잠깐이나마 그의 놀란 얼굴을 봤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는 어느새 평정을 되찾은 듯 미소 짓고 있었다.
  “이게 누군가?”
  그는 안경을 벗어 책상에 내려놓은 뒤, 두 손을 깍지 끼며 말했다. 혼자 있기 때문인지 안대는 하지 않고 있었다. 눈의 상처가 유달리 눈에 띄었다.
  “반갑군 그래. 이거 고생이 심했나보군.”
  “그랬죠. 보내준 선물도 덕분에 잘 받았고요. 좀 난폭하긴 했지만.”
  내가 어깨를 으쓱이자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진정으로 웃고 있는 듯 했다.
  “그는 어떻게 됐지?” 로더가 물었다.
  “거기 잘 있습니다. 안부 전해달라던데요.”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며 웃었다. 결코 친근함에서 나오는 웃음은 아니었다.
  “아, 누나를 좀 침대에 눕혀도 되겠습니까? 몸이 안 좋아서요.”
  로더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최대한 조심히 누나를 침대에 내려놓았다. 그녀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좋은 꿈을 꾸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를 내려놓자마자 극도의 피곤이 밀려들어, 나는 휘청거리며 침대에 주저앉았다.
  “놀랍군. 그런 몸으로 레미지를 처리하다니.”
  “운이 좋았죠.”
  그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의 얼굴에선 웃음이 사라졌다.
  “그래, 너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내 앞에 당당히 나타난 이유가 듣고 싶군.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아물지 않은 상처를 만져보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네 몸을 산산조각 내는 상상을 하곤 하지.”
  나는 눈을 감았다. 나를 위한 길, 누나를 위한 길, 우리 둘을 위한 길…. 어느 쪽도 내가 선택할 수는 없었다.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당신의 피를 누나에게 주셨으면 합니다.”
  그는 나에 의해서 한 쪽 눈을 잃은 이후에, 처음으로 다시 진실한 감정을 얼굴에 나타냈다. 짐작조차 하지 못한 놀라움.  
  “…그게 뭘 뜻하는 건지는 잘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이 안 좋은 머리로 다시 생각해봐도 제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 한 가지 뿐이었습니다. …이대로면 누나는 죽고 말아요. 나는 절대로 누나의 죽음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당신의 피를 마시고 누나가…, 누나가 영원한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그게… 제 바람입니다.”
  “그래, 대가는?” 그는 미소 지었다.
  “당신에 대한 헌신적인 나의 협조. 당신이라는 정점 밑에서, 내가 모든 걸 관리하고, 필요한 일들을 은밀히 행하겠습니다. 나는 이 셀터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레나 씨는 늙었죠. 그녀는 이제 통제력을 상실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모두를 지배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녀석들에게 미치는 내 영향력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그러니 제발….”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가 그의 앞에 무릎 꿇었다. 그는 조용히 창백한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 손에 입을 맞췄다.
  “나의 주인이시여, 부디 가련한 제 누이에게 당신의 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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