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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 이런 변이 있나!

2009.08.29 00:1708.29

이런 변이 있나!

clancy

사람들에겐 저마다 집착의 대상이 있기 마련이다. 빛과 색에 대한 반 고흐의 집착이나, 악상과 오선지에 대한 베토벤의 집착 같은 거창하고 숙명적인 것을 얘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쌈을 싸먹을 때 쌈장이 밥 아래에 놓여야 한다거나, 지갑속의 지폐들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누워있어야 한다거나, 운동화 끈의 시작은 항상 안쪽 줄이 위로 올라가게 해야 한다는 것과 같이 사소하고 쓰잘머리 없는 것들 말이다. 그 집착을 버린다고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고 거기에 대한 집착이 자신에게 득이 될 것도 없는 소소한 부분에 대한 집착. 습관, 미신, 버릇과 같은 단어들로 바꾸어 부를 수도 있을 그런 것들을 모두 뭉뚱그려 나는 집착이라고 부르겠다.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개의 집착 대상이 있다. 어쩌면 100개 이상이 될 수도 있겠다. 한 가지 이상의 것에 대해 집착을 보이는 것은 개인의 자유니까. 하지만 거기에서도 다시 순위란 것을 정한다면 개인에겐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No.1 집착 대상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 그 No.1은 바로 ‘똥’이다.
오해가 있을 것 같아서 설명을 덧붙이자면 단순한 똥이 아닌 ‘완벽한 변’에 대한 집착이다. 나의 변에 대한 집착의 시작은 어린 시절 보았던 ‘닥터 슬럼프’라는 만화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만화의 주인공인 인간형 로봇 ‘아라레’는 어린아이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 걸맞게 그녀 역시 ‘똥’에 대한 집착을 가지고 있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 쯤 똥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품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아니라고? 미취학 아동들을 단번에 웃길 수 있는 마법의 단어들 중 하나가 방귀와 똥이란 점은 그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여튼 만화 속에서 그려지는 똥의 모습은 어린 나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마치 콘에 올려놓은 아이스크림 마냥 아래서부터 둥그렇게 똬리를 틀고 마지막엔 뾰족하게 솟아오른 모양 그것이야 말로 어린 나의 뇌에 각인된 완벽한 변의 모양이었다.
생각해보면 똥은 매우 신비하고 동시에 중요한 것이다. 분명 우리 입으로 들어올 때만 해도 향기롭고 화려하던 음식물들이 몇 시간 몸속을 돌고나면 하나같이 비슷비슷한 색과 모양의 똥이 되어 나오는 것이다. 새빨간 체리도, 노란 바나나도, 푸른 양상추도 마지막엔 누르스름한 덩어리로 바뀐다. 냄새 역시 거의 일관된 구린내를 가진다. 지금까지 포도향이나 커피향이 나는 변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또한 똥은 건강의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예전 왕실에서는 왕의 변을 매화라 부르며 매일같이 체크를 하여 왕의 건강을 살폈다. 오늘날도 아침마다 자신의 변을 확인하는 건강법에 대한 얘기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더군다나 며칠 간 그런 건강 상태 체크용 표본을 확인하지 못하는 병에 시달리는 사람이라면 건강한 배변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실감할 것이다. 어린 나는 이런 똥의 신비와 매력에 점점 빠져들었다. 동시에 ‘완벽한 변’에 대한 집착도 자라났다.
어린 시절 재래식 대변기가 설치되어 있던 단독주택에서 양식좌변기가 설치된 아파트로 이사 가게 되었을 때 내가 왜 땅이 꺼져라 울었는지 부모님은 아직도 궁금해 하신다. 당연한 것 아닌가. 배변 후 자신의 똥이 어떻게 중력을 받아들였는지 확인 할 수 있었던 재래식 대변기와 달리 무식하고 인간미 없는 양식좌변기는 나의 똥이 세상 빛을 보기도 전에 물속에 수장시켜버리니 말이다. 완벽한 똥에 대한 어린 나의 집착이 조금씩 사그라지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이사와 함께 나의 똥을 확인하는 중요한 일과를 포기하면서 부터였을 것이다. 완벽한 변에 대한 나의 관심은 점차 줄어들었고 용변 후 나의 똥을 확인하는 것도 점차 입고 살게 되었다. 그렇게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진학하고 군대를 다녀와 다시 복학하여 대학 졸업장을 받을 때까지, 나는 완벽한 똥에 대해 잊고 살았다. 사소한 것에 대한 집착은 그 존재감만큼이나 쉽게 잊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또 그만큼 쉽게 다시 부활하기도 한다.

그 일이 벌어진 건 몇 개월 전이었다. 당시 나의 상황은 희망 없는 감옥과 같았다. 대학을 졸업한 나의 앞에 놓인 건 사상 유례가 없다는 전 세계적 경제 불황과 청년실업문제였다.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상황 속에서 나의 도피처는 공무원 시험이었다. 처음 시험을 준비할 때만 하더라도 1년이면 될 거란 나의 예상은 너무도 순진한 것이었다. 나와 같은 처지의 인간이 그렇게 많다는 것을 첫 시험 응시 후 수험번호와 경쟁률을 확인하고서야 알았다. 물론 나의 첫 도전은 보기 좋게 실패했다. 1년을 생각했던 수험기간은 금세 한해를 넘기고 다시 한 계절을 돌아, 봄이 찾아올 때 까지 이어졌다. 낮에는 도서관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주독야경의 생활 속에서 나의 몸과 마음은 그렇게 서서히 망가져가고 있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나는 갑작스런 복통을 느꼈다. 묵직한 덩어리가 장을 따라 움직이며 전하는 고통은 그것이 보통 녀석이 아님을 짐작케 했다. 황급히 화장실을 찾아보았지만 새벽 4시 주택가 골목에서 이용할 수 있는 공용 화장실 같은 건 없었다. 첫 번째 통증이 밀려왔을 무렵 나의 위치는 하필 정확히 집과 편의점 중간 지점이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배를 움켜쥐고 항문에 힘을 준 채 집으로 향하는 걸음을 서둘렀다. 하지만 집까지 1/3정도를 남겼을 때, 2차 복통이 밀려왔고 순간 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선택은 두 가지 뿐이었다. 길에다 싸느냐 바지에 싸느냐. 물론 새벽 4시 인적 드문 골목길을 걷던 성인남성의 이성적 선택은 전자였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의류수거함 뒤에 숨은 채 나는 일을 치렀다. 항상 들고 다니던 가방 안에서 지갑티슈를 발견했을 때의 쾌감과 그 안에 티슈가 달랑 한 장 밖에 남아있지 않았음을 알았을 때의 절망을 연달아 느끼고 연습장을 찢어 어찌어찌 뒤처리를 한 나는 바지를 추스르던 중 그것을 보았다. 내 장에서 빠져나온 녀석, 나에게 강렬한 충격과 고통을 던졌던 그 거물이 세상에 나오면 만들어낸 기하학적 모양을 본 순간 나의 입에선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이런 변을 봤나!”

그것은 완벽한 똥이었다. 아름답게 똬리를 튼 아이스크림 모양. 닥터슬럼프의 아라레가 나뭇가지에 꽂은 채 들고 다니던 바로 그 모양. 그리고 그 순간 어린 시절 이후 잊고 지내던 똥에 대한 나의 집착이 다시 시작되었던 것이다. 가장 먼저 내가 한 일은 휴대폰을 꺼내 그날의 작품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플래시까지 터뜨리며 나의 완벽한 변을 촬영했다. 광량이 충분했다면 동영상으로 남겼을 지도 모를 일이다.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에 휴대폰을 연결하고 사진을 옮겨 19인치 모니터로 다시 확인하면서 나는 그 동안 잊고 살던 설렘을 다시 경험했다. 처음으로 친구들끼리만 극장을 갔을 때, 선배의 소개로 첫 미팅을 나갔을 때, 그렇게 만난 여자 친구와 첫 키스를 나누었을 때, 면허를 따고 아버지 차를 몰래 끌고 나갔을 때 느꼈던 바로 그 설렘과 흥분이었다. 그런 기분을 느껴본 것이 얼마 만이었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컴퓨터 모니터를 가득 채운 나의 변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알씨 창을 내렸다. 행여나 아침잠에서 깨어난 부모님이 방에 들어왔다가 그런 자식의 모습을 보시기라도 한다면 당장 병원부터 보내려 들 것이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도 한동안 흥분은 가시지 않고 잠자리에 누운 나의 가슴을 쿵쾅거리게 만들었다.
그 뒤로 나에겐 변을 확인하는 습관이 다시 생겼다. 볼일은 언제나 꾹 참다 집이 아닌 재래식 변기가 있는 도서관이나 편의점 건물 화장실에서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나를 감탄케 만들 변은 나오지 않았다. 오랜 수험 생활동안 불규칙한 생활 리듬과 술, 담배에 찌든 나의 몸은 완벽한 변은커녕 보통의 건강한 변도 제대로 생산하지 못했다. 그날 보았던 완벽한 똥은 내 몸의 상태를 감안했을 때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은퇴한 예술가가 옛날 작품들을 보며 그날의 영광을 되새기듯 나는 틈만 나면 핸드폰에 저장된 그날의 변 사진을 보곤 했다. 편의점에서 일을 하다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 쉬는 중간에도, 심지어 밥을 먹으러 들른 분식집에서도 사진을 봤다. 행여 누군가 다른 사람이 화면 속 사진을 훔쳐볼까 조마조마해 하면서도 마치 마약처럼 사진을 꺼내보는 횟수와 시간은 점점 늘어났다.
핸드폰 속, 변 사진에 대한 애정과 집착이 깊어지자 새로운 욕구가 생겼다. 이 완벽한 변을 나 혼자만이 아닌 다른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소망은 이루어질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다. 애당초 다른 사람의 똥을 찍은 사진을, 그것도 그 똥 주인의 자랑을 들어가며 함께 보고 싶어 할 사람이 있을 것인가? 나는 인터넷을 찾아보기로 했다.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 숨겨진 본성의 배출구인 웹이라면 나의 집착을 공유할 만한 공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가장 먼저 한 것은 각종 포털사이트에서 똥에 관한 이미지를 검색하는 것이었다. ‘똥’ ‘변’ ‘완벽한 똥’ ‘아이스크림 똥’ 등의 검색어로 이리저리 뒤져 봤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찾을 수 없었다. ‘똥’머리 만들기나 ‘변’신 로봇, ‘완벽한 똥’침 자세 같은 것들만 검색 결과에 뜰 뿐이었고 몇몇 똥 사진들도 찰흙으로 만든 것이나 그림들 또는 영화 속 장면을 캡처한 것이었다. 유명한 커뮤니티의 ‘막장갤’에 사진을 올려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그래봤자 ‘ㅋㅋㅋㅋ’같은 자음 남발이나, ‘여병추’, ‘병신인증 지대’ 같은 댓글이나 올라올 것이 뻔했기에 곧 포기하고 말았다. 미친 척 미니홈피나 블로그에 ‘인증’이라며 올려볼까도 싶었다. 그러나 완벽한 변에 대한 집착도 좋지만 사진하나 올리고 인생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군대도 이미 다녀온 후라 그것도 곧 포기했다. 몇 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 서핑을 하다 결국 포기하고 WOW 접속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까페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어제 찍은 건강한 변 2009.07.05
내 변 인증, 어제 아침에 찍은 사진입니다. 그동안의 성과가 보이네요....
http://cafe.xxxxxx.com/byounsamo/1565 카페명 : 변사모 - 건강한 아침 라이프

그것은 분명 자신의 변을 찍어서 올린 글이었다. 클릭을 하자 카페주소로 넘어갔지만 해당 글은 비밀글 처리가 되어 회원만 볼 수 있다는 안내와 함께 회원가입을 묻는 메시지가 떴다.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회원가입 신청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40여개 문항으로 이루어진 신청양식은 종교부터 생활습관 그리고 좋아하는 가수까지 다양한 질문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불성실한 작성 시엔 가입이 되지 않는다는 설명도 있었다. 난 30여분에 걸쳐 공들여 가입신청서 양식을 채웠다. 양식을 전송하자 가입여부는 메일로 알려드리겠다는 창이 떴다. 대체 무슨 카페이기에 이렇게 가입이 힘든 것인지 궁금했다.
며칠 뒤 변사모 카페에서 회원가입이 완료되었다는 메일이 날아왔다. 나는 곧바로 링크를 따라 카페에 접속했다. 공지사항의 카페 소개글을 대충 훑어본 결과 그곳은 건강한 배변을 목표로 회원들의 배변과 관련된 상식과 개인의 건강정보를 공유하는 곳이었다. 기본적으론 한때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웰빙 카페들의 아류인 셈이다.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 카페 메뉴들을 살피기 시작했고 곧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가입인사]와 [정모후기] 메뉴 사이에 끼어 있었다.

‘배변사진’

한눈에 그 곳이 무엇을 위한 공간인지 짐작할 수 있는 적나라한 제목의 메뉴였다. 마우스 커서를 옮겨 클릭했지만 신입이라 내용을 볼 수는 없었다. 카페의 모든 메뉴를 들어가 보기 위해선 방문 50회, 댓글 50회, 게시물 작성 30건 이상을 충족시켜야 했다. 젠장, 무슨 놈의 절차가 이리 까다로운지 절로 욕이 새어나왔다. 그날 이후 내 생활은 온통 똥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매일 내 변을 체크하고, 핸드폰의 완벽한 똥 사진을 감상하고, 변에 대한 건강 상식 책을 독파하며 틈틈이 카페에 들려 활동 실적을 올려갔다. 카페에는 다양한 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회원도 무려 300여명에 육박했고 남녀 성비도 반반에 가까운 정도였다. 가장 많은 건 배변과 관련한 건강고민이었다. 변비에 걸려 고생하는 여성회원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아기의 잦은 설사를 걱정하는 엄마 회원도 있었다. 나는 도서관에서 배변과 생활건강에 관련한 책들을 뒤져가며 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뽑아 댓글을 달고 게시물을 올렸다. 곧 나의 닉네임인 ‘완벽한변’은 회원들의 대화에 자주 오르내리게 되었고, 그 독특한 커뮤니티에서 나는 나름 친분을 쌓아나가기 시작했다. 가입 후 한 달이 지난 무렵 난 드디어 승급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도 원하던 ‘배변사진’ 메뉴에 접속할 수 있게 되었다. 그곳은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회원들의 다양한 변 사진들이 올라와 있었고 사진 속 변에 대한 반응들이 댓글로 달려 있었다.

- 변 색깔이 좋지 않네요, 육식을 줄이세요.
- 음식물이 덜 소화된 채 섞여 있다능, 천천히 꼭꼭 씹어 먹는 게 필요하다능.
- 황금색 크, 굳! ><b 이렇게 빛나는 변은 처음!!
- 혈변의 이유는 다양하지만 이번이 처음이라면 당장은 식사를 조심하고 경과를 살펴보는 게 좋습니다. 단순한 항문 내 출혈일 수도 있으니까요. 증상이 계속되면 병원을 찾으세요.

나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여기야 말로 내가 원하던 바로 그곳이었다. 나는 세상에 일라이저를 소개하는 히긴스의 심정으로 드디어 나의 완벽한 변을 카페에 공개했다.

‘제 변을 인증합니다.’란 제목으로 완벽한 변 사진을 올린 다음날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카페에 접속했다. 사진을 올린 게시물에는 그 사이 삼십여 건의 댓글이 달려있었다. 고작 5개 안팎의 댓글이 달리는 다른 글들과 비교한다면 가히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나는 상기된 얼굴로 댓글들을 읽어나갔다.

- 이런! 님 아뒤대로 정말 완벽한 변이군요!
-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아이스크림 변. 이게 가능하구나.
- 이거 합성 아닌가요? 보고도 믿기지 않음.
- 살아생전 이런 변을 보게 되다니. 나 같음 저 날 복권 샀다.
- 아, 변 사진 보면서 이런 말 하게 될 줄 몰랐지만...... 예뻐요!

나의 변 사진은 이미 카페 내에서 일대 반향을 일으키고 있었다. 게시물의 조회 수는 폭발적으로 올라갔고 댓글 역시 실시간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완벽한 변 덕분에 나는 카페의 스타가 된 것이다. 나는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처음 그 변을 촬영했던 날보다 더 강렬한 쾌감이 내 몸을 휘감았다. 평생 느껴보지 못한 성취감과 승리감이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회원들 모두가 나에게 관심을 보였고 수많은 메일과 쪽지가 날아왔다. 나의 변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이 변태들에게 난 무한한 감사와 애정을 느꼈다. 변사모 카페야말로 내가 살아가는 원동력이자 이유가 되어버렸다. 어느덧 나는 시험공부에선 손을 떼고 있었고 아르바이트를 나가는 외에는 온통 카페와 완벽한 변에 대한 생각만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자 나는 어느 새 카페 운영진이란 직책마저 맡게 되었다.

‘광속불변’이 등장한 것은 내가 카페 운영진이 되고 얼마 후였다. 나보다 먼저 카페에 가입해 한동안 유령회원마냥 활동해오던 광속불변은 나의 사진이 게시된 후 갑자기 열성적인 활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승급을 하게 되었고 그 문제의 게시물을 ‘배변사진’란에 올렸다.

‘저도 완벽한 변을 올려봅니다.’

그 사진을 본 순간 솔직히 나는 충격을 먹었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신념과 가치관이 일순간 무너지는 것 같은 쇼크였다. 녀석이 자신의 변이라며 올린 사진은 눈을 의심케 만드는 것이었다. 일단 사진의 질부터 달랐다. 핸드폰으로 새벽녘 길가에서 대충 찍은 나의 사진과 달리 녀석의 사진은 캐논 DSLR 카메라에 슈나이더 렌즈를 사용하여 거의 작품사진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뛰어난 건 단지 촬영기술 만이 아니었다. 그런 차이를 감안한다손 치더라도 녀석의 변은 나의 것을 뛰어넘는 작품이었다. 단순비교를 하자면 변이 감기는 횟수에서 이미 나는 3회에 그쳤지만 녀석의 변은 4바퀴 반을 돌고 있었다. 모양도 완벽했고 색깔도 완벽한 황금빛이었다. 회원들의 반응은 곧바로 터져 나왔다.

- 간만에 보는 마스터피스!
- ‘완벽한변’님을 능가하는 자가 나왔군......
-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을 보게 되는구나.
- 하늘은 왜 완벽한변을 낳고 광속불변을 낳았는가!
- 왜 완벽한변님하고 비교들을 하시는지?
- 까놓고 말해서 광속불변이 앞섰다. 규모도, 색깔도, 모양도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일제히 광속불변의 변과 나의 변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결론은 금방 내려졌다. 솔직히 나 스스로 그의 변을 인정한 마당에 뭐라고 변명할 여지조차 없었다. 그것은 나의 완벽한 패배였다.

반짝 스타의 말로가 이런 것일까. 회원들의 관심이 정말 빛의 속도로 광속불변에게로 쏠리며 나의 인기는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관심이 줄었다고 운영진 자격이 박탈되는 것은 아닌지라 나는 갑갑한 심정을 숨긴 채 정기적으로 카페에 접속해 이런저런 활동을 해야만 했다. 마치 지뢰 찾기 게임의 7자 주변 네모들 마냥 카페엔 온통 광속불변 이야기들뿐인지라 싫어도 피할 수 조차 없었다. 날이 갈수록 나의 기분을 우울해져만 갔다. 모든 일에 의욕이 사라졌고 몸에 기운도 없었다. 심지어 변도 제대로 나오지 않게 되었고 간간히 배출한 변도 확인조차 않게 되었다. 나의 집착은 그렇게 순식간에 사그라지고 말았다.
“요즘 무슨 일 있냐?”
아침밥을 함께 먹던 아버지가 심각한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나잇살이나 먹고선 백수로 전전하는 것도 모자라 약 먹은 병아리마냥 골골하는 모습이 언짢으셨던 게다.
“아니에요.”
“요즘, 도서관도 잘 안 가는 것 같더라.”
“그냥, 몸이 좀 안 좋아서요.”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곤 고개를 푹 숙인 채 밥상만 뚫어져라 내려다보았다. 한심한 아들 녀석을 한동안 바라보던 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말문을 여셨다.
“공무원 시험, 이젠 포기 한 거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분명 공무원 시험에 합격할 가능성은 해가 갈수록 점점 멀어져가고 있었다. 머리는 날이 갈수록 굳어져갔고 경쟁자들의 연령은 점점 낮아졌다. 채용요강도 점점 복잡해져가고 요구사항도 늘어만 갔다. 그렇다고 아버지 면전에서 당당하게 ‘그렇다’고 말하기엔 지금까지의 시간이 너무나 아까웠다.
“네 녀석이 그래도 뭔가 하나 끝까지 붙어서 해내는가 싶었는데. 정 힘들면 포기해라. 내가 어디 작은 일자리라도 하나 알아봐주마.”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버지의 핀잔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난 끈기나 도전 같은 것하곤 거리가 먼 녀석이었다. 무엇 하나 뚝심 있게 끝까지 하는 적이 없었고, 언제나 쉽게 포기했다. 남들에게 지는 것은 싫어했지만 그것을 노력해서 이기는 것으로 극복하는 게 아니라 경쟁 자체를 포기함으로서 회피하곤 했다. 그런 나에게 집착이란 단어가 얼마나 우스운 것인지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밥을 채 비우지도 못하고 나는 집을 나섰다. 목적지도 없이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아침부터 시작해서 점심도 거른 채 해가 질 무렵까지 걷다보니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시(市) 경계를 넘어 다른 도시에 와 있었다. 나중에 지도검색 서비스의 거리재기로 확인해보니 그날 내가 걸은 거리는 무려 40km가 넘었다. 마라톤 코스를 완주한 셈이다. 달린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게 먼 거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걸어본 것이다. 그러고 나자 나는 발바닥에 가득 잡힌 물집 말고도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그날부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생활이 시작됐다. 야간 아르바이트는 그만두고 낮 시간, 그것도 몸을 써서 할 수 있는 일들을 구했다. 기상 시간도 당겼고 식단도 조절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상식을 동원해 건강하고 튼튼한 변을 만들 수 있는 몸을 만들기 시작했다. 완벽한 똥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도 시작했다. 어떤 식단, 어떤 배변 자세가 좋을지를 그리고 4회전 반 이상의 똬리를 만들기 위해 어느 정도 길이가 필요하며 그 정도의 변을 끊어짐 없이 배출하기 위해 항문조절을 어떻게 해야 할지 연구했다. 그렇게 다시 석 달의 시간이 흘렀다.

공사판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 어머니가 만면 가득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반겼다.
“아들 왔니?”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왜 그리 싱글벙글 이셔.”
“조금 전에 전화가 왔어. 합격이래. 다음 달부터 출근하라고 그러더라.”
얼마 전 면접을 본 일자리에 합격이 된 것이다. 작은 기업의 총무팀 신입이었지만 나름 기초도 탄탄한 회사였고 무엇보다 면접 때 만난 회사 사람들의 인상이 좋아서 내심 잘 되었으면 바라던 자리였다. 나는 눈물까지 글썽이는 어머니를 안아드리고선 방으로 들어왔다. 컴퓨터를 켜고 책상 앞에 앉아 있으려니 조금 늦게 합격의 기쁨이 밀려왔다. 땀으로 젖은 옷을 벗고 잠시 거울에 몸을 비춰본다. 그동안 꾸준한 운동과 격한 육체노동으로 단련된 몸은 적게나마 근육이 올라오고 있었고 두툼하니 잡히던 뱃살도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햇볕에 그을린 얼굴은 전보다 훨씬 건강해 보이고 자신감이 넘쳐보였다. 그런 인상이 면접에 플러스가 되었던 것일까?
인터넷에 접속해 메일을 확인한다. 각종 광고 메일들 사이에 유독 눈에 띄는 메일 한통이 보인다. 바로 두 주 전 보낸 나의 메일에 대해 광속불변의 답신이었다. 그 동안 나는 그의 것을 뛰어넘는 변을 만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완벽한 똥에 대해 연구하고 노력을 기울일수록 의문만 쌓여갔다. 나는 이제 처음 의류수거함 옆에서 만든 것과 같은 완벽한 변을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그 이상의 변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3회전 이상의 완벽한 아이스크림 변을 만드는 것은 인간의 배변능력과 변의 점성, 그리고 중력과 하중의 관계를 염두에 뒀을 때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대체 광속불변의 사진은 어떻게 된 것일까. 처음엔 포토샵을 이용한 사진조작을 의심했다. 게시물의 사진을 다운받아 파일의 메타정보도 확인해 보았지만 촬영파일을 그대로 올렸는지 특이할 것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사진을 한껏 확대해보던 나는 드디어 그 사진의 이상한 점을 발견했고 그 점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메일을 광속불변에게 보냈던 것이다. 나는 그의 답변 메일을 열어 보았다.

‘보내신 메일은 잘 읽었습니다. 사실 그동안 제가 얼마나 불안하고 떨리는 맘으로 지내왔는지 말씀드리고 싶군요. 그리고 저의 행동이 완벽한변님에게 폐를 끼치게 될 것이란 생각은 미처 못 했다는 것도 밝히고 싶고요. 메일을 통해 완변한변님께서 지적하신 부분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도출한 님의 결론은 정답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진속의 변은 사실 제가 손으로 빚은 것입니다. 추측하신대로 아래엔 하중을 견디고 빈 공간을 채울 수 있도록 뼈대구실을 하는 받침을 두었습니다. 다시 한 번 이 모든 행동이 호기심에 의한 장난이었음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큰 일이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습니다. 지난 몇 달 간 카페 회원들에게 지나친 관심을 받으며 행여나 사실이 들키지 않을지 걱정했습니다. 정작 이렇게 들통이 나니까 후련한 마음도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처분하실 지는 운영진인 님의 판단이겠지요. 다시 한 번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일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싱겁게 끝이 나고 말았다. 광속불변은 너무나 쉽게 자신의 거짓과 잘못을 인정했다. 그러고 보면 이 경쟁은 나 혼자 시작하고 끝을 맺은 셈이 되어버렸다. 진실이 밝혀지고 광속불변의 자백을 받아냄으로서 나의 완벽한 변이 다시 최고임이 입증되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변에 대한 나의 집착은 다시 이전처럼 강해지지 않았다. 단지 후련한 마음뿐이었다. 심지어 광속불변이 올린 사진에 대한 처분을 내리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변사모 카페나 광속불변과의 경쟁은 어느 새 추억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카페에 접속해 간단한 인사글을 남기고 탈퇴신청을 했다. 핸드폰에 아직도 담겨있는 완벽한 변의 사진도 지워버렸다. 그날의 내가 지금 나의 행동을 보게 된다면 아마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런 변이 있나!”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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