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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 마지막 선물

2009.07.01 22:4907.01

마지막 선물



집에 들어서니 사방이 온통 어두웠다. 거실 창문에 달린 커튼은 고집 센 아이처럼 그 입을 앙다물고 있었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이다. 하지만 섬뜩할 만큼 어둡고 춥다.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 집안 여기저기도 어질러졌다. 바닥에는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옷가지가, 그리고 싱크대에는 설거지거리가 가득하다. 식탁 위에 나란히 줄을 선 술병이 냉장고가 내뿜는 노란 불빛을 받아 반짝인다.
“여보.”
나지막이 아내를 불러보지만 두터운 어둠에 막히기라도 한 듯 목소리가 흩어졌다. 그때, 거실 벽에 붙은 뻐꾸기시계가 밤 열시를 알렸다. 뻐꾹. 뻐꾹. 경쾌한 울음이 집안에 울려 퍼졌다. 일 년 전, 아내와 함께 여행을 하다가 발견한 고가구 상점에서 뻐꾸기시계를 샀다. “난 집에 뻐꾸기시계를 걸어놓는 게 꿈이었어.”라고 말하며 아내가 밝게 웃었다. 아내의 미소가 그날 한반도 전체를 달궜던 한 여름의 태양보다 훨씬 눈부셔 나는 또 얼마가 신나게 마주 웃었던가.
뻐꾸기가 마지막 울음을 뱉은 후 집안으로 들어갔다. 문득, 시간이 얼마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거실을 가로질러 안방 앞으로 갔다. 그 안에서 꺼질 듯 말듯 누군가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아내였다. 평소에도 어둠을 두려워하는 아내가 불도 켜지 않은 채 방안에 틀어박혀 울고 있는 것이다.
이 먹먹하고 진득한 어둠속에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딱 한 번, 완벽한 어둠을 경험했다.
그야말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시커먼 덩어리들이 땀구멍 사이사이마다 들어차서 숨통을 죄어오는 어둠이었다. 수천 마리의 바퀴벌레들이 스멀스멀 기어와 내 몸을 감싸는 것처럼 어둠이 살아서 꿈틀거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그 경험을 통해서였다.
그 경험은 초등학교 5학년 무렵, 미친 듯이 불어 닥친 그 해의 마지막 태풍처럼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그날은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엄마의 채근에 간신히 눈을 떴고, 툴툴거리며 고양이 세수를 했으며, 준비물을 챙기느라 부산을 떨어야 했다. “아들! 그러게, 자기 전에 챙겨놓으라고 했지?”라는 엄마의 잔소리까지도 심상한 일상 그 자체였다. 조금 다른 게 있었다면 아침상에 앉은 아빠가 내내 한숨을 쉬었다는 정도였다. “이놈아. 늦게 일어나면 어떻게 해?”라고 말하며 내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트리지도 않았다.  
그렇다. 고작 그 정도였다.
다른 날과 달랐던 것은 기껏해야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몽당연필 한 자루 정도, 엄마가 짜준 신발주머니에서 풀려나온 털실 한 올 정도였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봐도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닌 일’이었다.

하늘이 거뭇거뭇해지기 시작한 것은 2교시부터였다. 창가에 앉은 누군가가 조그맣게 탄성을 질렀고, 졸음에 취해 끄덕거리던 우리들은 그 소리를 따라 일제히 창밖을 바라봤다. 교과서를 줄줄 읽어 내려가던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창밖에는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 학교 운동장 바로 위에서 여러 뭉치의 구름들이 소용돌이치며 합쳐지더니 점점 크게 부풀었다. 검은색이라는 점이 다를 뿐 솜사탕이 만들어지는 모양과 비슷했다. 구름은 두께와 크기를 더하면서 서서히 하늘을 뒤덮었다. 동시에 온 세상이 회색빛으로 변했다.
“엄청나구먼!”
흘러내린 안경을 치켜 올리며 선생님이 중얼거렸다.
우리들은 홀린 것처럼 한 마디 말도 없이 그 광경을 바라봤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습기 가득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 속에 물비린내가 가득했다.
“태풍이 온다더니…….”
선생님이 다시 한 번 중얼거리며 창가로 다가갔다.
“맞아. 나도 뉴스에서 들었어. 오늘 태풍이 지나간대.”
누군가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태풍이라니. 나는 금시초문이었다.
“우산 안 가져 왔는데 어쩌지?”
또 다른 누군가가 이야기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나도” “나도”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였다. 하늘이 번쩍하고 빛난 건. 교실은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갑자기 볼륨을 낮춰버린 텔레비전 같았다. 어항에서 나는 공기방울 소리만이 교실 전체를 맴돌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하늘이 으르렁거린다 싶더니 곧 엄청나게 큰 천둥소리가 들렸다. 여학생들은 비명을 질렀다. 남학생들 중 몇몇도 잔뜩 겁을 집어먹고는 귀를 막고 있었다. 나는 천둥과 함께 내리기 시작한 비를 보면서 어떻게 집에 갈까를 고민했다. 우산도 없고, 비옷도 없이. 엄마가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순간을,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4교시가 채 되기도 전에 교장 선생님이 스피커를 통해 임시 휴교를 알렸다. 친구들은 환호성을 질렀으나 나는 내심 불만이었다. 점심시간 후 5교시에는 일주일 전부터 기대했던 ‘바늘구멍 사진기’를 만드는 실습이 있었다. 실망을 감추며 다른 애들을 따라 가방을 챙기다가 준비물이 없는 걸 깨달았다. 검은색 마분지 넉 장. 달팽이처럼 여전히 책상 위에 말려있을 그것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행이다.’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엄마는 오지 않았다.
선생님은 분명 모든 집에 전화를 해서 임시 휴교를 알렸다고 말했는데도 우산을 든 친구들이 집으로 사라지고, 우산을 들지 않은 친구들이 데리러 온 엄마의 손을 잡고 학교를 떠날 때까지, 엄마는 오지 않았다. 나는 학교 현관 처마 밑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운동장의 플라타너스들이 바람을 맞아 휘청거렸다. 학교 앞 문방구 간판이 날아가 버렸다. 하늘은 먹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엄마가 오지 않으리란 사실을 깨달은 건 번개가 학교와 가까운 곳 어딘가에 떨어진 직후였다. 깜박거리며 형광등이 켜질 때처럼, 그 짧은 순간 세상은 환해졌고 텅 빈 학교에 나만 남았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책가방을 머리에 이고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여름이었지만, 소매 밑으로 드러난 팔에 오슬오슬 소름이 돋았다.
길에는 지나다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태풍은 점점 더 심해졌다. 바람이 슝슝 소리를 내며 불었다. 쏟아지는 비 때문에 눈을 뜨기도 힘들었다. 나는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되어 개천을 지나 집으로 향하는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아니, 골목으로 접어들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개를 들었을 때, 그곳은 전혀 다른 장소였다. 등하굣길에 늘 오가던 그 골목이 아니었다. ‘할매네 구멍가게’도, 훈이 집 평상도, 연탄 집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잡초가 우거진 벌판과 그 둘레로 쭉 늘어선 낡은 집들이 있을 뿐이었다. 집들은 죄다 모양이 비슷비슷했는데 담벼락부터 창문까지 전부 검은색이었다.
어리둥절해서 한참을 바라보다가 뒷걸음질 쳤다.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쉴 새 없이 으르렁거리는 하늘과 눈도 뜨기 힘들 정도로 쏟아 붓는 빗줄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언가 으스스하고 섬뜩한 느낌. 한 밤 중에 화장실에 갈 때면 어둠속 어딘가에서 빨간 눈이 나를 노려보고 있을지도 몰라 잔뜩 숨을 참게 될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나는 허둥지둥 뒤로 걷다가 어딘가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땅바닥에 뾰족한 돌이라도 있었는지 엉덩이가 못 견디게 아팠다. 한 달 전 생일에 엄마가 사준 하늘색 반바지는 흙탕물에 젖어 검게 변하고 말았다. 울컥 설움이 밀려왔다. 엄마는 왜 나를 데리러 오지 않는지, 끝내 참고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한참을 훌쩍이고 있을 때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야 이리 온.”
뒤를 돌아보니 검은 셔츠에 검은 치마를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우산도 쓰지 않은 채 그대로 비를 맞는 여자는 긴 생머리를 허리까지 늘어트리고 나를 향해 한 손을 까딱거렸다. 짝 달라붙은 머리카락 때문에 여자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새빨간 입술만은 똑똑히 보였다. 그 입술이 열렸다가 닫히며 다시 나를 불렀다.
“아가야 이리 온.”
나는 발딱 일어났다. 온몸이 떨릴 정도로 한기가 몰려온 것은 비를 맞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머리카락 사이로 간간이 드러난 여자의 창백한 살결이, 뼈대가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은 여자의 기다란 손가락이, 그리고 세찬 빗소리에도 어김없이 귀를 파고드는 여자의 목소리가 본능적인 두려움을 불러왔다.
가까이 가면 안 된다!
이번에는 반대 반향으로 뒷걸음질 쳤다. 꺼림칙해서 발을 내딛을 수 없던 낯선 벌판 안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아가야 이리 온.”
여자가 다시 손을 까딱거렸다. 손목을 아래로 꺾고, 느리고 부드럽게. 비는 더 세차게 내렸다. 배앓이라도 하는지 하늘은 끊임없이 굉장한 소리를 뿜어냈다. 바람이 여자의 옷깃을 뒤집었다. 그리고 나는 봤다. 길게 늘어진 검은 치마 아래의 텅 빈 공간을.
여자는 발이 없었다.
“으아아아.”
나는 비명을 지르며 뛰었다. 학교에서 떠드는 각종 귀신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이 입을 찢는다는 빨간 마스크부터 홍콩 할매 귀신까지. 귀신은 발이 없다던 시골 외할머니의 이야기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정신없이 달리다가 넘어지기를 몇 번, 그때마다 여자는 내 뒤에 바싹 붙어 걸어오고 있었다.
“아가야 이리 온.”
“아가야 이리 온.”
여자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더 빨라졌다.    
달릴수록 힘이 빠졌다. 벌판은 끝도 없이 이어졌고, 아무리 달려도 익숙한 풍경은 나오지 않았다. 물에 젖은 몸은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필통이 열려 버렸는지 가방에서는 덜그럭덜그럭 요란한 소리가 났다. 무서워서 죽을 것만 같았다.
“엄마!”
목이 터져라 엄마를 불러 봐도 돌아오는 건 차갑고 섬뜩한 여자 목소리뿐이었다.
“아가야 내가 잡는다.”
나는 벌판을 벗어나 옆쪽으로 늘어선 집들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골인지점이 없는 이 벌판을 계속 달리다가는 여자에게 따라잡히고 말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운동회 때도 달리기만하면 창피를 당하곤 했다. 6명이 뛰면 간신히 5등을 할 정도였다. 꼴찌로 달리던 친구의 숨소리가 뒤에서 들릴 때마다 얼마나 사력을 다해서 뛰었던지.
집들은 모두 대문이 굳게 닫힌 상태였다. 위쪽으로 비죽이 가시가 솟은 철제 대문마저도 죄다 검은색이었다. 얼마쯤 더 뛰었을까, 옆구리가 결리고 다리가 아파 이제는 더 이상 못 달리겠다고 반쯤 포기할 무렵 대문이 살짝 열린 집을 발견했다. 나는 미끄러지듯 그 안으로 들어가 대문을 닫았다. 꽤 큰 소리가 났지만 집안 어디에서도 사람의 기척은 들리지 않았다.
‘천둥 번개 때문에 못 들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도움을 구할 요량으로 마루로 뛰어올랐다. 시골에서나 볼 수 있는 기역자 형태의 옛날 집이었다. 겉에서 봤던 것처럼 담벼락과 지붕이 모두 검은색이었다. 심지어는 마루와 각 방의 방문마저도 검은색이었다. 그 방문에 발린 창호지도 검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땐, 쫓아오는 여자가 바로 이 집 주인이 아닐까 생각 될 정도로 겁에 질렸다.
“저, 저기요…….”
모기소리처럼 작게 이 집에 있어야 할 누군가를 불렀다. 쫓아오는 여자 때문에라도, 그리고 추위와 공포에 덜덜 떨리는 입 때문에라도 더 큰 소리를 내기는 어려웠다.
“아저씨. 아줌마…….”
대답은 천둥소리가 대신했다. 우르르쾅! 하늘이 무너지고, 내 마음도 무너졌다. 그리고 잠시 후 먹빛 가득한 하늘에 갈지자로 뻗어가는 섬광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내리누르듯 어둡기만 하던 주위가 순간적으로 밝아졌고, 나는 대문 위로 나부끼는 새까만 머리카락을 발견했다.
여자가 문 앞에 서 있다!  
오줌을 쌌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자의 젖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려 대문 위로 넘실거리는 모습을 본 순간 사타구니 쪽에 뜨끈한 기운이 퍼졌다. 빗물인지 오줌인지 모를 액체가 바짓가랑이를 타고 마루로 흘러내렸다. 서둘러 오른편에 있는 방문을 열었다. 도망갈 곳은 없었다. 그저 숨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문고리를 잡아당기는 끼릭끼릭하는 소리가 방안으로 들어서는 내 뒤꿈치를 깨물었다.
방안은 어두웠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을 엉금엉금 기어갔다. 어떻게 된 것일까, 이렇게 어둡다니. 가슴이 튀어나올 듯 뛰면서도 그런 호기심이 일었다. 방에 불을 켜지 않았다고 해도 바로 눈앞에 가져다 댄 자기 손도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은 무언가 이상하다고, 어린 나이에도 어렴풋이 의구심이 들었다. 그 생각들은 방안 어딘가에 머리를 부딪치고 나서야 멈췄다. 더듬어보니 벽이었다. 책가방을 풀어 앞으로 감싸 안은 뒤 벽에 기댔다. 그리고 무릎을 당겨 최대한 다리를 모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둠속 어딘가에서 팔다리가 잘려나가도 모르지 않을까 하는 이상한 불안감이 들었다.
방안을 가득 메운 어둠은 검은색 포스터칼라처럼 진득했다. 보이는 건 하나도 없었지만 검고 두터운 어둠이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댄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위는 너무나도 조용했다. 빗소리나 천둥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대신에 어딘가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만이 점점이 들렸다.
톡.
톡.
규칙적인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날카로워진 신경이 머리를 뚫고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12살의 신경으로는 견디기 힘든 긴장감이었다. 울음을 터트리며 마구 소리를 지르고 싶다는 생각과 숨도 쉬지 말고 꾹 눌러 참아야 된다는 본능이 아슬아슬하게 싸움을 벌였다.
톡.
톡. 톡.
톡. 톡. 톡.
물방울은 계속해서 떨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굵은 물방울 하나가 얼굴 위로 떨어졌다 싶더니 까슬까슬한 무언가가 콧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게 머리카락의 감촉이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일초면 충분했다.
“아가야 찾았다.”
머리 위 어둠속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놀라 숨도 쉴 수 없었다. 필시 여자의 몸에서 떨어졌을 물방울이 양말을 적셨다. 내 양말도 이미 젖은 상태였지만 여자의 몸을 훑고 온 물방울은 소름끼칠 정도로 차가웠다. 이미 하나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눈을 질끈 감았다. 어둠이 발가락을 지나 무릎을 거쳐 온몸으로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위쪽에서는 여자가 내뿜는 차디 찬 입김이 서리처럼 내려앉았다.
‘엄마.’
몸이 오그라드는 걸 느끼며 마음속으로 엄마를 불렀다.
‘엄마!’

갑자기 무언가가 변했다. 보지 않고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해 겨울 독감에 걸려 고생하다가 엄마의 밤샘 간호를 받고 나았던 적이 있다. 열에 들뜬 내 이마에 엄마는 수시로 물 적신 수건을 올려줬다. 열이 내린 건 새벽 무렵이었다. 나는 머리를 옥죄던 두통의 무게가 줄어든 걸 느끼며 살며시 눈을 떴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창문을 타고 들어왔다. 동이 트기 시작한 바깥은 온통 푸른빛이었다. 엄마는 지친 얼굴로 내 옆에 잠들어 있었다. 새우처럼 구부린 엄마의 등을 보자 왠지 모르게 따뜻해졌다. 괜스레 눈물이 날 것도 같았는데 그때의 나는 그 눈물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를 나이였다.
열이 내리고 몸살이 물러가던 그때처럼 나를 괴롭히던 무언가가 서서히 멀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살며시 눈을 떴다. 가느다란 빛 한 줄기가 나비처럼 춤을 추고 있었다. 어디서 들어온 걸까? 어른거리는 빛을 따라 눈을 더 크게 떴다. 빛줄기는 점점 더 굵고 밝아지더니 서서히 기둥으로 변했다. 어둠이 소리도 없이 바스러졌다. 어느새 두려움은 사라졌다. 착각이었을까, 방안 어디에도 여자는 없었다. 대신에 눈부신 빛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 빛 한 가운데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들. 왜 이러고 있어?”
엄마였다.
“엄마? 엄마!”
나는 와락 울음을 터트렸다. 몸을 일으켜 엄마 품에 안기고 싶어도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본드로 붙인 것 마냥 바닥에 딱 달라붙었다.
“자. 집에 가자, 우리 아들.”
빛 속에서 엄마의 하얀 손이 뻗어 나왔다. 나는 엄마 손을 힘껏 잡았다.
“아들. 울면 안 돼. 열심히 살아야지.”
엄마의 말이 아련하다고 느끼면서, 나는 정신을 잃었다.

다시 깨어 난 건 삼일이 지난 후, 병원 침대 위에서였다. 초췌한 얼굴의 아빠와 눈물로 범벅이 된 할아버지, 그리고 연신 “아이고, 부처님. 아이고, 부처님.”을 되뇌던 할머니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멍한 표정으로 병실을 둘러보던 내게 아빠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해 주셨다. 삼일 전, 태풍이 몰아쳤던 그날에 나는 집으로 돌아가다가 개천에 빠졌다. 평소에는 기껏해야 발목을 적시는 정도였지만 그날은 갑자기 내린 폭우로 물이 불어났다. 내가 물에 빠지던 걸 목격한 사람도 있었다. 할매네 슈퍼의 주인 할머니. 친구들 사이에서 꼬부랑 마귀로 통하는 그 할머니가 책가방을 둘러 맨 내가 개천에 빠져 하류로 떠내려가는 걸 보고는 경찰에 신고를 했다. 수색이 펼쳐졌지만 아무도 나를 찾지 못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체념했을 때, 우리 동네에서 꽤 떨어진 공장 지대의 개천가에 쓰러져 있는 내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것이다.
“그동안 넌 꼬박 정신을 잃고 있었어.”
아빠가 눈물을 글썽이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눈만 멀뚱히 뜨고 있었다. 개천이라니? 내가 물에 빠졌다고? 그나저나 엄마는 어디 있지?
“아이고. 어쨌든 이렇게 살아 돌아온 게 다 부처님 뜻이야. 아직 중학생도 안 된 놈이 시커먼 개천에 빠졌다가 살아나온 게 기적이라고 형사님들도 그렇게 말했잖니.”
할머니가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아닌데……. 난 엄마가 구해줬는데. 그런데 엄마는 어디 갔어?”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 순간, 아빠는 물론이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표정까지 굳어졌다. 무슨 잘못이라도 했는가 싶어 괜스레 움츠러들었다.
“무슨 소리니? 응? 자세히 이야기 해 볼래?”
아빠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아빠의 그런 표정은 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조심조심 그날의 이야기를 했다. 이상한 벌판, 나를 쫓아오던 여자, 어두운 방, 그리고 엄마. 내가 이야기를 마치자 모두들 울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아이고. 아이고.”하면서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아빠의 얼굴에서는 그날 쏟아졌던 비처럼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가 누운 침대의 시트를 움켜 쥔 아빠의 손이 새하얗게 보였다. 어리둥절해 있던 나도 덩달아 슬퍼지기 시작했다. 막상 울음이 터지자 걷잡을 수 없었다.
“아빠. 왜, 왜 우는 거야?”
한참을 더 울던 아빠는 나를 끌어안으며 이렇게 속삭였다.
“괜찮아. 괜찮아. 엄마는……엄마는……우리들 마음속에 살아있지 않니?”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조금 더 많은 시간이 지나야 했다. 엄마가 사고로 죽은 후 몇 달이 지나서까지 내가 엄마가 살아있는 것처럼 행동했었다는 사실은, 먼 훗날에야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날의 일은 그저 꿈이었을까? 물에 빠졌던 내가 의식을 잃고 떠내려가던 동안 꾼 한낱 악몽에 지나지 않았을까?
그래. 꿈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엄마의 부재를 받아들이게 되면서 그날의 일은 꿈이었다고, 나의 망상에 지나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엄마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느꼈던 그 따뜻함, 엄마의 손을 잡았을 때 느꼈던 그 편안함이 내내 생각날 것만 같아 두려웠다. 다시는 엄마를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나는, 두려웠다.
세월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어엿한 가장이 되었다. 나와 똑 닮은 아들과 아내와 똑 닮은 딸까지,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그러다가도 엄마의 기일이 되면 어렸을 때의 그 일이 문득 떠오르곤 했다. 언젠가 한 번은 아내 옆에 누워 그 이야기를 들려 준 적도 있다. “참 이상한 꿈이지?”라고 덧붙이면서.

그렇게 나는, 꿈이라고 믿고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나는 지금 이 순간, 그날의 일이 꿈이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일임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모든 죽은 자들은 사랑하지만 지상에 남겨둘 수밖에 없는 사람을 위해 딱 한 번 그들을 도울 수 있다. 그게 죽음의 법도다. 죽은 자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전하는 마지막 선물, 나는 12살 여름에 그 선물을 엄마에게서 받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내 몫의 선물을 전하기 위해 우리 집 안방 앞에 섰다.
방 너머에는 지독한 어둠에 싸인 아내의 영혼이 떨고 있을 것이다. 그 옛날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아내의 몸은 수면제를 먹고 차갑게 식어가는 중이다. 내가 죽은 이후 슬픔에 젖어 하루를 보내는 아내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렸다. 나는 살그머니 문을 열었다. 어둠이 갈라졌다. 구석에 앉아 훌쩍이는 아내가 보인다. 여전히 아름다운 얼굴이다. 나는 아내를 향해 손을 내민다. 그리고 말한다.

“여보. 왜 이러고 있어? 열심히 살아야지.”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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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09.07.02 09:13 댓글 수정 삭제
    오오, 또 다시 우수상을 타셨군요. 축하합니다. - 한단설 밥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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