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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은 이제 우리 몸의 일부나 다름없습니다

creya

 스마트폰이 몸에 붙었다는 걸 경진이 깨달은 것은 수요일 저녁이었다. 월요일부터 한번도 충전을 안 한 것 같다는 생각이 그제야 든 것이다. 잘 때도 이 닦을 때도 붙잡고 있어서 언제 붙은 건지 알 수도 없었다. 그래서 의사가 "마지막으로 몸에서 떼 놓으신 것이 언제죠?"라고 물었을 때 어물어물 제대로 대답을 못 했다. 의사도 그냥 의례로 물어본 거였는지 "다들 잘 모르세요. 너무 걱정하시 마시고, 걸리는 사람 많으니까 우리 우선 좀 지켜봅시다."라고 했다.

 요새 그런 병이 새로 생긴 걸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신문에 뉴스에 그렇게 떠들썩한데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몇몇 노인네들이나 다급히 투지폰으로 바꿨을 했을 뿐 별로 와 닿지는 않았다. 공중파가 진짜 중요한 정보를 알려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인터넷에서는 걸리나 안 걸리나 상관 없는 병이라고 했고, 경진 역시 스마트폰을 안 든 사람이 없는 지하철을 보면서 내심 "붙은 사람이나 안 붙은 사람이나 구별도 안 된다."하고 웃기다고 생각했었다.

 경진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성원도 "너같은 놈한테 붙지 그럼. 난 그럴 줄 알았다." 하고 시원시원하게 웃었다. 좀 재미있어하는 것 같긴 했지만 그 뿐, 별 일 아니라는 투였다.

 실제로 별 일 아니었다

 오히려 충전을 하지 않아도 돼서 편했다. 의사도 별 처방 없이 '감전 위험이 있으니 샤워하실 때 주의하시고 공중욕탕은 삼가라'고 했을 뿐이다. 원체 목욕탕이나 찜질방에 가는 편이 아니라서 정말 그냥 샤워할 때 스마트폰에 물 안 닿게 하는 거, 그게 그냥 다였다. 어차피 웨어러블이니 뭐니 해서 몇 년 있으면 스마트폰을 몸에 넣고 다닐텐데 좀 일찍 시작한 거지 뭐 싶었다. 사실 갤럭시 가격 떨어지는 걸 기다리는 중이었기 때문에 기왕 붙을 거면 기종 바꾼 다음에 붙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도 했지만, 요새 스마트폰이야 구모델이나 신모델이나 사진 화소 수 말고는 스펙 구분도 안 가는데 이 정도면 됐다 싶기도 했다.

 딱 한 가지 문제는 영은이를 만날 때였다. "오빠 그거 좀 안 보면 안돼?" 할 때 "이제 이게 내 몸의 일부잖아" 하고 킥킥거리는 것도 별로 웃기지 않았는지, 결국 영은이는 손에서 스마트폰을 떼지 못하는 경진에게 화를 냈다. 어쩔 수가 없다고 변명을 해도 알아듣지를 못했다. 아무튼 이성이 아니라 감성으로 생각하는 생물은 대화가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걸 입 밖으로 냈다간 아마 더 화낼 것 같아서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하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침대 위에서까지 내내 스마트폰을 붙들고 있는 건 좀 우스운 꼴이었다. 게다가 몸에 전기가 흐른다는 의사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는지 영은이와 맨살이 닿을 때마다 자꾸 정전기처럼 따끔거리는 것도 불편했다.

 어쨌든 병은 병인지 발음하기도 어렵고 긴 병명이 붙었다. 전자 어쩌고 하는 이름이었는데 아무도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없었다. 처음에 얼마동안은 폰합체나 폰체화라고 부르다가 그 다음엔 뭘 줄인 말인지 몰라도 SPS라는 말이 나와서 다들 에스피에스라고 불렀다. 부르기도 쉽고 특히 화면에서 깔끔하고 예쁘게 보이는 이름이었다.

 전국적으로 발병자가 속속 포털사이트마다 제일 큰 글씨로 실시간 SPS 속보가 뜨기 시작했다. 국가재난정보센터도 보건복지부도 자기 일이 아니라고 해서 왠지 한국인터넷진흥원이 서울대병원이랑 같이 대책본부를 세우더니 자꾸자꾸 발병자 몇 명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전 세계 어디든 스마트폰을 많이 쓰는 나라라면 어디든 발병자가 나타났다. 나이, 성별 상관 없이 어느 순간 척 하고 들러붙는다고 했다. 경진은 인도에 스마트폰 쓰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 줄 이번에 처음 알았다. 한국 발병자도 엄청 많았고 전체 인구 대비 아시아 1위인지 OECD 1위인지라고 했다. 사실 그야 한국에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으니 당연한 거긴 했다.

 경진에게 스마트폰이 붙은 지 일주일 쯤 지나자 발병 원리가 밝혀졌다고 뉴스가 떴다. 대책본부라는 데는 일을 하는지 안 하는지 엉뚱하게 미국 국립 어디에서 일하는 한국인 과학자가 해 낸 일이었다. 사진이 없어서 저런 사진을 쓰나 싶은, 티셔츠 차림으로 어디 다른 데를 보고 있는 약간 흔들린 사진이 같이 떠 있었다. 뉴스 댓글에서는 저 사람 교포 2세라서 한국 땅 밟아본 적도 없을 거라고 그랬다. 아무튼 뉴스 기사가 떴으니 읽긴 읽었는데 어려운 말이 많아서 아리송하기만 하고 무슨 소리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회사에서 누가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은 해야지 싶어서 취직 준비할 때 이웃 신청 해 뒀던 시사 상식 블로그에 오랜만에 들어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착실하게 === SPS === 게시판을 따로 만들어서 한 눈에 볼 수 있게 뉴스 업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제일 최근 포스팅에서 '간단히 말해 사람 몸이 스마트폰 배터리가 된 것'이라는 설명을 보고서야 아 그렇구나 싶으면서도 '그런데 그건 처음부터 다들 알고 있던 거 아닌가? 대체 어느 부분을 증명했다는 거지?' 하고 좀 콧방귀를 뀌고 싶은 기분도 들었다. 발병 과정을 연구할 게 아니라 치료법을 연구해야 한다는 댓글들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참 쓸모 없는 연구인데 기자들이 열심히도 내보내는 것 같았다.

 아 이거구나 했을 땐 회사 경리 아가씨가 낮은 배터리를 증거로 병가 신청했을 때였다. 부러웠다. 경진의 배터리는 늘 적어도 70프로는 차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100프로가 되었다. 대기화면에 5프로만 남은 배터리 사진을 띄우는 게 잠깐 유행이 되었다. 물론 상사들은 노련해서 그런 수에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아저씨들이라고 스마트폰 안 쓰는 것도 아니고 SPS에 안 걸리는 것도 아니었다.

 영은이는 이상하게 그 병가 낸 경리 아가씨를 걱정했다.

 "인터넷에서 봤는데 그렇게 배터리 떨어진 사람들 다시는 회복이 안 된대. 그 사람 진짜 이대로 회사 안 나오면 어떡해?"

 "둘이 친했어? 뭘 그렇게 걱정해."

 "어우, 자기는. 진짜 어이없다. 꼭 친해야 걱정해? 아는 사람이 그렇게 돼 버리면 안되잖아."

 "야, 나도 폰 붙었어. 넌 나를 생각해야지 엉뚱하게 이름도 모르는 경리나 걱정하고."

 "자기는 배터리 많잖아! 아 정말 내 말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경진은 말 끝이 뾰족하게 선 영은이를 보고 망했다는 걸 알아차렸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오랜만의 데이트였는데 삐쳐 버린 그녀는 붙잡아도 소용 없이 집에 가 버렸다. 경진은 잠깐 전화라도 해서 달래줄까 하다가 그래, 우리가 이 정도로 깨질 것도 아니고, 하고 마음을 놓았다. 사실 그렇게 싸우고 싸우면서도 영은이는 늘 경진에게 돌아왔다. 그건 묘하게도 경진에게 뿌듯한 일이었다. 말하자면 아직도 난 6살 어린 여자에게 이만큼 매력적이지, 하는 남자의 자존심 같은 거였다.

 영은은 원래 성격이 까다롭고 경진과 다투기를 잘했다. 사실 경진은 그 도도하고 콧대 높은 점을 좋아했고, 또 그 섬세하고 여성스러운 성격으로 똑부러지게 회사에서 처신한 덕분에 사내 연애를 잘 숨길 수 있다는 게 좀 고맙기도 했다. 야근에 야근을 계속하다 보니 야식도 같이 먹기도 하고 일 마치고 술 마시러 가기도 하고 그게 처음에는 팀 사람 모두였는데 어느 날 2차나 3차는 괜히 둘이 맥주도 마시러 가고 칵테일 바에도 가고 와인 바에도 가고 그게 몇 달 지나더니 결국 이렇게 되었다. 작은 회사는 아니었고 사내 연애가 금지된 것도 아니어서 수면 위에서 아래에서 썸을 타는 젊은 남녀가 적은 것도 아니었지만 경진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회사에서 밝히기 좀 그랬다. 영은도 이런 일을 사람들이 알아서 좋을 게 없다고 하면서 칼 같이 비밀을 지켰다. 그녀는 최선의 거짓말은 진실을 좀 섞는 거라며 회사 밖에 남자 친구가 있는 척 다른 사람들에게 너스레를 떨곤 했는데, 어찌나 말재주가 좋은지 그걸 믿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곰 같은 경진 혼자서는 그렇게 깔끔하게 소문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신경 써 주는 영은이 고맙고 예뻐서 그녀가 얼마든지 마음껏 생떼를 부려도 다 받아주고 말았다. 그런 남자가 흔치는 않은만큼 그는 영은이에게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렇게 싸워대면서도 헤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안심을 했던 게 아무래도 잘못이었던 것 같았다.

 일 주일 내내 영은이는 회사에서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마침 일이 바쁘기도 했고, 저 계집애 언제까지 저러나 보자 하는 괘씸한 마음도 들어서 경진도 그대로 연락을 끊었다. 주말에도 연락이 없었다. 그런데 그 다음 주에 영은은 아예 회사에 안 나왔다. 내내 출근을 안 하는 경리 아가씨 대신 다급하게 뽑아서 쓰고 있는 어리버리한 인턴에게 슬쩍 영은 주임 오늘 출장이더냐고 물어봤더니 여름에 못 쓴 휴가를 몰아서 5일이나 썼다고 했다. 그 얘길 듣자 경진은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하여간에 독한 것 같으니, 그거 좀 싸웠다고 이렇게 매몰차게 구나. 흐리멍덩한 인턴 아이는 뭐 전하실 말이 있으면 쪽지로 남겨 드릴까요? 했지만 경진은 그냥 직접 전화하면 될 일이라고 볼 일 보라고 했다.

 "그런데 주임님 유럽 가신다고 해서 아마 전화 안 되실 텐데요. 업무 관련해서는 메일 달라고 하셨어요."

 "어? 유럽?"

 "어… 네. 저는 그렇게 들었는데…."

 어리버리야 들었거나 말았거나 경진은 들은 적이 없는 얘기였다. 거짓말이 뻔했다. 어린 인턴 앞인데도 황당하다는 표정을 숨기기가 어려웠다. 그러니까 이건 폰 꺼놓을 테니 연락하지 말라는 소리지? 어차피 스마트폰도 붙은 몸인데 문자든 메신저든 sns든 그거 하나 보내기만 하면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걸 이런 식으로 말을 전하나? 혹시 언질을 했는데 못 보고 지나쳤나 싶어서 별의 별 SNS며 잡다한 메신저 어플들을 마구 켜 보고 있는데, 너무 화가 나서 그런지 갑자기 머리가 찡 하고 아프면서 이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두통 때문에 눈 앞도 잠깐 깜깜해지는 바람에 경진은 순간적으로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인턴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어? 괜찮으세요?"

 "응, 괜찮아. 괜찮아."

 괜찮다고 하고 자리로 돌아가는데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했다. 속이 메슥거리고 이명이 멈추지 않았다. 심하게 비틀거리고 있는지 주변에서 다들 괜찮냐고 물어봤다. 손을 내저으며 괜찮다고 하는데 웬걸, 식은땀까지 났다. 이거 설마 무슨 위험한 병인가 하고 검색이라도 하려고 가까스로 의자에 앉아 폰 화면을 봤는데 배터리가 빨간 색이었다. 남은 배터리 십 프로. 처음 보는 화면이었다. 어어? 하는 사이에 카운트다운이라도 하는 것 처럼 일 프로가 더 줄어들었다. 그리고는 숫자는 사정 없이 1초에 한 칸씩 줄었다. 9, 8, 7, 6, 5. 거기까지 본 경진은 심한 두통을 참지 못하고 기절해 버렸다.

 경진은 드라마처럼 병실에서 수액을 꽂은 채로 눈을 떴다. 목이 심하게 말랐다.

 "여보!"

 덥석 달려든 것은 아내 수정이었다. 그녀는 당장 그의 배 위에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당신 죽는 줄 알았어, 여보, 정말 죽는 줄 알았어."

 "무거워, 수정아. 나 안 죽어, 안 죽어. 지금 너 때문에 죽겠다."

 경진은 손을 휘둘러 아내를 떼어냈다. 그렇게까지 목 메어 울먹이는 건 가슴이 근지럽고 고맙기도 했지만, 6인실 병실이라 보는 사람도 많은데 부석부석하게 산발을 하고 화장기 없는 얼굴로 덤벼드는 아내는 좀 부담스러웠다. 링겔 핑계로 침대에서 저만치 밀어내고 물이나 좀 떠다 달라고 했다. 수정은 정말 정신이 빠진 사람처럼 허둥지둥 병실 냉장고에서 생수를 가져다 주었다. 찬 물을 마시니 좀 살 것 같았다. 이상하게 머릿속이 뿌옇고 굉장히 피곤한 기분이었지만, 아무튼 물어볼 건 물어봐야 했다.

 "뭐야, 나 병원 온 지 얼마나 됐어? 어떻게 온 거야?"

 "당신 갑자기 회사에서 쓰러졌다고… 흑, 나 진짜 놀래서…."

 아내 수정은 좋은 여자였지만 이럴 때 포인트를 못 잡고 자기 얘기만 하는 게 참 언제나 단점이었다. 경진은 정신 사나운 와중에 중요한 줄거리를 파악하기 위해 애쓴 끝에 그가 이틀 전 회사에서 기절했고, 응급실에 실려 왔다는 것, 그리고 회사에서 산재 처리를 거부해서 구급차 비용이랑 입원비를 다 생돈으로 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 진짜 또 쓰러지겠네. 산재가 안되긴 왜 안돼. 당신은 아무튼 이런 데서 야무지지가 못해서…."

 경진은 산재에 대해 알아보려고 폰을 꺼내들었다. '영훈'에게서 메시지가 한 개 와 있었다. 어제 날짜다. 아내 쪽에서 보이지 않게 각도를 조정하며 그의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그래, 유럽이니 뭐니 해도 내가 쓰러져서 사경을 헤맸는데 얘가 걱정 한마디 안 했을 리가 없지. 하지만 이상하게 불길한 예감이 가시지 않았다. 심장은 고장난 것처럼 미친듯이 벌렁거렸다. 메시지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오빠, 나 퇴사해. 결혼할려고.' 거기까지 읽은 순간, 호러 영화의 배경 음악처럼 이명이 쨍하게 귀에 깔렸다. '영훈'이 보낸 메시지는 그 매몰찬 목소리가 생생히 들릴 정도로 영은다운 말투였다.

 '오빠, 나 퇴사해. 결혼할려고. 좋은 사람이야. 청첩장은 안 보낼게. 우리 그동안 깨끗하게 지냈던 것처럼 깨끗하게 끝내자. 안녕.'

 안녕, 안녕이라. 깨끗하게 끝이라 이거지. 경진은 허망했다. 내가 영은에게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나? 비자금 주머니에 고이 모아둔 돈 털어 사 줬던 향수며 가방이며 지갑, 그 동안 사준 밥이랑 술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나마 모텔값은 '우리 그런 사이 아니잖아'하면서 영은이 반 나눠 냈다지만 그래도 전에 한 번 호텔 데려갔을 땐 다 내가 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망연자실한 경진이 보이기는 하는지, 아내는 주춤거리며도 계속 시끄럽게 말을 하고 있었다.

 "여보, 듣고 있어? 그거, 배터리… 이제 자기 조심해야 된다고. 의사 선생님이 그랬는데, 원래 스마트폰 배터리 수명 다 하면 그런 것처럼, 지금 당신 몸이 그렇다고… 응? 제발 조심해… 폰 많이 쓰는 것도 그렇지만 스트레스 받으면 왜 그 오래된 핸드폰 깜박깜박 꺼지는 것처럼 또 기절할 수도 있다고 하거든? 웬만하면 폰 보지 말고, 절대 스트레스 받을 일도 하지 말래. 그리고 춥거나 더운 데도 피하고…."

 하지만 그의 눈은 이미 메시지를 읽었고, 그건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갈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믿을 수가 없게도 혈압이 솟구침과 동시에 진짜로 배터리가 뚝, 뚝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의 눈에서도 노후되어 발열 심해진 스마트폰처럼 뜨거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하, 이런 무슨 병신같은…."

 하지만 경진은 말을 마치지 못했다. 배터리가 떨어져 또 기절해버린 것이다.

 경진은 그대로 하루를 꼬박 또 자고 일어나서야 퇴원했다. 계속 피곤한 것 같고 개운치 않은 기분이었지만 특별히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니라서 어차피 병원에서도 해줄 게 없다고 했다. 의사는 필요하면 잠 안 오는 약 같은 걸 처방해줄 순 있다고 했는데 검색해보니 정신병 약이었고 회사에서 알면 큰일나는데다 보험 처리도 안된다고 하길래 단칼에 거절했다. 요즘은 의사들도 다 상술로 환자들을 속일 속셈 뿐이라고 욕을 하면서 대신 백화점에 들러 종합비타민 한 통과 복분자 엑기스를 샀다.

 회사에 나가는 게 그렇게 고역일 수가 없었다. 폰으로 뉴스라도 좀 찾아봤다간 바로 배터리가 떨어져서 쪽잠을 자든가 밥을 먹든가 해서 충전해야 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하기 짝이 없었지만 배터리가 빨갛게 경고등을 밝힐 때마다 이명에 두통에 헛구역질에 너무 괴로워서 미칠 노릇이었다. 그가 겪는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사는 '이렇게 자꾸 낮에 쉬러 가야 하면 그냥 휴직을 좀 하면 어떻겠냐'고 물어봤지만 경진은 물론 그런 부당한 일이 어디 있냐고 펄펄 뛰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렇게 큰 소리를 치는 것만으로도 배터리가 20프로는 줄었다. 회사가 이렇게 수명을 깎는다고, 그는 한참을 더 짜증을 내서 팀장을 입 다물게 할 수 있었다.

 상사 대하기보다 어려운 건 영은을 볼 때였다. 그가 위장용 남자친구라고 생각했던 놈이 새신랑이라는 걸 알게됐을 때, 팀 사람들이 사실 결혼 이야기며 퇴사할 거라는 얘길 알음알음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걸 눈치챘을 때, 애라도 생겼으니 저렇게 서둘러 결혼하는 거 아니겠냐는 소릴 들었을 때, 경진은 간당간당하게 떨어지는 배터리 표시등을 보며 정말이지 저런 쓰레기같은 여자는 내 쪽에서도 사절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초췌해진 그와 달리 나날이 물 오른 듯 예뻐지는 영은을 볼 때마다 그의 액정에 보이는 배터리 숫자는 거침없이 아래로 내달렸다.

 별 수 없이 경진은 누가 보더라도 명백하게 영은을 피하기 시작했다. 한번은 복도에서 딱 마주쳤는데 그 손에 안 볼 래야 안 볼 수가 없는 커다란 다이아 반지가 끼워진 것을 보자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고 토기를 참을 수가 없어서 화장실로 달려가 버린 적도 있었다. 이때껏 경진과 영은 사이에 대해 한 점 의심 없던 사람이라도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눈에 띄는 행동이었다. 결국 그게 화근이었다고 해야 할 지 그 덕분이라고 해야 할 지, 그 날 저녁 영은이 그를 조용히 회사 밖으로 불러냈다.

 "내가 이제 여기 나올 날 며칠 안 남아서 그냥 참으려고 했는데, 오빠 너무 심해서 어쩔 수가 없네.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우리 깨끗하게 끝내기로 한 거 아니었어?"

 그들은 그러기로 한 적이 없었다. 영은이 일방적으로 깨끗하게 끝내자고 말했을 뿐. 경진은 그 점을 지적하면서 눈을 치떴지만 영은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그의 눈빛에 조금도 눌리지 않고 오히려 목소리를 키웠다.

 "그래도 사람으로서 할 일이 있고 못 할 일이 있지, 왜 내 얼굴을 보고 토하고 난리야? 병 걸린 거 핑계로 어쩜 그런 짓을 해?"

 "그런 게 아니고 진짜로 아프다고! 널 보면 내가 마음이 아파서 배터리가 막 떨어진다니까."

 "…아 진짜 내가 미쳤지 어떻게 이런 거랑…."

 "이런 거? 너 지금 나보고…. 아, 아니다."

 욕이 혀 끝까지 올라왔지만 경진은 욕을 할 수 없었다. 경험상 화를 내면 눈 앞이 어지러워지면서 또 졸도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그는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애썼다.

 "영은아, 내가 너한테 무슨 잘못을 했어. 아님 그 새끼한테 무슨 약점을 잡혔길래 갑자기 결혼을 한다고 그래."

 "약점은 무슨 약점이야. 좋은 사람이라서 결혼한다니까."

 "니가 잘 몰라서 그래. 내가 정말 솔직하게 객관적으로 얘기하는 건데, 너 오빠 정도로 솔직한 사람 많지 않다. 남자들 다 자기 잘 나간다고 집 들고 차 들고 온다고,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겠다고 하지? 열에 아홉은 허세 아니면 그냥 너 꼬시려고 하는 거짓말이야."

 "뭐래, 진짜 이렇게 질척거리는 사람이었어? 실망이다."

 "아니 뭐하는 새낀지 나보다 잘난 점이 있으니까 니가! 이 나를 버리고! 그놈한테 간다는 거잖아!"

 경진은 조금 참지 못하고 욱하는 소리를 냈다. 배터리 숫자가 위험하게 훅 줄어들었지만 그는 그걸 보지 못했다.

 "뭐가 그렇게 잘난 놈인지 어디 들어나 보자고! 그게 그렇게 어려워?"

 "그만해 오빠, 추해."

 그렇게 말하는 영은의 눈은 정말로 경멸에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어쩐지 거기에는 뿌듯한 승리감 같은 것도 엿보였다.

 "뭐, 다른 건 아니고, 그 사람 그 백신 회사 들어갔어."

 '그 백신 회사'라면 한 곳밖에 없었다. 요즘 연일 뉴스며 SNS에 오르내려 실시간 검색어 5위 밖으로 내려가질 않는 그 곳일 게 뻔했다. 그 언젠가 SPS의 발병 원리를 밝혔다던, 미국 국립 어디에서 일하는 교포 몇세라는 하는 한국인 박사가 SPS 백신을 만들겠다고 세운 회사였다. 그 백신이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이랑 더 비슷한지 독감 예방주사랑 더 비슷한 지 경진은 알 길이 없으나, 엄청나게 대단한 일이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 회사는 전세계의 이동통신사와 스마트폰 제조사와 SPS로 스타급 선수를 잃은 어느 석유 재벌 구단주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캘리포니아인지 메사추세스인지에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나올 법한 멋들어진 사옥을 세우더니 그 건물 곳곳에 수영장이며 놀이기구며 온갖 놀거리를 깔아서 천국의 직장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억대 연봉일까? 억대 연봉이겠지? 떨리는 손으로 다급히 검색해보자 그냥 억대도 아니고 십 억 대는 너끈히 될 거라는 댓글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이건 정말, 이길 수가 없겠구나. 경진은 맥이 탁 풀리고 말았다. 하와이에서 식을 올리고 미국에 신접 살림을 차린다는 소문은 모두 진짜였던 모양이었다. 그 다이아 감정서는 제대로 받았냐, 임신했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따져 물을 게 산더미였던 것 같은데 그 한 마디에 죄 사그라들었다. SPS 때문에 응급실에 실려간 남자란 SPS 백신 만드는 남자 앞에서 얼마나 작아지는가.

 아아, 그렇게 사랑했는데, 이제 이 품 안에 영은을 안을 일이 영영 없다니. 경진은 부옇게 흐려진 눈 앞이 눈물 때문이라는 걸 조금 뒤늦게 깨달았다. 한번 쓰러지고 난 후로 그는 눈물이 많아졌다. 내가 사 준 게 얼만데, 해 준 게 얼만데, 그런 모든 말은 영은이 손에 낀 왕방울만한 다이아몬드 반지 앞에서 모두 휴지조각처럼 부질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영은은 울고 있는 경진을 보며 그저 한심하다는 표정 뿐이었다. 이런 놈이랑 끝내서 다행이라고, 개운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문득 고개를 쳐든 자격지심에 가슴이 한층 더 아파왔다. 관용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통증이 너무 심했다. 눈물과 콧물을 함께 훌쩍거리던 경진이 습관적으로 가슴 통증을 검색해보려고 폰을 열자마자 익숙한 이명과 함께 눈 앞이 캄캄해지고 몸이 기울어졌다. 아 진짜, 여기서 이러면 난 어쩌라고, 하는 영은의 목소리를 귀에 담으며 경진은 이제 이대로 다시는 깨어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진은 깨어났다. 이번엔 삼 일이 걸렸다. 아내 수정은 이번에도 그에게 덤벼들어 펑펑 울었다. 그는 아무 감흥도 없었다. 아니, 꼭 아내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무엇에 대해서든 무감각해진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문득 영은이 떠오르면 외로움과 상실감에 끝도 없이 눈물이 솟았다. 병문안이라고 찾아온 성원은 너 진짜 이상해졌다며 무슨 일인지 얘기하라 보챘다. 성원은 아내와도 오랜 지기여서 처음에는 감추려고 했지만, 어차피 다 끝난 일 누구에게라도 털어 놓으면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들자 입이 열렸다. 그저 아름다운 후배로만 보던 영은과 처음 잠자리를 함께한 일, 그 후에 함께 만들었던 추억들, 비열하게도 그녀를 빼앗아간 이름 모를 애송이에 대한 이야기까지, 한 마디 한 마디가 눈물 바다였다. 난 우리가 정말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며 콧물을 삼키는 경진에게, 그러나 성원은 거의 경멸에 가까운 투로 대답했다.

 "넌 씨발 쓰레기야. 수정이가 너한테 얼마나 지극 정성인데."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유부남이라고 사랑을 하면 안되는 건 아니잖아!"

 "아니 멀쩡한 마누라를 두고 왜 밖에서 사랑을 하냐고. 너 미쳤어?"

 성원은 뭐가 불만인지 한참을 욕을 욕을 해댔다. 아픈 사람에게 할 소리가 있고 못 할 소리가 있다고 해도 멈추지 않았다. 내가 너 같은 놈이 친구라고 지금까지 알고 지냈냐고 하는데 그야말로 딱 경진이 하고 싶은 말이었다.

 "내가, 딴 놈이면 그냥 절교하고 다신 안 보겠는데, 수정이 있어서 그러진 않는다. 너 그냥 그 년한테 호구 잡힌 거야. 회사에서도 남친 있는 거 다 알았다며. 너만 속은 거라고. 니가 괜히 들이대면서 명품 사주고 어쩌고 하니까 남친은 남친대로 두고 넌 물주로 삼고 잘 논 거네. 그러다가 니 앤지 남친 앤지 들어서니까 그거 갖고 남친한테 결혼하자고 발목 붙들었겠구만."

 "뭐…?"

 우리 영은이 그런 애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지만, 기운이 너무 쭉 빠져서 그럴 힘도 없었다. 게다가 이렇게 정면으로 들으니 왠지 정말 그런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영은을 의심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이미 그를 배신한 나쁜 년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이 사랑하는 동안은 서로 사랑한 것이라고 믿었는데.

 "뻔하잖아! 이렇게 뻔한데 넌 왜 모르냐? 대체 넌 뭐가 문제야? 저렇게 너한테 잘 해 주는 수정이 두고 넌 대체 뭐가 문제냐고!"

 성원은 한참 길길이 날뛰다가, 네가 아니라 수정이가 마음 아플 것 생각해서 수정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어딘가에서 애를 싸질렀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 아마 쓰러질 거라고 하면서. 그러니 너도 앞으로는 절대 바람피우지 말라고 신신 당부를 하고 갔다.

 그가 지난 얼마 동안 겪은 일이 단순히 자신보다 젊은 남자에게 애인을 빼앗긴 일이 아니라 믿었던 여자 친구가 오랫 동안 그를 배신해 온 일이었다는 걸 경진은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성원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 가능성만으로도 그의 마음은 더 이상 헝클어질 수 없을 만큼 헝클어졌다. 영은을 생각할 때만 나던 눈물이 벽을 보거나 천장을 보거나 바닥을 볼 때에도 뚝뚝 하염없이 흘러넘쳤다. 간신히 출근은 다시 했지만 울고 있지 않으면 휴게실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그를 더 이상 회사에서도 참아 주지 못했다. 퇴사하던 날 집에서 울다 지쳐 까무라친 경진을 대신해 수정이 회사에 나와 사람들에게 인사를 전하고 짐을 정리했다.

 퇴사한 후 경진은 매일매일 집에서 울다가 자다가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아내는 그가 스마트폰을 보지 못하게 하느라고 티비를 틀어놓거나 컴퓨터를 사다 놓거나 했지만 모니터 화면을 보는 중에도 경진은 저도 모르게 폰 화면을 켜서 들여다 보았다. 별 것을 하지 않아도 배터리는 쭉쭉 떨어졌고, 그러고나면 꼭 기절하고 말았다. 며칠이 지나니 그렇게 기절하는 것도 그냥 새삼스럽지 않은 일이 되었다. 눈 뜨고 있는 시간 거의 대부분을 울면서 보내는 것도 그냥 일상이었다. 아내는 그런 그를 걱정하며 어떻게든 관심을 돌려 제 때 밥을 먹이고 정상적으로 잠을 재워 보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영은을 잃은 세상, 아니 영은이 애초에 그를 사랑한 적이 없는 세상에서 경진은 더 이상 살아갈 의미를 찾지 못했다. 차차 말라 가는 몸, 수염이 덥수룩한 얼굴을 거울에서 보면서도 그는 그저 그러려니 했다.

 스마트폰 속의 세상에서는 영은이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하와이 해변에서 식을 올리고, 유럽인들이 여름 휴가를 간다는 이탈리아의 어느 섬에서 손바닥만한 빨간 비키니를 입고 신혼여행을 즐기고, 정원과 수영장이 딸린 2층 집에서 신랑의 회사 동료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었다. 계속 화면을 들여다보는 일이 그의 몸에 부담이 된다는 것은 분명 느껴졌지만, 그렇게라도 영은이 어떤 매일매일을 보내는지 지켜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행복을 빌어주는 것도 저주하는 것도 아닌 채로 그는 시름시름 영은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그렇게 그의 수명은 계속 줄어들었다.

 스마트폰 배터리는 오래 쓰면 수명이 점점 짧아진다. 험하게 굴리면 그 속도는 더 빨라진다. 사람 몸이 배터리일 때도 그건 다르지 않았다. 스마트폰이 몸에 붙은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스마트폰과 함께 그들의 수명은 정말로 줄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완전히 수명이 다한 사람이 나타났다.

 우연히도 한국 최초의 SPS 사망자는 경진의 회사에 다니던 바로 그 경리였다. 그 아가씨는 최적화가 영 말이 아닌 모바일 게임에 푹 빠져서는 쉴 틈 없이 게임을 하다가 수명이 다 하고 말았다고 했다. 대체 얼마나 재미있는 게임이냐 하고 잠깐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을 뿐, 가족 외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그저 그런 죽음이었다. 몇몇 외국 언론들이 동아시아의 게임 중독이 심각하다면서 기사를 좀 썼지만 그것도 그 뿐이었다. 아무튼 예쁘지도 뛰어나지도 않은 그저 그런 젊은 여자였다. 게다가 그 무렵 세계 각지에서 폭발적으로 사망자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죽은 경리 아가씨는 죽어서도 그저 그런 사망자인 채로, 여전히 몸에 붙어 있는 스마트폰을 결국 떼지 못한 채 그냥 스마트폰과 한 몸이 되어 그저 그런 작은 무덤에 묻힐 운명이었다.

 하지만 경리 아가씨는 운명을 거슬렀다. 그녀는, 혹은 그녀의 시체는 발인하던 날 갑자기 관을 속에서 몸부림치며 도와달라고 소리쳤다. 사실은 관을 뒤흔들 정도로 큰 움직임도 아니었고 얼핏 듣기에 안 들릴 정도로 작은 소리였지만 염습하여 몸에 장기가 잔뜩 빠져 있고 삼베로 팔다리를 둘둘 말렸다는 걸 고려하면 엄청난 움직임이었다.

 취재 거리를 기대하지 않고 그저 농땡이나 좀 치고 밥이나 한 끼 얻어 먹어볼 요량으로 그녀의 장례식장에 와서 어슬렁거리고 있던 한 신문 기자가 그 순간을 생생하게 사진으로 남겼다. 관뚜껑을 뜯자 몸을 일으키는 시체와 그 옆에서 망자의 부모님이 놀라 쓰러지는 모습까지 담긴 그 사진은 기사가 되기 전에 먼저 기자의 트위터에 올라갔다. 어마어마한 특종이었다. 그는 하루도 지나기 전에 세계 트위터 최고 팔로워 기록을 경신했다.

 그녀를 필두로 시체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미 화장되어 한 줌 재가 된 시체들은 그럴 수 없었지만, 관 속에서, 땅 속에서, 그들은 일어났다. 지역마다 서로 다른 시신 수습법과 날씨의 차이에 따라 그들은 조금 더 부패하기도 했고 덜 부패하기도 했지만 어느 경우에도 사람들을 공포에 질리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들은 움직여지지 않는 팔과 다리로 관에서 일어나 집에 돌아가려고 하거나, 아는 사람을 만나면 딱딱해진 혀를 열심히 놀려 집에 가게 도와달라고 하곤 했다. 그리고 종종 멍하니 스마트폰을그러다가 지치면, 또는 배터리가 나가면 풀썩 쓰러져 버리기 일쑤였다.

 그들을 부르는 이름으로는 특별히 새로운 단어가 필요하지 않았다. '스마트폰 좀비'는 일찍이 스마트폰 화면만 바라보느라 앞을 안 보고 구부정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었지만, 되살아난 SPS 환자들을 가리키기에 그보다 더 좋은 말이 없었기 때문에 스마트폰 좀비는 이제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쓰이지 않고 진짜 좀비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페이스북의 스마트폰 좀비 페이지 구독자 수가 치솟았다. '성지순례'를 왔다는 댓글들이 신나게 달렸다. 그들 중 누군가는 머지 않은 미래에 스마트폰 좀비가 될 수도 있었지만, 댓글창에는 거기에 대한 공포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느 나라에서나 스마트폰 좀비를 처리하는 최선책으로 소각을 제일 먼저 지목했다. 일단 타 버린 육체는 어쨌든 움직일 수 없다. 하지만 분명히 심장이 멈춘 한 SPS 환자가 갑자기 번쩍 눈을 뜨더니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가족을 향해 '무섭게 나한테 왜 이래, 나 죽은 거 아니야!'하고 또렷이 말한 것이 동영상으로 인터넷에 나돌면서 과연 이들이 정말 죽은 것인가에 대한 논란에 불이 붙었다. 만약에 스마트폰 좀비들이 살아 있고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그들을 태워버려도 되는 것일까?

 수정은 스마트폰 좀비도 생명이라고 믿는 쪽에 속했다. 그녀는 근본이 선한 사람이었고, 모든 생명에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움직일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몸들에 대해 '죽었다'는 말을 하는 것조차 거부했다. 스마트폰 좀비들이 늘어나면서 그런 사람의 수는 점점 늘어났기 때문에 그런 그녀가 유난스러워보이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그 생명이 자신의 사랑하는 남편일 때, 그 믿음은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할 수밖에 없었다.

 수정은 업소용 냉동고를 마련했다. 20평대 집에는 들여놓을 자리가 마땅치 않아 거실에 둘 수 밖에 없었지만, 남편이 가장 좋아하던 자리가 거실 소파였다는 걸 생각하면나쁘지 않은 위치 같기도 했다. 수명이 다 되어가는 핸드폰 배터리들을 종종 그렇게 하듯, 수정은 남편을 냉동고에 넣어 두었다. 이 방법이 제대로 먹힐지 불안하기는했지만 남편은 줄곧 기절해 있었기 때문에 그 아이디어에 대해 상의할 길이 없었다. 다행히도 충분히 차갑게 식은 남편은 곧잘 깨어나 수정아 잘못했어, 꺼내줘! 하고 냉동실 안쪽에서 그녀를 소리쳐 불렀다. 뭘 잘못했다는 건지 수정은 알 도리가 없었지만 내용이야 무엇이 되었든 남편의 목소리는 언제나 반가웠다. 비록 이제 회사를 다니기는커녕 집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사람이었지만, 수정은 정성스레 남편이 깨어날 때마다 동상을 입은 손가락과 발가락을 더운 수건으로 정성껏 주물러 주고, 그가 다시 숨이 멎으면 냉동실에 돌려 넣어 주었다. 만삭의 몸으로 몸도 마음도 고된 일이었지만 그녀는 언제나 기꺼이 남편의 수발을 들었다. 어떤 식으로든 남편이 살아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수정은 이제 곧 태어날 아기에게 꼭 아빠의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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