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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 Hatter님의 {거인}은 문장에 너무 힘을 주어 읽기 부담스러운 면이 있었습니다. '거인'을 보는 주체랑 글의 주인공이 달라, 주제가 정확히 어느 쪽에 무게가 실려 있는지, 제목을 제외하고는 알기 어려웠습니다. '거인을 보는 것'이 문제인지, 그럴 수밖에 없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거나 그런 엄마로 인해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아들에게 이입을 해야 하는 건지, 이야기의 초점이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독자는 기본적으로 어딘가 정을 줄 곳, 중심을 잡을 곳,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구석을 찾으므로 가이드가 길을 확실하게 안내해줘야 합니다. 거인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독자가 갈피를 잡을 수 있을만한 암시 등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결말에서 아들이 엄마를 죽인 걸로 오해받는 걸 중요하게 그렸는데, 정신병동의 창문은 환자가 안에서 열고 뛰어내리지 못하게 안전장치가 되어 있습니다. 배경이 되는 곳에 대한 고증과 자료조사 등도 필요합니다.
묘사도 성실했고 열심히 쓴 글로 보입니다. 다만 묘사에 감정이나 분위기를 삽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읽는 사람 입장에서 정돈된 글이 되도록 좀 더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습니다.

{땅 속에 있는 것}은 뭐가 어떻게 돌아간 건지를 너무 설명해주지 않고 마지막까지 모르겠다고 끝내버려서 나름 땅 속 괴물들에 대한 묘사 등이 재미없지는 않았는데도 공중에 붕 뜬 듯 지나치게 현실감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중심 소재를 잡았으면, 그게 어떻게 이야기가 될 수 있을지를 더 열심히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상상 속의 이야기를 가지고 쓰더라도, 실제 있을 법하게, 혹은 실제 있은 일처럼 그 순간 독자의 시선을 잡아끌려면 최소한의 실마리와 정체를 보여줬어야 합니다. 소재만 있는 글이 되어 아쉽습니다.



초극성 님의 {내가 벌레를 무서워하는 이유}는 톡톡 튀는 재치나 소름끼칠 만큼 리얼한 묘사 등이 필요한 글인데 밋밋했습니다. 누가 왜 벌레를 무서워하는지에 대해 독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게다가 벌레는 대부분의 사람이 무서워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다지 특이한 소재나 심정도 아니고요. 설사 다른 사람도 무서워하는 평범한 것일 지라도, 왜 이 사람은 유독 무서워하는 지 그 이유를 알고 싶도록 독자를 꼬여내는 게 필력이고 전개이고 플롯인데 그 부분이 약했습니다. 독자는 아직 궁금하지도 않은데 작가가 앞서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이 글에서 보여준 벌레를 무서워 한 이유도, 공감은 이끌어낼 수 있을지언정 참신하지는 않았습니다.

{끝없이 우는 사람}은 신화의 틈바구니에서 이야깃거리를 찾았고, 그 이야기를 나름의 방식으로 풀어갔습니다. 원래 신화에서는 그다지 부각되지 않았던, 한 인물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잘 만들어냈습니다. 자식을 모두 잃고 슬퍼하는 이가 이들의 부모가 되는 모습을 보여 앞뒤를 잘 맞추었습니다. 세올이 다우린을 사랑했다는 건 좀 뜬금없었지만 {내가 벌레를 무서워하는 이유}보다 안정적인 글이었습니다.



woojongmo 님의 {유서}는 중심 아이디어도 분명했고, 딱히 어색하게 거슬리는 부분이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아직 글을 많이 써보지는 않은 것 같으나, 문장도 깔끔했고, 소재는 조금 식상하지만 전반적인 느낌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나는야외계인 님의 {가이아의 분노, 하데스의 눈물}은 인류의 멸망, 죄악 등등은 굉장히 어려운 주제를 다뤘는데, 너무 쉽게 썼습니다. 많은 작품들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밀도 있게 변주해 온 주제이니만큼 주제에 대해 좀 더 심도 깊은 성찰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현서 님의 {달빛 연대기 - 언어에 관한 작은 묵시록}은 복음이란 말처럼 신화를 새로 만들려고 한 글로 보이는데 독립적인 이야기로서 힘을 가지지는 못했습니다. 글을 쓴 이가 읽어온 것, 보아온 것, 공부해온 것들을 현란한 미사여구 속에 녹였는데, 글을 쓴 이가 가진 지식이 없는 독자들에게도 이 글이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지 의미 있는 글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아는 이들에게만 의미 있는 글과 아는 이에겐 아는 만큼의 의미를 더 주더라도 모르는 이들에게도 의미 있고 인상적이고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글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레이 님의 {수정(修訂, MODIFY)}은 중반까지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글이 자꾸 수정이 되어 누가, 왜, 어떻게 그런 일을 하고, 어떤 과정으로 그 수수께끼가 밝혀지고, 수수께끼의 답은 무엇인지 궁금했는데, 그냥 노트에 있는 것까지 다 바뀌었다고 끝나버려 허무했습니다.



달리는새 님의 {On your mark}는 순간이 영원처럼 지속된 모습을 담았습니다. 올림픽의 100m달리기는, 선수들이 10초도 안 되는 순간에 4년을 걸고 연습하는 종목입니다. 그 순간을 늘려 영원처럼 반복시켰고 그 순간을 물고 늘어졌습니다. 열심히 쓴 글이고, 한 순간의 관문을 위해 많은 걸 거는 다른 일들에도 투영해볼 수 있을만했습니다. 다만 무슨 내용인지 한 번에 들어오지 않으니 정리가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또한 그 한 순간 외에 달리기가 시작되기 전에 심리를 나타내주는 부분이 중요한데, 그 부분을 잘 살리지 못했습니다. 10초도 안 되는 순간에 4년을 건다는 건, 그 이전에 0.01초에 목숨 거는 반복훈련의 나날을 몇 년, 몇 십 년 보내왔다는 뜻인데 그런 사람의 심리라기엔 너무 이것저것 잡생각이 많고 너무 일반인스러웠습니다. 한 경지를 향해서 계속 뛰어온 사람이 이렇게 잡생각이 많을 것 같지 않고, 그런 선수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왔으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머리에 든 게 오직 한 가지밖에 없어도, 이 선수가 그러했듯이 세계의 벽을 넘지 못하기가 일쑤이기에, 이렇게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고, 시합 전 엉뚱한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이 과연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 올림픽이라거나 선수라거나 하는 배경과 인물의 특성이 잘 살지 못했습니다.



湛燐님의 {자명}은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를 소재로 한 글이었습니다. 애틋하고 아련한 분위기를 잘 잡았습니다.
문학적 장치냐, 역사 왜곡이냐는 무자르듯 자르기 어려운 면이 있지만 역사소설일지라도 중요한 부분은 역사적 사실과 맞추든가, 역사에 기록된 부분과는 다를 지라도 달리 볼 수 있는 근거, 혹은 왜 역사에는 그런 식으로 기록되었는지는 맞추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이 이야기의 중심은 남성적인 냉정함과 야망에 상처받는 낙랑공주와 자명 같은 여린 이들의 처연함으로 보이는데, 호동이라는 캐릭터의 성격과 지향점은 분명하게 그려진 반면, 낙랑공주와 자명은 인상이 흐릿해 무엇을 바라고,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에 대해 설득력을 주고, 감동과 처연함을 주기에 부족했습니다.



목이긴 님의 {사소한 증오와 숨쉬라는 강요}는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는데, 자기는 너무 억눌려 있어 숨을 쉬고 있지 못하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는 인생을 그렸습니다.
글은 글을 쓴 이의 속에서 나오는 것인 만큼, 내면에 있는 답답함, 갑갑함을 토대로 쓴 글이고, 그런 내면의 모습이 작품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습작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열심히 쓴 글이었습니다. 건필하세요.



cogaras님의 {언젠가부터, 하늘을 바라보게 되었다}는 필요 없는 서술이 과했습니다. 본론은 하늘에서 무언가를 보았고, 그 뒤 하늘을 자주 보게 되었다는 건데, 하늘을 우연찮게 보기 위해 농구를 넣었고, 농구를 하게 된 걸 넣기 위해 다른 친구들 사이에서 어울리지 못한 이야기를 넣었고, 다른 친구들 사이에서 어울리지 못한 이야기를 넣기 위해 미국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를 넣었습니다. 굳이 이렇게 구구절절하지 않았더라도 괜찮았을 이야기로 보입니다. 전체 글에서 필요 없는 부분은 아무리 넣고 싶었던 부분일지라도 과감히 잘라내야 합니다.



세이지 님의 {어느 날 술 한잔}은 세상에 있을 것 같지 않은 칵테일 바를 환상적/몽환적으로 그려내고 그 하룻밤의 환상으로 상처를 치유하게 되는 이야기로 보입니다.
칵테일 바 묘사나 칵테일 묘사가 흥미를 끌만하거나 신비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했고 거기서 한 경험도 경이감이라 할 요소가 너무 적어서 그 하루가 이 사람을 바뀌게 할 만한 무언가가 있었다고 독자를 설득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지루해졌습니다.
결말이 해석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이채롭거나 신비스럽지 못했습니다. 칵테일이나 칵테일 바에 얽힌 신비, 비밀 등을 조금씩 보여주려고 했는데, 그 과정에 좀 더 재미를 부여했다면 어땠을까 합니다.
여자 주인공도 특이한 점이 없었고 바텐더도 별로 매력적이지 않았고 둘이 벌이는 실랑이도 눈여겨볼만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앞에 인용문으로 처리한 부분에서 이미 본 내용을 다 드러낸 거나 다름없는데, 바텐더와 실랑이하고, 여자가 칵테일에서 눈을 못 떼고, 이야기를 지금처럼 조금씩 보여주면 독자들은 이미 내용을 짐작하고 그 이상의 결과를 바라게 됩니다. 때문에 이야기를 속도감 있게 진행하고 그것을 넘어선 이야기감을 보여줬어야 합니다. 인용구를 없앴다고 해도 역시 어지간히 재미있지 않은 이상 실랑이를 통해서 조금씩 정보를 드러내는 방식은 지루함을 유발하기 쉽습니다.
제목이 너무 식상합니다. ‘어느 날’, ‘어느 하루’ ‘*** 하나’ 등등의 막연한 느낌이 드는 제목은 가능한 피하시길 권합니다. 제목은 글의 얼굴입니다. 제목이 막연하다는 것은, 글을 쓴 이가 자신의 글의 핵심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는 걸 의미할 때도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무난하게 크게 모나는 부분은 보이지 않았으나 이런 면들이 아쉬운 글이었습니다. 건필하세요.



Mothman님의 {디에프의 어둠}은 이야기에서 어느 지점에 힘을 주고 어느 지점을 쉽게 넘어가야 하는지 감을 잡지 못하고 계신 듯 합니다. 여자의 정체가 유령처럼 보였으나 사실은 정신체였다는 것은 이야기의 시작이 될 수 있는 아이디어입니다. 이 글은 아이디어만 있을 뿐, 그 아이디어로 하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270님의 {밤마을}은 도플갱어 이야기일 수도 있고 주인공이 몽유병 상태에서 살인을 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주인공이 본 건 다 환상일 수도 있고 혹은 실재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이야기를 꾸려나갔어야 합니다. 그냥 미친 사람의 환각 이야기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이야기이고 이게 환각이 아니라 진짜일 수도 있다면, 좀 더 그럴싸한 환상과 이야기를 풀어냈어야 했습니다. 모호하고 알 수 없는 사건을 늘어놓은 후 주인공이 정신병원에 들어가는 건 ‘모두 꿈이었다’ 만큼이나 무책임한 결말입니다.

{왕자와 공주, 그리고 마녀가 나오는 이야기}는 동화의 형태를 빌렸으되 동화의 본질은 살리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동화의 형식을 취했다고는 하나 이야기가 너무 맥락 없이 흘러가고 지나치게 인과관계가 없이 우연으로 일이 진행되며, 모든 게 너무 쉽게 해결됩니다. 그래서 허무합니다.
왕자가 그렇게까지 마녀를 사랑하는 이유, 어리석인 짓인 줄 알면서 목숨까지 버려가면서 선물을 조달 하는 마법사 등에 전혀 수긍이 가지 않습니다.



dcdc 님의 {완벽한 존 레논의 팬}은 실제 사건에 몇 가지 가설을 덧붙여 만든 글입니다. 주석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도 이해할 만한 글인지 이 글속에서 벌어진 실제 상황, 더불어 존 레논이나 그의 음악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도 공감하고 이해할 만큼 어떤 음악에 대해 감명을 받은 순간을 제대로 그렸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가 너무 좋아하는 것이나 자신을 포함 주변에서도 당연히 좋아하는 것은 다른 이들도 알거라고 생각하게 되는 함정이 있는데 글을 쓰는 이는 언제나 사전에 아무 정보도 없는 독자들이 이 글을 읽을 것이라는 걸 염두에 두고 글을 써야 합니다.



이십삼님의 {토마토 왕자} 말이 안 되는 일, 즉 일상에 환상적인 사건이 벌어지며 시작합니다. 그 일로 인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 지는 같으나 그걸 어떻게 얻을 것인가가 남편과 부인이 대립되어 갈등의 축을 만들고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일이 진행이 되는 것까지 전개 방식 자체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소재나 이야기 진행 방식에 재치가 부족하고 군더더기가 많았으며 특히 결말은 굉장히 허무해서 맥이 빠졌습니다.



김몽 님의 {에덴 광산의 어머니}는 후반을 너무 급하게 몰아친 감이 있습니다. 설정이나 상황에 빈틈은 많고 설명은 제대로 안 되어 있었습니다. 일단 주인공이 처했던 상황이 잘 이해가 안 갑니다. 나름 법대로 굴러가는 세상인 것 같은데, 주인공이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 처해서 그렇게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을 받는 상황에 놓이게 된 건지에 대해서 설명이 부족합니다.
에덴 '동'산을 '광'산으로 바꾸고 아버지를 어머니로 바꾸고, 교합식이라고 바꾸었는데 그로 인해 무엇을 그리고자 했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핵심인 그 어머니의 정체에 대해서는 독자들이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는데 그걸 부각하며 끝나 버렸습니다.
광산을 그 정도까지 폐쇄적으로 세뇌를 해가면서 유지해야 할 필요성도 그리지 못했고, 그러면서 바깥사람들이랑 광부들이 접촉하는 건 보기보다 어렵지 않아서 설정상 무리가 있었습니다.  



선반 님의 {범인은 스티븐이다}는 의미도, 재미도, 신선함도, 반전마저 없는 글이었습니다.
실제 벌어진 사건과 정황 자체를 이해할 수가 없는데 설사 독자에게는 해석의 여지를 줄 지언정, 글을 쓴 이는 완벽하게 정리된 사건 정황이 있었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글을 쓴 이가 생각한 것, 아는 것을 독자에게 어떤 식으로 전달할 것인지, 어떻게 해야 전달될 것인지에 대해 가장 기본적인 것에 대해 더 생각하고 많은 습작을 거치길 바랍니다.



라퓨탄 님의 {초승달 두 개}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차용해, 거기 나오지 않은 장면 중 있을 법한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재미는 있었는데 원작에 너무 많이 기대 재창조한 작품으로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앞부분은 우리나라 실정하고도 꽤 어울리고, 나름 풍자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게 전개되어 기대가 되었는데, 후반부를 [은하수...]에 전적으로 기대버리면서 맥이 빠졌습니다.



니그라토 님의 {우주 생태계}는 글을 쓴 이의 마음 속 이야기를 글을 쓴 이만 알 목적으로 풀어놓은 글입니다.



clancypark 님의 {Artificial Womb(인공자궁)}은 소재를 그대로 제목으로 삼아 제목이 밋밋했습니다. 스케일이 큰 소재였는데, 이 소재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반전과 활극으로 펼쳐졌어야 했는데 너무 평범하게 전개했다는 게 아쉽습니다.
괜찮은 소재이면서 흔한 소재기이도 해서, 얼마나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고, 상황을 급박하게 전개하며 얄궂은 운명을 만드느냐가 재미의 핵심이 될 이야깃거리인데, 그런 면에서 뻔하게 진행된 감이 있습니다. 단서도 너무 쉽게 찾고, 회사에서 처리하는 방법도 너무 쉬웠습니다. 액션활극이나 스릴러로 쓸지, 사변과 화두가 들어간 SF로 쓸지 결정해 손을 보면 좋을 듯 합니다.



깃 님의 {그림자들}은 사회에서 소외받는 약자의 입장이면서도 사회에서 자신과는 다른 소수자들의 편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는 못하던 한 나약하고 우유부단하고 다른 말로는 평범한 사람이 변화하는 과정을 그린 글입니다.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때로 세상을 바꾸어야 하기도 하는 게 냉엄한 현실이기도 하고 작은 계기로 시작했지만 희망을 그린 글입니다. 다만 주인공이 바뀌게 되는 계기가 단지 매력적인 한 캐릭터로 인함이라는 게, 그리고 둘의 대사로 그 과정이 이루어지는 게 아쉽습니다. 그리고 인물을 바뀌게 한 사람의 주요 특징이 매력적인 인물이라는 것도 좀 아쉬웠습니다. 자칫 매력적인 인물, 친해지고 싶어지는 인물이라 따라간 것처럼 보일 수 있어, 주제의 힘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좀 더 깊이 다뤄볼 만한 부분들이 보이는데 그 부분들을 더 파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새운 님의 {푸른 꽃}은 실제 사건이 강렬하거나 아련하지는 못한데, 묘사나 서술에서 분위기를 잡아 이야기를 억지로 끌고 갔습니다.
시작 부분 서술은 굉장히 현대적인데 알고 보니 나름 판타지 풍의 세계였습니다. 시골 마을인 걸 지나 판타지 적인 요소가 있는 세계라는 게 너무 뒤늦게 보여서 괴리가 느껴집니다. 초반에 서술한 인물 묘사와 실제 인물의 행동을 서술한 후반부 인물 서술 사이에 차이가 있습니다. 글을 쓰면서 변화한 부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퇴고를 하면서 앞뒤 서술과 설정과 분위기 등을 맞춰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전후관계를 잘 보면서 퇴고를 하면 더 좋을 듯 합니다.
군더더기가 좀 많은데 좀 더 가지를 치고 핵심 부분을 강화하면 좋겠습니다.
문장이나 서술에 멋을 부리려고 한 게 좀 보이는데 이야기에 힘이 있을 때 문장도 자연히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기본 골격이 단단하지 못한데, 서술과 몇 가지 묘사로 분위기를 만들고 감정이입을 할 거리를 찾은 듯 합니다. 진짜 이야기도 아련해야, 이런 형태의 묘사나 서술도 맛이 살 수 있습니다.



레이 님의 {행복 과자}는 아이디어가 중요한 꽁트였는데, 정말정말 간결하게 꼭 필요한 것만 넣었다면 결말에서 더 터지는 맛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에레브 님의 {1999년, 매미를 위하여}는 모성에 의해 받은 상처(어머니의 자살)를 비록 일그러지긴 했으나 다른 모성에 의해, 막장까지 갈 뻔한(살인자로 복역) 인생을 구원받은 이야기였습니다.
어릴 때 어머니가 자살하기 까지 아무 것도 몰랐던 자신, 엄마가 고통 속에서 자살할 때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매미소리 시끄럽네, 이러고 자버린 나에 대한 가책 속에서, ‘나’는 일그러진 청소년으로 자랍니다. 그리고 일그러진 형태로밖에 모성을 표현하지 못하는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청소년이긴 해도, 아주 어릴 때와는 달라서 그녀에게 고통을 주는 존재를 없애줍니다. 물론 자신의 인생은 막장으로 몰아가게 될 방법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모성에 의해 구원을 받습니다.
하지만 순간의 구원은 받았다 해도 이 아이의 앞날은 여전히 불안정합니다. 죽인 줄 알았던 애의 보복이라는 자잘한 문제 이상으로, 또 다시 갈 곳을 잃은 모습으로, 어린 시절 어머니의 자살 앞에 아무 것도 못했던 무력했던 때처럼, 또 다른 어머니의 자살 앞에 무기력하게 그 때와 같은 매미소리를 듣습니다. 글을 쓴 이는 이에 대해 아무런 힌트도 주지 않고, 아이를 그저 가혹하게 내버려 둡니다.
이런 글은 글을 쓴 이의 내면, 불안정, 절망, 좌절, 결핍, 사방이 막힌 느낌, 그런 고통과 아픔 속에서 뽑아내게 되는 글입니다. 자기 내면의 고통, 불안, 아픔, 상처, 절망, 좌절, 이런 것들을 작품으로 어떻게 승화할 수 있느냐에 따라 작가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 혹은 그 고통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하나의 이야기로, 소설로 작품으로 읽히느냐, 혼란스러운 독백으로 읽히느냐 갈린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직업적인 의미에서 '작가'가 된다는 건 단지 좋은 작품을 쓰느냐 마느냐의 문제만은 아닙니다만.) 이 글은 많은 공을 들인 글이고, 아직 날것이 많이 남아있지만,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시켰고,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보이는 글이었습니다.
69호 거울 독자우수단편 가작으로 선정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ltpimento @ paran.com 으로 우편물 수령할 주소, 우편물 수령하실 분 성함, 전화번호(택배발송시 필수)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건필하세요.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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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d Hatter 09.02.27 23:55 댓글 수정 삭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엄마가 뛰어내린 곳은 아직 정신병동이 아니었어요... 제가 모호하게 쓴 탓이죠. ^^
    독학으로 글쓰려니 어렵네요... 소설작법에 대한 책은 많이 읽어보았지만 아직 큰 틀도 잡지 못한 것 같아요. 이전보다는 나아진 것 같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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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퓨탄 09.02.28 02:49 댓글 수정 삭제
    평 감사합니다. _(__)_
    원래 의도가 재창조가 아니었던 관계로... 맥이 빠지셨다니.. 제가 죄송하네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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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 09.02.28 10:40 댓글 수정 삭제
    평가해 주신 거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No Profile
    dcdc 09.02.28 15:10 댓글 수정 삭제
    확실히 요즘 쓴 제 글들이 모두 독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 같아서 많이 자책 중입니다...
  • No Profile
    세이지 09.03.01 20:47 댓글 수정 삭제
    이번에도 한방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올려놓고 며칠간 생각을 해보니 확실히 그런 것 같은데요. 문제는 항상 올려놓고 한참 뒤에야 잘못 한다는 걸 안다는것이죠...T.T 매번 항상 같은 실수를 하는 느낌이네요...;; 언젠가는 깔끔하게 마무리된 글을 올리고 싶네요...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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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oojongmo 09.03.03 23:38 댓글 수정 삭제
    처음 써보는거라 올려놓고 쑥스러워서 다시는 안 들어왔었는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No Profile
    에레브 09.03.05 23:01 댓글 수정 삭제
    요새 정신이 없어서 오늘에서야 확인했습니다.

    사실 수정작업을 거치고 다시 올리려고 했었는데 민망하네요.

    아직 가다듬어지지않은 부분이 한, 두 군데가 아닌데 부족한 제 글을 뽑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No Profile
    270 09.03.06 13:12 댓글 수정 삭제
    헛 전 저번에 평이 나와야 되는 줄 알고 이상한 생각 했었는데(?) 봐주셨군요!

    습작도 못 되는 못난 글들을 읽으시느라 고생하셨겠군요....

    친절한 말씀 감사합니다. 다음엔 좀 제대로 써서 올리겠습니다.
  • No Profile
    mirror 09.03.09 14:27 댓글 수정 삭제
    에레브 님/ 거울에서는 독자우수단편에 선정되신 분들께 책을 한 권씩 보내드립니다.
    ltpiemento @ paran.com 으로 우편물 수령하실 주소, 성함, 전화번호(택배 발송시 필수) 보내주세요. ^^
  • No Profile
    에레브 09.03.19 01:46 댓글 수정 삭제
    전에 메일 발송 보낸 게 착오가 있었나 봅니다. 수고스럽게 해서 죄송해요. 메일은 다시 보냈습니다.
  • No Profile
    mirror 09.03.19 18:34 댓글 수정 삭제
    에레브/ 메일이 오지 않았습니다. 메일 주소 적어주시면 먼저 메일 드리겠습니다.
  • No Profile
    에레브 09.03.20 14:26 댓글 수정 삭제
    보낸메일함엔 있는데 왜 이럴까요 ㅠ; 다시 한번 더 메일보내봤는데요.

    hamu92@naver.com
  • No Profile
    mirror 09.03.20 18:13 댓글 수정 삭제
    에레브/ 메일 받고 답메일 보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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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16 2012.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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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3 2012.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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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1 2011.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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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3 2011.07.30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5 2011.06.25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3 2011.05.28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6 2011.05.02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 발표 5월 2일까지 지연됩니다.1 2011.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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