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심사대상이 되는 글이 현저하게 적은 한 달이었습니다. 낯익은 작가들보다 낯선 작가들이 많아지는 것도 최근의 추세인 듯합니다. 이번 달에는 작가 나름의 철학이나 사변을 담고자한 글이 많았습니다. 인물이나 사건 등의 소재를 통해 주제를 구현하기보다 이야기 군데군데에서 사변을 풀어내고자 한 노력도 이번 달 글들의 특징입니다. 자신이 존재하는 환경이나 자기내면을 성찰하는 특성을 지닌 작가들은 종종 어떠한 사변이나 사상에 이끌리곤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작품 세계에 접합하고 싶은 욕구를 왕왕 느끼기도 하지요. 하지만 작가 자신이 그러한 철학을 다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진정한 성찰이 없는 모방에 그치거나 두서없이 장황한 허세에 그치기가 쉽습니다. 때로는 다른 작품에 들어있는 표현을 자기 식으로 살짝 바꾸어 재탕한 것처럼 보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같은 주제라도 나이, 경험, 연륜 등에 따라 성찰하는 깊이와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집니다. 소박하더라도 자신이 다룰 수 있는 깊이와 표현으로, 주제를 “체화”하여 다룰 때 독자에게 진정한 감동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 현재 자신이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소재 및 주제와 깊이, 또한 그 한계 안에서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지점이 어디인지 고민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85호는 독자 우수단편 우수작이 없이 가작을 한 편 선정했습니다. 퍼플 님의 ‘아내의 눈물’입니다. 축하드립니다.
 5월 16일부터 6월 15일 자정까지 올라온 글 중 작가분이 삭제하신 글들을 제외한 총 11편의 글 중 심사대상이 된 글은 10편이었습니다. 심사대상에서 제외된 작품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분량 미달  
 날개 (응햙? 원고지 43매)


르샤마지끄 Le Chat Magique : 예담

A : 마법 고양이라는 글의 제목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프랑스어로 제목을 지은 이유가 독자와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목적에 맞는 선택이겠습니다만, 마법 고양이라는 의미가 잘 전달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습니다.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화자의 정서에 따라 사랑했던 사람이자 이복남매인 ‘그 애’의 죽음이라는 돌연한 사건을 풀어가면서 글 전체가 정서적이며 잔잔하게 흘러갑니다. ‘나와 그 애는 벚꽃잎이 눈송이처럼 휘몰아치던 때 남매로서 만났고, 마지막 눈이 꽃잎처럼 휘몰아치던 때 남매로써 헤어졌다’ 같은 감상적인 서술이 글 전체를 지배하죠. 자칫 한류 드라마를 연상시킬 수 있는 진부한 소재에, 동갑인 이복형제에게 깍듯이 ‘누나’라는 호칭을 붙이는 어색함, 남자 고등학생 같지 않은 말투 등 글 전체에 비현실적인 부분이 많이 보입니다만, 글 전체의 정서적인 치밀함 때문에 글의 단점이 두드러지지는 않네요. 하지만 감정적인 서술에 빠져들지 않는 독자라면 이런 단점을 놓치지 않겠죠.

B : 고양이를 따라가며 이복 남동생에게 가진 감정을 더듬어 가는 구성이 이야기와 잘 어울립니다. 이복남매 사이에 형성되는 연애감정은 금기에 이끌리는 소녀들이 즐기는 문학에 곧잘 사용되는 흔한 소재이고, 대개 전형적인 전개와 결말을 가집니다. 소재가 지닌 비극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감정을 극적으로 이끌어내는 것도 이러한 소재를 다룬 이야기들이 가지는 전형성입니다. 이 글 역시 그러한 전형성에서는 한 걸음도 더 멀리 나아가지 못한 듯합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소년소녀들의 대사, 특히 소년의 모습은 소녀들이 소년에게 흔히 투사하는 에로스적인 판타지를 그대로 드러내지요. 그러나 차분하고 흡입력 있는 심리묘사와 감수성을 통해 글이 유치함이라는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간신히 버틴 것에는 감탄을 보낼만합니다. 기 작가는 기묘한 모순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것은 다음 글의 평에서 논하도록 하겠습니다.

숨 : 예담

A : 세상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글 전체를 지배합니다. 감성적인 문체는 앞의 글과 마찬가지입니다만, 이 글에서는 감성 자체가 조금 더 날 것에 가깝습니다. 여고생을 연상시키는, 다소 과장되게도 느껴지는 감수성을 따라서 글이 흐르는 가운데, 만화 대사처럼 전형적인 대사들이 글의 현실성을 떨어뜨립니다. 일부 장르에서는 이런 문체와 감성 흐름을 선호할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과도한 감정 노출을 부담스럽게 느낄 독자들도 상당 수 있으니까요.
이 글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천사’의 캐릭터가 만화나 전형적인 라이트 노벨에서 등장하는 기성품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것도 문제군요. 대사도 행동도 묘사도 개성적인 부분이 없다 보니 글 자체도 전형적으로 느껴지고 맙니다. 이런 캐릭터가 등장할 법한 글과는 다른 주제,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위험할 수 있는 부분이네요.

B : 앞에 언급했듯이 매우 인상적인 감수성과 표현을 가진 작가는 ‘숨을 쉴 수 없는’ 질식감을 썩 잘 묘사해 냅니다. “르 샤 마지끄”와 더불어 이글의 바닥에는 소중한 존재가 되고 싶은, 사랑을 받고 싶은 주인공의 탐욕스러운 욕망이 절박하게 흘러갑니다. 그러나 역시 만화에서 끄집어낸 듯한, 또한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구현하지 못한 소재와 상황이 아쉽기 그지없습니다. 작가의 모순은 빼어난 감수성 및 표현과 대조되는, 얼핏 보면 유치해 보이는 감성입니다. 차분하게 전자를 내세우며 후자를 감추려고 애쓰지만 방심하는 순간 “특히 대사에서” 튀어나오곤 하지요. 만약 작가의 연령이 어리다면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습니다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대화를 구성할 때 신중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작가의 감수성과 오롯이 내면을 더듬어 가는 감성적인 표현에서 많은 가능성을 봅니다. 소녀 취향이 강한 판타지에서 자신만의 색깔이 담긴 소재로 이행하면서 그런 가능성이 무르익어 가길 기대합니다.

채굴자 : 먼지비

A : 초반부부터 절반 정도까지는 감탄을 연발하면서 읽었습니다. 땅 사람들, 별의 주인, 불길을 타고다니는 이들, 등의 신화적인 호칭들이 등장하면서 현실을 빗대고 있는 것 같은 흥미로운 사건들이 글의 초반부까지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인물들이 개인이 아니라 집단화가 되면서 개개인의 감정이 제거되어 작가분의 장점이 극도로 부각된 점도 돋보이네요. 서구 열강과 개발도상국간의 문제 같기도 하고 종교의 문제 같기도 한 모호하면서도 다양하게 해석 가능한 서술들이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글이 중반을 넘어가면서 작가 자신이 글 전체에 휘둘려 글을 마무리하지 못하는 느낌이 점점 고조됩니다. 처음부터 이 글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게 될지 계산한 것이 아니라 손 가는 대로 글을 쓴 것처럼 글이 비약적으로 초월합니다. 게다가 여러 가지 소재가 뒤섞이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말죠. 글의 결말부에서는 ‘무엇에 도달하든 무슨 상관이랴?’ 라는 말로 작가 자신이 모든 것을 포기한 것 같은 느낌까지 드네요.
작가가 이 글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글의 주제에 대한 통제권만큼은 작가가 최후까지 놓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 때에는 아래가 없으니 위도 없을 것이고, 아무도 하늘과 땅을 갈라놓지 못할 것이며, 채굴할 것이 없으므로 채굴자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사변적인 문장을 놓는다고 해도 독자가 얼마나 동조할지는 의문이네요.

B : 매우 흥미로운 글입니다. 단, 너무 많은 주제와 소재들이 얽혀 있어서 도중에 길을 잃은 것이 흠이라면 흠이겠습니다. 땅을 파내려가는 땅 사람과 하늘 사람의 관계부터 채굴하는 행위까지 계속해서 자본주의라는 주제가 연결되지만, 새롭게 발견하는 도시와 만날 때마다 다시 새로운 소재와 주제가 등장하면서 글은 한없이 복잡해집니다. 독자로서는 흥미를 읽기 쉽겠지요. 기 작가가 가진 장점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지만, 소재나 주제의 가짓수나 사변의 폭을 조금 줄여보는 것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결말은 그리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 동시에 글의 즉흥성을 고백하는 느낌이 든다는 말을 덧붙입니다.

달걀 프라이 소년의 생애 : 이머루

A : 달걀프라이라는 요리가 존재하면서도 달걀에서 인간이 태어나기도 하는 기묘한 설정이 독특하고 매력적입니다. ‘소금은 구하기 어려워’ 라는 의미심장해 보이는 서술이 초반부부터 나타나는데다가, 안테나가 부러진 기계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한다는 부분 역시 독자가 생각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네요. 다수결로 죽는 사람을 결정한다는 아이러니, 달걀 인간이 다시 엄마와 철수의 역할을 맡게 되는 결말부도 잔재미를 줍니다.
하지만 글 전체의 서술이 단편적인 문장으로 이어지면서 글의 매력을 잘 살려내지 못한 게 아쉽네요. 짧은 글 안에 너무 많은 사건이 일어나고 많은 상황들이 연출되면서, 그 상황들이 전체적으로 유기적으로 결합되지 못하고 의미 없이 나열되다 보니 독자가 글에 몰입하기 힘들어지는 점도 생각해 보셔야 하겠습니다.

B : 인간이 지닌 부조리를 기계 인간을 통해 풀어내면서 달걀이라는 소재를 활용한 점이 독특합니다. 드러내고자 한 주제는 뚜렷하지만 구성이 산만하고, 주제보다 소재의 독특함을 살리는 것에 치중한 점이 아쉽습니다. 사건들이 주제와 유기적으로 엮이지 못하고 의미 없이 나열되는 점 역시 흠인 것 같습니다.

너머를 넘어 저 너머 : 김문기

A : 초반부에 등장한 ‘고요’라는 캐릭터는 작가가 마감을 하게 만드는 존재로 명성이 높습니다. 호칭이나 여러 가지 서술들이 흥미롭고 매력적이고요. 하지만 고요가 여행을 떠나면서부터 전반부는 왜 등장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후반부의 전개는 극단적으로 흐릅니다. 마지막 결말은 고요가 ‘진화’를 선택했는지 아닌지 해석의 여지가 있어 보이네요.
완성도 높은 예술을 추구한 예술가가 선택한 진화가 인간의 형태를 버리는 형태라는 것이, Doctor who 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전체적으로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글의 분량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모두 담아내지는 못했네요. 글의 분량의 상당 부분이 주제와는 그다지 관련이 없는 전반부의 ‘고요’의 일상에 소비되면서 글 전체가 균형을 더 잃고 있습니다.

B : 작가로서의 자의식이 초반에서 돌출하지만 중심소재는 인간의 진화입니다. 생물학적인 진화가 아니라 의식적인, 또한 상징적인 형태로의 진화를 통해 인간에 대한 성찰과 철학을 담으려한 노력이 엿보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성찰과 철학이 작가의 욕심에 비해 피상적인 수준에 머무르는 동시에 비슷한 주제를 다룬 다른 글들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를 체화해서 자신만의 색깔을 갖추면 좋을 것 같습니다.

Da Capo : 해나

A : 전작인 ‘안개 속 해당화’에서는 인생의 깊이를 깨달은 노인이 등장하더니 이번 작품에서는 더 나아가 신들의 대화가 등장합니다. 인간이 만들어 낸 존재라고는 하지만 인간들은 자신들을 초월한 사고력과 통찰을 가진 존재로서 신을 상상한 것이지, 성찰한 철학자의 시각에도 미치지 못할 평범한 시각의 존재로서 신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피상적으로 철학적인 말투를 사용하곤 있지만 그들의 대사는 단편적인 것에 그쳐 버리는 게 아쉽네요.
‘우리를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아이들의 운명이 여태껏 순탄한 적은 없었지. 남다른 감수성을 지닌 사람의 삶은 고달프게 마련이니’ 라는 신의 대사는 작가가 인물들의 입을 빌렸을 뿐인 것 같군요. 자칫하면 창작하는 사람들, 작가 자신에 대한 변호로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들이 천 년을 버티어 올 수 있었던 힘, 그것은 그들에게 선사되는 밤이며 거짓 없는 이야기이다‘ 같은, 철학적으로 보이지만 의미가 모호한 문장들이 글을 두텁게 포장해 단편적이고 일관성 없이 나열된 에피소드들이 독자들에게 더 와닿지 못합니다. 치밀하게 문장 하나 하나를 신경써서 쓰시려는 것은 보입니다만, 글 전체의 맥락과 흐름, 그리고 그 안에서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을 얼마나 절실하게 담아내는지 고민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B : 무구한 시간을 관통해서 인간을 지켜봐온 존재의 시선을 표현하려면 얼마나 많은 성찰의 시간이 필요할까요? 유감스럽게도 작가가 성찰한 시간은-그것이 생물학적인 시간이든 창작을 위해 투여한 시간이든 간에-충분하지 않은 느낌이 듭니다. 인간의 관점과 시각을 뛰어넘은 존재들의 시각에 인간의 관점과 시각을 투사하는 것에 어떤 의미를 두시는지요? 뚜렷한 사건이 없다는 점에서 수필로 느껴지기도 하는군요. 그러나 내면의 눈으로 사물과 현상을 관찰하고 성찰하는 힘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다음에 나타날 글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이 그 힘에 내포되어 있을 것 같군요.

화이트 독(White Dog) : 베어울프

A : 어머니를 잃고 새어머니와 살게 된 여고생과 초등학생 남동생이 새어머니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충분히 있을 법한 감정의 흐름을 다루고 있는 글이네요. 가공의 개를 그림으로 그려 물질화 할 정도로 강하게 원하는 남동생의 개성이 이 글에서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새어머니에 대해 악감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상태로 그쳐 버리는 소극적 여고생에 비해 초등학생인 남동생이 훨씬 적극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인물들이 말하는 대사가 모두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어서 글 전체의 깊이도 함께 떨어뜨리고 있네요. 아버지의 반응, 새어머니의 히스테리까지 포함해서 이 글에선, 실제 우리가 입 밖에 낼 법한 ‘자연스러운’ 대사는 거의 없습니다. 게다가 [따지듯 항변하다], 같은 부자연스러운 표현에다가 ‘흰 명주실을 뚝뚝 끊어놓은 것 같은 털’ 같은, 극중 인물의 나이를 생각하면 나오기 힘들 비유까지 섞여, 글 전체가 더욱 산만해졌습니다. 인물의 설정과 개성을 작가 자신이 정확하게 파악하고 글 안에 녹여낼 때 글이 무게감을 지니게 된다는 점을 생각하셔서 다음번에 더 좋은 작품 써 내시길 기대하겠습니다.

B : 딱히 뚜렷한 주제 없이 사건을 전개한 스토리텔링 형식의 글로 보입니다. 기승전결이라든지, 갈등의 해소 등 구성은 모범적으로 잘된 글입니다. 그러나 보다 극적이고 참신한 사건을 구성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화이트’라는 이름의 개와 ‘서천꽃밭’은 다소 이질적이어서 생뚱맞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만약 그런 이질성이 의도적이었다면 그 이질성을 사건 속에서 잘 드러내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글 전체 분위기의 통일성을 위한 조치가 있었으면 좋았겠군요.

유쾌한 상상 (In the Middle of Obsessive Imagination) :  은이씨

A : 심장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남자. 비현실적인 사건과 상황이 현실적인 사건과 함께 거칠게 섞여 있는 이 글에서는 교통사고를 당하고도 움직이는 여자, 단역 한 명을 제외하면 모두 남자네요. 성장 배경도 다르고 성격도 다를 이 인물들은 이름이 구체적으로 모두 등장하는데도 하나같이 캐릭터가 구별이 힘듭니다. 시점이 변화하면서 ‘그’가 지칭하는 인물이 변화하기까지 하는데, 서술도 대사도 모두들 많이 닮아 구별이 힘듭니다. 혼자서 모노드라마의 인물들을 모두 담당하고 있는 배우의 모습이 떠오를 정도네요.
번역체의 문장이 작가가 의도하신 - - 로 단절되고 대명사가 너무 많아, 이야기의 비현실적인 점 때문이 아니라 글 자체의 문제 때문에 독자들이 이해하기 힘든 글이 되어 버렸습니다. 작가는 얼핏 감정의 흐름에 집착하는 듯도 보입니다만, 들여다보면 정작 그들의 감정보다는 대사를 이용한 2중 3중의 감정 여과를 거쳐 나타나나는 인물들의 감정은 흐릿하고 불명확하네요.
작가가 쓰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하고 글을 써 보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매달 끊임없이 언급하는 부분입니다만, 글의 주제를 드러내는 데 필요 없는 글은 과감히 제거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태는 것이 글의 퇴고 작업이 아닐까요.

B : 구성이 산만하고 사건들은 흩어져서 일관성을 이어가지 못합니다. 조각보처럼 이어진 사건들을 통해 작가가 무엇을 드러내고자 하는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심한 번역체, 거친 문장, 전달보다는 장황함에 치중한 문장 등이 많은 아쉬움을 자아냅니다.

학원 알바 : 김정남

A : 경제적으로 약자인 계층에 속하는 20대의 젊은이의 시점으로 안정적으로 서술된 좋은 글이었습니다. 글을 쓰기 전에 미리 플롯에 대해 고민하고 구성한 다음에 글로 옮긴 글에서만 느껴지는 안정된 느낌이 글 전체를 감쌉니다. 필요 없는 군더더기 문장도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1인칭의 주인공의 거칠고 반항적인 감정이 서술에 녹아들어 있어서 때로는 날 것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 조금 아쉽네요. 인물의 개성을 잘 살렸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감정이 여과 없이 드러난 글 자체는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부유층에 대한 증오가 경애엄마에게 폭발했다가 의외의 반전으로 글이 방향을 전환하는 부분도 신선했습니다만, 글말은 다소 서둘러 낸 느낌이 강하네요. 글 전체의 분량이 원고지 70매 정도입니다만, 결말부분에 조금 더 살을 붙여 보면 오히려 글이 더 균형이 잡힐 듯합니다. 최종적인 승자가 경애엄마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듯이 경애엄마를 동정하는 주인공의 독백은 기성품처럼 전형적으로 느껴지네요. 또한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명으로 장면 전환을 하는 것은 장면 전환에 필요한 서술이나 묘사에 대해 고민하기 힘들어하는 작가들이 택하는 손쉬운 방법일 수도 있으니, 조금 더 고민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B : 계층으로 인한 위화감과 그로 인해 발생한 사건의 추이가 흥미롭게 잘 구성되었습니다. 경애엄마와 거래하는 지점에서 사건이 한 번 뒤집히면서 글의 재미가 증폭됩니다. 그러나 한껏 고조되었던 사건이 정해진 수순에 따라 해결되면서 재미가 반감된 점이 아쉽습니다. 계층으로 인한 위화감, 범죄, 개인의 탐욕이 뒤섞여서 주제가 모호해진 것도 아쉬운 대목입니다. 범죄를 중심소재로 해서 전자를 부각시키고 싶었는지, 후자를 부각시키고 싶었는지 분명했다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아내의 눈물 : 퍼플

A : 연고도 없는 아내가 돌연 실종된 지 3년 후,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아내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남편의 절절한 감정이 글의 전체를 지배합니다. 사건의 시작으로 시작하는 손쉬운 방법 대신에 많이 고민해 만든 글의 시작도 인상적입니다. 외국 땅의 한 아이와 그 엄마의 모습에서 화자의 상실감이 드러납니다. 짙은 슬픔과 두통에 시달리는 ‘나’의 자해가 슬쩍 언급되지만 섬세하게 묘사된 감정을 따라 읽다 보면 그 자해까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이 느껴지지요.
우연히 읽은 여행 책자 속의 사진, 그 안에 아내와 닮은 여자가 찍혀 있다는 단서 하나로 여행을 떠나는 남자의 눈에서 보이는 외국의 풍경은 기성품처럼 어딘가에서 본 듯한 전형적인 서술이 아닙니다. 과장되게 묘사에 집착하지 않고 철저하게 주인공의 시점에 따라 간결하게 배경의 특징을 짚어갑니다. 그런 주인공이 만나는 사람들 하나하나도, 대사나 사건이 많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모두가 다른 인물이라는 개성을 띄고 있습니다. 그들의 대사가 작가가 상정한 개성에 따라 정확히 구별이 되기 때문이지요. 작가가 세밀하게 구상해 냈을 현실감 안에서 아내를 찾는 여행은 점점 더 주인공의 감정처럼 긴박감이 더해집니다.
1년 째 세계를 떠돈 결말은 주인공이 회상해 왔던 과거가 실상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는 의외의 폭로로 파국을 맞습니다. 과거의 ‘실체’를 알려주는 복선이 벌써 글의 초반부에서부터 있었다는 것을 독자는 그제야 깨닫습니다. 그리고 ‘나’의 비극적 결말의 순간에 나는 아내의 실종, 이 긴 여행의 원인이 된 그 사건의 실제 원인이 되었던 일을 떠올립니다. 작가가 독자에게 던지는 최후의 진실입니다.
구성과 전개 면에서 이 글은 더 이상 손을 대고 싶은 부분이 없을 정도로 매끈하고 세련되어 모범적인 예시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미 다른 사람들이 많이 다룬 사회적인 소재가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이 글만의 독특한 개성이 부족하다는 점이 아쉽네요. 잘 만든 단편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난 것 같은 글입니다만, 이야기 자체의 개성이 부족해서 독자의 마음을 오래 붙잡을 매력적인 글이 되지는 못했다는 것이 아쉽네요.

B : 반전을 매우 잘 구성한 깔끔한 글입니다. ‘나’의 시선에서 사건을 전개하다가 타자인 아내를 만난 순간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면서 독자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후려치지요. 반전까지 ‘나’의 입장에 독자들을 끌어들인 흡입력 역시 강점입니다. 결말부분에서 ‘아내의 눈물’을 나의 입장에서 묘사한 부분은 글 전체를 장악한 나의 감성과 맞아떨어지면서 비극을 극대화합니다. 이 부분 때문에 글은 단순히 사건의 반전으로 끝나지 않고 나와 아내의 비극을 드러내는 인간적인 글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양면성에, 혹은 인간 자체에 지닌 작가의 관심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다만 이야기의 소재나 구성이 참신하다고 볼 수 없는 점이 다소 흠입니다.

85호 독자 우수단편 가작에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거울 독자우수 단편에 선정되신 분들께는 책을 한 권씩 보내 드립니다. euseoha @ gmail. com 으로 우편물 수령할 주소, 성함, 전화번호 (택배 발송시 필요)를 보내 주세요.

댓글 2
  • No Profile
    김진영 10.06.26 14:17 댓글 수정 삭제
    아마 이번 달은 중, 고등학생의 기말고사와 대학생들의 1학기가 끝나는 시기라서, 기말고사 준비와 학점관리 때문에 글을 쓰는 사람들이 더디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 달과 달리 낯선 분들이 많이 띠였던 거겠지요.
  • No Profile
    퍼플 10.06.29 16:45 댓글 수정 삭제
    좋은 평가 감사드립니다. 좀 더 참신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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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7 201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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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작 안내 선정작이 없습니다. 2013.06.01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3 2013.05.31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3 2013.04.30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4 2013.03.29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2 2013.03.01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6 2013.02.01
선정작 안내 꼭지 소개 2003.06.26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3 2012.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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