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대학생의 방학이 시작된 달이어서였을까요, 이번 달은 긴 글이 많이 눈에 띄어 심사단으로서는 즐거운 비명을 질렀습니다. 마감인 15일에는 5편의 글이 한꺼번에 올라오기도 했습니다만, 심사평은 매달 변함없이 올릴 예정이므로 15일 전에 올리려고 너무 무리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번 달의 심사 제외 작품은 아래와 같습니다. 분량의 측정은 아래한글 프로그램의 기본 여백으로, 문단 구분은 분량에서 제외하여 계산하였을 때 A4 5장 이하의 작품입니다.

1) 분량 미달  
        모모지세 : 니그라토  
        그리움(혹은 본격 귀신 나오는 이야기) : 량아  
        ㄱ에 대한 짧은 이야기들 : 湛燐
        쭈꾸노미야키 : 湛燐  
        시간 : 강성훈  
        사반트 후작국 : 니그라토
        정신이 홀리다 : 피러휀
        안녕 카사노바 - 전초전 : 나유타1060

2) 사흘, 한달, 더 많은 시간 - 더글라스 라이트 : 안지형  :: 외국 기성 단편의 번역문입니다. 독특한 분위기의 단편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퍼온글을 심사에서 제외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유로, 기성 외국 작가의 단편이므로 심사에서 제외하였습니다.




거제도의 용 두 마리 - phantahunter

A: 중반 이후까지는 매끈하게 이어지는 구성으로,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번 달에 공개된 작가분의 글 가운데 가장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서술이 적고 대화가 많은 문체는 자칫 사건 진행의 대부분을 대화 안에서 해결해 버리는 등 잘못하면 작가가 글을 편하게 써 버리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만, 이 글에서는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면서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고장의 분위기에도 잘 녹아들어서 성공적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조각이 꼽혀 있다’ 같은 맞춤법 오류가 글의 품위 전체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은 주의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다만 중반 이후, 결말 부분으로 단락 구별이 되어 진 최반장의 대화 부분부터, 잘 끌어온 이야기를 작가의 손으로 망가뜨리고 말았습니다. 용 두 마리의 상징성, 사채업자의 문제 등 충분히 결말에서 완성도 있는 소설로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설정들을 작가 자신이 이건 이러하다 저건 저러하다고 설명해 버리면서, 그것이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한 바가 아니었다고 주장합니다. 이 형사의 성격이나 김 할아버지의 개성을 드러내 주던 생생하던 대화가, 최 반장과 김 형사의 말장난으로 모두 김이 빠져 버립니다. “알고 봤더니” 로 이어지는 작가의 해석은 작가가 이 글을 무엇 때문에 쓴 것인지 의문스럽게 만듭니다. 글 전체가 용두사미가 되면서 진지하게 ‘용’이 무엇인가, 할아버지가 본 것은 무엇인가를 풀어 보려고 하던 독자는 맥이 빠질 뿐 아니라, 작가에게 우롱당한 기분까지 들 수 있습니다.
작가분이 그저 가벼운 소품으로 써내신 글이라면 지나치게 심각하게 읽은 필자의 잘못이겠습니다만, 글의 중반까지의 분위기를 이어가면서 사회적인 메시지를 녹아낸 글이라면 훨씬 좋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B: 본 작가는 가끔 글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힘을 많이 주는 편입니다. 너무 많은 것들을 보여주려 하고, 항상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려고 지나치게 애를 쓴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번 글은 힘을 상당히 뺀 흔적이 보입니다. 덕분에 서사나 흐름의 완급이 모두 완만한 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말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거기에만 몰입해 버리는 성급함을 결국 드러내고 맙니다. 바다마을의 풍경이나 한산한 경찰서의 느낌을 잘 살려서 진행되던 글은 ‘용’으로 만드는 말장난을 만난 순간 완전히 방향을 읽습니다. 말장난에 심취한 작가는 무엇 때문에 이 글을 쓰고 있는지 잊어버립니다. 말장난을 실컷 즐긴 작가는 할 일은 다했다는 듯이, 한 단락으로 의뭉스럽게 글을 마무리 짓습니다. 심지어 용 두 마리의 의미를 ‘그들 모두는 잘 알고 있었다. 김인석 할아버지에게 용 두 마리가 어떤 의미인지.’라고 한 줄로 요약해버렸습니다. 그 의미야말로 소설 전체를 장악해야 하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는 작가의 머릿속에서 비약되고, 혼자만의 비밀로 남아버립니다. 독자를 염두에 두지 않은 혼자만의 유희가 목적이었는지는 판단하는 것은 작가의 몫입니다. 하지만 후자라면 남에게 읽힐 필요가 없겠지요.




하얀 뱀을 든 남자 - phantahunter

A: 작가분의 소설 스타일을 보여 주는 작품을 보여 주시겠다는 서두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무척 진지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읽었다고 먼저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글은 말씀대로 작가분의 특징이 무척 극단적으로 드러난 글입니다.
다만 다른 글에 비해서 대화는 적은 편이고 서술은 많은 편입니다만, 서술 중에 필요한 부분 외에도 글에서 필요 없는 군더더기 표현이 눈에 띕니다. 청년들이 오랜 춤을 추는 장면에서는 다리의 움직임이나 팔의 모양을 마치 설명문이나 다큐멘터리처럼 서술하고 있습니다만, 그 동작 자체가 글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못합니다.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날 것으로 서술하는 방식이 아닌, 소설 전체에 녹아드는 묘사의 방식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요.
신화적인 글의 구성을 취하면서 실상은 신화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만, 그런 결론까지 다다르는 길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길고 지루합니다. 뱀을 든 남자가 등장하기까지, 그리고 그 뒤의 결말까지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과한 양념으로 버무려져 독자는 거한 상차림에 질려 버리는 느낌입니다. 전체적으로 장편의 서술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 독자에게 주어지는 정보가 과다하기 때문에 글에서 핵심을 이루는 정보가 오히려 묻혀 버리는 실정입니다. 단편은 상징성도 중요합니다만 압축성도 중요합니다.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주제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동의를 구할 수 있는가를 숙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화를 가지고 온 심각한 이야기 안에 ‘김새는 이야기’ 같은 말장난이 들어 있으면 글 전체에 녹아들지 못하고 붕 떠버립니다. 무엇이 글에 필요하고 무엇이 과한 것인지 심사숙고 해 보시길 바랍니다. 특히 마지막의 두 문장은 군더더기입니다.


B: 작가의 장점과 단점이 모두 잘 드러난 글입니다. 의미는 의미대로, 표현은 표현대로 제각각 노는 글입니다. 원시 시대의 인간들이 만나게 된 하얀 뱀을 든 남자를 통해 인류문명의 기원이 인류가 아니라는 암시를 남기는 글입니다. 원시시대 전사 사이에 있는 권력구도, 수렵생활은 잘 그려졌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역사가 허구일지 모른다는 흔한 소재를 신선하게 해석하는 면은 부족했습니다. 비슷한 결말의 글이 많음은 작가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주제보다 역동적인 장면 묘사에 집착하여 주인이 되어야 할 주제가 변두리로 밀려나버렸습니다. 한창 역동적인 장면과 전사들의 모습을 묘사하며 즐긴 작가는 ‘겨우’ 몇 단락으로 글의 주제를 나타내려고 애를 씁니다. 잘 이끌어 나가던 글의 구성은 하얀 뱀을 든 남자를 만난 순간부터 부서지기 시작하다가 결말에서 모래성처럼 완전히 무너져 내립니다. 전사들의 시선을 통해 정체불명의 ‘하얀 뱀을 든 남자’가 그 시대에 던지는 의미를 온전히 찾아 깊이 있는 성찰을 보여주었더라면 결말이 황당무계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으리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사타크와 구트 부족의 최후 - phantahunter

A: 한 세계가 붕괴하는 계기가 된 남자와, 세계의 붕괴라는 무거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작가의 취향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글로 보입니다. 철학을 공부하시는 분이라 철학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이 글에서 주목할 부분은, 작가분의 전작 중의 하나인 [대가 대 신동]과의 공통점입니다. 천재인 소년이 교육제도의 문제로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는 결말과, ‘사타크’가 구트 부족과 맞서서 최후를 맞았지만 구트 부족도 최후를 맞았다는, 즉 실제로 옳은 것은 ‘사타크’ 였다는 것은 작가가 일관되게 [시대를 앞선 인물의 좌절]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실 세계에서는 이해받지 못한 자가 실제로는 옳았다는 것은 항상 글의 서술 밖에서 작가의 목소리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천재라는 건 늘 몰락하기 마련이고, 그건 사회가 그걸 이해할 힘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글에서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대가 대 신동]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글에서도 독자에게 ‘샤타크’의 위대함에 대해서 동조하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글의 인물들은 샤타크의 한마디에 충격을 받고 혼란에 빠집니다만, 독자는 인물들의 놀람과 감동에 동의하지 못합니다. ‘슈뜸’에 대해서 계속해서 언급합니다만, 슈뜸이 무엇인지 독자에게 이해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짧지 않은 글에서 상징과 개념을 충분히 녹이지 못한 탓입니다.
글 후반에 시와 같은 구조로 돌연 변화하는 부분이 있습니다만, 서술 구조를 바꿀 때는 그에 걸맞은 이유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는 단지 맥락이 끊어지는 느낌만이 남을 수 있으니 참고해 주십시오.


B: 제목처럼 사타크 부족과 구트 부족의 최후를 다룬 글입니다. 구트 부족은 사타크 부족을 멸망시키고, 살아남은 구트 부족의 족장 케카의 지혜는 구트 부족을 분열시키며 멸망으로 이끕니다. 갈라진 혀는 창세신화에 등장하여 신과 인간을 갈라놓았던 뱀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기존의 인식 체계를 뒤집는 패러다임으로 슈뜸이 등장합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으로 혼란되고 분열되는 원시사회의 모습에 타당성이 있기 위해서는 ‘슈뜸’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어떤 식으로 구트 부족을 혼란시키는지, 또한 기존의 패러다임과 어떤 충돌을 일으키는지 보여 져야 합니다. 패러다임이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반박, 변증법적인 패러다임의 융합이 보여야 설득력이 생깁니다. 그러한 과정을 보이려는 시도는 있으나, 패러다임의 충돌은 그저 두 부족 우두머리 간의 겉멋 든 대화에서 나타나다 그치고 맙니다. 그래서 ‘슈뜸’이 그저 겉 멋든 장면을 묘사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엉성하게 만든 단어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현학적인 포장보다 깊이 있는 성찰이 필요합니다.





갈릴레아 호수의 건축물에 관한 대화 - phantahunter

A: 니체의 ‘선악의 저편’ 서문의 인용문으로 무게감 있게 글이 시작합니다. 그리고 곧 성서 속의 이야기와 성지순례의 이야기가 나오며, 이 갈릴레아 호수가 종교적으로 신성한 곳임을 언급합니다. 그러나 글이 진행되면서, 서두에서의 철학적인 서두나 성서적인 인용은 장신구로 전락하고, 많은 인물들이 정신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격양된 글로 바뀌고 맙니다. 탐사단은 각 분야의 전문가인 지식인들과 스쿠버 다이버 등입니다만, 이들의 말투는 그다지 개성이 없습니다. 서술 전체가 번역투의 문장으로, 서구권의 문장을 그대로 우리 말로 옮긴 듯한 물주구문과 과장된 대화체가 글 전반을 흐르고 있습니다.
‘안경테를 들어 올리는 동작’ 등으로 인물의 개성을 살리려는 의도를 보입니다만, 초반에는 20여줄 안에서 두 번이나 등장하던 이 동작은 글의 중반 이후로는 자취를 감춥니다. 누가 말했다는 설명이 없으면 대사의 주체를 알기 힘듭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므로 대사에서 그 분야의 지식을 언급하면서 개성을 살릴 수도 있었겠습니다만, 호수 밑에서 발견한 것에 대해 감탄하고 흥분하는 인물들에게서 전문가적인 견해는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작가의 단점 중에 가장 두드러진 것은, 대화에 너무 많이 의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작가는 전작에서 생생한 대화로 인물의 개성을 드러나게 하거나 글의 재미를 더해주는 효과적인 쓰임새도 보여 주었습니다만, 이 글에서는 그런 장점들은 거의 사라져 버리고 소설이 대화에 의존했을 때의 문제점만 남고 말았습니다. 글의 서술이 모두 인물의 입을 통해서 이루어지면서, 마치 라디오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처럼 독자는 인물의 대화를 통해서만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배경을 이해해야 합니다. 둥글게 깎인 모서리에 인물은 감탄하지만, 독자는 그것이 왜 감탄할 일일지 알 수 없습니다. 거기에 대화체마저 번역투이므로 독자의 몰입은 더욱 힘들어지고 맙니다. 대화에서는 과다한 정보가 쏟아져 들어옵니다만, 너무 많은 정보의 바다에 독자는 휩쓸려 버리기 십상입니다. 그러다보니, 글의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아리마의 대사 “너무 아름다워요, 저 데우스(Deus)...." 에서는 어느새 인물은 사라지고 작가의 대리자만 존재합니다.
실제 존재하는 호수를 대상으로 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호수가 바닥을 드러낸 적 있다는 것은 조사하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그 외에도 이 글에서는 그 분야의 전문가라면 할 수 없을 대사들을 전문가인 캐릭터들의 입을 빌어 말하게 해, 글 자체의 격을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글을 쓰면서 작가가 지나치게 감정이 고조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많은 아쉬움이 남는 글이었습니다.


B: 흔히 갈릴리 호수로 알려진 갈릴레아 호수 밑바닥을 탐사하던 탐사대가 ‘데우스(Deus)'라는 미지의 빛을 만나게 되고, 그것을 통하여 인류문명의 시조가 인류가 아니라는 흔한 가설을 던져본 글입니다. 인류문명의 시조로 제시된 ‘데우스’에 대한 형상화는 이것저것을 너무 많을 것을 갖다 붙이려는 시도 때문에 어수선합니다. 성서에서 끌고 온 배경, 인류학적 고찰 등은 빈약한 지식 때문에 억지로 가져온 장식품이 되어버렸습니다. 글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배경지식 부족입니다. 1986년 1월에 심한 가뭄으로 바닥을 드러낸 적이 있는 갈릴레아 호수를 2014년 다시 탐사할 필요는 없겠지요. 물론 1986년에 소설에 등장하는 건축물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각 문명마다 다양한 의미를 지니는 ‘인신공양’을 뭉뚱그려 신의 분노를 막기 위한 의식으로 이해하거나 중동문명에서 인신공양을 찾아볼 수 없다는 잘못된 가설이 거슬립니다. 정말로 그렇게 알고 있다면, 이 연구원들은 사이비죠. 문학가의 상상에 근거한 가설을 과학자가 발전시켰다는 부분은 인문학과 뚜렷하게 대비되는 이공계의 연구법에 대한 무지를 드러냅니다. 자료를 찾아보고 치밀하게 준비하지 않으신 점이 아쉽습니다. 준비되지 못한 작가의 허술함은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습니다.





검은 모래의 행성 - phatahunter

A: 결말 부분에 가면서 갑자기 맥이 빠져 버리는 작가의 단점은 이 글에서 보이지 않습니다. 글의 구성 자체에 신경을 많이 써서 퇴고하신 듯 보입니다. 전체적으로 글의 구성이 균형 잡혀 있는 것은 주목할 부분입니다.
그러나 작가는 이 글에서도 묘사나 서술의 역할까지도 대화로 해결하려고 하는 단점을 드러내 버립니다. 잿빛 사막을 묘사하면서 독자에게 그 섬뜩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것보다, 인물이 “온통 잿빛이군요. 기분 나쁠 정도로.” 라고 말해 버리면 서술은 간단합니다. 그러나 대사에 의존하게 되면 인물에 이입하지 못하는 독자들에겐 오히려 거리감을 두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주십시오.
반면에 나이가 든 교수들이 아르튀르의 비범한 지성에 놀라곤 했다는 서술은 있으나, 그가 어떻게 비범한지는 글에서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르튀르가 중요한 결정을 하고 예측을 하게 되는 것으로서 작가의 대리인이라는 느낌이 들 뿐입니다.
또한, 구성은 비교적 안정되어 있으나 글 중반에서 갑작스럽게 새로운 설정이 대두되는 것이 매끄럽지 못합니다. 보르헤스박사의 연구 내용이 관련 사건이 등장하면서 돌연 언급되거나, 432라는 숫자가 갑자기 언급되거나 하는 것 등입니다.
그리고 첨언하자면 피보나치 수열의 첫째항은 1이고, 15번째의 숫자는 607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어떻게 이 글에서 전문가들은 모두 첫째항이 0인 피보나치 수열에 동의하고 있는지요? 글을 쓰실 때 조사를 많이 하고 쓰신다고 하셨습니다만, 이런 오류들은 글 전체의 진정성을 훼손할 수 있습니다. 기 작가의 글처럼 지식인을 등장인물로 하고 그 지식이 글의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글이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B: 우연히 네 대의 비행체를 만나, 지구가 아닌 어떤 곳에 도착하게 된 학자들이 겪는 이야기입니다. 작가가 계속 집착하는, 인류 문명과 다른 문명이 존재하리라는 가설을 풀어 놓은 또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어린이들이 즐겨 읽고 상상하는 ‘초고대문명’을 다룬 글에서 많이 보이는 형식이지요. 소박했던 초기 SF 중 쥘 베른의 ‘지저 탐험’이 연상되기도 하는 글이군요. 작가의 글 중에서 가장 비약이 덜했고, 신비로운 곳에 도달한 학자들의 들뜬 모습도 아기자기했습니다. 다른 문명에 대한 순수하고 재기발랄한 상상은 호기심과 놀라움, 미지의 것에 대한 설렘을 가진 아동이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할 때 빛을 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문명, 외계인 등의 설정을 쓰고 싶으시다면 http://paedros.byus.net/sfjikji/ 를 방문하여 초기 SF를 한 번 쭉 일독(혹은 재독)하시길 권합니다. 소박한 상상을 치밀하고 아름답게 풀어나간 SF작가들의 글은 이러한 소재를 다룰 때 어느 정도로 세련되고 새롭게 해석하고 풀어가야 차별화된 신선한 작품으로 남을지 그 방향을 제시해 줄 것입니다.





망각의 폐교, 그 위를 기는 광기 - 씩코델리이코

A: 라노베의 느낌이 강하게 드는 글입니다.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것, 학교 때문에 상처를 입은 남자 주인공, 그리고 그를 도와주는 여성 두 명, 1인칭으로 감정서술과 사건 서술이 섞이는 구성, 등은 라노베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라노베를 의식하고 쓰셨다고 하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성공하셨다고 하겠습니다.
사건의 전개가 빠른 편이고, 1인칭 화자이기도 한 주인공이 독자와 같은 입장, 즉 글 속의 세계와 상황에 대해서 당황스러워 하는 상태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도 상당합니다. 학교라는 배경이 주는 특유의 공포, 괴기적인 분위기도 잘 살아났습니다.
다만, 너무나 라노베를 의식하신 탓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창의성이나 독특함, 신선함은 부족해 보입니다. 학교에서 상처받은 주인공은 그렇게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주인공이라면 당연히 학교에서 상처받은 학생이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정해진 것 같아 보입니다. 예림과 주희의 행동의 당위성 역시 이 글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주희와 예림이라는 캐릭터가 게임에 등장하는 절대적인 구원자로서의 여성, 게임의 공략 대상의 여성처럼 보이면서 지나치게 평면적인 것은 대중성을 의식하신 결과일지, 아니면 인물에 대해 깊이 숙고하지 않으신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사건이 일어날 것 같다는 기대감을 살리면서 캐릭터의 개성을 살려 보시면 어떨지요. 설정이나 전개 자체가 지나치게 대중적 틀에 맞춰 있다 보니, 오히려 이 글만의 매력을 발산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아쉽습니다.


B: 가상 세계에 갇힌 주인공이 두 여자의 도움으로 적들을 해치우고 탈출하는 이야기입니다. 줄거리보다 장면 묘사에 치중한 만화 같은 글이라고 하겠습니다. 자아가 갇힌 폐쇄적인 공간인 동시에 트라우마가 생겨난 학교가 배경입니다. 학교라는 상징을 잘 사용했다 하겠습니다. 정체성을 상징하는 이름을 잃은 채, 자신의 의지를 거세했던 주인공은 그를 복구시키려는 구원자를 통해 다시 현실로 나아오게 됩니다. 많은 영화와 만화에 등장하는 식상한 줄거리를 차용하였지만, 가끔 번득이는 철학적 주제가 눈에 띕니다. 자아복구, 트라우마 등의 용어에서 보듯 작가는 ‘인간의 정체성과 자아란 무엇인가’에 집중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철학적인 주제는 겉멋 든 대화로만 오갈 뿐, 글 속에 오롯이 녹아들지 않습니다. 장면 전개에 급급하다가 그럴싸한 양념을 가미하기 위해 끼워 넣은 주제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또한 주인공이 자아를 잃은 계기인 트라우마가 되는 사건이 너무 빈약합니다. 트라우마를 얻게 된 일이 단순한 놀림으로 서술되어서 너무 가볍습니다. 단순한 놀림이 주인공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치밀한 심리 묘사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SF라면 좀 더 설정이 견고해져야 합니다. 장면 묘사 외엔 모든 것을 허술하게 처리해서 아쉬움이 많습니다. 장면 묘사 역시 생생하고 생동감이 있게 표현하실 의도라면 많은 연습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옆 칸 남자 - 몽상가

A: 잘 만들어진 공포드라마의 각본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옴니버스로 구성된, 20여분 정도의 길이의 드라마라고 할까요. 가장 극적인 장면만을 압축적으로 뽑아내어 옮겨 놓은 듯, 글 전반에 긴장이 서서히 고조되면서 극에 달하고, 결말까지 이르는 전개가 흠잡을 데 없이 매끄럽습니다. 군더더기가 없이 단편의 압축성을 성공적으로 살려낸 글이었습니다. 공포 분위기가 서서히 고조되면서 독자가 몰입하게 하여, 도대체 지금 이 글이 어디로 치달을까 긴장하게 만드는 힘도 탁월합니다.
다만, 너무나 극적인 장면만을 뽑아 놓은 탓에 여자 주인공이 어째서 남자 주인공을 이렇게까지 증오하게 되었는지가 잘 와 닿지 않습니다. 전작에서 끊임없이 인간성의 본질을 파고들었던, 따뜻한 글을 쓰시던 작가의 장점이 이 글에서는 다소 부족해 보입니다. 사족입니다만, 돈 자체가 목적으로 여자가 그렇게 남자를 계속 만났다면, 남자에게 이런 복수를 하는 것보다 계속 남자의 옆에 있는 편이 여자의 목적에는 부합하지 않았을까요?


B: 불필요한 점을 과감하게 생략하는 깔끔한 특징이 잘 드러난 글입니다. 흔한 화장실 공포를 새로운 글로 잘 엮었습니다. 한껏 긴장된 공포는 불편한 결말에서 극대화 되면서 묵직한 뒤끝을 남기며 마무리됩니다. 깔끔하고 과감한 생략을 좋아하는 작가의 취향 때문인지, 부정적인 감정이 표현되는 글 전개를 잘 소화하는 것 같습니다. 사랑에는 이유를 갖다 붙이기 힘들지만, 미움에는 이유를 갖다 붙이기 쉬워서 논리적인 전개가 쉽기 때문일까요?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깔끔해서 오히려 글이 조금 단조로워지기도 한 것 같습니다. 기 작가의 전작보다는 조금 못하다는 의견입니다.




좋은 남편- 몽상가

A: 발단 부분을 보면서 아아 역시 이 작가답다고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습니다. 독자를 끌어당기면서 무슨 일이 앞으로 일어나게 될지 긴장하게 만드는 힘은 여전히 탁월합니다.
그러나 중반부터 글이 조금씩 삐걱거리기 시작합니다. 서술 자체가 전작에 비해서 많이 격양되어 있습니다. 일인칭이라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끔찍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시치미를 뚝 떼고 일인칭 화자의 눈으로 사건을 담담히 서술하던 ‘옆 칸 남자’와 비교해도 차이가 명확합니다. 첫 만남, 커피숍에서 남자는 30분을 잔 것이 아니라 세 시간을 잤다는 것을 아내의 일기장을 보고 나서야 깨닫습니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억지스럽습니다. 그 시절이 90년대라고 해도, 남자는 집에 돌아와서 시계조차 보지 않았던 것일까요?
이런 사소해 보이는 삐걱거림과, 격양된 감정 때문에 글은 안정되지 못하고 급하게 휘몰아칩니다. 긴장으로 독자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당황스럽도록 달음질칩니다. 경비의 반응은 중요한 복선입니다만, 아쉽게도 독자에게 너무 많은 힌트를 제공해 버립니다. 반전에 강한 작가가 넣은 복선으로 보기엔 너무 허술해서 아쉽습니다.
기 작가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승부하시는 타입은 아닙니다. 이미 많은 사람이 썼던 소재, 혹은 한 번쯤 생각해 보았을 소재라 해도 작가분의 손을 거치면서 매끄럽고 깊이 있는 글로 태어나곤 합니다. 그것이, 이 글에서는 제대로 살아나지 못해서 많이 안타깝습니다. 혹시 지나치게 서둘러 글을 공개하신 것은 아닐까요.


B: 어느 날, 아내는 ‘당신이 한 일을 기억해.’라는 쪽지를 붙여놓고 사라집니다. 그 문장은 남편을 계속해서 죄어오고, 모든 사건이 그 문구에서 시작됩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 쪽지의 의미는 무엇인지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발단 부분은 기 작가의 장점을 잘 드러냅니다. 그러나 그에 비해 전개가 성급합니다. 어울리는 분위기를 형성해 가면서 차분하고 명료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기 작가의 강점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군요. 몹시 서두른 흔적이 곳곳에 보입니다. ‘7년 전 1996년’을 ‘6년 전 1996년’로 잘못 썼다든지, 2009년을 2000년으로 잘못 쓴 부분을 보면 그런 의심이 더욱 생깁니다. 마감시간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올라온 글임을 감안하면, 마감에 쫓기지 않았나합니다. 소재는 영화 ‘내 머릿속 지우개’와 ‘메멘토’를 연상시킵니다. 해석 역시 신선하지 못했습니다. 마감보다 좋은 글을 우선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망령 - Rei

A: 탄탄한 문장과 안정적인 구성이 돋보이는 글이었습니다. 작가가 글을 쓰면서 많이 손을 보신 흔적이 보이며, 그만큼 성과를 보였다고 생각됩니다. 목걸이, 그리고 죽은 연인을 그리워하는 주인공의 사념이 연인을 다시 형상화시켰다고 하는 설정 자체는 새롭지 않습니다만, ‘파생실재’라는 해석은 독특합니다. 매트릭스를 포함해서 인간의 사유 자체가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는 설정들은 지금까지 많이 있었지만, 그것을 몽환적인 환상으로 형상화 한 것은 독특합니다.
노인과 함께 술을 마셨지만 실제 술도 노인도 없었다, 여자는 죽었는데 계속 한 도시에서 떠돌고 있었다, 환상적으로 해석될 장면은 많이 있습니다만, 아쉽게도 이 글에서는 작가가 개념을 너무나 붙잡고 있어서 독자에게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풀어서 설명하고 어느 정도는 은근하게 감추느냐는 무척 어려운 문제입니다만, 초반 부분에서 주인공과 노인과의 대화는 지나치게 설정이 감춰진 선문답이어서, 독자가 글을 끝까지 읽지 않고 그만두게 할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조금 더 독자에게 친절하게 글을 써 보시면 어떨까요. 추상적인 어휘가 많이 등장하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지나치게 설명이 없다보니 독자는 자기 나름대로 그 단어를 이해하려고 하고, 글 전체에 대해서 오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말에서 주인공이 택한 결과는 흔한 결론이 아니어서 신선했습니다.


B: 사이버 공간의 등장과 함께 많은 곳에서 활발히 언급되는 시뮬라르크를 사랑이라는 주제에 접붙여 환상소설로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작가의 많은 고민과 노력이 담긴 글입니다. 글 속의 시뮬라르크는 이미 현실에서 사라진 인물들입니다. 대개 유령이라고 불릴법한 존재를, 원본(인간)이 죽음으로 없어진 후에 나타나는 파생실재로 신선하게 해석하였습니다. 또한 사이버스페이스가 등장하는 식상한 SF형식이 아니라 환상소설 형식으로 풀려는 의도 역시 신선합니다. 원본도 사실성도 없는 파생실재, 즉, 유령이 주인공의 눈앞에서 전혀 다른 실재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시뮬라리옹의 과정을 형상화한 노력으로 보입니다. 시뮬라르크의 매개체로 목걸이가 등장하지만, 결국 주인공은 사랑하는 여인을 시뮬라르크하는 매개체가 자신임을 깨닫습니다. 정보의 조합과 재구성을 통해 재창조된 기억을 시뮬라르크라고 본다면, 인간의 사념이야 말로 시뮬라리옹의 가장 위력적인 도구가 될 수도 있겠군요. 사라진 인간들의 시뮬라르크들은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초실재를 만들어 내게 되고, 주인공은 소멸을 택합니다. 실재가 시뮬라르크 속에서 증발되고 사라져버리는 과정을 함축적으로 표현했다고 보여 지기도 하는군요. 그러나 깊은 고민과 신선한 해석을 담기엔 모든 것을 뛰어넘는 남녀의 사랑이라는 주제가 진부하고도 단순하게 표현되었습니다. 결말까지 묵직한 알레고리를 진행해 온 만큼, 하엘이 아세스라는 시뮬라르크와 함께 소멸을 택하는 이유에 좀 더 묵직한 의미를 부여해서 균형을 잡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추상적인 철학이 전면에 녹아 있는 글은 작가가 철학을 명료하게 소화해내어서 전달하지 않으면 그 의미의 전달이 쉽지 않습니다. 파생, 실재, 초실재와 같은 용어는 매우 함축적인 철학용어여서 철학에 관심이 없는 독자에게 단어만으로 의미를 전달하기가 어렵습니다. 단어에 담긴 함축성을 모르는 독자가, 단어 자체에만 집착하여 자의적인 해석을 내릴 위험도 존재합니다. 단어의 함축성을 조금 더 쉽게 풀어서 글에 녹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또한 이 공간이 어떤 것이며, 인물들의 존재가 어떤 것인지 서두에서 명확하게 짚어지지 않아서 실재와 허상, 진짜와 가짜를 오가면서 혼란해 하는 주인공만큼이나 독자가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추상적인 개념을 소설의 형식을 빌려 구체화하려는 시도는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로 남습니다.




하나를 위하여 - 세이지

A: 한 남자가 여러 여자를 만나고, 마지막으로는 사춘기 시절 사모했던 여자를 사귀게 되고, 삐걱대고, 결국은 여자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여자의 비밀은 지금까지 벌어졌던 남자의 여러 연애가 실패한 원인이었고, 여자는 줄곧 남자의 연애를 방해해 온 원흉이었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이미 만화에서 ‘머리가 갑자기 자란다’는 설정은 등장했습니다만, 그것을 싫어하는 감정과 연관시켜서, 감정이 신체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발상과 연결시킨 것이 독특합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미 존재하는 아이디어를 작가가 독특하게 재해석해서 형상화하는 능력이 돋보인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남자의 연애담이 지나치게 여러 번 반복되고, 모든 방해자가 첫사랑의 여자였다는 설정은 조금 억지스럽게 느껴집니다. 게다가 여자가 실은 사춘기 시절부터 남자를 사모하고 있었다는 부분은, 남자들의 환상을 그대로 드러낸 것 같습니다. 특히 짝사랑 해온 여자 ‘하나’의 이미지가 현실적 여성이라기보다는 2차원적인 캐릭터로만 보이는 것이 아쉽습니다. 발레를 하면 프로 수준이고, 커피점 직원을 할 때는 바리스타를 좌절시키고, 회사에 취직하면 너무나 유능해 회사의 경영자의 눈에 드는 등, 모든 것에 뛰어난데다 미인이기까지 한 설정은 그저 그려놓은 듯한 캐릭터로만 보입니다. 전작에서 인물의 감정을 생생하게 그려냈던 작가였기 때문에 더욱 아쉽습니다.


B: 한 남자의 연애 이야기입니다. 사춘기 시절 마음에 담았지만, 차마 고백을 못한 여학생을 잊은 채로 새로운 연애가 시작되지만 늘 방해자가 등장합니다. 새로운 사랑을 방해하는 방해자는 마음에서 지울 수 없는 옛사랑이 남긴 그림자의 현신처럼 보입니다. 결국 그 정체는 옛사랑이었고, 다시 만난 그녀와 마음을 확인하고 헤어집니다. 그리고 그 순간 신비로움은 사라지고 그들의 연애는 ‘정말로’ 평범해집니다. 방해자의 정체와 옛사랑을 연결시키려고 고군분투하는 바람에 정말로 핵심적으로 다루어야할 다양한 연애감정이 살아나지 않습니다. 연애, 실연, 옛사랑. 일상 속에 녹아든 간절한 감정들은 밋밋한 서술만으로 남을 뿐, 어떤 분위기도 형성하지 못하고 끝이 납니다. 또한 머리카락이 너무 무거워서 일어나지 못했다는 등의 독특한 소재는 그저 매력적으로 느껴져서 글에 꼽은 거추장스럽고도 불필요한 장식으로 느껴집니다. 의미를 부여해서 독특하고 깊이 풀어나갈 수 있는 소재들이 버려져서 아쉽습니다.





차기 정권 수립 수 좀비化 바이러스 살포 및 경영 합리화에 대한 보고서 - dcdc

A: 보고서 형식의 소설이라는 독특한 형식, 그리고 정치적 술수를 좀비화에 비유한 설정 등이 탁월하게 돋보입니다. 전체적인 구성도 안정적이며, 갑작스럽게 글의 구조가 비틀거리는 부분도 눈에 띄지 않습니다. 기 작가 특유의 안정된 필력이 어우러져 완성도 있게 마무리 된 글이었습니다.
그러나 날 것의 감정과 주제가 그대로 여과 없이 드러나다 보니, 소설적으로서의 가치를 얻는데는 다소 실패한 듯합니다. 현실을 비판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너무 생생하게 날 것으로 제시되다 보니, 소설이라기보다는 선동문에 가까워 보입니다. 특히 결론 부분에서 이 보고서의 의의는 현 정권에 대한 오마쥬에 불과하다는 것까지 사족으로 달아 놓아, 기 작가가 독자의 읽기 능력을 너무 낮게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좀비 바이러스라는 아이디어가 꼭 보고서 형식과 맞물려야 했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필력이 탄탄한 작가분인만큼, 의뭉스럽게 좀비화 바이러스라는 아이디어만으로도 소설적으로 즐겁고 완성도 있는 글을 완성하실 수 있지 않았을까, 형식과 아이디어가 조화되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B: 좀비라는 존재에 착안하여 교묘한 정권의 정치적이고도 교묘한 술수를 보고서 형식으로 쓴 글입니다. 문장이 탄탄하고 독특한 형식의 구성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러나 다분히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비판하고자하는 의도가 짙어 보이는 글은 소설이라기보다 소설을 위장한 사회비판에 가까워 보입니다. 좀비 바이러스 살포라는 유머와 보고서 형식의 딱딱함이 어우러져 재미있는 글이 될 여지가 많았으나 사회비판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좀비 바이러스 살포라는 소재의 재미가 심각하게 손상되었습니다. 너무 노골적인 비유가 쓰여 한 편의 정치 풍자 같아 보입니다. 그것이 작가의 의도였다면 옳게 쓰인 글이겠지요.




먼귓의 여인 - 룽게

A: 고대 설화를 연상시키는 문장의 분위기와 독특한 고유명사가 어우러져 글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마치 한 편의 영상을 보는 것 같은 글이었습니다. 작가분이 글을 쓰시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특히 이 글의 영상적 분위기는, 독자가 이 세계 안에서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스크린이나 그림을 통해서 보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 특이할 점입니다. 즉 이런 형식으로서 오히려 독자에게, 이 글의 신화적인 이미지를 더 살아나게 한 것입니다.
잔잔한 서술로 실제로는 섬뜩할 수도 있는 장면을 객체화시켜 보여주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다만 왕비의 여정이 ‘이름을 찾는 과정’ 인지 ‘천도제를 가는 길’ 인지 모호해진 것이 아쉽습니다. 만약 두 여정이 같은 것이라면 글의 초 중반에서 언급이 있었어야 하겠습니다.
‘감히 미동조차 하는 이가 아무도 없더라.’처럼 자칫 잘못 쓰이면 글 전체에서 붕 떠버릴 수 있는 설화투 문장이 글 전반에 잘 녹아들어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매력적인 분위기와 세계관으로, 이 세계의 이야기가 더 있지 않을까 하는 여운을 남깁니다. 잘 읽었습니다.


B: 설화 형식을 차용한 글입니다. 먼귓이라는 신비한 나라에서 왕에게 시집을 온 여인이 남편을 잃고, 남편을 천도하러 길을 떠나는 여정을 그린 글입니다. 영적이고 초월적인 존재이자 인도자로 흰 늑대가 등장하고, 부러진 칼의 반을 찾는 과정 등이 한 편의 설화처럼 잘 서술되었습니다. 술술 읽히고 힘이 있는 무난한 글입니다. 다만 잃어버린 이름이 마지막에서 갑자기 등장하여 갑작스럽습니다. 남편을 잃고 천도를 마치고 예를 다하여 이제 먼귓을 떠나올 때처럼 ‘자신’으로 돌아간 의미로 보입니다만, 지금까지 남편을 천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던 여행의 귀결이 잃어버린 이름 찾기로 급전하는 바람에 글의 균형을 살짝 해칩니다. 정체성의 상징인 ‘이름 찾기’의 의미가 그리 가볍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인이 고향으로 돌아갔음을 표현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앞에서 한 번쯤 ‘이름을 찾는 의미’가 귀향임을 상징하는 설명이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카르마-쥔님

A: 서술에서 서사시를 의도하신 것인지, 한 문장(때로는 한 어구)마다 줄을 나누어 서술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방만한 서술에 비하여 이야기는 그렇게 치밀하지도 진지하지도 않습니다. 흔한 소재에 작가만의 독특한 개성이 더해지지 못해서, 글 자체가 전체적으로 평범해 지고 말았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지구에서 인간이 도망친 동안 지구는 자력으로 회복해 있었다거나, 식량 부족으로 인간은 식인의 미래를 맞아야 했다거나, 클론이 자기 정체성의 문제로 탈출을 꿈꾼다거나 하는, 이 글에서 소재로 다루어 진 것들이 모두 다른 글에서 많이 다루어진 것으로, 새로운 해석도 작가만의 숙고도 보이지 않아 쉽고 편하게 써버렸다는 느낌이 가시지 않습니다.
클론을 생성해서 먹어야 할 정도의 식량 부족이 오기 전에, 클론 기술이 발전한 미래라면 식용 동물의 클론을 만드는 것이 먼저 고려되지 않았을까요. 과연 클론을 만들어 식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가치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B: 클론이 소재입니다. 클론은 약 1990년쯤에 등장해서 각종 소설에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새로운 해석이 힘든 소재라고 하겠습니다. 아쉽게도 이 소설 역시 기존에 많이 나왔던 소설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살짝 바꾼 변종 같아 보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 ‘아일랜드’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작가의 의도가 어떠했던 간에 기존에 존재하는 유명한 영화와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인상을 독자에게 던진다면, 그 작품은 새로운 창작물로 받아들이기 힘들겠지요. 자칫하면 표절로 오인될 수 있습니다.




위대한 12초 - 리오르

A: 라이트 형제가 첫 비행을 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재구성한 글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발견이나 재해석, 독특함이 보이지 않습니다. 문장이 탄탄하고 사건을 전개하는 흐름이 좋아서 독자가 끝까지 글을 읽게 만드는 힘을 가집니다만, 라이트 형제의 일을 알고 있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글의 결말에서 맥이 빠지지 않을까요.
‘나’가 라이트 형제를 회상하면서 글이 시작합니다만, ‘나’의 사건은 무척 빈약합니다. 게다가 ‘나’는 줄곧 라이트 형제와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중심 사건인 위대한 12초가 오기 전까지의 극적인 일들은 전혀 언급되지 못합니다. 그 결과 글에서 극적 고조, 굴곡이 사라져 단조로운 글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히려 ‘나’를 라이트 형제의 주변 인물로 다루어 좀 더 라이트 형제에게 밀착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나’의 사건에서라도 극적인 고조가 있었더라면 좋았겠습니다.


B: 라이트 형제를 소재로 한 팩션입니다. 쓸데없이 거창하거나 많은 것을 보여주려 하지 않아서 솔직하고 담백합니다. 인류 최초의 비행기를 이륙시킨 라이트 형제를 지켜보며, 역사적 현장에 참여하게 되는 화자의 소박하고도 솔직담백함이 호소력 있게 다가옵니다. 다만,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화자’의 존재외에는 특별한 사건이나 이야기가 없어서 단조롭습니다. 라이트 형제의 첫 비행도 조금 더 생생하고 가슴 벅차게 묘사가 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주식회사 메모리즈-어느 스팸메일 - 페르세포네

A: 가상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얼’을 인간으로서 인정해야 할 것인가, SF에서는 끊임없이 인간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독자에게 던져왔습니다. 이 글 역시도 독자에게 그런 질문을 던집니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작가는 ‘얼’의 시점에서 두 가지의 전개를 동시에 진행합니다. ‘얼’이 불특정 다수에게 보내는 메일로 전개되는, 얼이 대외적으로 주장하는 표면적인 사실과, 실제로 얼이 행한 일과 그 과정에서 얼이 느낀 심리를 포함하는 보다 깊은 의미의 진실입니다.
얼이 행동한 것이 어느 정도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가는 윤리, 정치적인 문제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인간임을 과연 인정해야 할지 독자로서도 확신이 서지 않는 존재인 얼의 시점에서 사건을 서술하고 있는 이 글은, 얼이 세상과 부딪혀 방어하고 공격하고 투쟁하는 전개를 흥미롭게 풀어 나갔다는 점에서 돋보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이 글에서 만들어 내는 환상적 리얼리티의 부분입니다. 독자가 이런 세계가 과연 가능한가 의문을 느끼게 하는 대신에, 독자 자신이 이 세계에 있으면서 이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얼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힘, 그것이 이 글이 가지고 있는 장점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얼의 메일로만 진행했다면 자칫 얻지 못했을 효과입니다. 사건의 두 면을 모두 서술하면서 그 둘을 분리시켜 동시 진행하고, 지금의 현실에 미루어 보아도 있을 법한 사건들을 배치하면서 독자가 세계 속에서 생각하게 하는데 성공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글은 하나의 글 안에 얼에 관련된 너무 많은 이야기를 동시에 담으려 하면서 단편으로서는 과중한 이야기로 무거워지고 말았습니다. 불특정 다수에게 전해지는 메일에 과다한 전문 용어를 담는다는 생각은 지금의 현실로 미루어 보아도 효과적이지 않겠지요. 인간성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중반까지의 부분과, 후반부의 광고성 부분은 겉돌게 되고 맞물리지 못해, 글이 중심을 잃어버립니다. 작가 자신이 중심을 두려고 하는 부분이 어느 부분인지 명확히 하고 필요 없는 부분을 과감히 덜어냈다면 더욱 수작이 될 수 있었으리라 생각되어 아쉬움이 남습니다.  


B: 과학이 발전하면서 모호한 경계가 많이 발생했습니다. 가상현실로 인한 현실과 허구의 경계, 인간과 기계의 경계 등을 들 수 있겠지요. 육체는 잃어버렸지만 정신은 살아있고, 육체를 기계로 대신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메일과 진실을 씨실과 날실로 엮으면서 여러 이야기가 보여 집니다. 글 속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 선 존재는 ‘얼’로 지칭됩니다. 죽음과 노화를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살해서 ‘얼’이 되는 사람들, 얼을 프로그램으로 취급해 삭제하려는 정부, 얼과 인간과의 대립. 이 속에는 현재 한국에서 논란이 되는 새로운 정보통신법에 대한 풍자도 들어있습니다. 스팸 메일이 진행되는 동안 수많은 사연들이 끼어듭니다. 너무 장황하고 많은 담론을 담은 긴 사연 때문에 저렴한 가격에 ‘얼’이 되라고 광고하는 스팸메일이라는 사실이 선명하게 부각되지 못하고 묻혀버립니다. 과장되고 구구절절한 광고 뒤에 스팸메일임을 깨닫고 ‘낚였다’는 생각을 독자에게 던질 의도였다면 실패입니다. 장황한 사연에 담은 무거운 담론들과 지나치게 기술적이고 전문적인 용어들이 걸림돌로 작용한 것입니다. 과연 이렇게 기술적이고 전문적인 용어들이 현란하게 넘치는 스팸메일을 끝까지 읽을 사람이 있는지 질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로, 이 스팸메일을 생존을 위한 절규의 메시지로 설정했다면, ‘스팸’이라는 용어와 저렴한 가격에 얼이 될 수 있으니 도와 달라는 내용이 방해됩니다. 그래서 이 스팸메일은 이도저도 아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를 정체불명의 메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말하고 싶은 것들을 걸러내고 좀 더 단순화하고, ‘스팸메일’이라는 소재로 주고자 했던 효과가 정확히 전달되면 좋겠습니다.




맑은 하늘빛 눈망울-니그라토

A: 독특한 분위기로 인류의 초기 시대를 서술하고 있어 흥미롭게 읽었습니다만, 작가분이 언급하신 대로 지나치게 <들소>의 설정들을 가져 온 것이 아쉬움이 남습니다.
작가분이 자주 글의 소재로 사용하는 ‘난혼제’에 대한 이상화가 눈에 들어옵니다만, 그 난혼제가 붕괴되게 된 것이 단 한명의 여성 때문이라는 설정은 지나치게 비약으로 보입니다. 그 여성이 그런 행위를 하게 된 것이 ‘내 아이를 뱃속에서 우량아로 키우고 싶어서’ 라고 하는 언급을 보면 글에서 모성애 자체를 비판하고자 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만, 그 외에 서술에서는 그것을 뒷받침할 내용이 포함되지 않아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작가가 하나의 소재와 주제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 비판받을 일은 아닙니다만, 진심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려고 한다면 다양한 세계와 소재를 가지고 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이야기의 구성과 플롯을 어떻게 배치하는 것이 좋을지 연구하시는 것이 더 필요해 보입니다.
소설 전체적으로 서술은 안정되었지만 이 글에서도 작가의 대리자인 인물이 등장해 버립니다. <영원한 눈>이 <맑은 하늘빛 눈망울>에게 행동을 비판하는 부분에서는 작가의 논리적 비약과 작가의 주제의식이 날 것으로 그대로 드러나 버립니다.
마지막 문장인 ‘그날부터 인류는 변질되었다…’ 는 비약입니다. 찬찬하게 글의 논리적 전개를 숙고해 보시길 권합니다.


B: 일단, 본인이 밝혔듯이 이 글은 이문열의 <들소>를 조금 다르게 바꾸어 본 것입니다. 서두에서 밝히셨으므로 문제 삼지는 않겠습니다만, 표절임은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헬렌 피셔를 언급하였지만, 이 글이 헬렌 피셔의 이론을 형상화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 글에는 ‘사랑’에 대한 고찰이나 분석이 담겨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겨우 찾을 수 있는 소재는 ‘난혼제’인데 이 역시 헬렌 피셔의 이론에 담긴 과학적인 분석을 전혀 형상화하지 못합니다. 단지 평생 한 배우자와 사는 것이 사실은 본능에 위배된다는 인류학적 견해만이 담겼을 뿐입니다. 오히려 이 글은 계속적인 작품을 통해 표출하는 가족제도, 특히, 여성 혹은 어머니에 대한 혐오를 형상화 했다고 보여 집니다. 작가의 심리적 트라우마로 보이는 이 혐오가 작품 전체를 장악하여서, 보여주고자 하는 주제의 본질을 흐립니다. 인류 최초의 살인을 언뜻 떠올리게 하는 결말은 사랑은 소유욕을 낳고, 소유욕은 질투를 낳고, 질투는 살인을 낳고, 살인은 인류를 변질시켰다. 고로 사랑은 인류 변질의 원흉이다, 라는 결론을 제시합니다. 인류가 일부일처제 때문에 변질되었다고 표현하려는 의도였다면 실패인 셈이죠. 사랑과 소유욕이라는 ‘정서’와 일부일처제라는 ‘제도’를 동일한 관념으로 볼 수 없겠지요. 사랑과 소유욕 때문에 일부일처제가 나타났고, 그것 때문에 인류가 변질되었음을 보여주려는 의도였다면, 사랑과 소유욕 그리고 일부일처제를 관련지어주는 어떤 사건이 있어야 했지 않을까요.




아홉 개의 방 - 蘇昊

A: 소설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이 습작을 할 때 범하기 쉬운 실수가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이 글은 전체적으로 장편의 시작부분 같은 느낌을 주며, 단편으로서의 완결성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대화 위주의 진행으로 속도감이 있는 듯이 보입니다만 서술이 느슨해 속도감을 살리지는 못했습니다. 글의 제목에서부터 ‘아홉 개의 방’이라는 언급을 주었으나 글에서는 돌연 갑작스럽게 아홉 개의 방 중에 일부만이 드러나고 세계에서 쫓겨난 주인공과 함께, 독자도 당혹감을 느끼게 됩니다. 글의 서두에서 여러 가지 수수께끼를 던지고 궁금증은 유발하였지만, 독자에게 아무 것도 설명해 주지 않고 돌연 글은 끝나 버립니다.
글이 짧기 때문에 단편이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편은 한가지로 완성된 이야기와 체계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 글은 앞부분만 쓴 습작 노트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미완성의 글입니다.


B: 완결성과 단계성이 갖춰지지 못했습니다.




장수생의 전업 - 蘇昊

A: 아홉개의 방과 같은 설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굳이 둘 중에 하나를 꼽아야 한다면 이 글은 그래도 전작보다는 완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글이 비약해서 돌연한 결말을 낳는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로 단편으로서의 완결성을 가지고 있다고는 볼 수 없겠습니다. 장편의 한 에피소드를 덜어낸 것 같은 구성입니다. 설정과 발상만으로 소설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B: 전작의 감평과 이하동일합니다.




Sink hole - SunOFHoriZon

A: 전작과 마찬가지로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글이었습니다. 분량상으로도 상당한 글이지만 중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끌어간 힘도 인정할 만합니다. 서울에서 갑자기 구멍이 생겨난다는 설정이나, 빌딩의 젊은 야간관리원, 그 주변의 여성 등, 탄탄한 묘사력을 바탕으로 기묘한 분위기를 끌어가는 힘은 탁월합니다.
그러나 기묘한 분위기가 글의 전체를 지배하면서 정작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데는 작가는 치밀하지 않습니다. 장면 하나 하나를 묘사해 내기는 합니다만, 지현의 실종, 기묘한 여자 이 모씨의 행위, 등 일어나는 사건들의 연결이 치밀하지 못하고 즉시적입니다. 대화가 인용부호 안에 들어있지 않고 단지 단락의 구분만으로 대사를 전달하고 있는데, 아쉽게도 이런 독특할 수 있는 구성은 글 전체의 모호함을 가중시키고 맙니다. 대화와 서술과의 간격이 좁아져 글을 단조롭게 만들고, 대화로 가져올 수 있는 글의 긴장감이 느슨해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여자가 지현을 죽였을 것이고, 그건 분명히 지하실일 것이라고 추정하는 주인공의 행동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결말 부분 역시, ‘그녀’와 ‘나’가 지하실의 틈새에서 벌였을 결정적인 몸싸움이나 극적인 사건이 묘사되지 않고, 간편하게도 뉴스의 사후보고만으로 독자에게 알려 버립니다. ‘그녀’가 ‘나’를 끌어안고 있다는 것, 경찰은 살인사건으로 보고 있다는 것 등 뉴스에서는 여러 가지 정보가 주어집니다만, 실제로 틈새 앞에서 ‘나’가 ‘그녀’를 노려보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긴장을 고조시킨 것이 갑작스럽게 맥락을 잃고 결말로 던져집니다. 신문 기사, 방송 뉴스 등은 사건의 결말을 설명하기에는 참 간편한 수단입니다만, 진부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묘사와 서술에 강하신 작가분이시니 보다 극적인 결말을 끌어낼 수는 없었을까요.


B: 섬세한 묘사와 풍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전개를 따라잡기 힘든 글이었습니다. 서울에 생겨난 정체불명의 구멍과 기묘한 빌딩의 야간관리원은 잘 어울리는 소재였지만, 기묘한 분위기가 글 전체를 장악하지 못합니다. ‘그녀’라고 지칭되는 정체불명의 여성 역시 기묘한 분위기에 일조를 하지만, 서투른 분위기 묘사와 심리 묘사는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합니다. 강사장과 지하실 틈과의 관계, 지현의 실종, 기묘한 빌딩, 정체불명의 그녀 이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결말이 무얼 말하는지, 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치밀하게 소재들을 배열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손가락이 치는 대로 썼다는 의심만이 깊어질 뿐입니다. 본 작가는 치밀하고 사실적인 묘사에는 대단히 능숙합니다. 그러나 이에 비해 심리 묘사, 특히 타인의 심리를 묘사하고 드러내는데 서툽니다. 능숙함과 서투름의 격차가 심하게 벌어져서, 단점이 더욱 심하게 드러납니다.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복권당첨에 대처하는 올바른 자세 - clancypark

A: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해 보았을 이야기를 소설로 형상화 하는 작업은, 독자의 동의를 얻는다는 점에서는 매력적인 작업입니다만, 그만큼 아이디어 부분에서는 독자가 식상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글은 흔하다고 할 수 있는 소재와 흔하다고 할 수 있는 주제로도 독자가 계속 읽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1인칭의 화자가 생각하는 것이 쉽게 공감을 일으키며, 글 중간 중간에 ‘행동지침’으로 제시되는 부분들에서 독자의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그러나 복권 당첨을 해서 결국은 불행해지고 말았다는 것을 반전으로서 제시하기 위해서 글의 중간에 심어 둔 복선이 너무 흐릿한 탓에, 글의 결말 부분에서 독자가 무슨 일이 일어났나 의아하게 생각하게 되어 버립니다. 사촌 일가족을 죽인 용의자 김진구가 ‘나’인지, 아니면 죽은 일가족에 ‘나’가 있는지, 독자는 의아해하며 글에서 김진구가 언제 등장했는지를 찾아보게 됩니다. 또한, 복권 당첨금의 10%를 기부한다는 ‘운명의 보험’에서 ‘나’가 실제 10%가 아닌 1억을 기부한 것 때문에 불행이 닥쳤는지, 아니면 운명의 보험 자체가 실패일 정도로 복권 당첨의 불운이 강했는지, 심지어 ‘운명의 보험’ 자체가 무엇이었는지 독자가 곧바로 떠올리지 못할 위험도 있습니다.
또한 인주에서 제일 좋은 학교와 학원을 다니기 때문에 고위 공무원 또는 정치가의 아이들과 친구가 되었다 등의 설명은 헛웃음이 나옵니다. 친구들과 헤어져도 부잣집 친구만 사귈 거라는 말에 신나 하는 아이 등을 보면, 작가가 글을 쓸 때 세부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 간단하게 생각한 것이 아닌지 아쉽습니다.


B: 복권당첨은 불운을 불러온다는 내용의 글입니다. 복권에 당첨된 주인공이 복권 당첨시 행동지침을 치밀하게 따라가는 과정이 잘 그려졌습니다. 그러나 반전을 위한 정보가 너무 숨겨져서 오히려 반전의 효과를 죽여 버렸습니다. 느닷없어서 독자가 다시 그 정보를 확인하게 하는 반전은 좋은 반전이라고 하기 어렵겠지요. 강렬한 반전은 전혀 별개의 것으로 보이는 선명한 정보를 순식간에 이어주는 인식의 고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앞에서 제시된 정보가 장황한 이야기 속에 섞여 있어서 반전을 만났을 때조차 선명한 정보로 남아있지 않습니다. 반전에 필요한 사촌, 보험, 두 소재를 다른 정보와 차별해서 조금 더 선명하게 독자의 머리에 남겨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아레스의 죽음 - monthman

A: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가볍게 포장하고 부담스럽지 않게 읽을 수 있도록 풀어 쓰신 거라면 성공하셨습니다. 독자가 모두 다 알 거라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SF 설정을 섞어 넣는 솜씨도 돋보입니다. 다만, 아마 작가분도 알고 계시겠지만, 진지함은 부족합니다. 대중들은 분명히 즐겁게 읽으시리라고 생각합니다.


B: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파괴의 신 ‘아레스’를 따온 제목에서 보듯이, 한 행성을 파괴하게 된 시간보호군의 이야기입니다. 테라포밍과 타임슬립 등 SF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를 발랄한 유머 감각으로 풀어간 글입니다. 취향에 맞는 사람이 읽으면 끝까지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흡입력과 재미가 미덕입니다. 주제의식이나 어떤 의미를 담기보다 글 자체의 ‘재미’에 충실한 글은 통신소설 초기에 많이 나타난 형식입니다. 오랜만에 봐서 반갑군요. 기준을 어디에 두고 평을 해야 할지 난감한데요, 한 바탕 웃고 즐길 글로는 좋군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조르야 여신은 이중으로 나타난다. - monthman

A: 아레스의 죽음에 비해서도 가볍고 즐겁게 읽었습니다. 뛰어난 몸매의 연상 여인과 또래의 최고의 여학생이 주인공을 놓고 겨룬다는 천연덕스러운 입심에 박수를 보냅니다. 90년대 초중반의 PC통신 시절에 볼 수 있던 그리운 느낌의 글이었습니다. 전개가 빠르고 군더더기가 적은 구성이 돋보입니다. 재미있는 글을 쓰시는 힘에 박수를 보냅니다. 학창시절에 습작 노트를 돌려보며 즐겁게 웃던 기억을 되새기게 해 주어서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만약 작가께서 즐겁게 읽고 웃어넘기는 글 외의 소설을 바라시는 거라면, 다른 사람들의 글을 많이 읽으시고 깊이 고민해 보시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B: 동유럽 신화에 나오는 조르야 여신을 빌려온 제목이지만, 글 속에서 이중으로 나타나는 두 여인네는 쌍욕이 전문인 전투 머신이군요. 여전히 타입 슬립이 주 소재이고 시간보호군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전작과 연작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타임슬립, 시간중첩, 광선검, 나노기술까지 온갖 과학기술을 버무려서 너무나 태연작약하게 비빔밥을 만들어 놓고 시치미를 뚝 떼는 작가의 능력이 감탄스럽군요. 취향이 고귀하신 분들은 눈살을 찌푸리거나, 대체 이 글이 뭐냐고 개탄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취향이 평민이신 이 몸은 배가 아플 때까지 웃어댔음을 알려드립니다. 이상한 나라 폴의 개그 SF버전인 이 글을 일회성이라고 평해야 해서 몹시 마음이 아파옵니다. 취향만 맞는다면 즐기는 글로는 최고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유사한 특징을 가진 초기 통신소설들이 꾸준히 진화해 온 것을 생각하면....수준 높은 글로 인정받으려면 글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고민을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욕심이 없다면, 이대로 본인과 독자가 함께 즐기는 창작활동으로 끝내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이트 좀비 - 화성해달

A: 삶의 의미를 잃고 살아가기 = 좀비화 라는 설정이 독특하고 매력적입니다. 좀비화 직전의 주인공이 겪는 심리적인 흐름을 따라가는 서술도 독특합니다. 인간이 인간답지 않은 것이 좀비화라고 지칭되면서 글은 상당히 무거운 주제를 다루게 됩니다. 주인공이 자신의 변화에 혼란스러워 하다가 여학생을 만나기까지의 전개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까 두근거리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대사를 인용부호로 묶지 않고 단락으로 나누었습니다만, 대화 사이에 단락 구분 외에도 공란이 삽입되면서 대사가 강렬함을 잃는 것을 막습니다. 서술과의 구별이 모호해진다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만, 글 자체의 몽롱한 느낌과 더불어 잘 어우러지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다만, 이 글은 무엇이 일어나게 될지를 기대하게 만드는 선에서 끝나고 맙니다. 나이트 후드란 어떤 존재들인가, 이 여자애는 왜 이런 걸 다 알고 있을까, 나는 의문스러워 하고 독자도 그렇게 느낄 수 있습니다만, 바로 그 시점에서 글은 끝나고 맙니다. 이야기는 결국 긴 이야기의 서두 부분, 일부분 같은 느낌을 주면서 단편의 완결성을 가지지 못하고 끝나 버립니다. 서술 역시도 장편의 호흡을 따라가고 있어서, 단편으로서의 압축성은 부족합니다. 설정을 내보이는 것만으로는 소설로서의 완결성은 보장되지 않습니다.


B: 일단 나이트 후드의 역할은 ‘인간의 좀비화 방지’입니다. 삶의 의미를 잃고 무기력하게 감각만을 추구하고 살아가는 인간은 좀비와 같다는 사변은 묵직한 주제를 담습니다. 글 전체에서 드러내는 사변 역시 타당하고, 매력적입니다. 깊은 생각들과 고민들이 오롯이 전달됩니다. 그러나 사변을 담는 틀이 소설임을 생각하면, 이 글을 좀 더 소설다워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명 현상 등, 좀비화 징후를 겪는 주인공이 형식적으로 참여한 토론 동아리 활동에서 나이트 후드인 여학생을 만나서 대화를 한다는 것 외엔 그 어떤 이야기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스승과 제자의 대화처럼, 주인공이 묻고 여학생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형식이죠. 어려운 사변을 담는 경우,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풀어주는 방식이 곧잘 쓰이긴 합니다만, 글 속의 여학생은 모든 것을 설명하는 해설자, 말 그대로 deus ex machina로 보입니다. 기승전결을 담고 있다기보다, 결말만 존재하는 인상이 강합니다. 따라서 좀비가 되어가는 인간의 모습과 이유는 여학생의 설명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형상화 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 또한 쓰신 문장들도 고민을 할 부분입니다. 굳이 철학적인 단어들로 주제를 표현하려는 욕심을 조금 줄이면 좋겠습니다. 문장에 현학적이고 관념적인 묘사와 비유가 넘쳐나면, 전달하고자 하는 사변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변적인 주제가 무거운 만큼, 그것을 전달하는 문장은 조금 쉬워질 필요가 있지 않나 합니다. 또한 스토리를 진행하는데 불필요한 현학적이고도 관념적인 묘사 등을, 매끄러운 글의 흐름을 위해 과감하게 절약하고 생략하는 미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대사를 따옴표로 처리하는 기본적인 문법은 지키셔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와 같은 표현은 자제하시면 좋겠습니다. 영문법을 따라간 문법, 어색한 수동태 문장, 지나치게 길어진 복문 등은 충분히 퇴고하시길 권합니다.




생명의 나무 - 라티

A: 신화의 재창조로서 상당히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나무와 낮과 밤, 어둠, 권위, 전통, 종교. 이 글은 무척 무거운 내용을 글 안에 충분히 녹아내면서 독자가 끝까지 글을 지켜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기존의 권위에 도전하는 개인과, 그 개인을 압박하는 기존의 권위, 개인이 세계 전체에 새로운 미래를 가져오게 되는 영웅 신화의 구조를 따라가면서, 탄탄한 문장이 뒷받침되어서 글 전체가 무게감을 갖습니다. 인물의 대사가 극도로 억제되어서 더욱 더 신화 이야기를 옮겨 놓은 듯한 사실성도 획득했습니다.
다만 아쉽게도 신화의 재창조인 이 글은 소설로서의 재미를 확보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일식’으로 형상화되는 결말부분은 갑작스러운 비약으로 느껴집니다. 글의 결말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열매꽃’의 존재가 글의 후반부에서야 등장하면서, 극적인 고조감이 없이 완만한 이야기책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문장 하나하나에 힘을 실어서 퇴고한 것이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무거운 주제를 날 것이 아니라 효과적으로 상징의 힘을 빌려 형상화 한 점에서는 단연 돋보인 글이었습니다. 작가의 대행자로서의 캐릭터나 열변을 토하는 인물이 없이, 독자에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는 힘이 탁월합니다.


B: 낮과 밤 그리고 생명에 얽힌 신화를 재창조한 글입니다. 낮과 밤을 가져오는 거목은 절대적인 권위를 지니는 동시에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상징입니다. 동시에 무지, 압제, 지배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거목의 신화를 깨고 진짜 태양과 달이 있는 자유의 세계로 이끄는 영웅은 사냥이 중요한 원시 사회에서는 치명적인 약점을 지닌 불구자입니다. 여느 이야기에서 그렇듯 영웅에게는 그 눈을 뜨게 해주는 조력자가 있고, 여기서는 첫째 아버지가 조력자에 해당됩니다. 불구자인 영웅의 대극에는 깨뜨려야할 지배와 공포의 수호자인 악인, 당굴이 등장합니다. 결국 영웅은 악인을 없애고 새로운 광명의 세계를 맞습니다. 신화에 곧잘 등장하는 공식과 상징의 배열을 잘 따라간 글입니다. 덕분에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이야기가 되고 말았지만, 전개와 서사가 충실하고 치밀했습니다.
이야기 전체를 두고 보면 원시적 신화입니다만, 서술이 객관적이고 건조해서 신화 속에 담긴 에너지가 전달되지 못하고 생명을 잃은, 밋밋하고 건조한 기록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야기와 독자 사이에 놓인, 딱딱하고 투명한 막 같은 느낌을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요. 거대한 신화에 비해 결말이 너무 맥이 없어서 한창 부풀어 오르던 이야기의 위용이 초라해져버렸습니다. 긴장감이 고조되는 장면의 묘사를 생동감이나 긴장이 느껴지도록 표현하면, 덜 밋밋한 글이 될 것 같습니다.
74호 독자 우수단편 가작에 선정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죽음의 무도 - 메이

A: 그림책을 보고 있는 느낌의 소설이었습니다. 문장 연습을 무척 많이 하신 듯합니다. 단어 하나하나를 신중히 고르고 문장의 배치를 신경 쓰고, 인물의 대사를 심사숙고해서 만들어 낸 흔적이 글에 충분히 드러납니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이끄는 것은 단연 이 문장의 힘입니다. 정서적인 단어로 탄탄하게 배치된 문장은 글의 분위기를 독특하게 만들어 줍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함축적이고 우회적인 표현이 반복되다 보니, 사건의 상황이 바로 전달되지 않는 면이 있다는 것도 생각해 주시길 바랍니다.
장면 하나 하나에 힘을 실어서 묘사에 열과 성을 다하다 보니, 오히려 글 전체를 관통하는 사건의 흐름은 모호해졌습니다. 대사 하나하나를 신중히 고르다 보니 인물들의 대화가 비슷한 느낌을 가지게 되어, 인물의 개성이 모호해지기도 합니다.
춤, 전쟁, 결코 정적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것들이 정서적으로 치밀하게 묘사되면서 이 글은 오히려 사건의 박진감은 옅어지고, 많은 장면이 하나씩 배치되는 만화를 연상시키게 되었습니다. 동적인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대사와 서술이 화면에 글자로 나타나고 장면이 그림으로 멈춰진 만화입니다.
또한, 글의 후반에서 등장하는 ‘소월’의 캐릭터는 무척 매력적입니다만, 글의 중반까지는 전혀 언급조차 하지 않다가 갑자기 사건의 중요한 클라이막스를 담당하게 되어 갑작스러운 느낌이 듭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궁수여서 연의 춤사위에 동요되지 않는다는 설정은 매력적입니다만, 인물의 등장이 갑작스러워져서, 사하의 비극적인 결말도 빛이 바라고 맙니다. 하나하나 매력적인 캐릭터지만 글 전체를 지배하는 것이 작가의 문체가 되어서, 오히려 인물의 개성이 묻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글의 구성, 사건의 배치와 흐름에 대해서 조금 더 숙고해주시길 바랍니다. 아름다운 글 잘 읽었습니다.


B: 글의 내용을 음식이라고 하고, 문장을 음식을 담는 그릇이라고 한다면 이 글은 참 정교하고 훌륭한 그릇입니다. 단어 하나, 하나를 갈고 닦아 내어놓은 듯, 문장마다 작가의 노력과 정성이 담겨있습니다. 드물게 조밀한 문장으로 잘 쓰인 글입니다. 그러나 글 전체를 두고 보면 각 인물에 지나치게 집착해서 인물들이 이야기 속에 녹아들지 못하고 제각각 돌출되어서 겉돕니다. 가족을 잃고 성곽 밖에 있는 적군들과 꿈을 통해 싸우는 무녀 연의 사연과 성곽 밖에 있는 교위, 사하, 대모달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이 마치 각기 다른 이야기처럼 따로 놀며 유기적으로 매끄럽게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그들을 연결하는 고리는 무녀인 연 때문에 병사들이 보는 꿈입니다. 병사와 연이라는 두 대상 사이에 긴장을 유발하는 매체이지요. 그러나 모호한 서술만으로 담담히 이어져서 꿈은 그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때문에 긴장감이 감돌아야 하는 상황이 생명력을 잃습니다. 가장 큰 아쉬움은 인물들의 실제 정서와 글에 표출된 정서 사이의 거리입니다. 연의 애틋한 한도, 병사들의 혼란도 설명 될 뿐, 호소력 있게 표출되지 못합니다. 완곡하고 메마른 설명 때문에 인물에 생명감이 없고, 흡입력이 떨어진 아름다운 설명문 같아지고 말았습니다. 비장감이 감돌아야 할 장면들마저 객관적 사실을 전달하는 묘사에 그쳐 아쉽습니다. 아름다운 문장에 비해 밋밋해서 너무 아쉬운 글입니다. 작가 자신이 지향하는 글의 방향성이 있고, 또 독자의 취향에 따라 달리 느껴지는 글일 수 있어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무미건조한 서술 때문에 생기는 독자와의 거리감을 좁히고, 보다 흡입력과 호소력 있게 인물들의 심리와 감정, 분위기를 전달하는 방법을 한 번쯤 연구해 보실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인물에 집착하기에 앞서, 보다 먼 거리에서 글 전체를 조망해 보시면 인물과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74호 독자 우수단편 가작에 선정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루시의 이기적인 몸매 -김몽

A: 작가의 입심이 돋보입니다. 독자를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고 아이디어도 독특해서, 읽는 내내 글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듭니다. 발상이 독특한 것만으로는 재미있는 글이 되지 않는다는, 독특한 발상과 작가의 서술력의 상승 작용을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글의 중반 이후, 루시의 행동이 왜 일어나는지 설명이 없이 독자를 끌고 가더니 마지막 부분에서는 궁극적인 이데아까지 등장해, 재미있게 읽어가던 글이 돌연 철학으로 비약하고 말았습니다.
루시가 폭심으로 선택한 학교의 에피소드에서부터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중심이 흔들려 버립니다. 학교에서의 에피소드 이전까지 루시(수영)을 바라보고 있던 작가의 시선은 차가웠습니다. 루시의 심리를 묘사할 때조차 작가는 냉소적입니다. 그것이 이 부분에 들어와서는 돌연 루시의 굴욕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루시가 복수를 하려고 하는 것인가 싶더니, 결말에서는 루시가 완전한 미를 획득했다는 결론으로 옮겨갑니다.
작가가 하나의 글에서 여러 가지 욕심을 내게 되면 글이 균형을 잃기 쉽습니다. 가볍고 즐겁게 읽을 수 있던 글이 무거운 주제를 실으려고 하면서 삐걱대고 맙니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일관성 있게 끌어가는 힘이 필요하겠습니다.
폭심을 중심으로 폭발이 퍼져 나가는 서술은 탁월했습니다. 종로구부터 시작해서 과천 부산으로 퍼져 도쿄타워를 녹이고 베르미 박사의 연구소까지 퍼지는 서술은 작가가 작은 부분에도 신경을 써서 서술하고 있다는 걸 잘 보여줍니다.


B: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등장하는 E=mc^2 공식에 착안한 기발한 아이디어를 풀어낸 글입니다. 원자폭탄에 사용된 이 원리를 인간의 몸무게, 즉, 인간의 질량과 연결시키면 살이 빠질 때 지구를 날려버리는 에너지를 뽑을 수도 있다는 착상입니다. 핵분열이나 핵융합을 하지 않고도 특별한 옷으로 질량을 직접 에너지로 바꾼다는, 과학자들이 경악할 기술이 등장합니다. 은근히 웃게 되는 대목이긴 하지만, 글 전체가 의존하는 기본적 발상과는 썩 어울리는 의뭉스러운 설정입니다. 또한 이 설정은 작가가 주 소재를 잘 파악하여 다룰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평생 비만으로 굴욕감에 시달린 루시의 마지막 선택이 ‘복수’인지 아니면 결국 타인의 시선을 넘어서지 못하고 날씬함에 집착하는 ‘욕망’인지가 모호합니다. 말미에 주제를 요약하듯 생뚱맞게 던진 문장은 군더더기 같습니다. 비만 때문에 대충대충 살다가 연구소와 접촉해서 이때다 하고 복수를 하고 날씬해져버리는 과정이, 결국 여성의 본질적 이데아는 미(美)라는 루키즘의 정수로 해석될 여지를 만들어 버립니다.  철학적 담론이 담긴 끝 문장을 주제로 잡고자 했다면, 루시의 심리적 흐름이 좀 더 진지하게 다뤄져야했겠지요. 담백하고 즐거워서 가볍게 읽히는 글입니다만, 재미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깊은 의미를 부여하려던 시도가 이 글에서는 오히려 군더더기가 되어버렸고, 그와 동시에 글이 균형을 잃어서 아쉽습니다.
74호 독자 우수단편 가작에 선정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거울 독자우수 단편에 선정되신 분들께는 책을 한 권씩 보내 드립니다. Itpimento @ paran.com 으로 우편물 수령할 주소, 성함, 전화번호(택배 발송시 필요)를 보내 주세요.
댓글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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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no 09.08.09 18:33 댓글 수정 삭제
    그럼 일단 진정하신 다음에 돌아오세요. 상대방한테 시작부터 유치하다고 욕하는데 누가 욕하는 사람을 감싸고 돌겠습니까. 그리고 평가받길 원한다면 자신의 해석을 올리세요. 여기서 계속 싸우지 마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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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로스 09.08.09 18:40 댓글 수정 삭제
    거울 측에 좋을 거 없다니요. phantahunt님의 글이 만약 옳다면, 그거야말로 거울에 좋은 것이겠지요.

    가짜 아이디로 비방하는 태도를 감싸돈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phantahunt님의 글이 정말 옳고 설득력이 있다면 phantahunt님의 지적은 받아들여지겠지요. 하지만 그전에 독자우수단편 선정위원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좀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을 맡으며}라는 글을 좀 읽어보세요.

    원래 심사단의 역할이라는 건 기본적인 글쓰기 능력을 심사하는데 있지, 전문적인 평은 그 이후에나 오는 것입니다. 계속 말씀드리지만, phantahunt님의 글은 철학이나 문제의식 이전에, 소설로써 좋은 표현력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거울 심사단의 중론인 것입니다. 심사단이 '피상적'인 것만 본다고요? 피상적인게 아니라 가장 '기초적'인 걸 보는 겁니다. 기초가 없는 사람의 글을 굳이 '깊이 있는 비평'까지 해줄 필요가 있습니까? 안 그래도 거울 심사위원들은 엄청난 양의 소설들을 심사하고 있습니다. 작가 입장에서는 자신의 작품의 '깊이'를 이야기해주지 않는 심사위원들이 같잖아보일지도 모르겠으나, 심사위원들은 '독자', '비평가'의 입장에서 글을 보게 마련입니다.

    거울의 독자우수단편 선정은, 문학상으로 따지면 '예심'입니다.
    대체 어느 문학상에서 '예심'도 통과 못 한 글들을 '깊이있는 비평'까지 해주나요? 그런 문학상 심사단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예심에서 심사위원들은 기초적인 글쓰기 능력을 봅니다. 그게 없으면 문학이라는 예술을 수행할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게 바로 문학상 심사위원들이니까요.

    '예심'을 통과할 기초실력부터 다지고 오세요. 그 후에나 phantahunt님의 문제의식이라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겁니다. 어차피 비평란에 글을 올리셔봤자, phantahunt님 글에 대한 거울의 평가와는 별 상관없는 것입니다. 거울의 심사위원들은 phantahunt님의 글이 담고자 했던 문제의식을 보지 못한 것이 아니라, 문제의식을 효과적으로 표현하지 못한 글쓰기능력의 부족을 지적한 것이고, 이는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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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로스 09.08.09 18:49 댓글 수정 삭제
    피보나치 수열 틀렸다고 계속 이야기하시는데,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을 맡으며}를 좀 인용해보겠습니다.

    "물론 모든 비평이 옳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심사평 역시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들지 않아서 비평이 틀리다고 여긴다면, 자신의 글이 발전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어떤 비평이라도 그 속에는 더 발전하기 위해 꼭 필요한 조언이 하나쯤은 들어있습니다. 냉정하게 비평을 분석해서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면서 계속 진지하고 치열하게, 꾸준히 작업하셔서 글의 발전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감히 말씀드리지만, 심사단의 이름으로 앞으로 쓰게 될 모든 글에 대해서 글쓴이들보다 저 자신이 우월하다고 여기는 마음, 다른 이들의 글을 깎아 내리려는 마음은 한 톨도 섞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내 글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렇게 읽어 주길 바랐던 기분으로 읽었으며, 읽을 것입니다. 내 글을 퇴고하는 마음가짐으로 다른 분들의 글을 곱씹어, 보다 나은 글을 쓰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지 진지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소설을 쓰는 것에 완성이라는 것, 완벽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소설도 완벽한 소설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조금 더 손질하고 조금 더 다듬어 낼 수 있는 곳은 없을지 숙고하겠습니다."

    심사위원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니 당연한 일이지요. 그렇다고 심사위원의 평이 쓸모없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평에서 틀린 부분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냉정하게 비평을 분석해서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지 못한 채 '버릴 것'만 붙들고 있는 phantahunt님의 건강하지 못한 태도입니다. 이런 식으로 타인의 지적을 무시한다고 해서 phantahunt님의 글의 문제점이 가려지는 것은 아님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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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siris 09.08.09 19:00 댓글 수정 삭제
    피보나치 수열에 대해서 말인데요. 피보나치 수열은 1로 시작한다고 보아도, 0으로 시작한다고 보아도 다 옳죠. 수학적으로 정확히 말하면 피보나치 수열의 첫번째 항은 1입니다. 0은 피보나치 수열을 선형방정식으로 만들기 위해서 추가된 초항 아닙니까? 이 부분은 거울측의 해명이 있어야 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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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zuretears 09.08.09 19:15 댓글 수정 삭제
    피보나치 수열 이야기가 자꾸 나오는데, 시작이 0이든 1이든 피보나치 수열에 607이라는 숫자는 포함 안됩니다... 판타헌터님은 이것도 틀리시고 피보나치 수열도 틀리는 심사평 운운하시는데, 마찬가지이십니다. 애초에 작은 오류 하나를 확대해서 전체가 모두 틀렸다는 식의 논지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드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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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로스 09.08.09 19:30 댓글 수정 삭제
    제가 가지고 있는 대학 전공서적 수학책들은 다들 초항을 1로 놓고 있군요.(대학출판부의 책이든 인터내셔널판 원서책이든) 어쨌거나 607이 피보나치 수열에 포함되지 않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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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antahunt 09.08.09 20:01 댓글 수정 삭제
    유로스 님이 말씀하고자 하는 바는 잘 압니다.
    그러나 그건 일반적인 얘기입니다.
    이런 경우에 잘 사용하는 논리입니다. 즉 "당신이 주제의식을 잘 표현하지 못 했다"는 것이지요. 모든 예술작품의 특성상 이런 일반적인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작품들이 얼마나 될까 궁금하네요.
    그리고 피보나치 수열은 단 하나의 얘, 사소한 얘에 불과다하고 했습니다.
    위의 댓글들이 관리자 분의 조취로 없어지면,
    그 때 평론글 한 편과 평론에 대한 평론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관리자 분에게 사과를 드렸습니다.
    다른 분들은 이제 자제해 주셨으면 합니다.
    모든 토론(제발 건설적이 되기를)은 이후에 올리게 될 두 편의 글을 통해 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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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antahunt 09.08.09 20:09 댓글 수정 삭제
    유로스 님에게 한 마디 더 덧붙히면
    평가자 분들의 사소한 실수를 문제 삼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실수를 할 수도 있지요. 잘 못을 할 수도 있습니다.
    말씀하신 것 처럼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현재 한국 대부분의 장르문학 싸이트에서와 마찬가지로
    거울에 진정한 '평론'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결국 제 작품들에 대한 평을 불미스러운 일로 번진 것입니다.
    해석 이전에 가장 기초적인 문제들만 다룬다고 유로스 님이 말씀하셨는데,
    해석 따로 기초적인 검토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렇게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한 작품을 해석 한다는 것의 의미'를 잘 생각해 보면
    결국 가장 하부에 놓여진 문제들 역시 포함되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오해를 많이 하시는데, 오직 대가 만이 작품을 통해 문제의식을 다루는 시도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소설을 쓰는 행위에 본질적인 요소입니다.
    이를 잘 이해하신다면 저를 보고 "니가 그렇게 대가야? 아니면 그냥 가만히 있어"라는식의 어의없는 비난을 하시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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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로스 09.08.09 20:59 댓글 수정 삭제
    제 말을, 전혀 이해하시지 못하시는 것 같군요.

    문제의식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그걸 문학이라는 예술에 맞게 표현할 능력이 없으면 말짱 꽝이라는 겁니다. 독자들 눈에는 phantahunt님 뇌에서 벌어지는 문제의식에 대한 치열한 탐구 따위 전혀 보이지 않아요. 그저 표현력이 부족하여 문제의식을 제대로 담지 못한 글만 보일 뿐이죠.
    거울에서 소설을 심사하는 것은, 소설이라는 텍스트 내에서 작가가 얼마나 문제의식을 잘 표현했는지를 보는 것이지, 텍스트에 제대로 표현도 못한 작가의 문제의식을 애써 추측해내는 게 아닙니다.

    지금 올리시는 댓글만 해도 오타와 띄어쓰기 오류와 비문이 넘쳐납니다. 기본적인 문장력이 있어야 전달력과 표현력이 뒤따라오는 법입니다. 제발, '소설'을 쓰시려면 '소설'공부, 문장공부부터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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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urt 09.08.09 21:00 댓글 수정 삭제
    습작중인 소설가 지망생들끼리 서로에게 하는 충고이자, 그들 중 누구도 지키지 못하는 충고는 “습작 시절부터 자신의 소설에 거대담론을 다루지 말 것”입니다. 소설을 막 쓰기 시작하자마자 그것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phantahunt님께서 방금 말씀하셨듯 phantahunt님 역시 아직 대가가 아니기 때문에, phantahunt님 역시 그것을 잘 할 수 없었습니다.

    phantahunt님처럼, ①거대담론을 소설에 접목하려 한, ②그러나 실패한, ③그리고 그 실패를 지적받은, ④그러나 그 지적에 수긍하지 못하는 행동은 습작중인 소설가 지망생들에게서 자주 볼 수 있는 행동이라 별로 낯설지 않습니다. 그리고 덧글 조작이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거대한 담론을 이끌어내려는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행동 역시 별로 낯설지 않습니다. phantahunt님의 실패는, 그것이 작품 내적인 것이든 외적인 것이든, 이렇게 애써 변명해야 할 만큼 큰 것이 아니라 남들 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당신들은 미처 알지 못할’ 거대담론을 의도했다는 식의 거짓말은 하지 않으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문학 커뮤니티에서 그런 거짓말은 그다지 독창적인 것은 아니예요. 그래서 다들 금세 눈치챌 수 있고, 그래서 이렇게 덧글이 줄줄이 달리는 거예요.

    작가 자신이 습득한 지식을 문학의 언어로 번역하는 데 진이 빠져, 정작 다른 데에는 신경쓰지 못하다 보니, 모든 등장인물들을 카드보드 캐릭터들로 만들어버리는 작가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워하곤 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완성된 작품들의 ‘문제의식’은, phantahunt님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냉정하게 말해 ctrl+C / ctrl+V보다 나은 방식으로 작품에 봉사하지 못합니다. 소설은 삶의 단면이지 위키피디아의 한 페이지가 아닙니다. 작가가 얼마나 중요한 명제를 언급하려 했는지는 소설에 있어 결코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 작가란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실패를 애써 변명하시기보다, 더 나은 글을 쓰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빕니다.
  • No Profile
    mirror 09.08.09 23:26 댓글 수정 삭제
    환상문학웹진 거울입니다.

    거울은 거울 비평이 완전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평에 대한 반론 역시 늘 귀 기울여 듣고 있으며, 항상 찾아오는 분들께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평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phantahunt님의 요청에 대한 답변은 다음 글에서 하고 먼저 피보나치 수열에 대해 답변하겠습니다.

    이번 독자 단편 심사평에 나오는 피보나치 수열에 대한 언급에 석연치 못한 부분이 있다는 지적이 있어서 간단하게나마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피보나치 수열은 이탈리아의 수학자 레오나르도 피보나치가 1202년 출판한 “산반서”를 통해 알려진 수열입니다. (그 전에 기원전 5세기경의 인도 수학자 핑갈라의 책에서도 언급된 적은 있습니다만, 서구의 책 중에서는 산반서가 최초의 책입니다.) 이 책에서 피보나치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시합니다.

    “한 쌍의 토끼가 있다. 이 한 쌍의 토끼는 매달 암수 한 쌍의 새끼를 낳으며, 새로 태어난 토끼도 태어난 지 두 달 후부터 매달 한 쌍씩의 암수 새끼를 낳는다고 한다. 갓 태어난 한 쌍의 토끼로부터 1년이 지나면 토끼는 모두 몇 쌍이 될까?”

    이 때 토끼의 쌍은 다음과 같은 수의 배열을 가지게 됩니다.
    1, 1, 2, 3, 5, 8, 13, 21, 34, 55, 89, 144, 233, 377, 610, 987, 1597 …

    이 수의 배열을 피보나치 수열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루카스라는 수학자였습니다. 그리고 이수열을 구성하는 숫자들을 ‘피보나치 수’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대한수학학회에서 발행한 피보나치 수열에 관한 논문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 1, 1, 2, 3, 5, 8, …, x, y, x+y
    최초의 두 항은 1로 되어 있고( F1=F2=1 ) 그 이후에는 바로 직전에 있는 두 항의 합으로 구성되어 있는(Fn=Fn-1 + Fn-2, n>=3) 수열을 피보나치 수열이라고 한다. 』
    ( 피보나치 수열과 초등학교에서의 그 지도 가능성(76336813) 저자: 정동권(Dong-Gweon Chung) 발행처: 대한수학교육학회 발행일: 1995 중에서 )


    그런데, 피보나치 수열을 0, 1, 1, 2, 3, … 이라고 정의한 페이지가 인터넷에 다수 존재합니다. 이것은 1, 1, 2, 3, 5, … 로 이어지는 피보나치 수열을, 선형방정식으로 만들기 위해서, n=0인 경우를 가정하면서 생긴 일입니다. 이 때 F0=0 이라고 보아도 주어진 점화식 Fn=Fn-1 + Fn-2에는 무리가 없기 때문에 F0라는 0번째 항을 가져오게 된 것이죠.
    (http://mathworld.wolfram.com/FibonacciNumber.html 참고)

    즉, 간단하게 말씀 드리자면, 자연계에서 나타나는 피보나치 수열은 1항에 해당하는 1로 시작하는 수열이며, 0으로 시작한다고 일컬어지는 피보나치 수열은 선형방정식을 만들기 위해서 0항을 삽입한 수열입니다.
    자연계에 나타나는 피보나치 수열에 대해서는 아래 페이지들을 참고해 주십시오.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704170937212&code=900314 http://e-fund.kr/596 등)

    수열의 발생 근원으로 보았을 때, 자연계적 현상에서의 피보나치 수열의 첫째항은 1이며, 0은 인위적 목적을 위해 삽입된 0번째 항이라는 것을 밝혀 놓습니다.
  • No Profile
    mirror 09.08.09 23:27 댓글 수정 삭제
    이번엔 심사평 삭제 요청에 답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심사평은 삭제할 수 없습니다.

    첫째로 문예비평 또한 창작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창작한 글의 저작권이 창작가에게 있듯이 비평 글에 대한 저작권은 비평가에게 있습니다. 창작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비평에 대해 삭제를 요청하실 수는 없습니다.

    둘째로 심사평 또한 웹진 거울의 콘텐츠이기 때문입니다.
    거울 메인 페이지에 올라오는 글은 거울을 찾는 독자 여러분을 위한 콘텐츠입니다. 그 중 일부라 할지라도, 누군가 내용에 동의할 수 없다는 이유로 삭제할 수는 없습니다.

    거울은 항상 원칙을 지키고 독자 여러분을 위한 옳은 길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모두 건필하세요.
  • No Profile
    보라 09.08.10 09:17 댓글 수정 삭제
    마지막 댓글들이 멋집니다. hurt 님이랑 편집장님 대인배이셔요. 꺄아 >_<

    역시 영웅은 난세에 빛나는 거군요 (뭔 소리야)
  • No Profile
    phantahunt 09.08.10 09:30 댓글 수정 삭제
    제 개인정보 유출한 사람들 댓글 아직 삭제 되어 있지 않군요.
    마지막 경고 입니다. 지우십시요.

    거울의 측의 답변과 hurt 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아이디 만들어서 인신공격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규제를 부탁드립니다.

    조만간 평론글을 한 편 올리겠습니다.
    위에서 말한 문제의식을 다루고 있는 글이고,
    타인을 비난하거나 자기변호를 하는 내용은 전혀 없을 테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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