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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독자우수 비평단은 올라오는 모든 글을 다 정독합니다. 평의 길이가 다 같지 못하는건, 장점과 단점이 뚜렷하게 보이는 글이 있고, 아직 어떤 식으로 자라날지 더 지켜봐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 편 만으로는 섣부른 평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때문에 평의 길이가 길고 짧음이 어떤 글이 더 낫고 더 낫지 않음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평을 받기 위해 글을 올린 후 한 달 혹은 그 이상을 기다리셔야 한다는 것, 한 편 한 편 최선을 다해 쓰신 글이라는 걸 압니다. 거울은 늘 새로운 글에 목마른 곳입니다. 우수단편 선정은 하나의 형식에 불과하며 모든 글을 주의깊게 읽습니다.
모든 분들의 건필을 기원합니다.


나길글길님의 [녹색 거인(Green Giant)]은 소재를 끝까지 밀고 나가 다양하게 응용해보려는 점이 좋았습니다. 소재 자체가 강렬해서 거인에 대한 소개격인 거인이 강하다거나, 이제까지 이런저런 시도를 했는데 다 튕겨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에피소드들을 짧게 하고 중심 사건 하나를 강하게 조명했으면 어땠을까 합니다. 호수를 장악하려고 시도하는 에피소드들이 비슷한 이야기가 겹쳐 이야기가 늘어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막상 거인이 호수를 내주자 사람들이 제대로 관리를 하지 못해 금세 지저분해지는 에피소드는 좋았습니다.


DOSKHARAAS 님의 [집]은 초반에 사람들마다 그 집에 사는 유령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해서, 유령의 정체에 대해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데는 성공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나온 결말은 맥이 빠졌습니다. 장갑차, 스님, 인물의 과거, 귀신이 되어 버린 집 등등이 그냥 불쑥불쑥 튀어나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었다기 보다는 따로 놀았습니다. 글을 쓴 이가 이야기와 소재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습니다.


야키 님의 [운전수]는 모든 걸 다 대사로 설명해버렸습니다. 상황을 대사로 설명하는 건 글을 쓰는 이에게 쉽게 느껴지는 방식일 수 있으나 그만큼 함정이 있습니다. 일단 사람이 말로 풀기 시작하면 논리적으로,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면서 말을 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대사로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현실성이나 긴박감이 떨어지게 됩니다. 대사로 사건을 설명하는 게 어렵기도 하지만, 긴박감 있게 서술하지 못해 독자 입장에서 몰입하기 힘듭니다. 대화를 주고받는 두 사람은 이미 상황을 안다는 전제에서 시작해, 독자들이 충분히 납득할 만큼 실제 일어난 사건, 배경 등등을 설명해 주지 못했습니다.
또한 이런 세상에서 주인공 정도 사연 없는 사람이 있을까 싶으니만큼, 운전수가 주인공을 특별히 대우해줬어야 할 이유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중요한 사건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주인공의 사연에 살이 붙는다면 더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습니다. 건필하세요.


FR님의 [실종]은 독자가 예상한 반전을 그대로 가져갔고, 내 기억에만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소재도 진부한 맛이 있어 아쉬웠습니다. 갑자기 사라져버렸다는 사건 자체에 별 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고, 아는 형이 사귀던 여자와 주인공 남자가 만나는 여자가 같은 여자인지도 알 수 없으며, 역시 그 둘의 사건에 연관성이나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습니다.
대사로 진행되었으나 대사를 재미있게 잘 썼습니다. 대사로 진행해도 큰 무리가 없을 만큼 사건 자체가 그렇게 크지 않고, 대사를 감칠맛 나게 잘 썼으며, 사이사이 에로틱한 묘사가 뒤를 궁금하게 하는 맛이 있어 재미있었습니다.


볼티 님의 [신이여, 마법이여, 안녕히 잠드소서]는 재미있는 소재를 포착했습니다. 글을 쓸 때, 무의식적으로 쓰면 자신도 모르게 전에 봐온 장면의 영향을 받아 서술하게 됩니다. 이 글에서 갈릴레오 재판 모습이 그러했습니다. 너무 여러 번 그려진 장면입니다. 퇴고하실 때 이 점을 유념하셔서 혹 너무 흔한 장면은 없는지, 새롭게 연출해야 하는 부분은 없는지 살피시길 권합니다.
신과 갈릴레오의 대화 장면이 가장 부각되어야 하는 장면인데, 너무 말로 풀었으며 더 깊이 있게 가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종교와 과학은 흔히 대립된다고 생각하는데 그 시작점과 지향점은 다르지 않습니다. 종교와 과학이 실제로 가진 많은 함의, 사회제도가 가지는 대립각 등은 실제로 깊이 있게 공부해야 쓸 수 있는 내용입니다. 독자들은 굉장히 예민하며 글이 가지는 깊이를 바로 파악합니다. 좋은 소재/주제를 고르신 만큼 좀 더 깊이 공부하셔서 다른 형태로 더 써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줏어듣기 님의 [가슴에 꽃 한 송이]는 인물이 현실감이 없어 예쁘게 잘라 놓은 종이인형처럼 느껴졌습니다. 큰 무리 없이, 큰 흠 없이 쓴 글인데 한두 곳 정도, 읽는 이가 공감하거나 인상에 남는 사건/에피소드가 있었다면 하는 점이 아쉽습니다. 사랑/연애는 둘이 하는 거니까, 상대방의 감정도 어느 정도 그려졌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니그라토 님의 [몽유의식], [권력상실]은 지금까지 니그라토 님이 써온 글과 다른 점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소재가 글의 전부는 아니라 할지라도, 소재 자체가 이젠 낡은 감이 있는데, 새로운 시점을 보여주지도 못하고, 읽는 이에게 설득력을 줄 만큼 깊이 있게 풀지도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몽유의식]은 초반은 긴박하고 궁금증을 줬는데 결론이 싱겁고, 무엇보다 니그라토 님께서 이미 여러 번 보여주신 결말이었습니다.
니그라토 님의 글은 일정 궤도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 궤도를 벗어나려는 시도가 필요합니다. 변화가 곧 발전은 아니나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인지라 정체는 곧 퇴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한 자리에서 꾸준히 일관성있게 자신의 색채를 유지하는 것도 의미 있겠으나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쓰신 방식 말고 다른 방식으로 글에 접근해보시길 권합니다.


츄다 님의 [식인 충동]은 제목이 스포일러였습니다. 제목에서 이미 많은 것이 드러날 뿐만 아니라, 식인이라는 극단적인 행동까지 가게 만드는 '재능'에 대한 갈망을 제대로 그리지 못했습니다. 신동이라 불린 모짜르트는 4살 때부터 아버지의 엄명으로 매일 피아노를 연습해야 했습니다. 해도해도 안 되었다는 좌절의 벽을 그리지 않고, 앞뒤 없이 그저 '재능'으로 몰아붙여 극단적인 행동에 설득력이 없었습니다. 가장 설득력이 없었던 건 주인공의 여자친구입니다. 고작 그런 정도의 말에 그런 행동을 취한다는 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백제]는 역사의 한 장면을 그린 글입니다. 계백이 아닌 다른 인물을 메인으로 내세웠지만 이야기형식으로 서술하는 역사 이야기를 벗어나 소설이 되는 지점까지 도달하지는 못했습니다. 자료를 찾고 조사하려는 열의가 눈에 띄었으며, 열심히 쓴 흔적이 보이는 글이었습니다.

[나비]는 주인공이 처한 상황, 자기 같았던 옛 친구가 잘 나가는 걸 보고 배알이 뒤틀리고 질투도 나고 열등감에도 휩싸이는 모습 등등은 실감나게 잘 그렸는데 결말이 많이 아쉬웠습니다. 이야기를 벌인 후 마무리를 짓지 못한 듯한 점이 아쉽습니다. 전반적으로 심리 포착은 굉장히 잘 된 글이었습니다.


VANS님의 [殺犬의 추억]은 아직 소설로서, 형식적인 완성도를 갖지는 못했지만 어쩌지 못하고 눈감아 지나쳐버린 상황에 대한 죄책감을 잘 그렸습니다. 무엇보다 화자의 감정을 배제한 채 상황을 통해 독자가 느끼도록 하는 면이 좋았습니다.


clancypark님의 [테이프]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뽑아낸 글이었습니다. 대사를 좀 더 살아 있게 해주면 훨씬 맛이 살 것 같습니다. 소설은 물론 가상의 이야기이나, 읽는 이들이 읽는 순간에는 진짜 이야기처럼 읽어야 합니다. 이런 현대물일수록, 대사를 잘 쓰지 못하면 가상의 이야기라는 게 들키고 맙니다. '그는' 같은 말은 우리말에서 입으로 말할 때 하지 않는 말입니다. 대사 부분은 퇴고하실 때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대사와 지문이 심정적으로 구분이 잘 안 가는데, 그런 부분도 보강하면 좋을 것 같고요. 소재가 아주 참신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구체적인 디테일을 잘 잡았습니다.


흰새님의 [백미러를 부수는 여자]는 작위적인 구석이 많이 보였습니다. 죽음에 임박한 사람과 죽음으로 연인을 떠나보내는 사람, 둘 다 감정을 표면에서만 다뤄서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죽음, 떠나보냄, 이런 것들에 대해 더 깊이 있는 통찰과 사색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죽음이라는 소재는 너무 큰 소재라 굉장히 다루기 힘든데 너무 지엽적으로 둘 사이에 있었던 몇 가지와 백미러에 있는 글귀 등으로 다뤄버린 면이 있습니다. 몇 가지 단서로 띄엄띄엄 시간적으로 건너뛰면서 진행한 후 키워드를 나열했는데, 이런 연출은 만화에서 많이 사용하는 연출입니다. 만화에서는 그 글귀 외에 그림과 칸과 여백과, 그림과 칸과 여백에 의한 연출이 있습니다. 글에서 만화적인 연출을 따올 때는, 그림, 칸, 여백에 의한 연출이 없는 대신 서술이든 묘사가 되었든 무엇으로든 글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해주지 않으면 글이 비어보이게 됩니다.


Mad Hatter님의 [외계인 침략자]는 1은 약간 지루했고, 없어도 큰 상관없는 부분이었지만 2는 재미있었습니다. 처음 이름이 나온 건 여자아이인데 막상 본 인물은 남자아이였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여자아이가 등장할 이유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결말이 당황스러웠는데요. 갑자기 뚝 하고 이야기가 끊겼습니다.
외계인 침략자가 침략하기 시작하는 시점으로는 잘 썼습니다. 다만 외계인 침략자가 침략을 해왔으면 파멸이든 제압이든 어쨌든 해결까지 이야기가 있기를 기대하고 바라는 게 독자 심리입니다. 침략으로 이야기가 끝날 지라도 우린 끝이라는 절망이든, 소화기 하나로 싸워야한다는 참담함이든 무엇이 되었든 간에 상황을 정리할 만한 에피소드는 필요합니다.


라티 님의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시네]는 결말이 진짜 바다로 가는 것인지 도박장 바다로 가는 것인지, 혹은 어느 쪽으로 해석하든 독자의 자유의지에 맡긴 것인지 분명하지 않았는데요. 도박장 바다로 간다면 핸드폰에서 광고만 와도 짜증내며 삭제하던 인물의 행동으로 보기에 갑작스럽고, 진짜 바다로 간다고 해도 무책임하게 떠나는 사람의 모습 치고는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그려진 면이 있어, 어느 쪽이든 애매한 결말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서술과 주인공의 서술을 주어로만 구분해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점도 아쉽습니다. 모비딕의 백경을 차용해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간접적으로 드러냈는데, 이렇게 유명한 작품을 인용할 경우, 한두 줄만 인용해도 작품 전체가 인용한 글에 잠식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도박에 빠진 사람의 구질구질한 심리 등은 굉장히 잘 그렸습니다.


Mothman님의 [멸망한 짐승들의 왕국]은 교차되는 서술이 굉장히 어지러워서 지금 어떤 사건이 누구의 시점으로 어떻게 돌아가는가, 라는 기본적인 내용을 파악하는 것부터 쉽지 않은 글이었습니다. 각기 다른 집단에 속함에도 인물들의 이름이나 서술이 비슷비슷해 더 구분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렇게 여러 상황에서 소설이 진행될 때에는 대사와 지문만으로 서술하기 보다는 '***' 등의 끊는 표를 활용하시는 것도 좋습니다.


누혜 님의 [어느날 갑자기]는 제목이 밋밋했습니다. 여러가지로 읽으며 고민한 글이었는데요. 정신 나간 여자, 남편, 아이들의 모습을 흔한 인물이 아님에도 굉장히 리얼하게 잡아낸 것에 비해 주인공 여자는 현실감이 떨어졌습니다. 나쁜 일을 겪을 만큼 겪으면서도 착한 심성을 유지하던 캐릭터가 너무 급작스럽게 변했습니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도 자기 심성을 유지하던 인물의 반응으로는 너무 평범하게 보이기도 하고요. 결말을 뫼비우스의 띠로 가버린 게 아쉬웠습니다. 결말까지 끝까지 글을 밀고 나가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중간중간 묘사가 굉장히 사실적이었고, 잡기 힘든 캐릭터와 상황을 리얼하게 잘 그렸습니다.
거울 독자우수 단편 가작으로 선정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독자우수 단편에 선정되신 분께는 책을 한 권씩 보내드립니다. ltpimento @ paran.com 으로 주소, 성함, 연락가능한 전화번호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댓글 4
  • No Profile
    라티 08.11.02 16:02 댓글 수정 삭제
    결말이 두 가지로 보인다는 평에 좀 당황했습니다. 제 자신은 애당초 열린 결말은 생각한 적 없었고, 도박장으로 다시 간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거든요. 뭐, 바꿔 생각하자면 그런 식으로도 보일 수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야겠지요.
    비평 잘 받았습니다~
  • No Profile
    볼티 08.11.03 14:16 댓글 수정 삭제
    읽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비평 감사합니다.
    다른 작품으로 또 찾아뵙겠습니다.
  • No Profile
    누혜 08.11.04 09:08 댓글 수정 삭제
    비평 감사합니다. 더 좋은 글을 써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No Profile
    Mad Hatter 08.11.06 13:33 댓글 수정 삭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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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6 2013.02.01
선정작 안내 꼭지 소개 2003.06.26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3 2012.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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