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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키 님의 "끝의 너머에는"은 정체모를 존재의 난입, 갑작스런 혼란 혹은 멸망, 체스를 두는 두 존재의 모습이 각기 따로 놀고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굉장히 치열하게 고소득자로 올라간 것 같지만, 어떻게 올라갔는지는 보여주지 않았고, 혼돈 상황도 이유 없이 닥치고, 체스를 두며 나누는 두 인물의 대사도 뜬금없었습니다. 장면과 장면을 잇는다는 것보다 큰 줄기, 뼈대를 먼저 생각하시길 권합니다.


Sky導  님의 "Monologue"는 혼자 하는 독백인지, 상대가 명확히 있는 건지 불분명했고, 대화하는 상대가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 상대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 글을 쓴 분의 의도일 수도 있겠으나, 독자와 거리가 멀었습니다. 분위기나 감성에만 집중하다보면 이야기가 공중에 떠서 읽는 이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거나 감동을 주기 힘들어집니다.


FR님의 "꿈"은 전작처럼 구성이 돋보이는 글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작보다 빈 부분이 더 많이 보여 아쉬웠습니다. 혁신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거나 현실 안의 현실을 다루면서도 인과관계가 마지막에 명료하게 드러나는 글을 더 찾아보며, 많이 보여주고 고치며 구성을 연구하시길 바랍니다. 꿈 속에서 본 남자, 그리고 결국 현실에서도 접점이 있었던 남자는 누구인지, 죽은/죽인 아이는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것인지에 대해 최소한의 설명이나 암시가 나오지 않았는데 이야기/구성이 설득력을 얻고 구체성을 띠기 위해 위해 필요한 부분입니다. 헐거운 부분들을 촘촘하게 끼울 수 있다면, 멋진 글이 나올 것 같습니다.


레드엔젤님의 "생명의 신"은 중요한 이야기들이 많이 빠져 있었습니다. 의식 묘사가 너무 흐릿하게 지나가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 알기가 어렵고, '종마'라고 하는데 여자가 아이를 낳은 후 죽이는 것도 아니고, 구슬은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그리지 않았으며, 왜 이 사람은 다른 포로들은 다 죽인 와중에 살렸는지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결국 글을 쓴 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고자 하는 중심 이야기를 먼저 잡은 후, 그에 맞춰 세부를 그리시기 바랍니다.


니그라토 님의 연작에서 사용된 소재는 지금은 많이 다루어져 낡은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기존에 그 소재를 다룬 글/영화 등 보다 더 나아가거나 참신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상황/사건을 너무 간략하게 묘사해 요약본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변호 거부"에서 보여준 역설은 좋았지만, 역시 이야기도 너무 간략하고, 사유의 흐름도 가다가 멈춘 느낌이 아쉽습니다.


땅콩샌드 님의 "이마트 가서 물건 사온 이야기"는 현실 속에 환상을 비틀어 넣은 글이었습니다. 누구나 상식적으로 아는 현실에 다른 걸 넣는다고 해서 의미나 재미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그걸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떤 이야기를 쓸 것인가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구상만 있었을 뿐 이야기로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세이지 님의 "독"은 친구의 역할을 명확히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렇게 중요한 기억을 어쩌다가 닫고 살았는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걸 의식은 어쩌다가 잊고 무의식인 꿈에서만 보이게 되는지 나와야 했습니다. 다른 이야기를 넣으려다 뺐다면, 그 이야기 없이 이 이야기가 완결된 구조를 갖도록 전체를 손봐어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이야기를 만들 때 이게 정말 자연스러운가 많이 고민하고 알아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잠자는 살인'이라는 작품을 한 번 보시길 권합니다.


Deep Seer 님의 "죽은 나무"의 인물들은 생동감이 없어 살아있는 인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최소한의 원형적인 역할조차 부여받지 못한, 글을 위한, 글에 의한 등장인물로 보였습니다. 서두는 본문과 아무 맥락없이 들어갔고, 마지막 문장도 설득력이 없었습니다.


라퓨탄 님의 "애완동물"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몇몇 부분이 겉핥기로 지나가는 게 아쉽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하려는 이야기/소재를 끝까지 밀고 나갔고, 그러면서 재미를 잃지 않았으며, 세대를 거듭하면서 인간/로봇/사회가 바뀌고 사람과 로봇의 관계가 역전되는 모습도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독자우수단편 우수작에 선정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다음 글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유진 님의 "the THING"은 애매했습니다. 현실고발물로 보려면 결말에서 더 그렸어야 했고, 호러였다면 이 글의 결말부분에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메인이 '그것'이든, 윤양이든 간에 좋던 시절은 다 지나갔으니 그것이 살아남든 윤양이 살아남든, 그것이 계속 살아남아 다른 희생자를 찾아가든 결판을 봤어야 합니다.
거울 독자우수단편 가작에 선정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건필하세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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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퓨탄 08.07.04 03:10 댓글 수정 삭제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제가 오히려 감사...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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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08.07.06 11:30 댓글 수정 삭제
    이렇게 가작으로 뽑아주시고 좋은 비평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글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되겠어요. 게다가 책까지 보내주시구요. 책 잘 받아서 이제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흥미진진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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