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올라온 순서대로 카오로이 님의 "잠수함 7호"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시대물을 다룰 때 초보 작가들이 많이 하는 실수가, 주인공이나 주요 인물들이 당시 시대보다 진보적인, 현대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겁니다. 당시 시대보다 앞선 사고를 가진 주인공이라면 왜 그 주인공은 그런 앞선 생각을 하게 되었는 지에 대해 최소한의 설명/설정이 필요합니다. 잠수함 처럼 좁은 공간을 배경으로 했다면 그 잠수함에 대해 좀 더 정밀한 자료조사를 통해 현장감을 더 생생하게 살렸어야 합니다.
영화 "유령"이나 "크림슨 타이드"가 생각나는 줄거리였다는 것도 걸렸습니다. 이미 발표된 유명한 작품과 줄거리가 비슷한 내용의 글을 쓸 때는 스스로 얼마나 영향받고 썼는 지 엄정하게 돌아보고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크라비어님의 "벌"은 재미있는 아이러니였습니다. 캐릭터의 성격은 서술로 이러이러하다, 혹은 이러이러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라고 서술하는 것보다 실제 행동을 묘사하거나 에피소드 등으로 독자가 캐릭터의 성격을 알게 만드는 게 좀 더 효과적입니다.
위에 썼다시피 아이러니 자체는 재미있었지만 아내를 의심하게 되는 계기도, 진짜 상황을 알게 되는 계기도 살해한 상황 묘사에는 많은 공을 들인 것에 비해 너무 쉽고 안이했습니다.


화룡님의 "오규수悟窺樹 "는 초반에 두 사람이 매달리는 주제와 화자가 조난당해서 계속 쥐고 있는 것이 오규수인데, 실제 이야기는 한 여자를 둘러 싼 사각 관계물이었습니다. 소재를 오규수처럼 거창한 걸로 잡았어야 할 이유, 장면전환을 하는 기준 같은 것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세 남자 중 '나'가 여자와 맺어지게 되는 계기나 단서 등이 별 생각을 안 했거나 너무 감춘 것으로 보였습니다. 뻔해 보이더라도 이게 사람 관계에 대한 글이었다면, 다른 이야기로 시선을 돌리지 말고, 다루고자 하는 곳에 집중해야 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냥 읽어내려가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었으나, 이 이야기상 오규수는 진짜 상징이나 의미가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관계의 매개로 보입니다. 그런데 크게 다룬 것에 비해 매개 외에 다른 어떤 의미도 없어 보일 정도로 소재와 이야기가 따로 놉니다. 한 여자만 남겨두고 그 여자를 마음에 둔 세 남자가 같이 섬에 가는 장면에서 독자는 많은 것을 기대하게 됩니다. 그런데 화자가 어쩌다 조난을 당해 혼자 어둠 속에서 오규수(라고 화자는 믿은) 열매를 먹으며 버텨야 했는지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이 없습니다. 형식상 초반부터 어쩌다 조난을 당하게 되었는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마지막 부분이 많이 아쉬워 많은 고민을 했으나 당선작으로 선정하지는 못 했습니다.
건필하세요.

"그 아저씨를 위하여"는 대여점에서 주로 소비되는 장편 판타지, 흔히 쉽게 비판하는 대상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보려한 점이 돋보였습니다. 하지만 읽기에 따라서는 화자가 책을 출간하는 것이 너무 쉬워 보여, 의도는 아니었을 지라도 더 비웃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이 이야기의 본질적인 문제점은 문제 해결 방식이 너무 안이하다는 점에 있습니다. 한 사람만을 위한 이야기를 쓰고자 결심하고, 쓰고 난 후에는 별다른 장애없이 출판으로 이어지고 책이 대여점으로 들어오고, 그 책에서 이뤄 준 아저씨의 며느리와 손주에 대한 소망 등등이 너무 쉽게 그려졌습니다. 정말로 그 사람은 그 이야기로 위안을 받을 수 있을까요? 주인공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서 진짜 타인의 아픔에 대한 이입이나 연민이 절절히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쓰려 한 작가의 의도가 너무 분명하게 읽힙니다.
제시된 문제에 대해 집중해서 답을 내놓고 있다는 점에서 "오규수"보다는 기술적으로 나았고, 의도가 지나치게 들여다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오규수"가 좀 더 나았습니다.


사해 님의 "데미안"은 일단 문장에서 너무 번역투가 묻어난다는 건 둘째 치고 비문도 너무 많았습니다. 문장에 멋을 부리기 이전에 정확한 어순과 구조를 먼저 연습하시길 권합니다. 주어와 목적어, 조사의 호응 같은 기본적인 것들이 많이 걸렸습니다.
감상적인 반짝임은 보이지만, 그 감상적인 반짝임이 자기 것인지에는 의문이 듭니다.


"시간 여행자"는 읽으면서 몇 번이나 앞으로 돌아가서 다시 읽어야 했습니다. 글은 문장을 열거하는 것 이상입니다. 논리적이이어야 하고 흐름을 가지고 이어야 합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계속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 읽는 것은 그 이야기를 어떻게 형상화시키느냐 때문입니다. 아무리 거창한 주제도, 아무리 낭만적인 소재도 형상화시키지 못한 이야기는 공허한 껍데기일 뿐입니다.


포가튼엘프님의 "태초에 우리의 별은 노래했다."는 MMORPG 리플레이 같은 느낌으로 진행되다가 약간 뜬금없이 과거 회상으로 넘어가며 끝났습니다만 기존에 거울에 올렸던 다른 두 편보다 점점 이야기 구조를 갖춰나가고 있는 게 보입니다. 건필하세요. ^^


kura님의 "A Strange case of Mr.Hide and Dr.Jekyll"는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현대판인데, 유명한 책을 오마쥬/패러디/리메이크 할 때는 최소한 '재해석한 이유'는 보여 줘야 합니다. 잘못하면 원작의 휘광으로 인해 자신의 그림자만 더욱 강조되어, 다른 제목을 잡았을 때보다 더 못한 결과를 자아낼 수 있습니다.
글을 쓴 이가 이율배반적이고 추악한 모습을 보여줬다며, 읽는 이보다 먼저 도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읽는 이의 입장에서는 안타깝게도 별다른 감흥이 오지 않습니다. 광주 민주화 운동, 양심 교사와 원조 교제가 두 얼굴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한 대칭선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크라비어 님의 "등불"은 많은 독서를 한 후 자신의 이야기를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쓰기 위해서는 많이 읽어야 한다고 하나, 편향된 독서는 자칫 나의 것과 읽고 받아들인 것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일단 캐릭터들이 너무 한결같이 희화화되어 있고 쓸데없이 많고, 분량에 비해 설정이 과도합니다. 아무리 주인공이 똑똑하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더라도, 단서가 너무 없었습니다. 추리기법을 쓸 때는 독자와 정정당당하게 승부해야 합니다. 적어도 독자는 정정당당했다고 믿게 만들어야 합니다. 독자는 알 지 못하는 이름, 독자는 알 지 못하는 세계, 작가만 아는 설정을 숨겨놓았다가 터뜨리는 건 공정한 승부가 아닙니다. 사전자료가 부족해 설정들이 뜬구름잡게 만드는 면도 있습니다.
글을 쓴 이가 하고 싶은 것, 잘하는 게 뭔지를 먼저 찾았으면 합니다. 자신 있는 게 캐릭터인지, 시뮬레이션인지, 탐정물인지 먼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시뮬레이션은 역사 정치 경제 같은 걸 포함한 것이니 좀 더 공부를 하셔야 하고, 캐릭터라면 웃기는 게 능사는 아니고, 촉새 같다고 다 스마트한 것은 아니니 인간형을 더 연구하셔야 합니다. 탐정물을 추구한다면 독자와 작가라는 입장 사이에서 정보 단속 연습이 필요해보입니다.
건필하세요. ^^
댓글 0
분류 제목 날짜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3 2014.03.01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3 2014.02.01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4 2013.12.31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3 2013.11.30
선정작 안내 독자 우수단편 선정3 2013.10.31
선정작 안내 독자 우수단편 선정1 2013.09.30
선정작 안내 선정작이 없습니다. 2013.09.30
선정작 안내 독자 우수단편 선정3 2013.08.31
선정작 안내 선정작이 없습니다. 2013.07.31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2 2013.07.31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2 2013.06.30
선정작 안내 선정작이 없습니다. 2013.06.01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3 2013.05.31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3 2013.04.30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4 2013.03.29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2 2013.03.01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6 2013.02.01
선정작 안내 꼭지 소개 2003.06.26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3 2012.12.28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16 2012.11.30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13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