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異衆燐님의 "어느 겨울 밤에 찾아온 손님"은 초반 분위기는 고딕적이고 번역체이지만 이국적인 맛을 잘 살렸으나 마지막에 갑작스럽게 무너졌습니다.
손님이 진짜 뱀파이어라는 것과 남자가 손님을 이용하려는 계략이 실패할 거라는 걸 독자가 쉽게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남자가 부인을 죽이게 되는 것과 죽인 후의 덤덤함에 포인트를 주고 더 팠으면 어땠을까 합니다.
부인을 야구방망이로 때려죽이고도 태연했던 남자가 그렇게 무너져버릴 정도로 충격을 받게 되는 모습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결말에 감흥을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아네트"는 여인의 존재에 대해서 궁금증을 일으켜 놓은 것에 비해 드러난 여인의 실체, 결말, 실체가 그것이어야 할 의미도 다 희미했습니다.

두 편에 대해 총평을 하자면 애드가 앨런 포의 스타일을 시도해보려고 한 걸로 보이는데 집요하지 못했습니다. 고딕 소설에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는데 그걸 끝까지 끌고 나가면서 의미를 창출하려면 엄청나게 집요하게 파고들고 묘사해야 하는데 그 점에서 모자랐습니다. 하지만 기본기가 탄탄하기 때문에 다음 글들이 기다려집니다.

“B급 망상극장 : 무뢰도 - 아미파 최후의 날”은 의도와 기대에 충실하고 재치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감상칼자님의 "그녀가 원했던 것"은 일단 제목이 스포일러라 반전을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만 내용에 따른 전개도 반전도 정석대로 잘 쓴 글이었습니다. 2%만 더 나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만 역시 다음 글이 기다려집니다.


뤼세르님의 "내가 그대를 부르고 있어요."는 연인과 헤어진 후 화자의 슬픔을 노래한 시로 감상적이지만 솔직하게 느껴졌습니다.


귀우혁님의 "러브 커뮤니케이숑“은 여자가 남자를 만나려 한 구체적이면서 사소한 이유가 있었다면 반전의 맛이 더 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반전 한 마디를 위해서 끌고 간 이야기였고, 반전은 재밌었지만 반전까지 가는 길이 심심했습니다. 반전이 있는 글을 쓰려면 그와 다른 반전이 있을 것처럼 독자의 착각을 유도하면서 질리지 않게 끌고 가는 기술이 있어야 합니다.

“앵카팔라스”는 여러모로 아쉬웠습니다. 이야기는 굉장히 재미있고 잘 쓴 글이었고 문제적인 의식도 엿보였습니다. 독자에게 의문을 심어주고 이야기를 끌고 가는 데는 성공했지만 의문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액자라는 형식을 통해 결말을 뭉개버렸습니다.
이야기에서 궁금증이나 불만이나 시련 등이 나왔다면 그걸 풀어주거나 대체하거나 아무 상관없어지는 부분을 마련해서 절정이나 결말을 내거나 아니면 최소한 실마리라도 줘야 하는데 해소의 과정이나 실마리가 전혀 없었습니다.

“이반쿠빨라의 밤”은 흔히 있는 요정의 세계에 다녀왔더니 수십 년이 지났더라는 민담을 따라한 이야기고 그 이상의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청성탈출 (멀티엔딩스토리)”는 재치가 부족했습니다. 링크를 통한 멀티 엔딩이라는 시도는 신선하고 재미있었습니다만 네 엔딩 다 허무한 결말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같은 엔딩이었습니다. 차라리 의도 자체가 허무주의였다면 재밌었을 것 같은데 그렇게 읽히진 않았습니다.

이번에 올라온 귀우혁님의 글을 보면서 귀우혁님이 서 있는 기로가 보였습니다. 귀우혁님의 글은 파격적인 면모가 엿보이는데 늘 그 이상을 나가지 못합니다. 그 벽을 넘을 수도, 웬만큼 잘 쓰는 지금 상태에 머무를 수도 있습니다. “앵카팔라스”가 선정되지 못한 건 바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한 치열함, 집요함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파고들지 않고, 몰입하지 않고, 이입할 여지를 주지 않습니다. 일전에 올리셨던 “오사방승 사중부승”도 개인적으로 무척 아쉬웠었습니다. “앵카팔라스”와 “오사방승 사중부승”은 같은 매력과 같은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벽을 인지하고 넘어서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가는 글을 쓴 사람에게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글에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뇰님의 “영웅의 꿈”은 기술적인 면에서는 상당히 완성도가 높은 글이나 사유의 깊이는 그에 준하게 얕아 아쉬웠습니다.
나와 또 다른 나, 또는 내 안의 두 가지 측면을 다룬 소설은 많고 그만큼 다루기 어려운데 이 글은 그야말로 표면적일 정도로 '강함'에 치중된 나를 보여 주고 있고 그 강함이란 것이 어떤 내적인 강함이라든가 총체적인 시련에 대한 극복 의지가 아니라 그저 자신의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을 종결 낼만한 육체적인 강함만을 표상한다는 데에서 '나'에 대한 의식이 얼마나 어리고 단층적인가를 알 수 있고, 그래서 글이 어리게 보입니다.
하지만 이 글에는 어떤 절실함, 절박함, 다른 말로 진심이 보였습니다. 건필하세요.


포가튼엘프님의 “아르실의 마녀”는 별다른 개성이 느껴지지 않는 동화풍의 이야기였습니다. 닉이 눈에 익어 찾아보니 예전에도 다른 글을 올리셨더라고요. 거기서도 ‘아르실’과 ‘마녀’가 살짝 나오는 걸 보고 이 소재로 또 다른 이야기들이 있는가 하는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일전에 올리신 글보다 소설로서의 완성도에 많이 접근한 성장한 글이었습니다.


류머프님의 “Fluorescent Light Violet”은 범상치 않은 끼가 엿보이는 글이어서 읽으면서 즐거웠습니다. 이런 식으로 자기 색채가 확 보이는 글 좋습니다. 다음 글도 기다려집니다.


조금씩 아쉬움이 있어 비록 선정작은 나오지 못했지만 눈길을 끄는 글이 많아 즐거운 달이었습니다. 모두 건필을 기원합니다.
댓글 3
  • No Profile
    귀우혁 06.08.26 01:08 댓글 수정 삭제
    글감은 평소에 쌓아뒀다지만 이틀에 한 편꼴로 마침표를 찍어가며 폭발했건만 역시나 날카로운 심사단의 안목에는 미치지 못했군요. ^^; 벽의 어느쪽에서 보는가에 대해서는 결국 좀 더 숙고해야할 숙제로 남는군요. 뭐 여하간에 그냥 쓰는 수밖에요 'ㅁ')/
  • No Profile
    느긋하게 써나가야겠지요..^^
    아르실의 마녀는 장편으로 설정해놓은 것들중 하나인데 프롤로그 부분만 떼어서 급하게 단편화해서 만든거라..부족함만 통감할뿐입니다..^^
    뭐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제대로 장편으로 만들어볼 생각이라는..^^
  • No Profile
    異衆燐 06.09.04 23:07 댓글 수정 삭제
    역시 고딕 호러의 길은 매력적인 만큼 심오하고 험난하군요.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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