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어느덧 또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모두 한 해 마무리는 잘 하고 계신지요? 심사평을 받은 분들의 출간이나 단편발표 소식 등 좋은 소식이 간혹 들려왔던 한해였습니다. 내년에는 좋은 소식이 더 많이 들려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이번 달 작품들의 특징은 무엇보다 독특한 소재였습니다. 구태의연한 소재보다 독특한 소재를 사용하여 새로운 시도를 한 작품들이 많아서 인상이 깊은 달이었지요. 제법 알차게 구성된 글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알찬 구성과 함께 정제된 문장으로 쓰인 글이 늘어났으면 하는 욕심을 슬쩍 부려봅니다. 장르문학을 지향하는 창작가들은 플롯에 비해 문장이나 문법에 신경을 덜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플롯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문장이 뒷받침되지 못하거나 문법이 엉망이라면 좋은 글이 되기는 힘듭니다. 심사를 보면서도 가장 아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적어도 한글 프로그램 맞춤법 기능을 한 번쯤은 사용하여 교정을 보기를 권합니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그것이 꼼꼼한 교정의 시작점은 될 수 있겠지요. 올해도 변함없이 꾸준히 이어졌던 창작열이 내년에도 꾸준히 이어지기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91호에서는 우수작으로 앤윈 님의 ‘성문 너머 코끼리’를, 가작으로 티아리 님의 ‘우리는 모두 죽을 겁니다’를 선정하였습니다. 다음 달에도 작가분들의 건필을 기원합니다.  
11월 16일부터 12월 15일 자정까지 올라온 총 18편의 글 중 심사대상이 된 글은 12편이었습니다. 심사대상에서 제외된 작품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분량미달  
뮤즈 : 살인두부, 육식주의 : 불타는 검(원고지55매), 뮐을 팔다 : 민간인(원고지56매), 김밥형사 참치 : 김몽(원고지16매), 냉수 : 불쌍한 분(원고지33매), 주마등 : 노드(원고지46매)


침대에서 : Mad Hatter

A:  공포소설을 의도하고 쓰신 글이지만 작가 특유의 장난기가 글에서 자꾸만 두드러지네요. 화자가 고등학생이라는 점에서 약간의 장난스러움을 의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만, 오히려 화자의 말투가 이 글을 지배하고 있는 공포감에는 장애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침대가 살아난다는 설정에 오랫동안 사람의 몸이 닿는 곳에는 영혼이 깃든다는 옛날부터의 미신이 떠올랐습니다. 항상 방에 있는 ‘사물’이 자신을 공격해 온다는 것은 원형적 공포와도 연결된다고 할 수 있겠죠. 그래서 이 글의 소재에 새삼 감탄했습니다. 작가분이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가장 공포스러운 소재를 가지고 왔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이 글에서, 가장 공포를 직접적으로 느끼는 것은 이 화자가 아니라 여자친구가 아닌가 싶네요. 화자의 당혹감이 공포감과 충돌하면서 여자친구나 화자가 이 사건으로 느낄 공포감이 희석되어버리고 맙니다. 작가분이 남성이어서 여자 화자가 불편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글에서는 보다 직접적인 공포를 묘사할 수 있는 건 여자친구 쪽이었겠지요. 만약 지금과 같은 화자를 선택하더라도 공포 외의 감정을 적절히 제어해서 작가가 주제로 삼으려는 감정을 보다 부각시킬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마지막 단락은 조금 더 정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숨죽이며 기다리는 직후, 병실 안에서의 비명소리로 마무리하는 것이 공포를 극대화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B:  여자를 임신시키는 침대라는 소재가 이채롭습니다. 어쩐지 딘 쿤츠의 원작을 영화화한 <데몬 시드 Demon Seed>가 떠오르는군요. 소재와 이야기 전개는 전혀 다릅니다만, 인간에게 친숙한 소재(침대 vs 컴퓨터 시스템)가 인간의 생식을 넘본다는 점이 유사합니다. 일상적인 물건이 인간을 통해 번식하려는 욕망의 바탕에는 생물적이고 본능적인 공포가 깔리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공포의 초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가 문제가 되겠지요. 장편인 경우에는 상황적인 공포와 심리적인 공포를 풍부하게 다룰 수 있지만, 단편인 경우에는 보다 소재의 본질을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공포의 소재가 괴물이나 재앙이라면 그로 인해 벌어지는 상황적인 공포가 본질이겠지만, 여자를 임신시키는 침대라면 오히려 심리적인 공포를 본질로 보는 것이 걸맞지 않을까 합니다.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생물적이고 본능적인 공포가 상황적 공포보다 앞선다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상황적인 공포는 충실히 묘사하려고 노력하지만 심리적인 공포는 그다지 나타나지 않습니다. 구성이 단순하고 단편이라는 특성을 감안할 때, 오히려 심리적인 공포에 비중을 두고 묘사하면서 전반적인 분위기를 이끌어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협회에서 온 남자 : 마그마

A:  1인칭의 글의 대부분이 주인공과 ‘협회 안내원’과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독자에게 필요한 단서는 부족하고 여러 가지 추측만이 가능합니다만, 작가가 적절히 호기심을 유발하기보다는 모든 걸 꽁꽁 숨기고 있을 뿐입니다. 수수께끼가 다 풀리지 않고 남을 때 독자는 때로 더 큰 호기심을 가질 수도 있지만 때로는 아무 것도 풀리지 않은 허탈함과 짜증스러움이 남기도 하지요. 그 차이가 무엇일지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연쇄살인마들이 가입되어 있는 협회가 존재하고, 그 협회에서는 때로 청부살인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이러한 설정은 경찰이 범행의 동기를 추적하는 현재의 수사법을 생각하면 충분히 공포스러울 수 있습니다만, 이러한 설정들이 주인공들의 뜬구름잡는 대사로 떠돌다가 사라지고, 사이코패스로 보이는 주인공의, 공감가지 않는 감정들만이 글을 지배합니다. 그리고 글이 끝나면 화자가 ‘협회 안내원’을 살해하는 잔인한 장면만이 남네요. 그것이 작가가 의도한 바라면, 오히려 군더더기는 최대한 줄이고 그 장면을 강조해 주시면 취향이 맞는 분들에게는 훨씬 좋은 반응을 기대할 수 있을 듯합니다.
로하스 사과나무에 시체의 머리가 악영향을 미칠까 걱정하는 주인공의 감정이 독자에게 충격일 수 있겠습니다만, 글 전체에서 묻혀 버리는 것이 아쉽네요. 마찬가지로 결말 부분의 단락은 오히려 독자의 여운을 감소시켜 버리고 맙니다. 차라리 마지막 장면 전체를 삭제하는 편이 글의 완성도에는 나아 보입니다.


B:  이면에 진실과 정체를 숨기고 진행되는 구성에서는 단서를 얼마만큼 숨기고 드러낼 것인가, 반전을 극대화하기 위해 어떤 장치를 쓸 것인가 충분히 고민을 해야 합니다. 치밀할수록 좋은 글이 되겠지요. 작가가 협회와 사내의 정체를 모두 숨기고 진행되어서 호기심이 일기보다는 답답합니다. 치밀함이 결여된 구성 속에서 시도된 반전은 의아함으로 남고, 독자들의 불쾌감을 의도하면서 묘사되는 잔혹한 장면만이 작가의 바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은 의심으로 남습니다.


회색기사단 : 황성환

A:   우리가 하는 온라인 RPG 게임 속의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이군요. 게임 속의 캐릭터가 플레이어와 일치되는 것이 아니라 별개의 개체처럼 다루고 있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신선한 발상에 그치고 그 이상의 무엇이 없는 것이 아쉽군요. 다루기에 따라서는 존재의 본질과 같은 진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소재였다고 생각됩니다만, 이 글에서는 게이머들이 한번 웃어 넘길 이야기로 그쳐 버렸습니다.
‘현거래’ ‘신’ 등 게이머들이 보면 유쾌할 단어들이 많은 데 비해서 주인공의 목소리는 진중해서 작가가 이 글에서 무엇을 의도하였는지 의문이 듭니다. 특히 마지막 단락은 제목으로 붙일 정도로 작가가 힘을 들인 장면인 듯합니다만, 다른 결말은 없었을지 고민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재미라면 재미, 성찰이라면 성찰, 작가가 의도하는 것을 명확히 하고 그에 걸맞은 결말을 구상해 보시면 좋겠네요.


B:  ‘bug'라는 단어로 재미있는 반전을 일구어 낸 글이로군요. 소설이라기보다 게이머들의 유머를 담은 글로 읽었습니다.


편지 : Marina

A:  초반에 강정호 선생님이 떠올리는 건 가늘고 하늘하늘한 머리카락이 긴 목 선을 타고 흘러내리는 한 여자 환자입니다만, 글의 후반부에서 그 여자가 화자의 ‘아내’임이 나타납니다. 독자를 놀라게 하고자 한 장치라고 보기엔 연결고리가 부족하네요. 문장이 탄탄하고 편지 속의 여자의 어조도 담담하게 절제되어서 글 전체가 안정적입니다만, 초반부와 후반부의 반전의 모순이 글 전체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한 여자의 심리와 그 뒤의 행동은 손에 잡힐 듯 생생한 데 비해서 편지를 읽은 다음의 남자의 행동이나 심리는 낯설고 급박합니다. 특히 아내가 입원한 병실로 찾아가면서 준비하는 비극적 결말은, 이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적절히 갖춰지지 않아 갑작스럽기만 하네요.
액자 속 구성처럼 강정호 선생님의 시점과 편지 속, 여자의 시점이 존재합니다만, 여자의 시점에 비해 강정호 선생님의 시점은 빈약해 꼭 있을 필요가 있었는가 의문이 듭니다. 남자의 심리가 조금 더 탄탄하고 정밀해지거나 혹은 과감하게 남자의 시점을 제거하고 여자의 시점만으로 끌고 갔더라도 좋지 않았을까요?


B:  무난한 문장과 구성입니다. 반전이 상투적이고, 격변하는 강정호 선생의 심리와 행동은 서론이 끝나기도 전에 결말로 돌입하는 것처럼 지나치게 갑작스럽습니다. 공들인 결말에 글의 분위기를 결정할 문장을 배치한다고 하여도, 서론이 없는 결말만으로 좋은 글이 될까요?


마른 바다 건너기 : 라퓨탄

A:  위의 글과 마찬가지로 이 글도 액자와 그림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액자 속의 내용은 바퀴벌레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만, 그 비극이 액자를 통해서 희화화되어 즐거움을 주는 것도, 액자가 비극의 실체를 통해 반전을 제공하는 것도 아닌 오히려 그림 자체를 퇴색시키고 말았네요.
작가가 이 글을 구상할 때 무엇을 의도했는지 의문입니다. 진지한 사랑 이야기의 아픔 뒤에 실은 이것이 바퀴벌레였어요 라는 웃음을 의도하셨다면 글의 서두는 오히려 가장 뒤에 반전으로 나와야 했을 겁니다. 우리가 경멸하고 없애려고 하는 바퀴벌레들도 그 안에 회한이 있는 건 인간과 같다거나, 강자에 힘없이 무너져버리는 인간이나 바퀴벌레나 닮은 점이 있다는 비유를 쓰고 싶었다면 액자 속 ‘나’ 의 감정은 이것으로 부족합니다.
작가가 무엇을 의도한 글인가에 따라서 글에서 힘이 들어가야 할 것도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보시고 다음 글의 발전을 기대하겠습니다.


B:  반전을 서두에 배치한 것이 어떤 의도였는지요? 바퀴벌레를 의인화해서 그들의 생활을 보여주면서 사실은 정체가 바퀴벌레였다고 가는 쪽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합니다. 서두에서 이미 이야기의 비밀이 드러나는 바람에 맥이 빠진 글이 되었습니다. 또한 의인화된 바퀴벌레들의 일상을 좀 더 사람의 생활과 차별화 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바퀴벌레들만이 가지면서, 사람들과는 매우 다른 특징을 과장해서 표현했으면 좋았겠지요. 비극이 바퀴벌레라는 정체 때문에 유쾌함으로 뒤집히는 재미가 사라져서 아쉽습니다. 그런 재미를 노릴 의도가 아니었다면 왜 굳이 ‘바퀴벌레’라는 소재를 택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의자는 사형되어야 한다 : kuchiblue

A:  겉으로 보이는 사건은 낯설기 그지없습니다. 의자가 의지를 가지고 사람들의 정신을 침범해 자살을 유도한다는 가설, 그 가설에 맞아 떨어지는 묘한 사건들. 그러나 뒷부분에 가면서 그 가설을 지지해 주었던 사건들이 실상은 화자의 눈에 의해 왜곡되어 정리된 사건들이라는 것이 밝혀지기 시작하죠. 독자에게 의문을 던지고 서서히 흥미를 고조시켜 가며, 주인공의 비틀린 심리구조의 묘사가 생생해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 가장 독자에게 낯설 수 있는 건 이 모든 사건을 서술하고 있는 ‘나’의 심리입니다. 자신의 주변에서 계속해서 자살이 일어나는데도 그 사건을 묘사하고 있는 나는 의자를 의심하고, 그 사건 자체에 대해서는 담담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심리구조가 진범이 ‘나’였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일순 모순이 풀립니다.
다만 작가의 전작을 알 수 없어 의문은 남습니다만, 구성이나 심리 설정, 발상에 비해서 문장이 걸립니다. ‘그리고 문득 기억이 났다. 그 기억은 아주 모멸적인 것이어서 내 기분을 한층 거칠게 이끌어주었다’ 같은 국적 불명의 번역 문장은 사이코패스인 화자를 생각하더라도 타당성 있게 보이지는 않네요. 또한 마지막에 ‘나’가 의자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꼭 필요했을지도 의문입니다.


B:  장르적인 재미가 있는 글입니다. ‘인간자신의 미혹에 의해 스스로 느끼는 정신의 그늘’인 마라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의자로 기괴한 이야기를 전개하다가 마침내 그 정체가 탄로되는 구성이 탄탄합니다. 사람을 죽이는 의자에 집중하면서 확장되던 공포는 진짜 범인이 드러나면서 정점에 이릅니다. 혼란만이 있을 뿐, 인간적인 정서나 감정이 담기지 않는 주인공의 서술이 묘하게 이질적이어서 거부감을 주지만 이 또한 사이코패스의 특징과 만나면서 일관성을 이루었습니다. 또한 자신이 마라의 상징이었던 의자와 합쳐진 결말은 주제를 효과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제된 문장과 능숙한 필력이 뒷받침 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교정을 해서 완성도를 높여보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화하는 편이 더 재미있을 것 같군요.


일라위 : 먼지비

A:  전작과는 연결되지 않을 정도로 격렬한 감정의 폭발이 인상적입니다. 추상적 어휘를 사용하는 것은 공통점이 있습니다만 전장의 급박함, 그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흐름이 솔직해서 같은 작가가 쓴 글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네요.
‘성전’ 속에서 싸우는 사람들은 여러 소설과 영화에서 다루어 온 소재입니다만, 그만큼 자칫 잘못하면 흔하고 상투적인 겉핥기 식의 비극 묘사에 그치기 쉽습니다. 이 글은 성전 속의 인간들의 감정에 밀착하면서 추상적인 단어가 겉멋들린 느낌을 주지 않을 정도로 적절히 배치되면서 주인공의 감정에 직면하고 있어서, 흔한 소재임에도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이 있습니다. 결말부에 이르러 주인공의 폭발하는 감정은, 전작에서 주인공의 감정에 직면하지 않고 겉돌기만 하던 서술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반복되는 죽음의 고리를 철저하게 한 쪽의 시선에 밀착해 서술하고 있는 이 글은 하지만 이 감정이 버겁고 부담스러울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군요. 또한 갑자기 변화한 작가의 문체가 혹 다른 작가의 영향을 받은 결과가 아닌지 조심스러운 염려도 앞섭니다.


B:  비극적인 전쟁에 휘말린 한 인간의 비극을 담은 글입니다. 인간이기보다 젊은 호랑이로 살아야했던 둘케가 마지막에 떠올리는 일라위는 잃어버린 인간애를 상징합니다. 목적보다 우리가 훨씬 더 소중히 여겨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묵직한 의문을 남기는군요. 특별한 소재나 구성을 취하지 않은 글이지만, 대극적인 요소를 통합하지 못하던 기 작가의 경향이 변한 점에서 의미가 깊은 글입니다. 작가는 지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때는 한없이 추상적이 되면서 현실감을 잃고 정서를 드러내야 할 때는 서툴게 날 것으로 드러내는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로 강점을 살리라는 심사평을 자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번 글은 상당히 균형 잡힌 모습을 보여줍니다. ‘성전’이라는 소재로 인해 작가의 사변적이고 추상적인 서술이 한없이, 한없이 펼쳐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감을 가지고 너무 멀리 나아가진 않지요. 대신에 복수와 피비린내가 자욱한 현실에 놓인 인간을 날카롭게 관찰하는데 사용합니다. 지나치게 구어체가 등장하던 대사가 개선되었고, 특히 둘테의 감정이 매우 진솔하게 묘사되었습니다. 인물의 감정을 직면하고, 관찰하며, 파고들면서 인물과 동화되기를 몹시 거부하던 전작과는 비교되는 부분입니다. 그로 인해 작가가 인물을 겉돌 때와는 달리 인물이 매우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머리만이 아닌,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다만, 기작가가 다른 작품을 모델로 글을 쓸 때 좋은 기량을 발휘했던 전적을 생각하면, 이 글이 정말 자신의 글인지 한편엔 의심을 놓아둡니다.


말이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 김진영

A:  글의 서술은 둘째치고 여전히 글 전반에 맞춤법에 어긋난 표현들이 너무 많이 눈에 들어옵니다. 인터넷 주소창에 주소를 ‘처넣었다’, 컴퓨터를 ‘키고’, 얼라들의 ‘시답지’ 않은 장난, 이상한 글을 ‘게제’ 하는, 등등의 글이 A4 한 페이지 정도에도 금방 몇 개나 눈에 들어올 정도입니다.
이상할 정도의 우연으로 소원이 이루어지게 되고, 그 소원이 덧없는 실수로 흩어지고 만다는 내용도 평범하고 빈약합니다만 그 내용을 풀어낸 방법도 새롭지 않아, 글의 단점만이 두드러지고 말았습니다.  


B:  일장춘몽을 소재로 한, 다소 동화 같은 글입니다. 사건의 개연성이 많이 아쉽습니다. 말도 안 되는 곳에 빠져 죽었다는 쪽지가 보다 많은 역할을 했으면 좋았을 것 같군요. 맞춤법이나 접속사 사용에 보다 주의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새벽공중화장실의 4인 : NC YUN

A:  소재를 풀어내는 방식이 신선해 후반부의 반전과 또 마지막의 반전이 적절하게 살아났습니다. 그렇지만 글의 초반을 넘어서기까지는 이러한 글의 매력은 전혀 보이지 않고, 현실성이 결여된 1인칭 화자의 압축성 없는 서술 밖에 없습니다. 글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이 서두부분이 글 전체에서는 군더더기에 불과하고, 주인공의 감정은 욕설이 섞여서 거칠기만 합니다. 하지만 이부분을 넘어서면 갑작스러운 위기상황, 절박함을 풀어가는 사건의 움직임에 몰입되어 초반부의 단점은 잊어버리고 읽게 된다는 장점이 있네요.
후반부의 이야기가 글의 중심이 되는 만큼, 글의 분량을 지금의 절반 정도로 압축하면서 군더더기를 덜어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이 글의 중심에 있는 인물의 심리를 작가는 물론이고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여러 구상을 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B:  새벽공중화장실에서 벌어진 사건이 시선이라는 주제와 잘 연결된 글입니다. 구성만 두고 본다면 사건의 배치나 흐름이 잘 된 글로 보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일어지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현실감이 많이 떨어지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작가가 주인공으로 사용된 인물에 몰입하지 못한 점이 원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물의 감정, 반응, 행동이 어색해 보이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길게 느껴지는 전반부가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전반부에서 주인공이 늘어놓는 자신의 이야기는 앞으로 벌어질 사건에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상황에 대한 정보일 뿐입니다. 주인공의 상황을 보여줄 의도였다고 해도 반 이하로 간략화 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합니다. 또한 주제인 ‘시선’에 대한 암시가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주인공에 몰입하지 못한 작가는 사건에 대한 주인공의 반응 역시 기계적으로 그려냅니다. 위협적인 상황에 놓인 주인공은 사건의 주도권을 쥔 사람처럼 ‘피식’ 웃으면서 대범하게 행동하고, 사건의 전말이 밝혀진 뒤에도 분노하거나 감정을 드러내긴 커녕 담담한 모습에 가깝게 묘사됩니다. 그래서 갑자기 나무토막을 집어 들고 쓰레기를 없애려고 결심하는 주인공이 타인의 시선에 저항하는 카타르시스를 남기기보다 의아함만을 남깁니다. 전반적으로 지나치게 오만한 주인공이 이야기의 흐름과 주제를 해치고 있다고 해야겠지요. 어떤 인물이 사건에 어울릴 것인가, 이 인물에는 어떤 사건이 어울릴 것인가 고민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상황에서나 쿨한 주인공을 그리고 싶었다면 사건을 다르게 구성했어야 하겠지요. 이 점만 보완된다면 완성도가 높은 글이 될 것 같습니다.


김꽃비가 서울을 지배했을 때 : dcdc

A:  글을 마지막까지 읽고 난 후, 기시감에 한참 생각을 더듬어, 김 몽 작가님의 ‘루시의 이기적인 몸매’를 생각했습니다. 같은 작가분의 전작이 아닐까 했을 정도로 글의 구성이나 흐름이 닮았지요. 물론 이런 흐름은 꼭 해당 작품이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구성에서 취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만, 과학적인 듯 보이는 공식이 실은 엄청난 비현실성의 근간이 된다는 설정이나 글이 점점 반복된 패턴을 거듭하다가 마지막에는 극단적인 결말까지 이르른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부정하기 어렵겠네요. 하지만, 작가분이 흔히 사용하는 기법인 동시에 단점이기도 한 입담이 이 글에서는 집중력을 자꾸만 떨어뜨리고 맙니다. ‘수폭실험이 계속된다면 어딘가에서 또 다른 고질라가 나타날지도 몰라 삼촌’ 이라는 고질라 속의 대사는 마지막에 변형되어 마무리 대사로 나타나기 위한 복선을 깔아 두신 것으로 보입니다만, 꼭 필요한 수단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글 전체에 수많은 배우의 이름들과 사건들은 글에서 잔재미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글의 중심을 더 흐트러뜨리는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글 속에서 김꽃비에 대한 삼촌의 집착 외의 것은 화자인 ‘나’의 감정의 흐름이나 성격까지도 일관되는 것이 없이 산만해, 오히려 글의 비현실적인 사건이 글의 중심을 지키고 있네요.  


B:  기이한 공식에서 시작되어 엄청나게 확장되는 사건에 담긴 상상력이 자꾸 2009년 7월에 가작에 당선되었던 <루시의 이기적인 몸매>를 연상시키는 것은 어쩔 수가 없군요. 똑같이 공식에서 시작되어 세계를 초토화하는 결말에 이르는 두 글은 닮았으면서도 매우 대비됩니다. 루시가 보편적으로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공식을 사용했다면 이 글에서는 소수만이 이해할 수 있는 공식을 사용하지요. 또한 전자가 매우 압축적이고 간결한 방식을 사용하여 사건을 확장했다면, 후자는 풍부하고 분열적인 방식을 사용합니다. 분열적인 경향은 기 작가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분열적이라는 말은 산만하다는 뜻과 일맥상통합니다. 이는 풍부함으로 표현될 수도 있지만, 자신이 가진 정보나 지식을 모두 글에 삽입하려는 욕심으로도 표현되겠지요. 그래서 중심사건이 선명하지 않으면 오히려 지나치게 많은 주변정보로 인해 글이 조각조각 파편화됩니다. 가장 바람직한 형식은 파편화된 조각들이 패턴을 이루면서 중심사건으로 녹아드는 것이겠지요. 다행스럽게도 이 글은 후자에 속합니다. 단순히 김꽃비와 연애를 하고 싶은 삼촌의 욕망이 엄청난 재앙을 불러내는 과정을 끝까지 끌고 가서 결말을 내는 작가의 힘이 유지된 덕분이겠지요. 컬트 혹은 키치적인 취향의 독자들에겐 매력적인 글일 것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죽을 겁니다 : 티아리

A:  ‘나’는 첫사랑인 소녀를 죽게 하고, 그 소녀의 죽음의 진실을 유일하게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기억에 묻어버립니다. 그건 마치 소녀의 14세의 시간을 지워버린 것과 같은 의미라고,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시간을 지워버린 결과 전 세계의 시간을, 기억을 지워버리는 파국을 맞고 말지요. 이건 한 사람이 차지하는 기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하는 것 같군요.
중요한 사건의 관계자가 아닌 ‘어머니’에게 편지를 씀으로서 이 사건의 전체를 설명해야 하는 의무가 생겼고, ‘어머니’이기 때문에 감정에 보다 솔직해질 이유가 생겼습니다. 이러한 것이 우연이었는지 혹은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글로서는 적절한 선택이 되었지요.
어머니를 향한 편지가 점점 짧아지면서 내용이 줄어들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단지 ‘우리는 모두 죽을 겁니다’라는 문장만이 남는 편지가 상징적입니다. 주인공이 결국은 문제의 질병에 감염되어 점점 기억을 잃어가고 오직 모두 죽을 거라는 확신만이 남는 상황을 적절히 전하기 위해서는 편지라는 형식 외에는 없다고 결심하는 작가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질병과의 싸움이 의외로 자신이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의 위기감, 그리고 정체를 알고 나서의 절망감, 결국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머니에게 마지막 글을 올리는 비장미가 적절하게 배치되어 글의 깊이를 더하고 있네요.
하지만 중간 부분에 등장하는 소녀의 정체가 모호해 글의 주제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의문을 가중시키고 마는 것이 아쉽습니다. 전체적으로 잘 갖춰진 글인만큼 보다 매끄럽게 사소한 의문이라도 해결해 두는 것이 글의 완결성을 더하는 방법이 되겠지요.


B:  편지는 독자의 정서와 직접적으로 맞닿을 수 있는 형식입니다. 절박한 상황에서 행하는 마지막 고백의 대상으로 어머니를 택한 것이 매우 효과적으로 감정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바깥에서 벌어지는 인류 재앙과 연관되는 주인공의 고백은 마치 이 모든 사건이 주인공의 죄로 인해 벌어지는 재앙처럼 느껴지게 하지요. 그 이면에는 죄책감으로 고통 받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 있고, 죄의 대가로 형벌은 받는 것 같은 인간에 대한 연민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글의 매력은 욕망 앞에서 허물어지고, 천재(天災)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의 심리를 절박하게 잘 그려낸 것입니다. 주인공의 과거가 전 인류적 재앙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서 죽음에 쫓기는 한 개인의 심리가 잘 표현되었습니다. 또한 주인공을 쫓아오는 죽음에 기억상실이라는 증세가 동반되면서 조금씩 정체성을 잃고 자신을 잃어가는 과정은 곧 존재의 소멸이라는 주제로 이어집니다. 마지막 부분이 그러한 존재의 소멸 과정을 매우 인상 깊게 그려내었지요. 주인공의 이야기에서부터 결말까지 사건을 치밀하게 확장해 나갔고, 무엇보다 흡입력 있게 진행한 것이 장점입니다. 다만, 주인공의 과거에 놓인 소녀와 병실의 소녀 간의 관계가 모호한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병실의 소녀가 주인공의 이름을 부른 것이 주인공의 착각인지, 아니면 실제 그러했는지 수수께끼가 남는군요. 이야기의 흐름상 주인공의 착란으로 인한 착각인 쪽이 논리적인 것으로 보입니다만, 조금 더 분명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90호 독자 우수단편 가작에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성문 너머 코끼리 : 앤윈

A:  계급의 차가 심한 사회에서 계급상승욕구를 딸에게 그대로 투영하는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여자가 구원자 전설과 어떻게 결합되는지의 이야기가 맛깔스럽습니다. 작가 특유의 감수성 풍부한 문장이 서간문 형식으로 더욱 독자와의 공감대를 깊이 만들어주고 있지요. 자칫 신파로 흐를 수 있는 구원자의 이야기가 사실성을 가지고 SF적 배경과도 신비롭게 결합된 배경에는 탄탄한 정서적 문장 덕이 크겠지요.
구원자 전설의 배경에는 미래에서 온 ‘당신’과 그가 데려온 ‘코끼리’가 있습니다. 코끼리는 모든 것을 부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만 실상 매우 유순한, 다르게 이야기하면 매우 유순하지만 분노했을 때는 모든 장벽을 깨부술 수 있는 힘이 있는 존재이죠. 작가는 이 코끼리에게 먹이를 주는 ‘나’를 통해서 실은 ‘나’가 현실을 깨부술 수 있음을 투영시킵니다. 그래서 ‘나’는 코끼리가 강해지는 것이 기쁘고, ‘당신’이 뭐라고 하건 ‘점점 몸에서 힘이 빠지는’  설탕을 먹이지 않고 코끼리를 강하게 키우고자 하는 것이겠죠.
이 글에서 매력적인 건 주인공의 구원자가 보통 사람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부분입니다. 영웅 하나가 세상을 구하는 전설이 아니라, 민중들이 항거하는 움직임과 주인공의 ‘구원’이 같은 맥락으로 움직이고 있는 점이죠. 친구 카룰은 주인공을 ‘우리가 아니다’라고 하지만, 여왕의 아들을 설탕에 취해 끌어안으면서도 ‘풀을 베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은 카룰과, 이 세계의 성 밖 사람들과 똑같은 맥락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서툴게 쓴 영웅 이야기를 넘어선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주인공의 이름 ‘센’은 우리말로 하면 ‘세다’이며, 일본어로 하면 ‘千’입니다. 어느 쪽이든 수많은 꿈과 희망을 담고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는 이름으로 어울리지요. 하지만 주인공의 이름을 등장시킨 수단으로 보기에는 마지막 단락이 글의 전체적인 균형을 일그러뜨리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구원자의 실체가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은 독자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니만큼, ‘유물론적 실체’라든가 ‘P-152행성’ 같은 SF적이고 미래적인 단어들이 감수성 풍부한 이 글의 분위기에 그다지 맞지 않아 보입니다.


B:  손에 꼽히는 수작입니다. 작가는 설탕이라는 소재를 매개로 주인공과 동일시되는 코끼리를 연결하면서 반역 혹은 혁명에 이르는 결말까지 치밀하게 나아갑니다. 절망적인 현실에 적응하려고 애쓰면서 ‘머릿속까지 설탕물에 찌들어 있는’ 주인공이 바라보는 설탕을 먹이지 말아야 할 코끼리는 자신의 숨겨진 이상과 열망을 대변하는 존재입니다. 촉진자로 혹은 손님으로 왔던 그에게 고백하는 편지는 담담하지만 아련하게 자기연민을 나타내면서 주인공이 설탕물 속에서 빠져나가 성문을 여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벗어나고 싶은 지긋지긋한 현실에 순응하려고 노력하다가 결국 자신이 가야만 하는 길을 뚜렷이 걸어가면서 새로운 미래를 여는 것은 어느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이든 지니게 되는 판타지입니다. 주인공의 여정은 우리가 지긋지긋한 현실을 살아가며 숨기는 판타지인 동시에 꿈이기도 하겠지요. 그래서 가로막힌 장벽을 부수고, 간절히 바라지만 결코 닿을 수 없던 곳으로 인도하는 코끼리는 크나큰 카타르시스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주인공의 편지를 받은 우리는 이미 수천 년 전에 사라진 회색기사와 성문을 연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설탕조림이 되어 있는지 모를 우리의 현재를 생각하고, 잊어버린 꿈들을 다시 떠올릴 수 있겠지요. 우리에겐 이 편지가 미래에서 온 편지일지라도 말입니다. 작가는 미묘한 은유와 SF적인 상상, 판타지적인 요소들을 날실과 씨실처럼 엮어가면서 능숙한 이야기 짜기를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이 글의 가장 큰 힘은 안정되고 정제된 문장이겠지요. 다만, 마지막 단락은 없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꿈에서 깨우듯이 이 모든 이야기와 역사가 그저 흘러간 과거의 일이었을 뿐임을 깨우치는 단락이 글이 남기는 여운을 해치지 않는지 고민해 볼 문제입니다.


91호 독자 우수단편 우수작에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거울 독자우수 단편에 선정되신 분들께는 책을 한 권씩 보내 드립니다. euseoha @ gmail. com 으로 우편물 수령할 주소, 성함, 전화번호 (택배 발송시 필요)를 보내 주세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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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아리 11.01.01 00:29 댓글 수정 삭제
    좋은 평가 감사합니다. 제 글을 굉장히 깊게 파고들면서 읽어주신 것 같아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네요. 과분할 정도로 좋은 신년 선물을 받은 것 같습니다. 평론해 주신 분들과 거울 여러분들 2011년도 예쁜 한 해 보내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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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윈 11.01.03 15:05 댓글 수정 삭제
    보고 자랑도 주변에 진작진작했는데 이제서야 리플을 다네요. 도무지 컴퓨터 앞에 앉을 시간이 안 나서 :) 정말 좋은 신년선물이에요. 감사합니다. 평도 감사하게 읽었습니다. 전 지금 홍익대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자마자 대량해고 된 미화 경비 노동자들과 함께 있어요. 총장실 문은 영영 닫혀있을 것처럼 보이네요. 하지만 새해는 함께 성문을 여는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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