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어느 해보다 비가 많이 내리고, 서울경기 지방 일대를 중심으로 심한 물난리를 겪은 여름이었습니다. 물난리가 진정이 되니 이제 세계 경제가 출렁이는군요. 모두 별 일 없이 건강하신지요? 다들 창작을 할 만큼의 힘은 남아있으시면 좋겠습니다. 다사다난한 사회의 흐름을 보면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가 자주 고민하게 됩니다. 그럴 때면 좋은 글을 읽으면서 위로 받거나 힘을 얻거나 즐거워지고 싶어지는군요. 뒤집어 보면 작가는 누군가에게 위로나 힘이나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겠지요. 각자의 이야기가 혼자만의 이야기로 남지 않고 함께 나누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2009년에 시작한 2기 심사단이 만 2년이 넘어가는 걸 깨달으며 놀랍니다. 그렇지만 남의 글을 읽고 평을 하는 것은 여전히 참 어렵습니다. 아니, 무섭습니다.

99호에서는 우수작 없이 가작으로 광몽 님의 ‘외계인'을 선정하였습니다. 더욱 건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7월 16일부터 8월 15일 자정까지 올라온 총 16편의 글 중 심사대상이 된 글은 9편이었습니다. 심사대상에서 제외된 작품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분량미달: 노래하는 빵 (irlei, 원고지 34매), 11시 (이정도, 원고지 58매) 요즘 따라 그녀가 (마뱀, 원고지 23매), 드라마 각색 어린 왕자 (마뱀, 원고지 31매), 복수 : 한양 성 살인방화사건의 전말과 현재 (마뱀, 원고지 36매), 가난한 겨울의 달콤한 기억이 머무는 곳 (마뱀, 원고지 22매)

2) 분량초과: 소울의 대부 (천공의 도너츠, 원고지 151매)



놀라운 배우들 by 강민수

A:  사건을 전개와 함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흡입력이 장점인 글입니다. 인물 사이의 갈등이나 인물의 내적 갈등도 적절하게 잘 표현된 편입니다. 그러나 구성이 지나치게 허술한 점이 흠입니다. 극중 배역과 배우가 융합되면서 일어나는 비극의 원인은 이야기 전체에 다양하게 암시해 놓았으나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이 자세하게 풀어지지 않은 점이 단점입니다. 작가가 암시한 단서들이 찬찬히 조합되면서 이야기가 풀리는 과정이 찬찬히 전개되었더라면 독자들이 결말에서 훨씬 큰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않았을까 합니다.


B: 연기력이 갑자기 좋아진 배우가 등장하고, 배역을 따내기 위해서 몸을 내주어야 하는 여자가 등장합니다. 현실적이고 생생한 대사 위주로 짧은 서술이 이어지면서 긴박감을 주며 진행하는 솜씨가 놀랍습니다.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속도감 있는 전개가 돋보입니다. 갑자기 연기력이 좋아진 배우와 왕년의 명배우가 겹쳐지면서, 명배우의 매니저를 하다가 자취를 감춘 ‘동생’의 이야기가 등장하지요. 화자인 민 사장은 관찰자로서 갑자기 연기력이 좋아진 희종의 매니저 왕 눈에게 주목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연기력이 왕 눈의 역할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요. 그 연기력은 결국 배우가 그 역할에 동화되는 것입니다. 의처증 남자에 동화된 배우 희종이 상대역인 배우를 공격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3인칭 관찰자 시점은 여러 면에서 제약이 많습니다.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까닭에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묘사하기도 쉽지 않고, 사건 역시 외형만으로 전체의 윤곽을 파악하게 해야 하지요. 그런 면에서 이 글이 꼭 3인칭 관찰자 시점을 택해야 했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희종이 왕 눈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왕 눈은 이 모든 일을 무엇 때문에 계속 하고 있는지, 독자의 의문은 남는데 관찰자인 민 사장은 모든 사건을 파악하기까지도 너무 오래 걸리는군요. 화자가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독자가 이해하는 건 쉽지 않다는 걸 작가가 좀 더 고려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Machine] by K.kun

A: 긴 글임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한 부분이 많습니다. 장편의 경우는 불필요한 부분이 존재하더라도 풍성함이라는 미덕으로 남을 수 있지만, 단편은 절제와 함축이 미덕이 아닐까 합니다. 불필요한 부분이 많아진 것은 주제를 명확히 하지 않은 것이 원인인 것 같습니다. 처음에 는 A.I.를 위해 인간임을 포기하는 과학자에, 중간에는 기계화로 벌어지는 재앙에, 결말에는 기계화로 비롯되는 인간의 가치 상실에 초점을 두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몹시 산만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무엇을 표현하려는지 분명한 중심이 없는 점이 많이 아쉽습니다.


B: A.I.의 도입으로 인한 노동문제를 이야기하는가 싶더니 마지막엔 임원에 대한 징벌 이야기까지 나오는군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스토리는 있는데 주제는 파악하기 쉽지 않습니다. 후반부 폭동 이후의 장면이 설명 없이 너무 빠르게 흘러가 이야기가 좀 더 길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지만 그에 비해 초반은 쓸데없는 부분이 너무 많군요. 비행기가 다시 착륙하는 상황은 꼭 장황하게 설명해야 했을까요, A.I.에 뇌를 이식하는 장면은 이정도의 비중을 차지해야 하는 장면이었는지요. 글의 중심이 흐트러지면서 전반적으로 중요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의 구별이 없이 서사와 묘사가 진행되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욱 알기 힘들어졌습니다.
이야기를 기 승 전 결로 나누어 각각의 부분에 들어가는 사건을 배치해 보시면 어떨까요. 핵심이 되는 부분의 이야기에 조금 더 힘을 실어 주시면 글이 보다 매끄러워지면서 작가의 산뜻한 문장이 충분히 살아나는 멋진 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월세가 저렴한 방 by 헤르만

A: 이 글의 주제를 무엇으로 두셨는지요? 그저 단순한 도시괴담으로 보이기도 하고, 의식주 외에 인간에게 필요한 관계와 소통을 이야기하고 싶어한 것 같기도 하군요. 평범한 도시괴담으로 두기에는 작가가 관심을 가진 주제가 몹시 아까운 느낌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중략)……그리고 나에게는 방 만이 남는 것이다.’
이 부분이 인상 깊었고, 작가가 표현하고 싶은 핵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 글이 괴상함보다는 ‘벗어날 수 없는 방’에 담기는 주제에 집중했더라면 참 좋았을 것 같았습니다. 그랬다면 주인공은 단순히 괴상한 방에서 탈출하고 싶은 입장보다는 부족한 것은 없지만 지긋지긋한, 누군가는 머물다 떠나지만 나만은 언제나 벗어날 수 없는, 오로지 남은 방만을 바라보아야 하는 입장이었을 테고, 전혀 다른 이야기를 독자에게 들려주었겠지요. 그냥, 지극히 개인적으로, 그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했고 또 듣고 싶어졌더랬습니다.


B: 분량이 늘어나기 전에 비해 개작된 작품이 무척 흥미로워졌다는 것부터 먼저 말해 두겠습니다. 사건의 나열로 작가의 의도가 거의 읽히지 않았던 전작에 비해서 고친 글에서는 작가가 인간의 소외, 고독, 소통의 문제 등 여러 가지에 대해서 고민해 본 흔적이 보여서 좋았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가면 죽는 방’에 대한 이미지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작가가 생각한 깊이 있는 주제들이 주변으로 치우쳐 진 것 같은 안타까움이 남습니다. 주인공은 ‘남겨지는 것’ ‘외로움’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압니다. 언제나 모두가 떠나버리고 자신에게는 방만이 남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그런 사람은 혼자가 되는 상황에 보다 더 절절한 느낌을 받을 수 있겠죠. 주인공의 막막한 심정, 답답함, 처절함이 이 글에서는 무척 생생하게 살아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 달라는 절규가 주인공의 배경과 맞물려서 보다 아프게 독자에게 닿을 수 있게 되지요. 그렇지만 독자는 다시 반문하게 됩니다. ‘들어가면 당신은 나오지 못합니다.’ ‘나오는 순간 죽게 됩니다.’ 이런 말을 듣고도 단지 방세가 0원이라는 것만으로 사람은 그 방에 들어가려고 할까요. 실제로 귀신이 나왔다거나, 집안에 흉사가 있었던 것만으로 부동산 시세는 급락하곤 합니다. 그만큼 사람들은 ‘집’의 속설이나 미신에 민감합니다. 그런데도, 방 안에 갇혀 있을지도 모르는 방을, 그것도 ‘공짜’라는 이해할 수 없는 조건을 걸고 오는 방을 선택할 용기가 모든 사람에게 쉽게 올지 의문이네요.
개작하면서 무척 생생하게 살아난 감정, 고독 그리움 외로움 고통과 같은 느낌들에 보다 중심을 두어 보시면 어떨지요. 자신에게 남은 것은 방 뿐인 인간의 고독감이 독자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소식이 희소식 by 고요

A: 전쟁이 소재지만, 전투가 벌어지는 최전선이 아니라 먼 곳에서 전투 소식을 들으며 소중한 이들의 안부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전후방 없이 전쟁을 참혹하게 겪은 역사를 배워온 탓이어서 그런지, 피난 없이 일상이 여전히 돌아가는 후방(그것도 외국이 아닌 우리나라!)의 분위기가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감정묘사보다는 사람들의 상황과 행동을 통해 비극적 분위기를 표현한 것에서 작가가 많은 고민과 생각을 한 흔적이 드러납니다. 의도적으로 과거와 현재 단락구분을 하지 않으신 것인지요? 단락 구분이 되지 않아서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 부분이 좀 아쉬웠습니다.


B: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그래서 바로 옆에 있는 이들이 참전 군인인 상황의 후방 상황을 무척이나 생생하게 그려낸 글이었습니다. 실제로 타국이든 혹은 타국이라고 느껴질 정도의 먼 전방의 일이든 실제 현실에 전쟁이 영향을 주고 있지는 않으면서도 소중한 사람들을 전쟁터에 보낸 이들의 감정을 이렇게 생생하게 잡아낸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수린은 반복해서 ‘그’를 그리워하며 그가 떠나가는 날을 되풀이해서 떠올립니다. 그것은 회상이 아니라 현실을 곧바로 침범해 들어올 정도의 강렬한 기억이지요. 주인공의 안타까운 그리움을 직설적인 말로 표현하지 않고 장면전환과 주변의 사건 묘사만으로 독자에게 그려내고 있는 솜씨는 압권입니다.
담담한 서술과 대조적으로 인물들의 대사는 현실적이고 강렬합니다. 아들을 잃은 날 모든 사람을 데리고 회식을 여는 부장의 절규는 처절합니다.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그를 보면서 수린은 함께 눈물을 흘리는 대신 그 자리를 피합니다. 그 감정이 오히려 더 생생하군요. 마지막까지 수린의 감정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억눌려져, 그 때문에 더욱 독자의 마음을 자극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아쉬운 거라면, 제목이 주는 이미지가 글의 담담한 감동과는 잘 맞지 않는 느낌이군요. 보다 서정적인 제목이나 혹은 서술적인 제목이 글의 느낌과 더 맞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속담은 때로 상투적인 느낌을 줄 때도 있으니까요.


ATM by 언어유희

A: 기러기 아빠의 비극적인 상황을 드러내기 위한 구성이 잘 된 글입니다. 설정이나 사건 전개에서 작가가 구성에 고심한 흔적을 봅니다. 하지만 구성과 전개에 비해 인물을 소홀히 한 점이 아주아주 많이 아쉽습니다. 만약 내가 기러기 아빠라면 이러한 사건 속에서 어떤 기분을 느낄 것인가, 어떤 마음이 들 것인가. 감정이입을 해보는 고민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현재의 글에서는 기러기 아빠를 다룬 대다수의 영화나 소설, 글, 기사에서 학습한 행동, 감정 등을 벗어난, 차별화된 정서를 찾기 힘들어서 아쉽습니다. 그리고 ‘지나치게’ 문어체인 대사, ‘사무실이라는 공간 안에서 가진 직책은 남의 눈치가 보고 있을 신세가 아니지만’과 같은 어색한 문장들은 조금 바꿔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B: 기러기아빠로 방학 때조차 가족들을 만날 수 없고 아이들도 아내도 돈을 보내 주기만을 원하는 주인공을 ATM에 비유한 센스가 좋군요. 기러기 아빠의 심정이나 행동들이 독자가 보기에도 사실성 있게 서술이 되었습니다. 다만 부인과 처남 등 다른 사람의 여권을 한 사람이 신청한다는 것 같은 소소한 부분이 눈에 들어옵니다. 작가가 당연하게 서술하기 전에 확인을 해 보았다면 나오지 않을 오류지요.
인물들의 대사가 전체적으로 사실성이 없다는 점도 글의 재미를 떨어뜨립니다. 아내의 이메일은 정말 우리 나라 사람이 쓴 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이고, 성민이의 핸드폰 문자 역시 초등학생인 아이가 아버지에게 보낼 문자로는 어색하네요. 한국어가 서툰 소피아는 문어체 문장을 말해도 그러려니 하겠지만, 한국인인 게 분명한 부인이 어색한 한국어를 쓰는 건 이해하기가 힘들지요. 한국인인 어머니가 아들을 가리켜서 ‘당신 아들은’ 이라고 쓰는 경우가 흔할까요? 주인공이 Bob과 아내의 관계를 알고 느끼게 되는 증오, 아들 성민이에 대한 애착 등 이 인물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감정이 살아나지 못하고 인물들은 번역극의 대사를 이야기하는 아마추어 연기자처럼 어색한 대사만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인물의 고독과 외로움도 독자에게 절실하게 와 닿지 않겠지요.


밤하늘에서 정말로 별을 보게 된다면 by 김진영

A: 인물묘사가 매우 자연스러워지고, 객관적인 시선을 고수하기보다 주관적인 느낌들을 표현할 수 있게 된 점이 반갑습니다. 초창기에 계속 지적했던 고질적인 나쁜 습관들이 많이 사라진 점이 눈에 띕니다. 억지스러운 멋 부림이나 철학적인 주제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았기에 진솔함이 나타났고, 그로 인해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한결 자연스럽고 부드러워서 읽기가 쉬워진 느낌입니다.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주제들, 관심을 가졌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소재를 택해서 꾸준히 창작을 이어가시기 바랍니다.


B: 소설 속의 인물들과 작가가 이제야 제대로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작가분의 그동안의 글들을 생각하면서 무척 반갑게 읽었습니다. ‘모두 자거나 딴 짓 하느라 수고했다.’ 같은 교사의 대사도 그렇고, 대회를 나가면서 생활기록부 기록보다도 아이스크림에 더 눈이 먼 학생의 솔직함도 생생하군요. 작가가 인물의 나이와 비슷하거나 혹은 과거에 경험한 시간이기 때문에 그 나이대의 감수성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작가에게 편안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인지 비유와 상징이 들어간 어색한 영문투의 문장도 많이 줄어들고 글이 전체적으로 편안해진 것이 장점입니다. [지구과학과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아온 내개 선생님과 대화를 할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같은 문장은 고등학교를 경험한 사람이면 한 번쯤 웃음을 머금게 할 것 같지요.
물론 스토리의 문제, 이 글에서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주제의 문제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주인공들이 본 인공위성이 ‘미래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라고 하는 정수의 말은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만, 이 글에서는 작가가 의도한 해석을 풀어 놓아도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중간 부분에서 ‘나’는 정수가 사라지고 정수를 찾기 위해서 애를 쓰는데, 뒷부분에서 외계인인 우주선이 기억조작을 해 줄 수 있다는 말이 나오지요. 그랬다면 오히려 중반부분에서도 ‘나’만이 정수를 기억하고 다른 사람은 정수를 아예 모르더라는 전개는 어땠을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조금 더 세심하게 손을 보시면 더 좋은 글이 될 것 같네요. 그리고 계속해서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냉정하게 검토하면서 끈질기게 글을 쓰는 지금의 모습을 보여 주시길 기대해 봅니다.


줄리엣과 파리스 by 빈군

A: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전개한 점이 이색적입니다. 다만, 파리스 백작의 감정이 단순한 질투 이상으로 강하게 표현되지 않은 점이 아쉽습니다. 줄리엣에 대한 무시무시한 강한 사랑이나 자존심으로 인한 소유욕 등등 그의 감정에 뚜렷한 색채가 있었으면 이야기가 훨씬 강력하고 풍부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B: 줄리엣의 정혼자 파리스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한 작가적 상상은 흥미롭습니다만,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독특한 매력이 반감해 버린 것이 아쉽군요. 작가 특유의 상징을 더한 묘사는 보이지 않고, 명작의 패러디이긴 하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잡히지 않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불꽃같은 사랑 이야기에서 소외된 정혼자 파리스의 기분은 어떠할까에 착상한 점은 좋지만, 파리스가 줄리엣에게 보이는 사랑의 깊이가 얕아 아쉽군요. 독자가 파리스의 기분에 동조하면서 글에 공감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화가 벨라스케스의 그림 중에 스페인의 왕녀 마가리타를 모델로 한 여러 작품들이 있지요. 정혼자인 레오포드 1세에게 마가리타 왕녀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려진 그림들이라고 합니다. 레오포드 1세는 그림을 보며 왕녀에 대한 마음을 키워갔고, 결혼 후에도 다정한 부부였다고 하지요.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정혼자지만 그림만으로도 마음을 키워 갔다는 에피소드가 파리스에게 더해졌다면 어땠을까요. 혹은, 로미오가 티볼트를 죽인 사건이 사실은 파리스가 라이벌을 제거하기 위한 함정이었다거나. 작가적 상상이 더해지면 파리스의 감정은 더욱 깊어질 수 있겠지요.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소외된 파리스의 아픔이었다고 하면, 최대한 공감을 위한 장치를 생각해 보시면 작가의 묘사력이나 탄탄한 서술과 합해져서 정말 좋은 글이 나오지 않을까, 안타까움이 남습니다.


미궁탈출편 by 삼고초려

A: 탄탄한 문장과 묘사, 글을 이끌어 가는 힘을 보면 너무 아쉬운 마음이 큽니다. 글을 두 번 읽은 지금도 아직 글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힘들군요. ‘-편’이라고 붙은 제목을 보면서 큰 이야기의 일부이기에 제가 전체 이야기를 몰라 부분을 파악하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B: 대화문이 하나도 없는 단편 안에서 독백조로 서술이 이어집니다. 해사, 그, 그#, 그##의 인물들이 어떤 관계인지 모호한 가운데 현실에서 비틀린 것 같은 세계 안을 방황하는 서술처럼 독자 역시 세계에 녹아들지 못하고 방황하는 느낌입니다. 문장 하나하나의 서술은 주옥같고 묘사는 날카로우면서 섬세한데도, 세계를 바라보기에는 흐릿한 젖빛 유리를 통해 보고 있는 것만 같지요. 세계속에 속해 있지 않은, ‘남자라고도 여자라고도 할 수 없’으며 ‘이 세계에 태어나지 않은’ 존재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지, 아니면 ‘안개에 덮인 지역 전체를 바다 안이라고 부르는’ 또 다른 세계인지 모호해 집니다. 인물도 낯설고 그가 이야기하는 세계도 낯설어 문장 하나의 매력은 흘러가고 독자는 당혹스러운 느낌까지 받게 되네요. 이야기의 시작도 끝도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는 이야기가 과연 무슨 이야기였는지, 궁금함만이 남습니다.


외계인 by 광몽

A: 이상한 행동을 하는 수학 선생님을 외계인이라고 믿고 뒤를 캐는 두 소녀의 행동은 탐정놀이를 하는 것처럼 소박하고 귀엽습니다. 결국 밝혀진 선생님의 사연과 이후 장애를 가진 선생님의 아이들의 친구가 되는 결말이 다소 억지감동을 주기 위한 구성으로 여겨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이야기로 남는 것은 작가가 밝고 선한 세계관과 가치관을 진솔하고 자연스럽게 표현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또한 기승전결이 분명한 튼튼한 구성과 그것을 충실히 자연스럽게 전개해간 것이 장점입니다. 다만, 수학 교사와 함께 오일러 공식이 등장하는 것이 오가와 요코의 ‘박사가 사랑한 수식’를 연상시키는군요. 표절은 아니라 하더라도 소재나 주제가 비슷한 유명한 글이 있을 때는 글의 신선함이 떨어지는 단점이라 하겠습니다.


B: 이상한 행동을 하는 수학선생님의 비밀을 추적하는 과정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합니다. 지은과 아지 두 사람의 추적은 탐정을 방불케 하네요. 처음에 소문을 들었을 때 무시해 버리려 했다가 서서히 소문의 근거를 발견하면서 본격적으로 소문을 추적해 들어가는 전개는 독자의 템포에 따라 지나치게 빠르거나 느린 느낌이 없이 적절히 진행되어 갑니다. 그리고 하나씩 소문의 근거가 드러나면서 절대로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던 허무맹랑한 소문을 신빙성 있게 생각하게 되는 과정도 여고생다워서 좋습니다. 탐정 흉내를 내면서 어려운 어휘를 섞어 말하는 아지와, 감수성 예민하게, 타인에 휩쓸리는 듯이 보이면서도 사실은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잡고 있는 지은의 개성도 구별되게 잘 잡혀 있지요. 점차 긴장감을 고조시키면서 절대 사실일 리 없다는 소문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독자를 몰고 가다가 드러나는 ‘진실’은 무척이나 따뜻하면서 또 가슴 아픈 아련함을 줍니다.
‘외계인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는 학생들의 물음에 진지하게 대답할 줄 아는 사람, 외계인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말로 자신의 전공의 가장 아름다운 공식을 들 만큼 자신의 전공을 사랑하는 사람. 사실 작가는 이미 두 가지 답안을 독자에게 중반부터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외계인이라고, 우리와 다르다고 따돌리려고 하는 사람의 다른 면모를 좀 더 주목한다면 답은 가까이에 있다고. 그건 너무나 그럴싸한 여러 가지 증거들이나 수많은 사람들의 증언으로 추정되는 ‘사실’이 아니라 ‘진실’ 이지요. 이 글이 기승전결의 매끄러움이나 복선의 적절한 배치와 같은 장점 외에도 독자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면 바로 이런 작가의 시선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소문에 휩쓸려 나약해지는 아지나 마지막까지 중심을 잃지 않는 지은이 결국은 화해의 손을 내밀고, 자신의 아이를 이해하려 아이의 시선으로 생활하려 하다가 이웃으로부터 소외당해 버린 선생님이 오히려 웃으며 자신의 아이를 자랑하는 모습. 소설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너무나 따뜻한 것이지요. ‘선생님’의 이미지가 아무래도 ‘박사가 사랑하는 수식’의 박사님과 겹쳐지는 것은 중반에 등장하는 오일러 공식 때문일까요. 아니면 수학을 사랑하는 인물이라는 공통점 때문일까요.
그렇지만 무척이나 따뜻한 글을 만날 수 있어서 진심으로 반가웠습니다. 수학을 하는 사람이 악인이 아니라는 개인적인 반가움 외에도요.


99호 독자 우수단편 가작에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거울 독자우수단편에 선정되신 분들께는 책을 한 권씩 보내 드립니다. euseoha @ gmail. com 으로 우편물 수령할 주소, 성함, 전화번호 (택배 발송시 필요)를 보내 주세요.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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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몽 11.09.03 14:24 댓글 수정 삭제
    부족한 글 호평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일러공식은.. 나름 찾아보고 찾아보고 요거다! 싶어서 넣은거였는데.. 박사가 사랑한 수식 생각은 못했네요. 선정 감사합니다. (원래 아디가 없어져서 새로 가입해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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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요 11.09.08 23:09 댓글 수정 삭제
    전에 올렸던 소설보다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아 감개무량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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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치 11.10.23 16:11 댓글 수정 삭제
    컴퓨터로 읽기 너무 힘들어요. 프린터 로 뽑아서 읽고 싶은데 방법이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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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르만 11.12.04 20:49 댓글 수정 삭제
    이제야 평을 읽게 되었네요...벌써 몇 달 전인지...ㅜㅜ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정확히 짚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더 좋은 작품 올릴게요. 이제 한 해도 끝나가는 데 마무리 잘 하시고 내년에도 거울 식구분들 항상 즐거운 일만 생기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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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고초려 12.01.27 23:58 댓글 수정 삭제
    늦었지만 감사하다는 맗씀 드리고 싶습니다! 도움이 많이 되었고요 이상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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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1 2011.03.26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6 2011.02.26
선정작 안내 선정작이 없습니다. 2011.01.28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2 2010.12.31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2 2010.11.26
선정작 안내 선정작이 없습니다.3 2010.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