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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단편란의 심사 글이 거울에 올라오는 것은 월말이지만 거울과 함께 한 달을 보냅니다. 15일 전에 올라오는 글들을 읽으면서는 아 이 달에는 이 글이 우수작이 되겠구나 하고 짐작하기도 하고, 15일 이후에 올라오는 글을 읽으면서는 다음 달엔 이 글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겠구나 하고 두근거리곤 합니다. 그리고 심사 글 안의 호수를 기록하면서 아 이번 달에도 이렇게 글들이 쌓였구나 하고 뿌듯해 하곤 합니다. 오랜 기간 동안 독자 단편에 글을 올려 오신 분들도 그간에 써 오신 글들을 뿌듯하게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이번 달은 독특한 소재와 개성이 빛나는 글들이 많이 볼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전체적으로 구성도 안정적이고 탄탄한 글들이 많아, 작품 수로는 적었지만 모든 글들이 가치와 개성, 장점이 있어서 읽는 재미가 있는 달이었지요. 특히 처음 읽을 때보다 읽을수록 맛이 배어나는 매력적인 글들이 많아, 앞으로의 작품들이 기대되는 한 달이었습니다.
96호에서는 우수작으로 kuchiblue 님의 ‘최고의 밤’을, 가작으로 니그라토 님의 ‘히키코모리 방콕기’를 선정하였습니다. 더욱 건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4월 16일부터 5월 15일 자정까지 올라온 총 13편의 글 중 심사대상이 된 글은 7편이었습니다. 심사대상에서 제외된 작품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연작 : 한낮, 광대와의 술자리(이니 군)
2) 분량초과 : 진화론 (이경서: 원고지 160매), 적묵(赤墨) (이니 군 : 원고지 280매)
3) 분량미달 : 영혼 결혼식 (황금나무: 원고지 55매), 흉가체험 (황금가지: 원고지 57매), 가이아 (이경서: 원고지 15매)


내 눈에 콩깍지 : 누

A : 무력하게 살아가던 남자가 ‘콩깍지 클럽’에 들어가게 되고, 부잣집 딸과 결혼하여 인생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분량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에 비해 대화가 과도하게 많고 정작 사건에 필요한 서술은 부족합니다. 가진 것 없는 남자가 여왕처럼 섬김을 받으려고 하는 여자를 만나 가족을 잃은 대신 부와 명예를 얻게 된다는, 현실적이지도 교훈적이지도 않은 이야기는 위트와 잔재미가 있다면 그것으로 독자를 사로잡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 글은 위트와 잔재미 대신 작가가 잔뜩 뿌려놓은 양념과 두리뭉술한 대화가 전체를 뒤덮고 있을 뿐입니다. 부유한 여자들이 왜 이곳에서 남자를 택하는지, ‘나’의 부인은 마지막에 신입의 모습을 보고 왜 표정이 변했는지, ‘나’는 왜 동생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여자를 여왕처럼 섬기며 살아가는지, 인물의 행동에 타당성도 근거도 없는 이야기는 무엇을 의도했는지도 알 수 없군요.
이야기의 반전으로 부인이 동생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것, 그에 대한 저항으로 ‘나’는 동생의 기일마다 호시 신이치의 단편을 읽는다는 것이 반전이 될 수 있겠습니다만, 호시 신이치의 단편 내용은 선명하지 않네요.
  

B :  소설의 가장 중요한 점은 독자와의 소통입니다. 난해함을 고의적으로 의도하지 않는다면 처음 만난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고 섬세한 친절함이 요구됩니다. 끝까지 읽은 독자가 이게 무슨 소리야?, 라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작가로서 그보다 더 좌절되는 일은 없겠지요. 이 글은 주인공의 입장을 호시 신이치의 단편을 빌어 전달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호시 신이치의 단편과 주인공의 입장을 효과적으로 연결시키지 못하는 듯합니다. 끝부분에 간략한 줄거리를 제시하긴 하지만, 호시 신이치의 가장 큰 특징인 반전이 무엇이었는지 생략된 것 같군요. 호시 신이치의 단편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아내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와 주인공의 입장 그리고 콩깍지라는 소재가 대비되면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더라면 훨씬 더 효과적으로 이야기의 핵심을 전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전반적으로 호시 신이치의 글 분위기처럼 간략한 서술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그렇다하더라도 동생의 자살에 대한 남자의 태도는 지나칠 만큼 무심하지요. 의도적으로 무심히 지나친다 하더라도 독자들의 감정 흐름을 고려해서 잠시 머물러 주고 흘러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을까 합니다.


MINUS : persona

A : 종말적인 상황, 세계에서는 무언가가 ‘분실물’이 되어갑니다. 사라지는 물건들을 ‘분실물’로 지칭한 것이 인상적이네요. 동거인들의 비극적인 결말을 인지하지 못하고 과거의 환영만을 살아가는 여자와, 환상 속에서 죽음의 현실과 무관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그녀의 동거인들의 이야기가 쓸쓸하고 스산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그들에게 가장 큰 ‘분실물’은 삶과 죽음의 인지, 현실과 환상의 구분 능력일 지도 모르겠네요. 이 세계의 종말이란, 인간이 서로를 믿지 못하는 세계로 보이는군요.
혼자 남은 집 안에서 점점 말라가는 그녀는 살아 있음에도 유령처럼 보입니다. 그녀를 구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살아있다는 걸 알고, 안타까워하고, 구하려고 하는 마크 밖에 없지요. 하지만 주변의 모든 것에 공포감을 느끼다가 처음으로 자신도 공격의 태세를 갖추고자 하는 란의 모습과 대비되면서, 마크 역시 피해자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게 만들며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공포와 두려움을 독자에게 남기는 수법이 탁월한 글이네요.
다만, 영상물의 장면전환을 의도한 듯이 환상과 현실이 자주 교차되면서도 시점이 한 사람에게 고정되다 보니 독자도 사건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글이었지만 독자가 사건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구조를 좀 더 고민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사건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화자를 도입한다거나, 혹은 시점과 인물과의 거리를 조금 떨어뜨리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요.


B :  사실 이야기 전체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글이었습니다. 심사평 자리에서 서로 다르게 이야기를 이해하고 있어서 다시 찬찬히 조각을 이어맞추고서야 간신히 ‘아~’ 납득을 한 뒷이야기가 있습니다.(웃음) 그런 점에서 구성에 대해 지적을 할 수 밖에 없겠지요. 과거와 현재 혹은 현실과 환상을 교대로 오가는 구성은 매우 흥미로운 동시에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서 몰입도를 높이는 반면, 명확하지 않으면 전달력이 낮아지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실제 벌어졌던 일과 란이 홀로 계속 진행하는 환영을 독자들이 구분할 수 있도록 하였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 점만 제외한다면 이해할 수 없는 재난이 닥친 상황 속에 놓인 세 사람에게 벌어진 비극이 인상적으로 잘 표현되었습니다. 홀로 남은 란의 고독이 불러낸 환영은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끝없이 계속되는 현실이지요. 그 속에서 조금씩 말라 죽어가면서도 끝내 환영을 놓지 못하는 란은 스스로를 속이면서 끝까지 살아남고자 하는 인간의 강렬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마침내 현실로부터 구원자인 마크가 문을 여는 순간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스스로를 속이기 위해 만들어낸 환영은 무엇이며 왜 거기에 머무르는 걸까. 그게 무엇이든 언젠가는 현실의 사자가 찾아오겠지요.


별을 따다줘 : 룽게

A : 현실적인 연애 이야기인가 싶더니 근미래의 인공인격체가 멀고 먼 미래의 생명체와 조우한다는 환상 이야기입니다. 서로의 대화는 독특한 상상력으로 가득하지만, 저런 상황의 재미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네요. 작가의 미래관을 섬세한 감성적인 묘사로 서술하는 이야기는 아름답고 감미롭습니다만,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분위기와 세계관은 있으나 스토리는 부족하지요.
‘세이건’이 ‘윤지수’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갑작스럽고, 존재의 특성 때문에 세이건이 사랑을 모를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 버리는군요. 실제로 세이건의 집착은 오히려 종교적, 학문적 열의에 가까워 보입니다. 윤지수가 다시 항해를 결심하게 되는 심리 역시 이해하기 힘들죠. 이세계를 방문한 윤지수의 다른 에피소드로 무언가를 나타낼 수는 없었는지 아쉬움이 남습니다. 다만, 특정 사건이 없이 분위기와 설정만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 감수성 풍부한 문체는 무척 인상적입니다.


B :  과거와 미래는 동일한 시공간에 머물 수 없습니다. 시간은 언제나 직선형으로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물리적인 법칙은 언젠가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순간이 있을지 모른다는 낭만을 던져줍니다. 기 작가의 낭만지향을 생각하면 작가에게 아주 매력적인 소재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런 작가의 성향 덕분에 과거를 대표하는 지수와 미래를 대표하는 세이건의 만남의 주제는 지성뿐만 아니라 감성과 감정을 교환해야 하는 소통이 놓입니다. 대개 SF에서 그렇듯 미래는 극단적인 지성을 대표하고, 과거에는 미래가 잃어버린 감성과 감정을 담았지요. 그래서 과거와 미래의 소통이 시대의 소통에서 시작해서 두 개체의 만남 차원으로 변모하는 것은 필연적인 과정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만남이 에로스적인 감정으로 흘러버린 것은 매우 애석한 점입니다. 보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영적인 교류까지 확장되어 갔더라면 훨씬 더 의미가 깊은 글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분명히 작가들에게는 결코 놓지 못하는 주제, 자신도 모르게 집착하게 되어서 어떤 글을 쓰던 돌아오게 되는 ‘집’이 있습니다. 기 작가에게는 에로스적인 낭만이 집인 것처럼 보이는군요. 작가들의 집이란 너무 익숙한 주제여서 어떤 작품을 쓰던 자연스럽게 또한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표현할 수 있는 것인만큼, 때로는 작품 전체를 보면서 집착을 놓는 것이 바람직할 때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물귀신 : 황금나무

A : 공포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인물들의 감정이 전형적이고 평면적이어서 공감하기가 어렵습니다. 공포와 긴박감이 최대로 될 때에는 독자가 글 속의 인물들의 감정에 동화할 수 있을 때입니다. 그런 면에서 인물들의 감정을 얼마나 독자에게 선명하게 다가오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저수지에 수몰된 마을이 가뭄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그 안에 떠돌던 물귀신들이 산 사람을 끌어들이는 상황은 설정부터가 흥미롭습니다만, 이 글 속에선 긴장감이 그렇게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틀간 우리는 이 마을 안을 헤맨 거야.” “이 곳은 지도에 없어.” 등 중요한 사건의 서술을 대화에 의존해 버리는 안이한 서술 방식으로 독자의 긴장감이 떨어지고 마는 것이죠. 인물들이 놀라는 대사를 많이 쓴다고 독자까지 놀라지는 않습니다. 인물이 처해있는 상황에 독자가 몰입할 수 있도록 묘사와 서술을 적절히 배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B :  게시판에는 드물게 등장하는 호러장르입니다. 명확하고 사건이 분명한 점이 강점입니다. 흔히 귀신 이야기가 그렇듯이 미스터리한 결말도 흥미롭습니다. 심사평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입니다만, 한국의 귀신에게 중요한 것은 사연입니다. 즉, 언제나 한(恨)이 매우 중요하지요. 이 글에서 귀신들의 사연은 수몰된 마을에서 목을 매어 죽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연이 진호 일행이 겪는 일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전개되지 않는 점이 아쉽습니다. 한풀이를 원하는 귀신들의 사연과 일행들이 만나는 ‘의미 있는’ 접점이 있었다면 더욱 흥미롭지 않았을까요? 개인적으로는 분량미달로 심사에서 제외된 두 글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히키코모리 방콕기 : 니그라토

A : 작가의 전작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글에 먼저 놀랐습니다. 모든 것을 타인 때문으로 돌리는 무기력한 잉여인간의 생활을 그려내는 이 글은 잉여인간을 주인공으로,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자칫하면 주인공과 작가의 관점이 혼합되어 주인공의 대사가 작가가 주인공의 입을 빌려 말하는 것 같은 어색함을 주기 쉽지요. 하지만 이 글에서는 철저한 잉여 생활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의 성격 묘사가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바로 지금 이 자리 옆에 이 인물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제 좀 정신 차리고 살아보지 그래, 라고 충고해 주고 싶을 정도의 사실감이며, 독자에 따라서는 이런 사실감 때문에 불편한 기분을 느낄 수도 있을 정도지요. 인물이 속한 상태는 장기간의 소외 속에서 자신이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외부를 소외시킨 철저한 공허의 상태입니다.
매일 계속되는 모든 것에서 소외된,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 같은 일상 하나하나를 아무런 수식 없이 묘사, 서술한 것이 너무나 솔직합니다. ‘우주의 대부분은 진공이다. 마음은 육체의 작용이고, 일부다. 내 마음 속에도 진공이 들어가 있을 것이다’라는 한 줄은 압권이군요. 다음에도 이런 담담한 서술로 세계 속의 다른 인물들을 리얼하게 그려내는 소설을 기대하겠습니다.


B :  히키코모리의 잉여한 생활을 매우 실감나게 그려내었습니다. 지나칠 정도로 진솔해서 진짜 히키코모리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듯 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주인공이 세상을 느끼는 방식과 그의 생각과 감정은 방 밖에 존재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불편하게 느껴지는 내면을 드러냅니다. 소통을 할 수도 없고, 소통을 하려는 노력마저도 봉쇄당해 버린 채로 좁은 방에 틀어박히는 상황보다 더욱 소름끼치는 것은 완전한 무기력감, 삶뿐만 아니라 죽음마저 소외시켜 버리는 주인공의 의식상태입니다. 파국을 향해 치닫는 자신의 삶을 남의 일처럼 손 놓고 바라보는 주인공의 의식을 표현하는데 ‘진공상태’보다 더 걸맞은 말이 있을까 싶어집니다. 황폐함조차 찾을 수 없는 완전한 진공상태 속에서 독자는 인상적인 숨 막힘을 경험하겠지요. 기 작가의 전작들보다 진솔함이 두드러지고, 전체적으로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서술한 점이 인상적인 글이었습니다.


95호 독자 우수단편 가작에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최고의 밤 : kuchiblue

A : 자폐가 있어서 외부와 단절된 소년이 있습니다. 무언가의 이유로 갑작스럽게 온 몸이 흉기가 되어 버린 소녀가 있습니다. 절대적으로 고독한 상황의 소녀는, 자신처럼 외부로부터 단절된 소년과 조우하면서 두 사람만의 묘한 유대감이 생겨납니다. 소년의 자폐는 선천적인 것으로 피할 수 없었던 것일지 모르지만 소녀는 외부적인 사건 때문에 고독한 상황에 처해집니다.
돌연 온 몸이 흉기로 변해버린 소녀의 섬뜩한 상황이 소녀의 시점에서 묘사되다가 시점이 소년의 중심으로 옮아가면서, 소녀를 둘러싼 사건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독자는 소녀가 과거에 성폭행 혹은 성추행의 사건을 당하고, 소문에 휘말린 결과 결국 가족으로부터도 학교에서도 고독한 입장, 사람들에게 상처 줄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되어버린 것을 추측하게 되지요.
피해자인 소녀를 어떻게 대할지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소녀에서 상처를 받게 되는 주변 인물들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되어버리고 마는 소녀의 역설적 위치는 상징성을 가지면서 더욱 선명해 집니다. 오직 PMP만으로 세상을, 그리고 자신까지도 관찰하고 있는 소년의 PMP가 손에서 사라지고 소년이 외부와 소통하게 되면서 사건은 클라이막스를 향해 치닫고, 소년과 소녀는 소녀의 가해자에게 최후의 응징을 가합니다. 사건의 결말은 명쾌하고 간결합니다. 마무리의 대사 역시 강한 인상을 남기지요.
하지만 소년과 소녀가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을 텐데도 시점 전환에서 소녀와 소년의 시점 차이가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나’라는 1인칭에서 사건 파악에 혼란스러워진 독자는 갑작스럽게 편의점 학살극이라는 결말을 보게 됩니다. 소녀를 둘러싼 사건을 묘사할 위치가 소년인데, 소년이 객관적 서술자의 위치를 잃고, 소녀와 비슷한 서술만이 제시될 뿐이죠. 독자는 손바닥에 PMP를 가지고 있는 게 소녀인지 소년인지 혼란스러워집니다. 또한 소년의 PMP가 소녀에게 소포로 옮겨진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작가가 의도한 바가 잘 드러나지 못한 것이 아쉽네요.
사춘기 특유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가해자가 되어 버린 소녀의 심리가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는 점, 상징 사용의 적절성 등 장점이 많은 글이니 퇴고를 통해 두 인물의 개성을 살려 주시면 더욱 좋은 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B :  인물의 성격이 분명하게 설정되지 않고, 소년과 소녀의 특징이 대비되지 않아서 마치 일인이인극을 보는 듯한 점이 단점입니다. 특히 트라우마를 지닌 소녀의 감수성이 잘 표현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또한 사건을 자연스럽게 구성하지 않고 비약한 점도 지적할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타포를 매우 잘 사용한 글입니다.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운 사춘기는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개인적 우화, 가족으로부터 심리적인 독립을 이루면서 겪게 되는 외로움과 단절감 등이 동반됩니다. 이러한 과정에 놓인 사춘기 소녀의 민감함과 그로 인한 공격성이 칼처럼 날카롭게 변하는 신체로 상징되면서 평범한 일상의 모습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사회관계와 의사소통의 실패를 핵심적인 특징으로 하는 자폐를 앓은 소년의 손에 박힌 PMP는 세상을 보여주는 창을 상징하면서, 여전히 그가 사회관계와 의사소통에 벽을 가졌음을 나타내는 듯 보입니다. 그래서 성폭행의 트라우마로 인해 타인에게 날을 세울 수밖에 없는 소녀와 주류에서 겉도는 소년이 동질감을 가지고 가까워지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겠지요. 소녀의 트라우마는 소년이 감추고 있던 적개심과 공격성을 드러낼 명분을 제공하고, 소녀는 소년의 복수로 인해 구원 받았다고나 할까요. 끊임없이 겉돌던 두 사람이 마침내 살인이라는 복수에 닿아 외치는 ‘오늘은 정말 최고의 밤이다’라는 대사는 그들의 소외감과 상처에 공감하는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던질 것 같습니다.


96호 독자 우수단편 우수작에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거울 독자우수 단편에 선정되신 분들께는 책을 한 권씩 보내 드립니다. euseoha @ gmail. com 으로 우편물 수령할 주소, 성함, 전화번호 (택배 발송시 필요)를 보내 주세요.

댓글 3
  • No Profile
    니그라토 11.05.28 06:51 댓글 수정 삭제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자전적 요소가 어느 정도 가미된 글이어서 더욱 진솔했을 것입니다....
  • No Profile
    kuchiblue 11.05.29 17:40 댓글 수정 삭제
    믿기지가 않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평을 듣는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앞으로도 계속 도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No Profile
    persona 11.05.30 01:56 댓글 수정 삭제
    부족한 이야기에 꼼꼼한 평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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