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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연초부터 한파가 끊이지 않고, 현실에는 가슴 아픈 소식들만이 들려오는 우울한 새해, 음력으로 설을 쇠는 풍습에 기대서 아직 새해는 오지 않았노라고 말하고 싶은 기분이군요. 세상은 우울해도 글 쓰는 이들은 또 자신의 고민에 맞부딪히면서 고민해야 하는 것이겠죠.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한 달은, 올라온 편 수도 그렇지만 글의 내용과 질적인 면에서 참으로 아쉬웠던 달이었습니다. 최근에는 지난달의 우수작이나 가작의 형식이나 느낌에서 계기를 잡은 글이 아닐까 싶은 글이 종종 눈에 띱니다. 글을 읽다보면 좋은 글에서부터 아이디어를 얻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때로는 그 전월의 우수작(또는 가작)과의 유사성이 오히려 글의 장점을 해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진정으로 소설을 쓰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소설을 발표하고 싶어서 소설을 쓰는 것인지,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싶어서 소설을 쓰는 것인지, 아니면 소설 외적인 무엇인가를 위해 소설을 쓰는 것인지 말입니다.
92호에서는 아쉽지만 당선작을 선정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달에 더 좋은 글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12월 16일부터 1월 15일 자정까지 올라온 총 12편의 글 중 심사대상이 된 글은 10편이었습니다. 심사대상에서 제외된 작품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분량미달 :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Hi, 연 : 원고지 45매)
2) 분량초과 : 자이단 경과 신묘년 행사 기념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 (균 : 원고지 288매)


부지사부지생 : 천공의 도너츠

A:   짧은 중국 고사(古史)를 옮겨 놓은 듯한 글입니다. 짜임새 있는 기승전결로 인해 흡입력이 있고 가독성이 높은 점이 장점입니다. 바둑에 미친 기인과 바둑을 마주하는 인물들이 대국 속에서 인생을 들여다보는 이야기는 기담의 형식으로 적격이지만, 중국 고사(古史)나 기담이 가치가 있는 것은 그 속에 담긴 교훈과 철학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바둑을 통해 인생사를 훤히 꿰뚫는다는 주제를 선택하고 있지만, 그에 비해 어째서 바둑이 그러한 기능을 하는지 구체적인 철학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등장하는 인물들이 바둑에서 어떤 식으로 인생을 읽어내었는지 독자가 이해하지 못하면 그저 작위적인 이야기에 그치기 쉽겠지요. 인생이 우주처럼 넓은 반상 위에 펼쳐지는 대국의 흐름 속에 있는지, 아니면 또 다른 것에 있는지, 어째서 인물들은 대국을 두면서 인생을 통달하게 되는지 보여주었더라면 작위적인 줄거리를 넘어서는 깊이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B:  중국 고사 속에 들어있을 법한 이야기입니다. 글 전체를 탄탄한 문장이 받치고 있다는 점이나 배경이 되는 세계를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점은 장점이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글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주인공을 포함해서 모두가, 개성적이라기보다는 가면을 쓰고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아마추어 배우처럼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작가가 자신의 글을 쓰는 세계를 사랑하고 그 세계에 발을 디딘 채로 묘사를 한다는 것은 장점일 수 있겠습니다만 작가만이 존재하고 인물들은 종이인형처럼 보인다면 세계 자체도 탄탄함을 잃고 말겠지요.
바둑이 세계를 담고 있다고 바둑을 하시는 분들은 말합니다. 다도 안에 세계가 있노라 다도 하시는 분들은 말씀하시지요. 하지만 그것이 공염불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자신의 말을 지지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작가가 글 속에서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철학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녹여내는가, 그것이 곧 작가의 역량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바둑을 통달하고 장원급제로 높은 자리에 오른 젊은이는 가렴주구의 간신배가 되어 세상을 더욱 어지럽히고 말며, 그가 호기로 던진 돈뭉치로 주인공은 간신배를 도왔다는 모함에 빠져버립니다. 왜 이렇게 해야만 했는지 설명도 근거도 없이, 작가는 바둑 안에 천하의 진리가 있다고 말하며 글의 마무리도 오랜 고전의 방식을 그대로 따릅니다. 고전의 느낌이나 고전의 문장을 복사하듯이 흉내 내기가 아무리 어렵다고 하더라도, 고전이 고전인 이유, 글 안에 녹아든 작가의 깊은 철학을 흉내 내는 것보다는 쉽겠지요. 무거운 주제를 폼 나게 쓰는 글이 꼭 멋진 글이라는 법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작가가 소설에서 얼마나 무거운 주제를 가져왔느냐가 아니라 작가가 자신의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떻게 독자들에게 공감하게 만들었는가 입니다.


J라는 사람이 맨홀을 들여다보았다는 이야기 : 장우석

A:   짧은 문장을 엮으면서 나름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인상 깊습니다. 그러나 소설은 문장이 유기적으로 엮어져 형성된 거대한 서사입니다. 부분적으로 멋들어진 문장을 쓰거나 분위기를 낸다고 해도 구성이 탄탄하지 않으면 완결된 이야기로서 가치가 적겠지요. 이 글의 전반에는 여성혐오, 모성결핍의 흔적,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등 한껏 멋 부린 상징이 가득하고, 미스터리와 괴물을 잇는 모성에 대한 메타포 등이 시도되지만 그것이 하나의 이야기 속에 통합되지 못합니다. 마치 작가마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 혼란스럽다는 느낌마저 드는군요.


B:  세계 종말을 연상시키는 기묘한 세계에서 몇 명인지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사건에 얽혀들어, 이해할 수 없는 결말로 치닫습니다. 원고지 90여장이면 그렇게 긴 글이 아닌데도 글을 읽는 내내 너무 긴 글을 따라가고 있는 듯 숨이 가빠집니다. 인물도 사건도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 글 안에서 세기말적인 어두운 묘사만이 흘러갑니다. 그 묘사조차도 구체적이 아닌,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비틀린 방식으로 말이죠. 하나의 문장만을 떼어놓고 보면 벼린 칼날처럼 선명한 빛을 내는데, 두세 문장만 연결되어도 글은 뒤죽박죽의 느낌으로 변하고 맙니다. 서로 다른 선명한 빛이 바로 이웃해서 번뜩인다면 그 빛은 각자의 가치를 잃고 전혀 다른 빛으로 변해 버리겠죠. 이 글이 그렇습니다. 작가가 어떠한 플롯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독자는 알 도리가 없습니다. 작가분이 해야 할 것은 멋지게 빼어난 날선 문장 하나하나가 아니라 글이 어떻게 흘러가서 엔딩을 맞이하는지의 구성이 아닐까요.


하루 한 명 : emfor

A:   십대를 대상으로 하거나 십대가 쓴 글에서 찾아보기 쉬운 자기중심적인 상상력이 두드러지는 글입니다. 친구를 대신해서 그를 괴롭힌 친구들과 담임을 죽게 만드는 사건은 매우 극단적인 사건입니다. 즉, 현실이 배경임에도 실제 현실과의 개연성보다는 비현실적인 사건의 극단적인 전개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요. 성인 독자에겐 허황되게 느껴져서 매력이 적은 글이겠지만, 십대들이 독자라면 극적인 사건전개가 매력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B:  예쁜 소녀가 전학 오면서 학교에서 한 명씩 학생들이 자살합니다. 화자인 ‘나’는 소녀가 범인인 걸 알고 있으며, 소녀로부터 자신의 어두운 죄에 대한 결과를 알고 소녀의 뜻대로 꼭두각시처럼 휘둘립니다. 기존의 시스템을 경멸하는 10대들은 종종 시스템의 피해자를 묘사하곤 합니다만, 이 글 역시도 왕따 사건의 피해자였던 학생이 자신의 가해자들에게 복수하는 내용으로 그치는군요. 왕따 사건은 피해자나 가해자의 인격 형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고, 현재 사회의 심각한 병폐 중에 하나입니다. 즉 이 글은 다루기에 따라서는 10대 시기에 죽음을 택할 정도로 괴로워하는 왕따 사건의 피해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진지한 글일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이 글에서는 사건의 해결자로 등장시킨 소녀의 비현실적인 면모 때문에 글 전체가 흔들리고 맙니다. 죽은 친구는 왜 ‘희나’에게 자신의 복수를 부탁했을까요. 희나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희나는 왜, 마치 인간이 아닌 존재처럼 가해자 전부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일까요. 너무나 미인인 전학생으로부터 자신의 가장 수치스러운 부분을 듣게 되었을 때, 10대 남학생이 이 글처럼 소녀에게 꼼짝 못하고 휘둘리는 것이 과연 자연스러운 일일까요. 오히려 그 범죄에 관계된 소년들이 모두 일치단결해서 희나의 의도를 막으려고 하지 않을까요.
10대들의 대사가 비교적 생생해 글을 살려주고 있지만 대화와 대화를 연결하는 서술은 빈약합니다. 희나가 살아있는 소녀가 아니라 마치 로봇이나 외계인처럼 보이는 것은, 희나를 인간답게 만들어 줄 서술은 없이 오직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희나에 대한 공포감만을 강조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덧칠 : 전재열

A:   어느 날 갑자기 기억을 잃은 영진과 재은의 이야기가 교대로 흘러가는 과정은 호기심을 유발하면서 흥미를 불러일으킵니다. 기억상실로 당황하는 두 남녀의 기이한 사건은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긴장과 기대를 던지지요. 그러나 전반부에 형성된 긴장감은 결말에 이르러 불발탄처럼 맥 빠지게 끝나고 맙니다. 두 남녀가 옛 연인이었음이 드러나면서 행복한 과거를 반추하는 결말부는 공포소설이 갑자기 로맨스로 급변한 것처럼 의아합니다. 두 사람의 감정은 긴장감을 완전히 희석시키고, 이로 인해서 검은 붓에 지워진 주인공이나 검은 캔버스에 남은 흰 점이 기괴함을 남기기보다 회한을 남길 뿐입니다. 인물들의 정서를 최소화하고 주인공을 지우는 검은 붓과 마지막에 남은 흰 점의 기이함에 더욱 초점을 두었다면 긴장과 공포, 극적인 반전이 유지된 좋은 글이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B:  그림의 덧칠과 기억의 덧씌움, 물리적인 사라짐, 세 가지를 효과적으로 결합시킨 상상력이 독특합니다. 서두에서 돌연 기억의 일부가 사라진 두 사람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방식 때문에 독자의 긴장도 더욱 가중되지요. 집중하면서 글의 후반이 어떤 식으로 흐를지 기대하게 됩니다. 다만 두 명의 기억상실자의 관련이 밝혀지는 부분부터 글은 초반의 긴장을 잃어버리고 말아요. 무언가가 터질 것 같던 불안함과 초조함 대신에 헤어진 연인이 맞이할 결말이 어떨지를 궁금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남겨진 ‘흰 부분’의 의미가 강렬하게 인상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도대체 이게 무슨 이야기냐고 되묻게 되지요. 작가가 글의 전체적인 성격을 어떻게 정하고 어떤 식으로 흘러가게 할지 고민하는 것, 그래서 글의 전체적인 흐름과 주제를 잡는 과정이 이 글에서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듯 한 느낌을 받습니다. 독자의 긴장을 끄는 힘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글의 앞뒤가 균형이 맞지 않는 형태로 남아 버리는 게 아쉽군요.


영웅은 정말 영웅이었나? : 김진영

A:   전형적인 전대물의 패러디 같은 글입니다. 차별화 되는 주제나 줄거리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문장이 호전된 점은 좋은 소식이군요.


B:  영웅은 실제 조작된 것이다. 영웅의 배후에는 악이 있다는 주제는 음모이론에서는 꽤 자주 다뤄질 이야기입니다. 흔한 주제인 만큼 자신만의 개성이 필요하다는 말씀은 전부터 이 자리를 통해 말씀드려왔지요. 하지만 이 글은 글 속 세계를 제대로 설명하는 데에도 성공하지 못한 것 같네요. 영웅과 악당집단과 권력층, 이 길지 않은 글에서 인물들은 넘쳐나고 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역할 부분만을 메모하고 상대방의 대사는 파악하지 못한 배우들처럼 어색하게 움직여댑니다. 스스로 소리를 내면서 소설 속의 대사를 읽어보시면, 아무리 우리 세계와는 어느 정도 다른 사회라고 하더라도, 인물들의 대사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느껴지실 겁니다. 많이 줄어들었다고는 해도 문장과 문장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부족하거나, 맞춤법에 맞지 않는 표기들이 등장한다는 점은 작가분의 퇴고가 부족하다는 뜻이 아닐까요.
마지막의 결말은 작가분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군요. ‘누군가의 승리로 도시는 빛에  휩싸여 여명을 달리했다.’ 진지하고 멋있어 보이는 한 줄입니다만, ‘유명’이라고 쓸 부분에 ‘여명’이라고 쓰여서야, 작가의 의도가 전해지기 어렵겠죠.  


겨울의 아이 : 김진영

A:   겨울을 소재로 한 동화 같은 단편입니다. 있을 법하나 일상에 대한 수필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재와 주제를 선택했다면 정서나 성찰의 깊이에서 글의 질적 차이가 결정되겠지요. 또는 독특한 서정적인 분위기가 다른 글과 차별화 되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자신만의 색깔을 입히고 다른 글과 차별화되는 점이 많이 아쉬운 글입니다.


B:  이런 글을 쓰면 따뜻할 거야. 이런 글을 쓰면 독자들에게 받아들여질 거야. 독자를 의식하시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무엇을 쓰고자 하는지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독자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만을 여과 없이 그대로 배출하는, 자신의 글이 읽힌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학생에게는, 글이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항상 자신의 소설이 인터넷 어딘가에서 독자와 만나고 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독자의 관점이 아닌 나 자신의 내면의 관점으로 생각해 볼 필요도 있죠.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다면 글은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진짜 이야기가 아니라 독자가 듣고 싶어 할 거라고 ‘짐작’한 이야기라면 역시 마찬가지겠죠. 글은 마치 어른들을 위한 동화처럼, 짧은 단편 만화처럼 예쁘고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하는데, 작가분은 그런 분위기 안에서 어떤 철학을 녹여내고 계신지요.


믿음 : 심동현

A:   편지 형식은 인물의 서정을 효과적으로 잘 드러낼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 글에서 사용된 편지 형식의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줄거리 서술과 ‘그녀’에 대한 인물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줄거리는 다른 서사방식을 통해 나타낼 수도 있음을 고려하면 편지 형식의 선택은 ‘그녀’에 대한 주인공의 마음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선택되어야 했겠지요. 그러나 편지 형식이 끝나고 후반에 이르면 ‘그녀’는 그저 반전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음이 드러납니다. 스파이의 정체가 D인 것을 감추기 위해 독자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한 것이었지요. 그것이 드러난 순간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그녀’에 대한 마음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편지형식을 사용해서 그녀에 대한 마음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는지 알 수가 없군요. 오히려 결말부분처럼 이야기 전체를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진행하면서 ‘그녀’의 수상함과 D의 충실함을 대비했다면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요?


B:  독재자가 있습니다. 그 독재자를 따르지 않고 저항하는 사람들을 처참하게 몰살시키는 집단이 있습니다. 저항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람들은 좌절합니다. 암울한 세계에서 독재자와 저항집단의 이야기는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여러 의미에서 현대 사회는, 다양한 형태의 독재자(그것이 개인이든 집단이든, 혹은 어떠한 사상이든 간에)로부터 억압받고 있는 느낌을 받게 만들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독재자와 저항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거나, 저항자의 좌절에서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여기에서 독재자의 실체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독재자’라는 말로는 모두를 하나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방식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 글의 독재자는, 독재자로서 그렇게 유능해 보이지는 않네요. 자신을 믿지 않는 사람을 학살하는 장면을 보여주면, 사람들은 그걸 보며 독재자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게 될까요? 오히려 그런 장면을 거듭해서 보는 동안 사람들은 공포와, 그 공포에 길들여지며 무력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믿음’을 요구하는 독재자라면 오히려 자신의 치적을 보이거나 혹은 자신을 종교적으로 신비화하는 방법이 더욱 효과적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나’의 일인칭으로 등장하는 그녀와의 에피소드는 편지 형식 때문에 산만해질 뿐이며, ‘나’가 당연한 듯 믿고 있는 특권도 독자에겐 그렇게 미덥지 않네요. 절대적인 독재자의 권력 하에서, 소설가가 독재자의 구미에 맞는 글을 쓴다고 해서 도청이나 감시에서 벗어나리라고 여기다니요. 오히려 자신이 쓰고 있는 글이 그렇게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는 ‘나’의 오만함이 의아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키보드 워리어 : 심동현

A:   매우 유쾌한 글입니다. 전작들처럼 글에 유머를 담는 강점을 잘 보여준 글이지요. 반지의 제왕, 데스노트를 패러디한 부분이나 게임 치트키를 소재로 다룬 점 등 독특한 소재가 유쾌하게 엮어진 구성이 즐겁습니다.


B:  앞의 작품과는 달리 어깨에 힘을 빼고 쓴 가벼운 패러디물이네요. 수많은 인기작품들을 섞어 비빔밥처럼 만들어놓은 글에 키보드 워리어라는 신조어를 판타지적으로 재해석한 능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심각하고 무거운 글만 좋은 글이 아니겠죠. 읽는 동안 즐거웠고, 상상의 여지를 남겨 주었습니다. 짧게 끊어지는 문장 사이사이에 숨어있는 사건 전개가 생생하게 들어오는 것도 강점이네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NC YUN

A:   정체불명의 누군가에게 뒤쫓겨 편의점으로 뛰어든 아이돌이 불운하게도 누군가를 죽이게 된 사건과 그것을 목격하고 숨겨야 하는 팬(편의점 점원)은 있을 법한 흥미로운 사건입니다. 매우 드라마틱한 사건으로 전개될 여지가 많은 사건이 시작과 동시에 타임머신을 이용한 몰래 카메라로 반전되며 끝나는 것은 안이한 구성이 아닐까요? 적어도 50년을 뛰어넘기 전에 살인을 뒤처리해야 하는 긴박함과 인물들의 심리가 묘사가 되었더라면 훨씬 짜임새 있는 글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B:  전반부와 후반부의 글이 서로 다른 글인 것처럼 불협화음을 만들면서, 전반부의 긴장감이나 사실적인 부분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타임머신’이라는 소재 속에서 ‘50% 생방송’ 이라는 아이디어는 탁월하고 유쾌합니다만, 아이디어를 풀어내기 위한 사건이 너무 심각하고 무겁기만 하네요. 후반부는 반전을 의도한 것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필요 없는 개그로 군더더기가 많은데다가 서술 역시도 전반부처럼 사실적이기보다는 들뜨고 급합니다. 새벽 편의점, 돌발 상황, 살인사건, 두 사람이 동시에 져야 할 굴레. 이런 무거운 소재를 다른 식으로 풀어냈다면 이 글은 달라졌겠지요. 50% 생방송이라는 아이디어를 유쾌하게 풀어나갈 소재를 잘 잡아냈더라면, 이 글은 또 무척 유쾌한 글이 되었을 것입니다. 소재와 아이디어를 살려내는 효과적인 사건을 잡아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주는 글이었습니다.


군견의 편지 : 먼지비

A:   군대문화로 상징되는 부조리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는 의도가 보이는 글입니다. 이글의 화자는 군대에서 벌어지는 계급차별, 폭력 등의 부조리를 사회 철학적 관점에서 투쟁적으로 논하고 있습니다. 사회경험 없는 이십대 초반인 화자가 던지는 화두로는 적합할지 모르지만, 화자가 논하는 내용은 화자의 경험부족과 나이 덕분에 미숙한 청년이 오만한 관념을 주장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구석구석에 도사린 부조리에 대한 모멸감에는 독자에게 전달하는 거친 주장만이 있을 뿐, 작가가 보여주는 현실을 수용하고 해석할 여지를 남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왜 굳이 소설형식을 빌어 왔는지 납득하기 힘듭니다. 글 속에 등장하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학교에서 흔히 벌어지는 보편적인 사건 속에서 사회에 대한 은유를 이끌어 내었기에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위력을 발휘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은유를 사용하였기에 독자들이 다양하게 해석하고 수용할 여지가 있는 것이겠지요. 만일 이 글의 목적이 군대문화로 상징되는 부조리를 고발하고자 한 것이라면 한 군인의 세세한 일상과 행동에 대한 ‘설명과 해석’이 담긴 편지형식보다는 벌어지는 사건에 주제를 담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요?


B:  편지글이라면 나도 쓸 수 있어 라고 눈을 빛내는 작가분이 보이는 듯합니다. 글 중반에 등장하는 ‘먼지비’의 설명 역시도 어느 정도 작가분의 글을 따라 읽어온 입장에서는 반가울 정도더군요. 20대, 고등학교의 꽉 짜인 틀에서 벗어나 자신이 알지 못하던 사회의 부조리를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다양한 지적인 충족을 이루게 되었을 때, 세상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말이나 글들이 작가 밖으로 형태를 갖추어 갑니다. 그 때의 문장들은 대부분 화자가 당시에 읽고 있는 글의 문장을 그대로 닮곤 하지요. 그래서 때로는 고풍스럽게, 때로는 80년대나 70년대 같은 화법으로, 열변을 토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단지 열변에 그친다면, 그건 소설일 이유가 없겠지요. 우리는 다양한 1인칭 소설을 접합니다만, 그건 수필과는 다릅니다. 또한 신문의 투고 글과도 다르죠. 군대 문제를 개혁해 보겠다고 도전한 젊은이가 제대 후 다시 사회에 길들여지는 모습은 소설적으로 형상화하기에 참 매력적인 소재입니다만, 이 글에서는 ‘극’도 ‘사건’도 편지글이라는 형식에 묻혀 버렸습니다. 결말 부분의 ‘나’와 ‘군견’과의 대화 부분이 사족으로 느껴질 정도로 편지글과 편지글이 아닌 부분이 매끄럽게 연결고리를 갖지 못하는 점도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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