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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추위가 기승이었지만 어느덧 꽃봉오리가 나오더니 활짝 핀 꽃들이 봄이 왔음을 실감케 합니다. 이번 달 독자단편란은 꼭 봄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동안 심사단에서 누누이 지적해왔던 허술한 구성이나 즉흥성, 어법에 맞지 않는 문장 등이 많이 줄어들었고, 짜임새 있는 구성을 가진 글이 많았으며, 특히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매끄러운 문장이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나무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처럼 작가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즐거움이 있는 달이었습니다. 작가들이 자신의 글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과 성장욕구를 많이 느꼈습니다. 계속적인 발전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3월 16일부터 4월 15일 자정까지 올라온 총 21편의 글중 심사대상이 된 글은 15편이었습니다. 그 중 83호 독자 우수단편 우수작은 룽게 님의 ‘스타 글라디에이터’, 가작은 먼지비 님의 ‘책의 미로’, 천공의 도너츠 님의 ‘나는야 우주의 케밥 요리사’ 2편입니다. 세 분 모두 축하드립니다.
심사대상에서 제외된 작품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분량 미달  
Auftakt (Komma, 원고지 21매)
2) 분량초과 : 오방교 (학예회, 원고지 230매), 그들의 슬픈 오마주(김진영, 원고지 168매)
3) 연작 : 공원여행:어느 겨울의 사업가(김진영)


바보상자 - 에클레시아

A: 유명한 영화 MATRIX나 트루먼 쇼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사실은 허상이며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세팅되어 있는 것이라는 가정으로부터 출발하는 소설은 무척 많습니다. 은둔형 외톨이를 주인공으로 하여 주인공의 고립된 삶에 밀착하여 쓴 글이라는 점에서는 다른 글들과 구별되는 특징도 있다고 하겠습니다만, 감정적으로 현실에서 한 걸음 물러서 있는 주인공에게 밀착된 1인칭을 쓴 때문에 미래 배경인 듯 한 세계의 배경이 잘 잡히지 않습니다. 현실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모두 1인칭 주인공에게서 걸러져 독자에게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현실에 대한 불만족으로 가득한 한 은둔형 외톨이가 보는 넋두리에서 글은 나아가지 못합니다. 지진 등의 천재지변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통제하는 세계 속에서 당신의 환상의 힘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아이돌 가수가 충격을 주지 못하고 글 안에서 넘쳐나는 주인공의 사변 중 하나로 흘러가 버립니다. 잔뜩 멋을 부린 대사와 추상적인 서술들 때문에 독자가 글에 몰입하기는 더 힘들어지네요. 자신만의 소재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많이 쓰인 소재를 어떻게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지가 중요하겠지요.
글의 시작부분에서 ‘인간을 사육하기 위한 최소의 땅덩어리 위’ 등으로 이미 결말을 예상하게 되었습니다만, 글의 마지막까지도 그다지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평이한 진행으로 끝납니다. 짧지 않은 글입니다만 글의 전개가 밋밋해서 더욱 길게 느껴집니다. 이 글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B: TV를 매개로하여 현실과 인생을 말하고자 한 글입니다. ‘바보상자’라는 말에는 자유의지가 사라진, 마치 비현실처럼 흘러가는 인생에 대한 환멸이 담겼습니다. 드러내고자 하는 사변은 명확하나 사변과 이야기가 한데 어우러지지 못하여 서로 겉돕니다. ‘바보상자’를 매개로 하여 은유를 사용하고자 하였으나 드러내려는 사변이 지나치게 직설적으로 등장한 점이 가장 큰 흠입니다.


괴물(가제) - 하 성

A: 가엾은 동물을 구해주고 동물에게 보답을 받는다는, 동화나 소설에서 종종 등장하는 흔한 클리셰를 비틀어 놓으셨네요. 사람들에게 멸시받는, 어딘가 모자란 주인공 요한이 고양이 필립을 구해주면서 삶에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필립의 말을 알아듣는 것은 요한뿐이라는 설정이나 주변의 인물들이 필립 때문에 요한을 더욱 더 핍박하게 된다는 것은 전형적인 클리셰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만, 결말 부분에서 주인공이 맞이한 보답이 실은 보답이 아니었다는 반전이 예상 외로 다가옵니다.
전형적인 이야기 구조를 따라가더라도 인물들의 당위성이 필요하겠습니다만, 이 글에서 중요한 조연 역할을 하는 ‘형’은 행동에 타당성도 일관성도 없네요. 동생 요한을 멸시하는 폭언은 차치하고서라도 어머니를 마녀로 몰아 죽게 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고양이의 말을 듣고 돌변하여 마을을 불태우는 요한의 행동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간접인용과 직접인용을 절반 정도 비율로 사용하면서 대사를 처리했습니다만, 어떤 기준이었는지 모호하네요. 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대사를 간접인용 처리하고 있는 부분은 글의 분량을 억지로 조절한 것처럼 어색합니다.
덧붙여, 인물의 이름이 ‘요한’과 ‘필립’ 입니다만 성서에 뿌리를 두고 있는 두 인물인데 이름을 읽는 방법은 다른 언어를 따르고 있네요. 사소한 것일지라도 작중 인물의 이름은 타당한 이유가 없다면 한 문화권으로 일치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B: 전개 과정이 너무 길어서 긴장감이 떨어지는 편입니다. 스스로가 괴물이 되어버린 한 인간의 모습을 반전으로 배치했다면,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그려져야 하지 않을까요? ‘A이다. 그런데 B이다.’라는 구조만 가진다고 해서 좋은 반전이 되지는 않습니다. A인줄 알았던 독자가 B임을 깨달았을 때 글 속에 놓였던 단서들이 시원하게 반전인 결말로 연결되는 쾌감이 반전의 매력이 아닐까 합니다. 반전의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고양이가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 반전을 마무리한 점이 아쉽습니다. 아울러 선량했던 한 인간이 괴물의 마음을 가진 인간으로 역전되는 과정이 치밀하게 그려졌더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Babel - 빈군

A: 소설을 쓰는 작가라면 한 번쯤 자신의 의도가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좌절감을 느낀 적이 있을 것입니다. 신의 권위에 도전한 인간들에게 언어가 통하지 않는 징벌을 내렸다는 바벨탑의 신화를 차용한 이 글에서는 작가와 독자의 의사소통 단절에 빗대어 언어 혼란이라는 바벨탑 신화를 상징적으로 배치합니다. 아무와도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오직 ‘그녀’만이 나와 정상적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상황이 되어서야 주인공은 ‘그녀’가 여태까지 해 왔던 말이 상징적이거나 왜곡된 무언가가 아니라 사실 그대로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 같네요. 상황 안에 녹아낸 상징성이 맛깔스러우며, 시니컬한 문체도 아이러니한 상황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데 적절해 보입니다.
다만, ‘화성에는 모기가 개구리를 강간한다죠?’라는, 의사소통의 장해를 알리는 대사가 여주인공의 입에서 나오는 장면에는 전후 설명이 없어 갑작스러운 느낌이 드네요. 주인공이 여주인공에게 그 대사를 전달한 적이 없다면 나올 수 없는 대사겠습니다만, 그 이야기를 전한 상황은 글에서 보이지 않아서 모호해졌습니다. 또한 너무나 피상적으로 다루어져서 한 인간이라기보다는 평면적인 그림처럼 보이는 여주인공이 좀 더 생명력을 가졌더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습니다.


B: 의사소통을 소재로 하여 역설적인 상황을 그려보고자 한 의도는 읽히나 제대로 잘 풀어지지 않은 느낌입니다. 편집장과의 의사소통과 연지와의 의사소통의 대비가 명확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갑갑하고 이야기 구조 자체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점에서는 이야기 구성보다 글을 쓰는 작가의 모습에 자신을 투영하는 것에 더 집중한 느낌도 듭니다.


Cliche - 빈군

A: 제목 그대로 클리셰의 나열로 이루어진 글입니다. 중심적인 스토리로 잡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하면 여주인공과 주인공 ‘나’의 연애담이겠습니다만, 너무 많은 패러디가 난무하다보니 이야기가 중심을 잃고 산만해지고 말았군요. 이 글이 단순히 패러디의 나열 이상의 무언가가 되기 위해서는 무언가의 ‘주제의식’이 필요하겠습니다. 이 글 안에서 주인공의 입에서 말한 것처럼 “이야기가 너무나 뻔한데다가 어디서 본 듯한 내용들로 가득차” 있는 이야기가 이야기로서 존재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가 중요하겠습니다. “사랑 이야기가 다 거기서 거기인 법”이라고 해도, 독자들은 어디선가 본 듯한 이야기만으로 이루어진 글이라면 읽고 싶지 않겠죠. 이 글에서 가득한 여러 가지 패러디들을 알아보면서 가벼운 웃음을 지을 수는 있겠습니다만. 물론 작가분께서 의도하신 것이 그것이라면 그로서 충분합니다.  


B: 머릿속에 떠오르는 클리셰를 즉흥적으로 이어간 글로 보입니다. 거기서 거기인 사랑 얘기를 하기 위해서 이토록 글을 낭비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스스로가 소재를 그다지 진중하게 다루지 않았기에 그랬던 것은 아닐까요?


Dreaming - 빈군

A: 미국 드라마 Law and Order를 연상시키는 구성이 인상적입니다. 대사만으로 사건을 구성하면서 독자가 이야기 전체를 구성하게 만드는 힘은 인정할 만하네요. 하지만 이 글의 핵심일 수 있는 공판의 이유가 글의 시작 부분에 나타나지 않고 글의 중반이 넘어가면서야 공판의 근거가 나타나는 게 의아하네요.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배치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증인’이 피고이기도 하다는 설명이 없다보니 원고 측의 심문이 증인에 대한 것 치고는 지나치게 적대적인 것으로 보여 의아한 느낌입니다. 글 전체적으로 시간이 거슬러 가는 부분이 일부 있지만 과거인지 시간 순서인지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도 아쉽네요.
꿈을 현실화 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물과 그 인물을 살해할 수밖에 없었던 인물 등 여러 인물들의 설정, 그리고 인물들 사이의 갈등 구조가 흥미롭습니다. 다만 대사만으로 진행되면서 단지 추측하는 것만으로 그칠 수밖에 없는 사건의 전체 구조가 눈에 들어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김기준’의 캐릭터는 무척 강렬합니다만 그 상대인 ‘준경’은 개성이 약하며, 그 두 사람을 동성애 관계로 설정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의문입니다.


B: 기 작가가 이번 달에 올린 글 중에서 가장 짜임새 있는 글이었습니다. 꿈이 현실로 된다는 다소 흔한 설정을 몹시 독창적으로 풀어내었습니다. 대사만으로 전개해갔음에도 불구하고 흡입력이 있고, 고조되는 긴장감을 잘 살렸습니다. 기괴한 사건에 대한 독자의 호기심도 끝까지 노련하게 이끌어 갑니다. 그러나 글 전체의 구성이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아서 혼란스럽고 산만한 것이 흠입니다. 기소 내용 자체가 반전은 아닌 만큼, 서두에서 살인 사건임을 분명히 하고 전개했더라면 낫지 않았을까요?


Eclipse - 빈군

A: 1인칭 시점으로 감정의 흐름에 밀착해 있으면서 주인공이 느끼는 긴박감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점이 인상적이네요. 주인공이 무서워하는 ‘엄마’의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있어 글 안에서 가장 큰 존재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팔백육십육만오천삼백이십일원’이라는 특이한 금액이 ‘이자를 넣었기 때문’이라는 구체적인 이유를 가지면서 글에서 비중 있는 소재로 존재감을 어필합니다. 금액이 차지하는 긴 글자 수가 마치 주인공이 그 돈에 가지고 있는 압박감을 나타내는 것 같네요. 인류의 미래가 달려 있는 정체불명의 사건에 휘말리면서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비현실적이면서도 강렬한 사건과 연인과 헤어졌다는 소소한 일상적 사건이 어울리지 않는 듯이 병렬적으로 진행되는 구조도 좋습니다.
다만 캐릭터의 성격이 생생하게 자리 잡혀 있는 것에 비해 글의 결론이 지지부진하고 독자의 긴장감을 일순 무너뜨릴 정도로 허무하게 결말로 치닫는 것이 아쉽습니다. 전체적으로 작가분의 글은 소재와 내용, 문체 면에서 무척 넓은 폭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만 그와 함께 글 자체의 수준도 상당히 격차가 나타납니다. 생동감있는 인물 설정이 강점인 이 글이 평범한 연애 이야기의 결말로 마무리되면서 독자는 오히려 허무함을 느끼고 맙니다. 그토록 강렬하게 인상을 남긴 어머니가 글의 결말에 뚜렷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도 아쉽네요. 정체불명의 인물과의 대면 장면은 특히 긴장을 극도로 고조시켰다가 어이없이 결론이 나 버려서 안타깝습니다.


B: 결말이 너무 아쉬웠던 글이었습니다! 흥미로운 사건이 잘 전개되었지만, 그에 비해 결말은 너무 평범하고 흐지부지 되고 말았지요. 전개부터 매우 매력적으로 살렸던 ‘어머니’라는 인물이 응당 글 속에서 해야 할 역할을 하지 못하고 끝나 버린 점이 가장 큰 흠입니다. 가장 부각했던 인물인 어머니가 의외의 결말을 이끌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매우’ 큽니다. 치밀하게 구성을 한 뒤 전개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데로 흘러가버린 느낌입니다. 기 작가의 글과 성질은 다소 다르지만, 비슷한 방식으로 유쾌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간 임태운 작가의 ‘이빨에 끼인 돌개바람’을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참고가 될 것입니다.


Farewell, my love - 빈군

A: 돌연 가족을 버리고 먼 우주로 가버릴 아내, 자신의 차 트렁크 안에서 발견된 시체.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강렬한 소재로 출발하는 이 글은 작가분의 글 솜씨가 최대한 발휘된 작품으로 보입니다. ‘아내’ 외에도 장모를 비롯하여 궁금증을 유발하는 강렬한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있고 사건은 긴박함을 가지고 전개됩니다.
그러나 사건의 대 전제인, ‘아내가 우주로 간다’는 근본적인 이유가 보이지 않는 것이 아쉽네요. 아내가 ‘나’와 ‘동현’을 사랑하고 있다고 장모는 이야기합니다만, 정말로 가족을 사랑하는 ‘아내’가 어째서 영영 이별할 길을 택하게 되었는지의 이유가 전혀 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부족들의 요구라고 보기엔 ‘소속되어 있는 곳도 떠날 수 없는 것이 보통’이라는 뱀파이어의 기본 설정과 부딪히고, 부족의 높은 분들로부터 무척 총애를 받고 있다는 ‘아내’의 설정과도 맞지 않네요. 단지 야망 때문에 우주로 가는 것인지, 아니면 그 외 피치 못할 이유가 있는지 설명이 필요하겠습니다. ‘200만년 뒤에 새로운 인간들이 머물 새로운 지구를 만날 아내의 원대한 계획‘ 이라는 말로는 독자를 설득할 수 없겠죠.


B: 지구를 떠나게 된 유일한 뱀파이어를 아내로 둔 남자가 겪은 기괴한 사건이 매우 흥미롭게 전개되었습니다. 그러나 전반부를 지나면서 이야기는 오로지 ‘Farewell, my love.'를 외치는 상황만을 위해 급히 달려간 느낌입니다. 덕분에 이야기는 제목에 걸맞게 마무리 되었지만, 흥미롭던 사건 전개도, 우주로 나가야만 했던 뱀파이어 아내의 사연도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죽어버렸습니다. 전체적인 틀 안에 짜임새 있는 전개가 놓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이는 이번 달 올라온 기 작가의 글 전체에 대한 아쉬움이기도 합니다.


동전을 던져라! - 안단테

A: 증오가 넘치고 있는 것 같은, 감수성이 메마른 문체로 사회성 짙은 스토리를 서술한 이 소설에서는 작가분의 전작에서 보였던 스토리의 허술함이 많이 보완되어 있어서 인상적으로 읽었습니다. 세뇌를 이용해 악인을 사회에 적합한 인간으로 만드는 시스템에 혐오감을 가진 사람이 세뇌를 이용해 시스템 자체를 공격한다는 구조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네요.
하지만 앞면과 뒷면으로 구성된 소설의 구성에서 앞과 뒤가 대칭을 이루지 못해 글 자체의 가독성만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한 가지의 사건을 동전의 앞면과 뒷면에 빗대어 서술하면서, 앞면은 허술하고 뒷면만 정교하다면 동전에 비유할 수 없겠지요. 무엇보다도 앞면에서 보이는 사건의 전체적인 윤곽이 흐릿하고 신문 기사로서의 단순한 사실 서술에도 미치지 못해, 뒷면을 보아야만 사건의 윤곽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극단적인 단점입니다. 작가분께서는 전작에서부터 다양한 구성을 시도하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만,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가장 효과적인 구성이 맞는지 생각해 보실 필요가 있겠습니다.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흉악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는 갈수록 사회성 있게 다루어지는 문제입니다. 흉악범죄자는 본성적으로 악하므로 극형 내지는 사회에서의 완전한 격리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관점에서부터 흉악범죄자는 어릴 때부터 특성이 드러나므로 일찍부터 격리를 해야 한다는 극단론, 성장 배경이나 사회적 환경이 범죄의 원인이므로 극형 외에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낙관론까지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지요. 그 중에 비관론에 가까운 관점을 가진 주인공 신부의 음모와 적대관계로 보였던 두 인물이 사실은 같은 관점을 가지고 공모한 공범자라는 플롯은 흥미롭습니다. 남은 것은 구성이겠죠. 반전이 반전으로서 기능하기 위해선 보다 효과적인 배치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때로는 가장 평범한 구성이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해 보시면 좋겠네요.


B: 하나의 사건을 두 가지 관점으로 서술하는 소설의 구조는 드물지 않은 편입니다. 보통 겉으로 드러난 사건과 사건의 본질을 대비시켜 어떤 주제를 전달하거나 개인의 시각에 따라 달라지는 사건을 보여줌으로서 의사소통의 왜곡을 보여줄 때 사용되지요. 이 글의 경우는 전자에 가까운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러기에는 드러난 사건과 사건의 본질이 그다지 극적으로 달라 보이지 않은 것이 매우 큰 흠인 것 같습니다. 그 점만 빼고 본다면 각 장의 구성은 조밀하게 잘된 편이며, 신부가 벌인 음모도 설득력 있게 진행되었습니다.


식인 소녀 - 박하

A: 혹자에게는 흥미를 일으킬 수 있을 제목이겠습니다만 조금 식상한 제목이기도 하네요. 20대의 여성을 ‘소녀’로 칭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소녀’라는 단어에서 떠오르는 건 많이 잡아도 10대의 중고생 정도일 테고, ‘소녀’라는 표현 자체도 현재 그렇게 널리 쓰이는 표현이라고 할 수는 없고, 일본의 소설이나 각종 미디어의 번역물에서 훨씬 흔하게 보이는 표현입니다.
강렬한 사건과 함께 식인과 섹스라는 두 ‘먹는’ 행위를 함께 섞으면서 고기를 먹지 않은 채식주의자의 고기가 가장 맛있다는 역설적 상황이 흥미롭게 배치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감정 묘사에 비해 ‘그녀’의 감정은 너무나 밋밋하네요. 먹고 싶어서 참을 수 없다고 흐느끼고 대신 자신을 ‘먹으’라고 말하는 그녀는 마치 게임 속 캐릭터처럼 객체화되어 2D속의 인물로 보일 정도입니다. 욕설이나 강렬한 대사는 생생한 데 비해서 두 사람의 애정 어린 대사들이 밋밋하고 비현실적이어서 더욱 그런 느낌이 듭니다.


B: 크리미널 마인드를 연상시킨다는 이야기를 심사평 자리에서 주고받았습니다. 그만큼 기괴하고 독특한 사건이 그려집니다. 채식주의자와 식인소녀를 사랑과 섹스라는 매개로 이어가는 은유에 담긴 심리적 통찰이 인상 깊었습니다. 채식과 식인이라는, 대극에 놓인 소재가 서로에 대한 갈망과 이어지면서 각자가 지닌 금기를 넘어서는 역설을 매력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나 글 전반을 장악하는 ‘갈망’이라는 정서에 비해 두 남녀의 감정교류가 너무 밋밋한 점이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데면데면하게 주고받는 대사들이 글 전반을 장악하는 정서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느낌입니다.


밤이 되면 그가 찾아 온다 - 하동완

A: 최근 세계적인 히트작이 된 뱀파이어 소재의 소설도 있지만 드라큘라란 소재는 상당히 매력적인 게 사실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구상해 보았을 소재죠. 그만큼 개개의 글이 개성이 없으면 독자들의 흥미를 잡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배나온 드라큘라는 개성적입니다만, 그가 보이는 행동이나 사건이 흥미롭다고는 말하기 힘드네요. 별난사내와 위험한 사내라는 지칭으로 인물들도 자칫하면 혼동되기 쉬워졌네요.
개로 변한 드라큘라만 살아남은 마지막 결말은 사족으로 보입니다. 3인칭 시점이긴 하지만 거의 1인칭 주인공 시점에 가까울 정도로 ‘두진’에게 밀착되어 있는 시점에서 돌연 결말 부분에서 시점이 이동되다보니 더욱 사건이 뜬금없어졌습니다.


B: 뱀파이어를 소재로 하고 있으나 그다지 독특한 사건이나 이야기가 보이지 않아서 아쉽습니다. 뱀파이어의 속성은 잘 드러내고 있지만, 흔한 이야기가 되지 않으려면 조금 더 창의적인 사건을 구성하면 어떨까 합니다.


드라이어드 - 장현

A: 동화 같은 잔잔한 글로 몽환적인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인물들의 대사가 부자연스럽고 영문 번역물처럼 어색하네요. ‘이런! 시인들이란 늘 여자와 아이들 편이라니까’ ‘정말 신사는 못되는군!’ 같은 대사에 느낌표도 지나치게 많아 대사를 말하는 인물들이 사실성을 갖지 못합니다. 현실적이지 않은 배경에서 ‘환상의 존재 드라이어드’를 이야기하다보니 오히려 환상성이 흐려집니다. 환상의 존재를 더욱 더 신비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배경이 되는 ‘현실’은 더더욱 사실적일 필요가 있겠죠.


B: 소재가 진부하고 구성이 치밀하지 못한 글입니다.


잠꼬대 - 김해진

A: 작가의 이상적 공간으로 보이는 ‘작가실’에서 글을 한 줄도 쓸 수 없는 역설적 상황이 흥미롭습니다. 등단 전의, 주변에서 압박을 받는 작가의 1인칭 시점이라 그런지 무척 생생하네요. 하지만 이런 소재의 글이 일반적인 독자들에게 어느 정도 동감을 가질 수 있을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주인공에게 긍정적인 서술을 할 경우에 자칫하면 자위적인 이야기에 그칠 수 있겠죠. 결말 부분에서 아마추어 작가들의 이상적 공간이 사실은 ‘화장실’ 이었다는 부분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네요. 짧은 분량 속에 압축된 이야기가 강렬한 것은 장점일 수 있겠습니다만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조금 더 강조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B: 주제, 사건 등을 아우르는 구성을 찾기 힘든 글입니다.


마녀 - 한켈

A: 바람둥이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자가 마녀가 되어 라이벌 여자들을 고양이로 만들어 버리고, 그 여자를 퇴치하기 위해서 남자들이 마녀 사냥을 떠납니다. 흥미로울 수 있는 이야기가 시간을 역순으로 배치하면서 오히려 사건의 전체 윤곽이 흐릿해졌습니다. 이 사건의 실체는 이거였다는 서술이 반전의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셨던 거라면 사건의 윤곽을 시작부터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는 구성을 취하시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제대로 윤곽이 잡히지 않은 사건이 다시 결말부에서 의외의 진실과 함께 나타나다보니 반전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이야기 전체가 흘러가버리는 느낌입니다.
이 글에서 중심은 ‘나’도 사랑했던 여자인 란첼이 ‘마녀’가 되어서 마녀사냥의 대상이 된 상황이겠습니다만, 란첼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근거나 심리적인 변화가 전혀 보이지 않아 상황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인물과 인간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B: 사건을 역시간 순으로 전개한 방식 외에는 특별한 점이 별로 눈에 띄지 않습니다.


소년과 소녀는 환상향을 꿈꾸는가? - 김진영

A: 무거운 주제를 즐겨 다루는 작가의 특성대로 이번에도 철학적인 소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환상향 내지 이상향이라는 이미지가 작가의 머리 속에서 머무르고 글 안에서 구체화되지 못해 입으로만 겉돌고 있는 게 아쉽네요.
전작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집은 곧 무너질 것처럼 벽에 뚫린 구멍으로 바람을 통과 시켜 바람소리를 냈고, 지붕에 뚫린 구멍으로 빗방울을 들어오게 해 공포를 조장하고 있었다’ 같은 번역 투의 어색한 긴 문장이 글 전체의 몰입을 방해합니다. 대사 안에는 ‘에휴~’ 같은 통신어투의 표현이 들어가 있는가 하면 ‘6~7년 전부터 그들이 사는 동네는 도시로의 변모를 꽤하고 있었다.’ 처럼 문장기호와 맞춤법 표기가 잘못된 문장들이 많아 글 전체가 가벼워 보인다는 점도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비슷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인물들의 성격이 사실적이지 못하고 모두 개성 없이 작가가 쓰려고 했던 말을 입으로만 내뱉고 있습니다. 특히 주인공 남매는 누가 누구인지 구별이 되지 않아서 둘이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그런 상태에서 맞이한 결말도 설득력이 떨어지네요. 소년 소녀가 환상향을 찾을 수 있는 방법으로 ‘시’를 택한 건 상징적이고 의미있는 결말일 수 있습니다만 복선도 이유도 없이 뜬금없이 나타난 대사 앞에서 과연 독자가 얼마나 설득력있게 결말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B: ‘환상향’이라는 주제에 비해 이야기가 너무 소박하게 구성된 느낌입니다. 소년과 소녀가 꿈꾸는 환상향은 인간이 도달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지점, 낙원과 닿아 있습니다. 그러한 환상향에 대한 갈망이 단순한 사건으로 매개되고 매듭지어져서 아쉽습니다.


책의 미로 - 먼지비

A: 대사 없이 추상적인 서술만으로 단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입니다. 보르헤스의 팬픽으로 보르헤스의 배경과 문체로 쓴 글이라는 것이 이 글의 한계입니다만, 감상적인 대사도 사건도 없이 머릿속에서 그려낸 환상 세계 자체가 강렬한 이미지를 가집니다. 그러나 작가분의 개성이 가장 효과적으로 발휘될 수 있는 이야기의 형태를 찾아내신 것 같아 무엇보다 기쁘군요. 환상소설에 정해진 틀은 없으므로 로맨틱한 연애 이야기나 영웅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투쟁의 기록이나 갈등의 양상 등이 들어가 있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하나의 소설로서 완성도를 가질 수 있습니다.
‘무한보다 1 많은 숫자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수학자가 없는 것처럼, 미로의 전역은 아직도 도달하지 못한 채로 남아있다’ 처럼 학문적 사실과는 맞지 않는 서술이 있긴 하지만 ‘미로에는 오로지 미로 만이 존재하고 무한에는 오로지 무한 만이 존재한다’ 같은 사변적 서술이 글의 환상성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도서관’으로 상징되는 세계, 그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 자체도 흥미로운 것들이 많지만 그 모든 걸 뭉뚱그리고 아우르는 것은 사변적인 서술이 지배하는 ‘도서관’이라는 세계가 주는 이미지입니다.  


B: 몹시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작가가 그려내는 추상적인 세계와 차분하게 써내려가는 치밀한 사변들은 무게가 있고 중심이 잡혀 있어서 환상을 마치 현실처럼 그려냅니다. 마치 독자가 실제로 존재하는 환상 속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던져주지요. 개인적으로는 몇 번이나 더 자세히 읽고 싶어졌던 글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러한 종류의 글은 독자들의 선호도가 극단적으로 갈리겠지요. 본인의 창작이 아닌 팬픽이라는 점이 몹시 아쉽긴 하지만, 기 작가가 지닌 감수성과 사변이 어떤 글과 잘 맞는지 보게 된 기분입니다. 언젠가는 본인이 창작한 수준 높은 글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83호 독자 우수단편 가작에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나는야 우주의 케밥 요리사 - 천공의도너츠

A: 생존과 인간성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개성적인 설정으로 유쾌하게 그려냈습니다. ‘노인은 청년에게 옮겨갈 수 있고 청년은 동물에게 옮겨갈 수 있지만 그 반대로는 못하는 거지. 신경 시냅스의 반응 속도 자체가 달라’ 라는 설정 하에서 젊은 육체를 손에 넣기 위해 젊은이들을 공짜 관광으로 초대하는 음모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강렬하네요. 젊은이들의 혼이 들어간 동물을 처리하는 수단으로서 ‘식당’을 이용하는 것은 전래의 여러 괴담들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식당을 경영하는 사람이 음모의 주모자가 아니라 생계를 위해 할 수 없이 가담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다만 ‘라리사 번즈’와 남자친구가 이런 음모의 첫 피해자가 아닌 것은 분명한 만큼, 그 전에도 노인의 휴양지에 어울리지 않는 젊은이들이 종종 눈에 띄곤 했다는 서술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이 동조하지 않더라도 이 행성이 관광지로서의 명성을 가지고 있다는 서술도 필요하겠지요. 글의 중반부에 ‘청춘남녀’ 들이 스키르니르 행성에 찾아오곤 한다는 서술은 있습니다만, 라리사 번즈의 등장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건 이런 젊은 여성이 이 칙칙한 노인휴양지에 왜 찾아오는가 하는 의아함이라는 게 신경이 쓰이네요. 공짜 관광이라고 하더라도 스키르니르 행성이 관광지로서의 매력이 있는 곳이 아니었다면 젊은이들이 노인휴양지에 찾아올 리 만무할 텐데요.


B: 한 인간의 정신(인격)을 다른 인간 혹은 동물에 집어넣는 설정은 SF에서 자주 사용되지요. 이 글은 자주 사용되는 설정도 매우 독특하고 창의적으로 재사용할 수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단지 정신(인격)을 이식하기 위해 중간 매체가 필요하다는 설정 하나가 추가되었을 뿐인데도 매우 놀라운 상황이 초래됩니다. 유쾌함과 뚜렷이 대비되는 선득한 결말은 인간의 잔혹함에 대해 생각해보는 여지를 던집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악당들이 이슬람 문화권으로 설정된 점이 민감한 문제가 될 여지가 있음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실제 작가가 일부러 그러한 문화권을 선택했을 수도 있지만, 아니라면 설정 시에 한 번쯤 고민은 해볼 부분이겠지요.


83호 독자 우수단편 가작에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스타 글라디에이터 - 룽게

A: 모두가 상류층인 집안에서 유일하게 3류 대학을 나와 빈둥거리는 주인공인 ‘나’와 그런 주인공을 유달리 예뻐하는 할아버지의 설정은 특별할 것이 없어 보입니다. 사회적 낙오자로 보이는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환상소설은 셀 수 없이 많아 식상할 정도니까요. 하지만 이 글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불같은 성격으로 호통을 치는 할아버지의 의외의 인생 역정을 서술하면서 예상  외의 흥미로운 전개로 치닫습니다.
해방 직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현대사를 살아온 할아버지의 인생 역정과 우주 투사로서의 삶은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만, 실상 그 시절을 살아오신 어르신들의 삶 자체가 우주 투사만큼이나 치열하셨겠지요. 그러므로 이 글은 환상 소설이면서도 ‘자유인으로 살기 위해’ 투쟁하는 할아버지의 인생 역정이 ‘인간답게 살아 보려고’ 질곡의 역사 속을 살아온 이 시대의 할아버지들의 인생 역정과 오버랩 되어 더욱 가치 있는 글이 되었습니다.
낙동강 방어전, 거제도 반공 포로 석방 사건을 비롯하여 시대적인 사건들이 단순히 재료로만 다루어지지 않고 작가가 당시의 시대를 이해하고자 노력한 것 같은 현실성이 돋보입니다. ‘멍게 비빔밥’에 얽힌 할아버지의 에피소드나 미군부대 안에서의 ‘1:1 데이트 사업’, ‘반공청년단에 살해당한 어머니와 누이동생’ 같은 소재들이 글에 사실성과 무게를 더합니다.
옥의 티라면 글 전체에 스며든 장중한 인생 역정의 무게감과는 균형이 맞지 않는 사촌간의 연애 이야기네요. 연주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사촌이 실은 주인공을 보고 첼로를 연주하기 시작했다거나 주인공에게 특별한 감정을 보이는 듯이 행동하고 있다거나 하는 부분은, 낙오자처럼 보이는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특별함을 할아버지 외에도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는 뜻으로 쓰셨을까요. 사촌간의 사랑이 주인공이 앞으로 겪어야 할 고난으로 잡으신 건 아니었으면 하는 게 독자로서의 바람입니다.
주인공의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서 기대할 만한 무언가의 소재가 마련되었다면 좋았겠다는 미련이 남습니다. 몇 달간 놀랄 정도로 글 내적인 변화를 만들어 오신 작가분이니만큼 다음 작품에서 더 좋은 글을 만날 수 있으리라 믿고 있겠습니다.


B: 구성이 치밀하고 몹시 재미있는 글이었습니다. 쓸모없는 노인 같은 할아버지가 실제로는 스타 글라디에이터로서의 삶을 살아온 치열한 전사였음이 잔잔한 감동을 던집니다. 실제 할아버지는 우리네 조부모들이 그랬듯이 험난했던 한국의 근대를 살아온 투사이기도 하지요. 그러한 은유가 묵직하게 마음을 눌러옵니다. 가장 쓸모없어 보이는 인간이나 물건 역시 매우 소중하고도 유일한 개체라는 메시지는 손자로 이어집니다. 손자가 단지 연애에 몰입한 대신 삶 속에서의 작고 사소한 투쟁을 벌이는 인물이었다면 감동이 배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언뜻 불필요해 보이는 연애감정이 끼어들면서 스타 글라디에이터인 할아버지가 보여주는 뜨거운 정신이 단절되어 버리는 느낌이 안타까웠습니다. 연애감정이 돌출되는 순간 분위기가 전환되어서 다소 생뚱맞은 느낌도 들지요. 전작에서도 같은 문제가 지적되었던 것 같습니다. 구성을 할 때, 욕망과 생략의 미덕 사이에서 한 번쯤 고민하시길 권합니다. 계속 발전하는 모습이 반가운 작가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발전하시길 바랍니다.


83호 독자 우수단편 우수작에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거울 독자우수 단편에 선정되신 분들께는 책을 한 권씩 보내 드립니다. Itpimento @ paran.com (첫글자는 소문자 L입니다)으로 우편물 수령할 주소, 성함, 전화번호(택배 발송시 필요)를 보내 주세요.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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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족한 글에 좋은 비평,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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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단테 10.05.01 00:24 댓글 수정 삭제
    언제나 세심한 감평 감사드립니다.
    다음에는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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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켈 10.05.01 10:42 댓글 수정 삭제
    잭이 기쁘게 달리는 모습을 상상하고 편하게 쓰게 된 글이었어요. 역순이라든지 나머지 소소한 것들은 미처 신경쓰지 못했네요. 평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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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minique 10.05.01 13:17 댓글 수정 삭제
    4월 말에 쓰여진 글들은 다음 달에 평가되는 건가요?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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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지비 10.05.02 17:35 댓글 수정 삭제
    비평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더 정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가작으로 선정되어도 책을 보내주시는건지-ㅅ-;
  • No Profile
    mirror 10.05.03 04:31 댓글 수정 삭제
    우수작과 가작 받은 분들께 모두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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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작 안내 거울 독자우수단편 선정1 2015.06.01
선정작 안내 선정작이 없습니다. 2015.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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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2 2014.07.01
선정작 안내 선정작이 없습니다. 2014.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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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7 201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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