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전반적으로 긴 글이 많이 눈에 띄는 달이었습니다. 분량 미달의 글을 심사 대상에서 제외한 반동으로 글의 분량이 길어진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보았습니다만, 단편의 묘미는 압축된 이야기 안에 주제의식을 녹여내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다소 늘어지는 글이 많이 보여 아쉬웠습니다.
이번 달의 심사 제외 작품은 아래와 같습니다. 원고지 70매 이상의 글을 대상으로 하였지만 분량의 차이가 많지 않은 경우에는 대상에 포함하였습니다. 이번 달에도 단락 구분의 삽입 여백을 삭제하였을 때 아래한글 프로그램의 기본 여백으로 5페이지 이하의 글을 분량 미달로 심사에서 제외하였습니다.
1) 분량 미달  
        광선검의 도공 : 들개
        발사통제관 : 역습의 김달삼
        그림자 숲 : 고담
2) 그 외
        그녀는 발길 닿지 않는 곳에 살았다 : Lefthander - 일부만 수록되어 있어 심사의 범주에 넣지 않았습니다. 전체 글을 게시판에 올려 주신다면 다음 기회에 심사 대상으로 삼겠습니다.
        마법의 시대 : 히로웽 - 차용 부분이 정확하게 어디까지인지 명확하지 않아 심사에서 일단 제외하였습니다. 정확한 차용 부분을 알려 주시면 다음 달에 심사하도록 하겠습니다.

        




보물찾기 - Vino

A: 전반적으로 글의 감수성이 청소년기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비교적 작은 사건을 소재로 하여 감정의 흐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특성을 보입니다. 청소년기의 감성을 생각하면 일상생활의 작은 사건이나 혹은 작은 발상이 상상력을 바탕으로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그 시기의 특성이라고도 하겠습니다. 다만, 소재의 선정에 있어서 발상을 달리 해 보시면 어떨지요. 그 시기의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독특한 시선을 살려, 집요하게 파고드는 시점이 아쉽습니다. 자위행위까지도 추상적인 용어로 겹겹이 포장되어 불명확하게 보이는 부분은, 작가가 어쩌면 자신의 감정에 직면하는 것을 기피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결말 부분에 돌연 ‘씻고 왔다’며 장면을 전환하고 시를 연상시키는 구절이 나열됩니다만 오히려 구성이 방만해지고 흐트러지는 결과가 된 것이 아닐지요. 탄탄한 문장력과 구성력을 바탕으로 자신만이 써 낼 수 있는 글을 쓰시기를 기대합니다.


B: 이번 달에도 작가가 지속적으로 글 속에서 풀어나가는 자아와 외부세계와의 균형이라는 주제를 담았습니다. 글 속에서 외부세계는 짝사랑의 대상인 ‘그녀’로 상징됩니다. 외부세계와의 단절, 고립감, 철저한 고독은 ‘사람은 어떤 행동에 대한 응답을 바라기 때문이라는’ 주인공의 대사에서 드러납니다. 그 응답은 짝사랑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짝사랑처럼 견고한 벽처럼 느껴지는 외부세계를 향한 갈망이기도 합니다. 주제가 ‘자아’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글은 계속 자신의 내부를 파고들며 자신의 사변과 정서를 풀어나갑니다. 전달력을 잘 갖춘 글입니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독자와 ‘소통’할 것인지 지속적으로 고민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2024; Prestissimo - Vino

A: 전작에서는 청소년기의 동경이라는 사건이 소재가 되었습니다만 이번에는 조금 더 추상적인 사건으로 돌아섰습니다. 작가가 쓰고자하는 소재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교육 혹은 사회현실에 대해서 비판하고자 하는 생각은 잘 드러납니다만, 그를 표현하는 소재가 새롭기는 하지만 다소 늘어집니다. 비슷한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서 주제의식이 좀 더 깊이 있게 녹아드는 것아 아니라, 같은 주제를 반복해서 말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추상적인 주제를 상징적인 소재로 녹이면서, 독자와 작가의 소통 문제까지도 함께 다루고 있으니 주제가 가볍지는 않습니다만, 치밀하고 깊이 있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느낌이 강합니다. 덜어 낼 곳은 없는지, 더 파고들어 치밀하게 추구해야 할 부분은 없는지, 글의 구성 전체를 되짚어 보시면 어떨까요.


B: 자아와 외부세계와의 균형이라는 주제를 다시 변주한 글입니다. 그 고민이 이번에는 음표에 담겨 추상적으로 그려집니다. 외부세계와 자아가 겪는 갈등, 자아가 외부세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들이 음표의 빠르기로 표현되지요. 외부세계와 균형을 이루고 싶은 욕망은 ‘화음’, 곧 조화로 표현이 됩니다. 다른 음표들과 춤을 추어야 한다, 빠름만을 추구하는 세상 속의 음표 등은 외부세계 속에서 느끼는 자아의 고립감, 이질감 등을 표현합니다. 앞서 평에서도 언급하였지만, 기 작가의 주제는 언제나 ‘자아’에 집중되기 때문에 자기만의 세계에서 나와 독자들과 어떻게 ‘소통’을 이루고, 공감을 이끌어 낼지 고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마 자신 안으로의 여행이 끝나면 자신 밖으로의 여행이 시작되겠지요. 언제 시작할지는 결정하는 것은 작가의 몫입니다.



인간 성격 4.0 - 큰스님

A: 작가분의 입심이 돋보입니다. 독자가 글을 읽어가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사라진 세계에 인간의 성격을 가진 로봇들과 그렇지 않은 로봇들이 있는 사회라는 설정이 독특하고 매력적입니다. 특히 단순한 서술 문장에서도 맛깔스럽게 비유와 은유를 섞어내는 솜씨가 탁월합니다.
다만, 단편소설의 묘미라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로봇에 인간의 성격이 실리게 된 배경은 분명 읽어 가는 동안 즐겁습니다만, 이 단편 소설에서 그 정도의 비중이 있어야 하는 부분이었을까요.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로, 글 전체가 장편 소설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어서 압축성이 떨어지고, 글을 다 읽고 난 뒤에 글의 주제가 무엇이었는지 명확하지 못합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살리기 위해서, 장점인 입담을 적절하게 자제하시는 게 필요할 듯합니다. 자신이 부각시키고자 하는 부분을 부각시킬 때 더욱 매력적으로 완성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장편의 하나의 에피소드를 떼어 낸다고 해도 단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단일한 플롯, 압축된 주제의식, 단편소설이 장편보다 쓰기 어려운 것은 바로 그 점 때문이겠지요.


B: 인간이 모두 사라진 뒤에 로봇만이 남은 세상이라는 설정이 신선하고 매력적입니다. 로봇들만이 남은 세상에서만 벌어질 수 있는 로봇들의 일상이 재미있었습니다. 기계라는 물리적인 특징으로 인해 인간과는 사뭇 다른 삶을 사는 풍경 때문이지요. 그러나 물리적인 특징을 제외한 정서와 행동에서는 인간과 다른 점을 찾기가 힘듭니다. 로봇의 물리적인 특징이 아니라 일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이런 점이 약점이 된 것 같습니다. 로봇만이 남은 세상이라는 설정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할지 보다 깊은 고민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또한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지 분명한 의도 없이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사건은 있지만, 구성이 조밀하지 못하고 즉흥적인 편입니다.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 큰스님

A: 작가의 예전작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다른 글과는 상당히 문장의 특성이나 흐름이 다른 글이었습니다. 지구의 종말의 순간은 SF소설에서 꽤 많이 다루어진 주제입니다. 종말의 순간에 혼돈에 빠지는 세상을 그리는 소설만큼이나, 종말의 순간을 담담히 맞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 글은 두 상황을 동시에 그리면서도 두 상황이 너무나 괴리를 드러내고 있어서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들어 버립니다. 바로 옆에서 사람이 죽는 것을 보고도 애도를 표하지 않는 박사의 모습 (물론 종말의 순간에는 모두 다 죽을 테니까라는 생각에서 그렇게 했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만) 은 다소 의아합니다.
마지막 순간에 돌연 등장하는 ‘탐사대’의 존재는 작가가 무슨 생각으로 등장시켰는지 알 수 없습니다. 결말의 순간에 갑자기 등장한 ‘소용돌이의 눈 속의 까만 점’도 의미를 명확하게 풀어주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 독자가 추측만 하게 만듭니다. 좀 더 치밀한 서술과 구성을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B: 이미 세상의 종말을 예견한 두 과학자이 덤덤하게 지구 종말을 맞습니다. 긴박한 상황과 허둥대는 사람들의 모습과 대비되면서 독자에게 ‘존재의 종말’을 차분하게 관찰하는 시선을 제공하는 글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표현하고자 의도했는지 불분명하고 산만한 점이 아쉽습니다. 세상의 종말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호하며, 결말에는 느닷없이 소용돌이의 눈에 까만 점이 나타납니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는 김 박사의 대사로 미루어볼 때, 그것이 무수한 눈을 형상화 한 것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생뚱맞은 느낌입니다. 구성을 치밀하게 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직구의 예감 - yzombie

A: 만화적인 구성으로 전개가 계속 이어집니다. 작가의 입심으로 글을 읽어가는 맛이 있고, 곳곳에 익숙한 패러디도 등장해서 즐겁습니다. 장편으로 읽을 수 있으면 즐겁겠습니다. TV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라이트 노벨의 구성을 의도하셨는지도 모르겠군요.
다만,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 너무나 많은 사건과 서술이 등장하는 바람에 중심이 흐트러지고 말았습니다. 전작 '모럴 해저드'에서 보여주었던 진지한 성찰의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B: 문체가 탄력적이고 흡입력이 있으며, 외계인과 벌이는 야구 시합, 사하라식 야구 등 매력적인 설정과 소재를 종합선물세트처럼 잔뜩 담는 글입니다. 그러나 작가가 소재들을 풀어나갈 준비를 충분하게 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삶에 대한 작가의 고민은 직구와 변화구에 담깁니다. 지루하고 편한 삶을 끝내고 내일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는 일, 곧 변화구를 던지는 일에 대한 고민입니다. 이 고민은 생뚱맞게 전혀 다른 이야기로 진행되는 연애와 연결되어 진행됩니다. 완성도를 갖추며 흘러갈 것 같은 글은 작가가 지닌 고민의 무게를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작가는 계속 연애 이야기로 도피합니다. 불쑥, 불쑥 보풀처럼 일어나는 작가의 무거운 고민과 함께 끼어드는 연애 이야기가 가볍고 발랄한 중심 이야기에 잡음처럼 끼어들어서 산만해졌고, 결말 역시 성급하여 허전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전작인 ‘모럴 헤저드’에서 보여준 구성을 볼 때, 작가의 역량부족이라기 보다는 컨디션 난조가 아닐까 합니다. 연애부분을 아예 들어내고 외계인과의 야구에 집중하여 본인의 고민을 풀어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유령 생태 보고서 - 누혜

A: “진짜는 없어, 무엇이 그럴듯하냐가 문제지. 넌 너를 증명하는 데 실패한 거야.” 묵직한 주제를 가지고 여고 교실을 배경으로 사실적으로 그려낸 솜씨가 놀랍습니다. 학교를 부정적으로 그리는 소설은 많습니다만,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 느끼는지는 제대로 살아나지 않고 단지 모두가 싫어하는 곳이니까 싫다는 식으로 그려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떤 사회적인 사실을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그려내려면 그것이 실제로 부정적인가 긍정적인가를 다른 사람에게 동의를 받는 방법도 있겠습니다만,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의 시선에 밀착하는 방법도 있겠지요. 그런 점에서 보면 이 글은, 학교를 지독하게 싫어하는 여고생의 시선에 밀착해서 생생하게 학교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살려낸 점에서 탁월하다고 하겠습니다. 작가분이 여고생이거나 혹은 비교적 그 나이에 가까운 세대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여고생 특유의 심리를 묘사한 솜씨가 놀랍습니다. 그 심리에 동조하지 못하는 독자들이 이 글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다른 문제입니다만.
왕따 현상을 그려내는 많은 글이 대부분 왕따의 대상이 되는 피해자의 시선에 맞춰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이 글은 왕따의 가해자 학생의 시선을 택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특이합니다. 후반부에 그 현상이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부분의 처리도 깔끔합니다. 다만 이 역시 여고생의 특성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지나치게 현학적인 단어들이 많이 나오면서 글 전체가 다소 산만해진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좀 더 매끄럽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시면 좋겠네요.


B: 소문을 매개로 하여 교실에서 벌어지는 왕따 현상 보고서입니다. 입시 압박, 스트레스에 찌들린 채 타인에게 공격성을 드러내는 여학생들, 산자의 절망을 상징하는 늪의 존재 등이 잘 어우러져서 극단적인 혐오감이 구더기처럼 들끓는 교실을 의도적으로 잘 표현하였습니다. 어른의 상식 속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실제처럼 떠도는 소문, 친구와 학주의 섹스와 임신이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비현실성에 담은 선생에 대한 혐오감, 남들이 모르는 소설을 읽었다고 거들먹거리는 것이 지적 수준의 상징이 되는 지적 허영이 만발하는 여고생들,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 등 희망의 불씨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시선은 곧 교실 안에 담긴 쓰레기 같은 친구들을 보는 주인공의 시선이기도 합니다. 확인되지 않은 진실로 한 인간을 파괴하는 폭력의 배경이 되는 교실에 대한 혐오가 생생하게 잘 전달되는 글입니다. 독자의 대상이 청소년이라면 많은 공감과 흡입력을 자아낼 글이나, 지나치게 비약적이고 추상이며 현학적 단어를 남용하여 글 전체가 어지러워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코스모스 이발소 - 연마제와 영웅의 이야기 ; wholic

A: 독특한 소재를 재미있는 사건으로 녹여낸 솜씨가 좋습니다. 몸이 스톤 골렘이 된, 사회에서 이제 더 이상은 필요하지 않은 존재가 되어 버린 옛 영웅의 이야기를, 현대의 흔한 이발소 이름을 연상시키는 ‘코스모스 이발소’라는 공간에서 풀어낸 방식도 즐겁습니다.
다만 ‘안되’ ‘재밋군’ 등의 오타가 눈에 띄는 것이나 전체적인 구성에서 글의 퇴고가 부족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게 됩니다. 글의 제목에서 등장하는 ‘연마제’가 글의 결말에서는 별로 중요하게 다루어 지지 않는 점 등이 걸립니다. 글의 서두에서는 “자 들어보자. 연마제와 영웅, 그리고 이발사의 이야기를.”이라고 시작합니다만, 글의 결말에서는 코스모스 이발소의 직원들은 별을 떠날 계획을 세웁니다. 마지막에서 다시 한 번 서두의 이야기를 가지고 온다면 전체적인 구성의 면에서 완결성이 더 살아났으리라고 생각됩니다.


B: 왜 이발소에 어울리지 않는 연마제가 놓이게 되었는가. 그 사연을 재미있게 풀어나간 글입니다. 이발소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렘 씨의 방문과 천연덕스럽게 최선을 다해 렘 씨에게 봉사하는 이발사의 이야기가 재미있었습니다. 소재 선택이 좋았고, 흡인력도 갖춘 글이나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결정하고 주제를 부여하는 힘이 약한 점이 아쉽습니다. 이발소에서 벌어지는 일, 즉 ‘영웅의 이야기’는 맛깔스럽게 진행이 되었지만 이발소에 놓인 연마제와 충분하게 연결을 짓지 않아, 연마제가 놓인 사연이라는 주제가 명쾌하게 드러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는 영웅인 렘 씨의 개성이 강하고 글의 비중을 많이 차지하여서 상대적으로 연마제라는 소재가 묻혀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인터폴, 사제, 마피아 - 니그라토

A: 여성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에 무척 놀랐습니다. 작가가 계속해서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서 숙고하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주제 자체는 작가의 전작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았습니다만, 이야기 전체에서 사건성도 생겨났고 글의 흐름도 상당히 매끄러워졌습니다.
기독교, 마피아, 1950년대의 매카시즘 등 여러 가지 소재를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위해 조사하고 사용하는 자세가 돋보입니다. 다만 역사적인 사건을 현대와 전혀 다른 해석으로 받아들여지는 미래의 상황을 타당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다른 추가 설정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B: 불필요한 장면과 설정의 절제, 자연스러운 문장 등 전작들에 비해 꾸준히 보완해지는 작업들이 인상 깊었습니다. 작가가 집착하는 윤리적 문제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매듭이 풀리지 못한 채 변주됩니다. 이번에는 소재가 ‘윤리적 세뇌’입니다. 종교, 윤리에 대해 오가는 대화와 마피아를 강제로 세뇌시켜 건전한 이공계 고등학생으로 변환시킨다는 발상 등이 흥미롭습니다. 죄, 종교의 본질적 교리에 따른 구원의 견해 차이, 성선-성악 사이에서 여전히 갈등하는 작가의 고민 등 다양한 지적 사변으로 채워진 글입니다. 그러나 갈등의 해소는 없고, 갈등은 여전히 반복되는 갈등의 불씨를 안고 있습니다. 작가 내부의 갈등이 해소되고 그 결론이 명확해지지 않는 이상, 계속될 수밖에 없는 혼란과 모순입니다. 또한, 카톨릭 신부인 야고보와 개신교 신자인 필립이 벌이는 설전 속에 개신교와 카톨릭의 가장 큰 차이인 구원관을 혼동했을 가능성이 보입니다. 작가의 의도일 수도 있을 듯합니다만… …



일 - 문형

A: 문장이 탄탄하고 사건의 흐름도 매끄럽습니다. 구성 전체를 보았을 때 군더더기도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동물’이 인간을 동경하고 자신의 존재 자체를 혐오하게 된다는 소재는 다소 진부하군요. 인간원숭이라는 존재가 과연 한 시대에서 용납 될 수 있는가 하는 생명윤리적인 문제도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B: 구성이나 전개, 문장 등 기본기가 탄탄한 글입니다. 소재가 새롭지 않고, 주제와 내용이 구태의연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유지된 힘이 돋보입니다.



책도둑 - 냠냠

A: 글 전체적으로 문장이 안정되어 있고 흐름도 좋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군더더기가 많아 압축이 필요할 듯 합니다. 긴장이 고조되고 절정에 이르러 해소되기까지의 과정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기->승의 부분이 방만한 것이 아쉽습니다. 전체적으로 도둑이 결국 함정에 빠져 잡힌다는 이야기인데, 무엇 때문에 이 소재를 선택하고 쓰게 되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B: 책도둑인 주인공이 우연히 서점에서 같은 책도둑을 발견한 뒤에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어떻게 행동했든 간에 책 도둑으로 몰렸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라는 마지막 구절로 보아서는 결국 결론이 정해져 있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 의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체불명인 남자의 등장, 긴장되는 주인공의 심리와 행동 등이 다음 사건을 예고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독자의 기대를 배반합니다. 무엇인가 벌어질 듯 하다가 맥없이 끝나버린 결말이 허탈해서 많이 아쉽습니다. 왜 하필 책 도둑인가, 남자는 주인공에게 어떤 존재이며 어떤 역할을 하는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나 이야기는 무엇인가, 이런 점들을 충분히 고민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기던 용 - 호워프

A: 시작 부분부터 전개와 결말을 예상하게 되는 글이었습니다. 글이 중반을 넘어가면서 예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독자가 예측 가능한 흐름을 따라간다는 점이 아쉽군요. 글에서 다루어지는 소재들이 대개 다른 글에서 충분히 다루어진 소재이고 주제 자체도 새롭지 않습니다. 철학적 주제를 단절적인 사변적인 서술로 다루다 보니 전체적으로 글에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도 고려해 보아야 할 부분입니다.  
그러나 주인공의 심리에 밀착해 서술한 시점과 갈등의 양상, 들리는 목소리와 느껴지는 목소리 사이의 사이에서 주인공이 괴로워하는 심리적 흐름은 돋보입니다. 작가의 필력이 느껴지는 글이니 소재와 주제의 선택에 조금 더 고민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B: 장애를 극복하고 초월하는 것이 ‘비상’으로 그려지는 일은 흔합니다. 용, 가상현실 등의 이색적인 소재로 전형성을 극복해보고자 한 의도는 읽히나, 무능력한 현실이 장애로 상징되고 장애가 없는 상태(혹은 꿈)으로 날아오르는 과정과 결말은 신선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장애를 극복하고 날아올라 새로운 존재로 탈바꿈하고자 하는 욕망이 해결되는 과정은 어떤 형식이나 이야기가 됐든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합니다. 이것이 주인공의 정서를 생명력을 갖춰 전달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작가의 역량과 만나면서 흡입력 있는 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쉬운 소재를 선택한 점은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소녀시대에게 - 우상희

A: 펀드 이론에 대해서 박식하신 분인 듯합니다. 전공자이거나 관련 업계에 종사하시는 분일지도 모르겠군요. 더 말씀드리자면, 펀드 이론에 비해 관련 직업군의 특성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다소 들었습니다. 이익을 가장 중시하는 직업군이 아이돌 여 그룹의 일거수일투족에 영향을 받는다는 설정은 재미있습니다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서 긍정만 하기는 힘들군요.
글 전반적으로 주인공은 아이돌을 이용하는 발상만으로 승승장구하여 결국은 또 다른 아이돌 그룹을 이용하여 다시 똑같은 시도를 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습니다만, 이런 펀드가 성공했을 때 다른 동업자들이 비슷한 발상을 하지 않을까 의문이 남는군요. 즐겁게 읽었습니다만, 눈에 띄는 갈등이 없이 너무 쉽게 주인공이 생각하는 대로 흘러가는 흐름이 비현실적인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B: 팬픽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글에서는 우선적으로 금융적인 지식을 활용한 점이 신선하고 돋보입니다. 소녀시대를 좋아하는 많은 이들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글이며, 소녀시대가 전 금융시장의 대명사로 통하게 되는 과정 역시 아기자기하고 즐겁게 그려졌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비현실성 때문에 의문을 많이 남기는 글이기도 합니다. 현실을 기반으로 한 상상에는 제약이 많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기자들의 인터뷰 실수, 투자자들의 허술함, 승승장구하는 주인공 등과 갈등조차 없이 모든 것이 쉽게 진행되는 과정은 현실적이라기보다 소녀시대를 위한 동화적인 장치로 보입니다. 물론, 냉정한 투자의 세계에 동화적 가면을 씌우는 일이 나쁠 것은 없을 테고, 독자들은 즐겁게 읽으면 될 일입니다.



손은 낚아챈다 - 메이

A: 동물 실험의 피실험자와 실험자의 심리를 오가면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할을 하다가, 마지막에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역전되는 상황을 만드는 소설입니다. 피해자의 심리가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섬뜩할 정도로 생생합니다만, 실험 상황 자체에 다소 허점이 느껴지는 점이 아쉽습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역전되는 부분은, 기절한 사이에 ‘나’의 손가락에 가죽 밴드가 끼워져 팔목 전체가 전선으로 칭칭 감겨 버린 이유가 드러나지 않아 의문이 남습니다. 물론 상황 역전을 위해서는 필연적이었습니다만, 인과관계가 불확실하고 여러 가지 추측은 가능하지만 거기에 대해서 반론도 가능해서 의문점으로 남게 됩니다. 사건의 긴장감은 유지하면서도 상황을 좀 더 현실적으로 가져오기 위해서 여러 가지 고려를 해 보시면 어떨지요.
생생한 심리적 묘사와 압축적 대사가 돋보입니다. 마지막의 한 줄 “지금 그는 얼마만큼 배가 고플까?” 라는 문장은, 여운과 완결성이라는 단편의 두 가지 목적을 충분히 소화해 내는 멋진 결말이었습니다.


B: 스키너의 상자가 떠오르는 글이었습니다. 잔혹한 상황을 놓고, 반전을 노려 허를 찌르는 기법이 사용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전반부에서 자매의 참혹한 상황을 그려냈지만, 원숭이의 의인화가 동물의 입장이 아니라 동물을 바라보는 인간의 억지스러운 동정 이상으로 느껴지지 않는 점은 아쉽습니다. 소재나 반전이 그리 신선하진 않았지만, 구성 자체에 많은 고민을 하였고 결말부분에서 두 연구원이 나누는 대화 등이 글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지옥의 역사, 연옥의 역사, 천국의 역사 - 파옥초

A: 시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는 글로 보입니다. 전체적으로 사건의 흐름은 적고 감상적인 화자의 심리가 전면적으로 드러나, 독자의 호오가 갈릴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형식적인 실험과 함께 내용과 소재의 고민도 함께 하신다면 더욱 효과적이리라 생각합니다.


B: 형식상 세 글을 단편 소설로 보아야 하는지 선뜻 판단을 내리기 힘듭니다. 외국 작가들이 시도한 경우는 제법 보았습니다만, 새로운 형식에 대한 고민이 보이는 글이었습니다. 계속적으로 고민하시면서 자신의 스타일을 확립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녀의 이름은 라돈 - Mothman

A: 여신에 대해서 다루시던 작가가 이번에는 신화 속 괴수를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파충류 외계인과 사랑에 빠지게 된 친구를 회고하는 심리가, 실연당한 남성의 심리를 연상시키게 할 만큼 생생했습니다.
그런데, 불가능한 일은 없을 것 같던 제라드 중령이 어째서 친구를 구할 수 없었는지 아쉽군요. 다음 작품은 제라드 중령이 구출해 온 친구의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B: 제라드 중령이 너무 적게 등장해서 아쉽습니다!



하얀 물고기 - irlei

A: 동화적이면서도 정통 환타지에 가까운 배경에서 귀여운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매력적인 글입니다. 사건 자체의 전개보다는 우화나 삽화같은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짧은 글에서 세계가 압축적이면서도 잘 형상화 되어서, 이 소설이 실제 존재하는 세계의 한 에피소드같은 느낌도 듭니다. 장편의 일부 혹은 연작 중의 하나 같은 이미지가 들면서도 이 글 자체만으로도 완결성을 이루고 있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많은 서술이나 묘사가 등장하지 않으면서도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주인공 콜린은 물론이고 콜린의 누나 엔젤라워드나 에드위나, 부모님, 마녀 등 모든 캐릭터가 또 무슨 사건을 일으켰을지 궁금해지는 이야기였습니다.
주제가 새롭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만, 생생한 캐릭터와 독특한 형상화에 힘입어 새롭고 신선한 느낌이 되었습니다. 꼬마 콜린 가족의 다른 이야기를 읽고 싶어집니다. 잘 읽었습니다.


B: 환상소설의 특징인 환상성을 잘 살린 글입니다. 마법의 언어가 형상화 되어 물속을 헤엄치는 하얀 물고기의 가장 부드러운 살을 먹고 싶은 소년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아주 맛깔스럽고 동화적으로 잘 그려졌습니다. 소년의 여정 가운데 놓이는 가족들의 이야기도 매력적이었고, 사악한 마음을 품은 할머니와의 대화도 긴장과 긴장 해소를 독자에게 반복적으로 제공하며 흡입력 있게 진행되었습니다. 가장 소중한 것은 멀리 있지 않다는 교훈은 ‘파랑새’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겠지만, 궁극적인 욕망을 이루는 바람직한 방식에 대한 이야기는 새롭고도 읽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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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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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상희 09.09.26 09:35 댓글 수정 삭제
    감사합니다. ^^ 생각보다 호평이라 생각되어 안심입니다. 그러에도 제가 아직 실력이 많이 모자라나 봅니다. 사실 이글은 실제로 말도안되는 작은오해나 사실로 인하여 투자주체들이 그야말로 어항속의 물고기 처럼 우르르 몰려가는 금융시장의 비효율성에 대해 써보고 싶었고. 그것을 금융시장의 최고 전문가 그룹인 헤지펀드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여자 아이돌 그룹과 대비하여 보여주고 싶었는데요. 극히 비현실적인 이야기 지만 ㅎㅎ 완전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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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no 09.09.26 18:24 댓글 수정 삭제
    평 감사합니다.
    평해주신 것처럼 지나가다 떠오르는 작은 소재를 사용해서 나름 소설로 부풀리고 조각해낸 것이라, 자신의 문제에 너무 집착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외부와의 대화를 억제하고 단절하는 것은 제 성격부터 소설을 통해 하고싶은 것까지 모두 검토해보지 않으면 이대로 머무를 것 같네요.... 솔직히 지식으로밖엔 모르고 있는데,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네요.
    ps. 제가 모르게 반영한 것까지 알려주셨네요. OTL..어쩌면 자신을 몰라서 외부와 대화하려 하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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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스님 09.09.26 21:20 댓글 수정 삭제
    입심이라뇨 과찬이십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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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형 09.09.27 15:31 댓글 수정 삭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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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 09.09.29 15:49 댓글 수정 삭제
    평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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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뫼비우스 09.10.01 09:22 댓글 수정 삭제
    평해주시는분들이 두분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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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로웽 09.10.02 01:12 댓글 수정 삭제
    차용 부분은 그 한 줄입니다. 표시를 문장 앞에다 하는 바람에 혼란을 야기했네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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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개 09.10.02 22:27 댓글 수정 삭제
    뫼비우스/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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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rlei 09.10.05 14:29 댓글 수정 삭제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부끄럽고 기쁘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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