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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 독자단편 심사단으로 새롭게 시작하면서, 기존과는 조금 다른 방식을 사용하려고 합니다. 단편 심사단은 A와 B라는 이니셜을 사용하여 각자의 평에 대해서 말하고자 합니다. A와 B는 특정 인물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매달 무작위로 둘 중의 하나의 이니셜을 사용할 생각입니다. 쓴소리와 단소리의 대명사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Homo Satanicus를 찾아서 ――― Kristal

A: 흡혈귀가 소재입니다. 흡혈귀는 판타지 작가들이 매력을 느껴 단골로 사용하는 소재입니다. 단골 소재를 사용할 때는 같은 소재로 쓰인 글들이 많은 만큼, 소재를 독창적이고 신선하게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흡혈귀를 무지에서 나온 공포의 소산물이라고 규정하고 싶어 하는 과학자들은, 흡혈귀가 괴물로 오인된 포피리아(Porphyrias) 환자라는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포피리아가 인간과 다른 방식으로 진화하여 뇌파를 조절하는 능력을 얻은 결과로 등장합니다. 즉, 흡혈귀는 전설의 존재가 아니라 인류의 아종으로서, 버젓이 호모 사타니쿠스라는 학명까지 얻은 존재로 등장합니다. 흡혈귀가 외적 매력이 아닌 뇌파를 사용하여 인간을 유혹한다는 설정으로 전형적인 흡혈귀를 재해석하고자 하는 노력이 보였습니다. 마치 폐가로 들어가 귀신을 추적하는 케이블 TV의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은 구성은 최근 들어 구태의연한 형식에서 탈피하려는 작가들이 사용하는 인터뷰 형식을 잘 변용했다고 하겠습니다. 생동감이 있어 역동적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입니다. 그러나 반전인 미방영 영상 부분에서 지나치게 급하게 마무리되는 인상입니다. 이 부분에서 인간의 관점이 사타니쿠스의 관점으로 바뀝니다. 사타니쿠스는 자신들의 입장과 상황을 인간들에게 설명합니다. 충실했던 전반부의 전개에 비해 사타니쿠스라는 존재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무겁고 철학적인 주제들이 사타니쿠스의 설명으로 너무 단순하게 마무리되어버립니다. 너무 요약된 결말이 아쉽습니다. 이러한 결말 때문에 ‘진화는 같은 역할을 다른 배우에게 넘겨준 것일 뿐이다.’라는 멋진 주제가 제대로 형상화 되지 못한 느낌입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쓸쓸하고 비극적인 사타니쿠스의 관점으로 넘어가는 연결부분이 약해서, 후반부가 충실했다면 더 좋은 글이 되었으리라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B: 초반부부터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이 돋보였습니다. 대화 위주로 소설을 진행하다 보면 글이 단조로워지기 쉬운데, 인물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대사와 군데군데 배치된 농담 등이 글의 맛을 살렸습니다. 서술 자체는 현재형의 동사만을 사용해 단조로운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만 대사의 힘으로 만회하고 있습니다. 설정을 독자에게 설명하는 방식 역시도 ‘잭’의 맛깔스러운 입심을 통해서 효과적으로 녹아들었습니다. 글의 진행에 필요 없을 것같은 대사라 하더라도 적절하게 사용했을 경우에 글의 양념이 되어 준다는 걸 잘 알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다만, ‘흡별귀’ (흡혈귀가 아니라 흡별귀라는 이름을 사용하신 것은 다른 의도가 있으셨던 것일까요? 의도가 잘 살아나지 않았습니다. 흡혈귀로 표현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지요.)가 등장하면서 극적으로 고조되었던 긴장감이 방송중단과 함께 맥없이 풀려 버리는 것이 아쉽습니다. 흡별귀 중의 ‘프랑소와즈의 멋진 콧수염을 한 남자’가 전하려고 했던 것이 글 후반에서 잘 녹아들지 못하고, 대사가 생뚱맞게 겉돌고 말았습니다. 후반부의 전개가 급진적으로 치닫지만 긴장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갑작스럽게 글이 힘을 잃고 헤매는 느낌입니다. 다른 박사들과 함께 생생하던 잭의 캐릭터성도 후반부로 가면서 맛을 잃어버립니다. 글 전체에 대한 시놉시스를 작성하시고 분량을 생각하셔서 글을 손보시면 어떨지요. 흡별귀를 묘사하는 방식이나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을 후반부까지 지속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 보시길 바랍니다.




당신은 아마 모를 거예요 ――― Kristal

A: ‘매트릭스’가 문화전반의 이슈가 되었던 1999년 이후로, 매트릭스에 사용된 가상세계라는 소재는 많은 작가들이 애용하는 소재가 되었습니다. 흔히 현실과 사후세계로 이분되었던 세계에 현실과 사후세계의 중간지대인 사이버공간이 등장하게 되었죠. 현실에 존재하지만, 현실에서 벗어난 세계는 사후세계와 달리 인간이 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많은 이야기들을 낳았습니다. 이글 역시 그러한 사이버공간을 새롭게 해석 하고자한 글입니다.
이 글 속의 사이버공간은 ‘천사의 나라(the world of angel)'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을 죽음 저편으로 차마 보낼 수 없는 사람들이 유전자 정보를 이용해 죽은 자들을 부활시키는 공간입니다. 기술적으로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 질문이 바로 글의 시작점입니다. 작가의 답은 ’천사중독 신드롬‘이라고 불리는 우울증입니다. 죽은 이들을 만날 수 있지만, 결코 잡을 수 없는 간절함과 그리움. 그것은 우울증을 불러일으키고 궁극적으로 깊은 절망 속에서 목숨을 끊는 사태를 가져옵니다. 이 사태의 파장이 사회문제로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 작가의 전망입니다만, 다소 흔한 소재를 해석하는 신선함이 부족하였습니다. 이는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 무게에 비해 분량이 너무 짧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이야기를 길게 늘여 치밀하게 주제를 풀어갔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또한 결말에서 천사 신드롬을 사회문제로 확장하려는 시도가 단순한 서술로 끝나버려서, 전체적인 주제가 ‘천사의 나라’로 인해 벌어지는 개인의 비극인지, 사회적인 문제제기인지 모호해졌습니다. 그 결과 이야기 전체의 중심이 흩어져 산만해져 버렸습니다. 보이고자 하는 주제를 엄마의 간절함에 초점을 맞춘 개인적인 비극으로 충실히 전개하거나, 과감하게 사라의 이야기를 도입 소재로 두고 후반의 사회문제를 확대하여 길게 전개했다면 보다 조밀한 글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B: 새롭지 못한 소재, 주제라는 점에 동의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이 글은 전체적으로 하나의 단편소설이라기 보다는 짧은 아이디어의 소품이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소재나 주제가 글의 전체는 아니니만큼 기존의 소재나 주제로도 글의 전개 방식이나 구성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훌륭한 소설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전반부의 사라와 어머니의 대화 장면이 현실 속이 아니라는 것을 독자에게 숨기고 중반부부터 제시하는 것으로서 독자에게 인상을 남기려 한 것이 아닐까 보여집니다만, 아쉽게도 이런 기법 역시 영화 ‘매트릭스’ 이후로는 새롭지 않습니다. 제이미 부인을 화자로 하는 전반부는 부인의 감정이 점점 고조되면서 글의 긴장을 끌고 가게 되는데, 감정에 동조하거나 그 감정에 생경함을 느끼지도 못하는 독자로서는 중반부의 ‘진단’이 충격을 주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귀결로 느껴집니다.
제이미 부인의 개인적인 아픔, 혹은 남편인 동섭의 안타까움이 글의 중심이라고 하면 후반부의 뉴스는 군더더기입니다. 적어도 뉴스를 보면서 동섭이 그 뉴스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자신의 감정과 뉴스의 이야기를 연결시키는 내용이 필요할 것입니다. 만약 후반부의 뉴스에서 ‘그러나 천사의 나라는 사회적으로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중심이라면 전반부와 후반부를 이어주는 맥락이 약합니다. 제이미 부인이 ‘천사의 나라’가 있어서 더 큰 불행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제이미 부인은 ‘천사의 나라 신드롬’을 앓고 있긴 하지만 불행하지 않다는 전개가 되어야 할 것으로 보여집니다. 글의 중심을 어느 쪽에 둘 것인지 확실히 하면서 전반과 후반의 고리를 생각해 보시길 권합니다.




크리티 박사의 슈피겔 프로젝트 ――― Kristal

A: 온갖 억측이 난무하는 달의 뒷면이 소재입니다. 거울을 설치하며 달의 뒷면에 존재하는 무엇인가를 만나는 글입니다. 이글의 특징은 뚜렷이 대비되는 소재들을 사용하여 주제를 나타내려한 것입니다. 달의 앞면과 뒷면처럼 대비되는 소재들이 등장합니다. 압살라 왕가와 시마노프 가문, 사업가인 아버지 시마노프와 아들인 작가 크리스탈, 과학을 상징하는 크세르의 발사기지와 예술을 상징하는 루브르 박물관. 곳곳에서 대비되는 소재들이 성별이 다른 이란성 쌍둥이처럼 나란히 놓입니다. 이에 반해 주제는 현실과 환상의 통합을 지향합니다. ‘현실적인 것은 환상적인 것이고, 환상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극에 놓인 소재들의 융합은 실패로 보입니다. 환상은 환상으로 남고, 현실은 현실로 남았습니다. 물과 기름처럼 분리된 소재들이 교대로 돌출되어서, 마치 보색대비인 두 개의 천을 이어놓은 느낌입니다. 전반부에는 SF적인 요소가 두드러지고, 후반에는 환상적인 요소가 두드러지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또한 압살라 왕가는 전혀 별개의 이야기로 여겨질 만큼 이야기의 맥락에서 동떨어져 있어서 전반적으로 산만한 조각보 같은 이야기가 되어 아쉽습니다. 기세 좋았던 시작에 비해 마무리가 맥이 없어서 성급한 조루결이라는 느낌도 살짝 들기도 합니다. 산만함 때문에 주제 역시 조각보처럼 문장으로 남을 뿐, 글에 녹아있지 못합니다. 중반 이후 계속 성급해지는 작가의 습관을 보완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극에 놓인 소재들을 자연스럽고 매끈하게 융합하는 연구를 하면 좋겠습니다. 그런 연구에 성과가 나와 치밀하게 짜인 조각보 같은 글이 된다면, 대극의 소재들이 어우러져 개성 있고, 아주 독특하고 재밌는 글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중편 이상 분량의 개작을 권해봅니다.


B: 글의 초반부에 시를 삽입한 글이 두 편이 있었습니다. 두 편의 작가가 다른 분이라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식견이 부족한 관계로 ‘달의 슬픔’이 실존 인물인 김해경, 즉 이 상의 시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시의 색채가 다른 이 상의 시와는 어느 정도 구별되어 보이므로 다른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추측만 해 봅니다.(오히려 이 상의 시보다는 랭보의 시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작가분은 단편보다는 장편쪽에 어울리시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 글이었습니다. [Homo Satanicus를 찾아서]에서도 그랬지만 이 글은 특히 글의 호흡이 장편에 가깝고 작가의 입심에 많이 의존합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이야기를 압축시켜 풀어내는 단편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천천히 관중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장편의 느낌이 강합니다. 다만 전작에 비해서 인물의 개성은, 등장인물이 늘어났기 때문인지, 서술이 더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전작보다 약해 보입니다. 이것은 인물의 묘사가 부족하거나 대사가 개성적이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흐름과 대사, 인물들이 잘 결합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압살라 왕국과 시마노프 가문을 대조적인 위치에 배치했지만 글의 후반에서는 시마노프 가문 내의 부자의 대립으로 변합니다. 단편 하나에서 커다란 축을 흔들어 버린 셈입니다. 압살라 왕국과 시마노프 가문이 시대의 흐름에서 어떻게 살아남고 몰락했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은 듯이 하더니 압살라 왕국은 어이없이 사라지고 부자 다툼으로 변했습니다. 시마노프 가문 안에서 스피겔 박사가 어떤 식으로 아버지와 다른 길을 가게 되었는지, 스피겔 박사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영웅시되었는지가 두 가문의 이야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니었는지요?
작가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보니 이것도 들려주고 싶고 저것도 들려주고 싶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글에서 독자에게 너무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다 보면, 특히 단편에서는, 독자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과일을 잔뜩 얹어 놓은 생크림 케이크를 먹고 난 것처럼 어지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서술력이나 문장력의 연습은 충분히 되신 듯하며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 하는 인물의 개성 잡기도 비교적 성공하신 분이니만큼 플롯과 구성에 매진해 보심은 어떠실지 권해봅니다. 초반부의 SF성이 후반부로 가면서 판타지로 넘어서는 고리가 약한 것도 안타깝습니다. 과감히 글 전체를 되새겨 보시고 더 큰 살을 붙여서 장편화하시는 건 어떨지요.




어느 소녀의 하루 ――― 니그라토

A: 변태적 가족 관계의 변태적 종말을 그린 글입니다. 근친상간, 근친살해 등은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비정상적으로 규정하는 행위이기에, ‘정상적이지 않은 것’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지닌 ‘변태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을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파격적인 소재에 반해 인물들의 심리묘사가 치밀하지 못합니다. 전반적으로 감성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일에 서투른 편입니다. 기 작가의 다른 글들과 견주어 볼 때 이런 단점이 몹시 두드러집니다.


B: ‘소녀다운 감수성으로 쓰기 위해’서 ‘소녀들은 이렇게 생각할거야’ 라고 의식하고 쓰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글의 중심이며 감정의 중심인 ‘예림’의 캐릭터성은 빈약합니다. 현재 시제로 서술하면서 독자의 시선을 유도하였을지는 모르나 비약적이며 연결고리가 부족한 서술 앞에서 독자들은 당황스럽습니다. 전적으로 주인공의 시점을 따라가면서 글의 뒷부분이 될 때까지 중심 사건에 대해서는 전혀 힌트조차 주지 않습니다. 의미를 알기 어려운 암호, 갑작스러운 눈물, 생경하게 던져진 서술 사이에서 독자들은 길을 잃고, 돌연 예림은 스쿠터를 타고 ‘오빠’를 외칩니다. 전반적으로 겉멋이 잔뜩 든 문장은 넘쳐나지만 생명력이 넘치는 문장은 부족합니다. ‘그 때의 피와 눈물처럼, 세 인간 속에 아로새겨져 있을 역사 속의 슬픔과 아픔들처럼’ 같은 문장은 적절하게 배치되면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줄 수도 있습니다만, 이런 문장만이 넘쳐나는 글에서는 빛을 잃어버립니다. ‘시공에 간섭하여 강요만이 변태이던 시절’ 같은 표현은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모호합니다. 결말 역시도 그렇습니다. 자신의 성별이 아닌 성을 묘사하거나 서술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합니다만, 표면적인 것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성별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다른 글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법령 오멜라스 ――― 니그라토

A: 최근 연쇄살인과 더불어 관심이 집중된 ‘사이코 패스’를 떠올리게 하는 글입니다. 작가는 극단적인 살인을 저지르는 사이코 패스 대신, 최근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소시오 패스를 소재로 잡았습니다. 이는 소시오 패스 쪽이 조금 덜 식상하고, 보다 일상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성격장애이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선천적으로 타인을 해치는 ‘괴물’임을 어릴 때 판명할 수 있다면, 사회의 공익을 위해 평생 격리해야 한다는 ‘법령 오멜라스’가 핵심 소재입니다. ‘법령 오멜라스’는 빈의 해부학자 F.J 갈이 18세기에 제기하여 ‘골상학’이라고 불리는 이론을 연상시킵니다. 작가는 이 글에서 소시오패스로 판정되어 평생 격리된 채 살아가게 된 아들을 둔 엄마의 이야기를 통해 ‘법령 오멜라스’에 대한 독자의 판단을 묻습니다. 아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엄마의 노력은 무위로 돌아가고, 아이는 평생 격리됩니다. 무거운 주제에 비해 내용이 피상적인 서술에 그쳐 아쉽습니다. 많은 논란을 가지는 주제인 만큼, 법령 오멜라스가 집행되어야 타당한 근거와 타당하지 않다는 근거를 이야기 속에서 충분히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법령 오멜라스가 타당성하다는 근거로서 ‘인권은 발명된 권리’라든가, ‘문명은 악인들을 모조리 쏴 죽임으로서 건설된 것’이라는 등의 내용이 등장하고, 타당하지 않다는 근거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긴 합니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법령 오멜라스가 던지는 본질적인 질문의 무게에 비하면 너무나 피상적입니다. 그런 부분이 풍부하게 더해진다면 인류의 역사 동안 반복되는 논란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불러일으키는 깊은 글이 될 것입니다.


B: 수정 전의 글을 기억하고 다시 이 글을 읽었습니다. 작가가 많은 고민을 하고 손을 보았을 것이라고는 생각합니다만, 수정 전의 글에서 문제로 제기되었던 부분은 그다지 해결된 것 같지 않습니다. ‘법령 오멜라스’의 정당성을 주장하려고 하시는 글이라고 여겨집니다만, 그러기에는 어머니의 주장에 비중이 너무 강합니다. ‘난혼제로 성립한 가정’이라는 설정이 글에서 꼭 필요한가 하는 의문도 남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과 눈에 띄게 다른 부분이 글에 등장한다면 독자의 시선은 거기로 쏠리게 마련입니다만, 이 글에서는 ‘난혼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일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 ‘법령 오멜라스’ 등 적어도 두 개 이상의 차별점이 존재하면서 글의 중심을 흔들어 놓고 맙니다. 어머니가 놀기 좋아하며 아이의 양육보다는 밖으로 나돌았다는 설명은, 자칫 잘못하면 작가분의 주장과는 오히려 정반대로 ‘환경이 소시오패스를 만든다’는 근거로 설정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난혼제’의 설정 역시도 그렇게 이용될 수 있습니다. ‘법령 오멜라스’의 타당성을 주장하기 위해서 거기에 반발하는 인물들을 부정적으로 그리려고 한다면, 오히려 그 인물들의 비극적인 결말을 보여 주는 쪽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예일 뿐입니다만, 법령 오멜라스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 어머니의 싸움이 승리해서 동현이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들을 포함한 어머니들에게도 피해를 입힐만한 사건을 일으키게 된다거나, 혹은 유치원에서 사고를 치는 것 이상의 큰 범죄를 결국 일으키거나 한다면, 그래서 법령 오멜라스에 반대했던 인물들이 동현이를 데리고 온 것을 후회하게 된다면, 독자들은 적어도 작가가 법령 오멜라스의 실시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은 알게 되겠지요. 주제를 독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방해가 되는 양념들은 모두 제거하는 편이 오히려 설득력을 얻습니다.




경국지색 ――― 말희

A: 흥미로운 중국 고사에 나오는 말희라는 미인을 소재로 한 글입니다. 내용도 있고, 완결성도 갖춘 글입니다만, 기 작가 분이 쓰시는 다른 글 수준을 볼 때 평을 하기 뭣한 습작으로 보입니다. 모계사회나 중국 역사에 대한 이해나 해석이 없습니다. 모계사회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엿보이기도 하고, 이 때문에 모계사회의 정체성을 ‘성교 상대’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해석하는 우를 범하기도 합니다. 글 서두에 달아 놓은 개인적인 해설로 볼 때, 이러한 어설픈 점은 작가 본인이 가장 잘 아시는 것 같습니다. 변명으로 내빼신 습작보다 치밀하게 정면 승부하는 글을 읽고 싶습니다.


B: 글에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가 말희의 비극인지 말희의 해피엔딩인지 모호합니다. 초반부에 큰 사건처럼 상당한 분량을 들여서 제시한 ‘스무살이 되도록 성인식을 통과하지 못한 남자와의 성교’ 장면은 전체적으로 군더더기입니다. 글의 후반부에서 혹시 이 사내가 등장하지 않을까 했습니다만 마지막까지 단지 단역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전반부의 등장한 말희는 자신의 힘으로 행동하고 판단하는 여자입니다만, 걸왕을 만난 뒤로는 장신구같은 여자로 전락합니다. 가끔 말희의 판단의 근거를 제시하긴 합니다만,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조국을 위해서 걸왕을 사랑해야 한다고 하지만 말희의 행동은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말희의 능력이 훌륭하다고 하지만 그걸 이해할 자료는 없습니다. 모계사회에서의 여성이라기보다는 ‘걸왕의 왕후로서 인정받는다는 원칙만 지켜지면’ 모든 걸 이해해주는, 남자의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이상적인 여자로 보입니다. 역사적으로 존재하는 인물이라면 좀 더 치밀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국지색들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새로운 해석이 존재합니다. 다른 글들을 읽어 보시는 것도 도움이 될 듯 합니다.




lunatic juvenile ――― SunOfHoriZon

A: 한 소녀를 사랑해서 달에게 빌었던 소원이 현실이 됩니다. 소녀와 소년을 남긴 모든 이들이 사라진 폐허 속에서 소년은 소녀를 찾아 헤맵니다. 문장과 묘사는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제가 불분명해서 잘 쓰인 회화적인 산문이 되고 말았습니다. 작가의 의도가 그러했다면 옳게 쓰인 글입니다만, 소설로서 읽는 재미는 덜한 글입니다. 글에서 초점을 맞추는 ‘달의 마력’이라는 주제가 사건과 직접적으로 드라마틱하게 연계가 되거나 비극적인 분위기가 좀 더 유기적으로 연관이 되면 좋겠습니다.


B: 혼자 살아남은 세계에서 환영같은 소녀를 추적하는 소년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묘사한 것이 돋보입니다. 장면 장면이 생생하며 글의 연결도 매끄럽습니다. 다만 가끔 ‘낮에 불을 키다니’ 같은 맞춤법 오류가 눈에 거슬립니다. 잘 안다고 생각하는 단어라도 검토해 보시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또한 글 전체가 소년 하나에 집중되면서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고, 대화조차 없기 때문에 자칫 지루해 질 수 있다는 점을 짚어 두겠습니다. 독자의 시선을 붙잡아 두기 위해서 소녀와의 일을 포함한 회상 장면 정도가 포함된다거나, 소년을 둘러싸고 소소한 사건이 일어나거나 하면 어떨지요.
사족입니다만, 생수는 유통기한이 보통 1년 이상입니다. 유통기한이 지난 생수가 있는지 찾아보고 별로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것은 소년이 최소 1년 이상을 혼자 이 세계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걸 의도하신 것이라면 상관없습니다만, 혹시 아니라면 사소한 서술을 할 때도 확인해 보십사 부탁드립니다.




추적하는 과거 ――― 세이지

A: 인간 완성은 우리가 타인의 영향력에서 해방되는 것이라는 실존주의자들의 말이 떠오르는 글이었습니다. 사회에 대한 비판을 상징을 통해 표현한 글입니다.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선입견과 시선에서 탈출하고 싶어서 벽으로 들어가는 인물들은 요즘 사회에 유행하는 히키코모리의 상징적인 비유로 보이기도 합니다. 세대를 이어가면서 반복되는 비극을 끝없이 순환되는 질병처럼 비유한 해석이 돋보입니다. 주제를 풀어가기 위한 소재의 선택이나 이야기의 전개가 무난했으나, 번호를 붙여 장면을 전환하는 방식이 흐름을 끊어놓아서 전체적으로 느슨한 글이 되었습니다. 대개 글의 호흡이 짧은 작가들이 장편을 시도할 때, 초기에 많이 선택하는 방식입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번호를 붙인 단락 구분이 무의미해 보입니다. 또한 8개의 단락은 단편으로 치면 많은 편입니다. 단락의 개수를 줄이면서 호흡을 늘이는 연습을 지속적으로 해나가시면 훨씬 더 조밀한 글이 될 것입니다. 다른 심사위원과 ‘벽’의 상징성에 대한 논쟁을 잠시 했습니다. 보통 벽을 뚫고 나가는 행위는 ‘탈출’이라는 상징으로 사용되어서, 아버지의  ‘도피’를 상징하는 소재로 <벽>이 사용된 것이 조금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안’으로 도피하는데 왜 ‘밖으로 탈출’을 상징하는 벽이 사용되었냐는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심사위원께서는 그 벽을 선입견을 피해 외부에서 안으로 도피하려는 인간을 가로막는 상징으로 이해를 하시더군요. 제 이해력의 부족이기도 했습니다만, 그런 오해의 소지가 있음을 아시고 안으로 도피하는 ‘방향성’을 좀 뚜렷하게 부각시키셨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것은 저만의 사견입니다.


B: ‘나’와 ‘어머니’가 세상의 시선 때문에 서서히 몰아 세워지는 감정의 묘사가 돋보였습니다. 충격이 너무 크기 때문에 오히려 큰 소리로 반박하지조차 못하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다만 전교조는 1989년에 결성된 단체로 1988년  경에 사망했던 아버지라면 전교조의 전신인 ‘전교협’ 이셨겠지요. 1993년까지도 전교조 소속 교사들의 해고 사건은 계속 일어나고 있었으므로 살인의 공소시효인 15년을 염두에 두셨더라면 1993년 이후로 설정하셨더라도 무리가 없지 않았을까요. 학교에서 해고 처분을 받고, 교단에서 내몰리고, 출근 투쟁을 하고, 정부로부터 쫓기고, 공정하지 않은 언론들로부터 부당하게 공격받고,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그 결과 감정적으로 점점 고립되어간 아버지는 벽을 뚫고 나가려고 하였거나 혹은 벽으로 도피했다는 전개가 더욱 설득력을 갖지 않았을런지요. ‘전교조’라는 실존하는 단체를 가지고 오신 이상, 사전 조사를 충분히 하셨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전교조였던 아버지가 어떻게 감정적으로 힘든 상태로 몰려갈 수밖에 없었는지, 아버지가 ‘벽’으로 들어가게 된 배경이 더욱 충실해졌더라면 이 글은 더욱 맛깔스러울 뿐 아니라 무게 있는 글이 되었을 것입니다.
‘벽’이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으로 저는 읽었습니다만, 작가분의 의도는 어떤 것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으로부터 내몰린 아버지가 ‘벽’으로 들어감으로써 그 결과 어머니와 딸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세상으로부터 상처받고 공격당합니다. 이것이 도피하는 것이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가져오신 소재일지도 모르겠군요. 그리고 작가분이 이미 말씀하셨지만 마지막 부분에 형사가 정답을 제시하는 것은 조금 억지스러워 보입니다. 아버지의 일기라든가 아버지 친구분의 증언이라든가, 여러 가지 방식을 이용해서 보다 온건하게 해답을 독자에게 제시할 방법이 있었을 것입니다. 형사가 친절하게도 답을 제시하고 그 답을 얌전히 수용해버리는 주인공의 모습은 작가분이 너무 쉬운 전개로 흘러가 버린 것이 아닌지 아쉽습니다.




천하제일고수 ――― 량아

A: 무공의 고수들이 대결을 벌입니다. 흔할 수 있는 상황이 오로지 높이뛰기에만 관심 있는 위공자의 등장으로 참신해집니다. 문장이 안정되어 있고, 전개방식이나 글의 흐름도 아주 좋습니다. 조밀한 문장은 이 글의 미덕입니다. 천하제일고수를 둔 말장난으로 마무리되는 결말도 재치가 있어 즐겁습니다. 화자의 독백 진행은 자칫하면 지루해질 위험이 있는 형식입니다. 위공자가 등장하는 부분에 이를 때까지의 설명이 단조롭고 장황해서 약간 지루합니다. 조밀한 문장과 입담이 지루함을 다소 막아주고 있지만, 조금 모자랍니다.
또한 작가가 설명으로 덧붙인 ‘정지위성 궤도상에서의 지표면 초장거리 정밀저격’이 글 속에서 표현되었더라면 정말 좋겠습니다. 글의 배경 상 이러한 과학적 개념을 어떻게 독자에게 전달할 지가 문제입니다. 저도 답은 모르겠습니다. 작가의 숙제입니다. 작가의 설명 없이 그 사실을 알 수 있다면 글의 재미는 배가 되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설명을 덧붙이신 것으로 보아 작가 역시 위공자의 행동과 정지위성 궤도상에서의 지표면 초장거리 정밀저격을 연관시킬 지식을 가진 독자 찾기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임을 알고 계신 듯합니다. 그저 친절한 작가의 설명을 양념으로 삼아 즐겁게 읽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B: 화자의 입심에 전적으로 글이 의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화자의 발언에 동조하거나 혹은 화자의 발언을 냉소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독자에게 더욱 매력적인 글이 되었습니다. 이야기 자체가 무협의 이야기같은 서술을 사용하면서도 실은 SF적인 해석이 가능하다는 결말입니다만, 이 화자의 입을 빌어서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작가가 마지막에 제시한 정답은 사족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넉살스럽게 무협적인 세계관에서 그 세계의 가치관으로 이야기하는 화자가 생생해서 좋았습니다. 위공자의 캐릭터성은 화자에 비해서는 다소 약한 감이 있습니다만, 위공자의 서술과 묘사가 모두 화자에 의존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을 듯합니다. 글을 끌어가는 힘이 있으시니 정진을 바랍니다.




초코파이 소실사건 ――― 량아

A: 군대에서 초코파이를 둘러싸고 벌어진 이야기입니다. 다른 것보다 대화방에서 세 사람의 대화로 소설이 이루어진다는 점이 독특합니다. 대화방의 대화 내용을 갈무리 해 놓은 것 같은 글입니다. ‘초코파이 하나조차, 자기 몸조차 찾아먹지 못한 군대 시절을 위한’ 글 같아 보이기도 하고, ‘공식고발이나 항의는 하기 겁나니까 초코파이 상자나 비겁하게 바꿔치던’ 행위를 빗대어 인간의 비겁함을 비판해보고자 하는 의도가 실린 글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같아 보이기도 한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만큼 주제가 선명하게 부각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에 이 글이 쓰였다면 몹시 독창적인 형식이었을지 모르지만, 이미 이러한 형식은 여러 작가들이 시도했고 대화체에 대한 논란 역시 한물 간 논란인지라 조금 식상하다 하겠습니다. 일상적인 대화소재를 택하기보다 좀 더 독특한 소재를 다루거나, 대화체 형식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독창적인 표현법이 있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B: 채팅룸의 갈무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생생하게 대화방을 살려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소설로서의 개성이 부족하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군대 이야기를 뒤늦게 고백하는 인물이나 그 인물에 대해서 공격적으로 나오는 인물이나, 대화방의 다른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동조하기 힘듭니다. 소재를 표현하는 방식으로서는 이미 신선함을 잃은 방식입니다. 현 시대의 비판으로 읽을 여지도 있는 글입니다만, 전체적으로 채팅룸의 갈무리 형식을 취하고 있다보니 오히려 주제가 더 흐려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육중한 주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걸맞는 틀이 필요하리라고 생각됩니다.




빗소리 ――― 량아

A: 소나기가 내리는 날 듣게 된 이상한 소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노인과 대화 속에서 주인공은 그 소리가 내면에서 나는 소리이며, 아무나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리 대부분이 들을 수도 없고, 들으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 내면의 목소리가 중요함을 일깨우고자 한 시도가 신선합니다. 글을 서정적인 분위기로 이끄는 시도 역시 좋았습니다. 그러나 반복적이고 형식적인 의성어의 사용이 그런 분위기를 충분히 만들지 못했습니다. 자주 사용되는 형식적인 의성어가 오히려 분위기를 방해합니다. 또한 주인공이 듣는 ‘내면의 소리’가 주제로 제대로 형상화되지 않고 곳곳에서 모순을 일으키며 충돌합니다. 노인은 내면의 소리와 그 소리의 공명이 아름답다고 이야기하지만, 주인공은 위화감을 주는 소리로 느낄 뿐입니다. 또한 그 소리를 들었다는 교장은 사람들 시선에 소리 듣기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래서 글이 완전히 방향을 잃어버립니다. 마치 모순된 선문답 같아 보이는 이 글은 독자와의 소통을 하지 못한 채 끝이 납니다. ‘내면의 소리’로 무엇을 말하고자 할지 분명히 설정하고 글을 전개해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B: 깊이 있는 주제를 가지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주제를 녹여내는 데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서술은 안정적이고 묘사도 좋습니다만, 작가가 말하는 것을 독자가 공감하게 하는 것에는 성공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화자 자체가 ‘빗소리를 듣는 것’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 단지 이런 일이 있었다는 에피소드로 끝나고 맙니다.  내면의 소리를 나누고 싶어 하는 할아버지의 기분도, 교장 선생님의 기분도 이해하지 못하는 화자의 기분에 독자는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수긍해 버리게 됩니다. ‘할아버지는 다른 빗소리도 듣고 싶어하지만, 난 그걸 도와드릴 수 없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지’ 라는 화자의 말에, 독자는 화자가 들은 다른 빗소리가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화자에게 동조해 버립니다. 내면의 성찰이라는 깊이 있는 주제를 다루고자 하였지만 제대로 녹여내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내 이름은 오지만디어스 ――― 량아

A: 인류멸망을 소재로 한 흥미로운 글입니다. 아마도 핵으로 전 인류가 멸망하고 살아남은 남자는 7년간 주 제어실에 들어가기 위해 고독한 사투를 벌입니다. 인류가 멸망한 방식으로 자멸하여 진정한 인류의 멸망을 완성할 목적입니다. 오로지 죽기 위해 7년을 버틴다는 점은  설득력이 적습니다. 작가는 ‘인간이 잔혹한 세계에 굴복해 곱게 죽어줄 순 없었다. 설령 비슷한 결과에 다다르는 길일지라도 내겐 뭔가 장엄하고 대단하고 극적인, 특별한 과정이 필요하다.’라고 타당성을 부여하지만, 속된 말로 ‘후까시’를 한 번 부리고 죽겠다는 심사 이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해석을 우려한 작가는, 그런 해석을 ‘소심한 멍청이’들이 하는 매도라고 주장합니다. 훌륭한 방어입니다만, 아무래도 결말에 와서야 치명적인 약점을 발견하고 부랴부랴 덧붙인 궁색한 변명 같아 보입니다.(말이 심하게 느껴지시면 소심한 멍청이로 전락할 뻔 한 심사위원의 복수라고 생각하시길^^;) 대체 무엇 때문에 주인공이 주 제어실에 닿는 길고 지루한 작업을 하는지 전반부에 제시가 되지 않아서 주 제어실에 이를 때까지의 과정에 긴장감이 전혀 실리지가 않습니다.
혼자 남은 주인공이 살아갈 목표가 필요해서 7년간 주 제어실을 뚫으며 버텨왔고, 더 오래 살아남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주 제어실을 뚫고 내려갔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 과정에서 세상에 홀로 남은 주인공의 고독이 처절하게 그려졌다면 좋았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혹은 주 제어실로 내려가는 듯 보이다가 사실은 완전한 인류멸망이 목표였다는 반전을 노리는 건 어땠을까요? 문장과 전개가 탄탄하고 여러 가지로 다양하게 바꾸어 볼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글이라 해 보는 제안입니다. 한 번쯤 참고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암호와 열쇠를 얻게 된 경위 해설은 불필요해 보입니다. 오히려 전반부에 언급이 되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B: 독자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긴장하고 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글이었습니다. 인류가 멸망하고 혼자 남았을 때 과연 그 사람은 어떤 일을 하게 될까? 이런 의문에 대한 한 가지의 답변이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멸망 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멸망을 선택하는, 의지적인 죽음을 택하고자 하는 것은 삶의 의지에 대한 문제를 돌아보게 합니다. 다만 글의 후반부에서야 등장하는 열쇠가 갑작스럽습니다. 오히려 글의 구성을 달리 하여, 글의 시작 부분에 열쇠를 우연히 줍게 되어 제어실을 뚫게 되는 것을 제시해 보면 어떨지요. 아니면 적어도 초반 부분에 열쇠에 대한 언급이 제시 되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이야기가 매력적이고 작가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훌륭하므로 여러 가지 방식으로 구성을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오지만디어스’ 라는 이름을 검색해 본 결과 독재자였던 이집트의 왕의 이름이라고 나오는데 작가분이 의도하신 이름이 맞으신지요? 스스로 세계의 멸망을 선택하는 주인공 이름으로 걸맞다고 여겨집니다만, 독자들을 위해서 이름에 대한 짧은 설명 정도는 붙여 주시면 좋지 않을까요. 글 속에서 주인공이 자신을 오지만디어스로 지칭하는 장면 정도가 있어도 좋겠습니다.




존 그레이 씨와 존 사피엘 ――― 아하스

A: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평가가 엇갈릴 수 있는 글입니다. 수호천사를 소재로 한 동화 같은 글입니다. 선량한 인간이었으나 타락하여 물욕에 눈이 먼 인간과 그 인간을 구제하고 싶은 천사의 이야기입니다. 인간을 구제하려는 천사가 가진 딱한 사정이 웃음을 자아냅니다.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글로서, 유쾌한 결말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치밀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습니다. 인간 그레이와 천사 사피엘은 외모 외에도 자신을 생각한다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닮은 점과 다른 점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성격으로 설정을 확실히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특히 천사의 성격이 후반으로 가서야 분명해져서 아쉽습니다. 그와 동시에 유쾌한 결말을 염두에 두었다면, 처음부터 글 전체를 유쾌하게 썼다면 훨씬 더 재미있는 글이 되었을 것입니다.


B: 돈 카밀레와 페포네를 읽어 보셨는지요. 글을 읽으면서 그 글을 떠올렸습니다. 선하다고 하기에는 조금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신부와, 물욕에 눈이 먼 인물들의 묘사가 맛깔스러웠습니다. 다만 글이 진지한 글인지 유모어와 위트에 핵심을 준 글인지 조금 모호합니다. 초반부부터 글의 위트를 더해 보시면 더욱 즐겁게 읽을 수 있겠습니다. 전체적으로 우리 나라의 소설을 읽는 느낌이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서구의 소설을 번역한 것을 읽고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등장 인물이나 배경이 모두 서양으로 보이므로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지나치게 번역체를 사용하면 독자가 사실성을 받아들이기에는 힘들어 질 수 있습니다. 판타지/SF의 독자들은 비교적 번역물을 많이 접해본 분들이 많아 번역체에 대해서 우호적이거나 수용적인 경우가 많습니다만, 작가 본인의 성장을 위해서는 문장 자체를 가다듬는 노력도 필요할 듯 합니다.




호수여행 ――― 이오닉

A: 치유의 여정이라는 소재를 다룬 글입니다. 느림의 미학을 예찬하며, 모든 것이 빨리빨리 돌아가는 도시에서 상처 받은 인간이 느릿느릿 흘러가는 호수를 여행하며 치유되는 과정을 그리고 싶은 의도가 엿보입니다. 이러한 종류의 글은 사건이 아니라 심리적인 흐름을 따라가야 하기에 표현력이 탁월하지 않으면 몹시 어설픈 글이 될 위험이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인간의 상처와 치유를 다루기엔 아직 조금 이르지 않나 싶습니다. 인간의 팍팍한 삶에 대한 통찰과 상처에 대한 깊은 이해와 표현 그리고 그러한 상처들이 치유되는 여정 속에 담긴 의미가 깊이 있게 풀어지지 못했습니다. 깊은 상처가 치유되고 여행의 종착역에 닿는 순간 뿜어져야 할 깊이 있는 감동과 통찰은 희미하고, 그저 호수에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치유되리라는 고함소리만이 헛되고 텅 빈 메아리처럼 돌아올 뿐입니다. 지금의 글을 볼 때, 이러한 소재를 다루기 위해서는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이를 풀어내는 역량 그리고 표현력강화가 몹시 필요합니다.


B: 탄탄한 문장이 돋보입니다. 다만 전체적으로 글의 템포는 장편인데 비하여 주제와 전개, 결말은 빈약합니다. 여행의 과정 중에 일어나는 변화가 극적이기보다는 미미하며, 돌연 급박해져 긴 여행을 서술하는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무엇보다도 ‘나’의 변화가 갑작스럽습니다. 에아의 동행을 부탁받았을 때 왜 나에게 부탁했을까 의아해하던 주인공은 돌연 에아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스스로 성찰한 결과로 에아를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만들어낸 대사를 ‘나’가 입만 뻥긋대고 있는 느낌입니다. 조언하는 위치, 자기 자신도 성찰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보기엔 ‘나’의 행동이나 가치관은 너무나 허술합니다. 도시에 상처받은 영혼은 항상 고향에서 위로받는다는 것은 흔한 주제인 동시에, 자칫 잘못하면 고향이라는 이미지 자체를 실제 존재하는 어딘가가 아니라 미화된 환상으로 전락하게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든 고향은 위로해 줄 것이라는 ‘나’의 대사는 허황되게까지 들립니다. 도시에 상처받고 고향으로 돌아와 위로받은 한 아저씨의 이야기는 독자가 감탄하고 성찰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헛웃음을 짓게 만듭니다. 깊이가 없는 탓에 탄탄한 문장 역시도 양념이 과한 겉멋 들린 문장으로 보일 위험이 있습니다.




영업방해 죄 ――― 손지상

A: 열반을 소재로 한 아주 재미있고 독특한 글이었습니다. 카르마를 수치화한다거나 미토콘드리아 내에 있는 APT의 수준이 무엇으로 환생이 될지 결정한다는 설정이 참신합니다. 환생이나 저승사자를 다른 의미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두 세계의 범죄자들이 만나는 것 역시 작가의 재치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글의 얼개가 치밀하지 못하여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합니다. 이 글의 핵심은 저승사자나 환생과 같은 일반적인 개념을 뒤집는 것입니다. 송씨가 저승사자와 만났을 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저승사자와 사뭇 다른 용어 등을 쓰는 그가 낯설고 이상했을 것입니다. 이는 독자의 시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송씨가 별 의문 없이 저승사자의 행동을 받아들임으로 해서, 마치 사건이 벌어지는 배경이 독자들이 속한 지구의 현실이 아니라 저승사자의 낯선 행동이 당연시되는 미래 혹은 다른 배경으로 보일 여지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재치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 구조자체를 이해하기 어렵게 되고, 안타깝게도 멋진 반전의 효과가 약해지고 맙니다. 저승사자가 현실에 속하지 않는 낯선 존재임을 전반부에서 선명하게 보여주면 후반의 반전이 보다 강력해질 것입니다. 또한 저승사자를 만나 열반에 들기 위해 노력하는 송씨의 모습을 보다 더 깊이 있게 서술하면 좋겠습니다. 송씨의 심정의 변화나 노력이 풍부하게 보여 진다면 열반에 이른 송씨의 긴 웃음이 어색한 의성어의 나열로 느껴지지 않고, 삼라만상을 초월하여 열반에 다다른 시원한 깨달음의 웃음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B: 다양한 저승사자가 소설에서 등장합니다만, 어떤 저승사자든 인물들은 처음 저승사자를 만나면 믿지 못하거나 놀랍니다. 이 글의 송씨 같은 반응은 매우 낯섭니다. 송씨가 저승사자의 말을 그대로 믿을 근거가 하나도 보여지지 않기 때문에 더욱 낯섭니다. 송씨가 열반에 이르기까지 노력하는 과정이 다소 피상적으로 보여 독자의 공감을 얻기 부족합니다. 작가가 글의 반전을 기대했던 것인지 아니면 삶의 해탈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인지 모호합니다. 글의 반전을 통해 재미를 기대한 것이라면 조금 더 확실한 반전이 필요할 것이고, 삶의 해탈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라면 조금 더 송씨의 수련을 묘사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전체적으로 번역체 표현도 눈에 띕니다. SF적인 설정 자체와는 어울릴 수도 있습니다만, ‘송씨’ ‘염라대왕’ 이라는 인물, 소재와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습니다. 재미있게 완성될 수 있는 글입니다. 다시 손을 보셔서 보여 주시면 기쁘겠습니다.




지그소 퍼즐 ――― 손지상

A: 혼잡하고 복잡해서 내용을 이해하면서 읽기 어려운 글입니다. 글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고, 이니셜을 쓴 주인공들의 이름이나 지명이 얽혀서 대사가 누구의 것인지 구분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독자의 노력을 탓하기 전에 글의 수준을 높이는 작가의 노력이 우선 필요해 보이는 글입니다. 이 글에 대해서는 주제보다 묘사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성애 장면이나 가학적이고 잔인한 장면 묘사를 통해 슬래셔 무비와 같은 글을 쓰고자 한 흔적이 보입니다. 그러나 성애 장면 묘사도 가학적이고 잔인한 장면의 묘사도 어정쩡하고 피상적입니다. 독자의 공포와 혐오감을 이끌어 내는 것이 목적이라면 훨씬 더 생생하고 자세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성애 장면 묘사는 독자의 성욕을 자극할 정도로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하고, 가학적인 장면은 눈앞에서 그려질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가 되어야 합니다. 피상적인 서술에 그치지 않으려면 많은 공부가 필요합니다. 성애 묘사는 성인 소설들의 묘사를 찬찬히 분석해 보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슬래셔 무비를 통해서는 생동감을 연구할 수 있을 것이고, 인체를 해부학적으로 공부하시면 인체를 찢어발기고 분해하는 장면을 훨씬 더 생생하게 묘사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글의 경우, 독자가 읽다가 구역질이 날만큼 글을 몰아붙이면 좋겠습니다. 또한 이러한 장르를 즐기는 독자들이 혐오감 속에서 찾아 헤매는 미학 역시 존재하여야 합니다.
다만, 그런 수준에 이르시면 이 게시판에 글을 올리시면 안 됩니다. 이 게시판은 미성년자들도 읽습니다.


B: 글 전반에 감정이 너무 생생하게 드러나 있어서 읽기 불편했습니다. 글의 흐름이 갑작스러운데다가, 날 것 같은 대사들이 너무 넘쳐납니다. 인터넷에서의 팬이나 안티 팬 모두가 연예인 입장에서는 똑같은 가해자일 뿐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하였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연예인 A가 동정의 여지가 없습니다. 팬들과 안티 팬들의 설정은 상세하게 짜여 있는 듯도 보입니다만 이니셜로 표현된 인물의 이름과 비슷비슷한 대사 때문에 인물의 개성은 거의 드러나지 못했습니다. 작가가 오히려 익명성을 의도하여 이니셜을 이름 대신 사용한 것이라면 인물의 설정은 불필요합니다. 팬과 안티 팬들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라면 A의 퇴폐성은 방해가 됩니다.
글 전체적으로 이니셜로 상징한 인물 전체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날 것으로 드러나 있어서 독자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팬픽 읽어도 돼?’ 라는 대사에서는 작가가 인터넷 상의 팬픽션 작가 혹은 독자들 역시도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일까 여겼습니다만, 대사만이 나타나 있어서 의도를 알기도 힘들고 이해하기도 어렵습니다. 거친 말투나 날 것의 표현을 가지고 온다고 해서 묘사가 생명력을 갖지는 않습니다.




검은 잎의 마사코 ――― Phantahunter

A: 기형도 시인의 시로 묵직하게 시작하는 글입니다. ‘검은 잎’이 던지는 느낌처럼 전반적으로 어둡고 기괴한 분위기를 잘 형성하였습니다. 어릴 적에 부모님과 곧잘 방문하던 가나자와 시를 혼자 방문하게 된, 조울증을 앓는 고3 남학생이 겪는 기이한 사건 이야기입니다. 수수께끼의 소녀 마사코와 마사코의 죽음, 점점 포악해져 가는 다운 증후군에 걸린 아끼, 까마귀 산, 입 속의 검은 잎. 글의 분위기를 점령하기 위해 선택한 소재들이 훌륭합니다. 수수께끼 같은 사건과 음침한 분위기가 호기심을 계속 자극하지만, 사건만 있을 뿐 그 사건 설명이 모호합니다. 너무 많은 단서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어서 혼란스럽고, 작가의 설명이 불친절하여 글의 핵심 줄기가 되는 사건을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합니다. 그저 ‘관조하며 흐느끼는 감각의 경화를 상징’한다고 일컬어지는 기형도의 검은 잎만이 사건의 전말을 틀어막는 것처럼 시체의 입에 허망하게 놓일 뿐입니다. 시작에 놓인 기형도 시인의 시에 대한 탁월한 해설가인 김현의 표현을 빌자면 ‘그로데스크한 리얼리즘’을 표현해 보고자한 시도는 읽히지만, 그 시도를 소설로 녹록히 형상화하는 것은 실패한 것 같습니다. 실례가 아니라면 묻고 싶습니다만, 대체 범인은 누굽니까?


B: 어린 시절 이국의 소녀를 만나 나이가 들어서도 소녀를 회상한다, 는 점에서 피천득씨의 수필 '인연'를 떠올렸습니다. 이 글에서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인연'을 떠올렸습니다. 일본이라는 배경, 소녀에 대한 환상적인 이미지 때문이었을까요. 다만, 이 글에서는 '일본 가나자와시'라는 배경이 우리나라 시골과 전혀 다르지 않은 느낌으로 그려져, 작가가 일본을 배경으로 한 이유가 뭐가 있을지 의아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교육에,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우울증에 시달리던 주인공은 일본의 시골에서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약을 먹지 않습니다. 이 글에서 일본의 가나자와의 시골은,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기묘한 일에 휩싸임에도 불구하고 소년에게는 한국보다 나은 어딘가이며, 어쩌면 살인자일 지도 모르는 소녀 마사코(혹은 유이다)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첫사랑입니다. 등장하는 마을 잔치는 일본의 잔치인데도 우리나라의 잔치와 다를 게 없습니다. '다이긴죠'는 확실히 니혼슈의 최고 등급에 해당합니다만, 다이긴죠를 마시며 새우 튀김을 먹는다고 해서 일본의 마을 잔치 분위기가 나지는 않는 것이 아쉽습니다.
수필과 소설의 경계가 모호한 일본의 사소설과도 흡사한 이 글에서는 아쉽게도 '일본'으로 표현되는 '한국이 아닌 어딘가'를 단지 환상적인 동경의 존재로 그리면서도 그 안에서 기묘한 일들을 비완결성의 상태로 남겨 두어서 더욱 더 글의 중심이 모호해지고 말았습니다. 판타지를 포함하여 어떤 글에서든 실제 존재하는 것을 가지고 올 때는 치밀한 조사가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의 시골' 이 아닌 '일본의 시골'을 가져올 때는 그럴 수밖에 없는 필연성이 있어야 합니다.




죽느냐 사느냐 특집편-대가 대(對) 신동 ――― Phantahunter

A: <죽느냐 사느냐>는 프로그램 속에서 대가와 신동이 시(詩)를 가지고 대결을 펼칩니다. 대가를 상대하는 천재 신동의 모습을 그린 글입니다. 소재가 귀엽고, 표현들 역시 귀엽습니다. 그러나 시(詩)라는 소재의 선택은 부적절해 보입니다. 이 글은 시어(詩語)에 대해 풍부하고 깊은 지식과 사색을 갖춘 다음에 다시 쓰면 좋겠습니다. 글의 독자는 누구나 될 수 있습니다. 그저 글 속의 작가가 설명하고, 그에 사회자나 청중들이 감탄한다고 해서 글에 쓰인 시어나 삼행시가 정말로 훌륭해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신동의 재능이 글 속에서는 찬란하지만, 글 밖에 있는 독자가 보기엔 우스꽝스런 자화자찬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습니다. 노력한 흔적은 보이나 삼행시나 시에 대한 이해가 얕아, 독자가 작가를 깔보기 쉽습니다. 정면 승부하실 소재로는 아직 이른 듯합니다. 또한 천재에 대한 지나친 과장 역시 많은 독자들을 납득시키긴 어렵습니다. 한국 교육의 부조리가 천재를 발견할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한탄이 섞인 ‘세계의 신동들-한국 편 : 한국의 영재교육은 과연 아르튀르 랭보 배출해 낼 수 있는가?’라는 사족은, 주제가 한국의 교육방식으로 희생된 천재의 씨앗이 아닌 이상 불필요해 보입니다. 만약 주제가 그러했다면 이야기의 전개는 전혀 달라져야 했겠지요.


B: 천재를 묘사하기는 어렵습니다. 작가에게 천재로 보이는 수준이라고 하더라도 독자에겐 전혀 천재로 보이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우주전의 전략 천재라고 작가가 아무리 열변을 토하더라도, 전략 전술을 아는 사람이 보았을 때 허점투성이의 전략을 내놓는다면 사실성이 떨어지고 맙니다. 하물며 '글의 천재' 라면, 글을 읽는 독자들의 수준이 어느 수준까지를 천재라고 볼지 당연히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과학, 음악, 체육의 영재들과 달리 문학의 영재에게 한국의 교육은 배려심이 부족하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하셨습니다만, 최근 10년간의 대학 입시에서 문학의 영재들을 위한 많은 입시 제도가 마련되었다는 것을 간과하신 것 같습니다. 귀여니를 포함하여 실제 중고생 시절에 창작한 작품으로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것이 적절한 기준으로 이루어지고 있는가는 다른 문제겠지만, 현실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서술하시기 전에 먼저 철저히 조사하시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TV 프로그램의 형식을 가지고 왔지만 쇼 프로그램의 들뜬 분위기에 독자가 동조하기 힘듭니다. '하리수' 에 대한 삼행시라든가는 작가가 의도하는 것이 개그인지 진지한 비판인지 모호하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선물 ――― 몽상가

A: 어둠 속에서 아내를 지켜보는 남자가 아주 오래전에 겪었던 어둠을 회상합니다. 괴기스럽기도 하고, 기이하기도 한 이야기입니다. 죽음에 대한 성찰이 주제로 잘 승화되었습니다. 죽음은 산 자들에게 가해지는 일방적인 횡포 같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언제나 산 자만이 끝없이 죽은 이를 그리워하고 애도하지만, 죽은 이들이 산 자를 그리워하거나 산 자를 위해 우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이 애석해서인지 동서양에는 죽은 뒤에도 친구나 가족을 지키고 수호하는 전설이나 이야기, 전설들이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죽은 이들 역시 산 자를 그리워하고, 산 자를 위해 울고 있다는 주제는 신선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작가는 신선하지 않은 재료로 아주 맛깔스러운 요리 같은 글을 내어놓았습니다. 불필요한 설정을 과감히 삭제하고, 주제에 온전히 집중한 전개는 단편의 특징을 잘 살리는 미덕을 지녔습니다. 서정적인 주제에 맞게 잔잔하고도 서정적인 분위기를 잘 살렸고, 문장의 흐름이 자연스러워서 끝까지 흡입력이 있습니다. 산 자에게 보내는 죽은 자의 메시지로 마무리 되는 끝부분의 반전에서는 따스한 감동을 잘 살렸습니다.


B: '유령들'과 어느 정도 겹쳐지는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점은, 글에서 필요한 것 외에는 과감히 삭제하고 독자에게 제시하면서도 독자가 날 것으로 느껴지지 않게 만드는 현실성입니다. 같은 연령대가 아닌 독자들조차 '나'와 같은 위치에 서서 '나'의 감정으로 글을 읽어 내려가게 만듭니다. 작가분의 전작을 생각해 볼 때 '죽은 자'와 '산 자'의 문제를 작가분이 계속 추구하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죽은 뒤, 죽은 이들이 어떤 식으로 산 자들을 보고 있을지 산 자로서는 짐작할 수 없으므로 어쩌면 죽은 이들이 산 자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산 자들의 오만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하고 온화하여 긍정하고 싶어집니다. 어머니가 사실은 살아 있지 않았다는 것이 반전인가 싶더니 마지막에 다시 한 번 반전으로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솜씨가 탁월합니다. 글의 후반부에 적당히 속도를 올려 긴장감을 끌어올린 후 결말로 내딛는 구성력이 돋보입니다.


거울 독자우수 단편 우수작에 당선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거울 독자우수 단편에 선정되신 분들께는 책을 한 권씩 보내드립니다.
ltpimento @ paran.com 으로  우편물 수령할 주소, 성함, 전화번호(택배 발송시 필요)보내주세요.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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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antahunter 09.07.02 00:04 댓글 수정 삭제
    아 이건 진짜 궁금해서 묻는 것인데, 일본에서 나이 드신 분들이 마을 잔치 할 때 한국과 다른 뭔가가 있는 것인가요? 오키나와에서 온 제 일본 친구 아끼(소설 주인공의 실제 이름임^^)의 말에 의하면 엔카 부르고, 먹고, 마시고, 얘기하고...
    용이 나오는 마을, 요괴나 괴물이 나오는 마을이란 설정은 쉽게 통과되는 것을 보면
    좀 아쉽게 느껴집니다.
    아무튼 올리기까지 많은 신경을 써서 만드셨을 설득력 높은 논평들 감사드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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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antahunter 09.07.02 06:34 댓글 수정 삭제
    두 분의 논평은 설득력이 굉장히 높은 것 같습니다. 예전엔 몰랐는데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고 평을 한다는 건 엄청난 노력과 열정을 필요로 하는 고된 작업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두 분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대가 대 신동에 나오는 프로그램은 쇼 프로그램이라는 점과 주인공은 고등학생이 아닌 중학생이란 점을 상기시켜 드립니다. '검은 잎의 마사코'의 소설문법에 대해서는 언젠가, 그곳이 어디가 되었던 밝히고 싶습니다. '범인 찾기 코드'에 대한 얘기도요. 아무튼 이것으로 만족합니다. 두 분의 논평은 다른 판타지 소설 싸이트의 논평에도 모범이 될 수 있을 만한 수준이란 점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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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이지 09.07.02 06:36 댓글 수정 삭제
    전교조에 대한 사전 조사 부족과 결론의 미진한 부분에 대해서 많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전교조의 연혁에 대해서는 생각이 짧았네요. 조목조목 잘 집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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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상가 09.07.02 09:50 댓글 수정 삭제
    감사합니다...^^ 과분한 칭찬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린아이가 읽어도 이해할 수 있는 글, 노인이 읽어도 재미있다고 느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앞으로 더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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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하스 09.07.02 12:00 댓글 수정 삭제
    감평 정말 감사드립니다^^ 역시 [거울]은 좋은 곳이군요 ㅋㅋ

    아, 근데 정말 사심없이 몰라서 여쭤보는건데요, 우수작 으로 뽑힌 분(그러니깐 이번 호에선 [마지막 선물] 이 작품 쓰신 분) 께만 책을 보내주시는 건가요, 아니면 위에 감평 되어있는 모든 분들께 책을 선물로 주시는 건가요? 그게 궁금해요 ㅇㅇ;;
    우수작만 주시는 거라면 더 노력해서 꼭 쟁취하겠습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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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하 09.07.02 19:51 댓글 수정 삭제
    우수작/가작으로 선정되신 분께만 보내드린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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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량아 09.07.02 22:09 댓글 수정 삭제
    제 글들이 이렇게도 읽히는군요. 감평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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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개 09.07.03 00:22 댓글 수정 삭제
    정말 대단한 심사평이네요. 정성이 가득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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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OFHoriZon 09.07.05 01:23 댓글 수정 삭제
    너무 짧아아아아아아아...........제것만 짧은 건 저만의 착각?

    은 훼이크(는 아니고.) 아무튼 회화적인 산문이라는 부분이 가슴에 콕하고 박히는 군요.

    역시 사건이 더 필요했어. 중얼중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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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가리 09.07.09 10:30 댓글 수정 삭제
    평론가라는 위치가 어쩌면 평론을 하기에 가장 불리한 위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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